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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인 '기억'과 '망각'의 의미를 살펴본 책. 다양한 문화적 매체가 기억과 망각을 중심으로 어떠한 문화적 역할을 수행하는지 검토했다.

인간의 기억을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을까
기술의 발달로 엄청난 저장 능력, 이른바‘인공 기억’능력을 갖춘 전자 매체(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인식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기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계적 장치의 기억이 들어서고 있다. 이로 인해 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경험적?학문적 정보를 축적하고 통합함으로써, 기술 매체가 인간의 기억을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의‘기억’은‘저장하기’와‘불러오기’로, 망각은‘삭제하기’로 대체되는 것인가? 컴퓨터가 인간의 사유와 느낌을 대체하고 기억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기억하기 위해, 망각하지 않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기억 매체를 만들어왔지만, 이제 그 매체에 의해 인간 존재 자체가 망각될지도 모르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씌어진《기억과 망각―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은 소설, 민요, 역사 드라마, 영화, 컴퓨터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기억과 망각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화학의 시대, 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문화학은 거의 모든 사회 현상을 분석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롭고 광범위한 연구 주제와 방법으로 점점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학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서로 다른 학문들을 혼합하는 문화학은 개별 학문보다 포괄적이며, 이제 문화학은 문학, 철학, 사회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새로운 총체적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화학이 득세하면서 텍스트 중심의 문학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문화학과 문학의 상관관계를 조명해보고 문학과 문화학이 공존할 수 있는지, 문학이 문화학적 사유와의 만남 속에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찰한다. 또한‘문학 텍스트를 통한 문화 연구’,‘문학 해석의 문화학적 전환’등과 같은 문학과 문화학이 서로 보강하는 덕목을 밝힌다. 이 책은 문학과 문화학이 함께 소화해낼 수 있는 주제로 기억과 망각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문학과 문화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본다.

기술 매체와 문자 매체의 조화
기억과 망각을 중심으로 문학과 문화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찰하려는 시도는 시대의 변화와 맞물린 외적 요인과 결부되어 있다. 오늘날 기술 매체를 토대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기억이 문자를 토대로 한 전통적인 기억과 대치하고 있다. 특히 대학에서는 컴퓨터와 영상 매체가 추종되면서 문자 문화가 배척당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매체의 발전과 확산을 두고 문자 매체의 종말을 점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문자 매체가 새로운 기술 매체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 매체와 병행하면서 우리 문화의 중추적 동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두 매체 간의 기능적 차이를 인정하고 두 매체의 기억과 관련된 서로 다른 역할을 모색한다. 이는 문화 전승의 핵심 수단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서 도외시되고 있는 문자 텍스트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 매체가 문자를 통해 시간적 여유를 두고 비판과 분석이 가능한 형태를 지녔다면, 기술 매체는 영상을 통해 정보를 신속하게 간직하고 지우고 다시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기억을 만들어냈다. 이렇듯 상이한 기능을 지닌 두 매체의 공존을 통해 문화의 다양한 전개와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기억과 망각, 다양한 시각
모두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각 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문화학으로의 전환?-문(예)학의 위축과 확장에 대하여에서는 문화학과 문학의 상관관계를 전반적으로 조명해보고 문학이 문화학적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의식해야 하는지, 문화학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문학이 문화학적 사유와의 만남 속에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고찰한다. 제2장 그리스의 문자 문화와 문화적 기억-호메로스의 정전화 과정을 중심으로에서는 그리스를 토대로, 텍스트라는 문화의 형식이 문화적 기억에 의해 공동체적 민족의식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민족 발생을 유발하는 과정과, 이 텍스트들이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분석한다. 제3장 민요에서의 기억과 망각에서는 문화 전승의 구술성과 기록성의 측면을 살펴보면서, 민요에서 민족 공동체 의식에 대한 기억과 변형이 어떤 측면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검토한다. 제4장 기억과 망각 사이의 역사 드라마와 과거 구성에서는 기억의 대표적인 문학 텍스트 형식인 역사 드라마를 살펴보고, 역사 드라마의 특수성이 기억과 망각의 상관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텍스트 안에 구체화되는지를 고찰한다. 제5장 기억의 허구성과 서사적 진실에서는 인간의 정신 영역에서 나타나는 기억과 망각 현상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해 서사와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제6장 망각의 담론, 기능 그리고 역사에서는 기억이 핵심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문화에서 망각이 어떻게 표현되며, 망각이 인간의 삶과 관련되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제7장 기억과 망각의 역설적 결합으로서 글쓰기에서는 기억과 망각을 주제로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카프카의 텍스트와 글쓰기를 고찰한다. 카프카의 문학 텍스트를 문화에 대한 창조적 기억 행위이면서 새로운 해석이라고 평가하고 문화학과 문학 간의 교차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제8장 문화, 매체, 기억과 망각에서는 문자 매체와 기술 매체와 관련하여 기억과 망각의 특징을 조명한다. 즉 매체와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