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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가!
인간과 세상의 본성에 대한 통렬한 물음

폭력과 불륜, 음모로 얼룩진 세상......
비열한 도시에서는 삶이 곧 전쟁이다!

중국 최고의 '이야기꾼' 쑤퉁의 대표 장편소설

[쌀]은 세계적인 중국 작가, 쑤퉁의 가장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쑤퉁은 장이모우(張藝謨)의 영화 [홍등]의 원작자이자, [이혼 지침서](아고라 펴냄)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쑤퉁은 1983년에 등단한 이래, 같은 해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위화(余華, [허삼관 매혈기]의 저자)와 함께 중국 문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중국 문단의 선봉장', '중국 제3세대 문학의 대표자' 등으로 일컬어지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의 9개국에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쑤퉁에게 '세계적인 작가'라는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쌀]이다. 쑤퉁에게 처음으로 세계적인 관심이 쏠린 것은 영화 [홍등]의 성공 때문이었지만, [홍등]의 원작인 [처첩성군]([이혼 지침서]에 수록)은 중편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후 [쌀]이 미국에 번역되어 쑤퉁 문학의 깊이와 매력을 알렸고, 또 다른 대표작인 [나, 제왕의 생애]와 함께 연이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지에 출간되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쌀]은 번역, 출간된 후 10년이 넘도록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성악설(性惡說)' 논쟁, 영화 상영금지 등 논란을 일으킨 화제작

이 책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중국의 중소 도시를 배경으로, '대홍기 쌀집' 사람들 3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증오하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격변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유장하게 펼쳐진다.
이 소설은 홍수가 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주인공 우룽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기만을 바라며 쌀집에 일꾼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쌀집과 인연을 맺은 우룽은 불쌍한 떠돌이에서 배신을 꿈꾸는 음모자로, 그리고 악의 화신으로 변모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악하다'는 관점이 깔려 있는 이 소설은 중국에서 [대홍기 쌀집(大?米店)]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는데, 이 영화는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냈고 직접적인 성적 묘사가 많다는 이유로 7년간이나 상영을 금지당해야 했다. 그리고 상영된 후에는 '독특한 소재로 중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 '중국 에로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악인이며, 삶은 추악하기 이를 데 없고, 세상은 지옥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은 작가가 인간과 세상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답은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대홍기 쌀집이 있는 와장가는 문명화된 도시를 대표하고, 쌀은 물질, 즉 돈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우룽의 고향인 농촌이 인간성이 살아있는 이상향으로 존재한다. "밥만 먹여달라. 잠은 서서 자도 좋다."며 일자리를 구하던 순박한 우룽이 삶의 속임수를 배우고, 마침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악한이 되어가는 과정은 물질 문명의 인간성 파괴를 의미한다. 작가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비열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악하거나 약하거나, '돈'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슬픈 운명

우룽뿐 아니라,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모피 코트와 순결을 바꾸어버린 쌀집의 큰딸, 집안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젊음을 버려야 했던 작은딸, 돈만 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깡패 조직의 똘마니, 언제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우룽의 아들, 유산을 받기 위해 시아버지가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우룽의 며느리 등은 모두 본능에 충실하며, '잘살고 싶다'는 단순한 욕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기에, 우리는 악한 존재인 그들을 욕할 수 없는 것이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도 보편적인 상황,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는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쑤퉁 문학의 특성은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났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바라는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우룽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갖게 되지만, 발가락부터 시작하여 신체기관들을 하나하나 잃음으로써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은 몸 여기저기가 잘리고, 뒤틀리고, 망가진 우룽이 "사람 대접을 받고 싶다"며 멀쩡한 치아들을 모두 빼고 금으로 만든 틀니를 해 넣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정점에 다다른다.
이 소설은 '대립'과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탄탄한 서사 구조와 생동감 있는 인물,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소설 읽기의 진정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며, 독자들로 하여금 삶에 대해 회의하고 반성하게 함으로써 소설의 유용성을 입증할 것이다.

