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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과 신화에 관한 오역과 오류를 지적하는 비평집. 우리말로 번역된 책들에서 서양고전과 신화에 대한 언급들이 제대로 옮겨져는지 알아보고 그 결과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번역의 올바른 지침을 제안하고, 서양고전과 신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오역과 오류로 다시 읽는 서양고전의 명저들, 그리스로마신화

학계와 출판계에서 ‘오역’의 폐해를 지적하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리고 문제의 심각성을 주장하는 일도 더 이상 신선한 주제가 못되는 것 같다. 오역의 오점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우리의 출판물에 퍼져 있어서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주는 게 상례인 것처럼, 점잖은 일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일련의 책들에 대한 번역평이 주로 담긴 ‘잔혹한 책읽기’는 이러한 풍토에서 보면 아주 시시콜콜하고 쩨쩨한 글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12권의 그리스로마신화와 서양고전, 서양문화 관련서에 대한 ‘잔혹서평’을 시도하고 있는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신랄한 비판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출판사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을 내는 것도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다. 어느 업계나 동업자에 대한 ‘배려’는 통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내는 이유는 잘못된 것에 대한 교정이라는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도외시된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꼼꼼함이 요구되는 학문적 작업에 ‘덮어놓고’ 지나가는 예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오역의 사례들을 전달받은 ‘먹고살만한’ 출판사들이 몇 년이 지나도록 개정판을 내지 않는 출판계의 책임지지 않은 행태들도 이 책을 재촉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을 기획한 의도는 ‘반성’에 있다. 책을 내는 입장에서는 언제 끼어들지 모를 오역 시비를 경계한다는 다짐의 의미이며, 오역의 문제는 이를 한번쯤이라도 경험한 출판사나 번역가, 독자들이라면 짚고 넘어가야 할 공동의 주제이다.
이 책이 오역에 대한 시비만 일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의도는 오역과 오류를 통해 12권의 명저를 (다시) 읽자는 것이고(명저라고 해서 누구나 읽는 것은 아니므로), 저자가 제시한 기준으로 그동안 읽은 훌륭한 책들을 다시 새겨보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배경지식을 쌓음으로써 신화와 고전 독서에서 더 큰 재미를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잔혹한 책읽기가 다룬 12권의 책이 신화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서양건축기술사>나 <사생활의 역사> 같은 책이나 그리스 여행서까지 포함한 이유이다. 독자들이 비판 대상이 된 책과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생각지 못한 매력에 빠져들 것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오역사례집’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핑계를 대고 공부하는 책이니만큼 적어도 근래에 그리스로마신화 읽기에 재미를 붙인 독자들과,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실수를 한 해당 번역자들과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오역과 오류로 읽는 그리스로마신화, 서양 고전

독서에도 유행이 있다는 듯이 많은 책들이 독자들의 관심에서 부침하는 가운데 ‘신화열풍’이라는 특이한 현상은 시들지 않고 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중심으로 한 저작물들이 꾸준히 출판되어 이제는 독립된 서점 매대를 구성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신화의 인기를 업고 출판된 책들 중에도 함량미달인 책들이 여지없이 끼어들어 책읽기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원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실린 책들이 버젓이 서점 서가에 늘어서 있기도 하다. 누구나 이름을 알만한 신화 전문 번역가의 번역서에도 오역과 오류가 여지없이 끼어들어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보도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번역행태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학자들의 보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오역의 폐해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사실은 잔혹한 책읽기의 대상이 된 책들의 면면을 보면 명확해진다. 대상이 된 책들은 거의가 이미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큰 출판사이며 번역자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인데 오역의 폐해로 인해 독자들의 관심이 떠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잔혹한책읽기>는 양적으로 엄청난 팽창을 한 신화관련서들에 대한 본격적인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보다 흥미로운 신화읽기의 방식을 보여주는 책이다. 간간이 유명 번역자들의 오역을 지적하는 보도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서평집으로 묶은 것은 아직 유래가 없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제삼고자하는 바는 “내용”이 아니라 “잘 옮겨졌는지 아닌지”라고 밝히고 있다. 잘 옮겨진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번역이 이상한 곳, 틀린 곳들만을 지적한다. 따라서 이 책은 매우 “악의적인” 평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주로 서양고전이나 신화에 관련된 책들이며 다른 주제를 가진 책인 경우 그 책에서 서양고전이나 신화에 관련한 부분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말로 번역된 책들에서 서양고전과 신화에 대한 언급들이 제대로 옮겨졌는지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인 셈이다.
저자는 자신의 잔혹한 비판은 역자들을 공격하는 도구가 아니라 서양고전과 신화에 대한 자신의 애착을 드러내는 것이며 더 잘해보자는 권유라고 밝히고 있다. 고전에 쓰인 언어와 서양 전통에 대한 교육이 부실한 우리 현실에서 저자는 역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12권의 명저에 대한 “권독문”으로 읽힐 수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의 서양고전연구를 바탕으로 번역에 대한 교정뿐만 아니라 구수한 신화해설과 엉성한 번역에 반감되었던 신화의 재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독서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근래에 우리 독서계에 유행처럼 번졌던 신화읽기에 깊이를 더해주며 신화읽기의 즐거움을 한층 질높은 행위로 만들어줄 것이다.

