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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각집 (중/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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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정유각집] 상·중·하 3책은 [북학의][北學議, 안대회 옮김, 돌베개, 2003]를 제외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시문집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정유각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0년대에 이미 원문을 활자화하여 간행했고 이후 전집의 영인도 세 차례나 이루어졌지만, 소규모의 선집 외에 전작 번역은 이제껏 나온 적이 없다. 이번[정유각집]의 완역으로 진작에 이루어진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 신호열·김명호 옮김, 돌베개, 2007], 청장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와 함께 연암그룹 핵심 3인방의 전작 번역이 마무리된 셈이다.

북학파의 핵심, 박제가의 시문전집 최초 완역

최근 한국 고전학계의 중요한 화두는 단연 동아시아적 전망의 수립이다. 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협소한 시각을 벗고, 중국과 조선과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유와 그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움직임이 자못 활발한데, 이러한 새로운 흐름 속에서 탁월한 안목과 폭넓은 시야로 국제적 감각을 지녔던 박제가는 늘 화제의 중심에 위치해 왔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규장각 검서관 생활과 네 차례에 걸친 연행 체험을 통해 탁 트인 식견과 국제적 안목을 갖추었다. 특히 연행에서 중국 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나누고 그들의 발달한 문물을 직접 목도하면서, 당시 조선이 북벌의 원수로 지목했던 청나라가 결코 오랑캐가 아닌, 새로운 학문 사조와 서양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똑똑히 자각하였다.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북벌[北伐]의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북학[北學]의 과감한 주장으로 돌아서는 데 있어 그의 저서 [북학의][北學議]의 영향은 자못 절대적이었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과 청[淸]의 학술 및 민간 교류의 한 주역이었다. 적극적으로 청의 인물들과 교유하여 직간접으로 만나 사귄 이가 100명이 넘었고, 한족과 만족[滿族], 문인과 무인, 관료와 처사 및 외국인까지 교유의 폭도 광범위했다. 이러한 그의 교유는 선배인 담헌 홍대용의 수준을 훨씬 넘어, 후배인 김정희[金正喜], 이상적[李尙迪], 김석준[金奭準] 등에게로 이어졌다. 한중 지식인 교류사에서 박제가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박제가에게 외국인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였다. 국내에선 서얼이라 천대받았지만, 외국에선 그의 진가를 알아준 것이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사회의 변화를 추동했던 북학파[北學派]의 핵심 인물이다. 박제가를 포함해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 등은 이른바 ‘백탑’[白塔] 주위에 모여 살며 동지적 연대 속에 학술·문예·사상 전반에 걸쳐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답보에 놓인 조선 지성계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정유각집] 시집 5책에 실려 전하는 1,721수의 시와, 문집 5책 속의 123편의 산문은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초정 박제가의 시문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1년에 원문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1986년 여강출판사에서 [정유각전집]을 상하 2책으로 펴낸 바 있다. 또 199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도서관에 소장된 초정의 시문집을 엮어 [초정전서] 3책을 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문집은 지금껏 완역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난해한 고사와 용사가 도처에 숨어 있어, 워낙 해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박제가는 [북학의]의 저자로 알려졌을 뿐, 정작 그의 작품 세계 전모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번 [정유각집]의 완역을 계기로 북학파로 대변되는 연암그룹 내부의 동향과 당대 생동하는 지성사의 흐름을 더욱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궤적에 따른 인식 변화, 뜻을 같이한 이들 사이에 오간 우정과 교감, 연행이 계기가 된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구체화되는 자아의 각성, 유배지에서 역사와 맞대면하는 뜨거운 격정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의 문학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정유각집]을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의 교류사와 한중일 삼국 내에서의 우리 고전의 위상과 의미를 거시적 안목으로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완역이 이루어짐으로써 박제가의 작품 세계 전모가 소개된 만큼, 이를 디딤돌 삼아 그의 학문과 사상 및 문예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새롭게 시작될 것을 기대해 본다.