줄거리


석탄 운송 열차에 몸을 싣고 도시로 온 우룽. 홍수가 난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온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사흘간 굶주렸지만 건강한 육체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도시에서 제일 처음 맞닥뜨린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 객사해 있는 시체였다. 놀란 그는 시체를 피해 달아나다가, 부두 조직의 깡패들을 만나 곤욕을 치른다. 그렇게 그는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도시의 어두움을 경험하게 된다.
다음 날, 우룽은 쌀을 운반하는 수레들을 보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그 수레들을 따라 와장가에 있는 대홍기 쌀집으로 간다. 그는 쌀 냄새가 좋아 며칠 동안 쌀집 앞에서 노숙을 하던 중, "밥만 먹여달라"고 애원한 끝에 쌀집의 일꾼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홍기 쌀집의 주인인 펑 사장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그 중 열아홉 살 난 큰딸 쯔윈은 그 지역의 거물인 뤼 대감의 정부였다. 예쁜 옷을 얻어 입고, 돈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세계를 보는 것이 좋아 열다섯 살 때부터 뤼 대감의 노리개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둘째 딸 치윈은 두 살 터울인 언니를 경멸하며, 쌀집의 쌀장사를 도맡고 있었다.
처음에 쌀집이 천국 같았던 우룽은 점차 증오와 복수를 배우게 되고, 자신을 모욕했던 깡패 중 한 명인 아바오가 쯔윈과 간통을 하고 있는 것을 안 후 그 사실을 뤼 대감에게 고자질해 그를 죽게 만든다. 아바오가 죽는 것과 거의 동시에 쯔윈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뱃속의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다. 뤼 대감은 쯔윈을 매몰차게 버리고, 펑 사장은 할 수 없이 쯔윈을 우룽과 결혼시킨다. 그러나 천한 일꾼을 사위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펑 사장은 우룽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그로 인해 우룽은 발가락 하나를 잃는다. 그때부터 우룽은 왼쪽 발가락, 오른쪽 발가락, 왼쪽 눈 등을 하나씩 잃기 시작하는데....... 펑 사장이 죽은 후 쯔윈은 아들을 낳은 덕분에 뤼 대감의 집에 가서 살게 되고, 우룽은 이대로 나갈 수 없다며 억지로 치윈을 아내로 삼는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이제 우룽과 치윈 사이에는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다. 그런데 죄악이 대물림되는 것인지, 우룽의 큰아들 미셩이 여동생 샤오완을 쌀더미에 파묻어 질식시켜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우룽은 미셩의 다리를 부러뜨려버리고, 미셩은 그후 절름발이가 된다. 그리고 뤼 대감의 집에서 원인 모를 폭발 사고가 일어나 쯔윈은 한 많은 삶을 마감한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장년이 된 우룽은 이 지역의 거물이자 부두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다. 그는 살인, 밀수 등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잔인함'이라는 무기를 휘두르면서 점점 악마가 되어간다. 그러나 멀쩡한 치아들을 모두 빼고 금으로 만든 틀니를 해 넣어도, 기녀들과의 오입질을 일삼으며 아무리 그녀들의 성기에 쌀을 밀어넣어도, 모든 복수를 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다 죽여버려도, 그는 여전히 홍수 속에서 떠도는 꿈을 꾼다. 그리고 죄악의 씨를 물려받은 그의 자식들과 며느리들 역시 그 못지않은 악랄함과 추태를 보여주는데.......
우룽은 석탄 운송 열차에 쌀을 가득 실은 채 금의환향할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더러운 성병에 걸려 온몸이 문드러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어 나타난 쯔윈의 아들, 빠오위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남아 있던 오른쪽 눈마저 멀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우룽은 누렇게 쌀이 익은 고향의 논밭을 떠다니는 환상 속에서 눈을 감고, 작은아들 차이셩은 그에게 마지막 남은 금틀니를 빼낸다.

