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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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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적도기니 대통령의 딸에서 16년간 평양의 망명자로, 가혹한 운명에 도전하며
    마침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 모니카 마시아스의 특별한 이야기


    적도기니 초대 대통령의 딸로 평양에서 16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모니카 마시아스의 자전 에세이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가 예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모니카 마시아스의 삶은 특별했다. 아프리카 적도기니에서 태어났지만, 평양에서 성장했고, 스페인과 뉴욕을 거쳐 서울, 그리고 모국인 적도기니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인생 여정을 겪었다. 그녀의 아버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1968년 적도기니가 아프리카 최초로 스페인 식민통치를 벗어나면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독립은 했지만 적도기니는 여전히 스페인의 영향권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프란시스코 대통령은 강경한 탈식민주의 정치를 펼치며 스페인으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1979년 스페인 정부와 우호적이었던 사촌이자 국방장관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의 쿠데타로 프란시스코 정권은 실각하고 만다. 김일성 주석과 친분이 돈독했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가족들을 북한으로 긴급히 피신시켰다. 당시 모니카 마시아스의 나이 일곱 살. 언니 마리벨과 오빠 파코 손을 잡고 동양의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딛으며 그녀는 불안과 호기심으로 어리둥절할 뿐인 꼬마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가 쿠데타 세력에게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잠깐의 시간이라 생각했던 평양생활은 그 후로 16년간 계속되었다.

    저는 참 이상한 인생을 살았어요. 저는 아버지가 둘입니다
    적도기니의 프란시스코 대통령, 북한의 김일성 주석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의 삶은 언제나 평범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녀에겐 아버지가 둘인 셈이다. 그녀를 낳아준 적도기니의 프란시스코 대통령, 그리고 16년간 그녀를 보살펴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두 명의 아버지 모두 세상으로부터 독재자이며 악마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16년간의 평양 생활을 끝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주홍글씨처럼 그녀를 쫓아다니던 악마의 딸이라는 표식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악마의 딸'이 가장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악마가 권력을 잡고 있는 곳일 테다. 그러나 그녀가 택한 방법은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가는 것이었다. 프란스시코 마시아스 전 대통령이 과연 진짜 악마 같은 독재자였는지 그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그녀의 최종 목표가 될 것이었다.
    사실, 평양에서의 삶이 대단히 불행하지는 않았다. 김일성 주석은 마시아스 삼남매가 훌륭히 성장할 수 있도록 최상의 교육과 대우로 친구 프란시스코와의 우정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북한 최고의 엘리트 양성 기관인 만경대 교육학원의 여학생 과정은 순전히 모니카와 언니 마리벨을 위한 조치였다. 이들이 교육을 마치자 여학생 과정은 바로 사라졌다. 대학교육도 평양 최고의 대학에서 받았다. 오빠는 건축을, 언니는 의학을, 그리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모니카 마시아스는 의상을 공부했다. 대학교육을 마칠 때쯤 적도기니의 정치도 안정이 되어 언니와 오빠는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모니카의 생각은 달랐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인생을 공부하고 싶었다. 거기엔 그녀의 왕성한 호기심과 자유로운 감성을 받아주지 못했던 폐쇄적인 북한의 생활도 크게 작용했다.

    평양 생활 16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다!
    스페인과 뉴욕을 거쳐 한국으로,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진실을 찾기까지


    스페인은 언어에서 문화까지 적도기니의 식민 지배국이었기에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할 곳이었다. 식모에서 댄서, 그리고 르로이메를린이라는 대기업에서 일하기까지 스페인 생활은 안정적으로 관리를 받던 북한에서의 삶에 비하면 위험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스페인에서 그녀는 자본주의의 밑바닥부터 제대로 공부한 셈이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평양방문단과 함께 북한을 다녀온 이후 그녀는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악의 축'이라 단정하며 북한을 증오하는 미국인의 편견을 접하면서 미국의 실체를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 체류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남한 사람들과의 교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영민했던 북한 사람들을 떠오르게 하는 대한민국은 고향처럼 들러보아야 할 곳이 되었다. 그 후 모니카는 한국에서 2년간 체류하며 의류회사에서 일한다. 그녀에게 대한민국은 경제 수준과 정치 이념을 빼고 북한과 큰 차이가 없었다. 외모와 감수성, 전통과 입맛까지 그처럼 똑같을 수가 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극단적인 선입관이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북한 대신 모니카는 한국을 통해 북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어느덧 한국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마지막 종착지는 적도기니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원주민들과 계속해서 만남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며 그녀를 위로했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권위적인 폭군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스페인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였다. 과연 역사는 누구를 위한 기록인 것일까? 아마도 아버지가 스페인 정부에게는 골칫거리였음에 분명했다. 그녀에게 마지막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스페인의 안토니오 교수였다. 적도기니의 해방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와 프랑코 독재 정권에 대항하던 안토니오는 우정을 나누는 정치적 동지였다. 모니카 마시아스의 기나긴 여정은 안토니오 교수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확인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주어진 운명이란 없습니다. 삶을 사랑한다면 당당히 도전해야 합니다!
    삶을 향한 열정을 일깨우는 모니카 마시아스의 도전과 분투의 기록

