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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를 향하여 : 서이제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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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누구는 마약도 하는데, 저는 왜 예술 뽕도 못 맞아요?”
청춘 없는 시대에 다시 시작되는 기쁜 우리 젊은 날,
동시대의 감각으로 포착한 0%의 미래

2018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서이제의 첫 소설집 『0%를 향하여』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등단작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은 “예술하는 젊은 세대의 감성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전달”하고 있으면서도 “얼마간은 찌질하고, 얼마간은 숭고하고, 또 얼마간은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걸맞은 형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으며, 서이제식 청춘소설의 시작을 알렸다.
작가는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로 변화하던 시기에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의 소설에서 영화에 대한 경험과 영화를 사랑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필름의 종말 이후에 전개된 매체의 변화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기묘한 시간대를 형성하고, 작가는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소설적 장소를 이 시대 청춘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서이제 소설 속 청춘들이 “낙하한다”고 말한다. 다만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 시공간에서의 낙하는 0이라는 없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0이 있음을 보여주는 시간, “잠재성의 지속으로서의” 0%로 향하는 것이다. “실체와 영토”가 없는 시간 속에서 발견되는 미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그 잠재된 가능성에서 발견되는 것에 가깝다. 0%를 향해가는 이들의 또 다른 미래는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시작된다.

“다 글러먹었는데 무엇을 또 하려고? 그래도 다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짓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인생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저는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희망은 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제대로 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계속 앞으로 갈 수 있는 강렬한 힘을 의미합니다. 희망을 품고, 말하고 싶습니다.” _서이제 인터뷰 중

출판사 서평

비관과 좌절 속에서도 서로의 가능성을 믿을 때
비로소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의 시작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에서 영화를 하는 청춘들이 놓인 곳은 “코닥이 필름 생산을 중단”했고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로 넘어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시대이다. 디지털의 등장은 필름이 불에 타 없어질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화자는 디지털이 “세상을 더욱더 구린내가 나도록 만들었다”(p. 71)고 말한다. 쉽게 찍고 쉽게 재생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찍는 양은 늘어났지만, 그것이 곧 영화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광호는 “‘나’의 시간대와 필름 영화가 사라진 시대의 ‘구린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청춘의 조건”이라 말한다. 필름 영화의 종언과 함께 영화가 되지 못한 자투리 영상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무기력한 청춘의 시간이 가로놓이면서 서이제의 소설적 장소가 마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꾸준히 혼자 독립영화를 찍는 선배가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선배 그거, 건설 현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매년 영화를 찍는 거야. 선배가 예전에 나한테 그랬어. 돈 벌어서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겨우 자기 자신을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있다고. 이때 나는 내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약간 외면하고 싶었는데, 다들 그랬는지 모두 별말 없이 맥주만 들이켰다.
_「0%를 향하여」

「0%를 향하여」는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한국 영화의 외형적인 성장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실제 자료를 인용하여 제시하지만, ‘나’는 영화를 그만두고 싶을 뿐이다. “독립영화 망했어” “언제나 독립영화의 미래는 상업영화였다”(p. 347)라는 자조적인 말들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청년들의 비관과 열악함을 짐작게 한다. 영화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상업영화 현장에 나가거나 과외 선생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은 당면한 현실이지만, 자신의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매년 영화를 찍는” 선배가 있고, “돈만 벌면 장땡”(p. 311)이라는 말에도 독립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있고, 노년에 이르러 첫 영화를 찍게 된 할머니도 있다. 어떠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독립영화를 찍고 서로의 영화를 보러가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설은 불확실하지만 소진되지 않은 가능성의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무슨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지만 계속 영화를 찍고 있는 서로가 있기에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곧 미래가 된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공존하는 시공간,
파편적인 장면들 사이에서 다시 정의되는 청춘