옮긴이 후기 중에서


[쌀]은 생존에 관한 소설이다. 먹기 위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고 운명을 내던져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다. 쑤퉁은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로 인간의 본능과 뼛속 깊은 절망감을 보여준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이, 또는 우리가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정말 남다르지 않을까.

추천사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소설.
쑤퉁은 상상력이 매우 뛰어나며,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야한 통속극과 참혹한 비극 사이를 오가는 작품. 이 열정적인 소설에서 쑤퉁은 사람들 사이의 배신과 음모, 근친상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의 배경인 쌀집은 문명을 상징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성적 묘사는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매혹적인 멜로 드라마. 이 소설은 매 장마다 놀랍고 환상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이며, 마치 오페라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쑤퉁의 작품을 읽다 보면 발자크와 에밀 졸라가 살아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 커커스 리뷰스Kirkus Reviews

“대단하다.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쑤퉁은 생생한 인물 묘사를 통해 우리가 부정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

본문중에서

쯔윈이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다 그에게 말했다. “더 먹어, 더 먹어. 이런 인색한 사람들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실컷 먹으라고. 배가 부르기도 전에 밥을 못 먹게 하는 법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그러자 치윈이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저놈이 얼마나 먹어대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정말이지 무슨 소처럼 먹어댄다니까. 언니가 밥 한 솥을 가져다줘도 금세 다 먹어치울걸!”
우룽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변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배부릅니다! 배부르다고요!”
그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세 그릇의 밥이 안겨준 행복은 울분 때문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는 천천히 이를 쑤시며 마당을 훑어보았다. 어느새 햇빛이 사라지고 하늘은 우중충한 색을 띠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비 오기 전의 습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빨랫줄에 걸려 있는 쌀집 자매의 속옷과 양말을 보며, 바람에 실려 곳간에서 솔솔 풍겨나오는 쌀 향기에 또다시 매혹되었다. 하얀 눈처럼 수북이 쌓인 쌀, 아리땁고 농염한 여인, 철도와 부두, 도시와 공장, 사람과 재물……. 이것들은 모두 펑양수 남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 우룽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천국의 모습과 아주 가까웠다. (/ pp.32~33)

“일할 곳을 옮기겠다고? 그런 수는 또 누가 가르쳐준 거지?”
“저쪽에서는 숙식도 해결해주고 매달 오 원씩 주겠대요.”
우룽이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전 바보가 아닙니다. 그쪽으로 가고 싶어요.”
그를 빤히 쳐다보던 펑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
“인정을 베풀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나 보군. 하긴 병든 개를 보살펴줘봤자 다 나으면 주인을 무는 법이지. 그럼 얼마를 원하는지 말해봐.”
“오 원을 주십시오. 가게에서 제가 쓰는 힘이 오 원어치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 가져가.”
펑 사장은 동전 한 닢을 바닥에다 던졌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모두 다섯 차례 동전을 한 닢씩 바닥에 던졌다. 그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조롱의 빛도 띠고 있었다.
“가져가. 이제 월급도 달라고 할 줄 아는 걸 보니 사람이 되었나 보군 그래.”
(/ pp.57~58)

우룽은 쌀집 부녀들이 알랑거리는 것을 보며 역겨움을 느꼈다. 일을 마쳐야만 했기에 그는 연거푸 쌀자루를 곳간으로 날랐다. 펑 사장이 쌀을 한 움큼 쥐고 살펴보더니 말했다.
“쌀의 품질이 좋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지금은 팔래도 팔 쌀이 하나도 없거든.”
우룽은 이 쌀 때문에 한 사람이 죽은 사실을 펑 사장이 알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분명 예상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와장가는 돈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눈을 벌겋게 뒤집어까는 흉악한 거리니까. 이 거리의 사람들은 독사처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독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람이 죽어 넘어진다 해도 자기 일이 아니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룽은 쌀자루를 어깨에 메고 마당으로 걸어가며 솔직히 자기도 남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pp.71~72)

