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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오딧세이 : 인류학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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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전경수
  • 출판사 : 눌민
  • 발행 : 2021년 03월 10일
  • 쪽수 : 44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77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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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울릉도와 독도의 지명에 전라도 흥양 지방 말이 많은 이유는?

강치가 아니라 가지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이름을 바로잡는다!

울릉도에 관한 인류학적, 민속학적, 문헌학적, 생태학적, 해정학Oceopolitics적 연구의 집대성!

수많은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바람과 물과 흙이 수많은 사연을 만들어내는 울릉도,
“동아시아 지중해”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삶의 현장,
한 원로 인류학자가 도전하는 울릉도 오딧세이가 이 책에서 펼쳐진다!

출판사 서평

레비전의 기상 보도가 “태풍은 동해로 빠져나가서 다행입니다.”로 끝나면 울릉도 주민은 아연실색하게 된다. 울릉도에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태풍 상황 끝”이라는 보도를 접하면, 내팽개쳐진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울릉도 주민들은 줄곧 이런 식의 대접을 받고 살아왔다. _「머리말」 중에서

오딧세이적 살림살이의 보고, 울릉도를 보는 새로운 시각!
이 책은 원로 인류학자 전경수가 2006년 울릉도를 연구하기 시작한 후 15년 남짓 오랜 시간 동안 현지조사/야로野勞(“현지조사”는 인류학 학술용어이나 저자는 “조사”라는 말에 든 지적/계층적 우월의식을 거부하고 “야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를 비롯하여 인류학적, 민속학적, 문헌학적, 생태학적, 해정학Oceopolitics적 연구를 통해 울릉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본래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이야기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육지를 배경으로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저자는 쿠로시오해류를 비롯한 바닷물의 흐름에 몸을 의탁하여 동해를 중심으로 한반도, 일본, 극동 러시아 일대를 오가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고 쌓아온 사연을 말한다.

먼 옛날 우산국의 우해왕이 대마도 공주 풍미녀와 혼인한 전설이며, 우산국의 궁성 터 이야기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울릉도의 금동불상 이야기며, 전라도 흥양 지방(여수, 고흥반도 인근, 거문도를 비롯한 남해 도서 지역) 사람들이 울릉도에 와 선박을 건조하고 돌아가는 일이며, 울릉도를 배경으로 하는 민요들이며, 동학농민전쟁 당시의 어지러운 사태를 피하려 입항한 경주 최씨의 일이며, 일본 시마네현 오키노시마에서 바다를 건너 벌목과 어업을 하던 일이며, 풍랑을 만나 난파한 어민을 서로 돌봐주던 일이며, 러일전쟁 당시 제국주의 전쟁의 기지가 된 일이며, 어업권을 위해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일본 세력의 일이며, 인구 감소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울릉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마치 오딧세이를 보듯이 펼쳐진다.

“동아시아 지중해”의 중심 울릉도! 문화 주권의 논리로 다시 보는 울릉도!
지금까지 울릉도를 타자화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태풍이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동해로 빠져나가 다행이다”라는 기상 보도로 대표되는 무의식적 무시와 외면이다. 대한민국의 심장이라는 서울에서 저멀리 떨어져 버려지다시피 한 아득한 섬이 울릉도가 갖고 있는 이미지다. 다른 하나는 “천혜의 관광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육지에서 관광 삼아 한철 드나드는 장소라는 것이다. 관광이 울릉도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곳에 사는 일반인들의 삶이 천혜의 풍광에 가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는 울릉도가 마치 독도의 부속도서인 것처럼 비쳐지는 것이다. 육지 사람들의 관심은 사실상 울릉도가 아니라 독도에 가 있다. 독도 인근에서 생업 활동을 하고, 독도의용수비대와 같이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울릉도 사람들이고, 독도 해역의 동식물이 일본의 오키노시마가 아닌 울릉도와 혈연적으로 더 가까우며, 독도가 울릉도의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치의 현장에는 독도만이 등장할 뿐이다. 울릉도는 육지의 권력자들에겐 독도를 갈 때에 들르는 길목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울릉도는 한국 사회의 일원이면서 또한 울릉도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인들로 구성된 하나의 전체이기도 하다. 울릉도는 전체와 부분이 톱니처럼 얽혀 돌아가는 커다란 체계를 형성한다. 여기에는 먼 옛날 신라, 거란, 고려, 조선, 일본 제국주의의 크고 작은 소외와 수탈과 침략이 있었고, 쿠로시오해류를 이용한 동해와 남해 어민들의 활동이 있었고, 고령화율 17퍼센트(14퍼센트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불린다)가 넘는 주민들의 위태로운 삶이 들어 있다. 또한 동해와 울릉도에 의지하여 사는 수많은 동식물의 삶이 들어 있다. 저자는 영토 주권의 논리와 대결과 배척의 논리를 거부하고 울릉도를 중심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그럼으로써 외부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된 피곤한 삶의 울릉도를 넘어서 오랜 세월 동안 역사와 교류와 무역으로 쌓아온 사연을 만들어내는 오딧세이적 살림살이의 기반인 울릉도를 복권한다.