「사운드 클라우드」는 노량진 경찰 학원에서 만난 공시생 ‘수철’과 부모님의 권유로 경찰 시험을 준비하지만 이내 군대를 가게 되는 ‘나’의 찌질한 청춘의 장면들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마치 하나의 ‘사운드 클라우드’를 의도한 듯 “SP” “LP: SIDE A” “iPod” 등의 소제목을 달고 있다. 매체가 변화하는 순서에 따라 엘피에서 시디로, 음원 파일에서 스트리밍으로 변해가던 중 작가는 작품 후반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카세트테이프”를 끼워 넣는다. “어쩐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있는 것 같”(p. 211)은 느낌은 사운드 클라우드가 단일한 시간순을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엄마가 마그마지. 엄마가 건아들이고 엄마가 활주로야.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고 했다. 너 장난치지 마. 아니, 내가 무슨 장난을 쳐. 진심인데. 그런데 옛날 밴드들은 참 이름도 엄청나다. 세상 다 뒤집어놓을 것 같은 이름이잖아. 실제로 그랬어. 모두 운동권이고 모두 시인이었지. [……] 근데 너 그런 옛날 사람들 어떻게 알았니. 나는 유튜브에서 봤다고 했다. 세상 모든 젊음이 그곳에 영원히 봉인되어 있는 것 같아.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런.
_「그룹사운드 전집에서 삭제된 곡」

화자는 유튜브를 통해 부모님 세대가 즐겨 들었던 ‘마그마’ ‘건아들’ ‘활주로’의 음악을 만난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디지털의 세계에서 다시 재생되고, 유튜브 속 과거의 젊음은 새로운 청춘으로 소환된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그다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대가 무한히 연결되고 뜻하지 않게 다시 시작되는 세상.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에서 벗어난 청춘의 시간에는 단 하나로 수렴하는 진실도, 결정된 미래도 없지만 자유롭게 흩어진 장면들 사이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다른 가능성들이 있다. “서이제의 소설은 포스트 진실의 시대에 가장 먼저 도착한 0%의 미래이다. 이 미래는 동시대의 감각으로 지금 시작되는 미래이다. 이제야 0%에 대한 사랑을 말할 차례이다”(이광호).

목차

미신(迷信)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
임시 스케치 선
사운드 클라우드
그룹사운드 전집에서 삭제된 곡
(그)곳에서
0%를 향하여
해설|필름의 종말과 0%의 미래 _이광호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그 말이 그를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근데 선생님 자살하셨다며? 그는 쉽게 말하고, 나는 그가 쉽게 말하기 전에 죽어버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척은 다 하시더니, 바보같이 왜 자살을 하셨대. 그는 함부로 말하고, 나는 그가 더 이상 함부로 말하지 못하도록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펜스를 넘어, 얼어 있는 저수지 위로 한 발을 내딛는다. 그에게 다가가려고, 내딛는다. 한 발, 내딛지만. 바닥이 미끄러워서, 나는 이내 고꾸라져버릴 것만 같고, 고꾸라져버릴 것만 같은 이 느낌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다. 나는 이대로 영원히 미끄러져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기어이 그에게로 다가가, 곧 눈물이 날 지경이 되어 말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 나는 울어버리고, 그는 내가 우는 것을 우습게 여긴다.
(p. 30)

유미 선배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기는 꿈이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말하며 내게 꿈 같은 건 절대 꾸지 말라고 충고했다. 대체 저한테 왜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유미 선배는 영화가 인생의 전부일 때보다, 영화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은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하지 마 그런 거.
(p. 121)

나는 그가 템테이션스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템테이션스가 좋다고 말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이었음.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보니, 나는 템테이션스가 좋다고 말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를 생각했던 것이었음. 나는 그를 생각했고, 그에 대해 생각했음. 계속 생각했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음. 음반이 플레이어 속에서 계속 돌고, 돌고.
(p. 183)

도무지 이 나라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햄버거 빵을 씹으며, 휴대폰으로 통장 잔액과 신용카드 한도를 조회했다. 조회하지 말 걸 그랬다. 갑자기 화가 났다. 슬프지도 않았다. 화가 났다. 얼마 되지도 않는 신용카드 한도를 믿었던 내 자신이 싫었다. 미웠다. 내 자신이 싫었다. 싫었다. 싫었다.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자신이 싫었다. 싫었다. 미웠다. 미웠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미워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쉽게 나를 미워할 수 있게 된 걸까. 나는 내가 미워할 대상을 잘못 고른 것 같았다.
(p. 255)

어둠이 있고 빛이 있다. 빛, 빛, 어둠, 빛과 그림자가 벽에 부딪힌다. 영화. 아무래도 영화 같은 건,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독립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미래가 없고 [……] 미래가 없고 [……] 미래가 없다. 나는 언제까지, 이 생각을 언제까지 지속시킬 수 있을까. 지속시킬 수 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할머니가 보인다. 빛. 어둠. 빛. 어둠. 연말이었고, 그렇게 밤이 지나고 있었다. 계속. 밤은 지나고 있었다.
(p. 355)

저자소개

생년월일 -

2018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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