“언니는 결혼한 몸이 아니잖아요. 처녀가 임신한 걸 사람들이 알면 언니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요? 나리께서 언니를 위해, 우리 집안을 위해 뭔가 배려를 좀 해주세요.”
뤼 대감이 갑자기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소파에 앉아 있는 쯔윈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저 아이에게 뱃속에 든 씨가 누구 씨인지 물어보거라. 내 씨라면 내 뭐든지 해주겠지만 내 씨가 아니라면 나도 해줄 게 없지 않겠느냐?”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 앉아 있던 쯔윈이 갑자기 허리를 구부리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쯔윈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그녀가 창백한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입가에는 위에서 올라온 점액이 묻어 있었다.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다가 뤼 대감을 살짝 올려다본 후 얼른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한동안 자신의 발만 멍하니 쳐다보다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누구 아이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 pp.92~93)

펑 사장이 우룽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충혈된 눈동자 속에서 분노와 절망의 빛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는 푸른 심줄이 내비치는 손을 뻗어 천천히 우룽의 옷깃을 거머쥐었다. 우룽은 펑 사장이 자신을 때리려는 줄 알았지만, 펑 사장은 힘없이 우룽의 너덜너덜한 윗도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룽은 그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들었다.
“우룽, 너 쯔윈과 결혼할래?”
펑 사장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내 딸을 너에게 주마.”
우룽은 나이보다 빨리 늙어버린 펑 사장의 얼굴을 넋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딸은 네게 주겠지만 쌀이라면 한 톨도 네놈에게 주지 않을 거다. 난 절대로 이 쌀들을 너 같은 잡것에게 주지 않을 거야. 네놈이 처음부터 내 쌀을 노리고 이 집에 들어왔다는 걸 난 다 알고 있어.” (/ pp.116~117)

“너희 집에서 뒈질 건 뒈지고, 도망갈 년은 도망가서 이제 네년만 남았지. 이제 네년이 네 식구들이 나한테 진 빚을 갚아야 할 차례야. 언니 대신 네가 내 마누라 노릇을 해야 하지 않겠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치윈이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악을 썼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통제력을 잃은 그녀가 낮은 신음 소리를 토해내며 컵으로 우룽의 머리를 한 번, 또 한 번 내리쳤다. 우룽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피가 솟구쳤다. 우룽은 머리를 감싸쥐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가 창틀에 몸을 기댄 후 그녀를 노려보았다. 왼쪽 눈은 혼탁한 잿빛이었지만 그의 오른쪽 눈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또 내게 상처를 만들어주셨군. 너희 집 세 년놈 모두가 결국 하나씩 내게 상처를 만들었어.”
우룽이 손바닥에 묻은 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갑자기 손을 확 뻗어 치윈의 얼굴에 피를 묻히며 외쳤다.
“네년은 이제 아무데도 못 가! 이제 정말 나한테 시집을 와야겠어!”
(/ pp.179~180)

치윈이 관을 쾅쾅 두들기며 울부짖었다.
“그놈을 당장 잡아와요. 그놈을 막내랑 같이 묻게 당장 데려와요. 둘째 녀석도 필요 없으니 다 같이 묻어버려요. 그런 필요도 없는 놈들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싹 쓸어서 막내랑 같이 묻어버리자구요.”
우룽이 입에 물고 있던 못을 손으로 집었다. 그가 차가운 눈으로 치윈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왜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너같이 독한 년은 처음이야. 내가 뚜껑 잘 박아줄 테니 아예 네년이 관 속에 들어가지 그래.”
그후 우룽은 부두로 가서 빈 기름통 안에 있는 미셩을 붙잡았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미셩의 얼굴은 기름 범벅이 되어 까마귀처럼 새까맣게 더럽혀져 있었다. 잠결에 놀라 일어난 아들을 단단히 붙들고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우룽이 중얼거렸다.
“어쩜 이렇게 날 닮았느냐? 하지만 너처럼 어린 것이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네가 네 동생을 질식시켜 죽였다.” (/ pp.212~213)

