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생각의 속임수 : 인공지능이 따라하지 못할 인문학적 뇌

출판사 : 글항아리발행일 : 2018년 08월22일 | 종이책 발행일 : 2018년 07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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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뇌와 로봇의 뇌

학문이 지적 세계를 북돋우고 세계를 좀더 명징하게 보여준다는 목적에서 조금 내려오면 삶과 학문은 분리되기 어렵다, 학자든 독자에게든. 이런 깨달음이 일찍 오면 좋을 텐데 나이 먹어 내공이 쌓인 뒤에야 툭 터놓게 된다. 마침내 공적인 영역에서 한 계단 내려온 학문은 학자 개인의 기억과 경험, 생각 및 추론과 뒤섞여 육화된 면모를 드러낸다. 지난 수십 년간 문학, 심리학, 철학, 과학을 차례로 연구하다가 그것들이 서로 다른 차원이 아닌 한가지임을 이 책은 입증해낸다.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학문은 한곳에 고여 있지 않고 시간과 문제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기 마련이므로 종국에는 잘 짜인 내러티브가 되고 삶을 통찰하는 도구가 된다. 노년에 다가서고 있는 이 책의 저자가 마침내 의식과 감각의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서 단련된 문체로 글을 써내려간 이유다.
포문은 무엇으로 여는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이지만 그 문을 닫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이 책을 꿰뚫는 주제는 인문학적 뇌와 로봇의 뇌(인공지능)를 대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한가운데에 ‘의식’을 성배처럼 품고 시간의 흐름을 통과한다. 그런 와중에 겪는 경험은 수시로 망각과 왜곡을 일으키면서 기억의 넝마들을 이어붙인다. 기억의 넝마는 흔히 왜곡을 일으킨다. 그러니 나쁜가? 그렇게 말할 순 없다. 기억과 생각은 모두 사적인데, 가령 애착과 절제, 공포, 기쁨의 감정을 겪으면서 인간은 미묘한 허구성을 키워가며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즉 기억과 인지와 공감은 개인의 과거 경험의 흔적들에 뿌리내리며 그것의 균형은 삶의 축복이 되기도 한다.
감각과 의식은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나지 않는 쌍두마차다. 감각은 먼저 자리잡은 뇌의 핵이고 의식은 이 핵을 둘러싸고 진화해왔다. 의식은 곧 자의식으로, ‘내 안의 또다른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감각과 의식의 이중 구조 때문에 나의 뇌는 이야기를 꾸미는 천부의 능력을 타고나며, 성공적인 삶 역시 이 이중 구조를 존중해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얼마나 지혜로운 타협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은 어떨까. 애착을 알까? 우선 공감과 인지 공감이 동시에 있어야 ‘인간다움’의 생각을 구성하는데, 이런 이중 마음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로봇의 기능이 효율성과 정확성에 있다면 이중 구조는 효율성을 낮추고 허구성을 높이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년 전 숀 갤리거가 "우리가 현재 만드는 로봇들은 감각이 제외된 어떤 상태, 공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로봇의 뇌는 우리 뇌의 보조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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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지배해온 삶, 하지만 그 아래에 꿈틀대는 ‘감각’,
이 이중 구조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 삶은 녹록지 않다
닳고 닳은 언어를 줄이고 친밀함의 감각을 키우며 느낌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과 뇌과학의 아우름으로 터득된 요령!
삶은 어떻게 문학이자 과학이 되며 미적 경험이 되는가

여섯 개의 질문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여섯 가지다. 고독, 착각, 후회, 집착, 공감 등을 차례로 다뤄나간다. 이들 주제는 기억과 인지라는 뇌의 작용, 문학과 영화 이야기를 통해 삶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즉 프로이트와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은 책의 기반이 되며, 헨리 제임스와 나보코프, 피츠제럴드, 멜빌, 조이스는 우리 삶에 서사를 부여하는 기폭제로서 역할한다. 니체와 하이데거 등 자의식과 시간의 중요성을 논한 철학자들이 빠질 리 없다. 그런 가운데 뇌과학을 학문의 최전선에 내세운 다마지오, 에덜먼, 캔델 등은 이 책이 심리학에서 뇌과학, 인공지능의 주제로 넘어가는 데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내가 본 것, 기억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객관적이지 않고 ‘속임수’를 품고 있다. 게다가 나를 가장 정교하게 속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책은 속임수를 중심에 두고서 속임수를 모르는 이유, 알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의 긍정적 힘을 모색하지만 끝내 베일을 걷어 인간의 파충류적 면모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속임수를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힘든 삶을 조금 쉽게, 덜 후회하며 살 수 있게 만들므로, 잘만 하면 창조력의 근원까지 돼주기에 베일을 조금만 들춰보려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넝마를 끌어안고 사는 늙은이

