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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한국전쟁’들 : 평화를 위한 비주얼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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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강성현
  • 출판사 : 푸른역사
  • 발행 : 2021년 06월 26일
  • 쪽수 : 32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612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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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만들어진 전쟁 영웅…용초도 국군 귀환포로 집결소…
포연에 가려진 한국전쟁의 민낯을 드러내다

이 책은 한국전쟁 관련 ‘스틸사진’ 70여 장과 (푸티지)영상 캡처 사진 10장을 비롯해 만화, 포스터, 지도 등 여러 이미지 자료를 엄선해 구성한 ‘비주얼 히스토리’다. 한데 숨겨졌던 사진을 발굴해 엮은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사진병과 민간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바탕이 되긴 했다. 그러나 한국냉전학회 이사이기도 한 지은이는 작은 한국전쟁들이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들 사진의 촬영 의도, ‘캡션’의 변화, 활용 목적 등을 분석해 한국전쟁의 이면을 드러냈다.
그러기에 이 책은 국가·중앙 대신 개인·가족·지역의 시각에서, 그리고 군대 간 전투와 군인 영웅 서사를 넘어서 (비무장) 민간인과 피란민, 여성과 아이의 입장에서 전쟁의 참상과 고통, 전쟁포로의 시선과 목소리 등 전투사의 ‘사각’을 복원해내는 데 성공했다.

출판사 서평

누가 폭도로 몰았나―제주 4·3사건과 한국적 계엄
5부 21개의 글로 구성된 책의 1부는 전쟁의 배경에 해당한다. 신탁 결정에 관한 동아일보 오보사건, 제주 4·3사건, 국회프락치사건 등 전쟁으로 내달리게 된 여러 사건들을 다루는데 주목되는 것은 제주 4·3사건의 전기가 되는 오라리 방화사건 영상이다. 지은이는 오라리 마을에 진입하는 경찰기동대의 모습을 ‘때맞춰’ 공중 촬영한 영상을 발굴해 “잔악무도한 폭도들이 마을을 습격해 방화, 살인을 저지른 만행”에 각본설을 시사한다(49쪽). 더불어 제주에 선포됐던 계엄령이 법적 조치가 없음에도 2500여 명의 민간인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됐으며 게다가 소송 기록조차 없는 사실을 지적한다(65·67쪽).

‘흥남 철수’의 영웅들은 현장에 없었다
주요 전투로 구성된 전투사를 다룬 2부에서는 ‘흥남 철수, 역사인가 선전인가’가 주목된다. 흥남부두에선 젊은 부부 사진을 화두로 “국군은 육로로 퇴각할 테니 피란민을 태워 달라” 간청했다는 김백일 소장, 송요찬 준장, 최석 준장 등이 흥남 철수가 시작된 1950년 12월 19일 이전에 이미 묵호, 삼척 등으로 철수했던 사실을 적시한다(123쪽). 또한 한국전 ‘최고의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장군의 민낯도 드러냈다. 일본판 회고록에는 포함된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근무 경력이 국내에선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그의 무용담이 시작된 다부동전투의 승리에는 “10년 동안 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을” 정도의 융단폭격으로 숱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실 역시 잊혀졌음에 주목한다(149쪽).

피란민과 국군 귀환포로들은 ‘비국민’인가
포로와 피란민, 전쟁고아와 군 ‘위안부’ 등 전쟁사에서 거의 누락된 존재들을 다룬 3, 4부는 자못 충격적이다. 휴전협정 이후 귀환한 국군 포로 7,000여 명은 전원 지체 없이 한산도 인근 용초도로 향했다. 북한군 포로수용소에서 국군 귀환포로 집결소로 바뀐 이곳에서 ‘부역자’ 색출 등을 거쳐 “사상적으로 확고한 인증을 받은 용사”로 거듭나야 했다. 갑·을·병으로 분류되는 과정에서 을종은 법에 의거해 ‘처단’되거나 ‘즉결 처형’되기도 했다(185쪽). 피란민들은 또 어땠을까. “1951년 ‘1·4후퇴’ 이후 미 8군의 피란민 유도정책에 따르면, 피란길로 허용된 도로는 몇몇으로 한정되었다. 대전 이남으로 통행하는 차량에 민간인의 탑승 자체를 금했고……”(173쪽), “김종원 평양지구 헌병사령관은 아예 소개와 피란 자체를 막았다. …… 12월 5일부터 유엔군은 평양을 적성지대로 선포했고, 이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했다.”(192쪽)

