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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 신동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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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신동호
  • 출판사 : 창비
  • 발행 : 2022년 06월 17일
  • 쪽수 : 116
  • ISBN : 978893642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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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뒤를 돌아보게 하는 건 그림자 때문이다”
반대쪽에 드리워진 삶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서사적 상상력과 서정시의 눈부신 결합

감시와 처벌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해온 신동호 시인이 네번째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를 펴냈다. 장장 18년 만에 선보인 세번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실천문학사 2014) 이후 다시 8년의 벼림 끝에 내놓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서정적 감수성과 서사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시세계를 펼치며 “사소한 일상의 자리”에서 “가족사와 성장사를 거대한 역사적 시간대에 비끄러맨”(손택수, 추천사) 시편들을 선보인다.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현재의 삶을 성찰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시편마다 힘겹게 세상을 건너온 고투의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일생 남북문제에 헌신해온 그는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며 딱딱한 현실 정치를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대통령의 필사’로 불리기도 한바, 이번 시집에서 그만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시인은 끝없이 갈라지는 길 위에서 추억에 젖는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물과 장소를 호출하여 지금-여기의 삶을 표상하는 구체적인 이야기의 주체로 되살려낸다. 이 모든 것은 과거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추억 속으로 들어가 건져 올린 “흥에 겨워본 일 없는 생(生)”(「탓」)의 기억들은 시인의 가슴속에 고통과 기쁨과 사랑과 꿈이 뒤섞인 아련함으로 남는다. 시인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아련함 때문에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고 말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슬픔은 던져버릴 수 있어도 아련함은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오월 광주’가 스무살 가슴속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혁명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품고 살았”으나 “혁명의 피 냄새는 늘 두려웠다”(「경장(更張)」)고 고백한다. 확신에 찬 사람들 앞에서 휘청이며 부끄러워했던 회한에 젖기도 하지만 시인은 “집단의 정의가 개인의 복수 행위보다 더 잔혹”할 수 있다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진보’라는 절대운동은 없”으며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격렬한 동사들”이 아니라 “따뜻한 동사들”(「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한편 신동호 시인은 ‘통일운동가’로도 오래 활동해왔다. 대학원에서 남한 내 북한 출판물 현황 연구 용역을 하다 남한에서 중구난방으로 출간되던 북한 예술작품의 저작권 문제에 눈을 뜬 그는 북의 책을 남에서 출판할 수 있도록 저작권 협상을 대행하고, 북쪽 노래들을 남쪽 가수들이 부른 음반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서 상임이사와 문화협력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오랜 세월 남과 북의 문화교류를 위해 고투해왔다. 이번 시집에서 그런 시인의 면모가 잘 드러난 시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별과 만남, 열망의 기나긴 기록”이 마침내 “2045년 11월 3일” 현실로 도래한 통일 이후의 미래를 예견하는 장시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은 가히 이 시집의 백미(白眉)라 할 만하다. 시인은 “전쟁과 정전, 종전과 평화” 같은 정치적 이념의 관성을 뛰어넘어 “증오와 미움을 이겨”내고 분단의 비극적 역사를 끝낸 ‘깔마 꼬레아’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어차피 “바다와 파도는 둘이 아니었다”. 신동호 시인이 “단절과 망각”(「서랍」)의 장벽에 가로막힌 남과 북의 경계를 허물고 나아가 세계를 넘나드는 웅혼한 기상과 역사적·지리적 상상력으로 건설한 ‘깔마 꼬레아’는 일찍이 신동엽 시인이 꿈꾼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산문시 1」)과 함께 또 하나의 한반도 평화공동체의 상징으로서 길이 남을 것이다.
시인은 여전히 끝없이 갈라지는 “미로 같은 골목길”(「서촌, 인왕제색(仁王霽色), 이상」)을 서성인다. ‘일상의 길’이자 ‘시대의 길’이자 ‘시의 길’인 이 길은 계속해서 여러갈래 길을 만들어낼 것이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과 “가보지 못한 길”(‘시인의 말’)이 있기에 시인의 마음은 더욱 아련할 것이다. 폭력과 야만의 불온한 시대를 헤쳐오는 동안 시는 휘청이는 삶 속에서 번번이 쓰러졌던 시인을 일으켜 세웠다. “스무개의 절망과 한개의 사랑을 품은 채”(「계단」) 세상의 한복판을 건너왔던 시인은 이제 “스무개의 이상과 한개의 아련함”(오연경, 해설)을 간직하고서 온전히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우리의 마음에 빛나는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추천사


열일곱살 골목에 머물러 있다. 그늘과 햇빛의 조각들, 식구 수만큼 낡아진 대문과 제각각인 살림들, 골목 끝과 모든 시작이 궁금하다. 군중 속 외로움과 남산 수사실에서의 외로움이 썩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보통강 버들과 삼지연 개박달나무, 그 색다름이 우리 집 뒷산 봄날 진달래로 반복되어 핀다는 것도 안다. 권력의 바깥과 안 역시 미완성인 목소리들의 높낮이 향연일 뿐이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 모두 무덤덤하게 평범해진다. 무척 아련하다. 여전히 골목을 서성일 수밖에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2022년 6월
신동호

