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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 최초의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를 말하다

원제 : Ainsi soit Olympe de Gou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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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연단과 단두대가 하나임을 증명한 인간
    최초의 여성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에 관한 국내 첫 책


    올랭프 드 구주는 말했다. "근본적인 견해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자신의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여성 참정권 역사에서 한 번쯤 거론되며 유수의 여성 정치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역시나 한 번쯤 언급되는 "화석화한 해석"으로만 존재해온 올랭프 드 구주.

    "성녀거나 여왕이거나 총애받는 애첩이거나 화류계 여자거나, 아니면 사회면 기사나 유명한 사기극의 여주인공"(22쪽)이 아닌 이상 "여성들의 영웅적 행위나 지성, 재능이 아무리 탁월해도"(22쪽) 역사와 문학이 그 존재를 축소하고 봉인하고 망각했던 여성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마땅한 이가 그녀다.

    "혁명의 세기가 끝내 내주지 않았던 연단에 이 책이 그녀를 세운 건 단지 그녀가 여성의 인권을 선언한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여서만은 아니다."(‘옮긴이의 말’에서) 프랑스혁명기 격변의 역사 한가운데 자리했던 최초의 인간적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 지성의 상징적 존재 브누아트 그루가 올랭프 드 구주의 소설 같은 삶과 역사적 행보,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전문을 비롯 올랭프 드 구주의 정치적 글들을 발췌해 엮은, 올랭프 드 구주에 관한 국내 첫 책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해제에서 "이 책은 올랭프 드 구주의 발굴과 ‘선구자/희생자’ 담론을 넘어서, 역사가 성별의 개입으로 인해 얼마나 전복적일 수 있는지 새로운 이론의 근거가 되는 모델인 동시에 역사를 바꾼 사상으로 읽어야 한다. 수많은 올랭프 드 구주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이 책은 그 입구다"라고 말한다.

    프랑스혁명 속 올랭프 드 구주,
    "바스티유를 잡은 건 남자들, 왕을 잡은 건 여자들"


    1789년 10월 5일 베르사유로 행진한 7000여 명의 성난 파리 여성들이 있었다. 그해 7월 14일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탈취하면서 프랑스혁명은 시작되었지만 실업이 늘고 빵값이 치솟아 파리는 굶주린 상태였다. 그때, 왕의 근위대 병사들이 혁명의 상징인 삼색휘장을 짓밟고 모독했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여자들이 격분해서 들고일어났다. 군중은 "빵을 달라" "혁명을 모독한 병사들을 벌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나절 만에 베르사유 궁에 이르렀다. 이튿날 루이 16세는 미뤄온 ‘인권 선언문’을 승인했고, 식량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그리고 ‘파리로!’라고 외치는 군중에 이끌려 왕실은 절대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을 완전히 버리고 파리로 향했다.

    무장한 여자들이 왕실 마차를 호위했고, 앞장선 이들의 창끝에는 살해당한 경호병 두 명의 목이 내걸린 기이한 행렬이었다. 역사가 미슐레의 말처럼 "바스티유를 잡은 건 남자들이지만 왕을 잡은 건 여자들이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여자들은 발 벗고 행동에 나섰다. 나라 살림과 혁명의 대의에 보탬이 되도록 보석을 내놓았고, 주요 봉기 때마다 거리를 점령하고 남자들에게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여성 단체를 만들고 함께 모여 법률과 신문을 읽고 정치 문제를 토론했다.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국민군에 가담할 권리를, 삼색휘장을 달 권리를,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했다. 의결에 참여할 권리를 갖지 못하자 여자들은 청원서를 쓰고, 대중에게 허락된 국회 방청석을 차지하고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입법자들을 향해 목청을 높이는 이 여자들을 남자들은 "뜨개질하는 여자들"이라 불렀다. 이 말은 "뜨개질하던 양말을 손에 든 채 입에 거품을 물고 한꺼번에 고함쳐대는 서민 여자들"을 의미하는 멸시 어린 호칭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들의 맹렬한 지지를 업고 정권을 잡은 자코뱅 당은 그들을 철저히 배반했다. 지적 열등성과 생래적 한계 때문에 여성은 시민 자격에 미달한다고 선언했고, 여성 단체를 폐지했다. 여자가 길거리에서 다섯 명 이상 모이는 것조차 불법으로 규정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능동적으로 혁명에 가담하고도, 남자들이 겁낼 정도로 맹렬히 치맛바람을 일으킨 죄로 여자들은 조롱당했고, 길거리에서 벌거벗겨져 매를 맞고 정신병원에 보내지거나 목이 잘렸으며, 역사에서 일화처럼 축소되거나 지워졌다.

