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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 : 45년 자유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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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엇이 버마를 움직이는가? 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의 45년 투쟁 역사!

경제는 완전히 피폐해졌으며 사회적으로도 계속 퇴보하고 있는 버마. 우수한 인재들은 외국으로 떠나고 민주화의 유일한 희망이라 불리는 아웅산수찌는 60대에 접어들었다. 과연 버마의 앞날을 어떻게 될 것인가?『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는 버마의 45년 자유 투쟁의 역사를 정리하며 버마 민주화를 위한 과제를 살펴보았다.

1989년부터 버마 군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입국 금지까지 당했을 정도로 버마에서 경계했던 저자는 폐쇄적인 버마 군부의 권력구조와 범죄행위, 소수민족의 독립투쟁에 관한 글을 주로 쓰며 버마에 대한 최고 전문가란 평을 받았다. 그는 무엇이 현재 버마를 움직이고 버마는 과연 민주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에 관해 자세히 분석하였다.

과거, 현재, 그리고 내일의 버마를 읽는 근거와 통찰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45년 버마 민주화운동의 핵심과 45년 버마 철권통치의 본질을 읽는다. 또한 베일에 가려진 아웅산수찌의 생활도 간략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특히 관련 사진이 곳곳에 곁들여져 있어 버마인들의 삶, 아웅산수찌의 활약상 등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자유? 민주주의? 진부해, 지겨워.”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수많은 눈물과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진부한’ 자유와 민주를 가슴에 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싸움을 계속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신 아래 살벌했던 1970년대, 광주항쟁을 겪으며 고통스럽고 뜨거웠던 1980년대, 우리가 그랬듯 버마는 지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에는 아웅산수찌, 군부, 민주화 운동, 불교와 승려, 소수민족 독립분쟁, 주변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마약 등 현재 버마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에 대한 자료와 분석이 망라되어 있다. 1900년대 초반부터 버마 민주화의 역사를 살피며, 현재의 버마가 민주화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장애와 한계, 긍정적 전망의 조건과 그 근거를 깊이 있게 서술한다. 그 중 핵심은 완전무결한 ‘성역’인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와 버마 민주화 운동의 중추 조직 민족민주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그리고 단순히 ‘악당’으로 그려온 버마 군부의 실체를 방대한 자료와 냉정한 분석을 통해 왜곡 없이 보여 주는 점이다.
《아웅산수찌와 버마군부-45년 자유 투쟁의 역사》는 아웅산수찌와 버마 민주진영에 대한 매우 드문 비판적 저술이다. 버마에서 기자로 첫 발을 뗐고 명성을 얻은, 그래서 누구보다 버마 민주화를 열망하고 지원해 온 버틸 린트너의 냉정한 분석은 ‘신화’와 ‘성역’이 버마 민주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1장│ 1988년, 버마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아웅산수찌와 ‘랑군의 봄’|무력진압은 성공하는가|버마 국민은 아웅산수찌를 원한다|거리로 나선 승려들|
버마에게 아웅산수찌는 누구인가
1988년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버마 시민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 아웅산수찌의 등장, 민주진영 NLD창당, 군부의 민주선거 실시 약속, 총선 실시, 민주진영의 압승, 군부의 선거 약속 번복, 또다시 시작된 민주화 시위와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 등 희망과 절망을 넘나드는 격동의 1988∼1989년 버마 사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특히 1988년 민주화 시위의 한 정점에서 등장한 아웅산수찌가 버마 민주화에서 가지는 역할과 의미를 되짚는다.

