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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빈집 - 2012년 제12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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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인숙
  • 출판사 : 문예중앙
  • 발행 : 2012년 10월 25일
  • 쪽수 : 40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2780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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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제12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펴내며

황순원문학상이 올해로 12회를 맞이했다. 우리 현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황순원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황순원문학상은, 지난 1년간 창작, 발표된 모든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오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이번 황순원문학상은 2011년 7월부터 2012년 6월까지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심사하였으며, 예심은 문학평론가 강유정, 백지은, 오창은, 이수형, 허윤진이 맡았고, 본심은 문학평론가 최원식, 신수정, 소설가 이승우, 구효서, 윤성희가 맡았다. 본심에서의 치열한 논의 끝에 이번 제12회 수상작은 김인숙의 [빈집]으로 결정되었다.
[2012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수상작 [빈집]을 비롯해 수상작가 김인숙이 직접 고른 자선작 [칼에 찔린 자국], [산너머 남촌에는],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이 실려 있다. 또 수상작가가 직접 쓴 연보와 문학평론가 서희원의 수상작가 인터뷰 [삶이, 글이 되어 길 위에 찍힌다] 등을 통해 수상작가 김인숙의 문학세계를 넓고 깊게 살펴볼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최종후보에 오른 8편의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여, 지난 한 해 동안 한국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한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수상자이자 올해 본심 심사를 맡은 윤성희 소설가는 “모든 작품에서 그 작가만의 지문이 보였고, 내 동료들이 모두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반가웠다.”고 심사 소감을 전했다. 이번 [2012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은, 한국문학의 꾸준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12회 수상작, 김인숙 [빈집]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김인숙의 [빈집]은, 화자인 아내와 27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의 비밀 장소인 ‘빈집’을 여러 겹의 이미지로 덧씌워 마치 스릴러 소설을 읽듯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작품이다. 아내의 시선에 비친 남편, 그리고 그의 행동 속에서 독자들만이 포착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미지,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그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을 통해 한 인간이 지닌 비밀과 진실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과 물음표를 동시에 제기한다.

남편은, 그녀가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 때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좀생이’ 과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술도 담배도 안하고 화투판에 끼어들 줄도 모르고 딴 데 한눈을 팔 줄도 몰랐다. 돈을 크게 벌 줄도, 크게 쓸 줄도 몰랐다. 평생 동안 그 어떤 모임에서도 그녀는 남편이 가장 먼저 계산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구두쇠여서인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언제나 무엇엔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생일이며 아이들의 생일을 그토록 잘 챙기면서도 당당히 눈 맞추고 선물을 내밀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골랐을까 봐, 혹시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선물을 고를 때 최종 순간에 만 원 더 비싼 것을 선택하지 않았던 걸 들킬까 봐, 선물을 내미는 그의 손이 늘 부끄러웠다.
(수상작 '빈집' 중에서/ p.39)

비밀이 사랑을 키웠다. 그가 세상의 한구석에서 세상 전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나 아내는 모르는 것이다. 그는 세상 한가운데에 있었고, 또 무덤 한가운데에 있었다. 죽은 자의 목소리가 가끔 들렸다. 그것은 평생을 혼자 살다가 가난하게 늙어 죽은 고모부의 목소리였다.
뭐, 이만하면 잘 죽은 거 아니냐.
그 와중에도 열쇠들은 분주히 서로의 몸을 부대껴가며 교미를 하고 번식을 하고 있었다. 세계가 세계를 무한 확장했다. 그가 영천 집에 머물 때마다 보름달이 환했다.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고독을 가진 한 남자의 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수상작 '빈집'/ p.54)

심사를 맡은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남편을 경멸하면서 사랑한다는 아내의 자각이야말로 그 증거일 터인데, 남편의 ‘빈집’은 소통 불가능성이라기보다는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자신만의 비범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인간적 진실의 상징 또는 비지배의 자유에 바쳐진 오마주”일 것이라고 심사평을 밝혔다. 이승우 소설가는 “구질구질하고 불안전한 현실의 삶을 견디고 유지하기 위해 환상이나 허구, 혹은 자기만의 비밀이 필요하다는 소설의 전언이 스산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고, 구효서 소설가는 “남편의 정체를 전혀 모른 채 자신의 교양만을 과신하며 사랑 운운하는 아내를 보면서,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살며 그것만이 전부라 믿는 나와 우리를 함께 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27년을 살아온 부부의 회고를 통해 각자의 삶에 내재해 있는 ‘빈집’에 대한 사유를 풍성하게 부풀리고 있는 역작”, 윤성희 소설가는 “이 소설은 두 번째로 읽을 때 더 재미있었는데, 단순히 아내의 목소리를 따라가던 첫 번째 독서에서 벗어나 이제는 독자가 아내를 마음껏 비웃으면서 아내의 이야기를 듣게 되기 때문.”이라고 심사평을 남겼다.