키 작은 천재 문인, 초정 박제가
― 북학파의 선구 초정 박제가의 생애와 당대 문인의 평가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서얼이었다. 젊은 날의 자서전이라 할 [소전][小傳]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물소 이마에 칼 같은 눈썹,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孤高]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고명한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세상일에는 무심하였으며, 사물의 명리[名理]를 종합하고 깊고 아득한 세계에 침잠하였다. 백세 이전의 사람들과 흉금을 트고, 그 뜻은 만 리를 넘어 날아다녔다.”[이 책 하권 [小傳]]
한마디로 가난하지만 고고한 선비임을 자처한 것이다. 스스로 묘사한 자신의 외모는 날카로운 성미와 예리한 안목을 지닌 비범함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권세 있는 사람을 멀리하고 고고한 이와 가까이 했다는 언급에서 불우한 처지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강고한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굴원의 [초사][楚辭]를 아껴 호를 초정[楚亭]이라 했으니,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박제가가 교유했던 중국의 문인 우촌[雨村] 이조원[李調元]은 그를 평하여, “그는 조선에서 문장이 매우 뛰어난 자이다. 그의 키는 작달막한데 굳세고 날카롭다. 재주와 정감이 매우 풍부하며, 위로 [이소]와 [문선]을 탐구하고, 곁가지로 백가[百家]의 정수를 모두 모았다. 그의 문장은 찬란한 별빛과 같고 조개가 뿜어내는 신기루 같으며 용궁의 물과 같다”라고 했다[이 책 하권 [서문 2]]. 한마디로 박제가는 예리한 성품에 글 솜씨가 뛰어난 키 작은 천재라는 평가다.
박제가가 가장 친하게 교유했던 이는 단연 형암[炯菴, 다른 호는 靑莊館] 이덕무[李德懋]였다. 서로 나눈 많은 편지글과 박제가의 문집에 등장하는 30여 수가 넘는 시들이 구구절절 논거를 들지 않아도 이들의 특별한 관계를 잘 말해 준다. 이덕무는 박제가에 대해 “젊은데도 불구하고 어른처럼 점잖습니다. 생각은 건전하고 심지가 굳으며 말은 명료합니다. 질박할 뿐 아니라 슬기가 뛰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수재입니다”라고 평가했다[[국역 청장관전서], 간본 형암유고 7권, [與朴在先書]]. 박제가의 회인시[懷人詩]에서도 형암 이덕무는 단연 맨 앞이었으며, 서로의 허물을 스스럼없이 말해 줄 만큼 둘은 친밀했다. 이 두 사람의 끈끈함은 일차적으로 둘의 삶의 행적이 비슷한 데서 오는 동질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같은 서얼 출신인 데다 서로 아주 가난했으며 또 동시에 검서관이 되었다. 박제가는 이덕무보다 아홉 살 어렸지만, 이덕무를 스승이라 부르겠다고 할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박제가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수제자였으며, 연암 역시 박제가의 재주를 인정하고 그를 매우 아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기록한 [과정록][過庭錄,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개, 1998]에 따르면, 이덕무와 유득공, 박제가는 항상 연암을 따라 노닐며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제자들이 변증[辨證]하면 스승인 연암도 삼가 예를 갖추고 들었으며, 매번 모여서 담론을 나눌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웠다. 세상 사람들이 연암을 비방하고 배척해도 이들 세 사람은 스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시들지 않아 여가가 날 때마다 찾아와 머물렀다. 박제가와 이덕무는 특히 연암의 수제자였고, 연암은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 자신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고 하며 3일 동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북학의],[서문 2]].
박제가는 규장각 검서관으로서,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학술군주 정조[正祖]의 문화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했다. 연암이 박제가의 스승이었다면, 국왕 정조 역시 박제가에게는 큰 스승이었다. 정조는 박제가를 알아주고 키워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검서관 시절 이후로 시문 곳곳에 펼쳐지는 정조에 대한 감격과 눈물은 일견 과도해 보이기도 한다. 1799년 정조가 죽고 1801년[순조 1년]에 박제가는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귀양지에서 쓴 박제가의 글에는 끊임없이 정조에 대한 그리움과 충성이 표출된다. 1805년[순조 5년]에 박제가가 죽고 나서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남겼는데 두 번째 수는 이렇다.
“그 누가 이 사람 미칠 수 있겠는가 / 신하를 알아줌 임금만한 이 없어라 / 건릉에 덮인 풀도 푸르거니 / 그대의 죽음이 늦었다고 하리로다.”
건릉은 바로 정조의 능이다. 박제가와 정조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
박제가는 지극히 이상주의적인 부국강병을 부르짖었던 개혁가였고, 예리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이었다. 만약 박제가에게 [북학의]의 정신을 실현할 만한 권세와 힘이 있었다면 조선의 문화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비록 그는 현실에선 서얼 출신의 외로운 시인이고, 충혈된 눈을 비벼가며 오자[誤字]를 찾고 교정하던 검서관에 불과했지만, 원대한 부국강병의 꿈을 지닌 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전[自傳]의 말미에서 “아득한 세상 하늘 끝에 가거나 천만년 세월이 흘러가도/사람마다 나를 만나 보게 되리라”라고 하였는데, 결국 이 소망이 그의 글을 통해 실현된 셈이다.

