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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들은 배고프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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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한빛비즈
  • 발행 : 2018년 07월 17일
  • 쪽수 : 240
  • 제품구성 : 책 속 부록: 일러스트 엽서 6종
  • ISBN : 979115784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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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작고 여린 모든 존재의 벗
우리 세대가 가장 사랑한 동화 작가 이상교의 사계

컴퓨터도 몸도 자꾸 고장이 난다. 지병으로 눈앞이 흐릿해지고 걸음은 점점 느려지지만 게으름 피우는 법이 없다. 때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에게, 때론 봄날의 작은 고양이에게, 때론 돌아가신 엄마가 실려 온 바람에게 안부를 물었다. 남들에게는 한없이 고요하고 적막해 보일지 몰라도 부산히 움직이며 붓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계절이 지나곤 했다.

상상력 가득한 글과 개성 있는 색채의 그림으로 어린이와 부모 모두의 사랑을 담뿍 받아온 동화 작가 이상교. 등단 45년 차, 칠순의 작가는 아직도 쓰고 그리는 일이 제일 즐겁다. 어디에든 무어라도 쓰고 마는 천성 덕분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온라인 한구석에 일기를 써 내려간 것이 벌써 17년이다. 이 책은 그곳에서 수확한 110편의 작품을 계절이라는 시간의 틀로 엮어 완성되었다.

착하고도 독특한 그녀의 작품들은 이미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다. 동시집 《예쁘다고 말해 줘》는 독일, 스위스, 미국, 일본 등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회(IBBY) 회원국 도서관에 영구 보존되는 어너리스트 도서로 선정되었다. 아이와 어른, 인간과 자연, 숨어 사는 아름다운 것들과 우리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준 작가의 일상을 통해 독자들은 작지만 힘이 센 감동을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속 부록: 일러스트 엽서 6종 세트

출판사 서평

“가늘고 기다란 그녀 안에는
일곱 살 어린아이와 칠순의 할머니가 함께 뛰논다.”

등단한 지 45년이 넘었지만 평생 아이들을 위한 동화 작가로 살아서일까? 유달리 껑충한 키 때문에 시선이 높은 곳에 머물 만도 한데 책에는 온통 낮은 곳에 사는 것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이 가득하다. 귀뚜라미, 상한 복숭아, 먼지, 길고양이처럼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 특유의 따스한 시선을 통해 책의 글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일상의 단면들은 팔팔한 젊은이들에겐 단조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갈수록 눈이 흐려지고 몸이 처지는 작가에겐 봄이면 꽃이 소담하게 핀 아파트 화단에서 고양이와 놀거나, 겨울이면 물 없이도 헤엄치는 붕어빵을 떠올리는 일조차 반짝이는 세상의 일부다. 안면이 있는 길고양이와 자신 중 누가 서로를 더 사랑하는지를 겨루고, 엉덩이만 붙이면 졸린 버스 간에서 ‘저 기사 양반이 나를 우리 집 침대에 내려줬으면’ 하고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품어본다. 스스로 “소띠라서 소처럼 웃는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에는 나이 듦의 고독마저도 호호 웃어넘기는 유쾌함이 있다.
이 작품이 가진 힘의 원천은 작가 자신 또한 여전히 작고 여린 생명일 뿐이라 믿는 천진함일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여느 칠순의 고요한 일상이지만 마음속 일곱 살 소녀는 여전히 고향 강화도의 산과 들을 껑충껑충 뛰노는 중이다.

소소한 존재들이 알려준 일상의 가치
“작은 너희들아! 배곯지 말고 잘 지내렴.”

