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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 삼백수 - 5언절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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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저 : 정민
  • 역 : 정민
  • 출판사 : 김영사
  • 발행 : 2014년 12월 15일
  • 쪽수 : 6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34969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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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단 다섯 자에 마음을 빼앗기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 방위적 분야를 탐사하고 있는 정민 교수는 이 책 [우리 한시 삼백수] 를 통해 삼국부터 근대까지 명편 5언절구 3백수를 가려 뽑고 오늘날 독자들의 감성에 닿을 수 있게 풀이했다.

사랑과 인간, 존재와 자연, 달관과 탄식, 풍자와 시대, 다섯 마디의 좁은 행간을 통해 바쁜 일상 속 잃어버렸던 여유를 찾는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한시를 통해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배운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휴식처가 될만한 도서이다. 평소 한시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새해 정민 교수가 선사하는 깨끗한 정화의 울림!"
말들만 어지러운 세상에 던지는 단장短章의 미학,
단 다섯 자에 마음밭 시원한 물꼬가 터진다!


정민 교수가 새해 새 마음이 간절한 이들에게 선사하는 다섯 자 단장短章의 깊은 울림! 공자는 [시경詩經]을 묶으면서 "[시경]의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思無邪다"라고 했다. 사무사는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뜻이다. 시를 쓴 사람의 생각에 삿됨이 없으니 읽는 사람의 마음이 정화가 된다. 이것이 저자가 3백수의 상징성을 굳이 내세운 이유다. 자연이 등장하고 그 속에 사람이 깃든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도 내게 보내는 자연의 메시지다. 사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스스로 치유되는 한시의 정서 표현 방식은 세상을 제멋대로 주무르려고만 드는 현대인의 욕망을 향한 일종의 경고다. 날마다 한 수씩 읽어나가도 휴일을 빼고 나면 한 해 살림과 같다.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는 정민 교수가 [우리 한시 삼백수] 7언절구 편에 이어 1년 만에 5언절구 편을 펴냈다. 정민 교수의 학문적 본령은 한문학 중에서도 고전 문장론이다. 삼국부터 근대까지 우리 5언절구 백미 3백수를 가려 뽑고 풀이했다. 원문에는 독음을 달아 독자들이 찾아보기 쉽게 했으며 원시元詩만큼 아름다운 평설은 순수한 감성 비평에 국한했다. 부록에서는 시인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서술했다.
공자는 [시경詩經]을 묶으면서 "[시경]의 3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思無邪다"라고 했다. 사무사는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뜻이다. 시를 쓴 사람의 생각에 삿됨이 없으니 읽는 사람의 마음이 정화가 된다. 이것이 저자가 3백수의 상징성을 굳이 내세운 이유다. 5언절구를 우리말로 옮길 때는 보통 7.5조의 3음보 가락으로 옮겨 읽지만 이 책에서는 4.4나 5.5 또는 3.3.3의 실험적 번역을 다양하게 시도했으며 특별히 4.4의 가락에 천착했다. 한자 다섯 자를 우리말 여덟 자로 옮긴 셈인데, 뼈만 남기고 살은 다 발라냈다. 글자 수가 줄면 꾸밈말을 빼야 한다. 군더더기를 덜어내니 뜻이 더 깊어진다. 대신 어구 풀이에서 원래 의미를 가늠하도록 최소한의 설명을 달았다.

저자는 예전 체코의 한국문학 연구자가 한국 한시를 체코어로 번역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계절과 꽃 소식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몰라 궁금하더니 한국에 와서 지내자 금세 이해가 되더란 말을 인상 깊게 들었다. 시는 문화의 풍토성을 간직한다는 말이다. 한시의 기본 미감 발생 원리가 그렇고, 여기에 우리 민족의 정서 교감의 특성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우리 한시 속에는 자연이 등장하고 그 속에 사람이 깃든다. 사물은 끊임없이 교감의 언어를 발신한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도 내게 보내는 자연의 메시지 아닌 것이 없다. 사물 속으로 내가 들어가 그들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스스로 치유되는 한시의 정서 표달 방식은 세상을 제멋대로 주무르려고만 드는 현대인의 욕망을 향한 일종의 경고 같다. 옛사람들은 한시 속 새 안에 다양한 의미를 담았다.

날아가는 기러기 떼 줄 못 이루고
변방 소리 밤낮으로 일어나누나.
그리운 맘 머리만 하얗게 샜다
구슬피 바라보는 천 리 먼 사람.