울릉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서울인가? 또는 도쿄인가? 아니면 바람과 흙과 물인가? 그 위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기를 반복하는 수많은 생명인가?

저자는 육지의 논리인 영토 주권의 논리가 아닌 문화 주권의 논리로 울릉도를 봐야 울릉도의 실체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고 주장한다. 영토 주권은 너와 나를 엄격히 분리하여 소유와 배척, 대결과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의 논리이며, 100여 년 동안 자본과 권력에 휘둘려 어업에서 농업으로, 다시 관광업으로 휘둘리는 삶의 논리다. 문화 주권은 주민들이 땅과 바다에 의지하여 살며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개척하고 만들어나가는 주권을 말한다.

그러한 주권을 행사하는 삶은, 한국, 북한, 러시아, 일본이 둘러싸고 있는 “동아시아 지중해” 동해의 한가운데에서 서울을 거치지 않고 일본 오키노시마 어민들과 직접 교류하는 것이 가능하며, 동해의 일상을 조율하는 권한과 능력을 기르는 것이며, 모든 생명이 공생하며 살 수 있게끔 노력하는 삶이다. 국경과 영토의 논리로 울릉도를 접근할 때에는 필경 대결과 착취의 안경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인류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공생하는 살림살이의 논리로 울릉도를 살게끔 할 것을 저자는 바란다.

울릉도와 독도의 지명에 전라도 흥양 지방 말이 많은 이유는?
울릉도의 지명은 크게 내륙 지명과 해안 지명으로 나눌 수 있는데, 후자는 거문도를 포함한 흥양, 즉 전라남도 해안 지방의 지명이나 용어가 바탕이 된 지명들이다. 울릉도의 해안가에서 보이는 항국로 이용할 수 있는 좁고 깊숙히 들어간 만을 뜻하는 “-구미”, 자갈이 깔려 있는 해변을 뜻하는 “-작지”, 작은 돌들이 널려 있는 긴 해안을 뜻하는 “-와달”, 물고기나 수초가 모두 모여 있는 바닷속 넓적한 바위를 뜻하는 “걸” 들이 이 그렇다.

특히 거북손(turtle's hand)이라 불리는 보찰은 전라도 지역의 방언인데 울릉도민은 거북손보다는 보찰을 더 익숙하게 사용한다. 독도에 있는 보찰바위(보찰바우)는 울릉도민이 독도에서 활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 전라도 해안 지역에서 물길을 따라 활동을 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전라도 남해안 흥양 지역 사람들이 해류를 타고 울릉도에 와서 좋은 목재로 선박을 건조하고 어업 활동을 하고 돌아간 것이다.

또한 독도는 “홀로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닌 돌섬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 “독섬”에서 왔으며, 대한제국이 이에 따라 한자로 “石島(석도)”로 표기했다는 점을 밝힌다. “다케시마(죽도)에 왔더니 대나무가 없더라”라고 한 일본인의 표현처럼 일본이 명명한 “죽도”는 군사작전이 개입한 정치적 명명이며, “독도”야말로 어민의 일상생활이 반영된 명명이라는 점을 밝힌다. 저자는,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와 정당성을 밝히는 작업은 흥양 어부의 기억을 소상하게 복원하는 데에서 그 시작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1882년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이 있는데 이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라고 보고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경상도 지역 방언을 쓰는 경상도민이 주류를 이루었을까? 저자는 울릉도 최고最古 터줏대감이라 하는 경주 최씨의 족보를 분석하여 그들이 동학농민전쟁을 전후로 입도하였으며, 경주 최씨를 비롯하여 경상도 지역 사람들이 피난처로 울릉도를 택하여 입도하였던 정황을 밝힌다. 그들은 19세기 정치적 불안을 피해 울릉도로 망명했다가 그 원인 소멸하면 귀향하기를 반복했던 듯하다. 흥양 지방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지고 경상도 경주 부근 지역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언어의 변화도 같이 일어난 것이다. 이어 조선 정부의 개척 정책에 의해 강원도 주민의 이민이 시작되었고, 그에 이어 일본인들의 이민이 뒤따랐다.

강치가 아니라 가지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이름을 바로잡는다!
우리는 흔히 독도에서 멸종한 한 바다생물을 강치로 불러왔다. 그러나 저자는 강치가 아니라 가지라고 강치로 알고 있는 그 바다생물의 이름이 강치가 아니라 가지라는 것을 문헌학적, 언어학적 자료를 근거로 밝혀낸다. 강치와 가지는 서로 다른 종이다. 가지의 학명은 Zalophus Lobatus(일본어로는 아시카)이며, 강치의 학명은 Eumetopius Jubata(일본어로는 토도)이다. 강치가 가지보다 덩치가 더 크고, 털이 길다. 가지는 털이 짧다. 강치가 가지보다 한랭한 조건에 더 잘 서식한다(161쪽 이하 참조). 그리고 분포지역 또한 다르다(168~169쪽 참조).