[ 이 책의 특징 ]

첫째, 아세아문화사본 [초정전서]에 수록된 시문집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하되, 필사본을 포함한 여타 판본을 대비하여 오자를 바로잡았고, 그중 중요한 내용은 번역문 하단에 주석으로 밝혀 두었다.
둘째, 아세아문화사본 [초정전서]에는 없지만, 여타 다른 문집에 수록된 작품도 해당 시기에 맞게 첨부함으로써, 명실공히 박제가의 시문집을 총망라하고자 했다. 특히 북한 김일성대학 소장본 [초비당외집]에 수록된 [묘향산 소기]의 원문과 번역문을 포함시켜, 그간 이 글의 부록격인 [검무기]만 수록되어 있던 결락 상태를 보완하였다.
셋째, ‘해제’와 ‘박제가 연보’를 통해 박제가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으며, 현재까지 이루어진 초정 박제가 시문집의 기초적인 판본 정리 및 간행 작업을 도표화하여 정리하였다.
넷째, 각권의 말미에 작품의 원제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해당 위치를 표기함으로써, 원제만으로도 작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목차

일러두기
찾아보기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원제 찾아보기

시집 3

다시 규장각에 들어가 쓰다
뒤늦게 태호의 약속 장소에 달려가다
흰 수염을 뽑다가
거듭 운자를 써서 관심재 윤객에게 보이다
장평산의 [신장용마도]에 부친 노래
하태상의 [묵죽도]에 부친 노래
[노주설안도]의 노래[짧은 서문과 함께]
[차원부설원기]를 읽고 4수
소안당에서 관심재와 함께 2수
대흥으로 가는 주계 나열을 전송하며 두보의 [송공소부] 운을 써서 3수
석양루에서 옛 생각에 젖어 감회를 적다. 이때 큰형님은 교외 서쪽 별장에 계셨는데, 앞 시의 운을 써서 삼가 지어 부치다
[춘원미인도]에 쓰다
[송지발합도]에 쓰다
차운하여 산으로 돌아가는 현천 원중거를 전송하다
차운하다. 춘방 송전과 초계문신 이현도, 송화 남인로의 방문을 받고
윤5월 10일에 대보단에서 어가를 모시고 짓다
북영에서 이호의 시에 차운하다 2수
지각에서 더위를 피하며
그림에 부치다
어린아이를 노래하다
명을 받들어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며 배오개 외영에서 자면서 짓다
이영에서 밤에 짓다
최휘조의 은거를 찾아
현천자 원중거가 숙직 중 지은 시에 차운하다
용만에서 비에 막혀, 학산부사의 시에 차운하다
7월 6일, 세하를 건너 관묘참에 묵다
조양사에서
조양에서 슬퍼하며
밤에 영감사에서 유득공 이희경과 함께 앉아서
열하에서 시랑 철보가 보내온 시에 차운하다
안남국 이부상서 호택후 반휘익 공부상서 무휘진에게 주다 2수
반휘익 등에게 차운해 부사 서호수를 대신하여 짓다
피서산장에서 황제가 베푼 연회에 참여하다. 앞 시의 운을 써서
고북구 가는 길에
저물녘에 밀운에 닿다
한림관에서 선산 장문도 한림서길사 개자 웅방수 수찬 탁암 석온옥 단림 장상지와 게를 먹고 함께 짓다
양봉 나빙이 매화를 그린 부채에 시를 써서 가정으로 돌아가는 수재 전동벽에게 주다
백암 오조가 그린 [석호과경도] 두루마리에 쓰다
나빙의 묵죽과 묵란에 쓰다
나빙의 아내 방씨 완의의 [반격시집]에 쓰다
선산 길사와 이별하며
단림서상을 위하여 그 대인의 설동시에 차운하였다. 설동은 호북에 있는데 임원이 아름다운 곳이다. 천하에서 이에 화답한 자가 천 명이 넘는다.
선산이 글씨를 써서 보내 준 부채에 적다
초휴 왕학호가 보내 준 그림 부채에 적다
예부상서 효람 기윤이 보내 준 부채의 시에 차운하다
[부] 원운
한림 균곡 신종익의 시에 차운하여 준 한 수
양봉 나빙의 [귀취도] 두루마리에 쓰다
한림 웅방수 효렴 방훈 형제와 헤어지며 주다 2수
사천으로 돌아가는 장선산에게 주다
이별 후에 양봉 나빙에게 부치다