旅雁不成行 邊聲日暮起
여안불성항 변성일모기
相思空白頭 望人千里
상사공백두 창망인천리
(/ '조위(曺偉, 1454-1503) - 기러기 떼[서제 숙분 조신에게 부치다(寄庶弟叔奮伸)]' 중에서)

여보게! 아우님. 부모님 모두 편안하신가? 가을 서리 내리더니 자꾸 하늘이 소란스럽네그려. 고개 들어보면 겨울 나러 남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가 보이는군. 저희들도 불안한 걸까? 대오도 흐트린 채 꺼이꺼이 울며 나네. 너희는 가는데 나는 왜 못 가나? 날마다 마음만 공연히 심란해지곤 하지. 나라 일에 매인 몸, 가고파도 못 가니 저 기러기 발에 묶어 편지 한 장 띄워 보내네. 머리는 수심에 희게 물들고 보고픈 아우님은 천 리 먼 곳에 있으니 그리움 좀체 가누지 못하겠네. 따뜻이 나누던 한잔 술 오늘따라 사무치네.

곤륜산 옥 누가 깎아
직녀의 빗 만들었노.
견우와 이별한 뒤
속상해서 던졌다네.

誰 崑山玉 裁成織女梳
수착곤산옥 재성직녀소
牽牛離別後 愁擲碧空虛
견우이별후 수척벽공허
(/ '황진이(黃眞伊, 1516-?) - 반달[반달을 노래함詠半月]' 중에서)

황진이, 그녀의 시는 참 재치가 있다. 얼레빗 같은 노란 반달이 반공중에 걸려 있다. 누가 쓰던 걸까. 누군가 곤륜산의 좋은 옥을 캐어다가 마르고 깎아 직녀에게 선물했겠지. 그 빗으로 매일 곱게 단장하며 견우와 사랑을 속삭였겠다. 하지만 견우가 내 곁을 떠나 은하수 저편으로 건너가 날마다 함께 있던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뒤로 얼레빗은 이제 쓸모가 없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굴 위해 머리 빗을 일이 없다. 곱게 단장할 일이 없다. 속이 상해서 푸른 허공에 냅다 던져버린 그녀의 빗은 지금도 허공에 걸려 저렇게 빛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같이.

이 외에도 [망천도輞川圖] 그림과 어울리면서 당대의 권세가 남곤을 비판한 [그림 속 풍경](최수성), 산 넘고 물 건너 왕래하며 서울 소식, 집안 소식을 알려주는 하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고맙다](이원익), 눈길에 어렵사리 친구를 찾아왔다가 없어 눈밭 위에 글을 써놓고 눈보라가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심정을 담은 [눈 위에 쓴 편지](이규보) 등 마음을 울리는 명편들이 이 책에는 넘쳐난다.

우리 한시를 읽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의 광대한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처음에는 그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오솔길을 거닐다 보면 세월의 무늬가 찍힌 나무들의 등껍질이 보여주는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묵은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온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새 마음이 아니다. 지난 해 우리는 마음을 잃어버린 세태 속에서 엄청난 재앙을 경험했고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이 책에서 정민 교수는 세상을 멋대로 주무르려 하는 비인간의 풍조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은 오직 마음밭을 가꾸는 일로만 가능하다. 저자는 단 다섯 마디에 실린 깊고 그윽한 울림으로 독자들의 메마른 마음밭에 시원한 물꼬를 튼다.

