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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샀어 - 2008년 제39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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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깊은 밤, 고독과 열정으로 가득한 ‘소설가의 방’으로의 초대, ‘나’를 향한 침잠에서 ‘타인’과의 소통으로 올해로 등단 13년째로 접어든 작가 조경란이 다섯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문학과지성사, 2007)를 발표했다. 이미 북미를 비롯한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의 수차례에 걸친 낭독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최근에는 장편소설 [혀](2007)의 판권을 국내 작가로서는 최고 대우를 받으며 해외 유수의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 등 자신의 문학적 자장을 꾸준히 밖으로 넓혀온 조경란은, 그동안 ‘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주요 소설가’ 그 부동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면서 독자와 문단의 신뢰를 받아왔다. 1996년 단편 [불란서 안경원]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이후, 다섯 편의 소설집과 다섯 편의 중·장편소설을 발표해온 조경란은 크게 “시적 광휘와 서사적 긴장”이 어우러진 자재롭고도 밀도 높은 문체로 문단과 독자의 신망과 기대에서 좀체 벗어난 적이 없다. 심미적 소설이 가닿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많은 이들이 슬픔이 응축된 단정하고도 왠지 모를 서늘함을 매복한 조경란의 소설에서 찾고 위안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 만에 발표한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풍선을 샀어](2007 이수문학상 수상후보작, 2006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를 비롯해 직전의 소설집 [국자 이야기] 이후 올해 봄까지 계간지에 발표해온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덟 편 모두, 작가 개인이 그리고 문학출판계 시장 전반이 다변화를 요구받았던 그 4년의 시간 동안 문득 그 화려하고 분주한 관계들을 뚫고 찾아드는 고독, 글쓰기 자체에 대한 자의식과 고민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여덟 작품 속 화자는 하나같이 1인칭 주인공 ‘나’다. 여기에는 가족보다 더 긴밀한 유사가족의 틀 속에서 생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타인과의 교통이 그다지 원활하지 못한 예민한 성격을 지녔다. 혈육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과 그로 인한 깊은 상처, 그리고 제자리를 버리고서야 비로소, 함께 있을 때 더욱 외로웠던 공포에 가까운 방황에서 자유로워지고, 몰랐던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 새로운 시작에 다가서는 인물들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또 다른 축은 글쓰기의 어려움과 책읽기의 행복, 이른바 “책의 존재론”을 두고 고민하는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글쓰기를 통해 지난한 고통을 극복해간다는 측면에서 작가 본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타인 혹은 외부와 벽을 쌓고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주인공 ‘나’들은 소통이 실현되는 실제적, 구체적인 상황을 접하고 각기 다른 치유의 길을 모색하고 때로는 도달하기도 한다. 작가 조경란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세련된 얼개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한데, 1인 ‘나’의 자기성 혹은 개인성이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작가를 움직이고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에서 그 구성의 묘미가 빛을 발한다.

갈등과 번민, 상처와 슬픔 혹은 그보다 더욱 극적인 열망과 환희 앞에 선 인간 개개인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천착해서, 때로는 날선 과도로 그어도 보고 둔중한 가위날로 잘라냈다가 그 모든 것들을 허허롭게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여유를 보이는 등 보다 깊은 상처의 근원을 건드리고 집요하게 좇아가는 이른바 조경란 소설의 본령을 이번 [풍선을 샀어]에서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그 상처를 치유하는 길을 모색하는 성숙한 인물들을 만들어가는 작가적 역량, 이른바 등단 13년차 작가의 “유연한 면모, 담담한 여유”(차미령)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바로 이번 소설집 [풍선을 샀어]가 이룬 값진 성과다.

소설집 [풍선을 샀어]를 읽어가다보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문체와 더욱 원숙해진 철학적 사유로 견고한 단편소설의 완결성, 읽는 이로 하여금 순간 움찔하게 만드는 긴장미를 만나게 된다. 작가의 내밀한 심경을 훔쳐보는 은밀한 묘미, 더불어 1인칭 주인공 화자 ‘나’로 대변되는 작가가 타자와 교감하기 위해 극심한 떨림과 불안의 고통을 감내하고 속 깊은 숨결, 따스한 손짓을 건네는 지점이 그러하다. 고통과 불안을 껴안고 ‘나’에게 솔직해지기, 관대해지기, 그러고 나서 타인과의 화해에 이르는 쉽지 않은 고행의 과정을 오롯이 읽는 독자의 몫으로도 남겨놓는 것, 조경란의 이번 소설집에서 독자가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는 대목일 것이다.

목차

풍선을 샀어
달팽이에게
형란의 첫번째 책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밤이 깊었네
2007, 여름의 환
마흔에 대한 추측
달걀

해설 원의 형상학, 책의 조재론_차미령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그때 나는 학문의 청춘을 살고 있었으며 아름다운 소년을 좇듯이 진리를 좇고 있다고 생각했다. 춥고 고독했으나 궁핍과 환상만으로도 인생은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물이 쏟아지듯 십 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나는 내 삶에 대해 큰 용기가 생기지도 않았고 대담해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건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우정과 신뢰 속에서의 대화와 휴식, 지금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니체는 우리에게 더 나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로 세 가지 예를 들었다.
(중략)
만약 내가 고립적으로 살아갈 운명이라면 바로 그것 때문에 나에게는 독자성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내부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그것을 변화를 뜻하는 것일지도 몰라.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삶의 특별한 의지가 있다면 그건 아마 풍선처럼 둥글고 부풀어 있을 것 같다. 내 이마가 그의 턱에 닿도록, 나는 살짝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다.
(/ 풍선을 샀어)

