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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작가의 소설집. 학출(學出) 노동자로 노조 활동을 하다가 회사의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한 남자를 계속 그리워하다가 결국 실종된 여인의 이야기 <그 동백에서 울다>를 비롯해 4편을 담았다.

1998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를 통해 등단한 조용호의 처녀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가 출간되었다. 조용호는 이 창작집에 대학시절 노래패에 몸담았던 경험과 운동의 처절한 좌절, 그리고 개인사적 아픔과 문화부 기자의 경험을 직조해서 11편의 이름다운 소설을 담아냈다.

대개 여행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소설들에서 조용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나간 날의 회억(回憶)이라기보다는 8,90년대의 상처를 돌이킴으로써 작가 자신을 비롯한 시대의 존재 증명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아무도 돌이키려고도 하지 않는 그 시대도 분명 정 많은 인간들이 살았다.

그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조용호에게 그 사람들은 연인이기도 했고, 연인의 친구이기도 했고, 연인의 오빠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삶에 순정한 사람들은 21세기에도 도처에 있다. 조용호의 단편들은 그런 과거의 사람과 지금도 존재하는 삶에 부대끼지만,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 편력의 기록이다. 그는 소위 386세대의 맏형으로서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 나서는 우리 시대의 나그네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적 아우라에 대한 향수와 그의 도저한 비극적 낭만주의는 함께 어우러져 이 작품집의 매력을 더한다. 21세기에도 느리게 걸으며 구성진 민요 한 자락을 불러대는 또 한 사람의 소중한 신예 작가를 이 작품집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문단은 가지게 되었다.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의 줄거리
이 창작집은 모두 11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수바람>은 시골 작은 동네에 사는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본 주변 어른들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소년은 서울에서 돈을 벌고 있는 남편이 오기를 매일같이 기다리는 한 새댁을 기차가 지나다니는 들녘에서 만난다. 그러나 그 새댁은 남편으로부터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고 농약을 먹고 죽고, 이 소식을 듣고 내려온 남편은 공장에서 일하다 다리를 잘려 일부러 그런 편지를 쓴 거라며 애통해한다.

<능소화>는 화자가 자신의 친구를 회상하는 액자식으로 구성돼 있다. 어렸을 적에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를 잃은 주인공의 친구는 중년이 되어 우연히 놀러간 지방에서 누나와 비슷한 능소화를 닮은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도망쳐 살게 되지만, 남자는 그 여자가 누나가 남겨놓고 간 딸이라는 말을 듣고 방황한다. 그러나 우연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남자는 여자에게 달려가지만 이미 능소화는 이승에서는 떨어져 버리고 만다.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서 주인공은 옛 여인의 편지를 받고 여자의 말을 따라 베니스로 가는 열차를 탄다. 여자는 학창 시절 오빠가 노동운동을 하다 투신 자살하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죽은 후 방황하다 베니스에서 최후를 맞는다. 함께 노동운동을 했지만 소극적이었던 남자는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 앞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 동백에 울다>에서 신문사 기자인 주인공은 동백꽃만을 그리는 여류 화가를 만나 관심을 갖게 된다. 학출 노조운동가로 공장 옥상에서 투신 자살을 한 옛 남자를 잊지 못하는 여자는 가슴속에 남자가 만든 타지마할을 품고 살다가 어느 날 동백꽃 속에서 실종된다. 주인공은 여자를 찾아 타지마할로 떠난다.

<비파나무 그늘 아래>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절에서 스님들의 도움으로 점차 기억을 회복해 가는 내용이다. 그 기억 속엔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을 잃고 비통해하며 삶이 점점 피폐해져 갔던 자신과 아내가 있다.

<잉카의 여인>에서 해당화 향을 풍기던 옛 여인을 가슴속에 품고 잉카로 날아온 주인공은 로사라는 여자를 만나 마추픽추에 동행한다. 로사 역시 사랑했던 남자를 그곳에서 잃은 기억을 갖고 있다. 둘은 마추픽추 산정에서 콘도르가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꽃>에서 프리랜서 여행 작가인 주인공은 친구의 소개로 가야금을 타는 여인을 만난다. 둘은 점차 깊은 관계로 빠져들지만, 사랑했던 남편이 팔을 잃고 방황하다 급기야 자살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여자는 또다시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 주인공을 떠난다.

