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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영화 백년사

원제 : 百年台灣電影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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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만 본토 사람들은 중국 명나라, 네덜란드, 스페인, 중국 청나라, 일본, 국민당의 통치를 겪으며, 수백 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들은 천성으로 낙천적이고 현실에 만족해하는 민족이어서,
각기 다른 문화와 융합해내는 문화 정신이 뛰어났다.
세대가 바뀌는 발자국은 각 시기 영화에 서로 다른 감정을 부여한다. ‘신영화(新電影)’, ‘신신영화(新新電影)’ 이후, 대만영화는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아낸다. 모든 영화는 허공에 대고 대화하거나 공덕을 노래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본토 문화의 공명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만일 영화가 역사,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대만의 구세대 영화는 약간의 외침과 슬픔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세대의 대만영화는 어떤 문화적 컨텍스트를 가지고 있을까? 중원문화 및 타문화가 대만영화에 끼친 영향을 고찰해 보며,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아 특유의 문화적 창의성으로 중국 영화시장에 도전하는 대만영화를 논의하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머리말
천리귀안千里歸雁
4백 년 전의 대만은 정치·경제 중심이었던 대남(台南)에서 대북(台北)으로 이동하고, 그 외 지역은 장려(??) 지역이었다. 이 시기 고난의 역사기록은 남아있기는 하지만, 거의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1860년쯤에, 대만은 어쩔 수 없이 무역 거래를 개항하며, 근대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안타깝게도 중원문화(中原文化)는 식민지 시기 때마다 다른 문화가 유입되며 단절된다. 하지만 중국의 원류인 염황염제(炎帝)와 황제(黃帝)에서 유래한 완고한 민족 유전자는 문화전통을 최대한 고수하고 계승하려는 버팀목이다. 예컨대, 국민당 정부에서부터 현대의 민주사회까지 교육의 변화를 살펴보면, 대만은 정통 근원의 계승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를 인정하는 심리를 강화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선거 때마다 민족의 의제는 늘 집단을 분열하는 수단이 되며, 실제로 대만 민중은 이미 악순환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과 같이, 대만은 “말은 옛 모습 그대로 달리던 대로 달리고, 춤은 예전에 추던 모습 그대로 추고, 밥은 이전에 먹던 그대로 먹는” 사회 현상이 형성된다. 이처럼 대만 민중은 정치적 혼돈과 자유민주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부계 혈연은 중원에서 시작되었지만, 원주민 및 청나라 시기에 이민 온 한족이 아닌 대만사람들은 (약간의 농락과 적의를 내포한 의미로) 외성인(外省人)이라 불린다. 따라서 내성인/외성인 간의 갈등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중국과 대만 양안 간의 긴장된 열기는 또 한 번 우리 세대의 기대를 저버린다. 이러한 격변의 흐름 속에서, 대만 민중은 항상 바둑알처럼 조종을 당하면서 반항할 힘조차도 없다. 다행히도 황금시대의 대만영화는 희극영화, 무술영화, 사랑 문예 영화, 황매조(?梅調) 영화, 가무영화, 액션영화, 지역영화, 군대영화 등을 통해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의 아련한 기억을 회상시킨다. 당시의 대만은 사회 관습뿐만 아니라 오락 분야가 매우 단순해서, 영화 아니면 TV이었다. 따라서 한정된 환경 속에서, 화려한 대만영화의 역사가 탄생한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노래 혹은 뛰어난 가수 및 배우는 전 세계 중국인의 뇌리에 각인되며, 영화의 유산은 중화 문화의 뿌리와 영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듯이, 경제 기적을 일으켰던 아시아 ‘네 마리의 용’중의 하나인 대만의 후광은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흔들리고, 그 빛을 점차 잃고 만다. 게다가 2,000년의 정국 변화로 국민당은 세력을 잃게 되고, 정국 변화에 따라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은 재산을 팔아 대륙으로 향한다. 예컨대, 중국과 대만의 양안이 대치 상태로 놓이지만 대륙이 적절한 시기에 연결고리 역할을 하자, 영민(榮民)은 점점 대륙으로 몰려간다. 이후 생업과 관련된 여러 업종이 옮겨가기 시작한다. 가까운 해협을 건너, 드넓은 대지는 최적의 선택지이다. 문자와 인종이 같은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기를 찾게 해주며,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 갈등 해소와 융합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 추세에 따라 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주하게 되며, 전 세계의 트러스트(trust) 기업도 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대만영화 〈불능몰유니〉(不能沒有?)는 2009년 제46회 금마장(金馬?, Golden Horse Awards)에서 최우수 영화, 최우수 감독, 최우수 대본, 그해 최고의 대만영화, 관객이 투표한 최고 영화상 등 5개 부문을 휩쓸며, 2010년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 영화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한다. 대만영화가 몰락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즈음에, 이 영화의 흥행은 오랫동안 침묵했던 존엄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한동안 자랑스러운 사건이 된다. 20년 전에, 〈비정성시〉(悲情城市, 1989)로 베네치아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후효현(侯孝賢) 감독은 “강산도 10년이면 변하는데, 자국 영화는 20년째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고, 왜 나아지지 않는지 참으로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안(李安), 후효현(侯孝賢), 관금봉(關錦鵬), 두기봉(杜琪峰) 4명의 감독이 연달아 영화상을 받는다. 계승의 의미가 매우 깊고, 보릿고개 같은 대만영화에 강심제를 놓아준 셈이다.