목차

머리말

지족(知足) - 을지문덕
등불 앞 - 최치원
갈매기 - 장연우
밤비 - 고조기
거문고 - 이자현
봄바람 - 김부식
고향에서 - 신숙
검은 밤 - 임규
옛 생각 - 최홍빈
좋은 시절 - 김신윤
산집 - 이인로
기다림 - 이인로
조각달 - 이규보
등산 - 이규보
옛길 - 이규보
패랭이꽃 - 이규보
눈 위에 쓴 편지 - 이규보
맨드라미 - 이규보
못가에서 - 혜심
꾀꼬리 소리 - 김양경
천봉 속 - 충지
아침 내내 - 충지
보덕굴 - 이제현
당부 - 조인규
연꽃 - 최해
변화 - 최해
마음가짐 - 이곡
지친 새 - 전원발
안분(安分) - 정포
강어귀에서 - 정포
비 온 아침 - 설손
갈매기 - 유숙
새벽 풍경 - 함승경
세상만사 - 조인벽
달밤 - 이색
봄비 - 정몽주
일출 - 성석린
목숨을 끊으며 - 김자수
버들 - 설장수
시골집 - 이숭인
강남 - 정도전
소요 - 길재
법부사 - 함부림
봄날 - 이첨
산에 사는 맛 - 유방선
밤새도록 - 변계량
산속 암자 - 이제
학은 가고 - 이보
귀가 - 이용
물총새 - 이경동
댓잎 자리 - 김수온
매화 - 강희안
꾀꼬리 - 신숙주
단비 - 신숙주
매화 - 성삼문
잠 깨어 - 서거정
가을밤 - 서거정
촛불 - 김극검
기러기 떼 - 조위
떠돌이 - 남효온
등불 돋워 - 남효온
혼자 - 이식
이별 - 이총
매화 - 성윤해
조각배 - 이정
그리움 - 이정
지팡이 - 박수량
벙어리 - 박수량
거문고 - 신항
세월 - 박계강
피리 소리 - 박계강
반죽(斑竹) - 이행
달빛 - 김정
저물녘 - 김정
안개 속 - 김정
벗 보내며 - 김정
샘물 소리 - 오경
만사(挽詞) - 기준
풍랑 - 최수성
그림 속 풍경 - 최수성
간서(看書) - 고순
옥 세계 - 서경덕
원숭이 - 나식
절집 - 나식
망향 - 임억령
해오라기 - 임억령
칭찬 - 조식
천왕봉 - 조식
나루에서 - 정렴
배꽃 - 정렴
고목 - 김인후
인생 - 김인후
고향 생각 - 윤결
구름뿐 - 휴정
꽃비 - 휴정
솔숲 속 - 휴정
들매화 - 이후백
강가 - 강극성
진면목 - 이광우
국화 - 고경명
두견이 울 제 - 이순인
눈 온 뒤 - 이순인
저무는 강 - 정작
기다림 - 송익필
하산 - 송익필
짹짹 - 송익필
남쪽 시내 - 송익필
작별 - 하응림
소리만 - 하응림
비 오는 밤 - 정철
오동잎 - 정철
배웅 - 정철
통군정에서 - 정철
석양 무렵 - 정철
가을밤 - 정철
반달 - 황진이
낙엽 속 - 이이
먹구름 - 이이
비바람 - 송한필
옛 절 - 백광훈
돌우물 - 백광훈
안개 이불 - 백광훈
벗을 애도하며 - 백광훈
오솔길 위 - 백광훈
보림사 - 백광훈
딸 생각 - 백광훈
흰 구름 - 이달
매미 울음 - 이달
풍경 - 이달
학 - 이달
등꽃 - 이달
옛 무덤 - 최경창
다듬이 소리 - 최경창
흰모시 치마 - 최경창
백운동 - 최경창
풋보리 - 최경창
향연(香煙) - 최경창
깊은 밤 - 이성중
안분(安分) - 윤정
대나무 - 홍가신
강 마을 - 홍가신
어긴 약속 - 안민학
눈물 - 조헌
생각 - 김니
근심 겨워 - 이순신
고맙다 - 이원익
웃기만 - 김장생
부끄러워 - 임제
석류꽃 - 임제
잘 있게 - 임제
늦잠 - 임제
까치 소리 - 이옥봉
광나루 - 이정
더딘 밤 - 장현광
봄잠 깬 뒤 - 정용
긴 밤 - 정용
가을 - 정용
나귀 등 - 차천로
성근 별 - 차천로
기러기 - 차천로
휘파람 - 이기설
강 길 - 홍경신
불붙듯 - 차운로
가을 달 - 차운로
빗속 꽃 - 이수광
냇물 소리 - 허적
쟁글쟁글 - 허적
기다림 - 허적
가을볕 - 허적
언로(言路) - 신흠
달밤 - 신흠
그리움 - 신흠
너럭바위 - 하위량
늙은 말 - 최전
낙엽 - 권필
고향 꿈 - 권필
뚝뚝 - 권필
길가의 무덤 김· 상헌
범어사 - 이안눌
차 연기 - 이안눌
고개 구름 - 이안눌
낚시 - 김류
치악산 - 홍서봉
새만 혼자 - 허경윤
잠 깨어나 - 이매창
비단 적삼 - 이매창
봄날 - 이매창
눈물 - 이매창
원망 - 조신준
나눔 - 조신준
새벽 - 조신준
휘파람 - 이지완
집 생각 - 목대흠
갈림길 - 이식
헛걸음 - 이식
솔숲 - 이식
다짐 - 이식
손거울 - 최기남
버들 - 최기남
먼지와 흙 - 이민구
시름마저 - 이민구
전송 - 유석
국화 - 이명한
왕손초 - 이명한
봄 산속 - 강백년
용호 - 김득신
긴 밤 - 김득신
금강산 - 송시열
두 모습 - 송시열
노숙 - 정희교
고향 생각 - 김충신
눈 오는 밤 - 남씨
매 - 이태서
남한산성 - 구음
강 나무 - 처능
저물녘 - 한우기
눈 오는 밤 - 김수항
절집 생각 - 박세당
등불 - 허시형
산촌 - 임방
수종사 - 홍만종
새벽 - 이만원
못가에서 - 김창흡
시냇물 - 김창흡
달빛 - 김창흡
서글퍼지면 - 홍세태
넋만 - 홍세태
작별 - 홍세태
기러기 - 홍세태
아침 이슬 김· 시보
새벽 비 - 김보
목동 - 이만부
낮잠 - 신희명
냇가에서 - 권이진
속도 없이 - 최창대
동묘 - 이병연
비 오는 오후 - 이병연
새벽의 교외 - 고시언
봄기운 - 윤순
저녁 빛 - 오상렴
산 아래 마을 - 오상렴
늙은 소 - 정내교
산해경 - 신유한
흰 구름 - 신유한
꽃그늘 - 신유한
빗질 - 임창택
다리 - 김이만
소 타는 맛 - 권만
뱁새 - 정석경
말없이 - 남극관
비 갠 뒤 - 남극관
낙엽 위 - 남극관
꽃만 - 정우량
타향에서 - 정우량
물고기 - 이광사
꽃보다 - 남유상
봄비 - 남유상
문수사 - 박태욱
베짱이 - 홍양호
노랫소리 - 박윤원
혹한(酷寒) - 박지원
요동벌 - 박지원
꽃구경 - 박지원
어린 손자 - 노긍
꽃 - 박준원
산 - 박준원
낮잠 - 박준원
더딘 배 - 박준원
탄식 - 이덕무
잠자리 - 이덕무
낮술 - 이덕무
국화 - 이덕무
내 집 - 이덕무
달빛 - 이가환
단풍잎 - 이가환
꽃술 - 박제가
아기 - 박제가
도톨밤 - 박제가
그림자 - 박제가
생각 - 박제가
투정 - 이안중
빗질 - 이안중
슬픈 이별 - 서영수각
청개구리 - 정약용
냇물 - 정약용
꽃 꺾어 - 김삼의당
발자욱 - 이양연
자장가 - 이양연
슬픔 - 이양연
깊은 밤 - 강정일당
기다림 - 능운
저녁 - 실명씨
가을 생각 - 이씨
은행잎 - 이정주
풋보리 - 한장석
꽃잎 - 황오
연잎 - 배전
아내를 잃고 - 이건창
초록 동산 - 이건창
국화 - 이건창