<이별>에서 주인공은 대학 동아리에서 좋아했던 여자가 선배랑 결혼했던 아픈 추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선배는 교통사고로 죽고, 선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를 우연히 만나 자신만이 알고 있는 선배의 출생 비밀을 여자에게 말한다. 마침내 여자는 선배를 떠나보내는 이별식을 한다.

<황색 오르페우스>에서 수홍과 정은은 대학 내 노래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듀엣이자 커플이었다. 오르페우스인 수홍은 자신의 노래가 사람들로부터 점점 외면받고 에우리디케인 정은과도 헤어지자, 파리에서 피폐한 삶을 살다 죽는다. 정은을 짝사랑했던 주인공은 우연히 접한 이 소식을 그녀에게 전한다.

<들바람>에서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주인공은 거기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모범적인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카바레에 나가 한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급기야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건강마저 잃어 죽게 된다.

<가을 나그네>에서 주인공은 회사 업무로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와 깊은 관계까지 간다. 이를 알게 된 아내와 이혼하고, 회사에서마저 퇴출당한 주인공은 그 여자와 함께 갔던 산속의 모텔을 홀로 찾아간다.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대한 분석과 평가>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등단한 조용호의 소설은 여러 면에서 김소진의 소설과 비교된다. 김소진이 아버지를 부정하지만 결국은 아버지를 승계하면서 민중의 일원이 되었다면, 조용호는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그 기질을 계승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그가 늦깎이로 등단하여 세상을 향해 소설가로서의 첫 존재를 알리는 이 작품집에는 그가 소설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시대와의 불화를 가슴에 묻고 아직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 증명, 성인이 되면서 애써 무시했던 아버지에 대한 추모, 세상을 떠도는 사람들의 서글픈 가슴의 위무,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 마음의 떠돌이를 문자 행위로 붙들어매기 등일 것이다. 그는 황혼에서 어슬렁거리며 만가를 웅얼거리고 있다. 이 소설집은 우울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선험적 낭만주의자에게 작은 위안이 될 것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그의 모든 소설에서 황혼은, 석양 무렵의 풍경은 조금씩 분위기를 달리하면서 묘사된다. 그의 소설이 황혼의 묘사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그가 석양의 풍광만 전문적으로 찍으러 다니는 전문 사진작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의 소설에 해뜰 무렵의 태양과 중천의 태양이 나오는 것은 거의 드물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가 서해 바다 가까운 김제 출신이라서 그럴까. 그의 황혼과 그의 소설에-<가을 나그네>만 제외하고-나오는 떠남과 이별과 죽음은 어떤 연유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어떤 이는 여행에서 풍광을 보고 어떤 이는 여행에서 사랑을 보는데, 왜 조용호는 황혼과 죽음만을 보는 것일까. 그는 왜 하고많은 민요 중에서도 상엿소리에 취했던 것일까.(<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기차>) 왜 백수광부처럼 서해바다의 어두운 물에 스스로 빠져드는 것일까.(<바람꽃>) 그 이유는 비극적 낭만주의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황홀한 황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도도한 죽음, 그것은 비극적 낭만주의에서 비롯한다. 그의 소설은 세상 곳곳에서 도저한 슬픔을 보며 논리의 소설을 황혼의 노래로 바꾸어버린다. 때문에 그의 소설은 황혼의 만가(輓歌)이다. 그 만가는 분명 시대와 가족사가 만든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의 도저한 비극적 낭만의 진정한 정체는? 비평이라는 논리로 도저히 그것을 알아낼 수 없다면, 나는 논리적인 분석에 앞서 그의 비극적 낭만의 한 자락을 슬쩍 잡아보고 싶다. 깊게 혹은 가볍게.(고딕체 부분은 문학평론가 하응백의 해설에서 인용)

1. 수수 바람
2. 능소화
3.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4. 그 동백에 울다
5. 비파나무 그늘 아래
6. 잉카의 여인
7. 바람꽃
8. 이별
9. 황색 오르페우스
10. 들바람
11. 가을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