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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만들기 2: 제3부 친일개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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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함재봉
  • 출판사 : 아산서원
  • 발행 : 2017년 11월 29일
  • 쪽수 : 544
  • ISBN : 979119619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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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조선 사람의 가슴과 뇌리에 깊이 뿌리내린 반일 감정과 ‘왜’(倭)에 대한 문화적 우월 의식, 피해 의식, 강력한 쇄국 정책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 이르면 일본을 새로운 문명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친일개화파가 출현한다. 놀라운 인식의 전환이었다. 늘 중국을 문명의 원천으로 간주해 온 조선 사람들이 중화 질서의 가장 변방이었던 일본을 새로운 문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조선은 근대 문명을 일본으로부터 배운다. 친중위정척사파와 흥선대원군, 조선의 왕실은 모두 근대 문명을 금수와 같은 서양 오랑캐의 것으로 치부하고 거부하면서 그 내용을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조선이 상국(上國)으로 모시던 청은 왕조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중국의 유교 문명이 우월하다는 ‘중체서용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이 근대 문명을 배울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는 ‘문명개화’의 이름으로 급속한 근대화를 이루고 있던 일본이었다. 이 비좁은 통로를 이용하여 문명개화의 당위성을 배우고 근대 문명을 조선에도 이식하고자 한 사람들이 친일개화파다.

    친일개화파가 일본으로부터 배운 것은 근대 산업, 군사, 교육, 법뿐만 아니라 ‘독립’이라는 개념이었다. 이들은 메이지 일본이 ‘만국공법’(萬國公法)이라 불리는 근대 국제법을 익히고 불평등 조약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민족 국가’라는 독립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근대 국제 질서를 배운다. 당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청은 조선 반도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서구 열강과 일본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하여 조선이 독립국이 아닌 중국의 속방(屬邦)임을 적극 홍보하고 있었다.

    조선의 왕실, 민씨 척족 중심의 친청파 역시 모두 조선이 청의 속국임을 대내외에 스스럼 없이 천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일개화파는 메이지 일본을 통하여 조선과 청 간의 사대 관계가 근대 국제 질서의 관점에서 보자면 용납할 수 없는 치욕적인 종속 관계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다. 친일개화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훗날 “개화파”로 불리게 되는 극소수의 인사들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문명개화’를 이루고 있던 메이지 일본을 보고 배우면서부터였다.

    출판사 서평

    메이지유신

    메이지유신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빠르고 성공적인 근대화 과정이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불과 한 세대 만에 봉건 국가에서 근대 국가로 탈바꿈한다.
    조선과 일본은 비슷한 시기에 서구 열강과 조우한다. 외세의 도래에 대한 초기 반응도 유사했다. 서구 열강이 문을 두드릴 당시 조선과 일본은 모두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서구 열강이 본격적으로 통상을 요구하자 조선에서는 위정척사파가, 일본에서는 존왕양이파(尊王夷派,, 손노조이파라고도 함)가 일어나 개국에 극렬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 조선과 일본의 역사는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조선에서는 위정척사파가 끝내 개국에 반대하고 친일개화파는 몰락한다. 반면 일본의 존왕양이파는 개국주의자로 변신한다.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 전환을 통하여 가장 극렬한 쇄국주의자들이 가장 적극적인 개국주의자가 된다. 이들이 일으킨 혁명이 메이지유신이다.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곧바로 조선의 문을 두드린다. 일본은 오랫동안 속해있던 중화 질서, 또는 ‘화이질서’(華夷秩序)의 역사와 구조, 논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동시에 근대 국제 질서의 역사와 구조, 논리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중화 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근대 국제 질서로 바꿔나간다. 조선과 중국에게 익숙한 전통 중화 질서의 개념과 용어, 이론과 상징을 근대 국제 질서의 것들로 하나씩 대체해 나가면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주도 면밀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바꾼다.