- 아웅산수찌의 등장
-처음에는 버마 영웅의 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모인 수십만 명 인파는 연설이 진행될수록 아웅산수찌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그녀는 연설 후 곧 버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반정부 세력의 지도자로 떠올랐다. 이날 집회의 한 참석자는 “나뿐 아니라 모든 이가 놀랐다.”는 말로 그날을 회고했다. 그녀는 외모뿐 아니라, 짧고 간결하고 정곡을 찌르는 아버지의 연설 능력도 물려받은 것 같았다. - 31쪽

- 대표적 야당 NLD(민족민주동맹: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의 탄생
-1988년 9월 24일, NLD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었다. 육군 퇴역 준장 아웅지가 의장을 맡았다. 1976년 네윈에게 축출돼 투옥됐던 우 띤우 전 참모총장은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NLD를 대표하는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은 역시 사무총장을 맡은 아웅산수찌였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2월, NLD의 의장을 맡았던 아웅지가 독자적인 조직인 UNDP를 만들어 NLD에서 갈라져 나가면서, 아웅산수찌는 ‘버마의 가장 대표적인 야당 지도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 32∼33쪽

- 1990년 총선 결과의 의미
(9월 18일, 다시 한번 무력진압을 벌여 수천 명을 살해한 군부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총선 실시를 공언한다. 1990년 5월 27일 총선에서 NLD가 압승한다.)
- NLD는 당시 수도 랑군의 병영지구와 SLORC(국법질서회복평의회. 1988-1997년까지 버마를 지배한 군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본부가 있는 다곤 지구, 심지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벵골만 해군기지 코코섬에서도 승리했다. - 35쪽
- 정치분석가들은 그런 선거 결과를 두고 이후 군 상층부의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NLD를 지지한 사람이 많은 이상, 군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군 내부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본 것이다. - 36쪽

- 버마 민주화 운동에서 불교의 역할과 의미
(이에 대응해 중무장한 군인들이 사찰 133곳을 공격하고 군부는 존경받는 고승을 비롯해 승려 수십 명을 체포한다.)
- 사실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진영은 승려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버마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집단인 승려들까지 가혹하게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냈고, 이러한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한 많은 사람들은 용기와 희망을 잃었다. 이 사건은 버마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민주화 운동은 조용히 사그라졌고, SLORC에 대한 공개적인 저항 역시 자취를 감춰 다시는 이전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 42쪽

- 현재 아웅산수찌와 NLD 상황
- 1989년부터 지금까지 아웅산수찌는 자택에 갇혀 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일어난 전국적 민주화 운동의 구심이었던 NLD는 희미한 과거의 영광만을 안고 이미 쇠퇴한 조직이 돼버렸다. NLD의 젊은 활동가 대부분은 감옥에 갇혔거나 버마를 떠났으며, 일부는 군부에 굴복했다. 현재 NLD 조직에는 주로 나이든 지도층 몇몇만 남아 있고, NLD를 이끌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은 없다. 국제사회도 이렇게 바뀐 NLD가 군사정권을 대체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군사정권이 바라던 대로 된 셈이다. - 45쪽


2장│아웅산수찌가 걸어 온 길
도덕적이고 정직한 아이|옥스퍼드의 모범생|영국인 남편
탄생에서부터 성장과정, 가족관계, 오랜 해외생활과 결혼까지, 버마로 돌아와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기 이전 아웅산수찌의 삶을 들여다본다. 또 비폭력주의, 버마 독립영웅인 아버지 아웅산 장군에 대한 생각과 조국에 대한 의무가 어떻게 아웅산수찌 신념의 중추가 되었는지를 다양한 자료와 조사를 통해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 아버지 아웅산 장군에 대한 기억
“아버지에 대한 아웅산수찌의 기억은 아주 희미하다. 그러나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아버지가 사심 없고 용감한 사람이었으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버마를 이루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믿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이미지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남편 마이클이 쓴 아웅산수찌 책 서문 중)-52쪽

- 어머니 킨찌
- 어머니 킨찌는 평범한 주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버마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인이었다. - 53쪽

- 비폭력주의
- (1989년 발간된 국제사면위원회 대변인과 인터뷰에서) 아웅산수찌는 “시민 불복종에는 위대한 역사가 있다.”면서, 자신이 최근 연설에서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을 귀감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58쪽

- 정치활동
- 그녀가 (옥스퍼드)학생시절 정치활동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회장까지 지낸 파키스탄의 부토 전 총리와는 달리, 아웅산수찌는 영국에 있을 당시 정치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세미나에 기고할 학술 논문들에 정력을 쏟았다. - 57쪽