평계 왕수재에게 보내다. 평계는 일면식이 없는 나를 위해 내 이름과 자를 새긴 작은 도장 두 개를 보내 주고, 내 글씨를 쓴 부채를 요구하였다. 뒤에 나양봉의 화실에서 교분을 맺었다.
계문의 안개에 잠긴 나무를 노래하다
계주에서
중양절에 사하역에서
9월 10일 청묘에서 성인을 알현하다
청풍대에서 학산부사 서호수의 시에 차운하다
우북평에서
징해루에서 학산부사의 시에 차운하여
강녀묘에서 학산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명나라 사람 왕치중의 시비에 차운하여
산해관을 나서며 느낌을 적다
유관에서 고향을 그리며
소흑산에서 9월 22일에
조씨 집안의 패루
북진묘에서 의무려산을 바라보며 3수
첨수참 2수
심양잡절 7수
요양
봉성에 돌아와서 내각의 여러 동료에게 부치다
책문에 머물며
탕참에서 묵다
우촌 이조원에게 부치다
시랑 옹방강에게 부치다
추사 강덕량에게 부치다
지산 송보순에게 부치다
헤어지며 주다[짧은 서문이 있다]
패수 물가에서 지은 절구
산수를 지나다가 약산 동대를 올려다보며 강산 이서구에게 부치다
가산의 시 쓰는 기생 육아가 시를 청하므로 붓을 내달리다
[부] 정유 선생께 화답하다: 채염림
용만관에서 대아 김기무와 헤어지며 주다
용만에 머물면서 육아가 보내온 시에 차운하다
용만관에서 밤에 짓다
구련성에서 자며
책문에서 동지를 맞아
통원보
참봉 자범 이기원의 도중 시에 차운하다
연산관
동지 시에 다시 차운하다
두 고개의 노래
낭자산에서 새벽에 출발하며
이도정에서
동지 시에 세 번째 차운하여
동지 시에 네 번째 차운하여
영원주에서 동지 시에 다섯 번째 차운하여
여양역에서 새벽에 떠나며 동지 시에 여섯 번째 차운하여
동관역 가는 길 근방에 일출을 보는 곳이 있다고 한다
중전소에서
유관에서
영평부에서
위제서의 일을 읊다
사류하에서 회포를 적다
진자점에서
자범 이기원의 고수점 시에 차운하여
조림장
통주
방균점에서 벽 위에 쓰인 시에 차운하다
자범 이기원의 [요야] 시에 화운하다
담계 옹방강의 [낙엽시첩] 시에 차운하다
빈곡 증욱의 [서계어은권]에 적다
선산 장문도의 [설중광음도]에 적다
최경이의 [죽루도권]에 적다
정월 초이레 양봉 나빙의 생일에
경술년[1790] 제야에
양화원 집에서
운미 팽원서에게 드리다
옥하관 절구
사하역에서 새벽에 출발하다
창려현
영수사 온천에서
송산
요서잡기
자범 이기원이 내가 뒤에 이른 것을 놀림에 답하다
북진묘에서 북경의 여러 사람에게 부치다
이제묘
도화동을 방문하려다가 큰 바람을 만나 가지 못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짓다
옥전에서
여양역에서 새벽에 출발하다
행장이 부채에 쓴 시에 화답하여
회인시, 심여 장사전을 흉내 내다
각리 김의현이 옥류의 승경을 얘기하기에, 그의 시에 차운하였다
그림 부채에 쓰다
신해년 7월에 이덕무 유득공과 함께 [국조병사]를 찬집하라는 명을 받들어 비성에 서국을 열었다. 이때 성대중이 마침 숙직 중이었는데, 홍원섭 박지원 옥류 등 여러 분이 우연히 모였다
청성 성대중과 함께 비각에 모이다 4수
두 손님이 찾아와 소나무 아래에서 백화를 집어 들고
다음 날 객이 어애송 시를 보내왔기에, 다시 앞의 시에 차운하여
북영에서
연암 선생께서 율시 지으심을 축하하여
현천 원중거 만사
영평 선산으로 가는 경산 이한진을 전송하며壟
김석손이 매화 시를 구하다
청성 시에 차운하다
안의현감으로 가는 연암을 전송하며
장씨삼세정려비의 판각 뒤에 적다
호서 지역으로 돌아가는 담수를 전송하며
김화순의 시권에 제하다
동자 서묘술의 시화권에 적다
어가를 모시고 세심대에 가서 삼가 어제시에 화운하다
눈이 어두워져 관직을 사임하며 동료들에게 보이다
성시전도, 임금의 령에 응하여
금강산 일만이천 봉, 두 번째 시험에서 임금의 령에 응하여
유하정 노래, 세 번째 시험에서 임금의 령에 응하여
양지 이홍상 만시
초가을 병중의 생각
입춘에 부여 관사에서
늦봄에 창고의 다락에서
비로 인해 조창에 묵으며 홍산부사에게 보이다
자온대의 창사에서
관아 숙소에서 무송기인에게 삼가 보이다
거듭 앞 시의 운을 써서 무송자에게 보이다
제목 잃은 시
이덕무의 무덤을 지나며
몽뢰정 10수