    많은 영역, 특히 종교 영역에서 그토록 대담했던 프랑스혁명이 여성과 새로운 사회에서 여성이 맡을 역할에 대해서는 이토록 역행적인 발상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놀란다면 천진한 사람일 것이다. 모든 혁명의 역사가 가슴 아프게도 이 사실을 예시해준다.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하고도 한 번도 그 결실을 수확하지 못했고, 대개 질서와 전통으로 복귀하는 대가를 치렀다.

    이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가장 열린 정신의 소유자들인 미라보, 탈레랑, 시에예스는 그들의 동반자인 여성들에게 국가 발전에서 터무니없이 하찮은 자리밖에 내주지 않았다. 실뱅 마레샬은 심지어 여자들이 읽는 법을 배우는 걸 금지하는 법률까지 제안했다. "그 대신 자연이 여자들에게 말하는 경이로운 재능을 갖고 태어나게 했잖은가." 그에 앞선(그리고 그에 뒤이은)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세상이 여자들의 가정이고, 전 인류가 여자들의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의 평등권을 위해 그토록 열을 올렸던 지롱드 당원 브리소조차도 초등 교육 1, 2년이면 어린 딸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pp.59~60)

    이렇게 혁명에서 제외된 여성들, 시민에서 배제된 여성들 가운데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턱에 수염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고, 정치적 발언이 전면 금지당하던 이 공포정치 시대 로베스피에르를 질타하는 벽보를 붙일 만큼 대담했던 그녀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당당히 말했고, 2년 뒤 단두대에 올랐다.

    소설 같은 삶을 살았고 대담한 정치적 행동을 했으며 시대를 대단히 앞선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역사 교과서에 기껏해야 한두 줄 정도 언급될 권리밖에 갖지 못했고, 그녀의 죽음에 바쳐진 추도사는 조소나 악의 어린 몇 마디로 축소되었다. 이 "무모한 여자", 이 "정신 불안정한 여자", 이 "용감한 미치광이", 이 "화류계 여자", 이 "남프랑스의 보바리", 이 "정신 나간 주정뱅이", 이 "부도덕한 괴물"은 결국 조국의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던 모든 여성 히스테리 환자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온갖 전통적인 여성 혐오의 환상들을 한 몸에 구현한 올랭프 드 구주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클로드 망스롱은 거침없이 말한다. "그녀는 우리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혁명가였다."
    (/ pp.24~25)

    모든 여성의 모든 권리,[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발표
    가슴 뜨거운 정치적 여성,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다


    올랭프 드 구주는 프랑스 시골 출신으로 가난 때문에 열여섯의 나이에 이른 결혼을 했고 홍수 때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를 둔 과부가 된다. 이후 결코 결혼하지 않는다. 파리로 상경한 후 죽은 남편의 이름을 쓰지 않고 본인이 지은 ‘올랭프 드 구주’라는 이름을 쓴다. 문맹이었으나 당대 극작가로 활동한다. 당시 연극은 예술 분야일 뿐 아니라 일종의 미디어 역할도 했는데, 그녀는 그 미디어를 잘 이용했다.

    여성, 어린이, 노예, 가난한 이들 등,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혁명의 주변부에 머물며 제 목소리를 냈으며,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온갖 대의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입장을 가장 집요하게 대변했다. 상속의 평등권을 요구하고, 모든 직업을 여성에게 열어줄 것을 요구하고, 이혼의 합법화를 요구했다. 1791년 마침내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했으며, 그녀의 주장들은 일부 결실을 보았다. 1792년 9월 20일, 처음으로 부부의 이혼을 법이 허용했고, 아내를 남편의 후견에서 해방시켰다. 그러나 1793년 1월, 올랭프 드 구주는 왕의 처형에 반대하며 산악당이 독재를 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온건한 공화주의자들 편에 섰던 그녀는 혁명에 반대한다는 혐의로 1793년 7월 20일 체포, 11월 2일 사형 선고를 받고 이튿날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것은 사실상 여성이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죄’였다.