-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 국적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다
- 아웅산수찌가 영국에서 보낸 시간과 영국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이다. 많은 버마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종 간의 결혼을 ‘버마인다운’ 전통과 문화를 거부하는 행위로 여긴다. 하지만 남성중심적인 버마 사회의 속성을 감안할 때 아웅산수찌가 버마 남성과 결혼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59쪽

- 조국에 대한 의무
-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만을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내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렇게 해 줄 수 있는지요?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될 가능성은 있습니다.”(결혼 전 마이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60쪽


3장│ 버마의 유산, 버마의 딜레마
민주주의는 버마 전통이 아니다?|뿌리 깊은 19세기 르네상스|‘30인 동지’ 탄생|버마를 둘러싼 영국, 일본의 삼각관계|누가 아웅산 장군을 죽였나|어두운 시대의 시작|버마에 대한 심각한 오해들
45년 동안 지속된 민주화 열망과 45년 이어진 군부 독재, 현재 버마를 요약하는 두 극단은 모두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 식민지 이전 버마의 권위주의적 왕권 통치와 저변의 창조적, 문화적, 지적 전통이 오늘 버마에 드리우는 딜레마를 분석한다. 또 버마 독립과정과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행적을 통해 1988년 민주화시위 이전 군부독재 기간까지 버마 역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 권위주의적 전통
- 신성화된 왕권이라는 오랜 전통을 무기 삼아 왕들은 신민들의 삶과 죽음을 놓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버마 사람들이 지닌 이러한 오랜 가치관과 믿음을 바탕으로는 민중 주권이라는 원칙이 세워지기 어려웠다. - 74쪽


- 견고한 지적 유산과 창조적 전통
- 식민지가 되면서 버마에는 다양한 신문들과 외국서적들을 구비한 책방들이 생겼다. 그에 따라 강력하고 지적이 반권위주의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왕정만큼이나 버마의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던 경향이었다. - 75-76쪽
- 1930년대의 총체적 혼란상은 항상 버마의 딜레마가 되어 온, 지극히 복잡한 역사적인 이분법을 반영했다. -72쪽

- 버마와 미얀마, 국호에 대한 1930년대 민족주의자들의 생각
- (버마의 지적 전통을 되살리려는 1930년대 대표적인 진보적 민족주의 운동 단체인) 도바마가 창설되고 나서 젊은 버마 민족주의자들은 나라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를 놓고 토론했다. 공식적으로 과거 왕조가 사용한 ‘미얀마(Myanmar)’가 맞는지, 덜 권위적인 ‘바마(Bama)’가 맞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민족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 바마 나잉앙에 사는 모든 민족은 바마(Bama)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민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도미얀마(Dohmyanma)’가 아니라 ‘도바마’로 불렀다. 그런데 영국이 ‘바마’를 ‘버마’라고 엉뚱하게 바꾸어서 부르면서 식민지의 공식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 76-77쪽

- 버마의 무력 독립 투쟁과 아웅산, 네윈 그리고 일본
- (1941년 7월, 훗날 버마 군부독재의 우두머리가 되는 네윈 그룹이 일본군의 도움으로 군사훈련을 받던 아웅산 그룹에 합류한다.) 도바마 주류에 속했던 아웅산과 동료들에게 이들의 도착은 새로운 걱정거리였다. 이로써 일본이 아웅산과 그의 좌파 동료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네윈 그룹의 정치적 지향이 당시 일본 군국주의와 더 잘 맞았다. 그래서 일본은 네윈의 무리들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중략) (두 그룹은 곧 충돌했다.) “아웅산은 아주 직설적이었고 네윈은 훨씬 노련하고 계산적이었다. 아웅산과 네윈이 싸운 이유는 주로 네윈의 부도덕한 성향 때문이었다.” - 81쪽

- 군부독재의 시작
- (1960년) 3월 2일 새벽, 군대는 수도의 전략적 거점들을 장악하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을 틈타 우 누 총리와 5명의 장관들, 법무장관, 30명이 넘는 샨족과 카레니족 지도자들이 구금됐다. (중략) 이튿날 헌정이 중단되고 의회가 해산됐다. 네윈이 이끄는 24명의 ‘혁명회의(Revolutionary Council)’가 권력을 잡고 법령을 선포하고 통치를 시작했다. - 95∼96쪽

