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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삶의 재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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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임지연
  • 출판사 : 은행나무
  • 발행 : 2017년 08월 16일
  • 쪽수 : 16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9616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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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랑은 왜 힘들까?

인간의 최대 관심사, 마르지 않는 예술적 모티프
사랑의 본질과 역사성에 관한 고찰


예술의 주된 모티프이자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불멸의 관심사이기도 한 ‘사랑’을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사랑, 삶의 재발명]이 출간되었다.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에 가벼운 분량으로 주목받는 인문서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아홉 번째 책이다. 문학평론가인 임지연 교수가 청춘을 뒤흔들지만, 삶의 황혼에 접어들어도 늘 힘들기만 한 사랑에 관한 통찰을 다양한 문학작품과 영화 등을 곁들여 선보인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찬미하며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만 막상 사랑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 그 이유를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서구와 한국에서의 사랑의 역사를 소개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사랑은 시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학습해온 통념적인 사랑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베르테르와 같이 사랑 때문에 죽은 허구나 실제의 사례들을 보면 마치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타나토스를 수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은 얼마든지 지금-여기에 발 디딘 채로 일궈낼 수 있다. 사랑을 양자의 완벽한 합일로 여기지 않고 두 주체의 개별성이 유지된 만남, ‘둘 됨’으로 생각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첫눈에 반했던 사랑의 열기를 평생에 걸쳐 동일하게 유지할 필요도 없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눈멀게 하는 낭만적 사랑의 미덕이 분명 있지만, 사랑이 근간이 되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되듯 현재를 살아가는 각자에게는 저마다에게 맞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고 상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봄으로써 삶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그렇듯이, 사랑 또한 우리의 삶과 ‘지금-여기’의 정신에 맞추어 끊임없이 재발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 안에 내재한 역설적인 요소들이 사랑을 불안하게 만들고
사랑에 관한 고루한 편견들에서 사랑의 난해함이 온다


사랑은 흔히 결혼이 이루어지는 청년기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애감정은 기실 ‘전연령가’다.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의 주인공 여민도, 문제적 영화 [죽어도 좋아]에 출연했던 노부부에게도 사랑은 동일하다. 에로스가 배제된 풋사랑, 멋모르는 감정의 요동침, 건강 증진의 일환에 불과한 성행위, 노년의 의탁할 곳 등 다양한 양태로 포장되곤 하지만 사실 사랑의 본질은 연령대를 초월하여 동일하다. 남편의 첫사랑이 오랜 부부관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영화 [45년 후]에서 남편 제프와 아내 케이트의 불화는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결혼 이전부터 있었던 서로의 관점 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전 세대가 겪게 되는 이 사랑의 어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이를 만남과 이별, 구속과 자유, 희생과 자기 보존 등 다양한 역설적 속성들을 내재하고 있는 사랑의 본질에서 찾기도 하고, 자본주의 아래 결혼 시장이 발달했듯이 사회적인 구조의 압력에서 찾기도 한다. 전자의 예로 20세기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사랑을 소개한다. 그의 작품인 [바람의 연인]에 묘사된 연인의 모습처럼, 연인은 순간을 몰아치는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지만 쾌락이 불타고 재만 남은 자리에서 유대감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코코슈카는 평생의 사랑 알마를 품 안에 붙잡아두고 싶어 했지만 그 구속은 연인 알마를 지치게 만들어 떠나가게 한다. 더 사랑하고자 한 집착에 사랑을 잃는 것은 코코슈카만이 아니다. 우리는 연애를 성취해내기 위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식의 이분법적인 진화 심리학이나 진화 생물학의 설명에 납득하려 노력하고 하다못해 상대의 본능적인 특성을 역으로 활용하라는 ‘연애 지침서’에 빠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상대를 개인이 아니라 한 종으로 이해하는 것은 간편할지언정 그 사람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랑에 목맨 베르테르가 필멸한 것처럼 에로스에는 타나토스가 수반된다. 지금 너무 사랑하지만 언제 사랑이 그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고, 불안함이 그치고 안정을 찾고 싶지만 안정에서 권태가 온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역설적인 것들로 가득 차 필연적으로 불안을 가져온다.

사랑은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다
‘영원히, 단둘이서’의 낭만적 사랑의 신화가 사랑을 억압한다


우리는 사랑의 주체인 ‘나’는 어떤 사람인지, 또한 내가 사랑하는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한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 우진의 외양이 매일 바뀌는 것이 은유하듯 내가 사랑하는 타자는 순간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며, 한병철이 지적했듯 ‘부정(不定)’의 존재다. 이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정말 사랑이 온다. 알마를 꼭 닮은 인형을 만들어서라도 그녀를 소유해야 했던 코코슈카의 패착처럼 사랑은 상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거나 그 사람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바로 ‘둘 됨’이다.

