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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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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평양냉면의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정을 집대성하였다.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냉면에 관해 수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이미지를 한데 수집해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냉면가冷麵家’가 표기된 〈기성전도箕城全圖〉(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회화식 지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와 같은 귀중한 자료를 포함한다.
    냉면은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준 우리 음식 가운데 매우 독특한 음식이다. 또한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자랑하는 소울 푸드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점을 정리하는 데는 물론, 냉면이 왜 우리의 소울푸드인지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이제 평화의 상징이 바뀌었다. 비둘기가 아닌 평양냉면이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외신이 보도한 국내 내티즌들의 반응이다. 아직은 우여곡절이 있어 보이지만 판문점 냉면 만찬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장밋빛 평화 무드는 계속되고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그 어떤 드라마틱한 순간에도 한 가지 음식이 이처럼 세계인의 괌심을 끈 적은 없을 것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주인공은 단연 평양냉면이었다.
    냉면이 갑자기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왜일까? 단순히 역사적인 만찬의 주메뉴였기 때문일까? 냉면은 그 같은 소임을 맡을 만한 문화적 자산과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다.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스토리텔링이 가장 풍부한 소울 푸드는 단연 냉면이다.
    냉면은 드물게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기도 하다. 꾸미와 고명을 얹은 채 웅숭깊은 냉면 국물 속에 똬리를 튼 면발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공력이 많이 가는 음식임에도 서민이고 양반이고 궁중에서고 두루 즐겼다. 또한 본시 겨울 음식이었던 냉면의 문화 속에는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역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냉면은 왜 특별한가

    냉면은 오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화된 음식이다. 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箕城全圖〉(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일반 서적 가운데는 이 책에서 최초로 수록 소개) 속에는 흥미롭게도 ‘냉면가冷麵家’가 표기되어 있다. 19세기 초 순조 임금은 냉면을 궁궐 밖에서 테이크아웃해 오게 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시작된 냉면집은 3차례에 걸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세기, 20세기초, 그리고 6·25 전쟁기다.
    냉면은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준 독특한 음식이다. 그 기록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냉면은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평뽕족’이라는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냉면 마니아들에게 냉면이란 단연 평양냉면이다.

    진정한 평뽕족이 되는 길: 평양냉면의 역사를 꿰뚫는 일부터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일부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냉면에 관해 수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이미지를 한데 수집해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냉면배달부인 중노미들의 곡예 부리듯한 배달 모습을 담아낸 나혜석과 안석영의 드로잉은 당시 얼마나 냉면 배달이 성업하였는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우리 음식 배달문화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압출기 위에 거꾸로 매달려 면을 뽑는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의 그림 2점도 눈길을 끈다.
    ‘평뽕족’들은 '평부심'(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을 즐긴다. 이 책은 평뽕족 입문자에서 평양냉면의 역사까지 꿰뚫는 진정한 ‘평뽕족’으로 가는 데 더없이 유익한 책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점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양냉면을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버킷리스트에 ‘평양 가서 냉면 먹기’를 적어두었다면 냉면이 왜 우리의 소울푸드이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조용히 음미해 볼 일이다.

