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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룸 푸른 얼굴 : 윤석남의 미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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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역사, 윤석남
    지난 9월 27일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나무를 자르고 깎은 후 밑칠을 하고 다시 다듬는 열두 번의 공정을 거쳐 만든 개 조각상이 무려 1,025개나 되었기 때문이다. 제작하는 데 5년이 걸린 이 대작이 담고 있는 소재 외에도 전시작에 흐르는 작은 것들에 대한 연대와 애정이 많은 매체의 조명을 받았다. 윤석남의 작품이었다.
    [핑크 룸 푸른 얼굴 - 윤석남의 미술 세계]는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한 윤석남의 개인전 [1,025: 사람과 사람없이](2008. 9. 26~11. 9)와 관련하여 기획되었다. 이 책에서는 여성에서 유기견으로 이어지는 윤석남의 작업을 관통하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40대의 나이에 화단에 데뷔한 윤석남은 1985년 다른 여성작가들과 함께 개최한 [반에서 하나로>전 이후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로 여겨져왔다. 작가 윤석남의 삶을 거론할 때 첫 번째로 언급되는 이력은 마흔 살이 넘어 미술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반에서 하나로], [여성과 현실]과 같은 초기 전시를 이끈 윤석남은 이후 999개의 여성상으로 여성의 강인함을 표출한 [999], 오늘을 살아가는 중산층 여성들의 불안한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핑크 룸] 등의 작업을 통해, 억눌려 지내온 모든 여성들을 복권시키고 스스로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의 모습을 재현했다.
    윤석남에게 삶은 작업의 연장이었다. 작품 활동 외에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여성문화예술기획의 대표로,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여성들의 연대를 도모하고 문제의식을 제기해왔다.

    여성주의에서 생명에 대한 연민과 존중으로 나아가다
    1996년에 시작된 [핑크 룸> 연작은 윤석남의 작품 중 가장 화려하면서 무겁고 우리의 신경을 곧추세우게 만든다. 여성의 끊임없는 갈등과 욕망, 현실과 심리의 복잡한 양상은 히스테릭한 형광 핑크색으로 제시된다. 꽃무늬가 박힌 형광 핑크빛 천으로 씌우고 야광 띠를 칠한 서양식 의자와 바닥에 뿌려진 핑크 구슬들, 까치발로 서 있는 여자가 연출하는 현란함은 여성들의 박제된 삶의 공간이었던 방을 악몽의 현장으로 바꾸어놓는다. 분출하는 히스테리처럼 의자 위로 솟구친 쇠갈고리들은 더욱 두려움과 공포를 야기한다.
    형광 핑크를 통한 자아 반추의 시간은 [블루 룸]의 청색 모티브와 [빛의 파종] 등을 준비하며 희망과 도전의 단계로 넘어간다. 1997년에 발표한 [999]에서는 전시장을 가득 메운 999개의 여성 소형 목상들을 통해 이름 불리지 못한 채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살다 간 수많은 여성 선조들을 되살려냈다. 빛을 받은 인물상들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작지만 여러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신작 [1,025]는 자연을 정복과 억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타자의 영역을 여성 이외의 대상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최근의 여성주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윤석남은 여성으로서 소수자의 삶을 살아온 경험 덕택에, 인간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힌 채 인간만을 우선시하는 사고를 지양하고, 이주노동자, 동물, 환경 등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데 가치를 두는 여성주의의 지향점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다.
    버려지거나 비참하게 죽어간 생명들을 애도하며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떠올리고 자연과의 상생과 조화가 가능한 삶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1,025마리의 유기견들이 윤석남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창조된 것이다.

