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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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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내일의 평양은 오늘의 평양과 다를 겁니다

    2018년의 한반도는 격동의 세월을 살고 있다. 지구에 남아 있는 유일무이한 분단국가로 결코 화합할 수 없을 것 같던 남과 북이 70년간의 적대감을 녹이고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부터 조금씩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무위원장이 남북 경계선을 넘나들며 손을 맞잡고,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놓인 가운데 북미 협상이 펼쳐지며, 벅찬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가운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이야기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분명, 내일의 평양은 오늘과 다르지 않을까? 소설집[안녕, 평양]은 그런 희망과 기대로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국가대표급 소설가부터 갓 데뷔한 신인 작가에 이르기까지,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6인의 작가가 북한을 이야기한다. 도쿄나 베이징보다 가깝지만 지구 반대편보다 멀게만 느껴졌던 도시 평양을 여행하고, 평양냉면을 들이켜며 그들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대동강변에서 최고 권위의 북한 과학자를 인터뷰한다. 어떤 주인공은 간첩들과 함께 우연한 동행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주인공은 간첩으로 지목되어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다. 너무도 다른 여섯 작가의 너무도 다른 단편소설 여섯 편이 눈물과 웃음 또는 한숨과 성찰을 동반한 채 독자들을 군사분계선 너머로 안내할 것이다.

    출판사 서평

    미처 몰랐던, 어쩌면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북한 이야기
    대한민국 소설가들이 써 내려간 여섯 편의 단편소설

    성석제, 공선옥, 김태용, 정용준, 한은형, 이승민,
    대한민국 소설가들이 그려낸 여섯 편의 북한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가까운 그곳에도
    친구와 가족, 시와 노래, 생생하게 숨 쉬는 일상이 있다.

    이제, 평양을 여행할 시간


    대한민국 소설가들의 북한 이야기[안녕, 평양]은 3년 전 기획됐다. 독립출판사 엉터리북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출판사 바람(2013~2015년)이 앞서 출판했던 호기로운 여행 소설집 시리즈가 그 시작이었다. 2013년 출간했던 해외여행 소설집[도시와 나]와 2014년 출간한 국내 여행 소설집[그 길 끝에 다시]에 이어, 당시만 해도 ‘금단의 땅’이었던 북한을 소재로 세 번째 여행 소설집을 펴내고자 했다. 여러 소설가에게 원고 청탁을 했지만, 많은 거절 끝에 여느 때보다 더딘 속도로 작품이 완성됐다. 하지만 어렵게 작품을 취합했을 즈음 출판사 사정으로 인해 출간이 기약 없이 미뤄졌고, 이 기획은 아쉽게도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해빙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감동과 감탄을 선사하는 남북미 관계를 마주하며 다시 용기를 내 원고에 묻어 있던 먼지를 털어냈다. 이미 3년 전 신작 소설을 보내주었던 공선옥, 김태용, 정용준, 한은형, 이승민 작가와 함께 성석제 작가가 동참해주었다. 몇몇 작가들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소설을 조금씩 손보기도 했고, 어떤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을 보내오기도 했다. 원래 청탁을 건넸던 백영옥 작가는 바쁜 일정 탓에 소설을 쓰진 못했지만, 기꺼이 소설을 읽고 짧은 에세이를 보내주었다. 그렇게[안녕, 평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여섯 편의 소설과 함께 북한을 들여다보아도 좋은 시간이 되었다.

    당대의 현실을 가혹하리만치 리얼하게 그려내는 공선옥 작가는 단편 [세상에 그런 곳은]에서 계약직 노동자 완과 북한 이주민 준, 두 남자의 시선을 교차해가며 그들의 남루한 일상을 보여준다. 해고 통보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며 이성에 대한 호감조차 물리적 생활고로 인해 삭히고 마는 노총각의 한숨과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어버이연합의 시위에 용역으로 가담하는 새터민의 구토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인간 군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과연 그들이 꿈꾸는 ‘그런 곳’은 어디에 있을까?

