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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사 : 오늘 당신의 끼니에 안부를 묻는 8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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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먹는 인간과 혀끝의 기억

먹는 인간


맛보다. 이것은 인간 최초의 감각적 경험이 아닐까. 태초의 인간은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영생을 반납한다. 죽을 운명에 놓임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면, 선악과(善惡果)를 베어 먹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탄생을 알린 사건일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신의 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이브의 혀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뱀의 혀로부터 시작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맛보다’를 통해 선악을 알게 되고, 자신의 몸을 보게 된다. 인간사의 시작부터 먹고 맛보는 일은 죽음으로 열려 있었으며, 선악(善惡)에 대한 도덕 판단, 미추(美醜)에 대한 미적 판단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름다움을 뜻하는 ‘美’라는 글자가 본디 신에게 바치는 크고大 살찐 양羊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쉽게 수긍이 간다. 여기엔 맛이 좋은 것이 보기에도 좋다는 고대인의 인식이 담겨 있다. 영어의 ‘taste’나 우리말의 ‘맛’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영어의 ‘taste’가 ‘맛’이라는 의미 외에 ‘취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 우리말 ‘맛’은 본디 ‘멋’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편, 금욕적 자기 수양의 첫 단계는 금식이다. 미각은 미적 판단과 결부되어 있기도 하지만 곧바로 ‘쾌락’과 ‘도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처럼 ‘삶과 죽음’, ‘쾌락과 금기’, ‘선과 악’은 ‘먹음’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서 인간사에 스며든다. 살아서는 밥상, 죽어서는 제사상을 받는 인간을 떠올려 보라. 생과 사를 잇는 것은 밥상이 아니던가. 산 자를 살게 하는 힘도, 죽은 자를 기억하는 예식도 ‘밥’에서 비롯된다. 관혼상제라는 인생의 통과의례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음식이 아닌가. 어떤 이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슈크림의 달콤함으로 기억할 것이고([먹을 만큼 먹었어]), 어떤 이는 평생의 그리움을 메주 뜨는 일로 풀지도 모른다.([청국장을 끓이다]) 또 누군가에겐 매실장아찌가 인생의 구원일 것이며([장마]), 누군가에겐 흔하디흔한 김치찌개가 귀여운 복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초대]) 그러니 복잡하고 미묘한 모순덩어리인 삶을 탐구하려면 무엇보다 ‘먹는 인간’을 그려야 하지 않을까.

계란프라이, 매실장아찌, 김치찌개: [모니카, 모니카], [장마], [초대]

계란프라이, 매실장아찌, 김치찌개. 벌써 군침이 돈다. 귀하고 값진 음식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의 밥상에나 있을 법하지만, 세상의 밥상의 수만큼이나 다른 맛을 가질 법한 음식. 김치찌개는 모두의 음식이지만, 모두다 각자 나름의 ‘그’ 김치찌개 맛을 고집하는 음식이다. 우리는 그런 음식을 매일 먹고 산다. 소설에 따르면, 계란프라이는 속죄의 맛, 매실장아찌는 구원의 맛, 김치찌개는 복수의 맛이다. 거창할 것 없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속죄와 구원과 복수를 갈망하지 않는가. 바로 그것.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른 사연을 가진 것. 소설들은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밥상을 각자의 이야기로 차려낸다.

[모니카, 모니카]의 아름다운 모니카는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그녀의 도시락엔 밥과 계란 프라이뿐이다. 모니카는 여고생 어머니와 바티칸에서 갓 돌아온 젊은 사제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니카의 어머니는 딸에게 금욕을 강조한다. 모니카는 죄로 태어난 아이니까. 죄 갚음을 위한 금욕. 모니카에게 그것은 ‘미각’을 희생하는 일이다. 한편, [장마]의 ‘나’의 젊은 엄마는 전 동거인과의 사이에서 나를 낳고, 새로운 남자를 맞았다. 엄마와 그녀의 새 남자는 ‘나’를 학대했다. 어른이 된 ‘나’는 어린 시절의 악몽과 다시 마주한다. 떠났던 남자가 자신의 딸을 데려와 눌러 살게 된 것. 거기다 남자는 ‘나’와 어린 아이를 학대한다. 되풀이되는 과거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린 아이의 애처로운 시선이 어떤 구원을 요구하는지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체 한다. 몸만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과거의 학대받는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나’가 남자를 제압하고, 벽장 속에 가두고, 아이에게 밥을 지어 준다. 그리고 군침이 도는 시큼한 매실장아찌를 꺼낸다. 길지 않은 시간, ‘나’가 유일하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던 시간, 그때 먹었던 매실장아찌다. ‘나’에게 매실장아찌는 구원의 맛이 아닐까.

