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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섭의 첫 시집. 그는 월간 말지 기자를 하던 중 민애전 사건에 연류되어 38개월간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1996년 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되어, '휴먼 라이츠 와치'에서 정치적 박해 받는 작가들에게 주는 상을 수상했다. 이 시집에서 그의 험란한 삶의 괴적들과 그가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만날 수 있다.

좋은 잡지 만들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만도 바쁠 텐데 언제 이렇게 시를 썼는지 놀랄 뿐이다.
시 한편 한편에 깃들어 있는 마음의 결도 예사롭지가 않다.
아마도 그의 시에 울림이 넘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생에 충실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에도 깊은 애정을 보이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지나온 내 생의 그림자가 그가 걸어온 길 위에도 겹쳐져 있음을 안쓰럽게 본다.
-이인휘(소설가)

그도 이제는 이런 사소하나 소중한 사물들에 마음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신념, 신앙 같은 것 못잖게 생활도 빛난다. “별꽃 있어 밤하늘 순수하고/ 땅에는 소금꽃 있어/ 어둔 세상 썩지 않”음을 알게 해준 사물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의 저변을 이루는 사물과 생활들에 눈떠 갈 수 있을 때 그의 시가 훨씬 더 윤기 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우영(시인)

제1부 지도를 보며

사상의 집 ―― 13
오 기 ―― 15
숫 돌 ―― 17
뼈로 누운 신화 ―― 19
창 살 -지도를 보며1 ―― 20
발바닥 -지도를 보며2 ―― 21
똥 -지도를 보며3 ―― 23
무 덤 -지도를 보며4 ―― 24
성찬식 -지도를 보며5 ―― 25
하나가 되는 일 -지도를 보며6 ―― 26
만리장성 -지도를 보며7 ―― 27
매 복 -지도를 보며8 ―― 28
쥐라기 신문 -신문1 ―― 30
씨앗 찾기 -신문2 ―― 31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신문3 ―― 32
퐁당퐁당 돌을 던져봐 -신문4 ―― 33
질 곡 -신문5 ―― 34
새 집 ―― 35
회 상 ―― 36
자화상, 서른 셋 ―― 37
죄와 벌 ―― 38
전위의 꿈 ―― 39
이 불 ―― 40
타 깃 ―― 42
미루나무 앞에서 ―― 44
매 미 ―― 46
의 문 ―― 47
옴아모카살바다라사다야시베롬 ―― 48
미 혹 ―― 49
겨울민들레 ―― 50
원초 박순경 ―― 52
부끄러움에 대하여 ―― 53
전체를 위하여 ―― 54
구 멍 ―― 55
퇴고의 변 ―― 56
별이 된 개똥벌레 ―― 57
개미의 반란 ―― 58
부자유 ―― 59

제2부 샤갈의 퍼즐
의 자 ―― 63
맷 돌 ―― 64
검은빛 예찬 ―― 65
암구호 ―― 66
별의 씨앗 ―― 67
아기 별 ―― 68
해바라기 ―― 69
벌레만도 못한 나도 ―― 70
신문으로 지은 감옥 ―― 71
그리움 ―― 72
위 선 ―― 73
과 연? ―― 74
생을 나는 새 ―― 75
젖꼭지 ―― 76
소금꽃 ―― 77
열여덟 살 순이 ―― 78
민중은 쌍놈들이며 신은 파시스트다 -브레히트 ―― 79
샤갈의 퍼즐 ―― 80

제3부 만법귀일
제비꽃 ―― 83
새만금, 제발 내버려 둬! ―― 85
파시스트의 나라 ―― 87
사 표 ―― 89
선암사 삼인당 연못에서 ―― 90
채식의 변 ―― 92
전 향 ―― 94
설악산 대승폭포는 하얀 피 흘리고 ―― 96
경업대 ―― 98
작심삼일 ―― 100
미시령에서 ―― 101
십우도 앞에서 ―― 102
벌 레 ―― 104
천상천하유아독존 ―― 105
비우기 연습 -마라톤1 ―― 107
운명적으로 ―― 109
기 도 ―― 110

■ 해설/아름다운 신념의 시 공간 -정우영(시인) ―― 111

사상의 집

사상의 집에는 벽이 없고
사방이 창으로 열려 있다
잠에서 깨어 동쪽 하늘을 바라보면
사람인 하늘이
전봉준의 뭉클한 얼굴로 다가 온다

담장도 없는 사상의 집
안마당에는 스피노자의 사과나무가 한그루 자란다
본래 허무는 영원과 통한다지

햇빛 따가워 울적한 날에는 까뮈를 읽으며
이방인이 된다
타파되지 않는 세상의 부조리는
죽비처럼 내 어깻죽지를 후려치고

서가에는
묵주반지를 끼고도 ‘오 맑스여’ 하며 탐독하던
유물변증법 책들이 즐비하다
먼지 쌓인 고서가 되어

낮이고 밤이고 벌레가 찾아드는
사상의 집

생명은 늘 엄숙한 표정인데
눈이 오는 날 나의 사상은 백색이 되고
지붕에는 흰옷의 하느님이 내려앉는다

노을 지면 사상의 집은 동백꽃 빛깔로 물들고
나의 집에서 사상은 이처럼 자유자재하나

그러나 나는, 붉은 인두로 낙인찍혔던 나는
사상의 둥근 집에서도 여전히 불온하다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