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바이오 아트(Bio Art)]는 살아 있는 또는 살아 있었던 예술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변화를 있는 그대로 조망하게 한다. 가능한 생명 현상을 중심으로 작품이 서로 연결되고, 스스로 문화적 의미를 생성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신체 조직, 유전자, 혈액, 그리고 각종 미생물이 물신이 되고 상품화되어 버린 오늘날, 바이오 아트는 그것들에 정당한 생명의 권리를 되찾아 준다. 생명의 예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고, 이로부터 인간의 가치를 발견해낸다.

이 책은
생명을 다루는 예술과 그 주변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소개

바이오 아트는 생명을 다루는 예술이다. 현대의 예술가는 생명의 환영이 아니라, 그 활용을 고민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꽃을 그리는 대신, 그것을 직접 피워 낸다. 캔버스 속 기괴한 키메라들은 이제 실험실과 전시장에서 뛰놀게 된다. 바이오테크로 무장한 예술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바이오 아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을 ‘가능한 생명’이라는 더 큰 그림 속에 담는다. 그것은 생명의 창조적, 비판적 활용을 시도한다. 생명의 미적 가능성은 이 예술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 된다.

출판사 서평

신승철,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 서문 중에서
바이오 아트의 정의와 장르에 관한 혼란은 사실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 예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채 삼십 년도 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십여 년간의 역동적인 변화는 바이오 아트의 정의나 장르 구축, 그리고 체계적인 역사 기술이 현재로서는 성급한 것임을 보여준다. 변화의 한복판에서 그것과 비판적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신 이 책은 살아 있는 또는 살아 있었던 예술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변화를 있는 그대로 조망하게 할 것이다. 가능한 생명 현상을 중심으로 작품이 서로 연결되고, 스스로 문화적 의미를 생성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흔히들 한 장의 그림이 천 단어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눈으로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쉽다.

살아 있는 또는 살아 있었던 미술 작품들은 시각적 유비를 따라 분류되고 배치될 것이다. 이를 위해 12개의 주제가 선별되었고, 각 장에 할당되었다. 물론 이를 통해 바이오 아트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 주제들은 바이오 미디어가 형성하는 우리 시대의 양식을 시각적으로 확인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사의 오랜 논의들이 어떻게 생명을 둘러싼 현대의 문화 담론으로 변모해 가는지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의 1부는 ‘생명의 예술’의 미적 의미를 탐구한다. 바이오 아트의 등장과 그 의미가 동시에 논의될 것이다. 1930년대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참제비고깔 전시와 페니실린의 개발자 알렉산더 플레밍의 ‘미생물 회화’ 전시는 그 출발점이 된다. 이들은 누구보다 앞서 생명의 미적 활용을 시도했고, 이를 통해 근대적인 바이오 아트의 탄생을 알렸다.

실제로 생명은 도처에 편재한다. 바이오 아트는 이를 재료이자 대상으로 삼고, 일상을 파고든다. 하지만 그 예술적 색채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테크로 인해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상상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은 상상과 현실 모두에서 작용한다. 바이오 아트는 일상에 침투해 현실을 구축하지만, 언제나 가능한 최대한의 비현실을 움켜쥔다. 생명이자 예술인 그것은 상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을 지켜나간다.

2부에서는 상상이자 현실, 예술이자 생명인 바이오 아트에 대한 문화학적인 접근이 시도된다. 바이오 아트는 현대의 기술문화를 구성하지만, 이중적 속성 덕분에 그것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예술 고유의 문화비판적 성격을 드러낸다. 2부에서는 유전학적 예술을 중심으로 이에 관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제2의 창조자로서 자연의 활동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그 변화를 점점 가속화하고 있다. 바이오 아트는 이렇듯 인간에 의해 새로 쓰이는 자연사의 단면을 드러낸다. 우리 현실의 고통스러운, 그리고 기술과학이 불러올 미래의 사건들은 바이오 아트를 통해 비판적으로 구현된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단순한 유희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실과 가능한 미래에 대한 비판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바이오 아트는 가상의 생물학을 구축한다.

3부에서는 바이오 아트의 윤리적 의미가 소개된다. 자연사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제2의 창조자의 활동은 자연과 생명뿐 아니라, 인간 개념에 필연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자신이 유발한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연적, 문화적 환경의 변화는 인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데, 바이오 아트는 이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한다.