    "우리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 그녀가 단지 최초의 페미니스트로만 머물지 않은 까닭은 여럿이다. 일부의 인권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을 부르짖다 단두대에 올랐던 그녀의 삶과 죽음이 혁명의 가려진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세상의 온갖 불의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사회정의를 세우려고 애쓴 진정한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 노인, 실업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출산하다 죽어가는 산모, 사생아, 미혼모 등 사회의 모든 약자들,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 개선에 마음을 쓰고,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단히 전위적인 사회사업이나 제도 들을 제안한 개혁가였기 때문이다. 실업자를 위한 공공작업장이며 배심원 판결 제도의 전신인 민간 법정의 창설을 주장하고, 두 세기가 지나야 생겨날 ‘시민연대협약PACS’과 유사한 동거형태를 ‘사회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하는 등 이 특출한 여성의 생각이 놀랍도록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프랑스에서 1791년 모든 차원에서 양성 평등 원칙을 제시한 ‘여성 권리 선언’을 작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주의(이즘)’라는 말이 존재하기도 한참 전에 성차별주의가 인종차별주의의 한 변종임을 이해하고, 여성 박해와 흑인 노예제도에 동시에 맞서 일어선 최초의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용감하게도 성적 자유를 포함한 모든 자유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혼과 동거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고, 가부장권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으면 시민권 정복도 한낱 미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미혼모와 사생아의 권리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이상理想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pp.23~23)

    올랭프 드 구주의 죽음 후 "근대적 인권 개념을 발명했고, 어느 나라보다 앞서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세계 최초로 노예제도를 철폐한 프랑스" 여성은 뒤늦게, 1944년에 이르러서야 참정권을 얻었다.

    페미니즘의 한계를 논하기 이전에 페미니즘의 근원을 호명하다
    저자 브누아트 그루가 올랭프 드 구주에게 표한 특별한 오마주


    저자 브누아트 그루는 저널리스트, 작가, 페미니스트로 활동 중인 프랑스 페미니즘의 상징적 존재다. 영화로 제작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과 전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읽힌 여성이 처한 잔혹한 현실과 여성혐오를 고발한 명징한 에세이를 썼다. 1978년 페미니스트 월간지 [F 마가진]을 창간했으며 페미나상 심사위원과 남성형으로만 존재하는 직업, 직급, 직책 명칭의 여성형을 만들기 위한 용어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일했다. 그녀에 관해 다큐멘터리와 전기만화가 만들어져 헌정되었다.

    당대의 지성 브누아트 그루가 망각의 역사에서 발굴하고 호명한 올랭프 드 구주의 삶은 "여전히 1700년대의 프랑스와 2014년의 한국의 차이 혹은 지금 지구를 살아가는 여성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새삼 질문하게 한다."(13쪽)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글들은 때로 대단히 난삽하고 천진하거나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모든 관대한 대의들을 간파하고 옹호했으며, 인권선언의 제1조항에서 단 한 단어를 바꾸는 대담한 용기를 보인 한 여성을 증언해주는 글들이다.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이 하나의 단어는 남성들에게 던지는 도전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불순하고 참으로 혁신적이며 한마디로 혁명적인 생각, 가정의 균형과 사회의 균형을 위협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올랭프 드 구주의 동시대인 대부분의 눈에 그녀가 웃음거리로, 폭력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후대에 무책임한 여자로 기억되리라는 걸 정당화해주는 말이었다.

    이 멋진 여장부들, 이 용감한 악녀들, 그때까지 아직 이름을 알지 못했던 페미니즘의 열정적인 여전사들은 정의를 돌려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들의 행위, 그들의 말 또는 그들의 저서가 그들을 위해 증언해주고 있다.
    (/ pp.95~96)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라는 선언은 페미니즘의 한계를 논하기 전에 여전히 유효한 페미니즘의 근원을 상기하며, 다시금 현재적 페미니즘 혹은 휴머니즘의 귀환을 환영할 차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브누아트 그루의 말대로 그 시원에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추천사

    올랭프 드 구주의 전위적인 생각들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남다른 통찰력을 가졌던 이 여성은 목숨까지 내걸고 남성과 여성의 양립을 위해 애썼다. 역사와 문학, 페미니스트들마저 영원한 망각 속에 떨어뜨린 이 여성에게 브누아트 그루가 표한 특별한 오마주가 눈부시다.
    - [상트르 프레스Centre Presse]

    최초의 이 인간적 혁명가를 역사의 지하감옥에서 나오게 할 때가 되었다.
    - [누벨 비 우브리에르NVO]