100년의 대만영화가 몰락한 것은 특정 원인이라고 탓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산업의 쇠퇴라고 할 수 있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엔터테인먼트의 트렌드가 변화하였고, 열악한 영화 제작 환경, 부족한 제작비, 인재 유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 등이 원인이다. 산업이 정점에 도달한 후에 추락할 때는 숨겨진 모든 걱정과 허점이 태양 아래에 고스란히 펼쳐져 그 형체를 감출 수가 없다. 그 당시 영화제작자들은 겨우겨우 버티거나 포기한 상태이다. 공백기에는 머리 숫자만 채우고, 악순환의 영화 생태계가 반복되며, 거대한 파도가 위세를 떨치듯이 손을 쓸 틈이 없었다. 1990년대에 심각한 내상을 입은 대만영화산업은 지금까지도 원기회복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대만은 급랭한 정국 변화에 따른 비판이나 공격을 겪은 후에 여전히 낮은 포복 상태로 전진하고 있다. 쇠퇴한 경제 속에서 사람들은 긴축 생활을 하지만, 낙천적인 천성에 따라 여전히 즐겁게 살고 있다. 그러나 대만영화산업의 미래는 여전히 숨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금마장 영화제는 여전히 매년 개최된다. 개최장소가 북 대만에서 중부 및 남부 대만으로 옮겨지며, 금마장 영화제는 남부와 북부의 균형을 잡아 대만 전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성장한다. 출품 영화의 범위도 중국 및 홍콩, 대만으로 확대되지만, 대만영화의 수는 점점 감소하고 상을 받는 일도 점차 줄어든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만영화제작자들은 여전히 소수의 질 높은 영화를 만들어, 세계 영화계가 가끔 대만영화에 주목하게끔 한다.
대만영화산업이 당면한 일은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늘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왔던 영화제작자와 감독 및 종사자들은 끼니를 잇지 못할 때도 이를 악물고 이겨냈는데, 지금 와서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은 꿈과 고집으로 대만영화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홍콩 그리고 대만에 없어서는 안 될 영화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 및 경제의 안정은 국가 문화의 번영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정권을 잡은 정치가들은 문화 이데올로기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당 태종(唐 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예법과 음악을 성행시켰고, 송 휘종(宋 徽宗) 조길(?佶)은 시사(詩詞)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등휘(李登輝)의 친일은 대만 문화와 일본 문화의 틈바구니에서 중국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에 힘썼다. 진수편(陳水扁)은 객가(客家) 민족과 대만 소수민족을 중요히 여기고, 소수민족을 위한 객가 방송국 및 소수민족 방송국 등을 개설하는 대책을 세웠다. 겉으로는 민의에 순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효과를 촉진시키기 위함이다. 배후의 동기가 어쨌든, 일부 집단은 발언할 기회를 얻게 되며, 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소외 계층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오래되고 광범위한 중화문화는 곳곳에 수천 년의 흔적이 담겨있으며, 옛것에 대한 그리운 마음은 수없이 많은 산과 물을 마주하고 있는 탄식의 소리이다.
섬사람들은 산의 웅장함 그리고 강과 바다의 사나움을 느끼지 못한다. 약 14억 인구의 중국에 비해, 대만은 2,300만 인구일 뿐이다. 물론 적은 숫자이지만, 작은 면적에서 놀라운 에너지를 발산하며, 눈부신 경제 기적을 이루었다. 중국과 대만의 무역, 우편물, 해로가 개통되기 이전에, 이미 대만 기업인들은 중국에서 상당한 시장 경제 성과를 창출하고 있었다. 가세가 기운 대만영화산업이지만, 영화인 간의 상호교류를 통해 여전히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으며, 중국과 대만의 영화는 더욱 가까워졌다. 대만의 영화 경험이 중국으로 전수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예컨대, 2009년에 〈자릉〉(刺陵, The Treasure Hunter), 〈운수요〉(雲水謠, The Knot), 〈풍성〉(風聲, The Message), 2010년에 〈대소강호〉(大笑江湖, Just Call Me Nobody), 2011년에 〈면인자〉(麵引子, Four hands), 2012년에 〈애〉(愛, Love), 2013년에 〈역광비상〉(逆光飛翔, Touch of the Light), 2014년에 〈등일개인가배〉(等一個人??, Cafe·Waiting ·Love), 2015년에 〈대희림문〉(大喜臨門, The Wonderful Wedding), 〈풍중가족〉(風中家族, Where The Wind Settles), 〈자객섭은낭〉(刺客??娘, The Assassin) 등의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전의 번영과 박탈감을 모두 경험한 새로운 세대의 대만영화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등장하지만, 현재 전통과 혁신 간의 교차로에 놓여있다.

