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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철하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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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용석
  • 출판사 : 푸른숲
  • 발행 : 2010년 01월 29일
  • 쪽수 : 255
  • ISBN : 9788971848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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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급격한 문화 변동의 시대, 인간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

첨단 과학 기술이 시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인간과 사물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까지 새롭게 정의하는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과학 기술이 이끄는 변화를 분주히 뒤쫓는 인간에게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만이 철학의 역할인가? 철학의 비판적 기능 이상으로 창조적 기능을 중요시하는 철학자 김용석은 첫 책[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이후로 줄곧 과학과 기술이 결합해 낳은 문명적 성과물이 우리 일상과 문화에 초래한 변화를 직시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현재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미래적인 문화 이론을 제시해왔다.
[메두사의 시선]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이 구축한 새로운 삶의 조건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변해갈지, 또 그 변화한 인간은 세계를 어떤 모습으로 창조해갈지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쏟아져 나오는 미래 예측서들과는 전혀 다른, 철학자만의 고유한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신화 속 상징과 은유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질문하고 성찰하고 상상해볼 수 있도록 '생각의 장(場)'을 마련하고 있다. 이 책에서 신화는 단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급격히 변화하는 인간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변화, 변신의 서사로서 훌륭한 사유 매체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메두사의 상징을 통해 자연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는 과학의 욕망을 보여주는 1장과 과학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광기에 이를 가능성이 그 모체인 철학, 즉 지혜를 사랑하는 행위에 원초적으로 내포되어 있음을 '사랑의 신' 에로스를 통해 지적하는 2장에서 과학과 철학의 본질적 속성, 필연적인 전개 방향을 제시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이어지는 열 개의 장에서는 가치중립성을 고수하며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질주하는 '과학'을 향해, 끊임없이 인간의 길을 묻는 '철학'의 모습이, '신화'의 상징을 통해 펼쳐진다. 신화, 과학, 철학이라는 이 책의 세 주인공은 '과학 기술이 예술과 결합해 창조한 실재와도 같은 세계는 인간에게 어떤 기회와 위기를 가져올 것인가?', '로봇이라는 새로운 타자를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뇌과학의 시대, 영혼의 탐구는 유의미한가?' 등등 21세기의 두 번째 '십년기'에 들어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제기하고 있다. 독자는 그 질문들을 숙고하여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동안 실험적 사유를 즐기는 철학 에세이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 변화하는 인간의 미래를 전망하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변화하는 인간'에 대한 사유이다. 저자는 20세기까지의 철학이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전제로 그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노력이었다면,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삶의 조건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생물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인간이 지금과 다른 존재로 진화해갈 가능성이 명백해진 21세기에는 변화해가는 인간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칸트의 네 가지 질문, 즉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바라도 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요약되는 근대 철학의 관심을 기본 전제에서부터 뒤엎는 생각으로, 인간을 진화의 종점이자 철학의 유일한 대상으로 보던 관점을 폐기하고 새롭게 '인간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에 대한 사유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질문을 지금 이 시점에 던지고 있는 것일까? 그는 전작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서 창조성을 인간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으로 꼽았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듦으로써 자신의 생명력을 발휘하고, 그 피조물을 통해 삶을 확장하거나 역으로 통제당하기도 하며, 그것을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자신을 발견해가는 존재이기에 무엇보다도 '문화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21세기의 첫 '십년기'를 보내는 지금, 인간은 자신이 만든 문화적 성과물에 의해 급격히 변화해가는 환경에 처해 있다. 문화의 변화는 자연히 인간의 변화를 이끈다. 인간이 지구 밖에 상주할 가능성, 인간 아닌 존재를 만들거나 만나게 될 가능성이 눈앞에 닥쳐온 시대에 더 이상 '인간 안'을 탐구하는 것만으로는 현재를 직시할 수도, 미래를 전망할 수도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미 현실이 된 것을 해석하고 반성하는 '사후(事後)의 사유'가 아니라 미래를 통찰하고 준비하는 '사전(事前)의 사유'가 21세기 철학의 역할이라 믿는 저자에게 이는 절박한 문제의식이었다. 그러한 절박함이 바로 '인간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과 '인간 밖'을 사유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낳은 것이다.