    친일개화파의 좌절

    급격히 근대화하고 있는 일본에 직접 건너가 보고 배우기 시작한 최초의 조선 사람은 불교승 이동인이었다. 1879년 김옥균과 박영효의 부탁과 후원으로 처음 도일(渡日)한 이동인은 1년간 일본 말과 문화를 익히면서 일본의 정치인, 지식인, 기업인은 물론 일본에 상주하고 있던 서구 열강의 외교관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친일개화파와 일본의 교량 역할을 한다. 그 후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 1881년 4월 10일 신사유람단 파견, 그리고 세 차례에 걸친 김옥균의 방일과 장기 체류를 통하여 조선의 개화파는 일본의 개화사상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귀국하여 조선의 개화를 기획한다.
    그러나 친일개화파는 두 개의 장애물을 만난다. 첫째는 친중위정척사파였다. 대원군의 개혁을 ‘패도 정치’로 몰아 대원군을 실각시킨 위정척사파였지만 고종이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적극 배우려고 하자 이번에는 대원군과 손을 잡고 이에 격렬히 맞선다. 안기영 역모사건(1881), 임오군란(1882)은 위정척사파와 대원군이 함께 고종과 친일개화파의 개국 시도에 반대하여 일으킨 정변이었다.
    그러나 임오군란으로 쇄국주의자였던 대원군과 위정척사파가 다시 득세하자 이홍장이 공을 들여 추진한 조선과 서구 열강 간의 적극적인 수교 정책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이홍장은 조선으로 대군을 급파하여 군란을 평정하고, 대원군을 납치하여 톈진(天津, 천진)으로 압송한다. 외세를 배격하겠다고 일으킨 임오군란은 오히려 외세가 조선 내정에 전례 없이 깊이 간여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은 병자호란 이후 처음으로 조선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조선의 내정과 외교를 직접 챙긴다. 청은 조선과의 관계를 전통적인 사대 관계에서 근대적인 제국주의 식민지 체제로 전환시키고 위안스카이(袁世凱, 원세개, 1859~1916)를 보내 조선을 직접 통치하기 시작한다.
    임오군란이 불러온 청의 군사 개입과 정치 간섭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세력을 키워오던 조선 왕실의 외척인 여흥 민씨 척족이었다. 1874년 대원군의 실각으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한 민씨 척족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톈진으로 납치되자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청 역시 민씨 척족의 이용 가치를 간파하여 이들과 적극 손을 잡는다. 친일개화파의 두 번째 장애물인 ‘친청파’는 이렇게 형성된다.
    일본을 통하여 근대 국가와 근대 국제 질서의 성격을 이해하기 시작한 친일개화파들에게 조청 간의 조공 관계는 굴욕적이었다. 중국은 더 이상 문명의 기준도, 따라야 할 이상도 아닌 오직 극복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중국에 의존하여 권력을 유지하면서 조선의 독립과 개화를 모두 가로막고 있는 민씨 척족 주도의 친청파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오히려 친청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친일개화파는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그러나 역사는 친일개화파에게 가혹했다. 조선은 메이지유신과 같은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정치 세력도, 사회적, 이념적 여건도 갖추지 못했다. 청과 정면 대결을 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했던 일본도 친일개화파를 돕지 않는다. 청군이 베트남을 둘러싼 청과 프랑스 간의 전쟁(1884~1885)에 조선 주둔 청군을 파병하면서 청군의 개입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오히려 위안스카이가 청군을 이끌고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갑신정변은 결국 삼일천하로 끝난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에 대한 중국의 직접 통치는 더욱 강화된다. 개화파는 역적으로 몰려 미국, 일본 등지로 망명을 떠났고 조선에 남은 그들의 가족들은 연좌제(緣坐制)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한 조선의 자주적인 근대 혁명은 실패한다.

    목차

    서론

    제1장. 메이지유신
    1. 에도 시대의 정치
    2. 에도 시대의 경제
    3. 에도 시대의 사상과 교육
    1) 유교
    2) 고쿠가쿠(國學, 국학)
    3) 란가쿠(蘭學, 난학)
    4) 바쿠마츠(幕末, 막부 말기)의 안보 지식인
    4. 외세의 출현과 바쿠후 체제의 모순
    5. 나라의 새 중심: 천황
    6. 미국과의 조약과 그 여파
    7. 바쿠후와 조슈, 사쓰마의 개방 정책
    8. 존왕양이파의 부상
    9. 조슈와 사쓰마의 대립
    10. 나마무기 사건
    11. 시모노세키 전쟁과 사쓰에이 전쟁
    12. 사쓰마의 쿠데타와 조슈의 역쿠데타
    13. 제1차 조슈 정벌
    14. 조슈의 내전
    15. 삿초동맹(薩長同盟)
    16.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17. 선중팔책(船中八策)과 대정봉환(大政奉還)
    18. 보신전쟁(戊辰戰爭)
    19. 판적봉환(版籍奉還)과 메이지유신 체제의 형성

    제2장. 메이지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
    1. 이와쿠라 사절단의 파견 배경
    2. 이와쿠라 사절단의 여정
    3. 유신 세력의 분열과 정한론
    4. 조일 관계의 뇌관: 쓰시마
    5. 기도 다카요시의 정한론

    제3장. 중화 질서에 도전하는 일본
    1. 청일수호조약의 체결
    2. 기유약조 체제의 해체
    3. 류큐와 대만 문제

    제4장.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
    1. 정한론의 재부상
    2. 사이고 대 오쿠보
    3. 오쿠보의 외교
    4. 오쿠보의 대만 정벌

    제5장. 개국 아닌 개국: 강화도 조약
    1. 고종의 신외교
    2. 일본의 반응
    3. 운요호 사건
    4. 청의 의중을 떠보는 일본
    5. 신헌과 구로다의 강화도 담판
    6. 최익현의 도끼 상소
    7. 강화도 조약