평화를 위한 역사 교육 텍스트로 다시 쓰기
휴전 이후에도 계속된 작은 전쟁들을 다룬 5부에서 지은이는 판문점, 다리, 전쟁기념관 관련 사진들과 그 관련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러면서 전쟁 사진 속 피사체의 이야기를 군사적 목적과 목적에서 해방시켜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의 텍스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묻는다. 비록 대부분의 전쟁사진은 사진병이 ‘사진작전’의 일환으로 촬영했기에 전쟁 및 체제 승리를 위해 평가받고 검열받은 것이란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지은이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숨겨진 의도와 사각死角을 찾아낸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란 희망을 제시한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며: 다른 ‘전쟁을 쓰다’, 역사를 찍다

01_‘6·25’ 전 ‘작은 전쟁’들이 있었다
태극기 포위한 ‘신탁’ 깃발들
누가 그들을 폭도로 몰았나-제주 4·3사건
일본 천황제에 뿌리 둔 한국적 계엄의 탄생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날개 단 사상검찰

02_영웅과 신화의 사각을 보다
시각화된 영웅 맥아더, 사각화된 주민 대학살
38선 돌파일은 왜 국군의 날이 됐나
흥남 철수, 역사인가 선전인가
한국인은 모르고 일본인은 아는 백선엽의 진실
민간인 주검으로 쌓은 영웅신화
‘빨치산 소탕작전’, 군이 숨기려 했던 사진들

03_버림받은 국민과 비국민 사이에서
포로가 된 국민, 버림받은 비국민
귀환용사들은 ‘지옥섬’에 갇혔다
끊긴 철교가 만든 피란민 이중 서사
흥남부두에 버려진 피란민을 아는가

04_몸과 마음을 어떻게 동원했나
전쟁고아와 반공자유주의 가족의 탄생
일본군·유엔군·한국군 ‘위안부’
‘빨갱이 공포’는 어떻게 시작됐나
반공만화는 어떻게 ‘반공시민’을 만들었나

05_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소통이 제한되고 경계가 높아지다-판문점과 철책
끊긴 이야기가 흐르는 평화를-전쟁과 다리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 평화는 없다-전쟁기념관

나오며
주석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12월 31일은 29일의 ‘작은 소요’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반탁시위가 크게 고조된 날이었다. …… 이날 김구와 임정 출신 인사들은 전국 총파업을 결의하고 정권 접수를 선언했다. 임정 내무부장 신익희는 군정 경찰 등 한국인 직원은 모두 임정 지휘 아래에 있다고 선포했다. 그러자 미군정은 이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하지 중장은 “자살하겠다고 날뛰는 김구를 진정시키고, 반탁시위가 군정이 아닌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것임을 밝히라고 설득했다.” 하지가 “나를 속이면 죽여버리겠다”고 김구를 위협했다 하니 그냥 설득은 아닌 셈이다(39쪽).

이승만과 김구가 조직한 것이 6·23 반탁시위였다. 서윤복 선수 일행 환영대회에 참여한 인파를 반탁 데모의 파도로 동원하려 했다. …… 반탁시위의 선봉은 전국학생총연맹이 맡았다. 반탁시위 현장에서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사진들(<사진 5>, <사진 6>)을 보면, 교복 입은 남녀 학생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학생시위대는 미소공위 소련대표단에게 돌을 던지는 등 맹활약을 했다(43쪽).

〈한국의 메이데이: 제주도〉라는 제목의 영상은 제주 경찰감찰청 입구에 설치된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자수한 ‘폭도 살인범’과 노획한 ‘살인 무기’를 클로즈업한다. 기관총에 비하면 영상이 클로즈업하는 살인 무기는 죽창, 손도끼, 칼 등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느릿느릿 건물로 들어가는 구부정한 두 사람도 스스로 ‘폭도 살인범’이라 자백한 것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약해 보인다(47쪽).