변신의 서사인 신화에서 인간의 현실을 읽는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인간 이해를 시도하는 저자가 그 매개로서 신화의 메타포를 택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고대의 신화가 어떻게 현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신화가 변신, 변화의 서사라는 점에서 찾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 인과관계로 정리하려는 인간 인식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인과성에 대한 욕구가 지나쳐 때로 합리적이지 못한 원인까지도 강박적으로 찾아내 믿어버리곤 하는데, 이런 '인과적 믿음'은 변하지 않는 초월적 원인, 즉 불변의 신화를 창조해내려는 욕구로 이어진다. 종교적 믿음은 물론이고 과학적 탐구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항상성, 한결같음의 매력에 쉽게 빠지는 인간이기에 변신, 변화의 서사가 내포하고 있는 풍부한 의미, 창조적 해석의 가능성이 현실과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고대의 신화가 현실과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자연사의 은유 속에서 인간성의 다양한 모습과 소통하는 사건들을 보여주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이러한 '신화의 현실감'에 전제되는 것이 '변화'라는 사실이다. 현실 세계를 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변화를 전제해야 한다. 신화가 현실의 거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불변의 고착성 때문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래서 신화가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자연사의 은유는 당연히 변화에 대한 은유이다. 자연은 엄청난 변화의 덩어리 그 자체이다. 신화가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양한 '변화'의 서사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 p.223)

이 책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듯이 신화를 '신'을 중심에 두고 읽는 게 아니라 '이야기', 즉 신들이 펼치는 '변화와 변신'의 파노라마를 중심에 두고 읽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거에 묶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변화를 가장 잘 반영하는 훌륭한 사유 매체가 되어 인간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평가로 회복되고,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측으로 소환된다.'라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의 주제뿐만 아니라 구조까지도 함축하는 문장이 된다. 과거의 이야기인 신화는 변화의 서사로서 재평가되어 현재적인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그 변화의 궤적이 은유하는 바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되어 오늘 우리의 문제로서 소환된다.

인간을 넘어선 인간학을 가능케 한 과학 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
앞서도 말했듯 이 책은 인간과 세계의 변화에 대한 절박한 인식을 바탕으로 쓰였다. 그 변화를 이끄는 것은 바로 과학 기술의 발달이다. 이 책에서 과학 기술은 인간에게서 비롯했지만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들을 낳으며 인간에게 수많은 난제를 던지고, 심지어는 모체인 인간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드는 적극적인 주체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과학 기술의 발달을 단지 인간 삶의 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도구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진화해나가며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대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 기술의 최신 성과들에 주목하여 그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철학자로, 과학과 철학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은 국내 학계에서는 보기 드문 케이스다. 철학에 과학 기술의 엄청난 생산력을 경계하는 역할만을 기대하는 구시대적 인문학의 시선에서 탈피하려는 저자의 생각에는 철학이 인간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는 통찰이 깔려 있다. 필로소피아, 즉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의 철학은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과학의 모체이기도 하고, 지를 사랑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태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언제든 '애 인(愛 人)'의 태도를 버리고 완벽한 앎을 향한 욕망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철학의 정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과학이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인간 이외의 존재, 인간 세계 밖에 대한 사랑을 인간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획기적 성장의 기회로서 사유할 수 있는 혜안을 얻었다. 즉 과학과 철학을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옴으로써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변증적 관계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뇌과학, 진화생물학, 로봇 공학, 우주 개발 등 최첨단 과학의 성과들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그것이 인간과 함께 진화하며 서로에게 가져올 변화의 의미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정교하게 연결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더 이상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리 시대에 인간에 대하여 꼭 필요한 핵심적인 통찰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사족과 몽상
감사의 말

1. 메두사의 시선
갈릴레오
자연의 법칙
아테나의 방패
아틀라스

2. 에로스와 철학의 화살
무서운 장난꾸러기
필로소피아
탈 인간의 신화
철학은 인문학인가?