    책을 펴내며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소울 푸드를 하나만 들라 하면 주저 없이 냉면을 꼽겠다. 냉면은 우리 음식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천여 년의 역사를 꼽는 연구자들도 있다.
    냉면은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다. 꾸미와 고명을 얹은 채 웅숭깊은 냉면 국물 속에 똬리를 튼 면발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본디 국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냉면은 국수보다 더한 공력을 필요로 한다. 형언할 수 없는 수고로움을 딛고서야 마침내 냉면 한 그릇의 소중함은 의미를 얻는다.
    시인 백석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는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이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온다고 노래했다. 이토록 공력이 많이 가는 음식을 서민이고 양반이고, 궁중에서고 두루 즐겼다.
    냉면은 본시 겨울 음식이었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꽁꽁 언 김치 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 만 냉면을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정경이 지금이야 낯설 수밖에 없지만, ‘혀를 울리는 쩌르르한’ 냉기로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역설의 지혜가 냉면의 문화 속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 속에는 매우 흥미로운 글귀가 보인다. 다름 아닌 ‘냉면가’ 표기다. 대동문, 부벽루 등의 명승지와 함께 냉면집이 뚜렷이 표시되어 있다. 같은 시기에 평양을 여행한 실학자 유득공은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과 돼지 수육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적었다. 그만큼 냉면이 널리 유행하였고, 겨울에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순조 임금은 냉면을 궁궐 밖에서 테이크아웃해 오게 했다.
    냉면이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화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냉면집은 평양에 제일 먼저 들어서고, 이어 서울로 진출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시작된 냉면집은 서서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도시화가 촉진됨에 따라 1910년대 후반 무렵 평양에는 큰 규모의 냉면 거리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다시 한 번 평양냉면은 경성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진군해 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배달 음식의 천국이라 일컬어진다. 그 뿌리는 20세기 초반 평양과 경성에 들어선 냉면집이었다. 중머리라 불린 냉면 배달부들이 한 손에 배달 음식이 담긴 큰 목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곡예하듯 자전거를 운전하는 이색적인 모습은 나혜석과 안석영의 드로잉으로 남아 있다.
    수천 년, 수백 년을 이어온 음식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다. 음식은 곧 그 문화를 배태해 낸 민족의 삶과 문화의 젖줄이다. 우리의 혼이 깃든 음식이자 가장 오랫동안 밥상의 주인공이었던 밥이나 김치는 다른 음식과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밥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또 아무리 우리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김치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다.
    냉면은 주식의 대용이 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다. 냉면이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었음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냉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삼십대 젊은 층에도 냉면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냉면 마니아들에게 냉면이란 단연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스스로를 '평뽕족’(‘평뽕’이란 평양냉면의 중독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부르며, 냉면집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다. 지난 4월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등장한 옥류관 냉면 때문이다. 거무스름한 면의 빛깔과 다진 양념을 보고 아연실색한 평뽕족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스레 ‘정통’ 논쟁이 불붙게 되었다.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이 평양냉면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으며, 북한의 평양냉면은 그 원형을 상실했다는 주장이다.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은 해방과 한국전쟁기에 남으로 이주한 평양 사람들에 의해 뿌리를 내렸다. 이른바 평양냉면의 제3차 진군이다. 평양냉면의 3차 진군에 의해 그 이전까지 수십 년 아성을 누리던 냉면집들은 경쟁에서 도태되었다.
    평양냉면은 지금 가장 ‘핫’한 음식이 되었다. 해외에서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더불어 유사 이래 가장 큰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조만간 평양냉면의 제4차 진군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서울과 평양의 평양냉면 가운데 누가 이길까. 미리부터 조바심이 나고 자못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평양냉면의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정을 집대성하였다. 얇은 책 한 권에 집대성이란 표현은 과한 듯 여겨질 수 있지만, 냉면이 등장하는 의미 있는 1차자료를 망라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오늘의 북한 평양냉면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이 두 편 실려 있다.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을 즐기는 ‘평뽕족’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평양냉면을 둘러싼 논쟁점들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곳에는 해설을 첨부해 두었다.
    “이제 평화의 상징이 바뀌었다. 비둘기가 아닌 평양냉면이다.”
    외국 언론이 전한 한 국내 네티즌의 말이다.
    버킷리스트에 평양냉면을 적어두는 일은 작지만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일 것 같다.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평양냉면 예찬

    사철 명물: 평양냉면 김소저
    냉면 김남천
    냉면의 ‘고향’은 평양
    평안도는 냉면 나라 차상찬
    국수 백석
    평양랭면 제일이야

    2부 냉면의 역사를 보듬다

    평양 찬샘골에서 유래한 평양냉면
    첫 기록 속의 냉면은 자장냉면
    다산 정약용, 냉면을 부러워하다
    메밀국수의 등장
    냉면 테이크아웃은 언제 시작되었나
    전국 요리로 진화하다
    냉면집 깃발이 철을 만난 듯
    냉면 레시피와 조리법
    동치미 국물 냉면은 별맛
    냉면 배달부의 천국: 불경기 중의 냉면 대풍년
    MSG 냉면의 역사: 아지노모토의 상술에 놀아나다
    눌러 먹고 사는 사람
    서울냉면
    냉면은 평화의 상징

    3부 냉면, 문학이 되다

    냉면 한 그릇 유종석
    냉면 김랑운
    유경식보柳京食譜 이효석
    유령의 종로 이태준
    복덕방 영감 이태준
    비밀 가정 탐방기: 냉면 배달부가 되어 야광생

