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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각집 (상/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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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정유각집] 상·중·하 3책은 [북학의][北學議, 안대회 옮김, 돌베개, 2003]를 제외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시문집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정유각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0년대에 이미 원문을 활자화하여 간행했고 이후 전집의 영인도 세 차례나 이루어졌지만, 소규모의 선집 외에 전작 번역은 이제껏 나온 적이 없다. 이번[정유각집]의 완역으로 진작에 이루어진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 신호열·김명호 옮김, 돌베개, 2007], 청장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와 함께 연암그룹 핵심 3인방의 전작 번역이 마무리된 셈이다.

북학파의 핵심, 박제가의 시문전집 최초 완역

최근 한국 고전학계의 중요한 화두는 단연 동아시아적 전망의 수립이다. 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협소한 시각을 벗고, 중국과 조선과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유와 그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움직임이 자못 활발한데, 이러한 새로운 흐름 속에서 탁월한 안목과 폭넓은 시야로 국제적 감각을 지녔던 박제가는 늘 화제의 중심에 위치해 왔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규장각 검서관 생활과 네 차례에 걸친 연행 체험을 통해 탁 트인 식견과 국제적 안목을 갖추었다. 특히 연행에서 중국 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나누고 그들의 발달한 문물을 직접 목도하면서, 당시 조선이 북벌의 원수로 지목했던 청나라가 결코 오랑캐가 아닌, 새로운 학문 사조와 서양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똑똑히 자각하였다.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북벌[北伐]의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북학[北學]의 과감한 주장으로 돌아서는 데 있어 그의 저서 [북학의][北學議]의 영향은 자못 절대적이었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과 청[淸]의 학술 및 민간 교류의 한 주역이었다. 적극적으로 청의 인물들과 교유하여 직간접으로 만나 사귄 이가 100명이 넘었고, 한족과 만족[滿族], 문인과 무인, 관료와 처사 및 외국인까지 교유의 폭도 광범위했다. 이러한 그의 교유는 선배인 담헌 홍대용의 수준을 훨씬 넘어, 후배인 김정희[金正喜], 이상적[李尙迪], 김석준[金奭準] 등에게로 이어졌다. 한중 지식인 교류사에서 박제가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박제가에게 외국인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였다. 국내에선 서얼이라 천대받았지만, 외국에선 그의 진가를 알아준 것이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사회의 변화를 추동했던 북학파[北學派]의 핵심 인물이다. 박제가를 포함해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 등은 이른바 ‘백탑’[白塔] 주위에 모여 살며 동지적 연대 속에 학술·문예·사상 전반에 걸쳐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답보에 놓인 조선 지성계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정유각집] 시집 5책에 실려 전하는 1,721수의 시와, 문집 5책 속의 123편의 산문은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초정 박제가의 시문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1년에 원문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1986년 여강출판사에서 [정유각전집]을 상하 2책으로 펴낸 바 있다. 또 199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도서관에 소장된 초정의 시문집을 엮어 [초정전서] 3책을 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문집은 지금껏 완역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난해한 고사와 용사가 도처에 숨어 있어, 워낙 해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박제가는 [북학의]의 저자로 알려졌을 뿐, 정작 그의 작품 세계 전모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번 [정유각집]의 완역을 계기로 북학파로 대변되는 연암그룹 내부의 동향과 당대 생동하는 지성사의 흐름을 더욱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궤적에 따른 인식 변화, 뜻을 같이한 이들 사이에 오간 우정과 교감, 연행이 계기가 된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구체화되는 자아의 각성, 유배지에서 역사와 맞대면하는 뜨거운 격정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의 문학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정유각집]을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의 교류사와 한중일 삼국 내에서의 우리 고전의 위상과 의미를 거시적 안목으로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완역이 이루어짐으로써 박제가의 작품 세계 전모가 소개된 만큼, 이를 디딤돌 삼아 그의 학문과 사상 및 문예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새롭게 시작될 것을 기대해 본다.

