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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어디에 : 재클린 부블리츠 장편소설

원제 : Before You Knew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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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해마시라. 이 소설은 죽은 소녀를 다룬 추리물과 전혀 다르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는 소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살해당하는 여성의 수는 얼마나 될까? 통계자료를 보면 무려 한 해에 9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국내에서도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들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고 경각심을 느끼는 분위기가 조성되긴 했지만 여전히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여성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 거리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권리, 자유롭게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국가와 개개인들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끔찍한 살인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의 무능한 수사를 질타하고, 사회 안전망 미비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때만 반짝할 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은 거리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있고, 개개인의 자동차에도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어 범죄를 예방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날이 지능화되고,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는 범죄 행위를 경찰의 수사 능력과 감시 카메라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네 이름은 어디에》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는 소설이자 거리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여성들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앨리스 리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열여덟 살의 나이로 독립적인 삶과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뉴욕에 온다. 앨리스는 수중에 가진 거라고는 현금 600달러와 라이카 카메라가 전부지만 반드시 성공해 독립적인 삶을 열고, 당당한 생활인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품고 있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던 앨리스,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길 갈망했던 앨리스의 꿈은 미처 시작도 해보기 전에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사진학교에 들어가 사진을 배우고 싶어 했던 앨리스는 입학에 필요한 포토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허드슨 강가로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약탈자에게 강간당한 끝에 살해된다.
《네 이름은 어디에》는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뚜렷이 구별된다. 흔히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범인을 체포하기 위한 경찰 수사에 비중을 둔다. 이 소설은 수사보다는 살해당한 앨리스의 삶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앨리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미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좌절당한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묻지마 살인’이 담고 있는 비극의 실체를 직시하게 한다. 누가 그들에게 한 여성의 간절한 꿈을 말살하게 만들었는가?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왜 피해자보다는 경찰 수사와 범인에게 유독 관심이 집중되는가?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리버사이드 파크에서 조깅을 하던 올해 나이 서른여섯의 루비가 길을 잘못 들어 허드슨 강가를 헤매다가 물이 고여 있는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있는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루비는 호주 멜버른 출신으로 한 남자의 내연녀로 지내온 지리멸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욕에 온다. 루비는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해 뉴욕에 왔지만 외로운 날들을 보낸다.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은 루비는 그날 이후 줄곧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살해당한 여성은 누구이고, 왜 그토록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깊은 관심을 갖는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던 한 여성의 삶이 약탈자의 살인으로 마감될 수밖에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암울하고 불공평한 곳인가? 뉴욕에 온 앨리스와 루비의 이야기는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여성 살인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누구였는가? 그녀는 왜 살해당해야만 했는가?

출판사 서평

사람들은 왜 살해된 여성이 아닌 살인자를 주목하는가?

피해 여성인 앨리스와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 루비는 한날한시에 뉴욕에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만난 적 없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에 도전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유사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시신을 최초로 발견한 루비는 앨리스에 대해 심정적인 연대감을 느끼는 가운데 그녀가 살아온 행적을 추적하고, 생전에 그녀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다. 앨리스의 어린 시절 삶은 어떠했는지, 어떤 결심을 품고 뉴욕에 오게 되었는지, 사진작가가 되고자하는 열망을 품고 하루하루 꿈을 위해 매진했던 그녀의 한 달간 이야기가 펼쳐진다.
앨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루비는 죽음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이 있거나 가족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간접 체험을 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오프라인 모임 〈데스클럽〉에 가입해 멤버들과 다양하고 유익한 대화를 나누면서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여성들이 마음 편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와 경찰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깊은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이 소설은 매우 가슴 뭉클하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한편 여성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단지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웃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물었는데 친절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여성들이 계속 양산되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폭력적이고 절망적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 앨리스와 루비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터무니없는 이유로 살해당한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비극적인지 절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편 더는 끔찍한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깊은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네 이름은 어디에》는 재클린 부블리츠의 데뷔작으로 서정적인 문체, 아름다운 묘사, 놀라운 비유로 크게 호평 받았다. 특히 살해당한 여성 이야기를 다루면서 추리가 아니라 피해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던 점이 크게 주목받는 배경이 되었다.