- 버마에 대한 오해
- 버마 학자들은 현재 세계적으로 버마만큼 잘못 알려진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한다. 순박하게 웃고 있는 버마인들이나 금빛 찬란한 불탑들이 등장하는 그럴듯한 여행 책자 속 사진들에서부터, 1962년 이래 이어진 억압적인 군사정권은 버마의 정치적 전통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라는 통념 같은 더 심각한 오해들에 이르기까지 버마에 덧씌워진 오해는 아주 광범위하다. 후자와 같은 오해의 배후에는 버마가 항상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권위주의 국가였다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 - 99∼100쪽


4장│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전국에 불어닥친 회오리|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희망의 한 달|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군부는 기다리고 있었다|위협적인 야당의 탄생|독재자 네윈은 불안했다|아웅산수찌와 지도부를 차단하라
버마 민주화 운동의 전환점이 된 1988∼1989년 민주화 항쟁과 군부의 무력 진압 과정을 생생한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내고 있다. 시위현장에 있던 시민 인터뷰를 통해 민주화운동의 동력과 처참했던 현장상황을 전하고 은폐된 군부의 진압과 시민들이 피해상황 등을 상술한다. 또 아웅산수찌 등장 이전과 이후 그리고 1990년 강력한 군부 무력진압 이전과 이후, 버마 민주화운동 변화 과정이 드러난다.

- 1988년 8월 8일 시위 현장
- (시위대에는) 남녀노소가 섞여 있었으며 버마족, 인도계, 중국계 등 버마에 사는 거의 모든 인종들이 다 참여했다.(중략) 특히 놀라운 장면은 발우를 뒤집어 들고 행진하는 승려들의 모습이었다. 뒤집어 든 발우는 국가 전체의 파업을 의미했다. 1시간 만에 시내 중심가는 수만 명의 시위대로 가득 찼다. -110쪽

- 1988년 8월 8일-13일 무력진압 현장
- (8월 8일 밤)11시 30분, 군인들을 태운 트럭들이 근처 시청 뒤쪽에서 쏟아져 나왔다. 뒤이어 장갑차들과 더 많은 트럭들이 나오더니, 군인들이 들고 있던 기관총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로 겨눴다. 시위대는 자발적으로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고, 이어 기관총 소리가 반둘라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 사이로 터져 나왔다. 총을 맞은 사람들이 인파 속에서 쓰러졌다. - 116쪽


- 1988년 8월 12∼9월 18일 시위 현장
- (온건파로 알려진) 마웅마웅을 (새 대통령 겸 BSPP 신임) 의장에 임명하는 것으로 저항 세력들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반정부 세력은 부분적으로 이겼다고 여기고 있는 터였다. 새로운 총파업이 선언되었고, 버마 전체가 멈추었다. 동남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시위였다. (중략) 사람들은 고양됐다.
슈에다곤 파고다 밖 시위 현장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아웅산수찌가 세를 더해가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때가 이 즈음이었다. -123∼124쪽
- 학생운동 지도자, 민주화 운동가들과 경험 많은 정치인들이 대학로에 있는 아웅산수찌의 집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중략) 아웅산수찌의 집은 랑군에서 민주화 운동의 비공식 ‘지휘본부’로 발전해 갔다. 다른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129쪽

- 9월 18일 신군부 쿠데타와 무력진압
- (시위대 쪽의 과잉 대응도 일어났다.) 9월 18일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돼 언제든지 군부가 개입하겠다고 나설 만한 지경이었다. (중략) 마침내 한 무리의 군인들을 태운 트럭과 장갑차들이 랑군으로 진입했고, 이번에는 8월 학살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군대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얼음처럼 냉혹하게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군 차량들은 완벽하게 대형을 갖춰 도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모조리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중략) 각국 외교관들은 적어도 1,000명 이상이 살해됐다고 본국 정부에 보고 했다. - 135, 137쪽