키 작은 천재 문인, 초정 박제가
― 북학파의 선구 초정 박제가의 생애와 당대 문인의 평가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서얼이었다. 젊은 날의 자서전이라 할 [소전][小傳]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물소 이마에 칼 같은 눈썹,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孤高]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고명한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세상일에는 무심하였으며, 사물의 명리[名理]를 종합하고 깊고 아득한 세계에 침잠하였다. 백세 이전의 사람들과 흉금을 트고, 그 뜻은 만 리를 넘어 날아다녔다.”[이 책 하권 [小傳]]
한마디로 가난하지만 고고한 선비임을 자처한 것이다. 스스로 묘사한 자신의 외모는 날카로운 성미와 예리한 안목을 지닌 비범함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권세 있는 사람을 멀리하고 고고한 이와 가까이 했다는 언급에서 불우한 처지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강고한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굴원의 [초사][楚辭]를 아껴 호를 초정[楚亭]이라 했으니,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박제가가 교유했던 중국의 문인 우촌[雨村] 이조원[李調元]은 그를 평하여, “그는 조선에서 문장이 매우 뛰어난 자이다. 그의 키는 작달막한데 굳세고 날카롭다. 재주와 정감이 매우 풍부하며, 위로 [이소]와 [문선]을 탐구하고, 곁가지로 백가[百家]의 정수를 모두 모았다. 그의 문장은 찬란한 별빛과 같고 조개가 뿜어내는 신기루 같으며 용궁의 물과 같다”라고 했다[이 책 하권 [서문 2]]. 한마디로 박제가는 예리한 성품에 글 솜씨가 뛰어난 키 작은 천재라는 평가다.
박제가가 가장 친하게 교유했던 이는 단연 형암[炯菴, 다른 호는 靑莊館] 이덕무[李德懋]였다. 서로 나눈 많은 편지글과 박제가의 문집에 등장하는 30여 수가 넘는 시들이 구구절절 논거를 들지 않아도 이들의 특별한 관계를 잘 말해 준다. 이덕무는 박제가에 대해 “젊은데도 불구하고 어른처럼 점잖습니다. 생각은 건전하고 심지가 굳으며 말은 명료합니다. 질박할 뿐 아니라 슬기가 뛰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수재입니다”라고 평가했다[[국역 청장관전서], 간본 형암유고 7권, [與朴在先書]]. 박제가의 회인시[懷人詩]에서도 형암 이덕무는 단연 맨 앞이었으며, 서로의 허물을 스스럼없이 말해 줄 만큼 둘은 친밀했다. 이 두 사람의 끈끈함은 일차적으로 둘의 삶의 행적이 비슷한 데서 오는 동질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같은 서얼 출신인 데다 서로 아주 가난했으며 또 동시에 검서관이 되었다. 박제가는 이덕무보다 아홉 살 어렸지만, 이덕무를 스승이라 부르겠다고 할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박제가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수제자였으며, 연암 역시 박제가의 재주를 인정하고 그를 매우 아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기록한 [과정록][過庭錄,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개, 1998]에 따르면, 이덕무와 유득공, 박제가는 항상 연암을 따라 노닐며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제자들이 변증[辨證]하면 스승인 연암도 삼가 예를 갖추고 들었으며, 매번 모여서 담론을 나눌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웠다. 세상 사람들이 연암을 비방하고 배척해도 이들 세 사람은 스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시들지 않아 여가가 날 때마다 찾아와 머물렀다. 박제가와 이덕무는 특히 연암의 수제자였고, 연암은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 자신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고 하며 3일 동안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북학의],[서문 2]].
박제가는 규장각 검서관으로서,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학술군주 정조[正祖]의 문화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했다. 연암이 박제가의 스승이었다면, 국왕 정조 역시 박제가에게는 큰 스승이었다. 정조는 박제가를 알아주고 키워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검서관 시절 이후로 시문 곳곳에 펼쳐지는 정조에 대한 감격과 눈물은 일견 과도해 보이기도 한다. 1799년 정조가 죽고 1801년[순조 1년]에 박제가는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귀양지에서 쓴 박제가의 글에는 끊임없이 정조에 대한 그리움과 충성이 표출된다. 1805년[순조 5년]에 박제가가 죽고 나서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남겼는데 두 번째 수는 이렇다.
“그 누가 이 사람 미칠 수 있겠는가 / 신하를 알아줌 임금만한 이 없어라 / 건릉에 덮인 풀도 푸르거니 / 그대의 죽음이 늦었다고 하리로다.”