뉴욕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던 두 여자의 가슴 뭉클하고 서정적인 이야기!
-《네 이름은 어디에》 줄거리 요약

위스콘신의 작은 마을에 사는 앨리스 리는 아버지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어릴 때부터 줄곧 엄마와 함께 살아왔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남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기대며 살아가던 엄마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후 앨리스는 엄마 친구 글로리아의 집에서 살아왔다. 앨리스의 나이 열일곱 살, 이제 한 살만 더 먹으면 열여덟 살이 된다. 성인이 되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없기에 글로리아는 아마도 앨리스를 내보내려고 할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앨리스는 뉴욕으로 떠나겠다고 결심한 지 오래다. 뉴욕으로 가려면 적어도 교통비와 열흘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뉴욕으로 떠나고 싶었던 앨리스에게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고교 시절의 미술 교사였던 잭슨 선생님이 모델을 구하고 있다는 광고를 보게 된 것이다. 앨리스는 잭슨 선생님에게 열여덟 살이고 모델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잭슨 선생님은 앨리스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둘 사이는 화가와 모델이 아니라 연인 관계가 된다. 잭슨 선생님은 앨리스를 집에 머물게 해주는 대신 누드 사진을 찍고, 틈날 때마다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한다. 앨리스는 사랑이라 믿었지만 철저하게 농락당했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잭슨 선생님은 앨리스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는 걸 알게 되고, 크게 분노해 당장 떠나라고 호통을 친다. 그는 앨리스를 찍은 누드 사진과 동영상이 발각될 경우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걸 두려워한 것이다. 앨리스는 그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현금 600달러와 라이카 카메라를 챙겨 들고 뉴욕 행 버스에 오른다.
앨리스가 뉴욕에 온 날 또 다른 여자 루비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JFK 공항에 첫발을 내딛는다. 호주 멜버른 출신의 루비는 서른여덟 살이고, 직업은 그래픽 다자이너다. 루비가 사랑하는 남자 애시에게는 약혼자가 있다. 루비는 애시가 약혼자를 버리고, 자기에게 오길 기다렸지만 더는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 다. 애시는 이미 결혼식 날짜를 잡았고, 하객들에게 초대장도 보내놓은 상태이다. 앨리스는 스스로 연인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어느 자리에서나 싱글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 바닷가 별장에서도 루비만 달랑 혼자이다. 루비는 마침내 지리멸렬한 내연녀의 사랑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뉴욕 행 비행기에 오른다.
뉴욕에 와서 사진작가의 꿈을 키우며 독립적이고 당당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열망을 불태우던 앨리스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처럼 퍼붓던 날 아침에 허드슨 강가에서 강간당한 끝에 살해당한다. 루비는 조깅을 하다가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날 이후 루비는 줄곧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살해당한 소녀는 누구이고, 왜 그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추적하는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는 소설! 절대적으로 파괴적이다. -RED 매거진
거리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촉발할 용감하고 시의적절한 소설! -클레어 매킨토시,《너를 놓아줄게》저자

본문중에서

당신은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을 거야. 이 세상에는 우리들처럼 죽은 여자들이 정말 많아. 멀리서 보면 우리의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 간혹 우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마치 잘 안다는 듯이 우리 이야기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들은 우리의 유해를 들쑤시고 화장한 재를 파헤치며 우리를 실제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재구성하기도 해. 그들이 알 수 있는 건 그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인물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인상일 뿐이야. 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당신에게 직접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나면 당신은 비로소 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될 테니까. 어쩌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보다는 내가 직접 말해준 진실이 더 마음에 들지도 몰라. 당신은 앞으로 죽은 여자들 모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라게 될지도 몰라. 그 여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직접 말할 수 있는 기회.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저 부정확한 인상이 아니라 제대로 된 모습으로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되겠지. 매우 중요한 일이야. 우리가 이미 모든 걸 잃고 난 뒤라고 하더라도.
-9~10p