- 9월 18일 군부의 무력진압 이후
- 6주 동안 계속된 총파업이 다음 날 막을 내렸다. 생활비가 바닥난 노동자와 공무원들은 해고 위협에 마지못해 하나 둘씩 사무실과 공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9월 18일 군의 개입 이후 상당수 운동가들은 소수민족 반군들이 활동하고 있는 국경 지대로 몰려갔다. 9월의 두 번째 학살 이후 도시에 근거지를 둔 많은 운동가들이 평화적인 저항 방식을 버리고 무력 투쟁으로 선회한 것이다. -138쪽

- ‘1989 운동’
- 12월 28일 킨찌 장례식은 쿠데타 직후 버마 정치 상황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됐다. 민주화운동은 세를 과시했을 뿐만 아니라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줬고, 서구 민주국가들은 그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분명히 밝혔다. SLORC은 자신들이 국민들은 물론 국제 사회로부터도 고립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SLORC와 NLD 사이의 대결 양상이 심화됐다. -149쪽

- 첫 가택연금
- (7월 20일) 아웅산수찌는 ‘최대 1년 동안’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중략) 우 띤우 NLD 의장 역시 가택 연금되었고, 전국을 휩쓴 정부의 소탕전 끝에 당원 수천 명이 체포되고 당사들은 폐쇄됐다.
강력하던 NLD는 힘이 꺾였고,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퇴역 장교로 구성된 2진 지도자들이 지도부를 구성했다. SLORC에 대한 공개적인 대규모 반대 운동은 사그라졌다. 처음으로 젊은 활동가들뿐 아니라, 이전에 저항 운동을 이끌었던 민주화 운동의 지도부까지도 표적이 되고 체포됐다. 그러나 1989년 7월 당권을 이어받은 2진 지도부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자유를 향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 154∼155쪽


5장│ ‘단 하나의 희망’ 아웅산수찌
베일에 가려진 아웅산수찌의 생활|나의 신념을 바꿀 수 없다|아웅산수찌가 그리는 버마의 미래|1991년 12월 10일 오슬로|가택 연금 해제,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등을 돌린 동지들|양날의 칼 ‘확고한 신념’|정치와 종교 사이에서|야수와 싸우는 성녀|드뻬인 학살 사건
버마 민주화의 심장인 아웅산수찌의 한계와 전망을 철저하게 해부한다. 그녀의 집착에 가까운 신념과 종교적 추구는 긍정적 결과와 결정적 한계를 동시에 만들고 있다. 또 가택연금으로 인한 오랜 고립은 아웅산수찌의 현실 인식과 구체적 미래 구상의 부재, 정신적 추구와 성격적 결함을 강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아웅산수찌, 한 사람에 기댄 민주화운동이라는 버마 민주화운동의 특성으로 볼 때 아웅산수찌 개인의 한계는 바로 버마 민주화 운동의 한계이기도 하다.

- 개인 숭배
- 남녀를 막론하고 카리스마와 대중적 영향력을 놓고 볼 때 버마에서 아웅산수찌와 견줄 만한 인물은 없다. 달리 보면, 이점이 바로 버마 민주화 운동의 약점이기도 하다. 사회운동이 아웅산수찌라는 한 개인의 존재와 지도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179쪽

- 정신적 추구
- 종교적 믿음과 정치적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들이 아웅산수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떤 이들은 미엣따(자비)나 띳사아(진리)와 같은 문제를 정치적인 맥락에서 논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정치 역시 사람에 관한 일이고. 따만냐(불교 고승)에게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 진리는 다른 어떤 형태의 강제력보다도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 198쪽

- 현실 인식 부족과 모호한 미래 전망
- 아웅산수찌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묻는 질문에 “국가의 미래 전망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상적인 덕을 갖춘 훌륭한 인물임이 틀림없지만, 버마 민주화 운동 속에서 그녀가 차지한 독보적인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아웅산수찌가 이처럼 버마의 포괄적인 정치안을 구상하지 못했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그 결과, 아웅산수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들은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을 막지 못했으며, 군사정권에 대항하면서 국제 사회를 설득할 만한 믿을 수 있는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또 아웅산수찌가 버마의 복잡한 민족 갈등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206쪽