    작가 특유의 독특한 서사와 지적인 탐구가 돋보이는 김태용의 단편 [옥미의 여름]은 2023년 평양을 배경으로 북한의 최고 여성 과학자와 연구원, 서울의 여성 기자의 흥미진진한 만남을 따라간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이후, 제한적이지만 남북의 경제 교류도 활성화되고 있는 가까운 미래의 어느 여름날, 만나기 까다로운 북한의 여성 과학자 리현심 박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대동강변 과학자거리에서 북한의 연구원 옥미를 만난 남한 기자 여름의 낯선 발견과 성찰을 통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학문적 열망과 예술적 기호에 심취한 북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당대의 이야기꾼 성석제 작가의 [매달리다]는 천생 뱃사람으로 태어나 평생을 성실히 살았지만 느닷없이 간첩으로 내몰려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한 사내의 인생을 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을 내세워 인물의 희로애락을 덤덤히 이야기하지만, 그를 둘러싼 우리 역사는 꼬이고 비틀어져 그를 온전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참혹한 역사는 분노를 내뿜게 하지만, 몸부림칠수록 고통이 커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가슴 한구석을 때로 뜨겁게 때로 서늘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성석제 작가의 소설집[ㅤㅁㅢㅤ리도 괴리도 업시(문학동네, 2016)]에 수록됐던 작품을 작가가 직접 매만져 재수록한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간성의 탐색에 몰두해온 정용준 작가는 인디 가수와 간첩단 일행의 웃지 못할 동행을 그린 블랙코미디 [나이트버스]를 선보인다. 남한에서 버스 기사, 사설 경호원, 골프장 캐디, 두부공장 직원, 심부름센터 아르바이트, 대학교 시간강사 등으로 근근이 생활해온 간첩단이 회심의 접선을 하기로 계획한 날 그들의 버스에 잘못 승차한 가수 폴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경주로 함께 이동한다. 계획에 없던 살인을 고민하는 순수한(?) 간첩들과 계획에 없던 여행에 나서며 ‘나이스 나이스’ 노래를 흥얼거리는 순진한(!) 가수의 대비는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삶의 순간을 포착한다.

    [안녕, 평양]에서 가장 신예 작가인 이승민은 [연분희 애정사]에서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북한 여인의 지독한 애정사를 파고든다. 매너리즘에 빠져 지내던 신문기자 ‘나’는 금강산 관광 취재에 나섰다가 현지 공연단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펼친 인민배우 연분희를 인터뷰하게 되는데, 한국 여성들과 달리 순수하고 거침없는 매력을 보이는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녀의 연인이었던 공연단 단장이 귀순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고 만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어느 곳이나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015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한은형 작가의 [샌프란시스코 사우나]는 독일 본(Bonn)에서 태어난 한국계 독일인 ‘본’이 베를린부터 서울과 베이징을 거쳐 평양과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묘한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본은 관념적으로만 알던 세상을 직접 바라보고 대응해나가며 실체에 보다 깊숙이 접근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한은형 작가 특유의 문장이 인상적인데, 특히 독일계 한국인 주인공의 의식과 말투를 고스란히 따르는 듯한 문체는 독특한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표지 디자인 의도

    북 디자인은 한국 출판계에서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북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은경이 맡았다. 정은경은 "6편의 소설을 모두 읽은 뒤, 가장 지배적으로 다가온 감각은 ‘모호함’이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이들에게 그렇듯이, 소설가들이 바라보고 그려낸 ‘북한’이라는 이야기 역시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흐릿한 형상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표지가 젖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흐릿하고 불분명한 공간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아직은 불명확한 저 너머의 공간을 애정 어린 시선과 따뜻한 색채로 감싸 안았다. 각 작품의 시작 부분에 들어간 이미지는 38선 경계 라인과 평양의 위치를 선과 점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또 하나의 선물, 일러스트레이터 서인지의 여섯 폭 병풍 [안녕평양圖]

    출간을 기념하며[안녕, 평양]에 담긴 소설 6편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 아트워크 [안녕평양圖]를 함께 제작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터인 서인지는 엑소의 뮤직비디오 [Power], 휘슬러코리아의 2018 캠페인 [Chop!Chop!]을 비롯해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6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주요 모티브, 배경이 되는 공간과 다양한 문학적 상징 등을 추출해 낸 뒤,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독특한 형태의 ‘여섯 폭 병풍’에 담아냈다. 포스터처럼 벽에 붙여도 좋고, 선을 따라 접은 뒤 책상 위에 세워 두면 독특한 소품이 된다. 책과 짝을 이루는 기분 좋은 선물이지만, 작가 특유의 총천연색 컬러와 동양적 모티브, 수공예적 섬세함이 한 땀 한 땀 새겨진 아트워크로 그 자체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추천사