시집 4

속회인시 18수
무림수죽재 만시 3수
관재 서상수의 제삿날 3수
가운 서유년 만시
밤에 찾아온 서수부와 정자청을 머물게 하고 술을 마시다
이욱수가 새 검서관으로 들어왔다
새로 지은 건물에서 숙직하다 2수
화성에서 진찬하는 날, 임금 시에 받들어 차운하다
임금의 장대 시에 받들어 차운하다
어가를 모시고 북산 세심대에서 임금께서 지으신 시에 삼가 차운하다
꽃구경하고 낚시하며, 임금께서 지으신 시에 삼가 차운하다
제목 잃은 시
북둔의 복사꽃 아래에서 운자를 정하고, 영재 유득공 등과 함께 짓다
별군직 이석구가 시를 구함에 장난으로 응하다
혜경궁의 회갑 탄신에 화답하여 짓다
전하께서는 말을 펴면 문장을 이루셨다. 지난번에는 시인 신광하를 강화통판에 보임하시고는 불러 책지 4언 12구를 받아 적게 하셨는데 자연스레 운에 맞았다. 여러 신하에게 화답하여 지어 올릴 것을 명하였다. 초계문신 여섯 사람이 곁에서 모시고 있다가 나부터 차례대로 고시를 지었는데, 그 운자를 차운하였다
나귀 탄 손님에게 주다
화성어제에 삼가 차운하다 5수
임금님께서 중화척을 나누어 주며 지으신 시에 삼가 차운하다
유본예가 취성당의 운으로 지은 영설시에 답하다
다시 앞의 운을 써서
[부] 차운하여 유본예 형에게 부치다: 아들 장임
검서관 유득공과 함께 동내각에서 옛일을 이야기하다 앞 시의 운을 다시 써서 짓다
[부] 정유 노형이 취성당 고사를 이어 지은 시에 차운하다: 영재 유득공
앞 시의 운으로 네 번째 시를 지어 부채에 써서 유본예에게 주다
[부] 거듭 유이에게 보내다: 아들 장임
[부] 유이에게 보내는 세 번째 답장: 아들 장임
소동파집의 시에 차운하여 심유에게 주다
황단에서 친히 제사 드리며 임금께서 지으신 시의 운을 잇다
학사 이만수가 임금을 모시고 활 쏘러 가는 날에 나막신을 하사 받았다. 다시금 은총을 내리시어 일장 팔구의 시를 지어 새기셨다. 진신들이 모두 화답시를 지었기에 삼가 임금께서 지으신 운을 따르다.
다섯 번째로 취성당 운을 써서 혜풍 유득공에게 보이다
여섯 번째로 첩운하다
일곱 번째로 첩운하다
시희의 작은 부채에 쓰다 2수
[동강전승어맥도]에 쓰다
그림에 쓰다 3수
진사 이정용이 반촌에서 저물녘에 취해 돌아오다가 집춘문의 나졸에게 붙잡혔다. 임금께서 이를 들으시고 특별히 한 섬의 쌀을 내리시어 술빚을 갚아 주셨으므로, 한때 떠들썩 전하여 특별한 대우로 여겼다. 그의 기은시에 차운하다. 2수
소청삼각에서 여름날에 4수
금릉학사 남공철이 나를 위해 어애송 장구 한 편을 지어 보여 주었는데, 맑은 소리가 청아하여 송풍곡에 못지않았다. 기뻐 절구 여덟 수를 짓는다
밤비
7월 유화를 노래하다
자다가 깨어
영재 유득공의 남과 시에 차운하다
거듭 차운하다
권처가가 와서 묵다
[부] 정유 선생의 시를 받들어 차운하다: 담수
[부] 아버님의 시에 삼가 차운하여 담수에게 드리다: 아들 장임
연경잡절. 임은수 자형과 헤어지며 주다. 옛 기억을 더듬어 붓을 달려 140수를 얻었다
참판 유형의 연행을 전송하며 3수
빗속에 청성 성대중 어른께 부치다
남영에서 한식날에
다시 서국의 제공에게 보여 주다