작가의 일상을 담은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가는 자꾸만 흐려지는 눈가를 훔쳐가며 세월이 켜켜이 쌓인 원고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골랐다. 손목이 뻐근하도록 고양이를, 꽃을, 나무를, 새를, 자신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 감수성과 개성은 흰 도화지 위를 장난스럽게 뛰노는 생명들에게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드는 이들도 도판의 고른 색감보다 그날그날의 감정과 소재가 가진 개성을 살리려 노력했다. 작가는 고급 용지부터 달력 뒷면까지 다양한 지질 위에 매직, 펜, 아크릴, 크레파스, 수채 물감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해 형식의 제약이 없는 그림들을 보내 왔다. 덕분에 손바닥만 한 그림부터 큰 달력 크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원화로 책을 꾸몄다.

단순한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삶을 향한 의지는 잠언처럼 느껴질 만큼 울림이 크다. 평생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본 작가의 순수함과 열정, 섧고 쓸쓸한 70년의 궤적을 덤덤히 털어내는 유쾌한 천성이 외려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후미진 골목에서 꼬물꼬물 혼자 꾸려나가는 삶에도 깡총대는 일을 잊지 않는 길고양이처럼, 일상을 열심히 예쁘게 가꾸려는 노력 자체가 바로 삶의 과정이자 완성이라는 것을 작가는 몸소 일깨운다.

추천사

"숙숙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결이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면 글과 그림으로 아이들과 함께 걷는 저자의 마음 바닥도 천의무봉의 그것이다. 이 키 껑충한 어린이의 성장통!"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고양이 한 마리 무릎에 와 앉는 ― 봄
치매ㆍ내 고양이 쭈꾸미ㆍ덕ㆍ정들다ㆍ종이집ㆍ졸다ㆍ어디에도ㆍ한 세월ㆍ나뉘다ㆍ개여울ㆍ옛날이야기ㆍ벚꽃, 좁쌀ㆍ장다리꽃ㆍ푸르른 피ㆍ이불ㆍ벚꽃 환한 날ㆍ나이 들어ㆍ흰발농게ㆍ봉숭아ㆍ모를 일ㆍ멀미ㆍ새싹ㆍ모란ㆍ봄 타다ㆍ먼지ㆍ겹벚꽃ㆍ문의ㆍ눈 맞다ㆍ봄ㆍ

데굴데굴 한낮의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 여름
비비 틀다ㆍ의지박약ㆍ돌호박ㆍ새끼 오리ㆍ광화문통 고양이ㆍ바다ㆍ한때ㆍ용돈ㆍ지나다ㆍ꽃밭ㆍ위로ㆍ건드리지 말 것ㆍ그리운 조용1ㆍ비 온 뒤ㆍ배째 혓바닥ㆍ십상ㆍ상한 복숭아ㆍ속았다ㆍ졸매졸매ㆍ초마가 입고 싶다ㆍ이렇게 좋은 날에ㆍ멍 때리기ㆍ뒤치적거리다ㆍ참새ㆍ아름다운 세상ㆍ

시려운 이슬에 귀뚜라미도 잠 못 드는 ― 가을
유행가ㆍ행복ㆍ안개ㆍ걸레ㆍ달빛ㆍ말리기ㆍ이유ㆍ시리다ㆍ혼자ㆍ인생이란ㆍ철들다ㆍ니나 잘 하세요ㆍ어깃장 놓다ㆍ외면ㆍ따로ㆍ난데없이ㆍ어둠ㆍ줄무늬 남방ㆍ안팎ㆍ여행ㆍ돌아올 어느 날ㆍ떨어진 잎ㆍ간댕간댕ㆍ김치ㆍ텅ㆍ다림질ㆍ묻지 않기ㆍ문제ㆍ나무ㆍ

여린 달빛 내리는 빈집의 ― 겨울
지붕ㆍ길고양이ㆍ불꽃ㆍ눈물ㆍ창밖에는ㆍ흔들리다ㆍ눈살ㆍ따지다ㆍ엄마ㆍ가만ㆍ장갑ㆍ붕어빵ㆍ기쁨ㆍ손수건ㆍ유턴ㆍ똑같이ㆍ그립다ㆍ성탄 전야ㆍ빈 가지ㆍ손해ㆍ그리운 조용2ㆍ까치ㆍ동백꽃ㆍ몸살ㆍ흠뻑ㆍ그리운 조용3ㆍ맵다ㆍ

