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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 포스트 글로브 시대의 철학 에세이[양장/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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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용석
  • 출판사 : 푸른숲
  • 발행 : 2010년 02월 01일
  • 쪽수 : 412
  • ISBN : 9788971848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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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문화의 경계, 인간의 차원, 시공의 궤도를 넘어 활보하는 입체의 철학

‘김용석 식 사유’의 시작을 알린[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출간 10년을 맞아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제2판을 펴냈다. 이 책은 ‘개념의 예술가’, ‘사유의 곡예사’라 불리며 일상과 철학, 과학과 인문을 넘나드는 글쓰기로 정평이 난 저자 김용석이 지난 10년간 열어젖힌 새로운 지평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 김용석의 국내 첫 저서였던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2000년 새로운 ‘천년기(millenium)’를 맞이하며 문화와 인간에 대한 탐구를 녹여낸 역작이다. 이제 제2판은 21세기의 두 번째 ‘십년기(decade)’를 맞아 밀레니엄 초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우리 시대의 격랑에서 보다 높이 날아올라 문화와 인간의 대륙을 탐험하고자 하는 소명으로 다시 한 번 나오게 되었다. 새로 쓴 [제2판 서문]은 문화와 인간의 충실한 안내자로서 이 책의 역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준다.
김용석이 이 책에 담은 것은 ‘문화의 조감도’와 ‘인간의 실루엣’이다. ‘문화의 조감도’란 ‘문화의 현주소’를 찾아가는 지도를 말한다. ‘인간의 실루엣’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즉각적이고 객관적인 해답 대신 ‘무엇이 인간적인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한 시도들을 말한다. 1부와 2부는 각각 문화와 인간이라는 주제로 나뉘어 있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 ‘문화 있는 사람’과 ‘인간 있는 문화’의 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은 ‘유크로니아 (理想時),’ ‘사이의 문화’, ‘포스트 글로브(Post-Globe)’, ‘간(間)의 미학’, ‘탈(脫)인간적 인간’ 등 김용석이 문화와 인간을 탐구한 결과로 창안해낸 개념들을 담고 있다. 그는 철학적 접근과 분석에 어떤 경계를 두지 않고 문학작품이나 대중적 상업 영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을 넘나들며 철학적 질문을 끄집어낸다.
텍스트 바깥을 회유 (回遊)하지 않고 텍스트의 논리와 구조를 파고드는 방식은 김용석 철학의 바탕인 동시에 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방법론이다. 물과 뭍을 넘나드는 양서류처럼 학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날카롭게 관찰하고 따뜻하게 통찰하는 이 책이 김용석 식 사유의 서막인 동시에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 저자는 열림과 닫힘, 유도된 필요성, 미학혁명, 일상성, 사이의 문화, 창조성, 비극성, 자유와 비자유, 감성과 이성, 탈인간성이라는 10개의 키워드로 문화와 인간의 본질을 파고든다.
새롭게 재등장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트렌드라는 말이 무색하게 급변하는 시대에, 그리고 작은 디지털 기기 하나에 시장과 사회의 판도가 뒤흔들리는 시대에, 문화와 인간의 깊이와 넓이를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의 힘을 재발견하게 해줄 것이다.

첫 판 출간 10년 후,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닌 제2판을 출간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_발행인 김혜경