- 아웅산수찌의 또 하나의 한계, NLD의 현재
- (1995년 7월 10일 오후 4시, 군부는 아웅산수찌 가택연금을 해제한다. 그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를 들어 국가화해를 촉구한다.) 그러나 버마 군부는 F.W. 드 클러크가 아니었고 NLD도 아프리카민족회의에 견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90년 2월 석방된 넬슨 만델라는 기다리고 있던 아프리카민족회의는 든든한 조직을 갖춘 정당이었으나, 6년 만에 자유를 찾은 아웅산수찌의 NLD는 다 부서져 명맥만 남은 상태였다. (중략) 투쟁 의지를 품은 사람들에 대한 구속과 고문, 끊임없는 협박은 아웅산수찌 지지자들을 그렇게 약화시켜 갔다. -188, 190쪽


6장│ 미얀마가 된 버마
45년 철권통치, 네윈 죽다|“새 수도에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위대한 미얀마’ 만들기 시나리오|우리는 하나가 아니다|군대를 거느린 최대 사회복지기구|그들이 독재를 계속하는 이유|마약으로 돈 벌고 로비도 한다|흔적없이 사라진 사람들|딴슈에 왕국에 대화는 없다
현재 최고 통치자 딴슈에의 면면과 군 수뇌부간의 갈등과 알력싸움 등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버마 군부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정치, 군사뿐 아니라 경제와 민간조직까지 장악한 버마 군부의 작동 원리와 그들이 고립된 국토 중앙으로 행정 수도를 이전하고 민간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또 악명 높은 버마 교도소 인권유린 상황과 버마 독립과 함께 시작된 소수민족 독립투쟁의 본질을 밝힌다.

- 버마 군부
- 딴슈에게 주창한 새로운 국가 미얀마는 이전 독재자 네윈 치하의 버마보다 한층 억압적이다. (중략) (유엔 등 국제기구들의 촉구와 노력들이) 딴슈에 정권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없어 보인다. -267쪽

- 수도 이전의 실체와 배경
- 버마 군사 정권이 해상이나 공중폭격을 통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두려워해 수도를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중북 산악 지대의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이 버마를 다른 깡패정권과 한 덩어리로 취급해 ‘폭정의 전초기지’로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이라와디〉지는 더 설득력 있는 기사를 실었다, 버마 군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의 침공이 아니라 내부 봉기라는 내용이었다. -224족

- 군부 독재의 이유와 심리
- 민주주의는 지금 집권층이 누리는 모든 특권을 단숨에 빼앗아 가버릴 것이다. 현재 40만 명이 넘는 군인과 군인 가족을 포함한 약 200만 명을 헤아리는 버마 군부 세력은 1988년, 1990년 2003년에 했던 대로 민주주의를 향한 그 어떤 움직임도 거침없이 진압할 준비가 돼 있다. -253쪽

- 소수민족 문제
- 버마 민족 구성 : 버마족 68%, 샨족 9%, 카렌족 7%, 기타 소수민족 16%. -8쪽 버마 기본 사항
-영국 식민 지배 아래 겨우 한 집 안에 모여 있던 이 민족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시키는 일은 어떤 정부에게든 악몽에 가까운 과제일 것이다. -238쪽

- 마약문제
- 샨 주 아편 재배 지역에서는 마약이 거래 수단이 돼 반군과 버마 정부 양쪽이 모두 이득을 챙기고 있다. 반군들은 마약을 팔거나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거둔 돈으로 군대를 유지했다. (버마 정부가 반군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한 지방) 민병대들은 반군과 싸우는 대가로 정부가 관할하는 샨 주 안에 있는 모든 도로와 마을을 아편 밀수에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 군대를 거느린 사회복지기구 USDA
- 오늘날 버마에서는 USDA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도, 돈을 벌 수도 없다. - 245쪽


7장│ 버마, 남겨진 숙제와 희망
운명의 5월, 기회를 놓치다|‘미얀마 군부’의 파트너들|독재 정권의 책임이다, 그러나|그들에겐 88세대가 있다|군부 붕괴, 세 가지 시나리오|누가 악당과 손잡는가|어두운 미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
45년 동안 진행되어 온 버마 민주화 운동의 결정적 오류와 한계 그리고 전망을 국내외 변수들을 종합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유일한 권력인 군부의 붕괴 시나리오와 이른바 ‘국제사회’와는 다른 입장을 가진 주변국들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2007 버마 민주화 운동과 향후 정치적 변동을 내다 볼 안목을 제공한다.

