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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 그리고 사물, 세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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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경란
  • 그림 : 노준구
  • 출판사 :
  • 발행 : 2011년 05월 20일
  • 쪽수 : 37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1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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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글로 지은 11층짜리 백화점 이야기

백화점을 주제로 현대인의 일상을 풀어냈다. 많은 여성들과 어떤 남성들에게 백화점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왜 백화점을 떠올리면 묘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는 것일까? 작가는 백화점 각 층의 사물들과 배치, 동선 그리고 고객들의 모습까지 자세히 관찰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백화점의 역사부터 현대인의 심리 그리고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11층짜리 백화점에 담았다. 백화점 1층 매장의 향수 냄새와 반짝거리는 시계, 2층 여성복 매장의 빨간 원피스, 3층 구두매장의 하이힐 등 각 층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출판사 서평

현대인의 욕망의 전시장 백화점에서 관찰한 아름답고 빛나는 사물들의 세계
[백화점―그리고 사물·세계·사람]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백화점을 직접 조명한 문화 에세이다. 백화점이라는 ‘장소’가 현대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기능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책은 현장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깊이와 넓이가 더해져 오롯이 백화점을 다룬 최초의 논픽션이 되었다.
처음 주제가 제안된 것은 2009년 말이었다. 백화점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모종의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거의 모든 여성들과 어떤 남성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백화점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우리에게 이토록 의미심장한 공간이 되었을까? 백화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평소 익숙하게 다니던 서울과 도쿄의 백화점들을 새롭게 취재하고, 다양한 참고문헌과 자료를 조사했다. 책의 집필은 2010년 11월 1일부터 2011년 4월 26일까지 177일 동안 이루어졌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백화점’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자전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 철학과 이론, 의견과 시각, 삶과 일상이 촘촘히 얽혀 있다. 저자가 성장과정에서 그리고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 그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시와 백화점들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 16년 동안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체류하거나 여행했던 도시들. 뉴욕, 샌프란시스코, 아이오와, 암스테르담, 파리, 베를린, 도쿄 등지에서 경험한 백화점들. 19세기 말 아케이드에서 출발하여 박람회를 거쳐 백화점으로 진행된 근대 소비문화의 역사. 1920년대 말에 태동한 우리나라 백화점의 변천사와 마케팅과 소비사회에 관한 성찰 등, 현재와 과거, 경험과 기억, 직접적 관찰과 문헌을 통한 사색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솔직하고, 구체적이며, 유용하고, 아름답다!
총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의 구성은 지하1층 지상 10층의 ‘글’로 지은 백화점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백화점의 각 층을 점유하고 있는 다양한 사물들과 사람들의 모습과 특징을 포착하고, 물질과 사람이 어떻게 조우하고 갈등하며 화해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백화점 건축물의 역사와 미학, 매장의 배치에 숨겨진 과학, 조명이나 의자 디스플레이 등 마케팅의 디테일한 요소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일반 고객들은 볼 수 없는 백화점의 뒷면, 가령 물품보관소, 구두수선실, 의류수선실, 집배실, 의무실, 상품관리과, 직원전용식당 등등을 취재하면서 ‘감정노동’과 ‘일과 사람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조경란의 [백화점]은 쇼핑의 심리학, 사회학, 과학과 철학적 사유가 예술가의 일상과 삶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사물의 진정한 가치와 향유의 즐거움을 깨닫게 이끄는 책이다.

