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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명의 시작(큰글씨책) : 신분제 국가에서 국민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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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주명철
  • 출판사 : 여문책
  • 발행 : 2022년 04월 28일
  • 쪽수 : 324
  • ISBN : 97911877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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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새로운 사회체제의 수립에서 전국연맹제 개최까지
프랑스 혁명의 첫 번째 변곡점을 만나다!

작년 말에 ‘리베르테 시리즈’ 중 첫 1, 2권으로 『대서사의 서막』과 『1789』를 선보여 각종 언론사에서 크게 주목받은 바 있는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제3권이 출간되었다.
앞서 1, 2권에서 살펴보았듯 1789년 전국신분회가 국회를 선포함으로써 입헌군주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다지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헌법 전문으로 넣기로 결정한 7월과 8월에 프랑스 ‘신민’을 ‘시민’으로 바꾸어 원칙상 기본권으로서 참정권을 인정한 것이 정치적 구체제를 무너뜨린 가장 두드러진 변화였다. 그리고 8월 4일부터 11일 사이에 귀족의 특권을 폐지해 사회적 구체제의 바탕마저 무너뜨린 것도 눈여겨볼 만한 변화였다. 나아가 10월 초에 왕 일가족이 베르사유 궁에서 파리로 ‘끌려가’ 튈르리 궁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가 혁명이 다시 한번 추진력을 얻는 계기였다.

3권에서는 튈르리 궁에서 살던 왕과 국회가 화합과 불화를 일으키면서 새 체제를 만들어가는 1789년 10월부터 1790년 7월 14일 전국연맹제까지 일어난 일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이 기간에 일어난 일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으로는 혁명기에 처음으로 국사범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사법개혁과 재판소 설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 파리와 지방정부를 조직해 그동안 중앙집권화했던 권력을 지방에 분산시키는 법을 만든 일, 재정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성직자 시민헌법’을 제정해 종교인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편입하게 한 일을 꼽을 수 있다. 3권에서는 이 부분들을 중심으로 혁명 진행과정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다.
저자는 아무리 혁명이 대중의 힘 또는 폭력과 함께 추진력을 얻는 것이라 할지라도 늘 새로운 헌정질서를 창조하는 민주적 절차야말로 프랑스 혁명의 본질적 측면인 만큼 국회의원들의 다양한 발언을 통해 현장감을 추구했다고 밝힌다. 최근 47년 만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부활로 여론의 주목을 한껏 받았던 우리 국회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본이 바로 법치주의라는 것,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지난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그 과정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엇보다 진지한 토론의 과정이 얼마나 필요불가결한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나마’ 우리의 87년 체제가 얼마나 많은 희생 위에서 가까스로 피어난 꽃이었는지, 과연 어떻게 그 체제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지 성찰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 사법개혁: 고등법원의 폐지

혁명 초기까지 500여 년간 프랑스 사회에서 왕의 전횡을 막기 위한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이 바로 고등법원이었다. 저자는 프랑스 구체제의 역사를 공부할 때 고등법원parlement의 기능과 인적 구성만 이해해도 그 체제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그만큼 고등법원은 구체제의 정치와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기관이었다고 말한다. 1, 2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중요 용어의 잘못된 번역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간다. 예컨대 “구체제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어로 쓴 프랑스 역사책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이 낱말을 모두 영어식으로 ‘의회’라고 잘못 이해하고 번역한다. ‘고등법원과 의회’의 역사를 알아야 올바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파리 고등법원은 전국신분회를 소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혁명이 시작되자 고등법원의 활동은 위축되었다. 결국 국회가 고등법원을 폐지한 뒤로는 예전에 고등법원을 뜻하던 말이 의회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구체제의 제도를 가리킬 때는 고등법원으로 옮겨야 정확하다”(162쪽)는 것이다.
고등법원은 중세 전성기인 14세기 초부터 봉건왕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조정朝廷의 기능을 세분화하며 생긴 것으로, 법관들은 사회적으로 뿌리 깊은 귀족 출신이며 재력과 금력에 지력까지 두루 갖추었다. 그들은 정치ㆍ사회ㆍ문화의 모든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혁명이 시작된 뒤 헌법 전문에 인권선언문을 넣게 됨에 따라 제헌의회의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왕과 고등법원의 권리는 점차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랜 전통으로 굳어진 특권을 하루아침에 없애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어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 남짓한 시점에 국회 내에서 특권층을 대변하는 의원들의 반발 또한 격렬했다. 하지만 “국회가 정오를 향해 솟아오르는 해라면 파리 고등법원은 낮에 나온 달이었다.” 이미 대세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며 1790년 10월 중순에 이르러 고등법원은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는 달이 되고 만다.