    모니카 마시아스의 여정은 단순히 모국과 아버지의 진실을 찾는 방황의 기록이 아니다. 그녀는 가혹한 운명의 희생자가 되길 거부하고 먼 길을 돌아올지언정 당당히 자신을 둘러싼 역사와 사실들에 반응하며 소통하기를 원했다. 그녀에게 인생이란 용서하기 힘든 것들을 용서해가는 과정과도 같았다. 북한에서 살며 조선말만 쓰다 보니 오랜만에 북한에 들른 어머니와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입었던 일,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힘들게 용서했어야 했던 일, 그리고 북한을 비난하고 아버지를 저주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증오의 허물을 벗긴 실체를 목도하자고 힘들게 설득하던 일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화해하는 과정이었음을 그녀는 토로한다.
    모니카 마시아스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스페인에서, 미국에서 수많은 출판업자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소재로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세운 트라이베카 영화사에서도 계속해서 접촉을 시도했다. 심지어 한국 체류시절에도 소문을 들은 방송가에서 출연섭외가 쇄도했었다. 하지만 당시까지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끝나지 않은 여정, 빚을 다 갚지 못한 마음의 상태로는 세상의 증인처럼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안토니오 변호사와 조우하면서 아버지와 가족을 둘러싼 어두운 과거를 용서하고 운명의 희생자에서 주인공으로 거듭나리라 결심하면서 그녀의 생각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책을 출간하더라도 스페인이나 미국 같은 제3국이 아닌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대한민국에서 내고 싶었다. 조선말을 쓰는 이상한 흑인 여자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성장하고 생활한, 모국어가 한국어이며, 한반도를 사랑하는 친구 모니카 마시아스로서 말이다. 정치적 분쟁이 낳은 운명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낸 여성의 도전과 분투를 담은 이 책은 그 자체로 삶을 향한 열정을 일깨운다. 또한 경색된 남북 관계에 자그마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요즘, 얼어붙은 우리 마음에 던지는 불씨 또한 예사롭지 않은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 : 평양 시절

    부서진 기억
    평양의 어린 망명자
    무단이탈
    모국어, 기억의 배반
    사랑은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하는 것
    증오의 싹
    드디어 대학생이 되다
    우리도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너는 쭉 평양에서만 살았으니까
    베이징을 향해
    바깥 세계와의 첫 만남
    의심, 새로운 세계의 관문
    이별의 시작
    평양을 떠나며

    2부 : 운명의 여행자

    악마의 딸
    거짓과 진실 사이를 걸어야 하는 운명
    사라고사의 한인교회
    낮은 데서 시작하기
    평양에서 온 흑인 보모
    자본주의 세계로 한 걸음 더
    코리아라는 이름의 데커레이션
    우린 같은 세계의 사람인가요?
    평양,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아디오스 마드리드, 헬로우 뉴욕
    성조기여 영원하라 VS 북조선 애국가
    자유인의 조건
    세상에서 가장 긴 희곡
    서울을 꿈꾸다
    인천공항에서 만나 백두산
    서울, 일하는 사람들의 도시
    세상에서 가장 먼 두 도시
    또 하나의 고향
    여행의 끝

    에필로그

    본문중에서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평양에 놔둔 채 혼자 적도기니로 떠났다. 적도기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훗날 들은 얘기로는 그때 김일성 주석이 엄마에게 ‘거긴 지금 위험하니 평양에 머물 것’을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에겐 꼭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쿠바에서 공부하고 있던 큰오빠 에르네스토가 여름방학을 맞아 아무것도 모른 채 적도기니에 들어갔다가 쿠데타군에 붙잡힌 것이다. 엄마는 아직 어린 아이를 사지로 보내버린 피델 카스트로를 끝없이 원망하며 부리나케 적도기니로 떠나버렸다. 상황은 점점 다급하고 암울하게 흘러갔지만, 나는 우리 가족을 둘러싼 그 온갖 복잡하고 위험한 일들을 이해하기엔 아직 너무 어렸다. 단지 며칠만, 몇 주일만 꾹 참으면 다시 아빠와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벨과 파코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당시 쿠데타 조짐을 미리 눈치 챈 아버지가 우리를 ‘형제의 나라’ 북한으로 피신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좀더 큰 다음의 일이었다. 우리는 망명 가족이었던 것이다.
    (/ p.15)