21세기의 첫 십년기를 보내며 - 제2판 출간 의의
철학은 미래의 새벽빛을 보며 ‘여명에 비행하는 부엉이’여야 한다

[타이타닉]이 그랬던 것처럼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영화 흥행과 기술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에 이어 새로운 개념의 태블릿 PC를 출시한 것으로 세계의 눈길을 붙잡고 있다. 문화의 시대인 것이다. 이 책[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저자 김용석이 말한 바대로 “문화가 정(政)·경(經)의 차원을 흡수”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인간의 창조 능력과 생산 행위에 대한 연구가 숙제인 오늘날은 ‘문화의 책’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김용석은 철학자로서 또한 문화평론가로서 문화의 시대를 읽음으로써 미래를 조망하고, 문화 수용자로서의 인간과 문화 창조자로서의 인간을 조명한다. 초판을 발행했던 10년 전의 예측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확인, 그리고 그가 제안한 문화와 인간에 대한 탐구 방법론이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2000년 초판에 이어 10년 만에 다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제2판을 내놓는 이유이다.
특히 그는 새로 쓴 장문의 [제2판 서문-21세기의 첫 십년기를 보내며]에서 천년기를 앞두고 썼던 저작의 의미를 반추하고 새로운 십년기에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독자는 제2판 서문을 읽는 것으로도 문화와 인간의 충실한 안내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종횡으로 시대와 학문·예술 영역을 넘나들며 펼친 사유의 결과물인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통해 우리는 격동하는 시대의 기저에 흐르는 문화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고 넓은 사유의 장을 다시 한 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첫 ‘십년기(decade)’를 보내는 시점에 있다. 인간은 계기를 필요로 하는 나약하지만 흥미로운 동물이다. 십년기 같은 작은 계기도 소중하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 간의 사유 과정을 담고 있는 책이 오늘날 이런 계기에 성찰의 도구로 적극 활용될 수 있을까? 최근 1년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던 물음이었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러고 나서 책의 내용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책의 기본 내용을 살리면서 형식과 문장을 다듬어 개정판을 내기로 결심했다. 책을 다듬는 과정에서 몇몇 미래 예측적 표현을 현재 확인적 표현으로 고쳐 쓰면서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것은 황혼 녘에야 날갯짓을 시작하는 부엉이임을 자임하는 철학의 겸허(?)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사유가 미래의 새벽빛을 보며 ‘여명에 비행하는 부엉이’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제2판 서문/ p.17)

문화 담론과 미래 담론을 접목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문화 연구가 소홀히 했던 것이다. 미래에 관한 이론 전개는 신중한 역사의식과 함께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과거를 탐구해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세계라는 텍스트를 천착하여 그에 대한 통찰력을 가짐으로써 과거를 재인식하고 미래를 오늘로 불러오는 시대의 네트워크를 운용하는 것과 같다.
(제2판 서문/ p.47)

문화와 인간을 읽는 10개의 열쇠

문화적인 것에 대하여 | 열림과 닫힘·유도된 필요성·미학혁명·일상성·사이의 문화
인간적인 것에 대하여 | 창조성·비극성·자유와 비자유·감성과 이성·탈인간성

[글 앞에-제2판 서문-글 안으로-본문-글 밖으로-부록-글 뒤에]의 대칭적 구조와 2부 10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 저자는 꼼꼼하고 친절하게 “문화의 조감도”(1부)와 “인간의 실루엣”(2부)을 담아놓았다.
1부 [문화적인 것에 대하여]에서는 오늘날 문화론이 놓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주제-열림과 닫힘, 유도된 필요성, 미학혁명, 일상성, 사이의 문화-를 제시한다. 2부 [인간적인 것에 대하여]에서는 창조성, 비극성, 자유와 비자유, 감성과 이성, 탈인간성을 주제어로 문화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미래를 전망한다.

열림과 닫힘
우리는 ‘우리’라는 조건에서만 열려 있는 ‘열린 사회의 신화’ 속에서 살고 있다. 열림이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닫힘에도 열려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열 줄 아는 개체들로 구성된 다원화 사회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는 ‘다차원적 복수 문화’에 의해 가능하다. 이에 엶을 행하는 각 개인의 사회·문화적 성숙도가 필요하다.

닫힘은 열림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다. 닫는다는 행위 자체가 열림을 원천적으로 배제해도 자기 모순은 없다. 그러나 열림은 닫힘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거나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여는 행위는 닫음의 행위에도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하면 자가당착적 결론에 빠진다. 이는 여는 행위가 갖는 비극적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엶의 의도와 행위가 더욱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 p.87)

유도된 필요성
‘나’ 밖의 대상이 나의 필요를 유도하는 것이 ‘유도된 필요성’이다.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등장과 함께 인간은 필요해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생산이 필요를 유도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후기 산업사회에서도 생산은 여전히 중요하다. 신기함, 진기함, 호기심 유발 등 복합적 의미에서 ‘새로움
(/ p.novelty)’을 제시하는 능력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유도된 필요성과 문화적 효과의 관계를 고찰하는 일이 필요하다.