섬사람들은 중국 명나라, 네덜란드, 스페인, 중국 청나라, 일본, 국민당의 통치를 겪은, 즉 수백 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낙관적이고 만족할 줄 아는 천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기 다른 문화와 융합해 뛰어난 문화 정신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20세기 영화선구자들의 노력 덕분에 대만영화가 활력을 찾게 되고, 유럽과 미국은 대만영화인들의 뛰어난 창의적 사고를 주목하게 된다. 상전벽해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심연에서 빠져나온 정부는 문화 및 창조 산업을 촉진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한다. 〈해각칠호〉(海角七號, Cape No.7, 2008)를 필두로 이후의 영화들은 바람과 파도의 기세를 등에 업고 ‘후신영화(後新?影)’라고, 예컨대 ‘대만영화 문예 부흥 시기’로 불린다. 이러한 영화는 새로운 세대의 독창성 또는 비전통적인 영화 스타일과 영화 언어를 통해 현재 대만 사람들의 숨소리를 반영한다. 세대가 바뀌는 발자국은 각 시기별 영화에 서로 다른 감정을 부여한다. ‘신영화(新電影)’, ‘신신영화(新新電影)’이후, 대만영화는 거리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아낸다. 모든 영화는 허공에 대고 대화하거나 공덕을 노래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본토 문화의 공명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민주주의와 혼란스러운 정치 사이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들은 다양한 국가의 문화가 유입되지만 전통을 보존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한다. 만일 영화가 역사,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구세대의 대만영화는 약간의 외침과 슬픔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세대의 대만영화는 어떤 문화적 컨텍스트를 가지고 있을까? 따라서 필자는 중원문화 및 타문화가 대만영화에 끼친 영향을 고찰해보며,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아 특유의 문화적 창의성으로 중국영화시장에 도전하는 대만영화를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현재 핫이슈인 「중국과 대만의 경제 협력 기본 협정(ECFA)」을 지렛대 삼아, 대만영화가 중국과 대만 간에 어떤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10여 년 전, 우리 세대는 대만을 떠나 중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그리고 10년 후, 대만의 인문 및 영화산업을 자세히 살펴보고 탐구하면서, 새로운 의미와 깨달음이 생겼다.
오랫동안 떠나 있을수록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자그마한 대만이지만 거인의 울부짖는 외침처럼 소리를 지르자.
서락미(徐樂眉)
2014. 10. 10 북경·대만