    제6장. 쇄국과 개국 사이에서
    1. 리델 주교 사건
    2. 제1차 수신사 김기수의 일본 방문
    3. 사이고의 반란과 오쿠보의 암살
    4. 표류하는 조선
    5. 이홍장과 청의 신조선 정책
    6. 이홍장의 조미수교 중재

    제7장. 개화파와 일본의 만남
    1. 김옥균
    2. 불교, 부산과 개화사상
    3. 이동인의 일본 밀항
    4. 제2차 수신사 김홍집과 황준헌의 만남
    5. 김홍집과 이동인의 만남

    제8장. 급진 개국과 대미 수교
    1. 고종의 개국 결정과 이동인의 밀사 파견
    2. 신사유람단과 본격화되는 일본 배우기
    3. 조미수호통상조약
    4. 김옥균의 첫 일본 방문

    제9장. 위정척사파의 반격과 청의 제국주의
    1. 영남만인소와 홍재학 상소
    2. 대원군의 반격: 안기영 역모 사건과 임오군란
    3. 청의 신제국주의
    4. 제물포 조약과 청에 밀린 일본
    5. 속국에서 직할령으로
    6. 청의 간섭과 친청파의 개혁

    제10장. 친일개화파의 독립사상
    1. 김옥균의 제2차 일본 방문
    2. 후쿠자와 유키치와 조선의 개화파
    3. 김옥균의 독립사상
    4. 김옥균의 제3차 일본 방문

    제11장. 갑신정변과 친일개화파의 몰락
    1. 갑신정변 전야
    2. 거사
    3. 청군의 개입
    4.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
    5. 김옥균과 친일개화파의 말로

    결론

    부록
    1. 「구로다 훈령」 전문
    2. 「강화도 조약」 전문
    3.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의 부록 전문
    4. 「조미조약(朝美條約)」 전문
    5.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전문
    6.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 전문

    주 (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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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중에서

    친일개화파가 목격하고 배우기 시작한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후 힘을 기르고 있던 일본이었다. 아직 청이나 러시아, 그 외의 서구 열강에 직접 도전할 실력은 갖추지 못하였지만 급진 개혁을 통하여 근대 국가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부족한 힘을 외교력으로 보완하고 있었다. 더구나 조선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일본의 지도자들이 아직 힘으로는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조선을 적극적인 교류를 통하여 일본식 근대화의 길을 가도록 설득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메이지의 지도층은 친일개화파들과 깊은 교류를 한다. 친일개화파들은 메이지유신이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일본의 정치인, 경제인, 사상가들과 직접 교류하면서 새로운 세계관, 국제 정세 인식, 그리고 국가관을 정립한다.
    조선의 건국 세력이 송나라의 산업 혁명과 문화적 성취를 본받고자 개방, 개혁을 추진했다면 조선 말기의 개화파는 일본의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본 받고자 ‘개화’를 추구하였다. 위정척사파가 주자학을 문명의 정점으로 확신하고 이를 지키고자 하였다면 개화파는 일본이 받아들이고 있는 서구 근대 문명을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간주하였다. 위정척사파에게는 중국이 문명이고 서양이 오랑캐였다면 개화파에게는 서구와 일본이 문명이고 중국이 야만이었다. 개화사상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조선 사람의 세계관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였다.
    그러나 친일개화파의 인식 전환은 당시 조선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친중위정척사와 친청 동도서기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던 조선의 주류 사회로서는 일본을 따르고자 하는 친일개화파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친일개화파가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시키고자 거사를 하였을 당시에는 아직도 청이 너무 강했다. 정변이 일어나자 청은 놀라울 정도로 단호하게 군사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한다. 반면, 아직도 메이지유신 초기의 일본은 청을 정면으로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청이 조선 정국에 적극 개입하자 일본은 친일개화파를 버린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이 자주적으로 근대화의 길을 갈 기회는 사라진다.
    (p. 436~437)

    오늘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서대문의 ‘독립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문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 바로 뒤에 서대문형무소의 옛 자리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독립문’은 중국의 칙사가 무악재를 넘어서 조선에 당도하면 조선의 왕이 직접 나가 그를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 즉 ‘중국을 사모하는 건물’을 허문 자리에 지었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독립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문이었다면 1897년에 지어진 독립문을 일제가 일제 시대 내내 그대로 두었을 리 만무하다. 독립문은 오히려 일본이 조선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켜줬음을 상기시켜주는 상징물이었기에 일제가 그대로 두었을 뿐이다.
    (p. 438)

    저자소개

    함재봉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사장 겸 원장이다. 미국 칼튼대학교(Carleton College)에서 경제학 학사학위(1980),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1992)를 취득한 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1992-2005),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UNESCO) 사회과학국장(2003-2005),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 소장 겸 국제관계학부 및 정치학과 교수(2005-2007),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선임 정치학자(2007-2010)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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