서문
1. 그리스 미술
2. 라틴문학의 히애
3. 로마제국사
4. 고대 그리스의 미술과 신화
5. 서양건축기술사
6. 매혹의 그리스-낯선 곳으로의 열정
7. 그리스 신화-1. 신들의 시대
8. 신의 가면Ⅲ-서양신화
9. 사생활의 역사1- 로마제국에서 천 년까지
10. 창조자들(1권)
11. 중세의 가을
1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저자는 12권의 책을 읽어가면서 번역이 틀린 곳, 번역이 이상한 곳들을 문제삼는다. 원문을 꼼꼼히 대조하고 만약 2차 번역본일 경우 원저의 원문을 참조하여 2차 번역본의 1차 번역본의 만족스럽지 않은 번역까지 꼬집는다. 원전에서 희랍어나 라틴어를 인용하는 대목이 나오는 경우 원전의 희랍어, 라틴어 번역이 잘 되었는지도 살핀다.
12권의 책 중에는 발견되는 오역과 오류가 40곳 정도에 그치기도 하지만 어떤 책의 경우에는 ‘지면의 한계’ 때문에 더 지적하지 못할 정도로 오류가 많은 책도 있다. 참을 수 없이 오류가 많은 경우 저자는 해당 출판사에 책을 다시 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기도 한다.(69쪽, 라틴문학의 이해, 동문선)
저자는 고유명사와 형용사에서 우리나라 번역자들이 공통적으로 잘 틀리는 곳들을 지적하고(19쪽, 50쪽, 154, 175쪽, 196쪽 등), 문화적인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오류들도 지적하고 있다.(56쪽) 무엇보다 신화와 고전에 관한 책들이 대상인만큼 신화와 고전에 대한 부족한 이해 때문에 생겨나는 오역과 오류도 많다. 앞뒤가 안 맞게 어색하게 번역을 해놓고도 그냥 지나간 곳도 많이 지적하고 있다.(139, 198쪽 등)
이 책에서 드러난 사실인데 우리나라 번역가들이 기독교 성서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친숙한 성경 구절들도 잘못 번역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많은 번역가들이 껄끄러워 하는 부분이고 잘 틀리는 대목이지만, 이윤기씨의 경우 라틴어 문장을 거의 틀리게 번역하는 일관된 오류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이윤기씨의 경우 이미 많은 비판을 받은 탓인지 그다지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 않지만, 출판사를 옮기며 판을 달리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저자가 초판본에서 발견한 오류들이 거의 수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책의 재미는 신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무기삼아 거침없는 ‘반역’을 평정하는 신나는 현장을 목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서양고전학>을 전공한 저자의 매우 ‘고전적인’ 문체에 있다. 한번쯤 플라톤의 대화편과 같은 그리스 고전이나, 수사학에 관심을 가졌던 독자들이라면 저자의 글쓰기가 고전의 전통과 맞닿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빙그레 웃음을 지을 것이다
이 책은 신화뿐만 아니라 신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배경지식이 담긴 책들도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예기치 않았던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저자의 ‘잔혹서평’ 작업이 좋은 책들에게 대한 애착에서 시작된 만큼 저자는 좋은 책들을 독자들과 같이 읽는 행위로 이 책의 글들을 구성하였다. 따라서 비판의 문장들 사이에 신화에 고전에 대한 시원한 샘물 같은 지식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