3. 아라크네와 기예의 철학
아테나의 분노
공작인의 암호
플라톤과 자연주의 미학
거미 여인의 후예

4. 헤라클레스와 육체의 반어법
'헤라의 영광'이란 이름으로
육체와 영혼
뇌과학의 관심
영혼 탐구는 유의미한가?

5. 크로노스와 서사 권력
크로노스는 무엇을 삼켰나?
자연적 시간
서사적 시간
'서사권력'에의 의지

6. 피그말리온의 타자성
엉뚱한 의혹
진화의 종점
칸트의 물음
여명에 나는 부엉이

7. 슬픈 미노타우로스
혼돈
생명
미국
미래

8. 아프로디테의 신호
'그녀'의 탄생
진화론적 추론 : 섹스 앤 뷰티
세계의 근원
미소 없는 얼굴

9. 편재하는 나르키소스
마비된 나르키소스
호수 이야기
안티 나르키소스
윤리적 자기도취

10. 디오니소스와 포도주의 인식론
니체의 생각
베일과 포도주
문화적인 것들
심연의 유혹

11. 스핑크스와 인간의 초상
네 발의 인간
세 발의 인간
두 발의 인간
발 없는 인간

12. 사유 매체로서 변신 이야기

생각하는 사람
믿음의 세계
불변의 신화
수수께끼

도움말
인명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1. 메두사의 시선 - 자연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는 과학적 욕망의 원류는 어디 있는가?
과학은 마치 눈앞의 모든 것을 단단한 조각상으로 굳게 하는 메두사의 시선처럼, 변화하는 것들 뒤에 숨어 있는 불변의 법칙을 찾아내려 한다. 이러한 속성은 결정론과 환원주의라는 비판에 쉽게 노출되기도 하지만, 저자는 메두사의 시선 없는 과학 활동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본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순함을 찾으려는 욕망이 또한 과학을 추동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메두사의 시선으로 얻은 '진리'의 편협함을 극복하겠다는 시도로 등장한 '통합'의 노력 또한 메두사의 시선의 확장된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든 지식이 연계된 더 거대한 지식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은 결국 진리를 '붙잡아두려는' 욕망을 최대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통합은 '모든 것을 하나로'라는 단순함과 '모든 것이 함께 조화로운'이라는 아름다움에 더해, '전체'가 '여기 있다'는 장엄함을 가져온다. 이 장엄함에 대한 기대가 과학의 시선을 유혹하는 것이다.
(/ p.27)

2. 에로스와 철학의 화살 - 과학을 탄생시킨 철학은 과연 인간만을 위한 학문인가?
철학, 즉 필로소피아는 '지(智)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탐구한다'는 뜻으로 마치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것처럼 지를 사랑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태도를 근간으로 한다. 이 끊임없는 탐구 정신이 모체가 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과학이다. 즉 철학과 과학은 본질적으로 같은 욕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애지(愛智)' 행위는 언제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려는 욕망보다 모든 것을 아우르고자 하는 앎에 대한 욕망이 앞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인간에 의한 학문이지만 인간만을 위한 학문은 아닌 것이다. 철학이 쓴 '탈인간의 신화'를 과학 기술이 실현하고 있는 오늘날 철학자는 철학의 인문학적 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과학과의 관계 속에서 철학의 정체를 진지하게 밝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철학과 과학의 재회는 냉혹한 수식으로만 무장해 있을 것 같은 과학의 언어를 다양하게 할 수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철학을 폐기할 수 없다. 자신을 스스로 거세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 p.42)

3. 아라크네와 기예의 철학 - 과학 기술과 예술이 결합해 창조한 실재와도 같은 세계는 인간에게 어떤 위기와 기회를 가져올 것인가?
아테나 여신과의 베 짜기 시합에서 승리한 벌로 거미로 변하고 만 아라크네의 신화는 과학 기술과 예술을 융합해 실재와도 같은 세계를 창조하려 끊임없이 시도할 인간의 미래를 은유적으로 그려 보인다. 뛰어난 베 짜기 기술에 예술적 감각을 더해 융단에 '진짜 같은' 그림을 짜 넣은 아라크네의 이야기는 3D 영화 〈아바타〉나 스마트폰 속 증강현실과 같이 기(技)와 예(藝)를 결합해 실(實)을 창조하려는, 그러나 그 창조물이 이후 인간에게 어떤 작용을 할지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비극' 혹은 '아름다운 고통'을 성찰하게 한다.