꿈과 현실, 과거와 미래가 겹겹의 지도를 이루는 다양한 세계,
지금 우리의 얼굴을 빼닮은 인간형을 다각도로 다룬 흥미로운 작품들

김경욱 [염소의 주사위]
[염소의 주사위]는 복수와 용서라는 오래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복수나 용서는 매우 사적인 체험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때로 그 체험이 시대적 사건과 중첩될 때 복수는 사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고 용서 역시 개인적 관대함을 넘어선다. [염소의 주사위]에 남아 있는 과거의 상처도 그렇다. 그것은 “빨갱이”라는 단어에 대한 우리의 집단 트라우마와도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소설 속 염소는 짝수면 빨갱이라며 주사위를 던진다. 염소에게 목숨은 사소한 놀이가 되고 동생은 주사위를 삼켜버림으로써 놀이를 비꼰다. 하지만 이 고급한 농담은 동생의 죽음을 재촉하고 만다. 애초에 염소는, 염소들에겐 유머 감각 따위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동생의 유머가 죽음으로 귀결되자 아버지는 법으로 정의를 세우고자 한다. 하지만 염소들에겐 법이 오히려 놀이이며 유희이다. 자의적 유희의 세계를 불변의 문자적 진리로 대항하려던 아버지는 결국 화병으로 세상을 등진다.
한마디로 그 역사는 어떤 규칙도, 농담도 없는 누군가의 자의적 판단이 규칙으로 변용되는 시대이다. 개인이 규칙이 되는 세계는 곧 광기의 공간이다. 한마디로 그 시절은 미친 시대였던 셈이다. [염소의 주사위]는 하지만 그 광기에 맞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절치부심의 시간만 보낸 한 사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결
국, 광기를 처단하지 못한다.
커트 코베인이나 장국영과 같은 문화적 아이콘을 통해 세대적 차별성을 그려내던 김경욱에 익숙했던 독자라면 [염소의 주사위]는 사뭇 낯선 세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염소들의 광기에 침묵하지 않고 발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의 몫일 테다. 거대한 사기극과 거대한 사극 가운데를 바라보는 시선, 그 작가적 시선이 [염소의 주사위]에 있다.
- 강유정(문학평론가)

김숨 [옥천 가는 날]

부모 세대의 궁핍하고 신산한 삶, 흡사 죽음을 통과하듯 정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노인의 육신, 불가지한 애착의 근원이자 비정하게 견뎌내야 하는 가족,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음에도 언제까지나 그곳에 이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고향인지 이방인지 알 수 없는 친숙한 이물감 등등, [옥천 가는 날]에는 김숨 소설이 능숙하게 현현시키는 이런 요소들이 골고루 맞춤하게 드러나 있다. 더할 수 없이 일상적인 장면이 문득 오싹해지는 김숨 식 부조리극의 이번 테마는 “자궁으로의 회귀”쯤. 엄마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옥천으로 가는 길, 사방이 막힌 차 안에서 쉼 없이 오가는 두 자매의 대화와 말 없는 엄마의 육신이 한데 섞이면서 극의 밀도는 점점 더해간다. 멈춘 채로 움직이고 이동하지만 정지해 있는 이 좁은 무대에서 문득 삶 속의 죽음, 죽음 옆의 삶이 상연 중임을 알게 될 때, 이승의 지명(옥천)과 저승의 별명(황천)이 겹쳐 귀향길과 황천길이 한 길이 되고, 제 새끼를 삼키는 어미 금붕어의 배 속은 자궁이자 무덤이 된다. 그간 김숨이 성공적으로 불러냈던 ‘기이한 감흥’의 목록들에 한 편 더 추가다.
- 백지은(문학평론가)

김애란 [하루의 축]

