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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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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표현하는 순간 말은 흩어지고, 소리는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비롯한 15인의 예술가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언어로 변주한다!


음(音)으로 날아오른 언어, 글자들의 치밀한 선율,
예술의 진정한 진화를 위한 가슴 벅찬 텍스트

서준환 첫 장편소설 [골드베르크 변주곡] 출간
소설가 서준환이 등단 9년 만에 첫 장편소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하였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언어로 연주하고 그 언어들이 다시 음을 이루는, 치열하고 호기로운 음악적 텍스트인 이번 작품에는, 실존 인물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모티프로 그가 창조한 각계각층의 예술가 15인이 15색의 언어로 음을 변주하며 매력을 발산한다. 작가는 음(音)으로 날아오른 언어, 그 글자들이 이루는 치밀한 선율, 이로써 예술의 진정한 진화를 꿈꾸는 텍스트를 통해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독자들의 시각과 청각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소설은 밤과 낮, 실체와 허상, 남자와 여자, 나와 너, 현실과 허구의 이분법적 경계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항해를 위한 닻을 올린다.

예술가 15인이 날실과 씨실로 치밀하고 섬려하게 변주하는 15개의 황홀한 아리아

"우주에 음표 음악이 존재하듯 '말로 이루어진 책의 음악'도 충분히 있을 겁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유명세를 얻은 피아니스트 '길렌 골드문트'는 유럽의 유서 깊은 음악 도시 '비히니스부르크'의 골드베르크 재단에 초청을 받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언어'로 변주해 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피아니스트, SF 작가, 기타리스트, 작곡가, 성악가 등 각 분야 예술가들을 캐스팅한 후, 길렌 골드문트는 피아노 시대가 오기 전인 하프시코드 시대로 역진화하기를 소망하면서 댐퍼 페달을 과감히 떼어낸다. 그는 피아노의 페달과 건반, 연주자마저 사라질 때 예술의 진정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확신한다. 그의 노트에는 15인의 예술가의 말(언어)로 이루어진 15개의 아리아가 글로 빼곡히 적혀 간다.
길렌 골드문트는 자신의 노트에 15인의 예술가를 불러낸다. 미래음악 작곡자이자 시인인 골란 골드버그, 전자 음악가이자 SF 작가인 글렘 고든, 기타리스트이자 작사가인 길란 기드먼스, 피아니스트이자 언어학자 글렌다 주드(그녀의 사회적 성별은 남성이며, 예명은 한스 에델만이다.), 동화작가이자 동요음악 작곡가인 뮬렌 구드, 가수이자 시인인 글리오 골리에시아스, 음악 엔지니어이자 문예창작과 교수인 괴란 골드, 성악가이자 사색가인 길리아 골디코바, 하프시코드 연구가이자 도서 편집자인 길리나 고두노프, 피아노 조율사이자 작가 지망생인 알렌 골드스미스, 극작가이자 피아노 해체를 전문으로 하는 행위 예술인인 틀렌 툴스, 음악방송의 프로듀서이자 디지털 퍼포먼서인 글리니스 굴디요바, 악기상이면서 독서광이자 피아노 조립을 전문으로 하는 행위 예술인인 길리엔스 고디훈스, 실내악단 지휘자이자 스토리보드 작가인 글린카 굴모비치,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이자 몽상가인 글렌 굴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15인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언어로 변주하는 동안,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는 낯설어지고 이방인과 인디언, 외계인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튀어나온다. "이야기(목소리)에는 겹이 있다"라는 것처럼 발화하는 이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전혀 새로운 사람과 사물 등이 어우러져 하모니를 자아낸다.

"이보가 나무숲"의 송장 다리로 추정되는 "이보가나무", 사춘기 소년 '조너선'의 욕망이 드리운 상상, 우주의 전자 물질과 전자 기기들 사이에 흐르는 판독 불가능한 소리들, 악기들의 긴박한 대화로 이루어진 화음, "이보가나무를 한다"라는 표현을 하는 클라리넷 청년의 등장 등으로, 변주는 쉴 새 없이 장난하는 듯 유쾌하고 아찔하게 펼쳐진다.