21세기 내내 인간은 '아라크네의 후예'를 자처할 것 같다. 21세기 내내 인간은 과학 기술 예술의 융합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실재를 공작하는 존재가 되려고 할 것이다.
(/ p.55)

4. 헤라클레스와 육체의 반어법 - 강건한 육체의 헤라클레스는 역설적으로 영혼의 중요성을 상징하고 있지 않은가? 뇌과학의 시대, 영혼의 탐구는 유의미한가?
근육질에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헤라클레스의 역정은 상당 부분 '육체의 반어법'으로 서술되어 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헤라클레스의 수호신이라는 사실과 헤라클레스가 종종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일을 그르치는 것은 헤라클레스에게 몸보다 머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육체와 영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영혼에 우월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속되어온 일이다. 오늘날에는 이 영혼에 대한 관심을 상당 부분 뇌과학이 이어받았다. 영혼을 물리적으로 환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뇌과학의 연구가 진행될수록 영혼의 탐구는 무의미해지는 것일까? 저자는 '영혼'이라는 개념이 과학과의 접점에서 오히려 생명과 우주, 자아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는 성찰의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강건한 육체의 헤라클레스가 지닌 엄청난 운동성이 그의 영혼이 지닌 힘과 능력에서 나온 것일지 모른다는 가정이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가능성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하기'의 관점에서 보면, 영혼은 '철학 매체'이다. 즉 생각의 미디어다. 그것을 '통해' 인간은 수많은 생각을 하고, 변화무쌍한 상상을 하며, 일상에서 윤리적 기획과 조정을 한다. 철학은 영혼에 '대해' 논하는 게 아니라, 영혼을 '통해' 수많은 철학적 논리를 전개한다. 마치 과학이 뇌의 탐구를 '통해' 뇌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물리적 법칙을 새롭게 터득해가는 것처럼...
(/ p.73)

5. 크로노스와 서사 권력 - 인간은 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
여기서는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지난 시대의 해석을 답습해 '시간의 신'으로 묘사하던 크로노스를, 자기 이야기로 세상을 가득 채우고 싶어 하는 '서사 권력에의 의지'를 상징하는 신으로 새롭게 읽어낸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연적 시간' 이외에 현대물리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원자의 가역적 운동과 그래서 도입한 '허(虛)시간'의 개념을 언급하며, 인간이 시간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고, 그 하나로서 이야기를 통해 시간을 경험하고 소유하고,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자연적 시간' 이외에 인간에게 삶을 지향하는 '서사적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수많은 이야기로 세상을 가득 채워갈 문화적 인간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시간은 서사적 양식으로 엮일 때 인간의 시간이 되며, 이야기는 시간적 존재의 조건을 기술할 때 그 의미가 충만해진다.〔...〕이야기는 정체를 드러낸다. 인격적 정체성은 서사 행위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드러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누구든 '이야기에의 의지'를 가진다.
(/ pp.90~91)

6. 피그말리온의 타자성 - 로봇이라는 새로운 타자를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새로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변해갈 것인가?
저자는 자신이 만든 상아상 여인을 너무나 갈구해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빌었던 피그말리온의 신화에서 자신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려는 인간의 오랜 열망이 내포한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다. 자신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가는 인간은 새로운 타자를 만들어 그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로이 정립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로봇이 일상화될 미래를 단지 인간 생활의 획기적 개선 정도로 전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일신할 계기로 바라보는 저자의 탁월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로봇의 등장이 인간에게 던질 다음 질문은 좀 더 근원적이다.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인류는 자신보다 뛰어난 자질과 능력의 타자가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겨야 할지 모른다. 그것이 결국에는 근원적인 자기 변화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 pp.108~109)