[하루의 축]은 인천국제공항 화장실이라는 예외적 공간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준 문제작이다. 소설 속 주인공 기옥 씨는 용역업체에 고용된 청소부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아들을 힘들게 키워냈지만, 그 아들마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추석 명절 전날이라는 하루의 시간 동안 기옥 씨는 자신의 신산(辛酸)한 삶의 곡절을 인상적으로 펼쳐 보인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인천국제공항터미널의 화장실 풍경을 문제적 공간으로 형상화해냈다는 데 있다. [하루의 축]에는 인천국제공항의 화려함과 도시주택가의 남루함이 맞서고 있고, 세련된 공항의 내부 풍경과 지저분한 화장실의 내부사정이 병렬적으로 교차하며, 추석 연휴의 활기와 비정규직 파견노동의 노곤함이 공존한다. 휘황찬란한 빛의 이면에는 항상 더 짙은 그늘이 존재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공항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화장실이라는 누추한 장소로 역전시킬 줄 아는 소설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 오창은(문학평론가)

박형서 [끄라비]

[끄라비]는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끄라비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맹그로브가 우거지고, 우기와 건기로 계절이 나뉘는 곳, 이국종 고양이와 낯선 음식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끄라비이다. 남자는 이 낯선 곳을 영혼의 성소처럼 간직한다. 너무나 안락한 곳이기에 그는 그곳을 사랑하고, 한국이라는 일상의 정반대편에 놓인 원형적 공간으로 여긴다.
[끄라비]의 이야기는 인터미션이 있는 공연처럼 1부와 2부가 나뉜다. 전반부가 영혼의 귀소이자 원형적 추억의 공간인 따뜻한 끄라비라면 후반부의 끄라비는 질투하고 파괴하는 무자비한 끄라비로 그려진다. 박형서는 그것을 일컬어 사랑의 속성이라 말한다. 사랑은 따듯한 배려로 시작되지만 독점의 욕망으로 마무리된다. “끄라비” 역시 그렇다. 끄라비는 그에 대한 환대를 그의 소유로 마무리한다.
공간으로 환유된 이 지독한 사랑 이야기는 매혹적이며 이채롭다. 독특한 서사의 방식을 한국문학사에 제시해온 박형서답다. [새벽의 나나]가 그가 사랑했던 남국이라면 [끄라비]는 마침내 그를 집어삼킨 남국이기도 하다. 이국적 풍광을 담아낸 서정적 문체는 끄라비의 비처럼 독자들의 상상을 적신다. 독자들마저 끄라비를 사랑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작가의 재주이기도 하다.
- 강유정(문학평론가)

백가흠 [더 송]

백가흠의 [더 송]에 등장하는 주인공 박 교수는 집에서는 나이 들어 더 왕성해지는 바람기 때문에 이혼 소송 중이고, 학교에서는 성추행 사건으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명백하게 자신의 탓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개전의 정도 보이지 않으면서 매사에 분노와 신경질과 짜증으로 일관하던 박 교수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이 모든 일들이 대학 1학년 때의 어떤 사건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그 사건에 관한 회상과 대학 은사의 장례식 장면이 겹치는 서술은 박 교수를 단순히 극도로 이기적인 인간 망종처럼 묘사하기도 하고 혹은 남들로부터 욕을 먹기 위해 일부러 못된 짓을 골라 하는 매저키스트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어느 쪽인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더 송]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박 교수의 분노와 신경질과 짜증 그 자체이다. 그는 이런 감정과 충동을 전혀 조절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증상이 비단 박 교수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의사들은 이를 두고 무슨 조절장애증후군이니 하는 말을 만들어낸 모양인데,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다고 해서 문제 자체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피와 정액으로 칠갑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엽기적 사건을 포착하던 작가의 시선이 이제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곳 역시, 우리 자신도 외면하고 싶은 아수라장일 것이다.
- 이수형(문학평론가)

조현 [은하수를 건너―클라투행성통신1]

조현의 [은하수를 건너―클라투행성통신1]은 잘 반죽되어 버무려진 꿈 이야기이다. 이 소설 속 화자인 ‘나’는 클라투행성 지구 주재 특파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나’는 자각몽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고, 지구와 클라투행성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비현실적 인물이다. 아니,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몽상적 존재로 지극히 실제적인 인물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작가는 소설 화자를 외계인(혹은 자기도취적 인물)으로 의장(擬裝)해 지구인의 삶을 낯설게 하기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이 소설은 도입부부터 신선한 발상으로 독자들을 압도하며 이야기의 흡입력을 높인다. 그러면서도 세 가지 층위의 이야기를 중첩시켜놓는다. 형식적으로는 과학환상 소설과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하고 있고, 내용적으로는 기억과 꿈이라는 테마를 사용해 ‘상상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표현했다. 그리고 심층적으로는 책 읽기와 글쓰기가 갖는 의미에 대한 문학적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작가 조현은 환상적 모티프를 즐겁게 사용할 줄 아는 재능이 있다. 그는 문학적 상상이야말로 ‘클라투, 바라다, 닉토’라는 주문을 닮아 있다고 보았다. 이 주문은 ‘예술이야말로 세계를 구원한다’는 아름다운 상상을 포함하고 있다.
- 오창은(문학평론가)

