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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고사 : 사대주의와 일제 잔재를 벗어나 사료로 우리 고대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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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성훈
  • 출판사 : 북랩
  • 발행 : 2023년 01월 27일
  • 쪽수 : 618
  • ISBN : 9791168366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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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대주의와 일제 잔재를 벗어나 사료로 우리 고대사를 보다

현재의 역사는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소설이다.
이 책이 그 소설성을 입증하고 진실을 밝힌다.
상위 1%의 한국인은 반드시 이 책의 서문이라도 읽어야 한다.

역사는 창작 소설이 아니다. 사료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타국을 침략할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상한 목적하에 쓰인 소설이 역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창작 소설 수준의 유사 역사학이 판을 치고 있다. 필자의 어조가 강하여 거부감이 들더라도 조금만 더 인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필자는 최대한 억제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낙랑군은 조선이 아니라 한나라 영토에 설치된 군이다. 당시 전쟁에 이기면 토착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주시키는 것이 관행이었다. 중국 측 사료에 의해 낙랑군이 요동고새 내부의 원래의 한나라 영토에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다. 삼국지와 후한서는 단군조선이 신한(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부여는 추모(주몽)가 도망친 동부여와 비류가 세운 예부여(비류백제)의 두 개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중국 동해안의 백제 유민 세력을 기반으로 하였다. 대화왜는 백제 주민이었던 전라도 왜가 신라로 도망가서 포로로 지내다가 광개토대왕의 명령으로 나라의 고구려 분국에 이송된 피지배민이다. 도대체 야마토라는 왜계 정권이 성립될 여지가 없다. 열도는 가야계의 지배, 백제의 담로 지배, 5세기 백제와 고구려의 남북국 시대, 6세기 이후 백제 지배의 역사를 거친다. 칭기즈 칸은 震國王인데, 이는 그가 大震(발해)을 계승하였음을 의미한다. 백제와 신라의 고향은 황하하류이다. 추모(주몽), 즉 고구려는 한나라의 부용세력으로 출발했고, 유리왕은 왕망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홍산문화는 배달국을 증명한다. 하가점하층문화는 삼한조선(고조선 전기)을 증명한다. 치우는 배달국에서 남하하여 먼저 와서 중국인을 지배했던 황제와 싸웠다. 번조선은 중국 동부를 지배했다. 서언왕은 번조선 남부의 왕이다. 칼돈은 고조선의 화폐이고, 칼돈이 발견되는 곳은 고조선의 강역이다. 만리장성은 북경 남쪽 보정시에서 시작한다. 필자의 이러한 주장은 거짓말이거나 정신 나간 환빠의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주장은 객관적 사료에 기반하고 있다. 간명하게 기존의 주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아래 사례를 살펴본 후에, 필자가 정신 나간 환빠인지를 판단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삼국지』는 대방군에서 韓을 지나 남으로 동으로 7,000여 리를 가야 김해에 도달한다고 한다. 대방군이 황해도라는 소위 강단사학계의 주장은 소설에 불과하다. 『후한서』도 낙랑군의 변경 즉 대방군에서 김해까지 7,000여 리라 한다. 당시에 韓은 황하 하류의 동쪽, 제수의 북쪽이었고 낙랑군과 대방군은 韓의 서북쪽이었다.
동천왕은 관구검에게 패하였는데,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양서』 「동이전」, 『북사』 「고구려전」에 의하면 관구검은 동천왕이 옥저로 도망가자 왕기를 시켜 추격하게 하였고, 추격군은 옥저를 지나 1,000여 리를 추격하여 관구검기공비를 세웠다. 그 관구검기공비가 집안 판석령에서 발견되었다.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조조의 위나라가 고구려를 통쾌하게 이긴 것을 기록한 것이므로, 크게 왜곡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부분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집안 서쪽 1,000여 리에 옥저가 있었고 그 서쪽에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소위 강단사학계는 옥저는 한반도 동해안에만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양서』 「동이전」, 『북사』 「고구려전」이라는 사서와, 관구검기공비를 무시하고 옥저의 위치와 고구려의 강역에 관해 소설을 쓰고 있다.
『수서(隋書)』는 고구려에 평양성 國內城 漢城의 세 도회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평양에서 漢城이라 기록된 고구려의 각자 성석(刻字城石)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평양은 고려시대 때 서경이라 하였다. 김부식은 묘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경으로 가면서 안북대도호부에 이르러 다른 부대와 합류하는데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은 안북대도호부가 지금의 안주라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라 고려의 서경을 지금의 평양이라 하면 모든 토벌군이 서경으 로부터 북쪽으로 직선거리 70㎞까지 간 것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란군이 바로 개경으로 남하하여 임금을 모시면 순식간에 반란군과 토벌군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즉 지금의 평양을 고구려의 평양으로 볼 수는 없고 고구려의 평양은 최소한 안주 북쪽에 있었고, 현재의 평양은 각자성석이 밝히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漢城이라고 보아야 한다. 소위 강단사학계는 서울 강북이 고구려의 한성이라 하는데, 강북은 주로 백제의 영토였고, 고구려가 점령한 시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국경이 도회지가 되기는 어려우며, 각자성석이라는 명백한 증거에 반하므로, 그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소설에 불과하다.
- 〈서문〉 중에서