수많은 여름과 겨울에 다른 이들을 위해 마련한 파티에 참석했고, 다음날 일어나면 어김없이 나이가 들어 있었다. 정작 그녀 자신의 신변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루비는 계속 정지 상태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사랑하는 남자는 그녀를 방치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를 잡아두기 위해 큰 선심이라도 쓰듯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공간을 허용해 주면서 계속 몸을 웅크리고 대기 상태로 있으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나 혼자였다. 이제 더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동이 트면서 주변의 사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파도와 빗물이 몸을 적시고, 눈물이 말라비틀어져 있었지만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이 서지 않았다. 며칠 뒤 돈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멜버른의 툴라마린 공항에서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는 편도 항공권을 예약할 때조차 루비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루비가 알고 있는 건 더는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뉴욕이 더없이 좋을 듯했다.
-27~28p

루비만 싱숭생숭한 날들을 보낸 게 아니었어. 비록 지난날보다 더 잘 지내고 있다고 해도 나 역시 과거가 현재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지. 문제는 비행기나 버스에 예전의 나 자신을 두고 내릴 수는 없다는 거야. 아무리 빨리 달려가거나 갑작스런 깨달음을 얻어도 자조 모임이나 낮 시간 토크쇼에서 이야기하듯 완전한 새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법이지. 나는 예전에 태미와 함께 그런 토크쇼를 많이 봤어. 상처는 슈트케이스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사람들은 우리의 살갗에 머무는 것 같아. 어느 날 아침에 잠을 깨면 간밤에 몰래 숨어들기라도 한 듯 내 눈꺼풀 안에 잭슨 선생님이 들어 있었어. 가끔 엄마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파우더와 장미향, 엄마 특유의 살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야. 그럴 때면 정말 기분이 우울했어. 나도 루비처럼 심장이 쿵쿵 뛰고 손가락이 떨려왔지. 하지만 루비와 달리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어. 그저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박동이 잠잠해지고, 몸의 떨림이 멈추기만 기다리며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지. 엄마가 나를 찾아와도 괜찮아. 원한다면 잭슨 선생님도. 다만 너무 오래 머물지만 않는다면.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 그곳을 떠나왔어. 루비가 그랬듯이 원치 않는 삶에서 탈출한 거야. 루비와 달리 난 어느 누구에게도 어디로 가는지 알리지 않았어. 가장 친한 친구인 태미에게도. 태미는 여전히 내가 잭슨 선생님 집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난 아무도 모르게 예전의 삶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 누군가 내 살갗에 찰싹 달라붙거나 내 슈트케이스에 숨어서 따라왔다고 한들 내게 새로운 상처를 입힐 수는 없을 거야. 나에게 탈출은 새로운 출발이었고, 온갖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생각이니까.
-58~59p

사진학교에서는 내가 입학과 관련해 문의한 사항에 대해 답을 주었지. 사진학교에 입학하려면 내가 찍은 사진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했어.
당신이 되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화상
나는 뉴욕의 거리를 헤매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이제 네 컷만 더 찍으면 포트폴리오가 완성돼. 나에게는 나머지 사진을 찍을 좋은 계획이 있었지.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에 내 인생이 돌연 끝나버렸어. 분명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고,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는데 허망한 일이 되어버렸지. 그는 내가 계획한 공간에 침입해 모든 걸 빼앗아 버렸어. 누군가 우리를 세상에서 끌어내려고 잡아당기는 순간 안간힘을 다해 버티면 능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현저한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그가 피우던 담배에서 빨간 불이 잦아들며 재가 떨어졌지. 작은 눈송이 같은 재가 흩날렸어. 그의 손이 다가오더니 나를…….
-169p