건릉은 바로 정조의 능이다. 박제가와 정조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
박제가는 지극히 이상주의적인 부국강병을 부르짖었던 개혁가였고, 예리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이었다. 만약 박제가에게 [북학의]의 정신을 실현할 만한 권세와 힘이 있었다면 조선의 문화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비록 그는 현실에선 서얼 출신의 외로운 시인이고, 충혈된 눈을 비벼가며 오자[誤字]를 찾고 교정하던 검서관에 불과했지만, 원대한 부국강병의 꿈을 지닌 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전[自傳]의 말미에서 “아득한 세상 하늘 끝에 가거나 천만년 세월이 흘러가도/사람마다 나를 만나 보게 되리라”라고 하였는데, 결국 이 소망이 그의 글을 통해 실현된 셈이다.

[ 이 책의 특징 ]

첫째, 아세아문화사본 [초정전서]에 수록된 시문집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하되, 필사본을 포함한 여타 판본을 대비하여 오자를 바로잡았고, 그중 중요한 내용은 번역문 하단에 주석으로 밝혀 두었다.
둘째, 아세아문화사본 [초정전서]에는 없지만, 여타 다른 문집에 수록된 작품도 해당 시기에 맞게 첨부함으로써, 명실공히 박제가의 시문집을 총망라하고자 했다. 특히 북한 김일성대학 소장본 [초비당외집]에 수록된 [묘향산 소기]의 원문과 번역문을 포함시켜, 그간 이 글의 부록격인 [검무기]만 수록되어 있던 결락 상태를 보완하였다.
셋째, ‘해제’와 ‘박제가 연보’를 통해 박제가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으며, 현재까지 이루어진 초정 박제가 시문집의 기초적인 판본 정리 및 간행 작업을 도표화하여 정리하였다.
넷째, 각권의 말미에 작품의 원제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해당 위치를 표기함으로써, 원제만으로도 작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해제
박제가 연보
찾아보기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원제 찾아보기

정유각집 서문―이덕무
정유각집 서문―반정균

시집 1

봉선사에서
필계의 작은 모임
연못 가
헤어지며
종이 연 노래
탄식 4수
매화 지고 달은 휘영청
산정에서 이유동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접시꽃
시냇가 집의 가을 정경
회포를 적다
세검정에서 헤어지고
어느덧
섣달그믐 밤
종이 연
대보름 다음 날 손님을 보내며
서쪽 교외 이른 걸음
공덕리
남이청의 서실에서 묵다 2수
작은 누각
변소에서
버드나무 노래. 안악으로 가는 자형 임공을 전송하며 3수
비 갠 뒤
뜰에 누워
천우각에서 무관 이덕무와 함께 선[蟬] 자를 운자로 얻다
몽답정
읍청정 5수
충훈부
9일 이덕무와 세심정 아래 배를 띄우다 5수
관재 서상수의 동쪽 집에서 이덕무와 유득공 등 여러 사람과 모였다. 왼쪽 산기슭에 보덕암이란 작은 암자가 있는데 중이 십여 명이었다. 손님 중에 퉁소 부는 황생이 있었다.
밤에 필계에 앉아 임홍상 의지의 시에 차운하다
삼소헌의 눈 오는 밤
저물녘 형암을 찾아가다
밤에 유연옥을 찾아가다 6수[짧은 서문과 함께]
[부] 착암의 시 4수
청장관의 벽에 쓰다
서상수를 위해 지은 입춘시 2수
영변의 못가 정자에 쓰다
약산에서 저물녘 돌아오다
묘향산 보현사
무릉폭포
밤에 연광정에 오르다
백련봉에서 이른 아침 눈을 구경하다
관재가 새로 이사하여
태상시의 서쪽 정원
육각봉에서 이덕무의 상화시에 차운하다
길가의 초당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고
북쪽 병영
일식[짧은 서문과 함께]
비 때문에 소헌에 머물다
형암에게 부치다
가을 생각
장인 이관상 공을 슬퍼하며 5수
평양에 가는 이덕무를 전송하며
봄날 심원에 모여 6수
경회루의 옛 연못
동교에서
무더위
좌소산인을 방문하다
가을 서재에서 빗소리를 듣다
동래 수영으로 떠나는 백동수와 헤어지며 주다
세검정 물가에서 석파가 그림 그리던 곳에 걸터앉아
북한산에서
문수문을 넘어
부왕사에서 밤에 이유동을 만나 두보 시에 차운하다
백운대 꼭대기에 오르며 3수
석파도인과 남한산성의 개원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는 엄고개의 선친 묘소에 들렀다가 저물녘에 도착했다
남한산성에서 석파와 함께
동림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법화암
9월 9일
달여울 잡절 4수
화개동에서 혜풍의 시에 차운하다 3수
갓 개어. 감재의 시에 차운하다
이희경의 십삼재에서 빗소리를 듣다가
홍대용의 모정에서 원운에 차운하다 2수
자형 임은수가 이인역승이 되어 떠나며 시를 청하다
이희경을 방문하다
진재 김윤겸의 북방 유람을 전송하며 4수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등과 함께 승가사에 올랐다. 이덕무가 먼저 돌아가기에 가는 길에 보통정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북한산을 거쳐 조계에서 놀다가 다시 서상수와 이덕무를 만나 묵으며 기행시를 지었다.
