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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비만'은 '나태함', '성격결함'의 원인이 아니라 유전자 질병의 한 종류로 보고 있다. 바하버(Bar Harbor)에 있는 잭슨실험연구소에 나타나 밥 먹을 때 외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던 초대형 비만 쥐 ‘오비(obesity의 줄인 말) 쥐’나 식사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꽁꽁 언 물고기를 갉아먹는 비정상적인 대식가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유전자로 인한 비만을 설명하고 유전자의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비만은 사회 매커니즘이 불러일으킨 '유행병'이며 생체욕구를 왜곡시키는 사회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대표적인 질병 ‘비만’,문제는 연약한 유전자에 있다

'21세기 전세계 사람들을 가장 위협할 질병이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들 대부분은 에이즈, 심장병, 암 등을 거론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을 무서운 속도로 위협해 오는 질병은 다름 아닌 비만이다. '풍요병’ ‘신세기 증후군’ ‘선진국병'이라고 불리는 비만은 현재 엄청난 속도와 크기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3년 보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호주 등 3개국은 비만 인구가 20%를 상회하는 '비만 선진국'으로 나타났다. 미국인 10명 중 3명이 비만환자이며 연간 30만 명 이상이 비만 관련성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비만은 ‘유행병’ ‘전염병’이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이 유행병과 싸우기 위해 세계 각국은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의료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치료제를 찾고 있지만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들 대부분이 과체중 환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공포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공포의 원인도 모르면서 ‘위장 바이패스(Gastric bypass)’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오른다. 이 수술은 위장 안에 낀 노란 지방 덩어리를 제거하고 축 처진 위를 잘라내 음식이 들어갈 공간을 인위적으로 줄여 음식을 덜 먹게 만드는 수술이다. 수술대 위에서 죽을 수도 있고 회복된다 해도 합병증으로 고생할지도 모르는데도, 2000년 4만 명의 미국인이 이 수술을 받았고, 올해가 가기 전 2배 이상의 수치를 기록할 것이다.
많은 비만환자들은 병의 진짜 원인도 모르면서 위장바이패스 수술만이 자신들을 살려줄 거라 굳게 믿는다. 여러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원인은 밝히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다.

비만의 진짜 원인은 우리 몸 안의 유전자이다. 탐욕이나 의지박약, 과식과 게으름이 아닌 실은 너무도 약해 쉽게 상처받고 쉽게 굴복하고 마는 연약한 유전자인 몸 안의 ‘배고픈 유전자’가 끊임없이 음식을 먹게 만들어 비만의 길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어느 날 바하버(Bar Harbor)에 있는 잭슨실험연구소에 나타나 밥 먹을 때 외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던 초대형 비만 쥐 ‘오비(obesity의 줄인 말) 쥐’나 식사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꽁꽁 언 물고기를 갉아먹는 비정상적인 대식가들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사회가 간편화되고 풍족해질수록 통제능력을 잃는 유전자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굶주려 있다.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만 봐도 배가 고프며, 햄버거나 피자같은 고칼로리 음식이 아니면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을 호소하며 먹고 또 먹는다.
이렇게 과체중이 된 사람들은 제약회사들이 만들어낸 위험한 약을 복용하거나, 심지어는 과격한 수술을 결심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깨지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희생자가 되고 말 것이다. ‘운동을 하라’거나 ‘균형 잡힌 식사를 하라’는 진부한 충고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배고픈 유전자』는 우리의 유전자가 지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을 현장 추적한, 비만에 관한 유전학적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연약함 때문에 적대적 환경에서 균형을 잃고 점점 전염병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있는 유전자의 보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비만의 정체를 찾아서

비만한 사람은 죄인이다?

비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석기 시대의 조각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비만의 흔적인 무릎 기형을 보이는 풍만한 비만 여성이었으며, 옥좌에서 명을 내리다 잠이 들었다는 고대 그리스의 왕 디오니시우스는 악명 높은 대식가였다.
고대인들은 전반적으로 비만을 좋게 보지 않았다. 뚱뚱한 사람들을 의지박약아 혹은 나태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라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삼았다. 살은 아무리 해도 숨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속의 죄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 되어 종교적 압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회적 매장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살을 빼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고, 마음껏 먹기 위해 설사약이나 독약 등을 소지하고 다녔다.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채 무조건 약을 먹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과학이 발달하고 점점 사회가 산업화되어 가며 비만을 단순히 의지박약의 문제로 심리적인 측면에서 해결법을 찾기에는 허점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살찌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적게 먹어도 아니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한 사항들을 무슨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이로부터 '혹시 비만은 성향의 문제 즉 타고난 체질 때문은 아닐까? 우리 몸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우리를 주체할 수 없는 식욕으로 이끌어 몸을 비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다.