"보는 것의 기쁨, 보는 것의 고통, 보는 것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백화점에 머물면서 감탄하고 저항하고 소외당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매 순간 나는 정신적인 삶,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 갈등의 기록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타인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 ― 1층: 시계 향수 명품매장/백화점의 동선계획
이야기는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소설가인 저자는 작품의 구상을 위해,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간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오후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음에도 괜히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리고 도서관을 나와 지하철을 타면 매번 갈등이 일어난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백화점에 갈 것인가.
백화점 1층에 선 저자는 시계와 향수에 대해 말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한 것, 생명체처럼 둥글고 회전하는 것"에 대해 매료당하는 심리를 관찰하고,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마법과 같은 냄새의 힘에 대해서. 첫 장편을 쓰던 오월의 아카시아 향기, 우울증에 빠져 ‘머스크’ 향수에 중독되었던 이십대의 기억과 연애담, 그리고 향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백화점 매장의 ‘동선구성 원칙’과 함께 소개된다.
소설가인 저자는 명품을 구매한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명품매장에 갈 일이 생긴다. 동생에게 선물 받은 은 목걸이를 세척하기 위해 한 명품매장을 찾은 저자는 생각한다. "명품매장의 매니저들과 몇 마디 주고받을 때면 판매원이 아니라 그 상품, 수백만 원짜리 가방과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명품’이 표방하는 ‘가치’를 소유하기를 갈망한다. 그 이중적인 심리를 저자는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나는 입는다, 나는 존재한다 ― 2층: 여성복 매장/에스컬레이터/봉마르셰 백화점/빨간 원피스
백화점의 동선에서 에스컬레이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엘리베이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위아래로 실어 나르지만, 진열된 상품들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속도가 느리고 시선을 끌어모은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는 다른 어떤 공간보다 백화점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파리에 봉마르셰를 세운 부시코는 독창적인 디스플레이와 마케팅의 귀재였는데, 거기에는 에스컬레이터의 설치를 비롯한 건축물로서의 백화점의 기본 특징을 완성시킨 점도 포함된다.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여성복 매장이 나온다.
사춘기 시절 저자는 ‘핑크’에 집착했다. 그리고 옷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1983년 교복자율화가 시행되면서 15살 소녀는 핑크색 블라우스를 사주지 않는 엄마에게 반항하려고 등교거부를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의 가슴 짠한 추억이 비슷한 세대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저자는 성년이 되어 검정 옷만 입게 되었지만 동생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백화점에 가서 빨간 원피스를 산다. ‘시집 못 간 언니’는 동생의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는 게 풍습이라는 친척의 귀띔을 듣고 반감이 생겨서 특히 요란하고 시끄러운 빨강 원피스를 선택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소유와 욕망의 상관관계 ― 3층: 구두와 가방 매장, 4층: 패션 매장/폐점 후의 백화점/물품보관소
3층에서는 의상 디자인과 더불어 다양하게 변화해온 하이힐과 부츠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어서 4층에서는 ‘스타일’의 변천사,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등장한 가발과 20세기 이후 그 위상과 사회적 의미가 진일보한 청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여수 케리부룩 매장에서 구두 파는 일을 했던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인 도윤이 삼촌에 대한 기억, 십 년 넘게 똑같은 구두를 수선해서 신지만 낡은 구두의 수선을 맡길 때마다 깜짝 놀라는 구두 판매원을 보면서 허름해지는 마음, 구두를 좋아하기 때문에 구두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리를 두려는 힘겨운 노력 등등 쇼핑의 심리를 저자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술한 부분들이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2004년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아이오와에 체류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쇼퍼의 은밀한 기쁨과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모여들어 함께 지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은 우울을 불러왔고, 그 우울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남몰래 쇼핑하러 다니는 것’을 선택했던 저자의 이야기는 소비의 기쁨과 소비의 고통이라는 두 측면을 잘 드러낸다.
한편 신인작가 시절,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자 급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신생 출판사 사장을 만나 계약서를 쓰고 받은 돈으로 맨 먼저 백화점에 달려가 핸드백을 산 경험을 고백하면서 작가는 말한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살 때의 그 짧은 순간, 그마저의 찰나의 행복 없이, 그런 순간적인 즐거움에 기대지 않으면 건너기 어려운 순간도 있다."라고. 남루한 쇼핑의 체험을 통해서 저자가 이르게 된 통찰은 이것이다. "욕망은 갖고 있을 때도 뜨겁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때는 더 뜨겁고 강렬한 힘을 필요로 한다."
그 밖에 물품보관소와 구두 수선실, 폐점 후의 백화점의 모습 등도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백화점의 역사와 조건 ― 5층: 남성복 매장, 6층 아웃도어 스포츠 매장
5층과 6층에서는 박람회에서 출발하여 권공장을 거쳐 백화점으로 진행된 일본 백화점의 역사를 살펴보고 취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일본 최초의 백화점인 미츠코시의 ‘디파트먼트 스토아 선언’, 세계에서 가장 큰 남성 전용관을 만든 이세탄의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 등등이 구체적으로 전해진다. 특히 저자가 새벽 세시에 [YTN 취업뉴스]를 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어떤 직업을 갖게 된다면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세탄 백화점 남성관의 슈즈카운슬러를 떠올리는 장면은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조롭고 지루한가, 추리닝에 티셔츠 차림을 하고 써질 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글쓰기란 얼마나 체력을 소모하는 직업인가, 그에 비하면 얼마나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시름이 모두 녹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읽는 독자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짓게 만드는 희극적 페이소스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감정노동과 크리스마스 마케팅 ― 7층: 아동매장/키즈카페/메이시 퍼레이드
[가족의 기원]에서 가족 구성원과 모든 인간관계를 차갑게 응시하는 비관적 태도를 보였던 작가는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동생들이 연달아 낳은 아들딸 네 조카들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생명에 대한 의지와 예찬을 배운다. 그리고 그것은 시니컬한 독신 여성에서 백화점 7층 아동매장을 수시로 드나드는 삶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조카에게 줄 공룡 인형을 찾기 위해 크리스마스의 뉴욕 메이시 백화점을 뒤지고 다니고, 키즈카페의 시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고, 심지어 조카를 봐줄 사람이 없을 때는 키즈카페가 있는 백화점을 약속 장소로 하여 외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저자는 백화점 아동매장의 역사를 살펴보고, 뉴욕 메시이의 크리스마스 마케팅과 디스플레이의 기원을 찾아보고, 각종 캐릭터가 아이들에게 갖는 힘과 의미에 대해 사유한다.
다른 한편, 붐비는 연말의 백화점에서 미소 짓지 않는 점원들을 보며 고객으로써 불편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친절을 요구하는 고객의 심리가 점원들에게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소비행위의 조건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수집과 잉여의 가치 ― 8층: 리빙 매장/수집가들/스마일 라인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따른 능동적 소비를 즐기는 세대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곳이 바로 백화점의 리빙 매장이다. 다양한 브랜드, 아름답고 독특한 디자인, 기능과 미학이 조화를 이룬 사물들이 가장 많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필연적인 이유에서 벗어나 잉여의 가치를 일깨우는 곳이 바로 리빙 매장이다.
저자는 여기서 취미와 수집의 역사, 유명한 수집가들에 얽힌 일화들, 저자 자신이 한때 예술영화 비디오테이프와 코끼리에 집착했던 경험 등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수집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쓸모’가 아니라 ‘의미’에 있다. 그 쓸모없음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 거기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수집가의 눈과 발견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상품들과 조명의 상관관계, 백화점 의무실을 둘러본 일, 백화점의 직원용 공간과 고객용 공간의 경계선에 있는 ‘스마일 라인’에 대한 관찰, 저자가 이십대에 잠시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을 때 가구 디자인에 빠졌던 이야기도 소개된다.