    4부 냉면 기행

    조선 명물 평양냉면 유지영
    38선을 넘어 찾은 평양냉면집 선우진
    눈물로 삼킨 옥류관 냉면 심혜진
    북한의 별미를 찾아서 최재영

    부록 세상의 모든 냉면

    본문중에서

    꽁꽁 언 김치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이요, 상상이 어떻소!
    (/ p.17)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차나 마시러 갈까” 하면, “여보, 차는 무슨 차, 우리 냉면 먹으러 갑시다.” 하고 앞서서 냉면집을 찾았다. 모든 자유를 잃고 그러므로 음식물 선택의 자유까지를 잃었을 경우에 항상 애끓는 향수같이 엄습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식욕의 대상은 우선 냉면이다.
    (/ p.21)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ㅤㄱㅜㅌ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 p.38)

    평양에서는 당시 냉면이 크게 유행하였다. … 조선 후기의 평양성을 그린 〈기성전도〉箕城全圖에 ‘냉면가’(냉면집)가 표시되어 있을 정도다. 19세기 초중엽 서울에서 생활한 조두순은 “이웃집 고운 여인네 새로 배운 음식 솜씨 뽐내니 평양냉면이 사람의 목구멍을 즐겁게 해주네”라고 노래하였다.
    (/ p.58)

    비운의 황제 고종은 냉면 마니아였다. … 고종이 냉면을 찾으면 나인들이 궁궐을 나가 대한문밖 국수집에서 사리를 사왔다. 면만 테이크아웃한 것이다. 고명과 육수는 궁궐 수라간에서 만들었다. 임금이 좋아하는 음식을 궁궐에서 모두 만들지 않고 밖에서 사온 이유는 그 시절에 그만큼 외식업이 발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 p.67)

    일제강점기 냉면집의 특색은 배달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처럼 음식 배달업이 발달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 뿌리는 100여 년 전의 냉면 배달부에서 시작된다. 냉면 배달부를 지칭하는 ‘중머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이채를 띠는 직업이었다. 화가 나혜석과 신문 만평으로 유명한 안석영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중머리의 배달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한 손으로 냉면 그릇과 주전자를 가득 얹은 목판을 받친 채 나머지 한 손만 가지고 자전거를 운전하는 모습이다.
    (/ p.91)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버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성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 까다로운 서울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해 보려고 평양냉면 장사들이 일류 기술자 - 냉면의 맛은 그 기술 여하에 달렸습니다-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 p.103)

    옥류관에 오면 일단 ‘국수(랭면) 맛’을 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난간으로 나가서 대동강 ‘풍경 맛’을 봐야 합네다. 세 번째로는 밖으로 나가서 옥류관 ‘건물 맛’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옥류교로 이동해 시원한 대동강 ‘바람 맛’을 보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옥류약수터 ‘약수 맛’을 보면 됩니다. 그래야 옥류관의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맛보신 겁네다.
    (/ p.195)

    사철 명물 : 평양냉면
    김소저

       봄
    봄바람이 건듯 불어 잠자던 모란대에 나무마다 잎 트고 가지마다 꽃 피는 3,4월 긴- 해를 춘흥에 겨워 즐기다가 지친 다리를 대동문 앞 드높은 2층루에 실어놓고 패강* 푸른 물 따라 종일의 피로를 흘려보내며 그득 담은 한 그릇 냉면에 시장기를 면할 때!
     
       여름
    대륙의 영향으로 여름날 열기가 상당히 높은 평양에서 더위가 몹시 다툴 때 흰 벌덕대접에 주먹 같은 얼음 덩어리를 속에 감추고 서리서리 얽힌 냉면! 얼음에 더위를 물리치고 겨자와 산미에 권태를 떨쳐버리리!
       가을
    수년을 두고 그리던 지기知己를 패성浿城*에 맞아다가 능라도 버들 사이로 비쳐오는 달빛을 맞으며 흉금을 헤쳐 놓고 오랜 회포를 이야기할 때 줄기줄기 긴- 냉면이 물어 끊기 어려움이 그들의 우정을 말하는 듯할 때!
     