저물녘 이덕무가 왔는데 마침 비바람이 쳐서 머물게 하고 함께 자며 지었다 3수
청수옥에서 밤중에 앉아 짓다 6수
다시 차운하여 청수옥에 부치다 6수
새벽에 동작 나루를 건너다
진위에서
소사에서 2수
여관 벽에 쓰다
온양에서 돌아오며 2수
진수정을 넘어가며
저물녘에야 유천의 숙소에 이르다
갈산 여관의 새벽 비
아침에 내린 눈
집에서 지은 절구 3수
금강산에 들려고 금수정에 올랐는데 동행이 오지 않아 기다리며
팔담에서
동해에 임하여
이덕무가 밀랍을 녹여 매화를 만들고는 윤회화라 이름 붙였다
상복을 벗은 뒤 이소 어른을 찾아뵈었다. 굳이 시로 나를 권면하시며 “그대가 글 짓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 오래다”라 하시고, 그 아들 이희경과 함께 자게 하셨다 4수
이희경에게 차운하다
밤에 서유년의 셋집을 찾아가 글을 읽는데, 이덕무와 유득공이 차례로 왔다 2수
인지의 서재에서
관재에서 밤에 술을 마시며
이희경의 서루에서
이유동의 시에 차운하여
밤에 앉아 회포를 적어 관헌에게 부쳐 보이다
빗속에
율원장에서 이유일을 만나다
저물녘
소석산방에 부치다 5수
화중 이광섭의 광주 거처에 쓰다
처사 이광석의 심계초당에서 이틀을 묵다 9수
광흥창 아래 배에서 자고 이경에 조수를 타고 운양나루에 이르다
배를 타고 가며 8수
저녁에 농가를 찾아
중양절에 두보 시에 차운하다
두시에 차운하여 이의암에게 보이다 6수
추수를 보며
황정평을 벗어나며
저물녘 사천에 이르러 3수
그림에 부치다
밤에 사천의 집에 들어가 이덕무와 함께 밤새도록 술 마시고 놀았다. 새벽에 큰 눈이 내렸다 2수
달빛 밟고 소위정을 방문하다 2수
밤중에 허명애 이존암과 모여
효효재 김용겸의 잡영에 대한 화답 8수
사재 김문목공의 연시시 운으로
장선을 곡하며
율교에서
중유 남덕린을 애도하며 2수
설옹 유후의 시에 차운하다
초여름
이여강이 청산현으로 근친 가면서 시를 구하기에
술회 4수
기하 유공께서 연경에서 돌아오셨기에 그 협실에 쓰다
원옹의 서루에서 비에 막혀
임하상이 두보의 봉선사 시에 차운한 것에 화답하여
기하실에 앉아
하교의 처가에서 빗속에 짓다
이경지에게 주다
기하실이 소장한 운룡산인의 작은 초상화에 쓰다
홍대용이 소장한 반정균의 묵적에 쓰다
병중에 우촌 선생을 그리며
6월 13일 낙목암에 모여
백문에서 박지원을 만나다
송석운룡도가. 연암을 위해 장난삼아 짓다