목차

서문
국문 요약

Ⅰ. 서
1. 연구 필요성과 목적
2. 연구 범위와 방법

Ⅱ. 환국과 배달국
1. 환국과 배달국의 성립
2. 환국과 배달국 과잉인구의 이주
3. 범집단(=예=왜)의 이주
4. 고인돌집단의 이주

Ⅲ. 조선
1. 삼한조선의 성립
2.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이 기술하는 삼한조선
(1) 진수와 범엽의 실수
(2) 조선의 삼한과 서기전 2세기 이후 삼한의 분리
(3) 강단유사사학의 날조
3. 삼조선의 성립
(1) 숙신의 辰韓 지역 지배
(2) 기자조선의 허위성
(3) 辰韓人의 남하와 番韓의 변화
(4) 강단유사사학의 동이 날조
(5) 삼조선의 관계
4. 갈석산과 연나라의 위치 비정
(1) 갈석산의 위치
(2) 연나라의 위치
5. 삼조선의 변화
(1) 번조선 남부
(2) 번조선 북부와 제의 경계
(3) 화폐가 증명하는 삼조선의 강역과 경제
(4) 한후국=산융=동호와 ‘흉노’=융적
(5) 신조선의 멸망과 대부여의 건국
(6) 무역로의 붕괴와 삼조선 체제의 해체

Ⅳ. 열국시대
1. 북부여의 건국과 열국시대의 시작
2. 예맥조선과 한사군
(1) 예맥조선
(2) 왕검성과 낙랑군의 위치
(3) 낙랑군 왜곡의 과정
(4) 한사군의 날조성
(5) 요수(遼水)의 위치
3. 번조선 지역(=韓 지역)의 변화
(1) 韓의 위치 비정과 특성
(2) 韓의 변화
4. 동옥저, 북옥저, 남옥저
5. 고두막국과 동부여
6. 고구려의 건국과 초기의 영토확장
(1) 고구려는 요동 오환이 건국
(2) 고구려의 건국 도읍지
(3) 고구려 국호와 북부여 계승
(4) 초기 수도 이전
(5) 초기의 영토 확장
(6) 고구려 초기 후한과의 관계
(7) 요동군, 요서군, 현도군의 이동
7. 신라의 건국과 경상도로의 이동
(1) 韓에서 건국
(2) 신라의 경주로의 이동
(3) 김알지의 계림국 합류
8. 백제 도읍지, 영토, 무역
(1) 백제의 시조와 건국 시 도읍지
(2) 중국 사서가 기술하는 백제의 요서 진평
(3) 백제와 낙랑군
(4) 백제와 말갈
(5) 동서(東西) 양도제(兩都制)
(6) 개로왕이 죽은 한성과 고구려의 남진정책
(7) 요동반도백제와 신당전쟁 후의 신라 강역
(8) 열도백제
(9) 기타 백제의 강역
9. 중국 동해안의 백제 유민
(1) 당나라의 백제 유민
(2) 오월국(吳越國)과 무염선원(無染禪院)
(3) 고려와 백제 유민
(4) 명나라의 백제 유민
(5) 나라는 망해도 유민은 남는다
10. 예부여(=왜부여=비류백제)
(1) 예부여의 건국과 동부여와의 구별
(2) 예부여의 변화
11. 고구려 수도의 변동
(1) 환도성
(2) 평양성(지금의 요양)
(3) 황성
(4) 장안성
12. 韓 주변의 공방
(1) 고구려의 후한 공격
(2) 고구려 예부여 韓·濊와 공손씨
(3) 백제 韓·濊와 조위
(4) 고구려·백제·예부여와 전연
(5) 고구려·백제·예부여와 후연
(6) 고구려·백제·예부여와 위
(7) 고구려와 북주
(8) 고구려와 수
(9) 고구려와 당
13. 가야
(1) 가야의 건국
(2) 新錢이 증명하는 김일제 후손의 이주
(3) 가야의 영토와 경제
(4) 소승불교의 전래
(5) 가왜·신왜전쟁
(6) 가야 왕권의 변동
(7) 가야의 멸망
14. 열도의 변화