정사년 4월 24일 담수 신암과 함께 광나루에서 배를 띄워 미호로 거슬러 올랐다. 바람에 막혀 하룻밤을 묵고, 말 머리를 나란히 하여 길을 돌려 초계의 분원으로 향했다. 이틀을 머물며 술을 마셨다. 우산 전겸익의 칠언 근체시에서 운을 뽑아 거듭 사용하여 21장을 지었다. 기사와 술회, 논문과 부탁의 말이 서로 뒤섞여 나와 차례가 없다. 21수
제주로 돌아가는 만덕을 전송하며 지은 시[짧은 서문이 있다]
신암이 와서 묵으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담수의 시에 차운하다 3수
되는 대로 짓다
지난해에 임금에게 올린 시에 차운하여 유득공에게 보여 주다 2수
한림 김이영이 유배되어 북쪽으로 가기에 빗속에 풍전역에 묵으며 부치다
눈 온 뒤 경산 이한진 어른을 방문하다
정월 대보름에 경산 이한진 권굉 노인과 함께 5수
아들 장임의 금수정 시에 차운하다
다시 차운하다
봉선사를 들르다. 내가 어릴 적 글을 읽던 곳이다 5수
광릉에서 감사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포천의 남현에서 쉬며
고을 경계에서 김화 사또와 작별하다
화적연
순담 3수
순담에서부터 고석정에 이르는 도중에, 김화 사또에게 부치다
골짜기 별장 풍경
풍전 가는 길
남천에서 금수정에 이르러
세 번째 금수정에 이르러
백운사에서 진사 이홍유 권담수 생질 임득상 아들 장임 및 생황 부는 이생과 함께 5수
백운령을 넘으며
곡운 영당에서
처사 강세휘에게 주다
직암 문숙 조태환에게 주다
이 직학이 보내온 시에 차운하다 10수
8월 15일에 예전 대사간을 지내신 자애 임공을 고을 동쪽의 굴동으로 이장하여 모시는 것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짓다
순담을 다시 방문하며, 이행묵 군과 약속하다
삼부연에서
구층동에서 경산 이한진과 함께 6수
청석동 절구
세폐 차사의 일원으로 금천에 이르러 어제시를 받들고 초산에 부임하는 송상렴을 만나다
초산으로 가는 송지항에게 주다
경산 이한진과 함께 밤에 한 마리 사슴을 삶다
중존 이재성이 관사를 방문하여 지은 시에 차운하다. 마침 차원으로 차출되어 낙담하여 서둘러 갔다
범수에게 주다
병사를 점고한 뒤 음식을 베풀다. 앞 시의 운으로
관헌 서상수의 아들 서유전이 찾아왔기에 5수
부사로 연경에 가는 참판 김면주를 전송하며
만세교 농장의 고을 사람 정 아무개의 시에 차운하다. 이때 서당의 동자가 기름을 빌린 일이 있었기에 그에 관한 말이 많다 6수
감사 홍인호가 생선과 생선 알 두 종류를 보내 준 것에 대해 사례하다
청성 주인의 집 벽에 쓰다
번암 채재공 만사 2수
비 오는 중에 경산 어른께 부치다
포천 솔재를 넘다가 현등산을 바라보다
와룡담 가에서 경산 이한진 시에 차운하다
양암 초당에 유숙하며 청성의 시에 차운하여 주인 유재건에게 주다
원화벽에 연못이 천연적으로 이루어져 술잔을 띄우고 둘러앉을 만하다
경산 이한진 공께서 관아에 광림하여 채근당의 편액을 써 주신 일에 받들어 감사하며
백룡담
농암
예조참의 김조순이 편지를 보내온 것에 대해 사례하여 부치다