5월 1일에 발생했던 일들만 정리하면,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 등 우익 청년단이 오라리 마을에서 좌익 혐의가 있는 집을 찾아서 불을 질렀다. 12채의 민가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벗어날 무렵 오후 1시경 우익 청년단은 무장대 20여 명의 추격을 받았다. …… 무장대 출현 소식을 듣고 경찰기동대가 출동했지만, 이미 무장대는 떠났고, 주민들이 불을 끄고 있었다. 경찰은 마을 입구부터 총을 쏘며 들어왔고, 주민들은 도망쳤다. …… 이후 경찰은 경비대 9연대가 마을로 출동하자 황급히 철수했다. 김익렬 9연대장이 직접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다음 날 방화 주동자로 대동청년단 단원을 체포, 구금했다(52쪽).

〈사진 2〉는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에 걸쳐 제주에서 실시된 군법회의의 결과 정치범이 된 민간인들의 명부다. 무려 2,530명의 민간인들이 계엄 상태라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조서나 판결문 등 소송 기록도 없다. 도저히 재판이라고 할 수 없는 군법회의였다는 말이다(65쪽).

〈사진 3〉은 심문반이 제주농업학교 운동장에서 산에서 내려온 귀순자들 중 무장대 협력자를 가려내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여순사건 때 여수 서국민학교에서 벌어졌던 혐의자 색출 모습을 찍은 이경모의 사진이 연상된다. 사복 차림의 완장을 찬 사람은 무엇을 기준으로 무장대 협력자를 골라냈을까? 여순사건 때는 손바닥에 총을 쥔 흔적이 있거나 흰고무신을 신었거나 머리를 짧게 깎은 자 등이 기준이었다(67쪽).

민간인 접근이 불가능한 헌병사령부에서 오제도 검사와 헌병대 수사관이 현직 국회의원을 밀실 수사하는 상황은 변호인 접견을 차단한 채 ‘소통 불능’ 상태에서 행해진 반복적인 고문이었다. 현직 국회의원들이 극심하고 반복적인 고문을 받고 거짓 자백을 한 것은 재판에서 피고의 고백문과 최후 진술, 변호사의 변론, 판사의 사실심리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판사는 고문이 아주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응했고, 그 자백에 신빙성을 두었다(82쪽).

나이 어린 중학생들을 포함해 제주 청년들이 혈서를 써가며 해병대에 3, 4기로 지원했다. 그 수가 약 3,000명이었다. 언제 ‘빨갱이’ 낙인이 씌워질까 전전긍긍하지 않고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살리기 위해서였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서울 수복’에 이르는 전투를 거듭하며 귀신 잡는 해병이 되어갔다. 〈사진 3〉의 해병대 병사들, 그러니까 제주 청년들은 공산주의자 포로를 앞에 두고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을까? …… 제대 후 몸이 성하든, 상하든 제주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입대 전에 분명 살아있던 부모와 가족의 죽음을 마주한 경우가 있다 들었다. 제주도에서는 계속 ‘잔비 토벌’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살해됐던 것이다(101쪽).

월미도에는 9월 10일부터 ‘무력화 작전’이 전개됐다. 14기 해병대 폭격기 편대가 북한 포병부대의 엄폐물을 불태우기 위해 네이팜탄 폭격과 기총소사 공격을 가했다. 당시 공습 보고서에 따르면, 폭격기 편대의 임무는 120가구 6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던 마을이 있는 월미도 동쪽 지역의 집중 폭격과 마을 전소였다. 30여 가구 중 상당수가 온 가족이 몰살당했고, 100여 명의 주민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은 폭격작전의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명백하게 민간인 마을이 군사적 목표물로 간주됐기 때문에 벌어진 ‘무차별 파괴’였다(106쪽).

송요찬의 수도사단은 12월 16일 흥남에서 철수하기 시작해 18일 오후 묵호항에 상륙했다. 김백일의 제1군단도 12월 17일 철수해 이후 삼척으로 갔다. 최석의 3사단은 그보다 일찍 성진에서 부산으로 철수했고, 흥남으로 들어왔던 일부 부대도 철수했던 차다. 그렇다면 국군 제1군단과 사단 지휘관 및 참모들은 자기 부대를 먼저 보내고 피란민 소개의 사명을 위해 흥남에 계속 잔류했다는 말인가? 12월 19일은 피란민들이 본격적으로 배에 타기 시작했던 날이다. 그때 피란민들은 김백일과 송요찬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찾아보고 싶지 않았을까?(123쪽)