유안재 이보천 공의 만사 3수
풍정원의 뜻을 본뜨다 3수
저물어 사천 이희경을 방문하다
관운장의 사당
못가에서
정현목 군을 애도하며 3수
곽담원이 도산에 들어갔단 말을 듣고 7수
단좌헌에 제하다
연암 선생께
중양일에 심계처사가 성에 들었고, 다음 날은 형암이 자기 아버님을 모시고 그와 함께 나왔다. 내가 이를 기쁜 마음으로 부러워하여 광주 걸음을 하게 되었다 8수
심계초당에 쓰다 6언 4수
통진 가는 길에 2수
사립문
농가에서 홀로 앉아
벼 베기 풍경
거미줄
저물녘 이수당에 이르다
가을 들
감회 2수
벗을 그리며 2수
이수당의 저녁 생각 2수
배 타고 돌아오며
행주에 정박하다
영변의 명생에게 3수
현천 원중거가 장원서에서 숙직하다가 효효재 김용겸 공과 이덕무를 만나 운자를 나누어 장 자를 얻었다
정월 초이레 입춘에 이서구와 함께 시를 짓다
밤에 이서구의 집에서 자며 10수
이덕무의 철각도를 노래하다, 이서구의 시에 차운하여
[부] 이서구의 원운
[부] 이덕무의 차운
[부] 유득공의 차운
비 때문에 청장관에 머물면서 유득공과 이서구에게 보이다
봄추위
다시 앞 시의 운으로 지어서 이덕무에게 부치다 3수
새벽의 작별
난타선생의 [원석]에 차운하여 중목에게 화답하다
정월 보름밤 관재에 모여 원시에 차운하다 2수
호동에 묵으며 사간 김복휴에게 드리다
순도의 집을 찾아 책을 읽다가 매화시를 보다
[옥사집]의 시에 차운하다
차운하여 소헌의 영남시권에 쓰다
미루에서 소헌 등 여러 사람과 밤중에 모여서 짓다 2수
장난삼아 왕어양의 세모회인시 60수를 본떠 짓다[짧은 서문과 함께]
홍제원에서 말 타고 전송하는 사람 서른 명에게 시를 주어 헤어지다
말에 오르면서 운자를 정해 말에서 내릴 때 시를 짓되 어기는 사람은 벌을 받기로 서장관과 약속하고, 상사와 이덕무에게도 알려 파주에서 시작하였다
개성에 이르다
청석동
총수산
서흥
평양
밤중에 아영에 이르다
기녀에게
보통문을 나서며 지은 도사의 시에 차운하다
백상루에 올라
가산에서
용천의 양책관에서 짓다 절구 5수
의주에서 화중에게 주다
서장관께 드림
노숙하며
총수에서
마천령. 속명은 회령이다
요양주에서 짓다
김과예의 시에 차운하다
담 자 운을 써서 김과예에게 주다
상사의 시를 차운하여 신민둔의 약방 주인에게 주다
태자하
대황기보에서 큰바람을 만나다
실제
북진묘 2수
송산보. 여기는 유정이 싸우던 곳이다. 이곳부터는 경관이 많다.