보드리야르의 연구는 이른바 후기 산업사회, 또는 정보지식사회에서의 생산의 기능과 효과, 의미를 미처 천착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소비의 거울에 비친 이미지에 현혹되었다가 경각심을 갖게 된 보드리야르는 ‘현대적 소외’의 대표적 양태로서 소비와 소비자를 비판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비판되어야 할 것은 ‘유도된 필요성’이라는 권력을 발휘하는 생산일 것이다. 소비에 대한 비판은 대중을 고발하는 것이지만, 생산에 대한 비판은 권력 행사자를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05~106)

미학혁명
현대에서 일상이 갖는 의미는 지대하다. 이처럼 일상이 현대인의 의식에 중심 주제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의 정치·경제적 차원이 아니라 일상이 지니는 미적 차원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학혁명이란 곧 예술의 과학화, ‘+α’의 문화, 소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시대에 미학적 사고는 미적 경험이 작품의 복제 가능성과 대중문화의 시대에 맞게 된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의미에 대해 진솔하게 문을 열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즐기는 것에서 만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의 전환은 획기적이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선별해서 소유하며 즐길 수 있는 가능성도 현실이 되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나오는 미학 이론에도 ‘아름다움’의 정의에는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이라는 의미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소유한다는 것은 아주 현대적인 것이다.
(/ p.127)

일상성
현대 대중문화의 발달은 일상이 지배적인 개념으로 부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비일상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였다. 하지만 비일상적 행위는 일상적 삶에 변화의 동기를 준다는 점에서 일상과 밀접하다. 긍정적 의미에서의 비일상적 행위는 양적 기준의 사회와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의 진정한 의미 추구는 결국 일상의 틈새를 노리고 일상의 사이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때에야 가능하다.

앞으로의 시대에서 각 개인은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상황에서 인간을 위한 새로운 권리를 계속적으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미래의 휴머니즘적 자세일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특별히 부각될 수 있는 인본적 권리들은 단순한 물질적 복지를 넘어서 보다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존재의 권리, 전통적 평등권이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게 차이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타인과 함께 공동체적 환경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바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이 될 것이다.
(/ p.151)

사이의 문화
개체로서의 ‘너’, ‘나’, ‘그 사람’, 또는 통합체로서의 ‘우리’보다는 인터 (inter)의 의미가 부각된 ‘너와 나 사이’, 인트라(intra)의 뜻이 강조된 ‘우리 사이’가 오늘날 문화적 주제이며 앞으로 점점 더 문화적 지향점이 될 것이다. 여기서 사이의 문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문제는 공동체이다. 즉 ‘어울려 사는 세계’, 조화로운 ‘아름다운 세계’이다.

사이가 소통과 통신 수단 및 뉴미디어의 효과로 빈틈없이 ‘메워진다면’, 사이에는 ‘여유가 없게’ 된다. 그러면 사이는 통합된 전체 속에서 무의미한 요소가 되어버릴 것이다.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는 사이가 없는 삶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 패러다임으로서 사이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억압의 조건일 수도 있고 새로운 해방의 기획일 수도 있다. 이 두 가능성 중 어느 것을 더 현명하게 실현할 것인지가 우리의 미래에 해결 과제로 놓여 있다.
(/ p.170)

창조성
창조는 전혀 새로운 것의 발현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 행위는 형상의 새로움, 형상에 대한 의미 부여의 새로움, 즉 세상의 창조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의 창조이다. 현대 문화는 예술적 창조성에 발명과 생산의 특징을 접목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대했다. 이러한 접목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은 생산성이 창조성을 대치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때 창조성이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작가의 자유, 작품 활동의 독립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조성은 인간 이해의 지평이자 지속가능한 인간 실존의 조건이다.

상당수 대중문화는 생산의 메커니즘 속에서 점점 더 창조의 의미로부터 멀어져갔다. 이는 문화적 성과가 일상의 반복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구성과 창조의 관계에서도 절묘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쉽게 구성에 중점을 두며, 창조적 모방이 아니라 모방을 위한 모방을 추구하고, 작품의 향유보다는 작가나 공연자의 신화에 탐닉하기 때문이다.
(/ p.221)

비극성
이차적 창조자로서 인간은 피조물을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완전히 없앨 수도 없다. 때론 피조물에 예속당하기도 한다. 인간이라는 자기 한계를 가진 창조자는 그 비극적 조건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비극적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줄일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산업 자본주의의 대세 속에서도 체제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적 행위를 지속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 안에 몰이해적이고 탈목적적인 활동을 위한 ‘여유’를 놓아두어야 한다.