에필로그

본문중에서

난 버스만 타면 좁니다.
꾸벅꾸벅 좁니다.
귀가 때는 버스가
부디 우리 집 안방을 밟고 지나갔으면.
우리 집 안방에 잠깐 서서 버스 문을 열고
날 이불 위에 떨어뜨려 머리맡의 베개 끌어다 베고
그대로 곯아떨어지게 해주었으면.
-22쪽, 〈졸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어찌 그리 일일이 대신해주는가”
누군가 보면 타박할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헤쳐 나가야만 할 난제는
앞으로도 쌔고 쌨다.
거들어 주고 싶어도
거들어 줄 수 없는 경우에 이르기도 할 것이다.
어미가 세상을 뜨고 만 뒤 아이는 어디에서도
어미를 찾을 길 없을 것이다.
어미는 어미일 때 좀 쓰이고 싶다.
바느질 따위 소소한 무엇으로라도.
-24쪽, 〈어디에도〉

한 곳에 지니고 있는 생각조차 수시로 나뉜다.
실마리를 잡아보려 애쓰지만 실 끝은
쉬이 찾아지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애먼 데를 끊어
새로운 실머리를 만든다.
그렇게 해서 만든 실머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 일부라도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길 바라는 일은 무리다.
그것을 바라다 나는 어제도 말다툼을 벌였다.
-28쪽, 〈나뉘다〉

나는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연속극도 안 보고 뉴스에도 관심이 없다.
나이 들어 할 일이 없어지면 외딴 마을 외딴집으로
이사를 해서 구시렁구시렁 혼자 지낼 것이다.
무짠지 담근 항아리를 땅속에 묻어놓고
그거나 한 개 두 개 썰어 밥반찬 해 먹으면서.
집 앞마당에 질경이를 뜯어 나물로 무쳐 먹으면서.
뒷동산에 할미꽃이 피었는지,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어나는지 기다리면서.
봄아지랑에 흔들흔들 흔들리는
저어기 아래 먼 마을에 눈을 주면서.
비 내리는 밤이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쪼로록쪼로록 빗소리나 헤아리면서.
-44쪽, 〈나이 들어〉

광화문 KFC 옆,
좁은 골목길에서 새끼 길고양이와 마주쳤다.
재빨리 달아날 줄 알았는데 순순히 안겨 왔다.
“아이구, 이쁜 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마주 보았다.
손에서 놓아 주자 나무판대기 몇 개 기대어 있는 담 사이로 쏙 들어갔다.
「여기가 제가 사는 집이에요.」
참치 캔 하나를 울타리 밑에 넣어 주고 돌아오는 길,
광화문통에 나가면 들러볼 곳이 한 군데 더 생겼다.
-80쪽, 〈광화문통 고양이〉

꽃 한 묶음을 받아들고 좋아라 들어와서는 잤다.
혼자 잤는데 깨어서 보니 고양이가 옆에서 자고 있다.
나는 깼는데 고양이는 아직도 잔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잠이 따로 있구나!
그걸 이제야 알았다.
-152쪽, 〈따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듯 보이는 동네.
납작납작한 기와지붕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다.
그곳이 어쩐지 정답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는데
전철을 타기 위해 올라가는 층계에서 보았다.
새는 지붕을 가리느라 지붕 위에는
별별 것이 다 올라가 있었다.
넓고 큰 고무 다라가 엎어져 있기도 하고
비닐을 씌운 나무판자도 올라가 있었다.
좁은 옥상 빨랫줄에 빨래를 너는 이도 있었다.
사람 사는 일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핍해 보이는 곳에 사는 건 실은 예삿일이다.
봄이면 작은 뜰에 놓인 화분에 아무렇지도 않게
분꽃이며 깨꽃 씨앗을 뿌릴 것이다.
-184쪽,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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