    목차

    해제 연단과 단두대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증명한 인간 _ 정희진

    최초의 근대적 페미니스트 올랭프 드 구주

    올랭프 드 구주의 정치적 글들

    한 여성 시민이 쓴 민중에게 보내는 편지 또는 애국 기금 계획
    [민중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여성 시민이 쓴 애국적인 고찰
    제2의 국립극장과 조산원 계획
    흑인들에 관한 성찰
    한 여성이 부르짖는 현자의 외침
    네케르와 드 구주 부인의 망명 또는 드 구주 부인이 프랑스인과 네케르 씨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
    왕비에게 헌정하는 여성 권리 선언
    이혼의 권리와 사생아들의 공정한 지위를 위한 변론 오를레앙 공에게 보낸 발의안의 발췌본
    귀부인들을 위한 서문 또는 여성의 초상
    국민공회 의장 제롬 페티옹에게 보내는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해명에 대한 대답
    혁명법정에 선 올랭프 드 구주의 변론

    옮긴이의 말
    올랭프 드 구주 연보

    본문중에서

    올랭프 드 구주의 시대는 야만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진보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녀와 우리의 ‘차이’는 ‘진보했다/변함이 없다’는 논의보다 어떤 여성의 어떤 삶의 측면을 재현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올랭프 드 구주는 특정 시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지만, 이제 가시화 문제에서 분석과 평가의 과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어떤 여성의 삶에 렌즈를 들이대는가에 따라 여성의 지위는 천차만별로 인식될 수 있다.
    올랭프 드 구주는 인권 연구 분야에서 한 번쯤 언급되는데, 주로 ‘여성의 참여 그러나 좌절’이라는 식의 화석화한 해석이 주를 이룬다. 남성 사회에서 성별 연구는 여성의 경험, 위치, 행위성보다 자신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전선에 참여(동원)했는지 여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올랭프 드 구주의 발굴과 ‘선구자/희생자’ 담론을 넘어서, 역사가 성별의 개입으로 인해 얼마나 전복적일 수 있는지 새로운 이론의 근거가 되는 모델인 동시에 역사를 바꾼 사상으로 읽어야 한다. 수많은 올랭프 드 구주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이 책은 그 입구다.
    (/ '해제' 중에서)

    성녀거나 여왕이거나 총애받는 애첩이거나 화류계 여자거나, 아니면 사회면 기사나 유명한 사기극의 여주인공이 아닌 이상 전기 작가들은 여성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여성들의 영웅적 행위나 지성, 재능이 아무리 탁월해도 역사책이나 교과서에는 적절한 분량으로 축소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지워졌다. 지나치게 체제 전복적인 태도를 보였거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집을 부린 여자들은 화형장이나 도형장 또는 단두대나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자신들에게 지정된 전통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공적 역할을 해보려고 시도한 모든 여성들은 대부분의 경우 영예도 얻지 못했고, 동료들의 인정도 받지 못했다.
    (/ p.22)

    질식당한 이 운명들, 침묵으로 축소된 이 목소리들, 알려지지 않은 또는 죽은 채 태어난 이 모험들, 낙태당한 이 재능들이 마침내 오늘날 어둠 속에서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여주인공들이 영광의 팡테옹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 여성들의 인정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나 누구보다 망각된 이가 올랭프 드 구주다.
    왜냐하면 그녀가 프랑스에서 1791년 모든 차원에서 양성 평등 원칙을 제시한 ‘여성 권리 선언’을 작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주의(이즘)’라는 말이 존재하기도 한참 전에 성차별주의가 인종차별주의의 한 변종임을 이해하고, 여성 박해와 흑인 노예제도에 동시에 맞서 일어선 최초의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용감하게도 성적 자유를 포함한 모든 자유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혼과 동거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고, 가부장권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으면 시민권 정복도 한낱 미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미혼모와 사생아의 권리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이상理想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pp.23~23)

    소설 같은 삶을 살았고 대담한 정치적 행동을 했으며 시대를 대단히 앞선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역사 교과서에 기껏해야 한두 줄 정도 언급될 권리밖에 갖지 못했고, 그녀의 죽음에 바쳐진 추도사는 조소나 악의 어린 몇 마디로 축소되었다. 이 "무모한 여자", 이 "정신 불안정한 여자", 이 "용감한 미치광이", 이 "화류계 여자", 이 "남프랑스의 보바리", 이 "정신 나간 주정뱅이", 이 "부도덕한 괴물"은 결국 조국의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던 모든 여성 히스테리 환자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온갖 전통적인 여성 혐오의 환상들을 한 몸에 구현한 올랭프 드 구주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클로드 망스롱은 거침없이 말한다. "그녀는 우리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혁명가였다."
    (/ pp.24~25)