사실 사랑이 ‘영원히, 단둘이서’였던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저자는 사랑의 역사를 소개하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서구에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랑은 기사 랜슬롯과 기네비어 사이에서와 같이 이념적으로 완벽을 추구했던 이상적 사랑, 결혼제도 바깥에서만 존재했던 열정적 사랑, 자살한 베르테르와 같이 사랑을 박제하고 완벽히 융합된 두 사람을 꾀하는 낭만적 사랑, 현대 결혼 시장의 형성으로 알 수 있는 자본주의에서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유구한 사랑의 역사를 보자면 사랑은 시대마다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20세기 초반 일본을 통해 ‘Love’의 번역어인 ‘연애’가 수입되면서 낭만적 사랑과 자본주의가 깃든 사랑이 단기간에 이식되었고, 이 과도기적 급진성 때문에 근대의 낭만적 사랑을 현대에 현현시키려다 보니 자본주의 결혼시장의 논리와 뒤엉키면서 사랑이 힘들어진다.

북유럽 신화 속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로테에게 반한 그 순간에 매달려 살아가던 베르테르도, 근대 식민지 조선에서 정사(情死)한 강명애와 장병천도 현실의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죽었다. 그들의 사랑은 숨 쉬며 발 딛고 있는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적인 것이었다. 사랑의 힘듦은 사랑을 유토피아, 곧 현재 세계에 도래하지 않는 것으로 두는 데서 온다. 저자는 여기서 미셸 푸코가 제안한 개념 ‘헤테로토피아’를 가져온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역설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요소들 중에서 이상적인 것들을 찾아 사랑을 현실에 발 딛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시대에 따라 삶이 달라지듯
지금-여기에 맞추어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시대와 사회에 맞춘, 그리고 저마다의 삶에 맞는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경구나 연애 지침서, 혹은 심리테스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일반화에도 현혹되지 않은 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애쓸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회와 의식이 발전하면서 사랑은 더욱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른 성별 간의 전유물도 아니고, 심지어는 폴리아모리에서 볼 수 있듯 두 사람 간에 일어나는 것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가 결혼했다]와 같은 소설도 나오고 동성애를 위시한 무성애, 양성애 등 다양한 성적 지향에 관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도 이뤄질 수 있다. 한 세대 이전에 익숙지 않았던 이러한 사랑의 양식들은 통념과 지속적으로 부딪히고 새로운 실험에 빠지게 되겠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 어떤 것들도 사랑이 아니지는 않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주체와 타자가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이타심과 그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이기심이 충돌하면서 오는 불안을 인정하고, 하나 되기를 바라기보다 둘로서 공존하려 할 때에 온다. 낭만적 사랑의 융합적인 하나 됨과, 그 일심동체의 정신을 먹고 비대해진 가부장제에 시선을 고정할 때에 사랑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사랑은 어느 다른 시대와 사회의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정신에 맞추어 재발명되어야 한다.

시리즈 소개 마이크로 인문학 Micro Humanities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질문에 답함
지금 손안에서 시작하는 인문학


인문학은 작은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고, 일상을 통해 작동해야 함을 말하는 작은 인문학 책, ‘테이크아웃 인문학’을 표방하는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와 함께하는 이 시리즈는 2014 출간된 1차분 5권 - [생각, 의식의 소음](김종갑)·[죽음, 지속의 사라짐](최은주)·[선택, 선택의 재발견](김운하)·[효율성, 문명의 편견](이근세)·[질병, 영원한 추상성](최은주)—에서 현대인의 정신병이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에서부터 생각, 선택 등 일상적인 키워드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구를 선보였다.

3년 만에 추가로 출시되는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2차분은 그 무엇보다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감정에 주목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핫한 감정 ‘혐오’, 모든 정동의 중심이 되는 ‘자아’, 인류에게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는 ‘사랑’, 의학적인 측면이나 심리적인 측면 모두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기억’에 관해 소설, 영화,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내러티브들을 들어 수많은 사유의 실마리들을 제공한다.

[마이크로 인문학]은 인문학이란 게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문제들, 혹은 사건들을 다루는 활동이며, 인문학은 책이나 강의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기보다는 매일매일의 삶에서,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전혀 흥미롭지 않은 순간에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좌우한다는 것을 비교적 일상적인 키워드들을 통해 톺아본다.