    2018년 4월 27일. 남쪽의 대통령과 북쪽의 국무위원장이 남한과 북한의 땅을 나란히 넘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몇 달 전 세계 정세를 생각하면 꿈 같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평화의 무드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서울 역사에 서 있는 자신을 보기도 한다. 플랫폼 여기저기에는 평양행, 베이징행, 블라디보스토크행 열차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이 붙어 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우동 먹으러 일본의 가가와현까지 가는 세상에, 그보다 가까운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먹을 수 없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었다. 분단으로 섬나라 아닌 섬나라에 살았던 우리에게 이 땅이 유럽까지 이어진 대륙이었음을 실감하게 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가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현기증이 난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늙다리 미치광이’와 ‘꼬마 로캣맨’이라고 서로를 맹렬히 비난하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게 될 줄 알았겠는가. 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중략...)

    그러나 여기에 누구도 모를 또 다른 반전 하나가 있다. 북한 관련 소설집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건 이미 3년 전이었다. 당시엔 이런 책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의아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북한 관련 소설을 쓰고 있었을 그 시간, 나는 이 소설집의 미래를 걱정했었다. 하지만 결국 북한에 대한 소설이 나왔다.

    (...중략...)

    여기 어부로 평생을 성실히 살았으나 납북된 후, 뒤늦게 간첩으로 몰린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평양에서 NGO 단체 일원으로 일하며 북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와 남한의 대학 입시에 ‘북한 역사’가 선택 과목으로 지정된 미래의 어느 날, 북한 최고 핵물리학자를 인터뷰하러 가는 남한 기자 이야기도 있다. 북한예술단에서 만난 한 여자의 연애사는 특정 인물을 연상시키며, 간첩으로 몰려 비극을 되풀이하는 남자의 이야기 역시 현존하는 인물을 별 수 없이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 길어온 작가의 상상력이 북한의 장마당과 평양의 거리와 그곳 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소환한다. 책을 다 읽을 즈음, 종점에서 내리지 못해 얼떨결에 경주로 가는 ‘나이트버스’에 탑승한 인디밴드 음악가가 부르는 노래가 떠올랐다.

    나이트 나이트 괜찮아요. 나이스 나이스 괜찮아요.

    과연 지난 몇 십 년간은 나이트, 밤과 어둠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둠을 밀어내는 것은 빛이다. 진짜 빛을 보기 위해 우리가 때로 사막에 가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나친 낙관을 경계해야 하지만 어느 시절엔 그저 믿어보고 싶을 때도 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겠지만, 어느 시절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이스 나이스 괜찮다."는 저 노래가 서로에게 닿아본 적 없는 땅, 한라에서 백두까지 들렸으면 좋겠다.
    - 백영옥 / 소설가

    목차

    공선옥 세상에 그런 곳은 9
    김태용 옥미의 여름 37
    성석제 매달리다 83
    정용준 나이트버스 115
    이승민 연분희 애정사 155
    한은형 샌프란시스코 사우나 195

    맺으며 백영옥 225

    본문중에서

    준은 날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했다. 국경을 넘어 누나가 있는 한국 구로동까지의 여정이 자신
    의 인생에서 마지막 고난일 줄 알았다. 그런데 준의 앞에 닥친 고난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함경도 무산 집을 떠나 머나먼 타국을 거쳐 이곳 경기도 마전까지 와서 이런 삶을 살 거라고 준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은, 준을 이곳 마전에 데려다 놓았다. 꿈에서도 보지 못했던 낯선 고장에.
    ('공선옥 [세상에 그런 곳은]' 중에서/ p.18)

