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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기적을 믿지 않은, 종로의 심야 극장, 검은 유리창, 딱딱한 이슬로 부서져 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빈집(<현대시세계>, 1989 봄)을 장님처럼 떠듬 떠듬 읽고 있었다. 자알 있거라, 사 싸랑을 잃고 난 간다. 주어를 잃고 헤 해매이는 무인칭의 시 씨여, 사... 앎이여.]
민병관 시인의 <시집 속의 집시 (이 시는 기형도 시집의 패러디임)> 1연 중에서.

3인 시집. <시세계>에 박재삼 시인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한 강해환 시인의 시 25편, <전망> 7집으로 문단에 등단한 민병관 시인의 시 25편, <전국 예쁜 손글씨> 공모 최우수상(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서형오 시인의 시 25편이 수록되었다. 3인의 시인들은 당대의 황폐한 현실을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세 명의 국어교사(강해완 민병관 서형오) 시인이 3인 시집『낙화산을 펴다』를 도서출판 모아드림에서 출간했다. 이 세 명의 시인들은 모두 교육 현장에서 후학을 기르는 교육 전도사이자, 시를 통해 인간 교화를 꿈꾸는 시의 전도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시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충만하다. 그러면서도 비인간화된 현실에 고뇌하고 자연성을 파괴하는 문명의 횡포에 저항하는 지성의 역할까지 시로써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이 세 명의 시인은 가장 시적인 인식과 방법을 체득(體得)하고 있고 그것을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시현(示現)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주고 있다. 시의 본질적 속성을 두고 볼 때 이들이야말로 시의 부름에 가장 순수하게 응해 자신의 내면적 소리를 듣고, 더 나아가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규명하여 세계에 의미 있는 대상물(시)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한 치의 물러남 없이 삶의 진리를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시인’들이 아니겠는가. 갈수록 파편화되고 인간성 상실이 가속화되는 이 시대에 드물게도 3인 공동시집을 내는 일은 자못 모험적이고 신성한 행위이다. 세 명의 시를 통해 각각의 개별성이 어떤 무늬인지, 이번 시집의 중요한 주제로서 서정의 가치, 즉 ‘서정의 등불’이 어떻게 타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부에 수록된 강해환의 시는 시대사적 문제의식과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서정시가 갖는 동일성 회복의 간절한 열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인간학이다. 2부에 수록된 민병관의 시는 삶의 가치관이 붕괴되어 가고 그 자리에 독선적 이데올로기가 우리 삶을 옥죄는 타락한 현실을 맞아, 긴장과 저항의 칼날을 그 누구보다 유연하면서도 첨예하게 세우고 있다는 점에 그 시적 성취와 문학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3부에 수록된 서형오의 시는 추억의 힘과 서정의 힘을 느끼게 한다. 그의 시 속에는 고향과 그 고향의 본질적 국면인 ‘유년’을 새겨 넣고 인간존재가 가져야 할 겸허성을 획득함으로써 그의 독보적인 시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세 사람의 시는 모두 당대의 황폐한 현실에 나름의 독특한 방법으로 대응하여 진지하게 시적 응전을 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시가 단순히 도락(道樂)적 차원에서 쓰여지고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자 미더운 일이다. 그러므로 갈수록 삭막해지는 현실에서 아직도 시를 버리지 못하고 밤마다 긁적이는 문학청년들에게 이 시집은 좋은 시의 지침서로 읽혀질 것이며, 그 점에서 순수와 열정을 지닌 3인의 시작(詩作)이 이제 본격적으로 문학사적 지평 위에 등장하여 여러 사람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을 기대한다.

축사
놀라움의 열매 / 임종찬

1부│강해환

거리에서 15
세월 유수 16
길 17
비·1 18
비·2 20
엽서 21
그리운 스케치 23
비앓이 24
반기(反旗) 25
낙엽이 한 장 팔랑거리듯이 27
빗방울 밖에서 29
장마, 혹은 늑대 30
예감 31
나무 앞에서 33
不在, 거울만 귀를 열고 섰을 뿐 34
피카소에게 35
흐르는 노래 36
방(房) 38
튕겨지는 생(生) 40
까치 이야기 41
은행잎 편지 42
군대 시절 44
장미 --- 죽다 45
백작 혹은 게 46
길 옆에도 길이 있지만 47


2부│민병관

이유 51
불꽃놀이 52
입영전야 54
봉함엽서 55
그 겨울의 편지 56
매립지에서 58
바다, 그리고 59
사랑이라는 거 60
너와 나 61
시집 속의 집시 62
雨期 63
1980년대식 시쓰기 - ① 복고풍 64
1980년대식 시쓰기 - ② 유행어 65
후유증(後遺症) 67
천재지변 68
따분한 목요일에 69
왜? 71
싶고 싶어요 73
때 74
누구는 75
詩行 착오 77
타임캡슐 - 황소개구리 79
아버지, 뉴스를 보신다 81
李箱에게 83
시인 84


3부│서형오

늦가을 편지 87
바람소리 88
숙이에게 89
우기(雨期)의 시 91
쓰레기는 버려지고 92
집 93
쓸쓸한 강의실 95
가출(家出)의 기록 97
근황(近況) 99
고향 101
장마 102
장화 전설(長花傳說) 104
진교장(辰橋場)에서 106
추억을 노래함 108
참깨밭에서 110
편지·1 112
편지·2 114
어느 오리나무의 고백 116
옥수수 118
소 120
김양국민학교 122
노인회장님, 노인회장님 124
겨울나기 126
목욕탕의 이발사 127
이별 이후 128

해설
서정(抒情)의 등불 / 김경복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