◆ 문화혁명의 시작: ‘성직자 시민헌법’ 제정

구체제의 프랑스에서 특권층은 왕가나 귀족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왕이었던 루이 16세가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만큼 성직자들 또한 다양한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국가가 재정적으로 파탄 날 지경까지 이르러서야 어마어마한 교회 재산을 국유화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국회의원들은 불철주야 격렬한 토론과정을 거쳐 성직자들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성직자 시민헌법’의 제정에 착수하게 된다.
이 법의 목적은 한마디로 성직자의 지위를 낮추고 교회를 국가 밑에 두어 주교나 대주교의 수를 줄이는 동시에 로마 교황청과 관계를 끊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종교인의 사법적ㆍ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고 오로지 종교적인 일만 하도록 했다. 여기서도 저자는 ‘성직자 시민헌법’이라는 중요 용어의 잘못된 번역 사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나라 학자 가운데 ‘성직자 시민헌법Constitution civile du clerg?’을 일본처럼 ‘성직자 민사기본법’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나라 학자들이 합의하지 않았는데, 한자어 표기가 같은 번역어를 쓰는 것은 어느 한쪽이 자발적으로 지적 예속상태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아무튼 이 법의 번역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먼저 ‘civile’은 ‘민사의’ 또는 ‘민간의’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민사정부’보다 ‘민간정부’를 좀더 익숙하게 쓴다. 그리고 ‘시민의’라는 뜻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시민사회soci?t? civile, civil society’라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이 헌법도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시민사회에 종교인을 편입시키는 법이기 때문에 ‘형사의’와 함께 쓰는 ‘민사의’라는 말보다는 ‘시민의’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적합하다.”(189~190쪽) 이는 전문연구자나 번역가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시사점을 주는 지적이라 하겠다.
한편 ‘성직자 시민헌법’은 반혁명의 불씨를 키우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1년 전에 비해 확실히 민주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개혁이었다. 새 프랑스를 혈통보다 능력 위주의 사회로 만들어가려는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프랑스는 혁명파와 반혁명파로 갈렸으며, 왕이 파리에서 국경 쪽으로 도피하는 계획을 세우는 원인이 되었다.

◆ 전국연맹제 개최: 새로운 시대의 출발

이미 1789년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귀족의 음모와 대공포에 대응하려고 전국 각지에서 연맹협정을 맺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연맹은 국회와 왕 사이의 권력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되었고, 이 또한 혁명의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연맹제는 혁명과업을 확고히 다지고, 왕국의 구석구석을 잘 감시해 혁명의 불만세력과 반란자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들로네 의원의 제안에 자극받은 파리는 ‘자유의 날을 영원히 기리는 시민 잔치’를 1790년 7월 14일에 대대적으로 치르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전국연맹제에서 숱하게 울려 퍼진 만세소리 가운데 “라파예트 만세!”가 “왕 만세!”를 압도했으며 “국민 만세!”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교와 세속적 권위를 무시하는 잔치를 라파예트가 의도적으로 조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그를 열정적으로 기렸던 것이다. 그러나 왕과 혁명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던 라파예트도 혁명기의 여느 지도자처럼 곧 쇠퇴기를 맞았으며 1792년 8월 10일에 ‘제2의 혁명’이 일어나자 적군에 투항하고 말았다는 점은 역사의 또 다른 교훈이라 하겠다.
전국연맹제는 전국이 자발적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으며, 진정한 의미의 국민혁명이었다고 그 역사적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혁명의 종착점이 아니었으며 한마디로 화합과 불화의 막간극이었다. 그것은 훗날 프랑스가 입헌군주국을 거쳐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으로 가는 출발점이자 파리의 주도권을 부정하면서 파리가 프랑스의 83분의 1에 해당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지방을 ‘연방주의’로 공격할 명분이 되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오랜 진통을 거쳐 프랑스가 전국 83개도로 나뉘게 되는 과정, 파리가 혁명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한편 지방분권이 강화되는 과정,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그 지위에 손상을 입게 되는 왕 일가의 안쓰러운 상황, 피를 나눈 형제임에도 그 성향은 극명히 갈렸던 형 미라보 백작(좌파)과 동생 미라보 자작(골칫거리 우파)의 면모, 혁명기에 거물급 웅변가로 꼽혔던 ‘프로방스의 횃불’ 미라보 백작이 제안한 안을 그보다 훨씬 미약한 ‘아라스의 촛불’ 로베스피에르가 아주 우습게 만드는 장면, 전국연맹제 당시 중요한 맹세의 순간에 폭우가 쏟아지자 비에 젖지 않으려고 제단까지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맹세하는 ‘꼼수’를 부리는 루이 16세의 모습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과정은 물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편 4권에서는 1790년에 일어난 ‘낭시 군사반란’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본문중에서