    무산에서 이웃에 살던 용호는 엄마 아버지를 병으로 잃고 천애 고아가 되어 준을 삼촌이라 여기며 따랐다. 한국 와서 나이는 열일곱이어도 키가 작아 중학교에 넣어 놨는데 적응을 못하고 거리 생활로 스물이 되었다. 남쪽 식 농담도 곧잘 해서 누가 어느 학교 나왔느냐 물으면 거리학교 나왔다고 받아칠 줄도 아는 용호는 그러나 돈 받고 일 해결해 주기로 했다가 돈도 못 받고 이빨만 부러진 것을 보면 거리학교에서 그리 우등생은 아니었던가 보았다. 돈이 없어 이빨을 못 해넣고 이빨이 없어 위장병을 앓는 용호한테 준은 휴대폰비 삼십만 원을 꾼 적이 있다. 지가 이빨 해넣을 값이라도 벌려고 나가는 일에 나와서 저한테 갚을 돈이라도 벌라는 전화일 것이다.
    ('공선옥 [세상에 그런 곳은]' 중에서/ p.25)

    "부모님을 다 여의었다고? 아이고 마침 잘되었네. 우리가 바로 아부지연합이야. 우리가 자네 아부지 노릇을 해줌세."
    준은 노인들이 낯설지 않다. 용호가 나오라고 해서 나간 광화문에 바로 지금 이렇게 어깨에 아버지연합 띠를 맨 노인들이 줄을 지어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노인들 중에는 사돈 노인처럼 뒤뚱거리는 걸음을 걷는 노인도 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노인들 곁을 지나가던 청년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이 고약해 보였는지 한 노인이 청년한테 삿대질을 했다.
    ('공선옥 [세상에 그런 곳은]' 중에서/ p.29)

    옥미와 나는 평양 대동강변의 미래과학자거리를 걷고 있다. 머릿속으로 글을 쓰면서. 글을 쓰면서. 김책종합공업대학 교육자 아파트에 살고 있는 리현심 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전부터 걸어 보고 싶었던 거리였다. 두 차례의 평양 방문이 있었지만 빠듯한 일정에 어리둥절해하며 시간을 보내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청와대 상시 출입기자인 선배가 평양지국 미디어센터 총괄본부장에게 부탁해 다소 여유로운 일정을 잡은 것이다. 마침 본부장 지인인 예약자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류경호텔의 중급 비즈니스룸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도 뜻밖의 행운이었다.
    ('김태용 [옥미의 여름]' 중에서/ p.39)

    평양 시내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1091호의 USM 프리츠 할러가 설계한 크롬모듈 의자에 앉아 있으니 이대로 호텔이 통째로 발사되어 우주로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화장실 옆에 캡슐 모양의 일인용 전자담배 전용 E-Cig룸이 있고, 柳京이라는 빨간 라벨이 붙어 있는 장식용 호텔 미니어처 재떨이는 훔치고 싶을 정도의 잇 아이템이었다.
    ('김태용 [옥미의 여름]' 중에서/ p.40)

    "여기에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나요?"
    "어릴 적 슬픔병은 미제자본주의의 질병이라고 배웠어요. 이제 우리도 자본주의 옷을 벗을 수 없으니 슬픔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과학기술전당 [11차원 과학 세계 심포지엄]에서는 ‘암흑물질과 슬픔병’이라는 주제로 연구자들의 발표가 있기도 했지요. 당이 규정한 슬픔병에 대한 아다먹기식 고집들이 아직 있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슬픔병 약이 많이 팔리고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피로감에 더해 여전히 경제에 허덕이고, 수심 가득한 얼굴로 고난의 행군 중인 사람들이 많지요. 이제 당의 안내자도 없어질 알직업입니다. "
    ('김태용 [옥미의 여름]' 중에서/ pp.46~47)

    남자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무에 매달렸다. 매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온몸의 관절이 빠지고 뼈마디란 뼈마디가 다 어긋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싶어서. 적어도 그랬을 때의 기억,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뼈가 빠지도록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게 속죄 행위이기라도 한 양, 스스로를 벌하는 것처럼. 그는 한 시간째, 아무도 없는 강변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물을 제대로 짜지 않고 널어 놓은 빨래처럼 흐느끼고 흐느적거리며 매달려 있다.
    ('성석제 [매달리다]' 중에서/ p.86)