Ⅴ. 강단·일제유사사학의 열도 고대사 날조
1. 일본(백제)을 야마토왜로 날조
(1) 「일본서기」의 일본은 백제이다
(2) 일제유사사학의 심리
(3) 「일본서기」에 숨겨진 진실
2. 일제유사사학과 강단유사사학 비교
3. 강단유사사학의 대하소설 「야마토임나」
(1) 진경대사와 강수
(2) 광개토대왕릉비의 임나
(3) 신라7국
(4) 가야의 서부 국경
(5)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6) 강단유사사학의 비학문성과 ‘임나=가야’ 교시 추종성

Ⅵ. 난하 갈석산설의 문제점
1. 난하 갈석산설의 무근거성
2. 난하 갈석산설의 폐해

Ⅶ. 결

참고문헌
ABSTRACT

본문중에서

소위 강단사학계는 객관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우리 역사는 부정하나, 실체가 모호한 야마토왜와, 야마토왜의 한반도 진출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일본서기」에 倭나 大倭(大和)는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되어 있고, 대왜가 야마토로 발음될 수도 없다. 예군 묘지명에서 일본은 백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서기」의 일본은 백제이지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된 大倭(大和)가 될 수 없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열도를 지방 행정 구역으로 지배하다가,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별칭인 ‘일본’으로 독립하면서 열도인을 다스릴 목적으로 가공의 역사를 기술한 책으로 용비어천가와 같은 문학서이다. 열도에 왜계의 야마토 정권이 성립한 적이 없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나오는 야마일(邪馬壹) 또는 야마대(邪馬臺)국은 가야계의 나라로 왜가 아니다. 양보하여 야마대가 왜계의 나라라 하더라도 일본의 속국이므로 야마토왜왕이 일본의 왕이 될 수는 없다.
소위 강단사학계는 가공의 야마토왜가 4세기 이후 한반도 남부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한다. 그 근거로 「일본서기」의 임나가 가야라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임나를 가야라고 한다. 그들 중 가야 전문가로 치부되는 김태식은 임나가 가야인 이유를 ‘무슨 이유에선가’라고 한다. 이영식은 「일본서기」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임나가 가야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서기」를 있는 그대로 볼수록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
「일본서기」에 “탁순에 집결하여 신라를 공격하여 깨뜨렸다. 그리하여 비자발,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7국을 평정하였다.”는 문구가 있다. 그들은 이 7국을 신라가 아니라 임나라고 하여 문언을 무시한다. 그런데 「일본서기」 임나10국 중에 가라 안라 다라가 있다. 그들의 「일본서기」 시기 설정 방법(「일본서기」는 역사서의 기본인 시기가 사실과 달라 소설가들이 사용하는 시기 설정 방법이 있다)에 의하면 신라7국은 369년의 일이고 임나10국은 562년의 일이다. 그들의 시기 설정을 존중하면 가라 안라 다라가 신라였다가 임나로 되었다는 것인데, 한반도의 신라에는 가라 안라 다라가 있지도 않았고, 신라가 그 세 지역을 가야에 뺏긴 적도 없으므로, 일본 서기의 7국이나 10국은 신라인들과 가야인들이 이주한 열도 내 마을국가들의 이름으로 보아야만 한다. 이러한 결론을 방지하기 위해 소위 강단사학계는 신라7국을 임나7국이라 강변한다. 그들의 「일본서기」 문언 파괴는 신라7국만이 아니다. 문구는 일본왕이 7국을 공격하여 깨트렸다고 하는데, 김태식은 주체를 일본왕도 아니고 야마토왜왕도 아닌 야마토왜에 충성하는 백제로 바꾸고, 공격하여 깨뜨린 것도 교역권의 장악이나 공납 관계의 형성으로 바꾼다. 김태식은 전혀 「일본서기」의 문언을 존중하지 않으며 그의 소설을 창작할 뿐이다. 그래도 이영식은 김태식을 존중한다. 이영식의 ‘문언 그대로’는 아무 이유 없이 임나가 가야로 되는 문언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任那者去筑紫國, 二千餘里.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임나는 축자국에서 2,000여 리 가는데,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라고 임나의 위치를 규정하고 있다. 가야의 북쪽은 바다가 아니다. 소위 강단사학자들은 이 문구를 어떻게든 회피하기 위해 오역을 하거나 오자라고 주장하거나, 심지어는 낙동강이 바다였다고까지 주장한다. 「일본서기」에는 가야가 망한 후에도 약 100년간 임나가 수시로 등장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임나는 가야가 될 수 없다.