    윤석남의 미술을 보는 여섯 가지 시선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망라한 화보들

    [핑크 룸 푸른 얼굴 - 윤석남의 미술 세계]는 여섯 편의 글과 세 부분의 화보로 구성되어 있다.
    윤석남의 신작 [1,025]를 중점적으로 거론한 고카츠 레이코는 [역사를 관통하는 여성의 힘]에서,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인간이나 동물, 다른 생물을 보살피는 행위야말로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짊어져온 행위이며 여성 고유의 힘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여성주의 미술을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해온 큐레이터 고카츠 레이코는 1,025마리의 개들을, 일본의 불교미술 중 헤이안 시대에서 에도 시대까지 만들어진 천체불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미술사학자 김현주는 나이 사십이 넘어 “주부화가”로 시작한 독학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윤석남의 미술과 여성 이야기]를 통하여 전개한다. 동시에 내용과 형식의 차원에서 윤석남의 작품이 어떻게 당대 여성주의 담론과 미술에서 주요 쟁점을 이끌어내는지, 또는 담론을 새롭게 구성하면서 여성주의 미술을 써나가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에 실린, 윤석남의 이전 전시 카탈로그에 수록되었던 세 편의 글([애타는 토템들의 힘찬 눈물], [모성, 역사 그리고 여성의 자기진술], [윤석남의 눈·빛])도 타자와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윤석남의 일관된 견지를 반영한다.
    [애타는 토템들의 힘찬 눈물]은 윤석남의 오랜 지기인 김혜순 시인과의 대담이다. 김혜순의 질문은 직설적이다. 작업과 연관되었을 법한 개인사들을 진솔한 답변으로 이끌어내고, 윤석남의 작품을 처음 본 관객처럼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묻는다. 윤석남 역시 시적 통찰로 가득한 육성으로 자신의 내면과 작품상에 대해 낱낱이 고백한다.
    조(한)혜정의 [모성, 역사 그리고 여성의 자기진술]은 “뭔가에 이끌려서 여정을 떠난 다른 많은 여성들이 다른 장르를 통해 말해온 모성에 대한 이야기”와 윤석남이 다룬 모성에 대한 미술 작품을 문화인류학자의 시각으로 연결 짓는다.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백지숙은 [윤석남의 눈·빛]에서 [999]를 구성하는 작은 여인 목조상들에게 저마다 “생명의 빛”이 깃들여 있다고 본다. 윤석남의 어머니가 [999]에 이르러 하나인 동시에 전체인,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그 자체로서 ‘완벽한’ 존재인 여성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외에도 윤석남의 초기작부터 최신작을 담은 수많은 화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다.
    윤석남의 삶과 작업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 닮은꼴이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고, 일흔이 된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동료와 후배들에게 마음을 베푸는 모습에서 기존의 어머니상을 넘어서는, 여성의 또 다른 역할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에 실린 풍부한 도판과 글을 통하여 윤석남의 열정과 작품 세계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영매, 윤석남 - 안경화
    역사를 관통하는 여성의 힘 - 고카츠 레이코
    윤석남의 미술과 여성 이야기 - 김현주
    애타는 토템들의 힘찬 눈물 - 김혜순[대담]
    모성, 역사 그리고 여성의 자기진술 - 조혜정
    윤석남의 눈·빛 - 백지숙

    작가 약력
    주註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두 번째 개인전 [어머니의 눈: 윤석남](1993, 금호미술관, 서울)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작품에는 ‘여성=어머니의 힘’이라는 주제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윤석남은 이 개인전에서부터 버려진 목재를 조립하여 여성의 신체를 표현하고 조각하는 기법을 취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버려진 목재의 거친 옹이나 구멍, 검은 얼룩과 균열처럼 보통의 조각가들이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결함을 그대로 살려서 여성들의 마음의 고통과 제한된 행동 등을 표현하는 신체의 상처로 절묘하게 바꾸어놓은 것이다.
    ( /p.27~28)

    윤석남은 이 전시회에 신작 [핑크 룸]을 출품했다. 마루에 핑크빛 비즈를 촘촘히 깔고 갈고리가 튀어나온 소파와 의자에 동화된 여성, 나무판 모양의 여성을 배치한 설치는 2000년까지 이어지는 연작에 등장한다. 이전까지 어머니 세대 여성의 고뇌와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힘을 그려온 윤석남은 이 연작에서 자기 세대의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현대에도 어머니 세대와 마찬가지로 행동과 마음이 속박당하여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내면을 표현했다. 이 [핑크 룸] 연작에는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이 지닌 강인함이나 힘은 없고, 기이한 형광색 핑크와 번쩍대는 나전의 목판과 새틴 천으로 표현된 옷이 보여주는 허영의 아름다움과 허무함이 드러난다. 바닥에 흩어진 비즈 때문에 비틀대거나 넘어지는 불안정함이 덧붙여져 오히려 여성 내면의 유약함과 광기에 이르는 고뇌가 강조되었다.
    (/ p.31)

    '사람들이 버린 개들을 거두어 기르는 이애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필요할 때 데려왔다가 싫증이 나면 생명체를 물건처럼 버리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개는 태생이 사람과 같이 살게 되어 있는 동물이다. 개가 우리에게서 얻는 것보다, 우리가 개에게서 얻는 것이 더 많다. 버림받은 생명들의 슬픔과 외로움에 대한 연민이 뭉쳐져 [1,025]의 계기가 되었다. 연민. 존중보다도 내게는 연민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불쌍하다. 그러나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 p.44 )