와드득 씹히는 매실이 입안에 퍼질 때마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신맛이 퍼질 때의 강렬한 자극이 싫으면서 좋았다. 어이구, 지 애비랑 똑같네. 할머니는 혀를 쩌쩌 차면서 웃었다. 할머니가 웃는 일은 흔치 않았다. 나는 간혹 그 소리를 듣고 싶어서 고집스럽게도 매실장아찌를 씹었다.
('장마' 중에서/ p.171)

이들 소설에 비한다면 [초대]는 경쾌하고 발랄한 복수극이다. ‘나’는 김치찌개를 끓이는 중이다. 초대 손님을 맞기 위하여. 손님은 다름 아닌 남편과 그의 내연녀. 남편의 직장을 따라 멕시코에 온 ‘나’는 한국인 교포 희린의 도움을 받는다. 남편의 직장에 통역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는 망설임 없이 희린을 추천했다. 남편과 희린은 깊은 관계가 되고, ‘나’는 우연히 남편의 핸드폰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러나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나’에겐 지키고 싶은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고, 부모의 기대가 있다. 더불어 남편이 가져다주는 안정된 생활이 있다. ‘나’는 ‘적’을 곁에 두기로 한다. 곁에 두고 지켜보면서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모른 체 하는 것. ‘나’에게 복수는 그저 양념 같은 것이다. 오늘 ‘나’는 김치찌개에 그녀의 소변을 좀 섞었다. 손님들은 육수에 감탄하면서 잘도 먹는다.

혼밥족과 식구(食口): [한 가족 따로 밥 먹기], [마지막 식사]

흔히 가족을 식구라 부른다. 식구食口란 문자 그대로 ‘먹는 입’,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식구라는 말보다 ‘혼밥’이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린다. 때로 신조어들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데 ‘혼밥’이라는 말이 딱 그렇다. 우리 시대는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가족은 있어도 식구는 없는 세상이다. 그러한 세태를 그린 소설이 장마리의 [한 가족 따로 밥 먹기]다. 소설은 예순네 가족의 식사를 별 다른 설명도 없이 조용히 관찰한다.

그들의 릴레이 아침식사를 잠깐 엿보자면 이렇다. 가장 먼저 할아버지. 당신 용돈은 당신 손으로 벌겠다고 새벽녘 경비실로 출근한다. 단촐한 아침식사는 밥 한 공기와 김치와 보리차만으로 끝. 이어서 가장 성진의 출근. 오늘 아침 따라 부부 금슬이 좋았던 바람에 식사는 입맛만 다시며 생략. 세 번째 예진도 식사 대신 긴 머리 손질에 시간을 쏟느라 생략. 이모 예진의 요란한 출근에 잠이 깬 현서가 주방을 기웃거릴 때엔 싱크대에 할아버지의 식사 흔적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녀도 냄새나는 식빵, 바닥이 드러난 딸기잼에 짜증을 내며 라면을 먹느라 10분 늦게 출근한다. 이제 이 집의 안주인 예순의 차례다. 예순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감자탕 집으로 출근. 그러나 마지막 차례 경서는 김치찌개 냄새의 유혹에도 불구, 늦잠을 원망하며 식사를 거른 채 등교한다. 이렇게 경서까지 집을 나서면 인기척만으로 확인되는 가족의 아침식사가 완성된다. 소설은 여섯 명 가족의 삼시 세끼 그러니까 열여덟 번의 식사를 그린다. 온갖 궂은일을 하느라 라면도 제대로 못 먹는 경비 할아버지, 선배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남은 반찬으로 점심을 때우는 사회 초년생,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중년 가장의 삼겹살 구이, 식당 아주머니들의 하루치 고달픔이 배어 있는 소주 한 잔. 소설이 그려내는 열여덟 번의 끼니는 하나쯤은 나의 것, 또 하나쯤은 내 아버지, 동생의 것일 수밖에 없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한 가족 따로 밥 먹기]가 가족은 있으되 식구는 없는 고된 현대인들의 일상이라면, [마지막 식사]는 죽은 자에게 올리는 제사상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인 함박리는 추모공원을 조성한다는 등쌀에 쇠퇴해버린 마을이다. 주민들이 떠나도 공원 조성은 쉽지 않은데, 까닭은 주인을 찾을 수 없는 무덤 때문이다. 묘지기권이라는 게 있어 묘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함부로 건들 수 없단다. 게다가 마을엔 동학농민군을 묻은 돌무덤까지 있다. 산 사람은 빠져나가고, 죽은 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이 마을에 함박슈퍼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끼니를 차려줄 팔자인지, 텅 빈 마을에서 홀로 주인 없는 묘를 돌본다. 어느 젊은 여자의 묘에 꽃 배달을 대신해 주는 일부터, 제 아비 무덤가에서 목숨을 끊은 청년의 묘, 동학농민군의 돌무덤까지. 남편과 아들의 무덤에 술 한 잔 마른 북어 올리는 김에 할머니는 이 무덤, 저 무덤에도 음식을 놓아준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은 할머니의 인정을 배반한다. 추모공원 사업자가 몰래 무덤가에 불을 질러 버린 것이다. 불을 끄던 할머니의 옷자락에 불길이 옮겨 붙는다.