의사는 망치와 정을 들고 우룽의 이를 하나하나 뺐다. 우룽은 정말로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우룽의 입 안 가득 피가 차올랐다. 극도의 통증이 전신을 휘감는 동안 그의 몸이 가볍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물 위를 떠도는 동안 물 속에 잠긴 고향 마을이 나타났다. 온통 물난리가 난 가운데 물 속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가엾은 벼와 면화, 아무것도 수확할 게 없는 가엾은 사람들이 절규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둠 속에서 다 떨어진 보따리를 하나 들고 더러운 맨발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로등 아래에 죽어 있던 낯선 남자의 시체도 보았다. 그리고 쌀자루에 들어가 쌀을 훔쳐 먹다가 목이 메어 죽은 소년도 보았다. 그의 눈에서 더러운 눈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아프시죠? 제가 아플 거라고 말했잖아요.”
의사가 잠시 손을 멈추고 불안하게 그 눈물을 쳐다보았다. 우룽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눈을 감고 입 안에 든 피를 그대로 삼킨 후, 어렵사리 이해하기 힘든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너…… 무 가여워!”
며칠 후 우룽은 치과의 거울 앞에서 금으로 만든 틀니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가 부드럽게 입속에 있는 틀니를 어루만지며 의사에게 말했다.
“아주 잘했어. 아주 맘에 들어. 난 예전에 고향에서 논일을 할 때부터 금니를 해넣고 싶었어.”
(/ pp.225~226)

그가 방 한가운데에 서서 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참으로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몸이 건장하고 아랫배에도 아직까지는 탄력이 있었지만 아랫도리에는 붉은색 고약이 단단하게 붙어 있었다. 그의 모습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였지만 다른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는 완전한 육체를 갖고 있지 못했다. 반짝이는 눈동자를 잃었고, 아무 죄 없는 발가락도 잃었다. 그리고 이제 더러운 성병이 일으키는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몰랐다. 암울하고 상처 입은 정신으로 그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잘못을 집어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은 늘 도시와 도시 생활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육체는 언제나 도시의 삶에 의존하며 그것의 유혹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여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자신의 꿈 때문에 망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279)

이게 바로 도시의 모습이지……. 우룽은 이것이 바로 죄악이 꿈틀거리고, 온갖 악행들이 일어나는 개같은 도시라고 생각했다. 도시는 거대한 올가미가 되어 누구든 거기 걸리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쌀 한 줌을 얻기 위해, 동전 한 닢을 벌기 위해, 욕정을 한 번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철도와 강변 부두를 통해 이 죄악의 도시로 몰려들고 있었다. 저 불쌍한 인간들은 천국을 찾기 위해 헤매면서 천국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 pp.307~308)

“저 목합 안에는 내 평생 처음으로 번 돈이 들어 있어. 당신 아버지가 내게 준 오 원 말이야. 쌀집에서 한 달 동안 죽어라고 일하고 겨우 받은 그 오 원 말이야.”
“당신 정말…….”
치윈은 뭔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녀는 한순간 그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와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이십여 년의 생활 속에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차례였지만 이번처럼 강렬하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적은 없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룽에게서 나약하고 불쌍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사람은 사는 동안 모두가 외롭고 고독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모두 천장이나 담장 구멍, 바닥 밑에 비밀스런 목합을 하나씩 숨기고 살아간다. 그것들 중에는 태양 아래 밝은 곳에 드러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둡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저 천장 속에 숨겨진 목합이 그랬다. 치윈은 우룽의 영혼이 그 목합 안에서 광폭하게 요동치는 동시에 나지막이 통곡하고 있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 p.326)

