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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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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십자가에 비추어 일제강점기 기독교민족주의자들의 역사관을 읽다!

이 책의 제목은 ‘십자가의 역사’가 아니라 ‘십자가의 역사학’이다. 한 글자 차이이지만, 그 간극은 만만치 않다. 어떤 제목을 썼느냐에 따라 둘의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십자가의 역사’라 하면,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잔인한 사형도구였던 ‘십자가’가 어떤 경로를 거쳐 기독교의 주요 상징이 되었는지, 그 ‘역사’를 추적하는 글로 짐작하기 쉽다. 그런데 여기에 ‘학(學)’이 하나 더 붙으면 사정이 훨씬 복잡해진다. ‘학’이란 본래 앎, 배움의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안다고, 배운다고 전부가 아니다. 제대로 알고 배우기 위해서는 ‘관(觀)’이 있어야 한다. 어떤 ‘관’을 가지고 사물이나 사건, 현상 따위를 보느냐가 앎의 참됨을 입증할 테다.

그러니 ‘십자가의 역사학’이라고 하면, 단순히 십자가의 역사를 다루는 책일 수 없다. 그보다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십자가에 정위(定位)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십자가는 고난이다. 이 세상 어떤 종교의 상징도 이처럼 혹독하고 진실하게 고난을 드러내지 못한다. ‘춤추는 평화’ 노래꾼 홍순관은 “겨울예수”라는 제목의 짧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리석도록
죽음으로 걸었고
무모하리만큼 철저히
죽었습니다.

누구나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보통사람들의 생각이고 삶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데도 기어코 고난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장렬하게 산화하는 경우란 가뭄에 콩 나기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맞다, ‘겨울예수’가 제격이다. 현란한 욕망의 더께들을 전부 덜어내고 앙상한 가지로 남아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어리석음이 그의 그리스도성의 고갱이다.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십자가’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이들이 허다한 판에, 평생 아끼고 아끼다 단 한 번 그 금기어를 노래한 윤동주의 시는 또 어떤가?

……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자고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처럼 살고자 결단한 사람들이다. 이 시의 문장 배열에서 ‘처럼’이 줄 바꿈으로 표현된 것도 그러한 직유(直喩)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겠다. 그런데 이 경우의 ‘처럼’은 ‘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는 실천을 담보한다. 고난의 십자가를 달게 진다는 뜻이다. 그러한 실천이 없이는 그리스도‘처럼’ 산다고 말할 수 없으며,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도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어쩌다가 사회가 교회에 절망한 나머지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까지 왔을까? 길게 말할 필요 없다. 한국교회가, 그 교회의 구성원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큰데, 예수는 작다. 교인은 많은데, 그리스도인은 적다. 다들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대신에 영광의 면류관만 쓰려고 안달이다.

오늘날 거대 조직으로 성장한 이 땅의 기독교는, 그래서 ‘건수’만 생기면 언제든지 ‘세(勢)’를 과시하려고 드는 이 땅의 기독교는 웅장함과 화려함, 풍요로움과 사치로움에 중독된 중세 로마교회를 빼닮았다. 만약 1세기 팔레스타인 땅을 거닐던 가난한 예수가 ‘재림’하여 서울의 어떤 대형교회를 방문한다면, 그 위용에 놀라기도 할 것이거니와, 추측컨대 결코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하리라.

이런 맥락에서 ‘십자가의 역사학’이란 십자가에 내포된 고난의 ‘관점’에 비추어 이 땅의 역사,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역사를 읽어보려는 시도라 하겠다. 공교롭게도 이 땅과 기독교의 인연은 고난을 매개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시기 자체가 고난의 때요, 그러기에 기독교를 통해 고난을 헤쳐 나가고자 한 민중의 염원이 모여 기독교가 번성하게 되었다는 뜻에서 그렇다. 이러한 ‘맞물림’의 역사를 밝히 앎으로 민족의 고난 앞에 순순히 모가지를 드리운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았다. 절대다수의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일제식민통치세력이 유포하는 식민사관(植民史觀)에 순응하여 현존질서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넓은 길’을 걸을 때, 소수의 ‘참 그리스도인들’은 핍박과 억압, 박해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 그렇다,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목차

들어가며 - 7p

1장. 왜 일제강점기인가
1. 노예의 존재론 - 17p
2. 땅은 하나님의 것 - 20p
3. 새 술은 새 부대에 - 25p
4. 땅 따먹기와 3ㆍ1운동 - 31p
5. 문화정치와 기독교의 변질 - 36p

2장. 복음의 사도인가, 제국의 첨병인가
1. 복음이 도대체 뭐기에 - 49p
2. 굴종적 선교사관 - 54p
3. 다양한 선교모델들 - 59p
4. 네비우스 원리와 간접선교 전략 - 64p
5. 주체적 수용사관 - 68p

3장. 무교회운동과 독립정신
1. 무교회가 꽃핀 토양 - 79p
2. 김교신과 우치무라 간조 - 92p
3. 한반도 지리관과 ‘조선산’ 기독교 - 102p
4. ‘성서조선’과 시민 기르기 - 116p
5. 한민족과 씨사상 - 127p

4장. 하나님 나라의 이상향, 명동촌
1. 간도는 우리 땅 - 145p
2. 북간도의 대통령 김약연 - 155p
3. 북간도가 기독교를 만났을 때 - 166p
4. 3ㆍ13 용정만세운동 - 174p
5. 간도 디아스포라를 기억하기 - 184p

5장. 노란 피부 하얀 가면
1. 로마 제국이냐, 하나님 나라냐 - 197p
2. 한국형 반공주의의 뿌리 - 207p
3. 한국교회의 트라우마, 신사참배 - 214p
4. 평양대부흥운동과 리플리증후군 - 222p
5. 순복음신화에 담긴 영적 식민주의 - 237p

나가며 - 253p

저자소개

구미정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강원도 봄내(春川) 출신이다. 말만 또랑또랑하지 속은 어벙한 게 감자바위라는 말도 듣는다. 이화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생태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신학과 윤리를 재구성하는 참심한 논문으로 우리 나이로 서른셋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 '이제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라',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 '한글자로 신학하기'가 있으며, 역서로 '교회 다시 살리기', '생명의 해방' 등이 있다. 계명대학교, 대구대학교, 영남신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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