과거로 퇴행하며 이루어지는 진정한 진화, 나를 지우며 완성해 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길렌 골드문트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화의 자취"를 보여 준 피아노가 "하프시코드의 추억을 되새겨 가며" 퇴행하기를 원한다. 철저한 자기 부정에서 출발한 진화를 다시금 부정하고 퇴행시켜 "또 다른 진화의 갈래가 있을 수 없는지를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피아노를 퇴행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고 연주회 무대 위에서 자신도 사라져야 한다고 느끼면서, 현재 진화의 산물인 피아노 "댐퍼 페달"을 떼어내기까지 한다.
소설 속 길렌 골드문트는 실존 인물 '글렌 굴드'로 추정된다. 실제로 천재 혹은 괴짜 피아니스트라 일컬어진 '글렌 굴드'에게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첫째, 글렌 굴드는 일명 '아바타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이름을 붙이고[呼名] 인터뷰를 하는데, 이런 인터뷰집이 노트 한 권 분량 이상 모아졌다. 둘째, 글렌 굴드는 피아니스트이면서도 피아노를 싫어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흐의 음악처럼 피아노 이전 시대의 피아노곡이나 현대음악을 연주하였으며, 피아노의 표현과 발전 가능성을 싫어했다. 즉, 피아노 이전으로의 퇴행, 즉 역진화를 꿈꾼 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중간 지점에 있는 '피아니시코드'는 이상한 악기이지만 분명 꿈의 상징이며, "불가능한 가능함"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다. 셋째, 글렌 굴드는 피아니스트로서 인기가 절정일 때 은퇴하였다. 이는 그가 대중 앞에서 시각적으로 사라져 철저히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레코드'로 노출되고자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글렌 굴드의 면모가 동기가 되어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는 15색의 변주 세계가 독자를 맞이할 것이다.

저는 애초부터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말로 변주해 보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노트는 그런 노력과 관심의 기록입니다.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듣고 좋게 평가해 준 것도 어쩌면 평소부터 이렇듯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음악적 양식을 언어로 옮겨 보려는 연습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말과 글이 음악과 이질적이라고 하셨지만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습니다. 음표와 문자는 서로 아무 상관도 없고 우리에게 전달될 때의 기능도 전혀 다르게 나타나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움직여 가는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각각의 뿌리가 맞붙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해왔습니다.
(/ p.11)

서준환의 이야기에는 겹이 있다.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인 동시에 15명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한 사람의 목소리도 다성(多聲)으로 겹쳐 있다. 이를 통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는 예술의 내부/외부(주체/타자)는 유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가령 글쓰기(혹은 이야기)는 발화 이전부터 어딘가에서 시작되어 '타인'을 가로지르는 행위, 타인을 거쳐 열리는 문이자 "이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와 글쓰기에 병적일 정도로 몰두할수록 '타자'와 대면하는 경험은 늘어나고, 오히려 타자를 향해 열리는 행위가 되곤 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 없는 노트"가 종종 언급되는 까닭 또한, 자기가 쓴 것을 느끼지 못한 채 타자를 느끼는 대표적인 상징물로써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이 보여 주는 '변주곡'이라는 양식은 흥미롭다. 변주란 "중심의 형적을 자기 자리에 남겨 두려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지울 수 있을 때만 가능해지는 퇴행의 양식"이며, 이 과정에서 주제선율이 "지워지는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와 같은 양상을 "탈근거(Ab-grund)"라 일컬은 바 있는데, 변주곡이야말로 이러한 탈근거를 보여 줄 수 있는 양식인 셈이다. 작가와 작품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길렌 골드문트와 15인의 예술가도 동일선상에서 이해 가능하다. 변주를 통해 전혀 다른 15인이 때로는 한 사람으로 화하기도 하고, 한 사람이 15인의 모습을 온전히 띠며, 개별적 고유성을 지닌 새로운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에 글렌 굴드가 "( )에 의한 아리아"라며 그 주인을 호명하기를 보류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소리는 나를 빨아들여 증발시키고, 나는 그 소리 안에 거주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아찔한 소멸의 순간이지만 동시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늑한 퇴행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내가 소리 내어 어디론가 사라질 때 나는 밤에 거주하는 존재로 남을 수 있습니다.
(/ p.64)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음악이 소재이지만 음악 지식이나 음악적 경험을 앞세운 일부 예술소설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이 작품은 음을 말로, 말을 다시 음으로 변주하고자 한 가슴 벅찬 실험이자, 변주곡이라는 형식을 빌려 언어들을 한껏 유희하는 호기심 가득한 텍스트이다. 실존 인물인 '글렌 굴드'를 모티프로, 그가 창조한 가상의 예술가 15인을 통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역동적이고 유쾌한 앙상블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골드베르크 변주곡