편혜영 [블랙아웃]

편혜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피막(皮膜)을 걷어내고, 그 아래 존재하는 공포스러운 디스토피아를 보여준 바 있다. 그녀의 세계에서 수성(獸性)과 질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안전성을 의심하게 만들면서 안개 같은 몽롱한 손길로 우리의 목을 졸랐다. [블랙아웃]에서 작가는 재난 영화나 SF를 연상시키는 문법으로 좀더 건조하게 디스토피아를 축조해낸다. 재난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극대화하여 개인 벙커를 판매한다는 설정은 미래적으로 보이는 동시에 매우 사실적이다.
전작들에서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에는 구체적인 몸이 있었다. [블랙아웃]에서는 두려움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도, 그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벙커 A/S를 맡은 사내조차도, 벙커를 통제하는 복잡한 기계장치들의 실체를 다 알지 못하고, 실수로 그만 벙커의 불을 꺼버린 채 아무도 그를 구원해줄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에 갇혀버린다. 탈출할 가능성이 없는 어둠의 심부(深部)에서 질식하고 익사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공통 운명인 것인가.
- 허윤진(문학평론가)

한강 [에우로파]

사랑을 다시 정의하는 일은 얼마나 더 가능한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갖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너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네가 내가 원하는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되고 싶은 것이 되는 것을 내가 돕는다는 것이다. 너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다정함을 흠뻑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한 번도 나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의 위대함은 위대한 인간들의 것이 아니다. “위대함이 결핍”된 인간이 “검은 바다의 밑면 같은 거리를 한 걸음씩 못을 치며 나아갈” 수 있을 때 사랑은 비로소 위대해진다. 한강의 [에우로파]는 이렇게 다시 또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여자이면서 남자로 살아야 하는 이가 긴 형벌 같은 비겁한 생을 견디게 하고, 사람과 세상과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이가 제 안을 돌고 돌다 바깥으로 끄집어내지도록 하는 그것을, 남자, 여자, 연인, 친구, 열정, 이해 등의 말들이 모두 실패하는 그것의 이름을, 아, 또다시 그저 사랑이라 해도 될까. 까만 스타킹에 10센티미터 하이힐을 신은 긴 머리의 남자 몸과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의 여자 몸이 함께 밤거리를 거니는 이 산책에는, 이글거리는 정념도, 다정하고 따스한 온기도 없이, “무엇인가와 지독하게 싸우는” 듯 절박하고 아슬아슬한 심정들이 터져나갈 듯 팽팽했다가 얼음처럼 단단해진다. 뜨거움보다 격렬한 차가움. 흉터가 패지 않고 다시 둥글어지는 힘은 언제나 흉터를 패게 했던 힘보다 더 치열해야만 한다.
- 백지은(문학평론가)

* 최종후보작 중 김중혁의 [요요]([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2]에 수록)는 수상작품집 중복 수록을 피하고자 재수록되지 않았습니다.

목차

심사 경위-제12회 황순원문학상 심사 경위 김효은
심사평-비(非)지배의 자유를 위하여 최원식
삶의 비의를 포착하는 문장들 이승우
읽기 끔찍했던 소설들 구효서
완전하고도 풍성한 고독 신수정
반복해 읽기의 즐거움 윤성희
수상 소감-나의 현실, 내 소설의 현실 김인숙

1부 수상작가 김인숙 특집

수상작-빈집
자선작-칼에 찔린 자국
산너머 남촌에는
단 하루의 영원한 밤
수상작가가 쓴 연보-터져라, 홍시
수상작가 인터뷰-삶이, 글이 되어 길 위에 찍힌다 서희원

2부 최종후보작


김경욱[염소의 주사위]
김숨[옥천 가는 날]
김애란[하루의 축]
박형서[끄라비]
백가흠[더 송]
조현[은하수를 건너―클라투행성통신1]
편혜영[블랙아웃]
한강[에우로파]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3~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33종
판매수 16,837권

1963년 서울 출생.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했다. 1983년 조선일보에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단 하루의 영원한 밤』, 장편소설 『핏줄』 『불꽃』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 『먼 길』 『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 『우연』 『봉지』 『소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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