〈사진 3〉은 8월 16일 B29 98대가 26분간 960톤의 폭탄을 쏟아부은 모습을 찍은 것이다. “8·15 부산 해방”은 물 건너간 상태에서 대구 점령이라는 김일성의 독전으로 북한군은 15일 전후로 총공세를 펼쳤다. …… 보고를 받은 맥아더 장군은 ‘융단폭격’을 지시했다. …… 백선엽의 표현을 빌리면, “…… 미군 폭격 뒤 10년 동안 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폭격이 이루어진 장소는 시무실과 사창 마을(현 구미시 형곡동)로 각각 70가구, 60가구의 민가들로 구성된 촌락 마을이었다. 인근에 피란민도 많았다. 마을 주민 131명과 그 이상의 피란민들이 불바다에 휩싸인 채 사라졌다(149쪽).

지리산 주변 9개 군 주민이 20만 명인데, 백선엽이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깔린 토벌작전으로 많은 아이와 부녀자가 포로로 포획됐고, 트럭에 실어 광주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리 되면 아이든 부녀자든 다 얼어 죽을 거다, 동족상잔하는 마당에 양민과 적은 가려서 취급해야 하지 않냐고 공국진이 백선엽에게 항변했다고 한다(164쪽).

1951년 ‘1·4후퇴’ 이후 미 8군의 피란민 유도정책에 따르면, 피란길로 허용된 도로는 몇몇으로 한정되었다. 대전 이남으로 통행하는 차량에 민간인의 탑승 자체를 금했고, 대전 이남의 열차에는 이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피란민도 허용되지 않았다. 타도 지역의 피란민들이 대구 이남의 경상남도로 들어오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고, 이미 들어와 있는 피란민들은 대구의 경우 전라도로 보내고, 부산의 경우 거제도와 제주도로 이동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 ‘불순분자’와 흰옷을 입고 변장한 적이 침투한 오염된 무리로 보았다. …… 국민이 포로가 되었고, 때로는 비국민의 문턱으로 넘어갔다(173쪽).

국군 귀환포로들은 판문점 ‘자유의 문’을 통과해 “대한부인회라는 어깨띠를 두른 부인들”의 따뜻한 환영과 보살핌을 받았지만, 불길한 예감에 빠졌다. 육군 총참모장 백선엽 장군의 “전우들 중 적의 강압에 못 이겨 본의 아닌 행동이 있었다 하여도 충심으로 반성하고 대한민국에 충성을 맹세하라”는 일장 연설이 불길했던 것일까? 귀환포로 박석태 하사는 머플러에 “대한청년의 의지는 꺾지 못하리라”는 혈서를 쓰고 다시 군 복무하겠다고 “애원”했다(182쪽).

국군 귀환포로들은 전원 지체 없이 서울과 인천을 거쳐서 LST에 승선했다. 행선지도 듣지 못했다. LST 배 밑창에 누워 있을 때, 불길한 예감은 차츰 현실이 되어갔다. 적 수중에 있었던 자신의 과거가 문제 없는지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했고, 누가 바다에 버려졌다는 식의 뜬소문들이 돌면서 불길함은 공포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렇게 용초도 포로수용소로 밤낮없이 이틀 동안 나아갔다(184쪽).

7,862명 국군 귀환포로는 그렇게 갑·을·병으로 분류되었다. 갑종과 병종에 대해서는 재교육을 통해 재복무시키거나 제대시켰지만, 을종에 대해서는 법에 의거해 “처단”했다. 심지어 “즉결 처형”했다는 의혹도 있다. …… 한산도로 소개된 용초도 주민들도 용초도에 국군 포로들이 들어온 후 밤만 되면 총소리가 자주 났다고 증언했다(185쪽).

김종원 평양지구 헌병사령관은 아예 소개와 피란 자체를 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강 이남 지역의 주민은 후퇴하는 유엔군을 따라 피란을 떠났다. 대동강 철교는 반파된 채 끊어져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았지만, 12월 4, 5일 양일간 약 5만 명의 피란민들이 강을 건넜다 한다. 12월 5일부터 유엔군은 평양을 적성지대로 선포했고, 이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했다(192쪽).