기존의 것들을 이용해 무엇인가 창조할 경우 자신의 피조물이 어떠한 작용과 행동을 할지 완전한 예측도, 그에 대한 완벽한 통제도 불가능하다 제페토가 인형을 만들기 위해 가져온 나무토막이 처음부터 멋대로 움직이고, 이상한 말소리를 내는 것은 창조의 재료 자체가 사람의 통제 밖에 있다는 것을 잘 상징하고 있다. 인간의 창조 행위는 창조의 위험 부담을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 p.237)

자유와 비자유
기술 왕국이 인류에게 가져온 것은 ‘유도된 필요성’뿐만 아니라 ‘유도된 한계’이다. 곧 자신의 진행 방향과 맞지 않는 가능성의 추구와 창조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현대 문화가 지니는 ‘닫힌 문화’적 성격의 일면이다. 이것이 기술 왕국이 현대인에게 가하는 가장 위험한 문화적 비자유다. 이것은 나아가 의미의 가능성을 허무로 환원한다. 서로를 허무의 인간으로 방치할 것인가, 자아와 자유 그리고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인간으로 동행할 것인가는 무조건 진리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유와 진리 사이에서 의미의 틈새를 제공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진리의 일방적 주장은 허무의 냉소주의만큼이나 다른 가능성을 무시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의 추구는 가능성의 폭을 넓히고, 타자와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할 수 있다. 의미는 상호 ‘소통 가능성’의 문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자유와 진리가 인간 조건의 수수께끼이므로 현실적 소통 양식을 찾아내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의미는 현실과 초현실 사이로 열려진 창이다. 의미의 추구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자유의 힘으로 진리의 자양분이 녹아 있을 물줄기를 끌어들여, 생존과 실존의 문제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스러지는 생명의 밭을 적시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일상의 현실에서 ‘삶의 의미’와 ‘사람의 의미’를 경작하는 일이다.
(/ p.285)

감성과 이성
인간은 합리적 능력을 바라는 감각적 동물이자 동물적 감각력을 바라는 합리적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은 서로 공생하는 생물과 같다. 이제 비합리성과 합리성, 우연과 필연, 감성과 이성은 구분되어 있을 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야 할 때다. 중요한 것은 감성과 이성을 껴안으며 인간과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 대중문화를 대할 때에도 필요한 의식이다. 현대 대중문화는 인간의 감각적 욕구와 오락적 차원이 표현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 공간을 최대한 제공하려 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상황은 문화가 대중화한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형성되어서 현대 문화의 대명사가 되어가는 것이다. 오늘날 이 문화의 특징은 점진적 확산이 아니라, 형성 단계에서부터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과학·기술·산업·통상·소통, 여가 창출, 놀이 방식 등의 발달과 보조를 같이한 ‘현대 대중문화’는 사실 그 표현과는 달리 ‘대중’이라는 일정한 범주의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그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일정한 범주로서의 대중문화가 아니라, 굳이 표현하자면 ‘만인의 문화’인 것이다.
(/ p.303)

탈인간성
인간은 인간적이기를 바라면서도 ‘인간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변함없는 인간성이 20세기까지의 인문학적 화두였다면, 실체적으로 변하는 인간은 21세기 내내 인간학적 화두가 될 것이다. 또한 21세기의 철학은 ‘새로운 타자성’을 사유하고 성찰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서 칸트의 네 번째 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넘어 새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인간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

이제 인간은 자기실현뿐만 아니라 자기 파괴에 대해서도 자결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인간이 그 스스로 인간의 개념과 그 존재 의미와 인간 삶에 대한 지식을 찾고자 하는 한, 인간에 대한 물음도 피할 수 없는 사건(?)이 된 것이다. 인간이 능동적 존재라는 의식이 부상하는 것과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학이 탄생한 것이다. 능동적 인간은 인간 자신에 대해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네 번째 질문’이 아니라 이미 ‘첫 번째 질문’이다.
(/ p.35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8종
판매수 7,069권

(현)영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청소년 문화포럼 편집위원, 고전해석 및 토론 세미나 교수

저서

[철학광장](2010),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2010), [메두사의 시선](2010), [서사철학](2009)

그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머물지 않고,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답하고자 한다. 학습으로서의 철학하기를 넘어 춤추듯 즐기는 ‘필로소페인’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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