- 1990년 총선 압승 이후 NLD
- NLD는 마약 문제나 버마의 끊임없는 민족 분쟁에 대해 포괄적인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아웅산수찌도 마찬가지였다. 가택 연금을 벗어나 자신의 뜻을 밝힐 기회가 주어졌던 짧은 시간 동안 이 문제들에 대해 어떤 청사진도 내놓지 못했다. -282쪽

- 국제사회
- 결론적으로, 버마의 가장 강력한 주변국인 중국과 인도는 버마에서 또 다른 격변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에 정권을 잡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허약한 민주화 세력보다는 ‘예측 가능한 악당’인 현재의 정권과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쉽기 때문이다. -305쪽

- 버마의 88세대
- 그럼에도 불구하고 SPDC가 지금처럼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가혹하게 탄압하는 한, 가까운 미래에 88세대가 본격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새로 싹트는 운동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지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정당을 분쇄하고 그 지도부를 억압하는 일이 쉽다는 것을 군부는 보여 줬다. 하지만 한 세대를 통째로 탄압하기는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 309쪽

- 군부붕괴
- 조만간 버마에 어떤 변화가 올 조짐이 아예 없지는 않다.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실질적인 권력을 쥔 유일한 조직인 군대 내부에서 시작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 시나리오에는 유엔이 개입하는 경우와 자발적인 경우, 세 가지가 있다. - 298쪽
- 많은 사람들은 버마에 있는 ‘모든’ 군인이 이런 부당한 일을 지지한다고 믿지 않는다 이는 상식을 가진 군부의 장교나 군 수뇌부에 반기를 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사람들의 기대가 말 그대로 ‘기대’로 끝난다면, 버마의 고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 17쪽 여는 글

목차

1장│ 1988년, 버마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아웅산수찌와 ‘랑군의 봄’
무력진압은 성공하는가
버마 국민은 아웅산수찌를 원한다
거리로 나선 승려들
버마에게 아웅산수찌는 누구인가

2장│아웅산수찌가 걸어 온 길
도덕적이고 정직한 아이
옥스퍼드의 모범생
영국인 남편

3장│ 버마의 유산, 버마의 딜레마
민주주의는 버마 전통이 아니다?
뿌리 깊은 19세기 르네상스
'30인 동지' 탄생
버마를 둘러싼 영국, 일본의 삼각관계
누가 아웅산 장군을 죽였나
어두운 시대의 시작
버마에 대한 심각한 오해들

4장│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전국에 불어닥친 회오리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희망의 한 달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군부는 기다리고 있었다
위협적인 야당의 탄생
독재자 네윈은 불안했다
아웅산수찌와 지도부를 차단하라

5장│ ‘단 하나의 희망’ 아웅산수찌
베일에 가려진 아웅산수찌의 생활
나의 신념을 바꿀 수 없다
아웅산수찌가 그리는 버마의 미래
1991년 12월 10일 오슬로
가택 연금 해제,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등을 돌린 동지들
양날의 칼 ‘확고한 신념’
정치와 종교 사이에서
야수와 싸우는 성녀
드뻬인 학살 사건

6장│ 미얀마가 된 버마
45년 철권통치, 네윈 죽다
“새 수도에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위대한 미얀마’ 만들기 시나리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군대를 거느린 최대 사회복지기구
그들이 독재를 계속하는 이유
마약으로 돈 벌고 로비도 한다
흔적없이 사라진 사람들
딴슈에 왕국에 대화는 없다

7장│ 버마, 남겨진 숙제와 희망
운명의 5월, 기회를 놓치다
‘미얀마 군부’의 파트너들
독재 정권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88세대가 있다
군부 붕괴, 세 가지 시나리오
누가 악당과 손잡는가
어두운 미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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