    올랭프 드 구주가 요구하는 지성의 권리, 그리고 수치심 없이 늙을 권리는 그녀가 여성으로서 최초로 용기 내어 다룬 주제들이다.
    (/ pp.46~47)

    몇 달 뒤, 그녀는 민중에게 쓰는 편지에 "애국적인 고찰"을 덧붙여 보완한다. 이 글엔 사려 깊은 생각들과 한 세기 후에나 실행에 옮겨질 전위적인 제안들이 가득하다. 그녀는 사회사업을, 노인들을 위한 수용시설을,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집합소를, 아직은 실업자라는 말로 부르지 않던 사람들을 위한 공공작업장을 최초로 얘기한 인물이다. 공공작업장은 1848년에 국가작업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채택될 것이다. 그녀는 또한 오늘날 우리네 배심원제의 전조인 범죄 사건의 판결을 위해 호출되는 민간 법정 창설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 시대엔 대단히 보기 드문 관심사인 병원 소독 문제와 출산시 비참한 위생 문제도 언급한다. 시립병원에서는 출산하는 여성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죽었는데, 대개 전적으로 피할 수 있는 감염 때문이었다. 올랭프 드 구주는 "누구도 진지하게 돌보지 않는 사람들을 낳다가 산파의 품에서 죽어가는 여성들, 출산의 고통에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운명에 마음이 동한 최초의 인물이다.
    (/ p.50)

    많은 영역, 특히 종교 영역에서 그토록 대담했던 프랑스혁명이 여성과 새로운 사회에서 여성이 맡을 역할에 대해서는 이토록 역행적인 발상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놀란다면 천진한 사람일 것이다. 모든 혁명의 역사가 가슴 아프게도 이 사실을 예시해준다.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하고도 한 번도 그 결실을 수확하지 못했고, 대개 질서와 전통으로 복귀하는 대가를 치렀다.
    이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가장 열린 정신의 소유자들인 미라보, 탈레랑, 시에예스는 그들의 동반자인 여성들에게 국가 발전에서 터무니없이 하찮은 자리밖에 내주지 않았다. 실뱅 마레샬은 심지어 여자들이 읽는 법을 배우는 걸 금지하는 법률까지 제안했다. "그 대신 자연이 여자들에게 말하는 경이로운 재능을 갖고 태어나게 했잖은가." 그에 앞선(그리고 그에 뒤이은)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세상이 여자들의 가정이고, 전 인류가 여자들의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의 평등권을 위해 그토록 열을 올렸던 지롱드 당원 브리소조차도 초등 교육 1, 2년이면 어린 딸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pp.59~60)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은 물론 1789년의 인권선언에서 착상한 것이지만 그보다 훨씬 멀리 나아갔다(141쪽). 남자(인간)라는 말을 여자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대담하게도 시민의 자유를 개인의 자유로 보완했다. 그녀가 보기에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2세기 후에도 이 문제가 우리 관심사의 중심에 있게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믿기 힘들 정도로 근대적인 태도였다. 그녀는 푸리에보다 훨씬 앞서서 최근에 법률로 지위를 인정한 동거 관계를 예시하는, 일종의 합법적인 혼외 관계인 ‘사회계약’을 인정받고자 결혼 제도의 재검토를 제안하기까지 한다.
    또한 그녀는 미혼모들을 위한 원조와 친자 관계를 확인할 권리도 주장했다.
    (/ pp.62~63)

    그리고 이혼할 경우 양육비 지불뿐만 아니라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어머니들의 존엄성을 사회가 인정해줄 것도 요구했다. 이렇게 올랭프 드 구주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내세운 여성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합법적인 자식이건 아니건 모든 아이들이 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권리를 갖기를 희망했다. 이 바람이 마침내 프랑스 법전에 등록되려면 197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관습에 대해 참으로 도덕자연하던 시대에 이 모든 대담한 주장들은 올랭프 드 구주라는 이름의 여성에게 수많은 적들을 끌어모은다. 더구나 그녀는 노예제도에 대한 의견까지 내놓았다. 이 점에서도 그녀는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의 투쟁을 결합하게 될 페미니즘의 선구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
    (/ p.63)

