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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왜 필요하며
어떤 성격의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는가

한국은 서구 선진국에 비해 매우 늦게 ‘복지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합류는 늦었지만, 추격은 맹렬했다. 이제는 “복지에 혈안이 되어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당, 정치인의 공약에 복지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적인 논의 없이 단순히 평면적인 복지 공약을 관습적으로 발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철학적 기반이 약한 데다 실제 정책으로 시행하기 위한 사회적·경제적 여건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고, 공약이 담고 있는 주요 이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랜 시간 주요 사회문제와 관련된 사회정책 이슈를 연구해 온 사회정책연구회가 내놓는 ‘복지국가 쟁점 시리즈’의 두 번째 성과물이다. 「복지국가 쟁점 1」이 일과 기술, 보편적 복지국가, 소득주도성장, 기본소득의 성격과 이에 수반하는 여러 이슈를 거시적으로 분석했다면, 「복지국가 쟁점 2」에서는 시각을 좁혀 사회보장 분야별 이슈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 책은 2020년 세계를 휩쓴 팬데믹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복지는 더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 보장을 큰 축으로 복지국가의 과제를 점검하는 이 책이 팬데믹 이후 복지정책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한국 복지국가의 과제
소득 재분배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증대

● 소득 재분배

이 책의 저자들은 국민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소득보장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1장 “사회적경제와 사회정책”에서는 한국에서 사회적경제가 노동·경제 취약계층의 소득 창출을 위한 일자리 사업의 성격을 띠면서도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 경제 시스템으로 널리 인정받는 이유를 분석한다. 저자는 사회적경제에서 일은 소득 창출의 의미뿐만 아니라 공동체 참여와 상부상조라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의미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국가에 의한 소득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2장 “디지털 경제 발전과 사회 양극화 시대: 증대되는 정부의 역할과 혁신적 변화를 요하는 사회보호체계”에서는 디지털 경제의 발전으로 노동시장이 더욱 유연화되고, 비정규직이 증가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저자는 정부의 노력에 따라 소득 양극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소득보장 분야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제3장 “정책 도구로서 최저임금제에 대한 고찰: OECD 복지국가의 경험을 중심으로”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정책을 분석했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최저임금의 급속한 상승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비판하면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와 같은 다양한 정책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9장 “최소자녀양육비 보상 수준과 기본권: 한국과 독일 비교”에서는 최소자녀양육비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 것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를 과세 과정에서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기본권에 근거해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게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증대

시민의 사회권 구현을 위해서는 소득보장 못지않게 사회서비스의 보장도 중요하다. 이 책은 1인가구, 노인, 문화적 취약계층과 경제적 취약계층, 이민자, 보육교사 관련 사회서비스를 점검했다.
제4장 “1인가구 특성 및 사회복지정책 연구: 인천광역시를 중심으로”에서는 다른 곳보다 정책적 대응이 시급한 인천시를 대상으로 1인가구의 현황과 특성, 정책수요를 분석했다.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1인가구의 기초적 통계자료를 구축하고, 청년은 주거문제, 중년층은 심리적·사회적 문제, 노년층은 경제적 문제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결론을 통해 정책수요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제5장 “커뮤니티 케어 도입으로 노인 돌봄 연속성 측면에서 바라본 의료·보건·복지 서비스의 이용과 연계”에서는 노인 돌봄의 연속성 측면에서 의료·보건·복지 영역의 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해 탐색적으로 연구했다. 저자는 이 서비스가 노인의 욕구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보건·의료·복지 서비스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보건의료, 복지 영역 내, 복지 영역 간에 매우 심각한 분절성을 직시해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6장 “문화복지 쟁점에서 본 문화적 취약계층과 경제적 취약계층”에서는 한국의 문화복지정책이 문화시설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고 분석하면서, 문화적 취약계층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정책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충족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7장 “이민자정책 패러다임의 수렴에 관한 탐색적 연구: 스웨덴, 프랑스, 캐나다를 중심으로”에서는 실증 분석에 근거해 분석 대상 국가의 이민자정책에서 시민통합정책의 도입과 실시가 발견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저자는 이민 관리 혹은 다양성 관리를 위해 시민통합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가 한국 이민자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리라 전망한다.
제8장 “한국 보육정책에서의 쟁점 연구: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에서는 민간 위탁 국공립 어린이집의 보육 교직원과 아이돌봄지원사업의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을 연구했다. 저자는 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보육서비스의 질을 향상한다고 지적하면서, 보육 교직원과 아이돌모미의 법적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제1장 사회적경제와 사회정책(임상헌)
제2장 디지털 경제 발전과 사회 양극화 시대: 증대되는 정부의 역할과 혁신적 변화를 요하는 사회보호체계(안종순)
제3장 정책 도구로서 최저임금제에 대한 고찰: OECD 복지국가의 경험을 중심으로(홍이진)
제4장 1인가구 특성 및 사회복지정책 연구: 인천광역시를 중심으로(김윤영)
제5장 커뮤니티 케어 도입으로 노인 돌봄 연속성 측면에서 바라본 의료·보건·복지 서비스의 이용과 연계(전용호)
제6장 문화복지 쟁점에서 본 문화적 취약계층과 경제적 취약계층(손동기)
제7장 이민자정책 패러다임의 수렴에 관한 탐색적 연구: 스웨덴, 프랑스, 캐나다를 중심으로(심창학)
제8장 한국 보육정책에서의 쟁점 연구: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이윤진)
제9장 최소자녀양육비 보상 수준과 기본권: 한국과 독일 비교(이신용·이미화)