인간 신체는 바이오 아트의 우선적인 소재가 된다. 생명의 미시적인 차원까지 개입하는 예술이 사람의 몸이라고 그냥 놔둘 리 없다. 현대 미술은 ‘낡은’ 신체에의 개입을 당연시하고, 그것의 급진적인 변화를 유발한다. 이제 인간 형상은 끊임없는 위협 앞에 놓이게 된다. 그것은 다양한 장치나 보철, 미생물 같은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재형성된다. 하지만 생명의 예술은 인간을 존재론적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는다. 비록 인간의 형상은 위기를 겪지만, 이로 인해 그 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생명의 요소들이 속속 발견된다. 세포 조직이나 장내 미생물 같은 신체 요소에 내재된 생명의 가치는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신체 조직, 유전자, 혈액, 그리고 각종 미생물이 물신이 되고 상품화되어 버린 오늘날, 바이오 아트는 그것들에 정당한 생명의 권리를 되찾아 준다. 물론 인간의 형상 역시 이를 통해 재구축된다. 생명의 예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고, 이로부터 인간의 가치를 발견해낸다. 생명 그 자체에 집중하면서, 그리고 다양한 생명의 요소들과 공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확인시키면서, 바이오 아트는 윤리적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 책의 독자

미술과 철학, 그리고 미학 전공자를 비롯해 생명과 예술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

서문

1부 생명을 담은 예술

1 미술관에 들어온 꽃
2 생성과 파괴의 예술
3 현대의 연금술

2부 예술과 자연사

4 유전자 초상화
5 우생학에 저항하는 예술
6 진화를 되돌리다?
7 제2의 창조자로서의 예술가
8 유전자 이식 예술

3부 인간을 위한 예술

9 생명의 메시지
10 신체의 디자인
11 몸 - 확장과 공유
12 신체 조직의 헐벗은 삶

미주
참고문헌
도판목록
인명색인

유년 시절,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방패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는다. 지체 없이 밖으로 뛰어나간 레오나르도는 도마뱀, 귀뚜라미, 뱀, 나방, 박쥐 같은 징그러운 동물을 잔뜩 잡아왔다. 그것들을 조합해 무서운 괴물을 그려 낼 심산이었다. 동물의 악취가 진동했지만, 어린 예술가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작업에 몰두했다. 뛰어난 모사 능력에 상상력이 더해졌고, 무시무시한 키메라가 탄생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그것을 창가에 매달아 희미한 조명을 받게 했다. 그림을 확인하러 온 아버지는 그 광경에 혼비백산해 뒷걸음질쳤다. 그는 아들이 무엇을 그리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기에, 오직 ‘살아 있는’ 괴물의 출현에 반응했다. 어린 예술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방패 앞에 선 사람은 누구나 눈앞의 괴물을 두려워할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생명을 직접 제작할 수 없었으므로, 괴물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였다. --- 서문

파라켈수스의 유명한 호문쿨루스 역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다. 그 작은 인간은 남성의 정액을 가열된 플라스크에서 40일간 부패시킴으로써 탄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자에 담긴 인간 형상이 생리혈, 즉 질료를 만난 결과 태아가 생성된다고 썼다. 하지만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는 생리혈이 없이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그것은 인간 형상을 지녔음에도, 몸이 없고 투명했다. 파라켈수스에 의하면, 그것은 완전히 비물질적인 존재였다. --- 3장, 현대의 연금술

지텔이 제작한 는 더욱 직접적으로 닭의 퇴화를 유도한다. 작가는 닭을 다시 날게 만들기 위해, 특별한 사육 장치를 뉴욕 신미술관에 설치했다. 닭 우리는 마치 쇼윈도처럼 설치되어, 미술관 안팎에서 사육자의 창조적 활동을 관찰할 수 있게 했다. 작가는 마치 라마르크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 닭이 날아올라야만 알을 품을 수 있게 연출했다. 달걀은 다양한 높이에 놓여 있었고, 그곳까지 날아오른 닭만이 알을 부화시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튼튼한 날개를 가진 닭에게 유리하도록 생존 환경을 구성해 놓았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인위적인 선택으로 인한 진화, 즉 ‘퇴화’가 발생하게 된다. 마치 신처럼 환경을 바꾸는 작가의 엉뚱한 창조 활동을 통해, 닭은 진화의 오랜 경로를 거슬러 ‘야생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 6장, 진화를 되돌리다?

실험실에서 제작된 생명체의 외부 반출 제지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윤리 문제뿐 아니라, 생태계 교란 같은 다른 여러 문제들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츠는 이에 수긍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제작된 토끼의 ‘헐벗은 삶’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겼다. 그는 자신의 토끼에게 ‘알바’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유수의 매체를 동원해 “알바를 해방하라!”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웹사이트와 포스터, 깃발, 티셔츠 등이 제작되었고, 이를 통해 ‘알바’는 미디어 스타로 거듭나게 되었다. 카츠의 유전자 이식 동물이 단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유명해졌고, 실험실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동물들의 대변자가 될 수 있었다. --- 8장, 유전자 이식 예술

성형수술을 통해, 오를랑의 신체는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 변화 속에 놓이게 된다. 그녀의 몸은 고통이나 두려움 같은 육체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오를랑은 수술 중에, 그리스도를 따라,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소프트웨어이다”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구원자의 자기 희생의 말은, 불경하고 세속적인 자기 과시의 표현이 된다. 그녀의 몸은 언제든 변화 가능한 이미지가 되고, 마치 배우가 역할에 맞추어 마스크를 바꾸어 쓰듯,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이 되었다. --- 10장, 신체의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