       겨울
    조선 사람이 외국 가서 흔히 그리운 것이 김치 생각이라듯이, 평양 사람이 타향에 가 있을 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한 힘이 있으니, 이것은 겨울냉면 맛이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방안에는 바느질하시며 삼국지를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만 고요히 고요히 울리고 있다. 눈앞에 글자 하나가 둘 셋으로 보이고 어머니 말소리가 차차 가늘게 들려올 때, “국수요-” 하는 큰 목소리와 같이 방문을 열고 들여놓는 것은 타래타래 지은 냉면이다. 꽁꽁 언 김치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풀어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이요, 상상이 어떻소!

    -《별건곤》 1929.12

    *대동강.
    *평양.

    냉면
    김남천

    소설가이자 평론가. KAPF의 중심 이론가로서 작가가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작품에 장편 〈대하〉와 작품집 《3.1운동》 《맥》麥 등이 있다.

    ‘냉면’이라는 말에 ‘평양’이 붙어서 ‘평양냉면’이라야 비로소 어울리는 격에 맞는 말이 되듯이 냉면은 평양에 있어 대표적인 음식이다. 언제부터 이 냉면이 평양에 들어왔으며 언제부터 냉면이 평안도 사람의 입에 가장 많이 기호에 맞는 음식물이 되었는지는 나 같은 무식쟁이에게는 알 수도 없고 또 알려고도 아니한다.
    어렸을 때 우리가 냉면을 국수라 하여 비로소 입에 대게 된 시일을 기억하는 평안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밥보다도 아니 쌀로 만든 음식물보다도 이르게 나는 이 국수 맛을 알았을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어른들의 냉면 그릇에서 여남은 오리를 끊어서 이가 서너 개 나나 마나 한 입으로 메밀로 만든 이 음식물을 받아 삼킨 것이 아마도 내가 냉면을 입에 대어본 처음일 것이다. 젖 먹다 뽑은 작은 입으로 이 매끈거리는 국수 오리를 감물고 쭐쭐 빨아올리던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 가물가물하다.
    누가 마을을 오든가 한때에 점심이나 밤참에 반드시 이 국수를 먹던 것을 나는 겨우 기억할 따름이다. 잔칫날, 그러므로 약혼하고 편지 부치는 날에서부터 예물 보내는 날, 장가가는 날, 며느리 데려오는 날, 시집가는 날, 보내는 날, 장가 와서 묵는 날, 가는 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 국수가 출동한다. 이 밖에 환갑날, 생일날, 제삿날, 길사, 경사, 흉사를 물론하고 이 국수를 때로는 냉면으로, 때로는 온면으로 먹어 왔다.
    심지어는 정월 열나흘 작은 보름날 이닦기엿, 귀밝이술과 함께 수명이 국수 오리처럼 길어야 한다고 ‘명길이국수’라 이름 지어서까지 이 냉면 먹을 기회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안도 사람의 단순하고 담백한 식도락을 추상할 수 있어 흥미가 새롭다.
    속이 클클한 때라든가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화풀이로 담배를 피운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런 때에 국수를 먹는 사람의 심리는 평안도 태생이 아니고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박에 져서 실패한 김에 국수 한 양푼을 먹었다는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이렇게 될 때에 이 국수는 확실히 술의 대신이다. 나같이 술잔이나 할 줄 아는 사람도 속이 클클한 채 멍하니 방안에 처박혀 있다간 불현듯 냉면 생각이 나서 관철동이나 모교毛橋* 다리 옆을 찾아갈 때가 드물지 않다. 그런 때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차나 마시러 갈까?” 하면,
    “여보, 차는 무슨 차, 우리 냉면 먹으러 갑시다.”
    하고 앞서서 냉면집을 찾았다.
    모든 자유를 잃고 그러므로 음식물 선택의 자유까지를 잃었을 경우에 항상 애끓는 향수같이 엄습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식욕의 대상은 우선 냉면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냉면이 우리에게 가지는 은연隱然한 세력은 상당히 큰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한방의는 냉면이 몸에 백해百害는 있을지언정 일리一利도 없는 식물이라 한다. 그런지 안 그런지 알 길이 없다. 일종의 보약 같은 것을 복용할 때 금기물의 하나로 메밀로 만든 냉면이 드는 수가 많은 것은 우리들의 주지의 사실이다.
    국수를 먹고 더운 구들에서 잠을 자고 나면 얼굴이 부석부석 붓고 목이 케케하여 기침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냉면은 몸에 해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국수물, 다시 말하면 메밀 숭늉은 이뇨제로 된다.
    트리퍼* 같은 걸 앓는 이가 냉면에 돈육이나 고추나 파나 마늘이 많이 드는 것은 꺼리지만, 냉면 먹은 뒤에 더운 국수물을 청해다 한 사발씩 서서히 마시고 앉아 있는 것은 이 탓이다. 은근히 물어보면 이것을 먹은 이튿날의 효과는 어떤 고명한 이뇨약보다 으뜸간다고 한다.