왕이 10월 6일 밤부터 튈르리 궁에서 지내고 국회가 19일부터 파리 대주교청에서 회의를 시작한 뒤, 지방에 비해 파리는 상대적으로 조용해졌다. 일시적이지만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불러다 곁에 두었다는 안도감과 혁명의 미래가 밝다는 기대감 덕택이었을까? 파리가 진정한 수도의 기능을 되찾은 뒤에 왕과 국회 사이의 힘의 균형도 조금씩 깨져 국회의 역할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국회에서 중도파 의원들이 사임하거나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사례가 늘었고 상대적으로 좌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에 10월 5~6일 [파리 아낙들의 베르사유 행진] 사건은 혁명을 다시 한번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파 의원들은 왕이 버티고 있는 한 버틸 근거가 있었고, 좌파 의원들에게는 든든한 시위대와 전국에서 보내주는 격려의 편지와 기부금이 있었다. 하지만 중도파 의원들은 확고히 왕을 지지하지 않았고 그때그때 판단해서 지지하는 성향이었기 때문에 조금씩 과격해지는 상황에 겁을 먹었음이 분명하다. 겁을 먹은 채 사임하지 않은 중도파는 우파보다는 좌파에 휘둘리기 쉬웠다. (46쪽)

루이 16세와 왕비는 라파예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라파예트에게는 오를레앙 공과 미라보 백작이 정치적 경쟁자였다. 오를레앙 공은 항간에서 심심치 않게 ‘섭정’ 후보로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이었고, 그 자신 또한 어느 정도 야심을 갖고 있었으며, 미라보 백작은 왕과 국민 또는 왕과 국회를 화해시키려는 데서 라파예트와 경쟁했다. 그런데 라파예트는 국회에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병력을 손에 쥐고 있었고, 더욱이 파리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오를레앙 공이나 미라보 백작보다 더 실세라 할 수 있었다. 미라보 백작은 대신 자리를 하나 노렸지만 국회에서 현역의원으로 왕의 대신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오를레앙 공은 10월 초의 사건이 일어난 뒤 영국으로 떠났다가 1790년 7월의 전국연맹제를 한창 준비할 때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당시 라파예트의 경쟁자는 미라보 백작 한 사람뿐이었다. (50쪽)

자유, 평등, 우애가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표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양립하기 어려운 자유와 평등의 조절자는 우애였다. 지난 6, 7월에 수비대가 파리 주민들과 형제애를 나누었듯이 이번에도 시위대는 금세 우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우애는 단결을 뜻했다. 이것이 라파예트의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반대파는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라파예트를 ‘모르페우스 장군le g?n?ral Morph?e’이라 놀렸다.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왕궁이 시위대에게 뚫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그를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 빗대어 놀렸던 것이다. (52~53쪽)

파리와 지방의 정부조직법을 보면, 1789년 국회의원들의 원칙이 인권선언부터 일관성 있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유, 평등, 재산권’을 앞세우면서 3개 신분 전체의 평등은 고사하고 제3신분 전체의 평등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평민 의원들과 귀족 간의 평등을 제일 먼저 생각했음직하다. 기초의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사람들은 각 지방의 노동자 평균 임금 3일치를 세금으로 내는 25세 이상의 남자였으므로 그 나이의 남성 가운데 440만 명 정도가 2,800만 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인 남성 가운데 300만 명 정도의 ‘수동시민’과 1789년 10월 5일에 두드러진 역할을 한 여성의 불만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152쪽)

왕은 전국연맹제에서 자신이 라파예트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13일에 직접 점검에 나섰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충성심은 받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바치는 사람의 몫이다. 왕은 구시대의 상징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역사의 주역이 여기저기서 마구 두각을 나타내는 격변기였으니 왕으로서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으리라. (313~314쪽)

저자소개

주명철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0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거쳐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다니엘 로슈 교수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학위 논문을 번역하고 보완하여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 1990)를 펴냈다. 이 책은 기존 내용을 대폭 보강하여 '서양 금서의 문화사'(도서출판 길, 2007)로 다시 출간되었다. 앙시앵 레짐 시대의 금서를 중심으로 프랑스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면서 '지옥에 간 작가들'(소나무, 1998), '파리의 치마 밑'(소나무, 1998),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책세상, 2004)를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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