생각하기는 기억하기다. 기억한다 함은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되새기는 게 아니며 추억을 더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험의 저축에서 끄집어내는 기억하기는 허구가 깃들기에 문학의 행위이며 생각하기도 문학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억을 더듬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만큼 허구는 더 늘어난다. 이처럼 강력한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신비한 문을 이 책은 문학, 심리학, 뇌과학을 통해 열어젖히려 시도한다. 기억은 비유하자면, 이 색 저 색 이어붙인 넝마를 꼭 끌어안고 먹을 것을 내던지는 미친 늙은이, 물구덩이고 진흙바닥이고 아무데나 철썩 주저앉는 개, 쓸모없는 지푸라기다.
그런데 이런 기억에서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점을 놓치지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즉 뇌의 하부 구조, 바로 감각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의 경험 하나를 들어보자. 그녀는 결혼하고 얼마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어른들이 아무리 다정하게 대하고 깊은 배려를 해줘도 늘 변비를 앓았다. 그러다가 남편과 주말에 근교 야산을 나가면 언제나 급한 신호가 찾아왔다. 의식은 편안하다고 나를 속이려 하지만 몸은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중 어떤 게 더 강한가.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느끼는 것일 테지만, 의식은 몸을 억누르고 자신이 더 강하고 순수한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니 뇌의 하부가 상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감각을 억압하면 생각이 맑고 판단이 뚜렷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생각이 끝없이 지연된다. 예컨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를 보면 주인공 소년은 한 누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자기 의식이, 그가 사는 사회가 머릿속에서 사랑을 단념하라고 말하자 그의 몸은 반대로 더 활활 타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사랑이 그토록 힘든 것은 내가 하는 말과 내 몸이 원하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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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하고 메모하고 줄을 치며 몇 번을 읽었다. 인간의 의식과 감정에 대해 함께 고민해오던 오랜 스승을 만난 듯했다. 인문학의 도서관에서 심리학 거장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듯, 심리학자인 나의 두뇌가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혜안으로 발화되는 듯했다. 이 책은 영화·시·문학·철학 그리고 심리학을 재료로 절정의 셰프가 요리한 진정한 융합의 결실이다. 심리학 필독서를 만났다.
- 최기홍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다양한 아우름. 저자가 일궈온 ‘비평적 영토’의 풍경이다. 이 책은 문학·철학·정신분석·심리학·뇌과학·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인문학 에세이다. 가령 김소월, 프로스트, 워즈워스의 시詩,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윌리엄 제임스, 라캉, 영화 몇 편 그리고 저자 자신의 경험과 만난다. 이러한 아우름이 난삽하지 않고 요령要領을 충분히 득得했다는 점이 큰 미덕. 우리의 일상과 삶을 음미하도록 돕는 통찰이 책 곳곳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고독, 착각, 후회, 집착, 공감, 행동, 윤리의 문제까지 인간의 자기 이해를 성찰한다는 점에서 명실상부 ‘인문학’이다. 게다가 그 자기 이해의 논쟁적 최전선, 인공지능이 결론에 나온다. 이 책의 시효가 매우 길 것이며 새로운 통찰의 출발이 될 것이라고 감히 말하는 이유다.
- 표정훈 / 출판평론가

목차 TOP

글을 열며-나는 누구인가

1장 나는 왜 고독한가
2장 나는 왜 착각하는가
3장 나는 왜 후회하는가
4장 나는 왜 집착하는가
5장 나는 어떻게 공감하는가
6장 나는 왜 알면서 하지 않는가

글을 나오며: 윤리적 속임수

본문중에서 TOP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관용을 의미한다. 자의식은 전혀 없으면 양심에 털이 나는 것이고 지나치면 고독의 성에 갇히게 된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너무 어울려도 안 되고, 너무 안 어울려도 안 된다. 너무 어울리다보면 세상이 너를 삼켜버리고, 너무 안 어울리면 술이 너를 삼킨다.
(/ p.86)

타인에 대한 따스한 친밀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와도 연결 고리를 맺지 못하고 아름답거나 아픈 기억이 없는 텅 빈 허수아비처럼 지난 일들을 저장하지 못한 채 고독한 사람이 될 것이다.
(/ p.88)

언어는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닳고 닳아 누더기가 되었다. 그래서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맨살이 여기저기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감각을 살려주고 생각은 조금 덜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생각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세상에서는.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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