상사 허명이 관아로 나를 찾아왔다. 비를 맞으며 금수정에 올라 지은 칠언 율시를 보내왔기에 곧바로 그에 화답하다
저물녘 성 동쪽에 나갔다가 관아로 돌아와서 유곤의 별장에 투숙했다. 그 정자 이름을 지어 주기를 오토구라고 하였다
경산 이한진이 7월 기망에 보내 준 시에 차운하다. 경산의 시에 ‘소식[蘇軾]의 전 후 적벽부를 앉아 읊조리며 퉁소 한 곡조를 불었다’라는 말이 있다
박연폭포
윤원지가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현재로 방문하였다. 손가락 꼽아 전에 덕평별업 지나던 일을 헤아려 보니 또한 16년이나 되었다 2수
관사에서 9월 9일에 경산 이한진과 함께
고을 경계에서 검서관 성해응을 만나다
밤에 경산 이한진 백석 이홍유와 모여 이야기하다
서울에서 관아로 돌아오는데, 백석과 함께 와서 기뻤다
두시에 차운하여, 백석과 함께
경산이 금객을 데리고 밤에 온 일을 기뻐하며
유본예가 와서 묵게 되어 아들 장임이 지은 시에 차운하다. 그때 나는 서울 집에 백석과 함께 있었다
양주에서 목사를 겸직하여 병사를 점고하다가 유운옥을 만나 밤에 금화정에서 잔치를 갖다
유운옥이 방문하여 지은 시에 차운하다
운옥이 양주에서 와 지은 시에 화답하다
유운옥의 [독유금수정] 시에 차운하다
유운옥에게 주다 2수
경산 이한진 청성 성대중과 함께 모이다
백석이 와서 묵다. 이때 나는 지칙으로 현의 직무를 맡고 있었다
다시 앞의 운을 써서 담수에게 보여 주다
백석의 시에 차운하다
백석 담수와 함께 부칙사 영화의 운자를 써서 6수
육유의 시에 차운하여
지나다가 오토구재에 묵었는데, 유군이 손자를 보이기에 마침 느낌을 적다
검서관 박종선이 자주색 도자기 필세를 준 데 사례하다
서울에서 관아로 돌아오다
용여 성해응이 관사를 방문하다 3수
금수정 시판의 시에 차운하다
첨지 정렴의 금수정 시에 차운하다
위위 유공에게 소춘주를 대접하다
창옥병 서쪽 시내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다
계지 박종선의 시에 차운하다 2수
거듭 유위위의 시에 차운하다
주서 이기헌이 금수정에 들르다 2수
고을 남쪽 생관에 있는 온중 이기헌에게 부치다
백운사에서
수동의 구름다리 아래에 여울이 있는데, 기이한 돌이 빼곡 솟아 있다. 나는 그곳을 매우 사랑하여 연산뢰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와룡담
가뭄이 심해 전야를 순시하다 우연히 짓다
동료 계지 박종선이 금강산을 노닐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포어] 장편 시에 차운하여 보여 주기에 다시 그 운을 써서 짓다
목천에서 귀양살이하는 유화에게 부치다
죽은 딸의 장례식 날
왕세정의 [엄주집]에서 운자를 뽑아 과일과 고깃국을 보내 주고 직각 심염조의 시에 차운하다
정종대왕 만사 12수
느낌이 있어 2수
내각중서 묵장 이정원의 [유구봉사도]에 쓰다
수재 상승의 추강 달밤에 낚시를 드리운 작은 초상화 그림에 제하다
황요포의 [제서도]에 부친 노래
[보유] 공성기린각을 노래하다