    "일부러 이런 험한 날씨를 골라서 명태를 잡는 척하고 우리 공화국에 침투할 간첩을 실어다준 게 아닌가?"
    그들의 각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배 아래에 숨겨온 북파 간첩의 신상에 관해서 자다가도 일어나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달달 외웠다. 목숨이 암기력에 달렸다. 남한의 바닷가 항구도시에는 간첩을 양성하는 아지트가 있다. 북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으로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북파된 간첩은 북쪽에 성공적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발에 돌덩이를 매단 채 독약이 든 캡슐을 깨물고 바다 아래로 가라앉곤 한다. 그들의 배에 어부를 가장해 승선했던 간첩 역시 그렇게 한 것으로 정해졌다.
    ('성석제 [매달리다]' 중에서/ p.91)

    아들이 투신했다는 다리 아래로 가서 다시 한번 공책의 내용을 읽고 난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연장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손에 익은 연장과 밧줄, 드라이버, 커터 같은 게 들어 있었다. 그는 밧줄을 꺼내 왼쪽 손목을 묶고 반대편으로는 올가미를 만든 뒤 다리 아래의 느티나무로 다가갔다. 나무 곁의 바위에 올라선 그에게 늙은 느티나무는 낮고 튼튼한 가지를 내주었다. 그는 나뭇가지에 끈을 던져 올린 뒤에 내려온 끈의 올가미 속에 오른쪽 팔목을 집어넣었다. 한순간 그의 몸이 휘청, 하고 들렸다. 공중에 뜬 채로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부림칠수록 고통이 커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성석제 [매달리다]' 중에서/ p.112)

    새벽 한 시. 박순명, 김기준, 이나강, 그리고 불청객 폴리를 태운 나이트버스가 경주를 향해 출발했다. 박순명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차선을 바꿀 때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을 느꼈다. 다시는 육지로 돌아가지 못하겠지. 어쩌면 내 삶은 오늘부로 소각될지도 모른다. 후회는 없다.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것도 없다. 끝도 없는 기다림의 나날들. 오늘로 끝낼 것이다. 박순명은 버스를 일차선으로 옮겨 속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정용준 [나이트버스]' 중에서/ pp.126~127)

    이 모임이 어쩌면 사이비종교단체의 비밀 회합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부터 이곳 경주까지 오는 동안 그들의 행동에는 단순히 관광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폴리는 뉴스와 신문에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사이비종교단체들과 관계된 사건 사고를 떠올렸다. 하나같이 비상식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사례들이었다. 저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나 싶었는데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폴리는 약간 긴장하며 들고 있던 기타를 품에 꼭 안았다.
    ('정용준 [나이트버스]' 중에서/ p.141)

    나이트버스는 푸르고 희뿌연 여명에 잠긴 한적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정체불명의 풍경이 드러났다. 내려올 땐 볼 수 없었던 산과 들판, 작은 마을과 버려진 헛간이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면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위로 크고 작은 새들이 날고 있었다. 폴리는 어떤 영감에 휩싸여 그것들을 황홀한 눈으로 감상하다 난데없이 노트와 기타를 꺼냈다. 노트에 뭔가를 적고 기타 줄을 튕기고 다시 뭔가를 적고 또 기타 줄을 튕기기를 반복했다.
    ('정용준 [나이트버스]' 중에서/ p.149)

    종업원에게 냉면을 자를 가위를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나를 무지렁이처럼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다. 젓가락에 걸려 있던 냉면 가닥이 풀어지는 것도 모른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파란색 투피스는 다소 투박하고 유행이 지난 듯해 보였지만 그녀를 위한 맞춤옷처럼 어울렸다. 이마는 봉긋했고, 가슴도 봉긋했고, 입술도 봉긋했고, 콧잔등도 봉긋했고 발등도 봉긋할 것 같았다.
    ('이승민 [연분희 애정사]' 중에서/ p.161)

    하염없이 우는 그녀를 오라버니는 꼭 안아 주었다. 오라버니의 어깨 너머 커다란 창문을 통해 지금껏 본 적 없던 평양 시내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노을에 물든 주체사상탑이며 어스름한 불빛이 신비로운 윤곽을 자아내는 두루섬이며 부드럽고 검푸른 비단이 나풀거리는 것 같은 대동강 풍경이 그녀에게 평양이라는 신세계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환상적인 야경을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이 도시는 내게 행운의 도시구나, 라고.
    ('이승민 [연분희 애정사]' 중에서/ p.180)