소위 강단사학계는 야마토임나설을 위해 창녕비의 내용도 조작한다. 처음부터 신라의 영토였던 창녕을 임나였다고 날조하기 위해, 561년 만들어진 창녕비가 척경비(拓境碑)나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녕비문은 농토, 산림, 소금, 하천 등 경제 관련 업무의 주관 기관을 정하는 것이고, 순수 관경이나 척경에 관련된 문언은 전혀 없다. 가야는 557년 신라에 정복당하여 561년에는 가야가 있지도 않은데, 소위 강단사학계는 비문의 내용과 아무 관계도 없는 국경을 날조하면서 임나가 가야라고 한다.
일제총독부 역사 날조의 핵심은 야마토가 한반도 남부에 진출하였다는 야마토임나설이 아니라 일본, 즉 열도 백제를 야마토왜로 변조한 것이다. 일본이 야마토왜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으므로, 야마토임나라는 더 큰 날조를 통해 이를 덮으려 하였다. 즉 야마토 임나설은 야마토왜의 가공성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대마도를 반환하지 않기 위해 독도를 문제 삼는 것처럼, 야마토왜의 날조를 숨기기 위해, 일제총독부는 야마토왜의 한반도진출이라는 더 큰 날조를 실행하였다.
이상은 소위 강단사학계가 날조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상의 언급만으로도 우리 역사가 불순한 목적을 가진 소 설가들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창작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료에 의해 실증적 과학적으로 우리 역사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 책은 필자의 2022년 순천향대학교 석사학 위논문(한민족의 이동과 역사강역에 관한 연구)을 일부 수정 보완한 글이다. 이 글은 쉽게 읽히도록 쓴 글이 아니다. 소위 강단사학계의 거 짓을 입증하고 우리 상고사를 실증적 과학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논문 형식의 글을 그대로 출판하고자 한다.
조선의 역사 설화(소위 단군신화)가 구체적으로 기재된 사서는 辰韓의 영토를 계승한 고구려에서 보관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진(소 위 발해)의 멸망으로 고구려와 대진에서 보관되던 상고사 서적이 사 라진 후, 우리는 역사를 잃어버렸다. 이 글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상실된 우리 역사를 회복하였다. 신채호 등 독립투사들이 우리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연구 여건이 열악하여 우리 상 고사를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광복 이후 독립투사들의 업적을 이어받아 우리 역사를 과학적으로 기술하여야 하였지만, 일제 잔재가 그대로 남아 날조된 역사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강단유사 사학에 대항하여 재야에서 우리 역사를 찾기 위한 연구가 지속되었지만, 단편적인 성과에 그쳐 우리 상고사를 회복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필자는 재야의 실증적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하면서, 그동안 잊혀졌던 韓을 발견하여 우리 상고사의 대강을 회복하였다.
- 〈서문〉 중에서

저자소개

조성훈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65

1965년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 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제35회 행정고등고시 재경직에 합격했다. 미국 오레곤 주립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세청, 조세심판원,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했으며, 국세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글로벌한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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