우리나라 백화점의 역사 ― 9층: 특별매장/쇼핑의 일곱 가지 법칙/문화홀 콘서트
우리나라 백화점의 역사는 근대화와 식민지라는 상황과 맞물려 시작된다. 일본의 미츠코시가 ‘디파트먼트 스토아 선언’을 하고 나서 경성에 있던 출장소를 확대하여 미츠코시 경성점을 개점한 것은 1929년의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 박흥식이 설립한 화신은 최초의 민족계 백화점으로 당시 고객들에게 ‘조선의 백화점’으로 크게 어필했다. 낯설고 신기한 것에 대한 열광, 양풍 유행, 모던걸 모던보이 등 최초의 소비자상이 여러 문헌과 함께 생생하게 묘사된다.
다음으로 저자는 특별한 물건을 잠깐씩 할인판매하는 9층의 특별매장에서 ‘충동구매’와 낭비의 심리를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의 쇼핑 경험을 통해 터득한 ‘소심한 소시민을 위한 쇼핑의 7가지 법칙’을 소개한다. 이때 현대소비사회에서 ‘돈’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돈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고 나 역시 거기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며, "돈의 가치가 오직 양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게 돈이 우리에게 미치는 심리적 사회적 영향에 대해 생각한 다음 저자는 이야기한다. "일상의 비참함이 많은 부분 비록 이 돈 때문에 생긴다고 해도 일상의 위대성은 삶은 지속된다는 데 있다."라고.