    형광 핑크를 통한 자아 반추의 고통스런 시간은 <블루 룸>의 청색 모티브와 <빛의 파종> 전시 등을 준비하며 점차 희망과 도전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으로 1997년에 열린 이 전시에서 윤석남은 [999]를 발표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999개의 여성 소형 목상들은 각양각색이며, 같은 크기도 모양도 없고 똑같은 인물도 없다. 이것은 이름 불리지 못한 채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살다 간 수많은 여성 선조들이 집단 소환된 현장이다. 여기서 빛은 과거를 밝히고 이들의 몸을 자유롭게 분산시켜 파종하는 수단이다.
    (/ p.93~94)

    윤석남이 지난 5년간 매달려온 작업은 이제까지의 작업과 사뭇 달라 보인다. 우선 인물이 사라지고 1,025마리의 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2003년 1,025마리의 유기견을 돌보고 있다는 이애신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접한 그녀는 놀람 반 호기심 반으로 동생과 딸을 대동하고 그 현장을 찾았다. 유기견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그 할머니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것은 21세기의 화두인 돌봄의 윤리를 실천하는 삶, 그 자체였다.
    (/ p.100)

    '목수들은 나무의 둥근 면들은 잘라버리고 네모진 것만 쓴다. 버려진 그 둥근 나무들, 화목으로 쓰일 것들을 사 와서 작품에 썼다. 나무의 결이 부드럽고 쭈글쭈글했다. 늙은 여자의 피부 같았다. 표면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얼굴을 그리면 여자가 되었다.'
    (/ p.105)

    '나는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을 가져다 작품에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 작품 안에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자가 그렇다. 분명 부엌에서 여성들이 서성거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녀들은 그곳에 부재한다. 의자 작품들은 이렇게 부재하고 불안한 여성의 자리를 얘기하고 싶어서 만들어졌던 것 같다.'
    (/ p.108)

    '나는 정말이지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신체가 길게 늘어나서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그러나 삶 속에선 같은 여성들끼리도 잘 닿아지지 않는다. 그건 인간이 갖고 있는 본래적인 외로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 p.111)

    '이전에 작업실이 아파트 지하실에 있었다. 아파트 주변엔 버려진 가구들이 많다. 그 버려진 가구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버려진 것들에서 간혹 반짝거리는 것들을 주웠다. 그것을 주워다가 내 작품에 집어넣어서 빛을 주고 싶었다. 버려진 창틀을 주워 와서 깨어진 유리들을 붙여 보았다. 그런 작업을 통해 폐쇄된 공간에 갇힌 여성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의자 등받이에 여성들의 얼굴을 끼워 넣기도 했는데, 그럴 땐 아마 닫힌 공간에서 떨어져나가고 싶은 욕망을 반대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미술로서 고상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실 삶은 천박하지, 고상하지 않다. 나는 내 작업으로 고상하다는 아우라를 깨고 싶었다. 오히려 비천한 것들을 그대로 갖다 써서 현재 우리 인간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 p.117~119)

    '억눌리고 소외받고 했던 사람이 더욱 폭넓은 이해와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소외받은 사람이 더욱 넓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믿는다. 30대 초반에 내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치유할 길이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폭발하는 광기에 가까운 상태가 가라앉아갔다. 나는 그것을 김혜순의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에 나오는 ‘들림’에 가까운 상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들렸었다. 정신적인 방황, 자기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의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무당 굿하듯이 그림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나의 페미니즘이다.'
    (/ p.125~126)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50000
    출생지 -
    출간도서 20종
    판매수 3,076권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생년월일 1948~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23종
    판매수 5,107권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시대 흐름을 읽고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온 학자로서 제도와 생활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문화해석적 시대 탐구를 해왔다. 1980년대에는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어 여성주의적 공론의 장을 열어갔으며, 1990년대에는 ‘하자센터’를 설립해 입시교육에 묶인 청소년들이 벌이는 ‘반란’을 따라가면서 대안교육의 장을 여는 데 참여했다. 200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적 돌풍에 휘말린 아이들과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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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월간미술] 기자로 활동했고 아트선재센터,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학예사로 근무했으며, 현재 백남준 아트센터 학예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공저 [핑크 룸 푸른 얼굴](글쓴이 안경화 외 19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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