이 소설을 [한 가족 따로 밥 먹기]와 맞세워 놓고 보면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살아서 식구가 되지 못했던 이들이 죽어서 끼니를 함께하는 식구가 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식구란 애초 혈연을 전제하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 음식에 담긴 인정과 한을 나누는 사람들, 그들이 식구다. 그래서 할머니의 인정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 오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죽어간 이들을 식구로 엮어 낸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무덤에 제주祭酒와 마른 북어포를 올리고, 멧비둘기 소리에 맞추어 덩실 춤을 추는 할머니의 모습. 그 사이 사이로 죽은 자들이 어렴풋 보이는 것 같다. 늙은이의 주름진 얼굴에는 늘 두 가지 이상의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은 처음 보는 낯선 청년도, 이름도 모르는 죽은 자도 ‘식구’가 될 수 있음을, 그것이 ‘먹는 인간’의 본성임을 알려 주는 너그러운 미소이기도 하지만, 그 본성이 지친 삶이 끝난 후에야 발현되는 각박한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서러운 울음이기도 하다.

그때 그 맛, 혀끝의 기억: [4월이었을까], [먹을 만큼 먹었어], [청국장을 끓이다]

죽기 전에 그때 그 음식을 한 번 더 먹어보고 싶다는 소원을 품는 이들이 있다. 돌아 올 수 없는 한 시절을 ‘맛’으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각은 자주 촉각과 후각을 포함한다. 혀에 닿는 음식의 질감이나, 구수한 냄새가 ‘맛’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는 후각, 미각, 촉각을 근접감각으로 분류했다. 그들은 ‘감각’을 ‘이성’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감각 중에서도 ‘근접감각’을 시각과 청각과 같은 ‘원격감각’보다 열등한 것으로 놓았다. 근접감각은 육체를 매개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기에 보편타당한 인식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육체에 직접 접촉하는 감각은 인간을 쾌락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섞여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미각을 열등한 것으로 놓았지만, 이러한 경계와 우려에는 우리가 왜 삶의 구체적인 한 국면을 ‘맛’으로 기억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미각이야말로 육체로 느끼는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4월이었을까]의 주인공 진은 후와의 무엇이라 명명하기 어려운 관계를 ‘브리야니’의 맛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 진은 장기간 중국에 머물고 있는 남편과 이혼 위기에 처해 있었고, 후는 후대로 이혼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란히 걸을 때 손가락이 스치듯, 손가락 끝에 잠깐 설렘이 맺히듯, 그들의 감정은 깍지를 끼고, 부둥켜안는 사건으로 나아가기도 전에 끝난다. 남편은 돌아왔고, 후도 그의 전 부인에게 돌아갔다.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두 사람의 관계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들에게 붙여줄 적당한 이름이 없다. 대신 그때 그들이 함께한 음식의 ‘맛’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후가 떠난 후 진은 브리야니를 먹으며 그를 떠올린다. 어쩌면 그녀는 후가 떠오를 때마다 브리야니를 먹을지도 모른다.