01 생각, 의식의 소음―김종갑
02 죽음, 지속의 사라짐―최은주
03 선택, 선택의 재발견―김운하
04 효율성, 문명의 편견―이근세
05 질병, 영원한 추상성―최은주
06 혐오, 감정의 정치학―김종갑
07 자아, 친숙한 이방인―김석
08 기억,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서길완
09 사랑, 삶의 재발명―임지연

목차

들어가며 사랑에 대한 몇 가지 물음들

1장 바야흐로, 신 연애 시대
위험 사회와 사랑
죽어도 좋아

2장 사랑은 왜 어려운가?
사랑의 역설적 구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구?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자기와 타자

3장 사랑의 개념은 변한다
서구의 사랑의 역사
한국의 사랑의 역사

4장 낭만적 사랑은 사랑을 억압한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
너와 내가 일심동체라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삶의 테크닉으로서의 낭만적 사랑

5장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나에서 둘로
환상에서 지상으로
삶의 발견, 사랑의 발명

나가며 사랑의 재발명

Micro Note

본문중에서

현대사회에 필연적으로 내장되어 있으며 상시적으로 발생 가능한 재난의 불안을 우리는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국가와 사회, 세계 정치의 원리로 해결해야겠지만 그것에 기대를 철회한 원자화된 개인들은 재난 사회의 불안을 ‘사랑’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신이나 국가가 재난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없다고 판단될 때, 개인들은 사적 사랑을 요나의 고래 뱃속으로 인식한다. 누가 우리를 구할 것인가? 사랑이 구할 것이다. 위험 사회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사랑은 현대인들의 새로운 종교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위험 사회와 사랑 간의 역설적 관계다. 또한 그것은 종교화된 사랑에 내포된 고도의 정치성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신 연애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장 바야흐로, 신 연애 시대' 중에서/ pp.18~20)

보통 노년의 섹슈얼리티는 ‘징그럽다’, ‘민망하다’, ‘거북하다’ 등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성관계나 섹슈얼리티를 젊은이들의 것으로 독점하려는 사회적 불평등의 표현이다. 그것은 노인들로부터 성, 젠더, 욕망, 육체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 조건들을 차단하는 행위이며, 노인을 인간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폭력적 관점이다. 노인은 무성적 존재가 아니다. 최근 연구는 노년 배우자 간의 사랑과 책임감의 정도가 축소될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다른 연령층 커플과 특징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노화 중 가장 늦게까지 남는 것이 ‘성욕’이며, 노인 인구의 68퍼센트가 성생활을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노인에게 사랑을 절대적으로 ‘허(許)’해야 한다.
('1장 바야흐로, 신 연애 시대' 중에서/ pp.28~29)

사랑은 근본적으로 차이에 대한 경험이다. 연인들은 근원적으로 타자적 존재이며, 사랑의 관계는 동일자가 아니라 타자 간의 연대를 말한다. 그런데도 커플들은 상대를 개성과 차이보다는 하나 됨, 동일성, 융합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융합으로서의 사랑은 현실에서의 사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문제는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장 사랑은 왜 어려운가?' 중에서/ pp.57~59)

사랑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일은 과거 사랑의 이야기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코드화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지점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당대인들의 삶을 어떻게 구조화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사랑이 어떤 점에서 긍정적이고 어떤 점에서 부정적인지 꼼꼼히 따져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사랑은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역사적으로 변모했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연인들은 지금과는 다른 사랑의 관념 때문에 고뇌했으며, 그것을 기초로 변화했다. 사랑의 개념은 변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현재의 사랑은 어떻게 발견하고, 미래의 사랑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3장 사랑의 개념은 변한다' 중에서/ p.107)

그러나 사랑은 저 멀리서 빛나는 별이 아니라, 현실의 삶 속에서 연인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적인 것이란 지배자인 우두머리가 없고, 이미 주어진 강령도 없는 자유롭고 협상 가능한 관계-장소를 말한다. 이 사랑의 장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사랑의 입법자는 연인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라는 정언명령을 따르는 이행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랑의 원리를 만들고 현실화할 수 있는 사랑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 (중략)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과 죽음이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서로 싸우기도 하는 현실 속에서 향유할 수 없는 사랑을 추구한다. 그것은 좋은 사랑인가? (중략) 사랑을 이상화하는 것은 사랑을 유토피아로 만들기 때문에 사랑은 현실에서 유보될 뿐이다. 유토피아(utopia)란 현실에서는 없는 곳을 말한다.
('4장 낭만적 사랑은 사랑을 억압한다' 중에서/ pp.113~114)