동노하에서 포자경에게 주다

시집 2

가을의 느낌. 아내에게
시골집에서 번민을 풀다
연경으로 가는 부사 윤방을 전송하며 5수
새벽에 앉아 회포를 쓰다 7수
은수 형이 심양에서 돌아오다
원외 당원항의 증별시에 차운하다
[부] 당낙우의 원운
영남 객중의 소헌 윤가기에게 부치다
달밤에 유득공을 방문하다
큰 소리로 노래하여 유득공의 말을 부연하다
반천학사를 위하여 낙매시를 짓다
북악으로 이사 간 진사 이영실의 시에 차운하다
산운실에서 묵다
소헌 윤가기가 영남 군막에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 3수
양구로 가는 조카를 전송하며
삼수재의 밤 이야기
도성 동쪽에 모여
남소영의 활쏘기
관재의 작은 술자리 2수
산인 조태암의 석소산방에 쓰다 2수
규장각의 8경. 왕명을 받들어
응제로 지은 ‘영주에 올라’ 20운[짧은 서문과 함께]
낙동 조 진사의 서루에서
직각 정지검이 용만 부윤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며 2수
규장각에서 연사례가 있던 날 왕명을 받들어 짓다[짧은 서문과 함께]
결성현에 부임하는 정언 이사조를 전송하며
성주목에 부임하는 승지 남학문을 전송하며
김연숙의 서실에서 육유의 시에 차운하여
북청부로 부임하는 승지 최태형을 전송하며
김연숙의 북행을 전송하며
임덕여의 처소에서 진계유의 시에 차운하여
이문원 절구 12수
요금문 밖에서 짓다
서대에서 봄을 기다리며
중서성 지각에서 앞의 시에 차운하여
필운대에서 육유의 시에 차운하여, 대성 남현로 진사 임희묵과 함께
혜화문을 나서서 성을 따라 서쪽으로 가니, 2리쯤 되는 곳에 성북둔이라는 창고가 있다. 백성들이 모두 복숭아를 심어 붉은 안개가 성에 어린 듯하다. 언덕을 사이에 두고 무너진 절터가 있으니, 이른바 북사동이라는 곳이다. 2수
혼혼정 2수
현도, 덕여, 외심 제군들이 금강산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며 4수
성초 임하상의 강릉 관사에 부치다
묵계에서 여러 사람의 시에 차운하다
홍천협으로 가는 윤암 이희경을 전송하며 그의 시를 차운하여
객중의 가운 서유년에게
동악시단
방희의 시에 차운하다
설옹 유후 만시 2수
자형 임공의 [난동유거]에 차운하다
임참봉의 [금수정의 가을 놀이] 시에 차운하다
치재의 옛집에서 매화를 감상하며 제공의 작품에 화답하다
숙직 나가는 무관 이덕무에게 부쳐
영숙문 밖 별장청에서 숙직하며 4수
창경궁 앞 계방에서 숙직하며 2수
규장지보가 새로 만들어져, 모시고 춘당대까지 갔다. 이날 도정이 있었다 2수
당직 도중 비 내린 뒤
동료인 청장관 이덕무가 내이문원에서 [팔자백선] 인출을 감독했는데, 권[] 자의 음과 뜻을 변정한 것이 몹시 자세하여 여러 학사에게 크게 칭찬 받았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어 축하하다
밤에 유득공 서이수 두 동료와 더불어 임금께서 지으신 [강의조문]을 써서 바쳤다. 이튿날 부채를 내리시는 은사가 있어, 삼가 기록한다 4수
제용감에서 봉사 허주와 함께 체직되다
염서에서 숙직하다가 두시에 차운하다
중양절에 이문원에 숙직을 섰다. 이때 이덕무는 사도시에서, 유득공은 상의원에서 숙직을 섰다. 시전지를 보내 차례로 시를 지으니, 자못 상쾌한 일이었다.
밤에 앉아 유득공에게 다시 부치다
이문원에서 절구 5수
직각 정지검의 [기은시]를 받들어 화운하다[짧은 서문과 함께]
염서의 겸사에서 숙직하며
이문원에서 눈을 노래하다 14운[짧은 서문과 함께]
규장각에서 춘첩자를 쓰다
평구 송일휴와 동료 이덕무 등이 장령 유환덕의 남동 원옥에서 작은 모임을 갖다
초계문신의 강제와 임금의 초상화를 봉심하는 날, 통례원의 관리가 문득 참예하였다. 상께서 그 수고로움을 여러 번 칭찬하셨다. 세모에는 시관과 강원, 그리고 차비관에게 차례로 상을 내리셨다. 임은수 형이 또한 후추를 하사 받고 감격하여 작품을 짓고는 여러 사람의 화답을 두루 구하였다.
진태허의 매화시에 차운하여 재간 임희성에게 화답하다
유득공이 상의원에서 숙직하며 지은 시에 장난으로 화답하다 2수
겸사에서 숙직하며
임인년 3월 6일 윤암 이희경을 이끌고 필운대에 올라 살구꽃을 구경한 뒤, 산 아래 동산의 집에서 몇 잔 마시고 붓을 달려 짓다
술자리에서 소동파 시의 운을 뽑아 순천부로 부임하는 승지 이혜조를 전송하다
성지를 받들어 병풍을 써서 올린 일로 동료 유득공이 긴 노래를 지었으므로 그 뜻에 화답하였다. 이때는 임인년 4월 20일이다
주부 남사수가 남영의 수각에서 더위를 피해 지은 시에 차운하다
백당에서 읊조리다
숙직을 마치고 나와서
이희경의 산골 집에 부치다
탐라 말을 내려 주시다
상림의 벼를 하사하시고, 원내에서 모여 먹으라는 전교가 있었다. 사람이 많아 일정하게 나눌 수가 없었다. 삼가 기록한다.