진의 이야기를 한평생으로 늘여놓으면 [먹을 만큼 먹었어]에 가까워질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스스로 곡기를 끊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소설은 죽음을 준비하는 주인공의 삶의 회고를 따라간다. 흥미롭게도 ‘나’는 자기 곁에 머물렀다 떠난 이들을 ‘맛’으로 기억한다. ‘나’의 부인은 죽기 전까지도 젊은 시절 남편이 사주었던 슈크림빵을 잊지 못했다. 그보다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곤궁한 시절에도 잔칫날 같은 대구탕을 끓였다. 어머니에게 대구탕이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다. 남편이 만주로 떠나던 날 대구탕을 어찌나 맛나게 먹던지, 그때부터 어머니에게 남편은 대구탕이 되어 버렸다. 평생을 마음에 두었던 여자 허란숙은 또 어떤가. 그녀는 평생 생 당근의 맛으로 ‘나’를 추억했다.

[먹을 만큼 먹었어]가 흥미로운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 그들의 미각에 각인되어 있다는 점인데, 여기서 나아가 소설은, 주인공의 인생을 그를 둘러싼 타인들의 인생의 ‘맛’으로 엮어 나간다. 그러니까 ‘나’의 일대기에는 타인들이 기억하는 그들 인생의 ‘맛’이 누벼져 있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이 직조되는 것이다. 가령, 슈크림의 달콤함으로 ‘나’를 기억하는 아내, 죽음을 앞둔 그녀의 수줍은 고백은 ‘나’의 인생 속에 아내의 무게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맛’이 왕복하고, 기억이 교차하는 동안 ‘나’의 지난 삶이 드러난다. 그러니 ‘나’에게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미감을 넘어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구탕을 먹을 때엔 어머니를, 어머니가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일이 된다.

이 나이쯤 되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어떤 것들은 미감을 넘어 그리움이나 회한으로도 기억되겠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오래도록 즐겨 먹었다는 그것도 그런 종류였을지 모른다. 혹은 잊히는 것을 향한 집착일 수도. 아마도 나는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먹을거리가 어떻게 자창 같은 흔적이 되는지를 깨달았던 것 같다. 그때 찾아온 청년 같던 번민은 몸 곳곳에 머물러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먹을 만큼 먹었어' 중에서/ p.23)

이렇게 보면 제목 ‘먹을 만큼 먹었어’는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이는 곡기를 끊는 ‘나’의 결단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리움과 회한으로 가득 찬 만년의 삶에 대한 나직한 읊조림으로 들리기도 한다. [먹을 만큼 먹었어]의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그런 고요한 작별의 시간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노쇠한 기억력이 삶의 특정 장면에 멈추어 버리는 일을 우리는 더 자주 목격한다. [청국장을 끓이다]의 인월댁이 그렇다. 과부 인월댁은 마을 총각 엉셍이와 사랑을 했으나 쫓겨나듯 고향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더 절절하다. 엉셍이는 열심히 콩 농사를 짓고, 인월댁은 그 콩을 사다가 메주를 뜨고 청국장을 끓인다. 청국장도 사랑이라 할 수 있다면, 이들은 이십 년을 넘게 이렇게 사랑을 나눈다. 소설은 치매 걸린 인월댁을 대신하여 그녀의 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청국장’을 완성하는 내용이다. 인월댁이 한 많은 세월 동안 묵묵히 해냈던 일-엉셍이에게서 콩을 사서, 메주를 뜨고, 청국장을 끓이는 일-을 대신한다는 것은 무한히 반복되었던 인고의 시간의 한 부분이나마 이해해 보겠다는 뜻일 테다. [청국장을 끓이다]는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어쩌면 삶의 지난한 과정의 축소판이기도 한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청국장을 만드는 과정 사이사이에 아들 선재의 삶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손자의 삶을 삽입한다. 공교롭게도 인월댁의 생일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손자의 제삿날이 같다. 요양 시설에 모시기 전 마지막으로 손수 차린 생일상을 대접한 아들 선재는, 곧이어 자신 아들의 제사상을 차리는 기구한 하루를 보낸다. 소설은 치매를 앓는 인월댁이 손자의 제사상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음식은 삶과 죽음 사이를 적나라하게 가로지른다. 그야말로 밥상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잇고 있는 것이다. [청국장을 끓이다]는 숙성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완성되는 청국장을 통해 인생의 여로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음식이 어떻게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죽은 손자를 부르는 인월댁의 허기진 목소리에서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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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풍요로운 산물과 넉넉한 인심, 그리고 따뜻한 인정이 어우러진 [마지막 식사]는 어머니의 밥상 같은 작품집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이 상 위에는 생면부지 나그네라도 소매를 붙잡아 음식을 대접하는 남도의 정서가 함께 묻어 있다. 그런 따뜻한 인정과 배려는 신개발로 사라지게 된 마을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무연고자의 무덤에 음식상을 차려주는 마음씀씀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섭식장애에 걸린 소녀의 고통에 대한 연민, 대구탕, 돼지고기 들어간 청국장, 매실장아찌, 브리야니, 멀리 멕시코에서 먹는 김치찌개, 한 가족이 단 한 번도 다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없는 현실까지를 음식에 담아 지면으로 불러낸다. 화목하게 둘러앉아 일가족이 먹는 밥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집이다.
- 김양호 / 소설가,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끼니에 안부를
먹는 일은 쉽지 않다. 곤궁해서가 아니라 먹는다는 행위에는 인간사의 굴곡과 풍파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식사]에 차려진 여덟 편의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은 어떤 ‘맛’으로 요약됩니까" 혹은 "당신의 지난한 인생은 어떤 ‘레시피’에 따라 가고 있습니까" 한참을 더 걸어봐야 알겠지만, 오늘 당신의 식사도 언젠가 요약될 당신 인생의 ‘맛’이었다는 것만은 기억하자. 무수히 쌓아가는 삼시 세끼. 매번 다를 수도 그렇다고 같을 수도 없는 식사. 그중에 오늘 당신의 식사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여기에 있는 소설들은 당신의 끼니에 안부를 묻는다. 당신, 잘 ‘먹고’ 사시길.
- 이지은 / 평론가