작자 소개

본문중에서

강 넓어 큰 고기 마음껏 놀고
숲 깊어 지친 새 돌아오누나.
전원으로 돌아옴은 내 뜻이지만
진즉에 기미機微 앎은 아니었다네.

江闊脩鱗縱 林深倦鳥歸
강활수린종 임심권조귀
歸田是吾志 非是早知機
귀전시오지 비리조지기
(/ '전원발(全元發, 고려 후기) - 지친 새[용궁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난계 김득배의 운에 차운하여(龍宮閑居. 次金蘭溪得培韻)]' 중에서)

넓은 강물엔 큰 고기가 물 만나 논다. 제멋대로 거칠게 없다. 깊은 숲에는 날다 지친 새들이 둥지에 깃든다. 따뜻하고 안온하다. 전원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기쁘다. 왜 진즉 내려오지 못했나 싶다. 나는 세상일에 지친 새, 좁은 보에 갇혀 그물에 비늘을 다치기도 했던 큰 물고기다. 진즉에 벼슬길이 재앙의 길임을 알았더라면 그 길에서 그토록 아등바등하지는 않았을 터. 이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연에 묻히고 보니, 지난날의 망설임이 마음에 부끄럽다. 아직 늦지 않았다. 멋대로 헤엄치다 수면 위로 튕겨 오르기도 하고, 마음껏 날다 저물녘엔 둥지에 깃들리라.