7. 슬픈 미노타우로스 - 인간은 인간과 다른 생명, 인간 아닌 존재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저자는 미노타우로스를 살해한 영웅 테세우스의 신화에서 인간이 '인간과 다른 생명'을 제거하여 자기동일성을 강화해가는 과정을 읽어낸다. 여기서 심각한 질문이 제기된다. 생명이 제거되고 정리될 수 있는 대상인가? 다른 생명을 정리해 자기동일성을 강화할 만큼 인간이 신성한 존재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차이의 세계'를 삶의 조건으로 지닌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윈이 처음으로 사유한 '개체적 차이' 그 자체를 생명으로 인식하고 긍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미궁에 빠지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차이를 사유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미노타우로스다. 그는 슬픈 눈망울로 생명계의 다양성을 알리며, 점점 더 많은 '인간과 다른' 존재들을 맞이할 인간에게 공존 능력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생명계의 다양성을 거부하면 스스로 미궁에 빠진다. 그래서 결국 진짜 무시무시한 미노타우로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테세우스는 미궁에 칼과 실타래를 갖고 들어갈 게 아니라 함께 나눠 먹을 꿀단지를 들고 갔어야 했는지 모른다.
(/ p.129)

8. 아프로디테의 신호 - 성(性)에 대한 탐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은 진실을 밝혀줄 것인가?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아프로디테와 제우스의 애정 행각 못지않게 인간의 역사도 궁극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하는 듯하다. 그들은 이제 '성 환원주의'라고 칭해도 될 만큼, '성선택'의 개념으로 인간 진화의 모든 과정을 설명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저자는 과학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었던 '성(sex)'에 대한 탐구가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성 환원주의적 추론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관찰된 상식'을 보편화하여 서술하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과 생명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비너스의 탄생〉(보티첼리 作) 속 아프로디테의 무표정한 얼굴이 지닌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상징하듯, 자연과학을 비롯한 제 학문이 '성'에 대한 탐구가 열어준 무한한 사유의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여 설득력 있는 '과학적 사랑 서사'를 써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생명체)가 섹스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비과학적이라는 뜻이다. 반면 우리가 섹스를 다룬다는 것은 마치 영혼이 뇌에 대해 연구하듯이 자아가 자신(自身)에 대해 탐구한다는 뜻이다.
(/ pp.141~142)

9. 편재하는 나르키소스 - 스마트폰, 넷북 등 휴대용 멀티미디어는 열린 공동체가 아니라 자기도취적 세계로 빠져드는 '디지털 나르키소스'들을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자신을 확장하는 데 몰두하다가 그 확장물, 즉 미디어에 의해 결국 폐쇄된 체계에 갇히고 마는 인간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았다. 저자는 여기에 '극단적인 자기애'의 상징을 더해 현대의 미디어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개막과 함께 사람들은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한 열린 공동체를 꿈꿨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휴대용 멀티미디어의 자아 집착적 활용과 인터넷 커뮤니티의 배타성이 '디지털 나르시시즘'을 낳으며 닫힌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이런 나르키소스적 성격은 독서의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킬 가능성이 크지 않은 문자 문화의 안티 나르키소스적 성격과는 대별되는 점이다. 하지만 저자는 문자 문화에까지 스며든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포착해낸다. 독서에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내포한 윤리성이 오늘날 문자 문화의 수호자들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여 문자 문화 역시 또 다른 차원에서 자기도취적 나르키소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튼튼하게 자리 잡은 윤리 기준은 이제 '자기애'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윤리 체계가 뿌리를 두고 있는 전통적 인간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물질과 인간 사이에서, 물질과 물질 사이에서, 물질적 성과의 다양한 매개 현상에서 새로운 윤리관을 위한 사유의 씨앗들을 성실히 거두어야 한다.
(/ p.159)