눈물을 흘리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면서 몸부림쳐도 남자들은 야만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의 행위를 멈추게 할 수 없었지. 그는 끝까지 욕망을 채우려고 내 몸 위에서 꿈틀거렸고, 뼈가 부서지고 피가 너무 많이 쏟아져 숨이 그 자리에서 끊어질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았어. 그는 마치 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나를 가차 없이 말살했지.
루비 존스는 허드슨 강가의 자갈밭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최초의 목격자야. 문득 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이해했고, 한 가지 가능성에 매달려 감정을 집중했어. 나는 강가의 달리기 트랙에 서있는 루비 옆에 서 있었지. 그녀는 가까이 다가올 수 없었기에 내가 갔던 거야. 루비를 향해 손을 뻗을 때 잠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손끝은 이내 빗물로 변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어. 그 순간 알게 된 또 하나의 진실이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려 퍼졌지.
루비는 당연히 나를 볼 수 없었지. 그 대신 자갈밭 위에 엎드린 자세로 널브러져 있는 내 몸뚱이를 볼 수 있을 뿐이었어. 죽은 사람의 모습이 루비의 눈에 보일 까닭이 없었으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루비 옆에서 막연하게 기다리는 게 전부였어. 루비는 나를 볼 수 없었고, 내 마음을 느낄 수도 없었으니까.
-179~180p

루비는 애시와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가 소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 이후 많은 게 달라졌고, 지금 느끼는 감정이 그녀의 일상에서 무엇을 바꾸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문자메시지보다는 애시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통화가 불가능한 시간이었고, 만약 하더라도 그가 받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루비는 화면에 떠있는 그의 이름을 누르려다가 포기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설명해주면 되니까. 애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한다고 당장 달려와 마음을 달래줄 것도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애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늘, 허드슨 강가의 자갈밭에서 한 소녀가 죽었다. 루비는 아직 그 아이의 이름을 몰랐다. 금발머리에 보라색 티셔츠를 입었던 아이, 손톱에 오렌지색 매니큐어를 칠했던 아이,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던 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전혀 없었다. 경찰이나 언론을 통해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술잔이 비었다. 루비는 사랑에 흠뻑 취해 서로의 몸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커플 옆을 지나쳐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언젠가 밀어닥칠 이별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려다가 겨우 참았다.
-195p

한 남자가 사람들 앞으로 나섰어. 그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지. 사람들은 그를 향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보냈지만 여자들은 침묵 속에서 잃어버린 자매를 찾으려고 촛불을 하나로 묶어 신호탄처럼 하늘로 쏘아 보냈어. 남자들의 열정이 다한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하늘에서도 보일 정도로 반짝이는 건 여자들의 조용한 분노였어. 촛불이 모두 꺼지고 추모객들이 자리를 비운 뒤에도 여자들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었지.
루비는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고, 리버사이드 파크에서 고작 몇 블록 떨어진 집에 혼자 앉아 있었어. 루비가 촛불을 켜자 어둠 속에서 불꽃이 일렁거렸지. 그녀는 침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미지근한 보드카를 마시며 촛불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 그녀는 슬픔이 속삭임처럼 조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야. 슬픔이 마음속에서 요동치든 강둑을 타고 넘을 만큼 불어난 강물처럼 넘쳐흐르든 잔잔한 수면 위에 무감각하게 떠있든 결국 다 같은 감정이고, 전적으로 무력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
루비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 아무리 이를 사리물어도 안전하다고 여기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지난 며칠 동안은 그런 현실에 화가 났지만 오늘은 몹시 슬펐지. 그녀는 이 도시에서 혼자인데 나를 향해 느끼는 슬픔만큼이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만약 뉴욕에서 살해당하는 일이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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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부블리츠는 키위, 멜버니안, 이모, 비, 레드 와인, 뉴욕을 사랑하고, 사랑, 상실, 커뮤니케이션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네 이름은 어디에》는 재클린 부블리츠의 데뷔작이고, 범인 찾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살해된 앨리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설을 이끌어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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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잘 듣고, 읽고, 쓰고 싶어 번역을 시작했다. 여성, 성소수자, 노인과 청소년이 등장하는 책들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 『그녀가 말했다』 『불태워라』 『블랙 유니콘』 『당신 엄마 맞아?』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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