    “아니잖아. 마리벨, 아니잖아! 엄마, 나 스페인 말 못해서 그런 거야. 정말이야!”
    나는 계속 조선말로 소리쳤다. 나는 억울하고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랐다. ‘모국어’를 뜻하는 영어 ‘mother tongue’는 내게 틀린 단어였다. 나는 엄마(mother)의 언어(tongue)를 전혀 몰랐고 엄마 역시 나의 언어를 몰랐다. 엄마와 딸이 마주보며 서로서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를 발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마리벨이 나를 달래며 말했다.
    “그래, 알아. 엄마가 잘 몰라서 그래. 네가 이해하렴.”
    하지만 이미 내 가슴엔 상처가 크게 남아 있었다.
    엄마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마리벨이나 파코의 통역 없이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엄마와 내가 단둘이 있을 때는 당연히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쿠데타의 충격 이후 실어증에 가까울 정도로 스페인어를 잊어먹게 되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 나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스페인어를 잘 구사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조선말 이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친엄마와 막내딸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 기막힌 상황으로 인해 결국 우리 사이엔 감정의 골이 생겨나고 말았다.
    (/ p.40)

    1989년 당시 평양의 젊은이들에게 임수경은 전혀 새로운 스타였다. 청바지에 면 티를 입은 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고 노래하는, 그야말로 전에 볼 수 없었던 새 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때 평양의 여대생들은 하나같이 임수경처럼 단발머리로 거리를 활보했다. 청바지도 입고 싶었지만 구하기가 힘들어 헤어스타일만이라도 따라한 것이다. 나 역시 틈만 나면 TV 앞에 앉아 임수경을 보고 또 봤다. 그녀가 개성에서 단식투쟁을 할 때는 나도 달려가서 동참하고 싶었다.
    ‘나도 임수경처럼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북조선의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평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자연스러움’이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그리고 ‘솔직하고 거침없고 자연스럽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건지도 그때 알았다. 모두가 임수경 패션을 따라하기 바쁠 때 선화는 내게 엉뚱한 말을 했다.
    “모니카, 우리도 저 친구처럼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 p.74)

    그 무렵 마리벨 언니는 중국에서의 의학 실습까지 모두 마친 뒤 마드리드에서 가정을 이뤄 살고 있었다. 문득 언니 생각이 났다. 오래전 평양에서 대통령을 처음 만나던 날, 언니는 그의 귀에 대고 ‘우리 아빠 왜 죽였어?’라고 말했었다. 그가 우리 가족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고, 이후 20여 년이 넘도록 나는 그를 증오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감정들을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었다. 물론 그를 향해 마음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 한 부분을 바위처럼 차지하고 있던 증오의 감정만 덜어내도 나는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만남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공부가 끝나면 적도기니로 돌아와라.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주기 바란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을 위한 대답이 아니었다.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를 위한 대답이었다.
    방에서 나올 때 대통령이 나에게 커다란 쇼핑백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대통령과 리노를 번갈아봤다. 리노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얼른 받으라는 시늉을 했다.
    ‘돈이구나.’
    (/ p.224)

    평양경공대 시절, 학우들은 자유가 없으면서도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유가 있으면서도 자유가 없었다. 내 곁에는 마리벨과 파코가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가족’이라는 실체는 없었다. 해마다 추석이나 구정 때면 친구들은 온 가족이 다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곤 했다.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그저 구경만 해야 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김일성 주석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사회는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란다. 가정이 잘 되면 사회도 잘 되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저는 가정이 없는데요’라고 대꾸하고 싶은 걸 꾹꾹 참았다. 그건 마리벨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마리벨의 사진첩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설날에 친구 집에서 그 집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뒷장에는 언니의 글씨로 ‘우리는 한 가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언니가 써놓은 글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아니라 시골의 빵 굽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럼 아무도 우리 가족을 찢어놓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나는 좋은 교육을 받았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런 기회와 ‘시골 빵집의 가난한 생활’을 맞바꿀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바꿀 것이다. 적어도 시골 빵집에서는 온가족이 모여 살았을 테니까.
    (/ p.264)

    저자소개

    모니카 마시아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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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968년 적도기니가 아프리카 최초로 스페인 식민통치를 벗어나면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버지는 10여 년간 강경한 탈식민주의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1979년 스페인 정부와 우호적이었던 사촌이자 국방장관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의 쿠데타로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뒤, 모니카 마시아스와 그녀의 형제들은 아버지와 친분이 돈독하던 김일성 주석의 도움을 받아 북한으로 피신했다. 모니카 마시아스는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평양이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 양부 김일성 주석의 보살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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