디스플레이의 힘 ― 10층: 식당가와 옥상정원/VIP라운지/직원전용식당/미도파 백화점
9층 문화홀에서 폴 포츠의 콘서트를 보고 나면 10층 식당가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옥상정원과 VIP라운지가 있다. 백화점 옥상에 정원을 꾸민 것은 일본 미츠코시 본점이 처음이었다. 잇따라 백화점 옥상은 정원과 전망대 또는 유람소로, 가족 나들이의 장소로 활용되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백화점 식당가도 활기차게 생겨난다. 백화점의 다른 층들이 주로 고객과 사물들, 고객과 점원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소비의 공간이라면 9층과 10층은 사람과 놀이와 문화가 만나는 열린 교류의 공간에 가깝다. 애초에 식당가와 옥상정원을 만든 것에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을 마련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한 백화점들의 노력의 결과다.
이러한 변화의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백화점도 있다. 그중 미도파 백화점은 저자에겐 아주 특별한 장소였다. 대학에 못 들어가고 광화문을 하염없이 걸어다니던 23살 무렵, 미도파 백화점의 봄 디스플레이를 보면서 저자는 어떤 ‘꿈’을 갖게 된다. 글 쓰는 삶을 사는 꿈을.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고 나서 미도파 백화점이 사라졌을 때 큰 상실감을 느낀다. 하나의 장소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쩌면 이때의 경험 때문에 작가는 언젠가 ‘백화점’에 관한 글을 쓰리라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 지하1층: 엘리베이터/쇼핑백/슈퍼마켓과 시장
1층에서 10층까지 천천히 올라가면서 걷고 보고 망설이고 선택하고 구매한 쇼퍼는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둘러 지하로 내려간다. 잊고 있던 시간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지하에는 상품관리과가 있고, 그곳에선 쇼핑백이 관리된다. 저자는 여기서 종이봉투 디자인의 역사를 살펴보고, 백화점 로고가 새겨진 메모용 종이를 슬쩍했던 얘기를 들려준다. 백화점 지하에 카페와 베이커리가 있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마케팅에서 ‘확산의 전략’을 떠올리고, 제과제빵학원에 다니며 ‘다른 삶’을 도모했던 신인작가 시절을 추억한다. 특히 백화점 지하의 슈퍼마켓을 보면서 엄마를 따라 재래시장에 다니며 생닭을 고르던 어린 시절을 묘사한 장면은 폭발할 듯한 생동감과 에너지로 가득하다.
백화점은 형성 초기부터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았고 지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쇼핑몰을 중심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일본의 백화점들은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하철 건설에 적극 참여한다. 우리나라의 백화점들도 상당수가 지하철과 곧바로 연결되는 출구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지하 슈퍼마켓에서 ‘소금’ 한 봉지를 산 저자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목차

1F
어느 작가의 오후
시계에 대한 취향
프루스트 현상
신에게 바친 향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이 우리를 말해주는 것일까?
타인의 눈 - 책을 팔다

2F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
나는 입는다, 나는 존재한다
빨간 원피스 두 벌