비만의 정체를 찾기 위한 모험의 시작

20세기 초의 정황을 보면 ‘우리 인간의 정신은 초자연적인 것이라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때 식욕을 좌우하는 것이 ‘이성’이 아닌 끝없이 음식을 향해 고함을 지르게 하는 우리 몸 안의 ‘유전자’라는 주장은 반항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학자들은 정체를 밝히기 위해 정상보다 훨씬 과대 비만인 예외적인 사례들을 연구한다. 잭슨실험연구소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던 초대형 비만 쥐 '오비 쥐', 근친혼 관계에서 태어났으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언 물고기를 갉아먹는 펀자브 지방의 남매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들을 통해 과학자들은 비만의 원인에 접근해 간다. 이들은 정상인과 달리 ‘렙틴'이라는 유전자가 결핍되어 있다는 게 밝혀졌는데, 과학자들은 결핍된'렙틴'이 음식을 찾게 만들며 충분히 주입만 된다면 비만 치료가 가능할 거라 결론 내린다. 그러나 또 다른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 렙틴이 충분한데도 비만인들이 발생한 걸 보면 딱히 그렇다고 결론내릴 수도 없다.
세상은 앞으로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금처럼 유전자를 그대로 노출시킨다면, 우리는 더욱 거대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비만은 몇 년 안에 담배로 인한 질병을 추월하며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로 내몰 것이 분명하다. 세상으로부터 유전자를 보호하고, 환경과의 싸움에서 유전자가 승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연약한 유전자’의 보호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유전자는 너무도 쉽게 환경에 굴복하고 만다

과학자들은 특정 사례 차원의 연구를 벗어나 폭넓은 사례 연구를 시작한다. 부모가 기아를 심하게 겪은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장차 성장해서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는 가정 하에 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 겨울 대기아’ 당시 태어난 아이들(지금은 모두 성인이 된)이나, 자본주의 상품의 유입으로 섬 전체가 몇 년 사이에 비만화된 열대섬 코스라에와 같이 점점 비만율이 높아지고 있는 산업사회를 추적해 들어간다.

산모의 영양 상태가 나쁠수록 아이가 비만에 걸릴 확률이 높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9월 17일부터 1945년 5월 5일까지 네덜란드에 기아가 덮친다. 전쟁으로 식량 공급마저 끊겼던 그 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생식능력은 유지되었고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인 아이들이 수천 명이나 태어났다. 그러나 기아는 세월이 지나며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1970년대 컬럼비아 대학의 지나 슈타인과 머빈 쑤서는 중년에 다다르고 있던 ‘네덜란드 대 기아’의 신생아들에게 접근한다. 그들은 다소 놀라운 발견을 하는데, 어머니가 임신기간 첫 6개월 동안 기아를 겪었던 사람들 중 80퍼센트가 성인이 되어 비만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임신 첫 6개월 동안의 결핍이 아이들을 평생 동안 허기를 느끼게 한다는 이론을 세운다. 자궁 안에서 충분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한 태아의 유전자는 너무도 쉽게 배고프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충분히 먹어도 허기를 느껴 음식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베이컨, 콜라, 콘 비프가 열대섬 ‘코스라에’ 사람들을 비만환자로 만들었다.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 코스라에 사람들은 더 이상 파파야와 빵나무 열매만 먹던 사람들이 아니다. 자본주의 산물이 섬에 들어오기 전 이들은 지구상 어느 국민보다도 날씬했다. 이 섬의 사람들은 무료한 표정으로 산만한 덩치를 어기적거리다 대부분 서른 번째 생일도 맞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는다. 50세까지 사는 것은 이들에겐 너무도 힘겨운 일이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유전자가 기름진 음식에 굴복되었기 때문이다. 기름기가 많고 단 음식에 한번 길들여진 유전자는 그렇지 않은 음식을 대했을 때 맛을 별달리 느낄 수 없게 되어 그 전에 비해 더 많이 먹고, 더더욱 뚱뚱해진다. 대체로 비만 인구가 적었던 아시아 지역과 러시아에 패스트푸드가 유입되며 비만률이 높아지고 있는 사실이나 어려서부터 탄산음료나 지방질 음식에 노출된 아이들의 비만률이 높다는 사실도 이와 같다.