목차

머리말: 천리귀안千里歸雁__v

제1장 대만 역사 및 영화 문화산업의 근원
제1절 대만 역사와 대만해협을 뛰어넘은 흑수구 전설
제2절 대만인들의 여가문화와 영화의 첫 울음소리
제3절 초창기 대만영화의 시대적 상황

제2장 대만영화의 모태인 대만어 자국영화 시대
제1절 일본식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혼성적인 대만영화
제2절 대만 사람들의 풀뿌리 의식 각성
제3절 대만어를 사용한 영화의 상징적 의미

제3장 계엄 시기의 스산한 기운과 온화적 분위기
제1절 대만영화의 문화적 근원인 중원 문화
제2절 표준 중국어 영화: 종족 융합과 문화 충돌의 느낌표
제3절 번영의 끝: 영화 황금기가 지난 후의 내일

제4장 유럽 및 미국 영화의 문화적 충격에서 벗어나는 대만의
‘신영화(新電影)’
제1절 영화적 정체와 획기적인 혁신
제2절 신세대 영화인의 철학과 창작
제3절 ‘신영화(新電影)’의 사명: 새로움의 승계
제5장 20세기 말 대만영화에 투영된 빛과 그림자
제1절 신(新)영화 후광 뒤의 숙명적인 운명
제2절 단절이 생긴 대만영화 및 중국영화의 부상
제3절 온 힘을 다하는 대만영화인의 노력들
제4절 세기말의 우울한 그림자:
임계점에서의 우아한 몸놀림
제6장 신세대 대만영화의 정신상태 및 문화언어 환경
제1절 신구 세대에서 대만영화의 상징적 의미
제2절 대만영화의 문예부흥: 후신영화(後新電影)
제3절 대만 현대 인문의 특성: 영화문화의 새로운 언어 환경
제4절 대만영화의 활로 및 미래 전망