3F
구두 파는 남자
하이힐과 부츠
실비와 제롬의 삶
첫 잇백

4F
어바웃 블랙
헤어를 입다
청바지와 정체성
밤의 백화점에서

5F
도시,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권공장, 박람회 그리고 일본 백화점의 탄생
미츠코시에 가다
남자의 풀오버는 사지 않는다
남자들을 위한, 이세탄 백화점으로
슈즈카운슬러라는 직업

6F
철도의 발전과 병리적 도둑질
백화점의 조건과 변신
티셔츠와 아웃도어 점퍼
선물의 리스트

7F
미소는 육체노동일까 정신노동일까?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
아동매장의 출발
크리스마스 이야기
스누피, 내가 사랑한

8F
혼자 쇼핑하는 사람들
수집, 해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수집, 그 쓸모없음의 의미
스마일 라인
앉고 쉬고 일하고 놀기

9F
우리나라 백화점의 역사
쓸모 있는, 경험법칙들
돈은 신비의 창일까
문화가 사물처럼

10F
인공정원에서
식당가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
악어를 만났다
지금은 없는 백화점을 위하여

B1F
종이를 경배하라
개인의 발견
닭집이 있었다
삶의 소란스러움

작가의 말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엄마는 물었다. 말해봐. 왜 꼭 그 옷을 입어야 하는지. 나는 곧장 대답했고 지금도 그 대답을 기억한다. 열다섯 살의 사춘기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 옷이 내가 존재하는 것을 도와줄 거야!"
(/ p.64)

"행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쇼핑,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 p.90)

불완전하며 부족한 나는 결코 사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즐거움의 순간이 아무리 짧을지라도 그것은 확실하고 분명한 즐거움이다. 나는 선택했고 그것은 즐거움으로 남는다.
(/ p.97)

때로는 고통 때문에 소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살 때의 그 짧은 순간, 그마저의 찰나의 행복 없이, 그런 순간적인 즐거움에 기대지 않으면 건너기 어려운 순간도 있다.
(/ p.100)

예찬받고 싶어 하는 것들. 건축이나 사물들. 그것들은 타인의 시선을 요구하며 필요로 한다. 밤의 백화점은 시선이 사라진 사물들의 서 있는 침대, 간절히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사물들의 숨으로 가득 차오른다. 밤의 숲은 두려웠어도 지금은 아니다.
(/ p.133)

백화점은 진정한 무료 극장이 아니다. 끊임없이 구매자들을 유혹하고 충동질하는 호사스러운 공간이다. 소비시대에서 과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가장 두드러진 심리적 현상은 고통이다. 소유하지 못한 것, 소유할 수 없는 사물에서 비롯된 고통. 더 격렬한 고통은 자신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한 사람을 바라볼 때의 고통.
(/ p.178)

감정이 노동이 되는 이유 중에는 지금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도 있다. 나는 친절과 미소 속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싶지만 그런 나, 상대에게 그런 감정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는 손님으로서의 태도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에서 벗어난 행동은 아닌가, 잠시 생각해본다.
(/ p.206)

백화점의 팔층은 불필요한 것을 손에 넣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을 손에 넣는 것보다 훨씬 큰 정신적 흥분을 느끼게 하며, 인간은 필요의 피조물이 아니라 욕망의 피조물이라는 바슐라르의 말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공간이다.
(/ p.238)

수집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쓸모’가 아니라 ‘의미’에 있다. 그 쓸모없음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 거기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수집가의 눈과 발견이다.
(/ p.253)

이 책은 그날, 아래위로 검은 옷을 차려입은 스물세 살의 컴컴한 내가 미도파 백화점 화려한 봄의 쇼윈도 앞에 서 있던 그 장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p.325)

이러나저러나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맨 마지막까지, 찢어지지 않고 남는 종이는 아아, 역시 영수증들인 것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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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1969~
출생지 서울특별시
출간도서 29종
판매수 11,143권

1969년 서울 출생.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짧은 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 『백화점』 『소설가의 사물』 등이 있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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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80~
출생지 서울특별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대학에서 광고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영국으로 건너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소규모 출판을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베란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트월드》, 《노벨의 과학 교실》, 《찬이가 가르쳐 준 것》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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