꿈쩍도 하지 않는데도 유전자는 늘 배고픔을 호소한다. 과거 우리는 모든 일을 걸어서 해결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10리 길을 걸었고 산길을 돌아 등교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웬만한 거리라면 자연스레 차를 이용한다. 자가용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며 집 앞 비디오 가게를 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이상하지 않다. 또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학교마다 입시 열풍이 불면서 체육 수업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렸다. 그런데도 음식의 소비량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졌다. 사람들은 이제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만 봐도 배가 고프면, 지글지글 기름이 끓는 음식 이외의 것을 먹어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즉 우리의 유전자는 운동의 기회가 적고 칼로리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었을 때 통제능력을 잃게 된다. 적게 움직이며 기름진 음식에 중독된 사람들은 한 끼니 식사에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칼로리를 섭취해야만(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앉은자리에서 햄버거 두세 개를 뚝딱 해치우는 사람들이 많다) 포만감을 느낀다.

프롤로그_1조 달러짜리 질병, 비만

1. 식사의 권태
위장의 진실 / 초대형 인간들 /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위 / 뚱보보다 장애인이 낫다 / 비만환자들의 유일한 대안 / 위험하지만 정당한 수술

2. 비만의 역사
비만의 모습 / 지옥에 떨어진 대식가 / 비만 성향을 가진 사람들 / 기생충과 같은 비만 / 건장함과 거대함의 차이 / 식사의 절제 / 죄인과 같은 비만환자 / 영양의 오르가즘 / 비만 성격 / 지금 세계는 어느 때보다 둥뚱하다

3. 타고난 비만들
지방의 정체 / 유전 프로그램 / 정상과 비정상 / 오비 쥐 출현 / 리포스탯 / 진흙탕 속에 빠진 학자

4. 첨단에서
포만유전자를 찾는 사람 / 지상에서 가장 은혜로운 곳 / 잃어버린 고리 / 혁명의 징후들

5. 뚱뚱한 사람과 날씬한 사람의 차이
사람은 날 때부터 뚱뚱한가, 아니면 뚱뚱해지는가 / 위장 자위행위 / 신체의 적응 메커니즘 / 유전적 연결고리 / '오비 유전자 발견' 프로젝트 / 지옥의 묵시록 / 신비한 포만인자 / 열광의 도가니

6. 배고픈 유전자
비만과 가난의 관계 / 비만 쥐만큼이나 예외적인 사례 / 과식 충동 / 렙틴 돌연변이들 / 렙틴 신호음 / 체중을 걱정하는 사람들

7. 비만과 다이어트를 동시에 권하는 사회
휘둘리는 과학자들 / 끔찍한 악몽 / 음모의 시작 / 희귀한 불치병 / 통계 도표의 희생자 / 두 개의 펀치 / 속임수 / 우리를 구해줄 돌파구

8. 스팸 통조림, 세상을 살찌우는 것들
잔혹한 흔적, 비만 / 값비싼 대가 / 파파야와 빵나무 열매 / 검약 유전자형 / 풍요의 희생양 / 점점 병들어 가는 사회 / 신세계 증후군

9. 시장 논리에 희생되는 아이들
네덜란드 대기아 / 질병의 악순환 / 비만은 자궁에서 시작된다 / '슈퍼 비만' 어린이 / 덩치만 큰 나약한 아이들

10. 손만 뻗으면 채워지는 식욕
어린이 시장을 잡아라 / 버거킹 '키즈클럽' / 생각 없는 음식 / 오늘 나는 '큰놈'을 먹었다 / 패스트푸드 식민지 / 파우스트적인 거래 /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라

11. 비만과의 전쟁
사회가 우리를 살찌우고 있다 / 육체활동을 방해하는 사회 / 시간 부족의 해결책 / 고삐 풀린 소비주의 / 유행병의 물결을 되돌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