    냉면은 물론 메밀로 만든다. 메밀로 만든 국수는 사려 놓고 십여 분만 지나면 자리를 잡는다. 물에 풀면 산산이 끊어진다. 시골 외에는 순수한 메밀로 만드는 국수는 극히 희소하다. 국수발이 질기고 끊어지는 않는 것은 소다나 가타쿠리* 가루를 섞는 탓이라 한다.
    서울의 골목마다 있는 마른 사리 국수 또는 결혼식장에서 주는 국수 오리 속에 몇 퍼센트의 메밀가루가 들었는지는 우리들의 단언할 수 없는 바다. 나는 서울서 횡행하는 국수의 대부분은 옥수수 농매*나 그와 유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틀 사흘을 두었다가도 제법 먹을 수 있고, 얼렸다가도 더운 국물에 풀면 국수 행세를 할 수 있다. 이것은 국수가 아니고 국수 유사품이다. 평양냉면이나 메밀국수와는 친척간이나 되나마나하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란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소갈비나 구워서 소주를 마신 뒤에 얼벌하니 고추를 쳐서 동치밋국에 말아놓은 냉면을 먹는 맛이란 지내보지 않은 사람으론 상상할 수도 없는 기막힌 진미다.
    냉면은 어느 계절에 먹는 음식일까? 평양이나 평안도 일대에선 점심이나 밤참은 언제나 냉면이니 사철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이것을 애호하는 셈이다. 요즈음 중독 사건이 각처에서 자주 일어나 여름에 냉면을 먹는 것을 도회지에선 꺼리지 않는가 한다. 나 자신도 여름에 서울서 냉면을 먹을 때엔 ‘고기가 변하지 않았나’를 단단히 다져보고 ‘고기국물이 상하지 않았나’를 여러 번 물어본 뒤에도 안심할 수 없어 상당한 각오를 하면서야 먹는다. 이런 각오를 하고 먹어도 그 맛이 감쇄減殺되지 않으니 그 맛은 과연 복어와 비길 정도인가 한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냉면은 겨울에 먹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겨울에는 온면이나 어묵장국을 애호하는 분이 많으나 이는 늙은이들이나 할 짓이다. 국수를 먹으면 바람을 켜고, 감기를 재촉하고, 기침을 유발시킨다 하여, 겨울에 천식이나 해수병咳嗽病*으로 몹시 고생辛苦하는 노인네들은 절대로 입에 대지 아니하고, 간혹 피치 못할 경우에는 냉면 대신에 온면이나 어묵장국을 먹는다. 웬만큼 국수 맛을 아는 사람은 한겨울嚴冬에 오히려 냉면 맛을 즐긴다. 혀를 울리는 쩌르르한 ‘전동치미’ 국에 국수를 풀어놓고 돼지비계 같은 흰 잔디 쪽 위에 다대기를 얹은 것을 훅훅 들이켜는 맛이란 아닌 게 아니라 다른 계절에선 찾아볼 길이 없는 훌륭한 미각이다.
    언젠가 우리 시골서 다섯 사람이 내기 화투를 하고 밤참을 주문할 때에 그 중 한 사람의 50 줄에 든 늙은 분을 위하여,
    “다섯 그릇 중 한 그릇은 온면이오.”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늙은이는 아무 말도 안하고 자리를 찼다. 휑하니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채고,
    “아즈바니, 젊은 놈이 미쳐 실수했으니 눌려 보아 주시오.”
    해서 겨우 노염을 푼 일이 있다. 앉아서 그 분이 하는 말이,
    “임자네들이 날 병신 취급하는 바엔 아여 당초에 함께 장난을 칠 게 무언가” 운운.
    그는 저 혼자 온면을 먹으랬다고 그것에 모욕을 느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는 국수를 주문할 때엔 연로한 분이 있으면,
    “아즈바닌 무얼 하실까요?”
    하고 은근히 묻는 일이 많아졌다.
    “응, 난두 냉면으루 하시게”라든가 “난 요즘 기침이 나서 장국으로 하시게”라든가 하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국수 꾸미-다시 말하면 국수에는 무슨 고기를 쳐야 가장 맛이 나는 것일까? 흔히들 쇠고기牛肉와 돼지고기豚肉를 친다.
    “수육 치구 한 그릇이오”라든가 “수육 치구 두 그릇이오” “살루 치구 두 그릇이오”라든가는 이를 말함이다.
    사실 서울이나 평양에선 이 외의 꾸미를 맛볼 수는 없다. 나는 다행히 물오리고기, 닭고기, 노루고기, 범虎의 고기, 산돼지고기 등등을 쳐서 먹어본 일이 있으나, 무엇무엇해도 냉면에는 꿩 이상 가는 것이 없다. 꿩보끼를 쳐서 동치밋국에 먹어본 적이 없는 이는 냉면에 대하여 말참견容喙할 자격이 없다. 꿩은 겨울에 나는 동물이다. 냉면 맛이 겨울에 나는 것은 이 때문도 아닌가 한다. 꿩고기 쳐서 냉면을 먹어보지 못한 겨울은 내게 있어선 지극히 불행한 겨울이다.
    이번 평양을 들러 2박을 하는 동안 세 곳의 냉면 집에서 다섯 그릇의 냉면을 먹었다. 질이 저하되었다. 서울 25전에 평양 15전이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떤 것은 서울 것만 못한 것도 있었다. 시골 와서 무려 열 몇 그릇을 먹었으나 꿩의 고기를 구할 길이 없으매, 국수 맛으로 입을 다셔 볼 길이 막막하다. 먹고 나서 입 다실 품이 없으매 마치 고향을 잃은 것같이 쓸쓸하고 서운하였다.
    냉면과 인연 있는 어휘로 재미있는 것이 한둘이 아닐 게다. ‘전동치미’ ‘다대기’* ‘수육’ ‘살’ ‘생저리’ ‘밧드리’ - 그러나 ‘못당추’란 서울말로 직역하면 ‘못고추’다. 고추를 못한다는 뜻이다. 10년 전 우리 학생 때엔 고추를 위주로 한 양념을 싫어하는 이는 내지인內地人*이라 하여 이것을 표시하는 말이 묘하게 되었더니 세상 형편時勢의 탓인지 그것이 ‘못당추’로 되었다.
    “방 안에 다섯이오. 하나는 못당추요.”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쓴웃음苦笑을 금할 수가 없었다. 냉면과 연줄을 갖는 것으로 ‘쟁반’이란 게 있다. 종이가 다 되었으며 자상하게 설명할 길이 없으나, 서울서도 우춘관 같은 데서 한다. 그 맛은 보증할 수 없으나 ‘쟁반’의 의미를 미루어 보기에는 충분할까 한다.