    내 심장은 조국에, 나의 청렴은 그것이 필요한 남자들에게 남기겠다. 나의 영혼은 여성들에게 남기려는데 그들에게 하찮은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창조적 재능은 극작가들에게 남기니 그들에게 무용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나의 극 논리는 저명한 셰니에에게 남기겠다. 나의 무사무욕은 야심가들에게, 나의 철학은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나의 종교는 무신론자들에게, 나의 진솔한 쾌활함은 초로기의 여성들에게 남긴다. 그리고 정직한 재산에서 내게 남은 모든 찌꺼기들은 나의 천부적 상속인인 내 아들에게 남긴다. 그 아이가 내가 죽고도 살아남는다면.
    (/ p.78)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글들은 때로 대단히 난삽하고 천진하거나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모든 관대한 대의들을 간파하고 옹호했으며, 인권선언의 제1조항에서 단 한 단어를 바꾸는 대담한 용기를 보인 한 여성을 증언해주는 글들이다.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이 하나의 단어는 남성들에게 던지는 도전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불순하고 참으로 혁신적이며 한마디로 혁명적인 생각, 가정의 균형과 사회의 균형을 위협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올랭프 드 구주의 동시대인 대부분의 눈에 그녀가 웃음거리로, 폭력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후대에 무책임한 여자로 기억되리라는 걸 정당화해주는 말이었다.
    이 멋진 여장부들, 이 용감한 악녀들, 그때까지 아직 이름을 알지 못했던 페미니즘의 열정적인 여전사들은 정의를 돌려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들의 행위, 그들의 말 또는 그들의 저서가 그들을 위해 증언해주고 있다.
    (/ pp.95~96)

    흑인종은 그 비참한 운명 때문에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인지력이 겨우 발달하기 시작했을 무렵, 아이들이 아직 생각을 하지 않는 나이에 처음으로 흑인 여자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의 피부색에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물어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내 호기심과 사유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들은 흑인들을 야만인처럼, 하늘이 저주를 내린 존재들로 취급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들을 그 끔찍한 노예 상태로 단죄한 것이 힘과 편견이었음을, 자연은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으며 백인들의 부당하고 강력한 욕심이 모든 걸 만들었음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오래전에 이 진실과 흑인들의 끔찍한 상황을 이해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내 상상력에서 나온 첫 번째 극작품 주제로 다루었다.
    (/ p.120)

    인간 무역이라니! 세상에나! 자연이 전율하지 않는가? 그들이 동물이라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동물이 아닌가? 백인은 어떤 점에서 그들과 다른가? 차이는 피부색이다. (...) 왜 밋밋한 금발을 혼혈에서 생겨난 갈색 머리보다 더 선호할까? 이 경향은 흑인보다 혼혈을 선호하는 것만큼이나 놀랍다. 자연이 만든 모든 동물이 그렇고, 또한 식물과 광물이 그렇듯이 인간의 피부색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왜 낮이 밤과, 태양이 달과, 별이 창공과 색을 두고 다투지 않는가? 모든 건 다양하며 바로 그래서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왜 자연의 작품을 파괴하려 드는가?
    (/ p.121)

    옛날 사람들은 그저 너무 무지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은 걸 알아서 모든 걸 망치고 있습니다.
    사상과 학식 덕에 그들은 오늘날 끔찍한 혼돈 속에 빠져 있습니다.
    (/ p.127)

    근본적인 견해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자신의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 p.148)

    내가 제안한 이혼에 대해 고집하지는 않겠다. 인간의 자유와 풍속에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이 문제로 가장 득을 보는 건 후대다.
    (/ p.160)

    저자소개

    브누아트 그루(Benoite Groult)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20~
    출생지 프랑스 파리
    출간도서 1종
    판매수 23권

    192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53년까지 기자로 일했다. 소설 [사물의 이치La part des choses], 여성에 관한 에세이 [그녀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Ainsi soit-elle]는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그녀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는 8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전적 소설인 [심장 혈관]은 1992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별표]는 5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또한 여성 인권을 위해 활동한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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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수 0권

    번역은 텍스트의 여백과 작가의 침묵까지 살려 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전문 번역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옮긴 책으로 모파상의 『멧도요새 이야기』, 로맹 가리의 『레이디 L』 『하늘의 뿌리』 『흰 개』 『밤은 고요하리라』 『내 삶의 의미』 『마법사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자크와 그의 주인』,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앙테크리스타』, 리디 살베르의 『울지 않기』, 나탈리 아줄레의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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