10. 디오니소스와 포도주의 인식론 - 인간은 결국 '문화'를 통해 '진리'를 만들어가는 존재가 아닐까?
저자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사이를 대립이 아니라 공생적 긴장 관계로 보았던 니체조차도 '아폴론적인 것'이 환상이나 환영으로 은폐한 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도취의 상태에서 폭로해낸다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원초적 자연적인 것'이고, 그것이 곧 궁극의 진리라고 보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 비판의 핵심은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의 세계로 들어서는 관문이 바로 포도주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포도주의 의미, 즉 그것이 고도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높은 수준의 문화적 매개를 통해서만 자연적인 것에 다가갈 수 있다, 아니 그 자연적인 것이 결국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 또한 매우 문화적이라는 통찰은 진정한 세계란 없다는 극단적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저자는 존재의 의미를 제공하는 세계가 없다는 것을 한탄하는 대신에 그러한 세계를 가능한 한 미적으로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 '허구'와 '기만'을 미적으로 의미 있게 구성하는 '존재의 예술가'가 됨으로써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와 존재의 실재, 궁극의 답을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심연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탐구자, 창조자로서의 인간이 지닌 비극이자 아름다움이다.

매개체로서 포도주는 폭로의 기제가 아니라 구성의 기제이다. 베일을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뭔가 새로 만들어내는 기제이다. 그래서 혼신의 창조적 도취가 가능하다. 포도주는 진리의 황홀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만들어낸다. 포도주는 다른 차원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촉매이다. 그것은 진리의 폭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안적 진리'를 위한 매체이다.
(/ p.182)

11. 스핑크스와 인간의 초상 - 인간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될 것인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인간의 다양한 차원을 보여준다. '네 발의 인간'은 인간이 네 발을 가진 동물에서 진화해온 과정을 상기시키며 인간과 동물을 연속선상에 놓고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는 인간의 타자성을 어디까지 연속적으로 인식하고 공존의 길을 찾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세 발의 인간'은 완벽한 도구를 창조하여 '완벽한 나의 분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열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에 대한 인식을 요구한다. 다음으로, 직립 보행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된 '두 발의 인간'은 인간이 우주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뜻한다. 여기에 저자는 '발 없는 인간'을 더해 사유의 폭을 확장한다. '발 없는 인간'은 인간이 발을 딛고 있던 지지 기반인 지구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주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포스트 글로브(Post Globe) 시대를 맞아 인간이 지금까지의 지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에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준비할 것을 말하고 있다.

관찰자가 지구 밖의 별에 상주한다는 근본적 위치 이동이 실현되고 관찰의 조건이 획기적으로 바뀌면, 우주적 패러다임에 따른 새로운 과학 기술 혁명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때 인간의 제 학문은 그들 사이를 연계 관통하는 어떤 '빛'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 p.210)

12. 사유 매체로서 변신 이야기 - 고대의 이야기인 신화가 어떻게 현실을 반영할 수 있을까?
신화가 현재의 이야기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변화, 변신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과관계로 정리하려는 인간은 종교적 믿음은 물론이고 과학적 탐구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항상성, 한결같음의 매력에 쉽게 빠진다. 그래서 불변의 신화를 창조하려는 열망을 버리지 못한다. 변화를 이야기하는 신화는 인간 인식의 이러한 특성을 비집고 들어가 그 굳건한 믿음을 깨고 풍부한 의미, 창조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신화가 열어준 넓은 시 공간에서 인간은 현실의 문제를 비추어 보며 마음껏 사유할 자유를 얻는다.

변신의 서사에는 초월적 믿음이 굳건하게 만든 최고의 원인도 없고, 불변의 절대자인 유일신도 없다. 경망스럽게 변하는 신들이 있을 뿐이다. 믿어야 할 신도 없고 믿을 만한 신도 없다. 그러므로 변신 이야기는 열린 가능성과 자유의 시 공간을 제공한다. 변신의 신화는 하늘 높이 날다 추락하더라도 이카로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 p.228)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8종
판매수 7,069권

(현)영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청소년 문화포럼 편집위원, 고전해석 및 토론 세미나 교수

저서

[철학광장](2010),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2010), [메두사의 시선](2010), [서사철학](2009)

그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머물지 않고,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답하고자 한다. 학습으로서의 철학하기를 넘어 춤추듯 즐기는 ‘필로소페인’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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