    베트남을 거쳐 태국으로 들어가 몇 달 동안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가까스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아,
    지금 생각나는데, 그 에미나이 가끔씩 스스로를 적대적 이상론자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버러지만도 못한 에미나이 때문에 아프신 어머니 홀로 놔두고 여기까지 도망쳐 온 생각만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승민 [연분희 애정사]' 중에서/ p.189)

    순안공항부터 숙소로 정해진 평양의 아파트로 가는 데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초록이 없는 황토색 둔덕들. 반듯하게 뻗은 길과 반듯하게 이어지는 건물들. 반듯한 거리가 이어졌다. 평양의 건물들은 몬드리안의 그림을 삼차원으로 기립시켜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아함과 율동감이 빠진 몬드리안. 내가 머물게 될 아파트는 ‘일심’과 ‘단결’ 아파트 근처에 있었다. 아파트 이름이 일심이었고, 단결이었다. ‘백전’과 ‘백승’도 있었다. 이런 아파트의 이름을 읽으면서 나는 사회주의 국가에 와 있다는 실물감이 들었다. 남한의 아파트에는 대개 건설회사의 이름이 붙었고, 고급 주거지일 경우에는 ‘캐슬’이니 ‘펠리체’니 ‘팰리스’니 하는 ‘궁(宮)’에 해당되는 외국어 접사가 들어갔다. 내가 알기로 평양에서 ‘궁’이 붙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었다.
    ('한은형 [샌프란시스코 사우나]' 중에서/ p.203)

    호네커의 사우나는 평양에 있는 동독의 대사관에 설치되었다. 전 세계에 있던 동독대사관은 1990년에 없어졌다. 평양에서도 그랬다. 나는 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의 지도자가 만나 통일을 합의하고, 마침내 통일을 앞둔 전날, 평양의 동독대사관에서 있던 일을. 동독 대사관 사람들은 평양에 있는 다른 대사관 직원들을 초청해 파티를 연다. 동독대사관의 주류 저장고를 비우기 위해. 자정, 통일된 나라가 탄생한 그 순간, 파티는 끝나고, 동독인들은 잠을 자러 간다. 평양의 마지막 동독인들. 이제는 동독인이 아닌 사람들. 그때 나는 잠들어 있었다. 나는 서독인으로 잠들었다가 통일 독일의 국민이 되어서 깨어났다.
    ('한은형 [샌프란시스코 사우나]' 중에서/ p.208)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0.07.05~
    출생지 경북 상주
    출간도서 68종
    판매수 52,372권

    1995년 『문학동네』에 단편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첫사랑』 『호랑이를 봤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참말로 좋은 날』 『이 인간이 정말』 『ㅤㅁㅢㅤ리도 괴리도 업시』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투명인간』, 산문집 『소풍』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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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64.12.28~
    출생지 전남 곡성
    출간도서 57종
    판매수 27,455권

    소설가.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중편소설 [씨앗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명랑한 밤길], [멋진 한세상], 장편소설로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수수밭으로 오세요], [꽃 같은 시절],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영란], [붉은 포대기],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행복한 만찬], [공선옥, 마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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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소설가.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 [벌거숭이들]을 출간했고 '자끄 드뉘망'이란 필명으로 시집 [뿔바지], [자연사], [겨울말]을 출간했다. 사운드 아티스트 류한길, 로 위에와 함께 사운드텍스트 그룹 'A.Typist'를 결성해 공연을 하면서 언어와 소리의 충돌과 결합을 시험하고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문학의 언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 예술 언어와 실현에 관심을 갖고 글쓰기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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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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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유령』 등이 있다. 2016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생년월일 1979~
    출생지 경기도 수원
    출간도서 6종
    판매수 1,032권

    1979년생.
    2012년 소설가가 되었다.
    2015년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와 장편소설 [거짓말]을 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 여행은 더. 그러다 2007년 분주하지 않은 방식으로 첫번째 외국 여행을 했다. 뮌스터, 카셀, 뒤셀도르프, 베니스에 머물렀다. 2011년 파리에 스튜디오를 빌려 한 달을 살면서 ‘사는 여행’에 눈을 떴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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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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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십여 년 간 다수의 잡지사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며 소설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선의 취향]이 당선됐고, 장편소설 [런던의 안식월]로 제1회 ‘K-오서 어워즈’를 수상했다. [런던의 안식월]의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성석제로부터 ‘자기 연민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도구인 성찰과 냉정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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