수박 장수는 병사들이 서로 마주보고 씩 웃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입에서 술냄새가 진동했다. 그들이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웃는 것을 보고 위험을 느낀 수박 장수는 반쪽짜리 수박을 내던지고 도망을 치려 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번쩍이는 총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일본 병사 하나가 한걸음에 달려가 예리한 총검으로 수박 장수의 벌거벗은 등을 쑤셨다.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비명 소리와 속에서 그 일본 병사가 수박 장수의 몸에 찔러넣었던 피로 얼룩진 총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동료 병사를 향해 엄지를 세워 흔들며 소리 높여 자신의 첫 번째 승리를 자축했다.
“한 사람이야, 한 사람! 내가 먼저 죽였어!” (/ p.336)

도시는 치장이 잘 된 거대한 공동묘지였다. 밤이 되어 세상이 조용해지면 우룽은 자주 그 생각을 했다. 도시는 원래 죽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소란스럽고 붐비는 거리에 몰려드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은 햇볕에 말라 사라지는 작은 물방울처럼 조용히 도시에서 사라졌다. 살인, 질병, 폭력, 울분, 일본 병사의 총칼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도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관 속과도 같았다. 도시가 관 뚜껑을 열면 공장에서는 검은색 연기가 뿜어져나오고, 여인들의 분 냄새와 아랫도리의 은밀한 숨결이 진동을 하며, 눈앞에는 금은보화와 산해진미가 가득 펼쳐진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억센 손을 내밀어, 길을 따라 배회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끝이 보이지 않는 차가운 품속으로 끌어들였다.
(/ p.341)

자정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우룽에 대한 고문이 계속되었다. 우룽의 몸에 난 포진들이 터지면서 샘물처럼 쏟아진 피고름이 예전의 누군가가 흘린 피와 함께 섞여 지하실 바닥을 적셨다.
빠오위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우룽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성한 곳을 찾다가, 드디어 우룽의 눈을 발견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시력을 잃은 우룽의 왼쪽 눈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쪽 눈은 누가 이렇게 만든 거지?”
“네 외할아버지가 그랬다. 그분도 내 원수 가운데 하나였지.”
“보아하니 할아버지께서는 원하는 만큼을 얻지는 못하신 것 같군.”
빠오위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철사를 주워 들고 외쳤다.
“할아버지가 다 못 하신 일을 내가 끝내주지.”
빠오위는 가늘고 뾰족한 철사로 우룽의 오른쪽 눈을 한 번, 두 번, 세 번 정확하게 쑤셨다. 그 순간 빠오위는 자신이 그렇게 고대하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음 소리가 아니라 처연하고 길게 이어지는 비명 소리였다. (/ pp.363~364)

우룽은 금으로 만든 틀니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룽이 맨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기차가 철로를 밟고 힘차게 달리는 소리였다. 그는 자신이 기차 안에 누워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기찻길을 따라 도망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광야에서 들리던 빗소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마도 붉은 태양이 가을비를 몰아냈으리라. 우룽은 가슴을 열고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고아였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는 자신이 한 차례의 홍수를 겪고 나서 고향을 떠난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황금빛으로 도도하게 출렁이던 고향의 논밭을 기억했다. 그는 일렁이는 황금빛 물결 속에서 마치 한 알의 벼이삭처럼, 한 송이 면화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 pp.378~37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3~
출생지 장쑤 성
출간도서 18종
판매수 3,605권

1963년 중국 장쑤성에서 태어나 베이징 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했다. 1983년 대학 재학중 단편 「여덟번째 동상」으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상과 전위, 상상과 현실, 서정과 욕망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고유의 색채를 고스란히 품은 그의 작품들은 독자와 평단 모두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88년에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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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수 0권

고려대학교 중문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시통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중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남서울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금잔화][비련초][은잔화][포청천][로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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