한국에서 사회적경제는 지역에 연대성과 호혜성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정부의 사회복지 행정에 협력하고 법제화가 되는 과정에서 경제 및 노동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조직들로서 자리매김한 측면이 있다. 공적 연금이나 공공부조에 의한 소득보장이 미흡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미비한 상황에서 사회적경제 부문이 취약계층의 취업과 창업을 담당한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회적경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적인 경제 시스템으로서의 의미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이 소득 창출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공동체 참여와 상부상조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점도 더욱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_31쪽

디지털 특수형태고용 노동자가 확산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근로자성 개념 확대를 통해 노동법 체계 내로 끌어들이거나 중간 영역을 인정해 보호하기보다는 노동법의 경계를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사회보호법제를 만들어 사회적 보호를 확대하는 것이 보다 장기적인 방안일 수 있다. 최근 논의가 활발한 기본소득도 그 한 예다. 기본소득은 전통적인 임금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소득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 CEO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는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극도로 심화할 것이므로 사회적 보호체계에서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_57쪽

최저임금에 초점을 맞춘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개혁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결점이 있다. 첫째, 한국의 급속한 최저임금 성장 배경을 간과한 방식으로서 소득주도성장 이론을 노골적으로 탈제도화된 방식으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둘째, 전반적으로 높은 노동소득분배율 및 완전고용률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 최저임금정책에만 집중함으로써 소득주도성장 이론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_71쪽

청년 1인가구는 구성원들 사이의 다양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균등화 소득이 연 3000만 원 수준으로, 중장년층에 비해서도 높았으며 경기/인천의 청년 1인가구의 소득은 전국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소득에도 불구하고, 청년 1인가구의 주거 점유형태는 전세 36%, 월세 56%(경기/인천 기준)로 나타나 주거 불안정을 겪는 청년 1인가구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앞선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분석을 통해 나온 결과와 같은데, 65세 이상 노인 1인가구에서는 자가 비율이 높은 것과 달리 20~39세의 청년 1인가구에서는 보증금 있는 월세로 사는 경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청년 1인가구의 주거 안정화를 위한 지원이 시급하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_100~101쪽

우리는 서구처럼 ‘통합적인 커뮤니티 케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지역사회 차원에서 적절한 의료·보건·복지 서비스의 제공이 미흡하고 영역 내와 영역 간에 이용자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이 미흡하다. 단순한 연계를 넘어서서 전달 체계의 실질적인 ‘통합’을 도모하는 서구와는 큰 격차가 있는 것이다. 응급치료를 위한 병원 중심의 의료 시스템과 만성적인 인력·재원 부족 등으로 인해 저소득층 중심의 선별적인 보건 시스템, 가사수발 중심의 재가 서비스와 분절성이 심화되는 복지 전달 체계 등은 노인에게 적절한 서비스 제공과 연계에 큰 장애물이다. _133쪽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모델에서 개인의 문화 향수에 대한 자율성이 아무리 의미가 있고 중요하더라도 그 수요가 시장에서 충족되지 못하면 실질적인 문화 향유의 가능성은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화의 상업화가 문화의 대중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계급 간 문화 격차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여가의 대중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계급이 확산되고 있다. 시장은 상류층 혹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는 여가를 보다 쉽고 저렴하게 누릴 수 있는 ‘여가문화상품’을 제공하고 있지만,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된 여가문화 향유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가치와 의미는 매우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아래에서 개인들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 향유와 관련된 불평등을 줄이고, 다양한 문화 욕구를 가진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통해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_144~145쪽

우선, 민간 위탁계약의 문제와 관련해 국공립 어린이집 민간 위탁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보육교사는 당연히 근로자성이 인정되지만 단순히 민간 시설의 근로자와는 달리 법적 처우에 관해서는 국가에 의한 보장을 받아야 한다. 이는 국가의 직접 채용은 아니지만,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국가 공무원과 일정 부분 유사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내포하기도 한다. 또한 이와 같은 논리는 사회서비스공단 내지는 사회서비스원의 설립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집의 원장 역시 단순히 보육교사인 근로자와의 관계에서 사용자의 입장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위탁 사무를 수행하는 민간 위탁기관에 채용된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일부 보장해 주어야 한다. _233~234쪽

입법부와 행정부는 헌법이 천명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부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공공부조제도 중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대표적인 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수준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 수준을 의미한다. 이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성인뿐 아니라 아동에게도 필요하다. 아동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은 최소자녀양육비다. 최소자녀양육비는 아동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지출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과세 원칙이다. 만일 최소자녀양육비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면 입법부나 행정부는 아동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_258~2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