손택수(시인)
황쏘가리와 양미리와 꺽지와 메기와 피라미와 빙어와 끄리를 품은 구술세계의 웅숭깊은 수심으로부터 멸종위기종으로 몰린 북방의 서사가 귀환했다. ‘똥고기’에게 ‘동버들개’라는 의젓한 이름을 찾아주기까지 감시와 처벌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자의 노래는 아프고 쓸쓸하면서도 시종 따듯한 정조를 잃지 않는다. 가족사와 성장사를 거대한 역사적 시간대에 비끄러맨 신동호 시의 도저한 여정이 빛을 발하는 대목은 뜻밖에 사소한 일상의 자리이다. “자주 쓰진 않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바리캉 오일을 찾아서」), 꾸욱 꾹 눌러쓴 골필에 옹골찬 기운이 흐른다.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로부터 시의 「경장(更張)」을 읽는다. 거문고를 부숴버리는 대신 줄을 고쳐 매는 ‘경장’을 통해 구술세계 어족들의 결사체인 화천군 구만리와 춘천 중앙시장과 바느질 솜씨 좋은 수선집과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밥상」과 금강산의 형제인 「딴산」의 꿈은 새롭게 이어질 것이다. 「겨울새」의 득음이 참으로 아득하다. “아홉굽이를 함께 돌아가는 동안 감추는 법을, 은유하는 방법을 잊어버린”(「구룡폭포」) 채 나 또한 늦은 고백을 하고 싶어진다.

목차

제1부
계단
아득한 눈길
서촌, 인왕제색(仁王霽色), 이상
겨울새
황쏘가리
뼈들
율리시스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
바리캉 오일을 찾아서
혁명가들
라면 한꺼번에 많이 끓이기, 그 실패와 성공의 역사
양미리
우체통이 늘 짜다
성천막국수
수선(修繕)
겨울방(房)
죽음조차 내 것이 아닌
겨울 장례
하지(夏至) 무렵
꺽지

제2부
알람브라궁전의 추억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다슬기
딴산
사막
111번 버스를 위하여
부산복집
노고산동 54-38
새떼
경장(更張)
파국을 걱정하며
메기
귀면암의 겨울
밥상
따뜻한 밥상
마장동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
여의도
금강전도(金剛全圖)
구룡폭포

제3부
새벽강
피라미
빙어
반포대교를 건너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상계1동
입원

잉어
단(旦)
새서울병원
서랍
하강(下降)
끄리
전쟁들, 하찮음을 깨닫는 순간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똥고기
밥 이야기
물로리 같고 조교리 같은
무등(無等)

해설|오연경
시인의 말

본문중에서

구석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계단을 오르고 있다.
동굴벽화 몇곳에 계단이 그려져 있고
점토판 설형문자는 ‘계단을 올랐다’로 해석되었다.

계단 끝에서 신들을 만났다는 소문이 돌자
엎드리고, 경배하고,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다.
길과 이어진 계단에서 버려진 육체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막다른 계단은 따뜻했다.

(…)

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아직 모른다.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찰나만큼 수명이 길어질까,
시간은 계단 위를 아주 느리게 파고들었다
-「계단」 부분

‘경장’의 재발견. 마음속에서 잘 떠나질 않는다.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고쳐 맨다는 뜻.

혁명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용맹정진하기엔 미련이 많은, 의지박약형 인간인 내가 혁명을 꿈꾼 건 오직 스무살 뜨거운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온 ‘광주’ 때문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피 냄새는 늘 두려웠다. 늦었지만 고백한다.

‘경장’에 담긴 두가지 의미가 맘에 든다. 거문고를 부숴버리지 않고 줄만 고쳐 맨다는 것, 그 결과가 조화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
-「경장(更張)」 전문

저무는 거리, 바람에 흔들려야 하는데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길어진 만큼 갈 길은 멀고 마음은 쓸쓸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그림자가 없다. 황혼이 몸을 지나 빠져나간다. 황혼을 붙잡아야 심장이 뜨거워질 터였다. 틈도 순간도 없다. 창백한 얼굴들만 제자리걸음이다.

(…)

변명이 소용없고 이성으로 살아지질 않는다. 가을이 오기 전에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그림자에는 고요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건 그림자 때문이다. 앞으로만 가는 발길을 붙잡기 위해, 쓸쓸한 날의 머뭇거림을 위해 그림자를,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부분

너름지가 눈에 들어오면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났다. 밑동의 생채기가 분명한 떡갈나무 한그루, 아픔의 반대쪽으로 굽어 그늘을 드리웠다. 풀밭의 새들이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소곤대고 남도의 아비들도 겨울 채비를 했다. 진작에 여기서 쉬어야 했다. 징한 것들 사이에서 슬픔을 웃음으로 여겨가면서.

(…)

가질 수 없는 것을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소중한 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누군가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민주주의가 그랬다.
-「무등(無等)」 부분

저자소개

신동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65

1965년 강원도 화천 강마을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자랐다. 강원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되었다. 한양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대학 시절 내내 거리의 운동권으로 지냈다. 전대협 문화국장으로 활동했고, 첫 시집 '겨울 경춘선'을 서울 구치소 2사동에서 받아 보았다. 뒤늦은 공부로 북녘의 문학을 전공하여 한양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한다. 지금은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문화협력위원장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남북 관계에 접목하느라 애쓰고 있다. 저서로 시집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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