그물눈 촘촘해 걸릴까 싶어
작은 놈도 날개를 퍼덕이누나.
설령 매화가지 빌려준대도
마침내 네가 편히 쉴 곳 아닐세.

罹應密網 亦飛翰
괘리응밀망 마묘역비한
縱借梅枝一 終非爾所安
종차매지일 종비이소안
(/ '정석경(鄭錫慶, 1689-1729) - 뱁새[매화가지 위의 뱁새를 읊다 梅上 ]' 중에서)

뭔가 불편한 심기가 느껴진다. 봄 맞은 매화가지 위에서 조그만 뱁새 한 마리가 깝죽거리고 있다. 그물 줄이 촘촘해 다른 새들이 겁먹고 안 오는 동안, 하도 작아 그물에도 걸리지 않을 뱁새만 와서 찧고 까분다. 모처럼 뜻을 펼쳐 보겠노라고 날개깃을 퍼덕이며 이 가지 저 가지 제멋대로 오르내린다. 뱁새야! 여긴 네 놀 곳이 못된다. 딴 데 가서 놀아라. 아마도 얼어붙은 정국을 틈타 갑자기 출세한 소인배 하나가 겁도 없이 함부로 설쳐대는 양을 보다가 눈꼴이 시어 지은 시지 싶다.
새라는 하나의 소재를 통해서도 눈물겨운 형제애, 티끌세상을 벗어난 드높은 달관, 부조리한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 다양한 주제들을 녹여냈던 선인들은 꽃에는 황홀한 자연에 대한 도취, 뜻대로 되지 않고 어긋나기만 하는 세상길의 안타까움, 인고의 세월을 견뎌 끝내 이겨내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담기도 했다.

보슬비에 갈 길 잃고
십 리 바람 나귀 탄 채.
곳곳마다 핀 들매화
향기 속에 애 끊나니.

細雨迷歸路 騎驢十里風
세우미귀로 기려십리풍
野梅隨處發 魂斷暗香中
야매수처발 혼단암향중
(/ '이후백(李後白, 1520-1578) - 들매화[절구絶句]' 중에서)

보슬비 속을 헤매 돌다 갈 길을 잃었다. 아니 이럴 땐 갈 길을 잊었다고 써야 할까? 나귀 등에 올라탄 채 십 리 길을 봄바람 맞으며 쏘다녔다. 미로(迷路), 즉 길 잃고 헤맨 까닭은 3구에서 말했다. 여기저기 피어난 들매화 때문에, 은은히 품겨오는 꽃향기 때문에, 그 향기에 떠오른 옛 기억 때문에, 보슬비 맞고 십 리 봄 길을 쏘다녔다. 꽃향기에 취해 보슬비에 젖어 옛 생각에 잠겨 길을 잃고 헤맸다. 들매화 때문에.

첩은 빗속의 꽃
님은 바람 뒤 버들 솜.
꽃 좋아도 쉬 이우니
솜은 날려 어딜 가나.

妾似雨中花 郞如風後絮
첩사우중화 낭여풍후서
花好亦易衰 絮飛歸何處
화호역이쇠 서비귀하처
(/ '이수광(李 光, 1563-1628) - 빗속 꽃[옛 뜻古意]' 중에서)

좋은 꽃 어렵게 피웠더니 무정한 비에 땅에 진다. 꼭 내 신세 같다. 님은 바람에 갈 데 모르고 떠다니는 버들 솜 같다. 비에 지는 꽃잎처럼 얼마 못 가 시들 청춘인데, 안타까워라 님의 마음을 잡아둘 길이 없구나. 나를 까맣게 잊으시고 산지사방 이리저리 갈피 못 잡고 다니시는구나. 나는 님만 바라보고 있건만 님은 한눈만 판다. 딴전만 부린다. 그나마 시들고 나면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이 아닌가. 제목을 고의(古意)라 했다. 행간에 슬쩍 감춰둔 뜻이 있단 뜻이다. 어긋나기만 하는 세상길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국화꽃 담박하다 누가 말했나
국화꽃 담박한 듯 더욱 짙다네.
근심 잠겨 적막할까 염려가 되어
일부러 가을 겨울 골라 피었지.