한국전쟁은 남성 국민을 ‘병사형 주체’로, 여성 국민을 ‘위안형 주체’로 젠더화했다. …… 위안하는 주체의 계급에 따라 민간 외교의 활동으로 치장된 오락, 유흥, 성의 제공인지, 유엔군 위안소에서 은혜로운 미군의 노고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유흥과 성의 제공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김활란, 모윤숙, 임영신, 박마리아 같은 여성 지도자들은 여학생이나 대한여자청년단, 대한부인회의 젊은 여성들을 동원해 병사들을 위무·위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주로 ‘파티 대행업’에 나서 유엔군 장교와 외교관 등 영향력 있는 남성들을 ‘위안’했다(227쪽).

1951년 계속되는 필승각 파티에는 이화여대 학생과 졸업생들이 동원됐다. 필승각은 일명 빅토리아하우스로 불렸다. 김활란은 사회부 장관 허정의 도움으로 필승각을 불하받아, 그곳에 미군 및 유엔군 고위 장교, 외교관, 한국 주재 외교관 등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노래와 무용이 곁들어지거나 여러 유형의 시중이 더해졌다. 모윤숙이 만든 낙랑클럽은 더 갔다. “낙랑 걸”들은 유엔군 고위급과 외교관들을 상대로 “국부國父” 이승만을 위한 로비와 정보 수집을 했고, “밤에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고 불빛을 받으며 접대”했다(227쪽).

이승만 정부는 ‘공창제도 등 폐지령’(과도정부 법률 제7호, 1947년 11월 14일 공포, 1948년 2월 14일 시행)에 반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아예 업자를 두고 유엔군 전용 위안소를 설치·운영하는 데 개입했다. …… 정부가 내세운 건 전선 이동이 미미하고 주둔군 병사들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군이 저지르는 성범죄(강간 등)로부터 “일반 여성의 정조를 보호하기 위한 방파제”로 삼기 위해 유엔군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거다(230쪽).

첫 판문점은 임시 군용 천막으로 시작했고, 그러다가 전쟁 막바지에 건축된 목조건물이 이를 대신했다. 말 그대로 임시 회담 장소였고, 현지 주민들도 회담이 끝날 때까지 한 달만 나가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주민들은 집문서를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 묻어두고 옷가지만 약간 챙겨들고 마을을 빠져나왔는데, 그게 고향에서의 마지막이었다. 우선 4개월이었다. 밀고 당기는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합의 결과 12월 27일까지 총성이 멎었다(260쪽).

1954년 12월까지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 2차 공사가 진행되었다. 반원형 막사, 조립식 건물, 텐트, 전기와 급수시설, 진입도로 등 여러 건물과 구조물들이 만들어졌다. 1961년부터는 북한군이 사전협의 없이 초소나 건물을 지어 유엔군도 맞대응에 나섰다. 1964년에 북측이 군사분계선 바로 북쪽 언덕에 ‘평화의 파고다’라는 육각정 휴게소 건물을 짓자 남측은 그다음 해 군사분계선 바로 남쪽에 ‘자유의 집’을 건축했다.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는 미군과 한국군, 북한군이 서로 군사분계선 경계를 넘나들며 북측의 평화의 파고다나 남측의 자유의 집 앞을 자유롭게 오갔다(265쪽).

전쟁기념관 건물 내 6·25전쟁실 I·II관에도 ‘육탄 10용사’와 백마고지 ‘육탄 3용사’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육탄용사라는 명칭은 1949년 5월 송악산 고지의 공방전을 소재로 조작해 만들어진 영웅 이야기를 부르는 것으로, 김석원 장군이 처음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명칭이 애초 1932년 일제의 상하이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3명의 병사 실명을 이용해 조작해 띄운 군국주의 신화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 이 조형물은 전쟁기념관의 관람객에게 전쟁에 대한 국민의 자세와 정신 무장을 직설적으로 요구한다(302쪽).
( /본문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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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8종
판매수 368권

역사사회학자·성공회대동아시아연구소HK+교수.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통제와 전향, 공안, 법과 폭력, 전쟁과 제노사이드, 과거청산, 점령과 군정을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전쟁범죄, ‘냉전아시아’의 문화와 지식 생산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과 영국 등 국외 자료기관에서 자료를 조사·연구하고 있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냉전평화연구센터장, 한국냉전학회 이사, 《황해문화》 편집위원 등을 맡아 연구와 학문적 실천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2020), 《종전에서 냉전으로》(공저·2017), 《열전 속 냉전,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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