시집 5

양주 가는 도중에
영평 가는 도중에 비를 만나 다리의 종기가 매우 깊어지다
김화현에 묵으면서, 동료 박종선과 이곳에 복거하기로 약속했던 일을 떠올리다
회양에서
은계에서
9월 22일 고산 가는 길에 2수
안변에서
원산, 덕원부에 속해 있다
문천에서
고원에서 홍시를 사다
영흥에서 향촉을 모시고 가는 행차를 멀리 바라보며
정평에서
함흥 낙민루에서
홍원에서
북청에서
이원에서
시중대에서
단천에서
성진진에서
문암에서
길주에서 군대 점검을 보다
명천에서
귀문관에서
주촌에서
경성에서
부령에서
회령 북쪽으로 삼십 리를 가서 황제의 무덤을 지났다. 송나라 휘종을 장례 지낸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지리지를 살펴보니 바로 여기였다 3수
종성에서
억언 22수
‘장’ 자로 장난침
홀로 앉아
미역, 지금은 곽이라 한다
생일
빗긴 해
자식에게 부치다 2수
진사 주광겸의 문희연
주 진사를 대신하여 하례에 답하다
대학
그믐날
설날 새벽에 앉아서
1월 7일
2월 6일
집안 조카 장복에게 부치다
주자의 시 [감흥] 중에서 ‘동몽귀양정’ 한 편에 차운하여 아직 어린 두 아들에게 부치다
목 놓아 울고 통곡하여도
주자의 [복거] 시에 차운하다
사면되었을 때, 아들 장임이 보러 온다는 말을 듣고
거듭 장임의 시에 차운하다
차운하여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다 10수
[부] 삼가 아버지의 시에 차운하다 2수: 아들 장임
앞 시의 운으로 아들 장임에게 다시 보여 주다 8수
5월 13일
자리에 누워
5월 27일 돌아가신 부친의 생신에
6월 28일 국상일에 멀리서 곡을 하며 8수
돌북 노래
칠석의 노래
7월 16일 3수
손님 중에 술을 보내온 자가 있어
9월 16일
강가에서
9월 22일은 선대왕의 생신이다. 작은 서문과 함께 적다
[주역]을 읽고
오명리에게 주다
한사우에게 주다
우연히 짓다
정월 대보름에 2수
주진복 만사
두목의 “목동이 멀리 행화촌을 가리키다”라는 시상을 읊조리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전교를 엎드려 읽다. 계해년[1803] 2월 6일 밤에
한희안의 행화산당에
한희안의 행화촌당에 쓰다 4수
나의 삶
아정 이덕무의 편지를 읽고
봄날을 보내며 강가에 나와, 소동파의 운에 차운하다
사월 초파일 저녁에
단오
수항루
지독한 가뭄
의허루
저녁 산책
오두마니
객사 잡절 13수
수주의 나그네 노래 79수
국상일에
칠월 칠석
문묘가 건립됨에
한밤중에 앉아서, 과거 보러 길주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문인 한자서와 주순경 등을 생각하다
중양절에 문생 최종오가 술을 가지고 찾아왔기에
옛 천추절에
을묘 한사덕에게 주다
10월 15일 어머니의 기일에
장의 한사덕에게 주다
거듭 조롱 풀이를 하다 2수
다시 앞 시의 운으로
다시 앞 시의 운으로
제목 잃은 시
계해 섣달에 우연히 쓰다
남을 대신하여 차운하다
제목 잃은 시
기효람이 예전에 보내 준 시에 차운하다. 2월 6일
[부] 기효람의 원시
김정구에게 주다
밀랍을 빚어 만든 매화
김정구에게 부치다
제목 잃은 시
날이 저물어 영강에서 묵다[경성]
임영 가는 길에[길주]
마곡 가는 길에[마천령의 남쪽 아래]
남송정 가는 길에[이원]
석왕사[안변]
[부] 5월 그믐
윤2월 22일, 꿈에서 연구 하나를 얻다
과천 동각의 작은 잔치
김포 사군에게 남겨 주다 6수

저자소개

생년월일 1750.11.05~1805.04.25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조선 후기 문인으로 자는 재선(在先), 호는 초정(楚亭), 정유. 조선이 가난한 것은 무역이 부진한 탓이라 여겨 경제개혁을 부르짖었다. 서자라는 신분적 한계와 상업을 천시하는 사회 상황 때문에 울분이 많았다. 중국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했으며, 시에 능했다.

생년월일 -
출생지 충북 영동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고 있다. 아침에 학교 연구실에 올라와 컴퓨터를 켜면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매일 한시 한 수씩을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적어나갔다. 재워둔 곶감처럼 든든해서 이따금 하나씩 뽑아 혼자 맛보곤 했다. 이 책 [우리 한시 삼백수 - 7언절구 편]은 삼국부터 근대까지 명편 7언절구 3백수를 가려 뽑고 오늘날 독자들의 감성에 닿을 수 있게 풀이했다.
그동안 한시 관련 저서로 한시의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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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박수밀은 경기도 양평 사람이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연암 박지원의 문예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문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했으며, 국제어문학회의 연구이사와 온지학회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지원의 미의식과 문예이론],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글로 만나는 옛 생각 고전산문] 등을 썼다. 분과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 문학을 교육과 철학, 미학 등과 아우르는 통섭의 학문을 지향하며, 고전의 작문이론을 현대의 작문이론에 접맥시켜 교육 현실에 활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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