정 직학이 쌀을 하사 받고 지은 시에 화운하다 3수
문효세자께서 태어나신 지 7일째인 9월 13일은 영조대왕의 탄신일로 음식을 내리셨기에 삼가 적는다
저녁 이문원을 거닐다 동료 이덕무를 그리는 마음이 있어
이인역 우정에서 차운하여 금정에 있는 유득공에게 보내다
다시 금정역승의 시에 차운하다. 이때 함께 영보정에 놀러 갈 것을 약속했다.
역정에서 [서피집]의 시에 차운하다 2수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승지 엄사만을 전송하며 2수
임 봉사가 과거에 낙방하여 지은 시에 차운하여
영보정 장편시에 세 번째 차운하여 화산역승 이덕무에게 부치다
[부] 청장관 이덕무가 차운하여 철재 학사에게 바치다
[보유] 화산우에 돌아와 다시 유득공의 장편에 차운하여 이문원 동료에게 부치다
숙직하며 가을의 회포를 읊다
숙직소가 새로 이루어져 여러 동료에게 보이다
진사 양덕정이 차를 보내 준 것을 사례하다
연기 땅의 동진을 건너며
계산 주막을 아침 일찍 출발하여 서원으로 향하다
서원
충주 가는 길에 동행에게 보이다
탄금대의 신립 장군 사당에서
제천
의림지
영춘의 노은치를 넘으며 2수
영춘잡절 3수
사인암을 능호공 이인상이 운영석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진의산장에서 철재 학사께 받들어 부치다
도담
청풍 가는 배 안에서
역관에서, 진사 조진대가 잉어 두 마리를 보내온 것을 사례하다 5수
[몽오집]의 시에 차운하여 집안사람 심규진에게 보이다 3수
집안사람 심규진에게 부치다 3수
청림으로 참봉 이교년을 찾아가서 두보의 시에 차운하다 2수
함재 심염조 학사의 죽음을 슬퍼하며 5수
차운하여 동료 유득공에게 주다 4수
차령에서
모로원에서
정월 보름날 규장각 동료들에게 보내다
차운하여 덕평 유거에 있는 윤원지에게 주다
평암이 방문하여 역정에서 헤어지며 2수
이몽로가 찾아와서
추정 고국태의 [소지집] 중의 운자에 차운하다 4수
규암에 배를 띄워 거슬러 올라가 창강에 이르다 잡절 5수
배 안에서, 차운하여 평암에게 부치다 2수
평암이 와서 묵다
차운하여 종손 윤사에게 보이다
차운하여 친척 심씨에게 부치다
친척 엄원리가 와서 묵다
엄초부에게 화답하여 주다 2수
몽뢰정의 주인 조행원에게 주다 2수
오천당 숙부의 유거 시에 삼가 차운하여
심규진의 장편시에 차운하다
숙직이 끝나던 날 원중거와 자애 두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 왕사정의 시에 차운하다 3수
양허당 김재행의 생일 시에 차운하여 부치다
부솔 이교년이 소를 타고 지나다가 역사를 방문하였다
차운하여 심규진에게 부치다
이동익 군이 강가에서 약초를 캐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듣고 짓다 2수
9월 9일 이문원에서 여러 날 숙직하며 남반천 승지에게 술을 보내다
서장관 장령 송전이 연경에 가는 것을 전송하며[을사년[1785]]
숙직하며 우연히 짓다
나이를 묻는 사람이 있어 시로 대답해 주었다
정월에 대교의 시에 차운하여
벗 사천 이희경에게 부치다
상신일에 임금 수레를 수행하여 사직단에서 곡식 신에게 빌다
단향 때 삼가 기록하다
설날에 임금께서 종묘를 알현하고, 다음으로 영희전 육상궁 창의궁 연우궁 경모궁에 이르러 예를 갖추었다. 앞 운을 써서 구호하다
[부]영재의 차운
김응환 그림 2수
양두섬섬곡
그림책에 쓰다 2수
연경 가는 사천 이희경을 전송하다
적성 사군에게 부치다. 사군은 막 [송사]를 초[抄]하고 있었다
이문원에서 지난 일을 생각하다
숙직 중에 군함에 부치면서, 계사에서 복직시켜 발탁해 쓰라는 명이 있으므로, 삼가 지어 감격함을 기록한다
발을 걷으며
내각에서 숙직하며
저서
낮잠
동이루에서 우연히 짓다
당직을 서던 밤에 약간 취해서
빗속에 은휘각에서
강화의 마니산 꼭대기에서 함께 간 사람의 시에 차운하다
연미정에서 한림 이곤수의 시에 차운하다
유득공에게 차운하여 보내다
유득공과 함께 숙직하고 나갔는데 송서가 때마침 왔다
유득공의 [관사에서 받은 시]에 차운하다
회포를 풀어내어 윤사에게 화답하다
상방에서 숙직하며
장경교 절구 17수[짧은 서문과 함께]
진령원의 어애송 노래
성대중의 중양아집에 차운하다 9수
앞 시의 운을 써서 상주의 사군 홍원섭에게 부치다
하석 송일휴[宋日休] 유거에 부치다