낭만적 사랑은 융합적이다. 사랑을 이상화하고 이념화하는 것은 연인들이 서로를 같은 존재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즉 연인들은 서로를 동일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그것을 목표로 삼으며, 그래서 한쪽이 다른 쪽을 장악하려고 한다. 일심동체란 말이 있다. 마음도 몸도 하나란 뜻이다. 예로부터 부부는 일심동체가 될 때 최고의 커플로 인정받았다. 그러니 가부장제하에서 연인들은 남성을 기준으로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도록 요구받았다. 하나의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남성이 그 기준점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사랑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일심동체라는 사랑의 규율은 존중과 평등함의 내적 계기들을 무시하고, 둘 됨의 공동체성을 파괴한다. 가부장적 질서는 일심동체라는 사랑의 원리를 먹고 자라왔다.
('4장 낭만적 사랑은 사랑을 억압한다' 중에서/ pp.116~117)

사랑의 기원은 처음 사랑에 빠져 온갖 호르몬이 솟구쳐 황홀감에 전율하는 특정 시간이다. 사랑은 삶 속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처음의 순간으로 환원된다. 그는 정말 로테를 사랑한 것인가? 특정 순간에 박제된 로테를 사랑한 것인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사랑한 것인가?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한 것인가? 베르테르는 로테가 어떤 인간인지 알기나 할까? 베르테르와 모든 점에서 다른 로테의 개성과 차이를 탐구한 적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는 사랑에 빠져 더 깊어진 자신의 내면세계만을 탐색한 것 같다. 그러니 살아서 변화하는 로테를 베르테르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감정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자살에 이르렀다. 바르트는 사랑의 최고점에서 황홀함과 쾌락, 고통과 상념에 휩싸인 사랑의 주체가 파편적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다루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사랑의 정점에 있는 자의 목소리이다. 그것은 낭만적 사랑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삶 속에서 지속될 수 있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즉 어떤 사랑인가가 중요하다.
('4장 낭만적 사랑은 사랑을 억압한다' 중에서/ p.127)

푸코의 공간 개념인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위치를 가지는 유토피아를 말한다. 사랑을 유토피아가 아니라 헤테로토피아로 사유한다면 우리에게 사랑은 어떻게 존재할까? 그것은 발견의 문제이다. 영화('뷰티 인사이드]는 헤테로토피아적 사랑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달라지는 우진을 사랑하는 이수의 관점에서 사랑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사랑에는 지속적인 것과 변화하는 것, 익숙한 것과 낯선 것, 따뜻한 것과 불편한 것이 병치되어 있다. 먹기만 하면 배가 아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파게티를 그녀가 좋아한다면 나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기꺼이 먹는다. 상대에게 나의 취향을 맞춰주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비슷한 음식만을 고집하는 나의 식생활에 즐거운 파열구를 내면서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5장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중에서/ p.141)

현대를 살아가는 연인들은 이성애 및 일부일처제라는 제도에 묶여 있다. 특히 결혼이 일부일처제로 제도화되면서 ‘남자와 여자 단둘’만이 연인으로 공인되고 있다. 이성애가 특권화되고 젠더 평등이 실현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가부장적 권력이 사랑의 형식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나는 사랑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다양한 형태를 고안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연인들이 처한 상황에 맞는 독창적 형태들을 상상하고 고안할 때 사랑은 현실적으로 긍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5장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중에서/ p.148)

모든 사랑의 특징은 무한대이다. 같은 사람이 없듯이 같은 사랑도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사회적・역사적인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과 동일한 공통적인 형태로 수행되지만, 사회 역사적 틀에 갇혀 어떤 독창성도 없이 모방하기만 하면 우리는 사랑의 실패자가 된다. 사랑의 기쁨과 가치를 충분히 나의 것으로 향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사랑을 내가 욕망할 때 그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연인들만의 고유한 것, 특별한 가치, 상황적・맥락적 특수성, 대체 불가능한 원리를 만들 수 있다. 나아가 사회적・역사적인 낡은 사랑을 교체하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초기 사랑의 선언과 고백은 지속적인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재선언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독창성이며 사랑의 재발명이다. 사랑을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긍정하고 끊임없이 타자의 차이를 발견하며 관계의 독창성을 재발명할 때, 사랑은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가며 사랑의 재발명' 중에서/ p.158)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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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에서 현대시를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KU 연구 전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부터 문학평론을 시작하여 시 전문지 [시작]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동인 ‘사월’의 멤버이다. 평론집 [미니마 모랄리아, 미니마 포에티카] [공동체 트러블]을 냈으며, [문학과 수용]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에 글을 실었다. 1950~1960년대 한국 지식장과 문학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최근 사랑이 모든 관계의 긍정적 원리이며, 행복한 삶의 핵심적 계기라는 점에 착안하여 ‘사랑’ 공부를 하다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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