나는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매우 영적인 순간, 신성한 시간이라는 것을. 내가 처음 목격한 평화로운 죽음이었고 하지 고모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 고모가 낙타라면 고모는 이제 더 넓고 탁 트인 초원으로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길지는 않지만 튼튼한 다리로 천천히,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하지 고모를 요지 고모와 나는, 때로 소리보다 더 음악적인 깊고 고요한 침묵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이따금 안개가 차오르듯 정신이 문득 몽롱해지는 것도 여전하다. 내 안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느낌 또한 변한 게 없다. 그러나 나는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진짜의 내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것만은 알게 되었다. 희고 둥근 달팽이 알, 그것은 지금 내 눈에 고인 이 눈물을 닮은 것 같다. 고모들이 내 손바닥 안에 쥐여주고 간 것, 나는 기적적인 생을 받아 쥔 사람이다.”
(/ 달팽이에게)

이 지도에 점을 하나 찍는 순간, 나는 어쩌면 지금 내가 책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어요. 없던 점 하나를 새로 찍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으로 만든, 내가 새로 발견한 그 무엇을 내려놓는 작업이었거든요.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인가요, 쓰야키 씨. 쓴다는 건 종이 위에 나를, 나의 표상 하나를 거기에 내려놓는다는 게 아닐까요. 이것을 보잘것없는 지도 한 장에 불과하지만 이 얇고 가벼운 한 장 종이 위에 나는 나의 첫 번째 표상을 내려놓았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첫 번째 책입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단 한 권의 책과 조우할 수 있듯이 이 지도 또한 누군가와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 형란의 첫번째 책)

나는 내 인생이 옳은 쪽으로 흘러가는지 그렇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 게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는 건지도 몰랐다. 생각을 하는 것만이 지금 내 운명과 맞서는 가장 열정적인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중략)
할머니는 나에게, 우리에게는 수없이 많은 문이 있는데 닫힌 문 하나를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느라 새로 열린 문을 보지 못하는 거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다시 말했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전엔 아무 일도 진짜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글을 쓰면 고통의 원인이 줄어들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이 하나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도 말이다. 자신의 삶을 끝내는 것은 한 권의 책을 끝내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나의 책. 아직 씌어지진 않았지만 이렇게 읊조릴 때마다 안도가 되는 것을 느낀다.
(/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그를 만날 때면 북풍 속을 달리는 기차 맨 앞자리에 나란히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긴 여행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여행은 많은 타인들을 통과하며 이루어질 거였고 B는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여행이 나 자신에게로 떠나는 여정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중략)
의혹도 베일도 다 사라지는 느낌이지, 라고 B는 밤에 관해 말했다. 밤이 오면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고 B는 말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확실하게 살을 찌르는 바늘, 얼음은 그냥 얼음이 아니라 인식을 비춰주는 거울. 다만 그런 만을 할 때 밤의 숲에서 길을 잃은 듯한 눈빛, 불안한 망설임으로 흔들리던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해 보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알고 있었다. 밤이 얼마나 생동적이고 매혹적인지.
(중략)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체험하고 배운 모든 것에서 문을 보았다. 그 문은 밖을 차단하지만, 열린 통로처럼 내부와 외부를 연결시켜주기도 한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삐걱거리는 오래된 문을 절반쯤 연 느낌이다. 그 틈새로 두 개의 세상이 보이는 듯하다. B가 말한 절대적인 어둠의 세계, 그리고 그 너머에 있을 눈부신 빛의 세계. 그의 죽음은 나에게 머뭇거리다 포기하게 한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떤 사람은 아내가 되고 어떤 사람은 부모가 되고 배우가 되고 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글을 쓰기도 한다. 중요한 일을 겪게 되고 났을 때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나의 체념은 그를 잃음으로써 완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쓰겠다는 생각보다 쓰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한 그런 때가 온 것 같다.”
(/ 밤이 깊었네)

“타인에게 친화적이고 관대하며 게다가 능동적인 사람들을 보면 더럭 겁부터 난다. 나는 잘하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인데 중요한 것은 꼭 더 못한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글 쓰는 일만큼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남녀관계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거짓말쟁이는 진정한 미식가처럼 혀로 음식을 맛보거나 말을 밖으로 뱉어낸 후 입술이 맞닿은 뒤에 탄성이 이어지는 정교한 소리에 큰 만족감과 기쁨을 느낀다. 내 인생의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은 모두 여름에 일어났다. 내가 가장 불완전해지는 여름. 이백 개도 넘는 몸속의 뼈들이 서로 달그락달그락거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문을 열어젖히게 되는 여름, 그 사이로 재빨리 마음이 달아나버리는 여름. 여름만 되면 밧줄 하나가 툭 끊어진 돛폭처럼 나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만다. 여름이 오면 종이로 만들어진 배를 타고 넘실거리며 강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배가 기우뚱거리고 흔들리면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 끝에 무엇일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나는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 2007, 여름의 환(幻))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9~
출생지 서울특별시
출간도서 27종
판매수 10,735권

1969년 12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으로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국자 이야기][풍선을 샀어][일요일의 철학],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혀][복어], 짧은 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이야기][백화점―그리고 사물·세계·사람] 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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