誰道黃花澹 黃花澹更濃
수도황화담 황화담갱농
人愁寂寞 故故發秋冬
파인수적막 고고발추동
(/ '이건창(李建昌1852-1898) - 국화[국화黃花]' 중에서)

국화꽃이 담박하다고 말하지만, 그 담박함 속에 짙은 향기가 있다. 빛깔도 흰빛에서 노란색, 보라색에 이르기까지 없는 빛깔이 없다. 모든 꽃들이 다 지고, 잎새들 물들어 땅에 질 적에, 여름내 매운 기운을 속으로만 간직해두었다가, 푸른 하늘 열리고 공기가 알싸해진 뒤에야 꽃망울을 부푼다. 텅 빈 가을 들판 보며 적막한 근심에 빠져들 사람들 마음 따뜻해지라고 일부러 가을 지나 겨울 되도록 참고 참아 꽃을 피우는 것이다.
자연에 가탁해 마음을 표현하고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방식은 바람이나 말 같은 다른 자연과 동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인 사랑도 달, 꽃, 까치 소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뚝뚝뚝 눈에선 눈물지고
가지마다 꽃들이 하나 가득.
봄바람 이 내 한 불어가
하룻밤에 하늘 끝 다다랐으면

滴滴眼中淚 盈盈枝上花
적적안중루 영영지상화
春風吹恨去 一夜到天涯
춘풍취한거 일야도천애
(/ '권필(權 , 1569-1612) - 뚝뚝[뚝뚝滴滴]' 중에서)


떠도는 삶이 아파 눈에서 뚝뚝 눈물이 진다. 그 마음 알지 못하겠다는 듯 가지마다 벙긋벙긋 꽃들이 피었다. 눈물로 어룽진 꽃잎들이 더 소담스럽다. 봄바람아 불어라. 쌩쌩 불어라.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밤새도록 불어라. 안타까운 내 마음을 먼 데까지 전해다오. 봄바람아 불어라. 쌩쌩 불어라. 보고픈 맘, 그리운 생각, 그곳까지 전해다오. 밤새도록 불어라. 하늘 끝까지 불어라.

늙은 말 솔뿌리 베고 누워서
꿈속에서 천 리 길을 내달린다네.
갈바람 나뭇잎 지는 소리에
놀라서 일어나니 해는 저물고.

老馬枕松根 夢行千里路
노마침송근 몽행천리로
秋風落葉聲 驚起斜陽暮
(/ '최전(崔澱, 1567-1588) - 늙은 말[늙은 말老馬]' 중에서)

지난날은 꿈이었지 싶다. 빠진 이빨로 여물을 씹다가 지친 몸을 솔뿌리 위에 누인다. 곤한 잠 속에서는 여전히 힝힝대며 천 리 길을 내달린다. 장하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적토마의 꿈은 찾을 길이 없다. 갈기를 휘날리며 붉은 땀방울을 흘리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쓰다듬는 주인의 손길에 의기양양하여 채찍질 없이도 내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가을바람 잎 지는 소리에 부시럭 눈을 뜨면 또 하루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다. 나도 가야지. 하지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늙은 말의 꿈은 슬프다.

저자소개

정민 [편저]
생년월일 -
출생지 충북 영동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한양대 국문과 교수. 한국 한문학 전공. 고전 문장이론을 전공하고 한문학 전반에 걸쳐 폭넓은 관심이 있다. 고전 수필의 현대적 소개에 흥미를 가져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현대문으로 다듬어 [꽃밭 속의 생각]으로 펴냈고, 안재홍의 [백두산 등척기]를 알기 쉽게 풀어 간행했으며, 윤오영의 수필을 정리해 [곶감과 수필]로 엮었다. 2015년 박목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스승의 체취를 기려 [달과 고무신]으로 박목월의 수필 세계를 정리했다.

생년월일 -
출생지 충북 영동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고 있다. 아침에 학교 연구실에 올라와 컴퓨터를 켜면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매일 한시 한 수씩을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적어나갔다. 재워둔 곶감처럼 든든해서 이따금 하나씩 뽑아 혼자 맛보곤 했다. 이 책 [우리 한시 삼백수 - 7언절구 편]은 삼국부터 근대까지 명편 7언절구 3백수를 가려 뽑고 오늘날 독자들의 감성에 닿을 수 있게 풀이했다.
그동안 한시 관련 저서로 한시의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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