본문중에서

이곳이 바로 이보가 나무숲이었다. 미스터 체로키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이 일대를 둘러보았다. 폐원의 흙바닥 위에 수직으로 솟아올라 있는 송장들의 맨다리는 여전히 습한 바람결 속에서 오뚝이처럼 유연하게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송장들의 맨다리 이외에 정작 나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가 이보가 나무숲이라면 사람들은 아마도 고목의 등걸처럼 생겼다는 착시 효과가 일어나기도 하는 송장의 다리를 이보가나무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보가 나무숲은 그 이름과는 달리 인디언들의 묘지라는 게 드러났다. 그리고 맨다리가 장지 위로 솟아오르도록 시신을 파묻는 것은 그들만의 장례 풍습이자 고유한 봉분의 방식으로 보였다.
('동화작가이자 동요음악 작곡가 [뮬렌 구드에 의한 제5변주]' 중에서/ p.178)

여학생은 사절지 크기의 악보집을 가슴에 안고 있다. 그것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스코어이다. 조너선은 그녀들에게 예의 바른 목례를 까딱해 보인다. 그러고는 거실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런데도 30대 후반의 여인은 혹시 조너선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자기네들이 올 거라는 엄마의 전언을 들었는지부터 확인한다. 엄마, 나가셨는데요. 그래, 그건 아는데..... 이제 더 이상 자기가 알 바 아니라는 듯 뒤돌아선 조너선은 바지 속에서 몰래 고무공을 꺼내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피아노 조율사이자 작가 지망생 [알렌 골드스미스에 의한 제6변주]' 중에서/ p.187)

그리하여 나는 저 아득한 헬리오포즈 너머에까지 가닿을 발신음으로 나를 쏘아 보낼 수 있었다. 무한대의 진동수와 진폭을 타고, 일정한 결너비의 리듬감 속에서.....("그루비 그루비, 모두들 저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그때 거대한 전자 소음과 함께 우주공간 저편으로부터 날아와 내 시계(視界)에 내려앉은 판독 불가의 법음. 凡諸我見 不緣實我 有所緣故 如緣餘心 我見所緣 定非實我 是所緣故 如所餘法..... 以一切言說 假名無實 但隨妄念 不可得故 言眞如者 亦無有相 謂言說之極 因言遣言
('악기상이면서 독서광이자 피아노 조립을 전문으로 하는 행위 예술인 [길리엔스 고디훈트에 의한 제10변주]' 중에서/ p.216)

베이스―(나는 베이스답게 그냥 앞의 말을 받는 데 그칠게.)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구먼. 오로지 그뿐.
트럼펫―(피아노가 잠시 더듬거리는 사이 그 애드리브를 예리하게 끊고 들어와서) 언제까지 자기의 애드리브만 계속할 셈이지? 다음에 나올 독주 악기를 위해 눈치껏 알아서 물러나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거, 다른 악기들보다 옥타브가 더 많다고 재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흥, 오로지 그뿐!
('극작가이자 피아노 해체를 전문으로 하는 행위 예술인 [틀렌 툴스에 의한 제11변주]' 중에서/ p.232)

주문한 와인과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클라리넷 청년은 내게 뜬금없이, 혹시 이보가나무를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보가나무? 이보가인? 이보가나무를 해보다? 내가 눈만 끔뻑거리자 청년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그거 아주 죽인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고는 은밀한 어조로 덧붙였다, 그걸 하고 나서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은 걸 들으면 정말 끝내주걸랑요. 들을 때도 그 정돈데 그거 하고 나서 연주하거나 지휘까지 한다면 아마 더할 나위가 없을 거예요. 어느 날 제 연주가 평소와 좀 다르다 싶으면 이보가나무를 한 줄 아세요. 이보가나무를 하는 건 진짜 사랑이니까요.
('실내악단 지휘자이자 스토리보드 작가 [글린카 굴모비치에 의한 제13변주]' 중에서/ p.249)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9종
판매수 370권

2001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다. 소설집 [너는 달의 기억],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장편소설 [골드베르크 변주곡], [로베스피에르의 죽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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