    -《조선일보》 1938.5.29; 5.31

    *과일을 팔던 모전毛廛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지금의 서울 무교동, 다동 일대.
    *tripper. 독일어로 임질.
    *일본말로 얼레지라는 식물. 뿌리에서 녹말가루를 채취한다.
    *녹말을 가리키는 평안도 사투리.
    *술을 먼저 마시고 면을 나중에 먹는 것.
    *기침을 심하게 하는 병.
    *일본어로 ‘다진 양념’을 가리킴.
    *일본인.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미국에서 소셜 무브먼트 그룹 NK Vision 2020을 설립해 남과 북을 셔틀 왕래하며 동포들에게 민족화합과 자주통일을 위한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운동가. NK Vision 2020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역사), 동북아종교위원회(종교), 남북동반성장위원회(경제), 오작교포럼(언론) 등 네 기관을 두었으며, 남, 북, 해외 동포 3자가 먼저 민족공조를 이룬 후에 국제공조 속에 주권적인 통일을 이루도록 조력하고 있다. 풀러신학교 대학원 선교목회학 박사이며, 미국 The Light of Glory Church 담임목사를 역임하였다.

    생년월일 1911.3.16~1953.8.?
    출생지 평안남도 성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본명 김효식金孝植. 1911년 평남 성천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다. 1930년 카프 도쿄 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1931년 호세이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1931년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어 2년의 실형을 언도받았으며, 1934년 제2차 카프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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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12.07.01~1995
    출생지 평북 정주
    출간도서 84종
    판매수 88,502권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보와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다. 1930년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고,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으며,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해방 후 고향에 머물다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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