제7장 맺음말
■참고문헌
■부록 1: 대만영화제작자/감독/배우
■부록 2: 대만의 주요 영화제
■부록 3: 대만의 역사
■감사의 말
■역자 후기

본문중에서

제1장 대만 역사 및 영화 문화산업의 근원


1절 대만 역사와 대만해협을 뛰어넘은 흑수구 전설

역사를 중시하는 대만 정부는 ‘원주민의 날’을 정하며 대만 역사의 근원을 복원한다. 역사와 문화는 그 민족의 오랜 기간의 전통 풍습 및 관습을 계승하고, 하늘과 땅에 대한 경외와 인문에 관한 관심을 품으며, 신격화를 거쳐 상징화된 기호가 된다. 현재 대만의 종친(宗親), 민족단체, 당파들은 서로 앞다투어 보물섬의 개척자라고 자처하지만, 유일하게 높은 산과 우뚝 선 봉우리를 지키는 ‘산지 동포’만 예외다. 현재는 역사적 맥락을 복원하면서 ‘원주민’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린다.
1960년대 대만의 유적 발굴을 시작한 이후, 고고학자들은 팔리(八里) 대분갱(大?坑)을 중국의 화남(華南), 동남 연해의 ‘대분갱 문화’와 비교하며, 대만의 선사시대 인류의 모습을 밝혀낸다. 또한, 중국 및 해외 언어학자들은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 역사를 조사 및 연구하면서 대만을 오스트로네시아의 수도로 추정한다. 자료에 의하면, 4백 년 역사뿐인 대만은 오스트로네시아 언어의 분포지이며, 남태평양 군도로 확산하는 연결고리이다. 고대 언어를 연구한 언어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대만의 다양한 원주민의 섬 내에서 이동 경로를 추적해보면, 원주민의 선조는 6천 년 전에 대만으로 온 것으로 추정되며, 중부 산악지대를 거점으로 섬 전체로 점차 퍼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당시 건너오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이후 천년이 지난 후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대만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오스트로네시아 종족의 혈연관계를 탐구하고 있지만, 복잡하고 조그마한 별점 같은 섬의 흐름을 단시간 내에 결론 내릴 수 없다.
2011년 12월 고고학계에 따르면, 중국과 대만해협 양안 관련 단체의 협조하에 대만 중앙연구원은 마조(馬祖) 군사관제구역 양도(亮島)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7,900년 전의 유골을 발견하여, 이를 ‘양도인(亮島人, liangdao man)’이라 명한다. 고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골을 접어 장사를 지내는 방식 덕분에, 그 유골은 온전했고, 몸 형태도 뚜렷하게 감식할 수 있었다. 이 발견은 고고 역사의 다양한 분야를 재수정하게끔 한다. 또한, 대만에서 발견한 최초의 사람 해골일 뿐만 아니라, 중국 남부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민강(?江) 유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 시대의 유골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오스트로네시아 언어권에서 가장 빠른 시기의 유골일 가능성이 크다.
1970년대에 주목을 받은 ‘오스트로네시아 기원론’으로 말하자면, 해양 기원론이나 대륙 기원론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양쪽에서의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대만은 확실히 중요한 지역이다. 원주민들은 그 이전과 이후에 대만에 정착했다. 그들은 성품이 강하고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나 흉악하며, 행패 부리며 사람을 죽이는 악습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산림 속의 용사이다. 유적과 자료를 통해 분석해보면, 수만 년 전에 이미 대만에는 인류의 종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양도인’의 출현은 기원론에 새로운 근거가 되었고, 5,000~6,000년 전 원주민 부락 형태의 흔적을 2,000년 더 앞당겨주었다.
지리 면적이 36,006km2인 대만은 지각판의 이동, 융기 등으로 인해 저/중/고 해발의 혼합형 기후를 띤다. 하늘이 베푼 독특한 환경 속에서, 활화석 어류(活化石魚類), 타이베이 송장개구리(Rana taipehensis), 푸른 바다거북, 물사슴, 문자크(Reeves's muntjac) 등 희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외국 기자들에 따르면, “섬 전체의 산맥 양쪽에는 녹나무(樟樹)로 덮여 있고, 이 토지들은 주로 원주민 소유로 되어있기에, 중국인은 반드시 부락 추장에게 공납품을 바쳐야 채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포르모사(Formosa)라는 아름다운 지명 외에, 중국 바다에서 어획 생산이 가장 풍부하여 봉래선도(蓬萊仙島)라고 부른다.”이 문구는 아름다운 섬과 원주민에 대한 가장 적절한 주석이다.
17세기 초기에 자주적 공간이었던 대만은 동아시아 상업무역 권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명나라와 외적들의 밀수하는 노선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대만은 포르투갈에 먼저 점령당하면서 침략의 역사가 시작된다. 잇따라 네덜란드와 스페인도 들어온다. 네덜란드는 대남에서 안평(安平)을 건립하고(안평은 네덜란드 문자로 Tayouan, 즉 대만을 지칭), 1627년에 안평고보(安平古堡)로 이름을 변경한다. 이후 1642년에 기륭(基隆)과 담수(淡水)에 거주하던 스페인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섬을 차지하여 식민지로 만든다. 그 영향으로 한족(漢族)이 대만에 건너가 대만을 개척하고, 기독교 선교 및 문자를 가르칠 수 있게 된다. 네덜란드인과 원주민의 협조하에 작성된 1650년까지의 ‘원주민부락 호구표(番社?口表)’에 따르면, 인구수는 약 6만여 명, 섬 전체의 40~50%를 차지한다. 네덜란드 통치 말기에, 한족 이민들의 사회구조 덕분에 약 5만 명의 한인이 거주한다. 명나라 정성공(鄭成功)이 성공적으로 대만을 차지한 이후에는 한인 인구가 원주민 인원수를 초과하여 백만에 달한다. 1683년, 명나라가 청나라 강희(康熙)에게 패배를 당해, 대만은 이제 중국 국가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저자소개

서락미(徐樂眉)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국립 대만 예술대학 학사, 북경 중앙희극학원 감독 석사, 북경 중국예술연구원 영화학 박사. 주요 저서로 『遠足』(2009, 2014 개정판), 『迷路』(2013), 『恕念』(2015) 외 다수가 있다.

김건(金建)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파리 1대학 영화학 박사,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기록관리학과 교수. 주요 저역서로 『1945년 이후 영화이론』, 『장-뤽 고다르』 외 다수가 있다.

조선화(趙仙花)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석사, 중국어 강의 및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용진(朴庸鎭)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국립대만 사범대학 박사,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 주요 저역서로 『왕오천축국전을 읽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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