목차

먹을 만큼 먹었어 ― 이광재 007
청국장을 끓이다 ― 정도상 037
한 가족 따로 밥 먹기 ― 장마리 073
모니카, 모니카 ― 황보윤 105
초대 ― 차선우 139
장마 ― 김소윤 167
4월이었을까 ― 한지선 191
마지막 식사 ― 김저운 223

해설: 먹는 인간과 혀끝의 기억 ― 이지은 257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3~
출생지 전북 군산
출간도서 5종
판매수 1,295권

1989년 무크지 [녹두꽃2]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으로 [아버지와 딸], 장편소설로 [나라 없는 나라] [수요일에 하자]와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가 있다.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정도상(Jeong Do-sang)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0.01.03~
출생지 경남 함양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5,082권

1987년 단편 [십오방이야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으로 [친구는 멀리 갔어도] [실상사] [모란시장 여자] [찔레꽃]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누망] [낙타] [은행나무 소년] [마음오를 꽃]과 장편동화로 [돌고래 파치노]가 있다. 제17회 단재상, 제25회 요산문학상, 제7회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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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종
판매수 18권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불어라 봄바람]으로 등단했다. 창작집으로 [선셋 블루스]와 9인 가족 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공저)이 있다. 제7회 불꽃문학상 수상, 2011년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셋 블루스] 선정, 2013년 문예창작기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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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3종
판매수 29권

2006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2009년 대전일보,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2년 전북해양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로키의 거짓말]과 9인 가족 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공저)이 있다. 2016년 해외출간지원사업에 [로키의 거짓말]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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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익산
출간도서 2종
판매수 17권

[내일을 여는 작가]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창작집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가 있다.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6종
판매수 641권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12년 《자음과모음》 장편소설상, 2018년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와 《밤의 나라》, 《난주》가 있다.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5종
판매수 32권

창작집으로 [그때 깊은 밤에]와 장편소설로 [그녀는 강을 따라갔다] [여름비 지나간 후], 9인 가족 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공저)이 있다. 제1회 전북소설문학상과 제2회 작가의눈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생년월일 -
출생지 전북 부안
출간도서 4종
판매수 42권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삼십여 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85년 '한국수필'에 수필, 1989년 '우리문학'에서 소설로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 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공저), 휴먼르포집 [오십 미터 안의 사람들] 등이 있다.
'전북수필상', '작가의 눈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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