연경으로 가는 공서 이군을 전송하며
대전의 생신날 근무가 끝난 뒤 옛 동료에게 읊어 보이다 2수
밤중에 초당에 앉아
일본의 방야도 병풍 노래
천록을 새긴 필산 노래, 윤암 이희경을 위해 짓다
흠당의 시에 화답하다
사천과 녹은의 집에 들러 거문고 연주를 듣고 우산 전겸익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다시 차운하여 사천 이희경 등에게 보여주다 2수
연암 어른 집에서 앞 시에 차운하다
흠당에서 술에 취해
실의에 젖어서
윤암 이희경 형제와 녹은이 찾아왔기에 어양 왕사정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낙산의 가을 생각 2수
네 사람을 애도하는 시 4수
달밤, 이덕무에게 부치는 짧은 노래
흠당이 찾아와 준 데 대해 감사하여 주다
꿀에 절인 지분자를 먹다가 우연히 소동파의 체를 본받아 짓다
판서 윤숙 공께서 수레 타고 누추한 집을 찾아와 지은 작품에 차운하다
그림에 제하다 2절
녹은과 사천한테 들러 석호의 시에 차운하다. 나는 평소 시를 빨리 짓지 못하지만, 이날 밤에는 술기운에 붓을 달려 같은 운으로 열 수를 지었다.
이덕무의 아우 검서관 이무상이 묘궁의 행차에 따라가는 날 찾아오다
경산 이한진의 동산 집에서 성대중 송교관 유득공과 함께 거문고를 듣다가 짓다

저자소개

생년월일 1750.11.05~1805.04.25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조선 후기 문인으로 자는 재선(在先), 호는 초정(楚亭), 정유. 조선이 가난한 것은 무역이 부진한 탓이라 여겨 경제개혁을 부르짖었다. 서자라는 신분적 한계와 상업을 천시하는 사회 상황 때문에 울분이 많았다. 중국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했으며, 시에 능했다.

생년월일 -
출생지 충북 영동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고 있다. 아침에 학교 연구실에 올라와 컴퓨터를 켜면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매일 한시 한 수씩을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적어나갔다. 재워둔 곶감처럼 든든해서 이따금 하나씩 뽑아 혼자 맛보곤 했다. 이 책 [우리 한시 삼백수 - 7언절구 편]은 삼국부터 근대까지 명편 7언절구 3백수를 가려 뽑고 오늘날 독자들의 감성에 닿을 수 있게 풀이했다.
그동안 한시 관련 저서로 한시의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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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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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밀은 경기도 양평 사람이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연암 박지원의 문예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문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했으며, 국제어문학회의 연구이사와 온지학회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지원의 미의식과 문예이론],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글로 만나는 옛 생각 고전산문] 등을 썼다. 분과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 문학을 교육과 철학, 미학 등과 아우르는 통섭의 학문을 지향하며, 고전의 작문이론을 현대의 작문이론에 접맥시켜 교육 현실에 활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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