가지는 이미 그 이름이 조선 시대 기록에 등장한다. 조선 시대 무신 장한상은 “왜인이 가지어(可支漁)를 죽여 기름을 얻는다”고 했고,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을 비롯한 많은 기록에서 가지는 “가지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180~191쪽 참조). 일본에서도 아시카(가지)잡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다. 특히 죽도(여기서는 울릉도를 말한다. 당시에 일본에서 독도는 송도로 불렸다)에 아시카를 잡으러 출항하여 포획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이후 1947년에 석주명과 함께 울릉도를 탐사한 윤병익은 가지에 대해 자세한 보고서를 남긴다(201~203쪽 참조). 그는 석주명이 가지를 “日名 도도, 英名 바다사자”로 이해한 것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해부를 통해 포유류학적으로 자세히 교정한다. 그는 가지를 “가제”로 표기하여 해부학적 특징을 정확히 기술하였다. 가제는 가지의 전라도 흥양 지방의 말로 당시에 통용되던 말이다. 윤병익은 이를 존중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 저자는, 가제를 강치의 사투리로 오해하여 가지와 강치를 동일한 종으로 보는 오류는 바로잡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조선 시대의 기록, 해방 이후 한국 학자들의 기록, 일본 측의 기록에서 모두 가지가 울릉도에서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지는 독도에서만 발견되었던 것이 아니라 울릉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지의 멸종에 대해 슬픈 심정을 감추지 못하며 인간의 탐욕를 고발한다. “독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가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순차적으로 두 무리의 손님들이 등장하여, 주인인 가지를 다 죽이고 잡아간 뒤, 서로 자신들이 독도의 주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독도의 진정한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가지와 보찰이며, 그들의 이웃인 물고기와 해조류, 그리고 새들일 것이다.”

목차

머리말
책머리에 11
울릉도 유감: 국경이 닿는 곳 20
권력과 일상 36
문화주권: 관계의 에스노그래피 41

1장 문서와 기억:역사 재구성론
울릉도와 독도의 개황 51
기록과 기억 78
울릉도의 역지 83
벌목과 조선 95
오키노시마의 구미에서 리양코까지 142
자원: 진상품, 군수품, 상품 153
토속지명과 지도 205
부록1 사료에서 발췌한 울릉도의 토속지명 229

2장 학포 민속지: 폐촌화
울릉도의 학포 240
마을 풍경 255
생업 271
바다에서 274
산비탈에서 287
폐촌에 대응하여 296
여객선과 장보기 298
의료 서비스의 변화 303
가옥 307
교육 314
신앙과 종교 327
소결 358

3장 독도 해정학: 문화주권과 커먼스 정치
울릉도와 오키노시마 365
국가권력과 공문서 371
수로부장 키모쓰키와 일본 해군 망루 377
동아시아 지중해 386
가지의 멸종 391
박제된 가지와 독도의 가지 어업 394
커먼스 정치 400

맺음말
공생주의를 지향하며 407

참고 문헌 423
찾아보기 428

본문중에서

울릉도 풍광의 백미는 석포의 아침을 가득 채운 동녘 노을 속의 독도다. 울릉도에서 군 복무를 하던 어느 부사관이 찍은 빨간 아침노을 속에 흑점으로 드러난 독도. 스땅달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혹할 정도로 ‘적과 흑’의 조화가 저토록 두드러진 장면은 눈을 씻고도 보기 힘들다.
두번째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천부동에서 바라본 추산錐山을 들겠다. 송곳바위. 세상을 돌아다니다 본 바위들 중에서 추산만 한 바위도 드물다.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도의 예수 상과 마주하고 있는 사탕바위Pao de Acucar보다도, 남태평양 외딴섬 티코피아의 퐁테코로Fong tekoro보다도 울릉도의 추산은 하늘을 찌르는 송곳의 모습으로 으뜸이다. (/ pp.20~21)

근대에 들어 울릉도는 러일전쟁에 나선 일본 해군의 요새 역할을 했다. 이때 러시아의 주력 함대가 울릉도 근해에서 침몰한 바 있다. 독도박물관에는 러시아 주력 해군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19세기 말부터 울릉도의 나무들을 베어냈다. 교토역 근처의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건물의 일부 기둥의 자재가 울릉도에서 베어낸 느티나무이다. 오키노시마 민가에도 울릉도의 목재로 지은 가옥이 있고, 또 인근에는 울릉도에서 파 간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 p.29)

울릉도에 관한 기존의 인류학적인 문헌들을 보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이 역시 토리이 류조의 글이다. 그것이 울릉도에 관한 최초의 인류학적인 보고문이라는 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발표되는 배경의 제국주의적 바탕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간다. (/ p.54)

일제시대 울릉도에 거주했던 조선인 가운데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으며, 대체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당시 울릉도의 어업은 거의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이 오징어잡이를 위해 입도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도동의 주거지역은 지금은 복개된 도동천변을 따라 형성되었는데, 상류의 계단식으로 형성된 전작지 부근의 조선인 거주지역과 하류의 도동항 근처의 일본인 거주지가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직업 분포와 연관되었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섬을 떠나면서 그 빈자리를 한국인들이 채우게 되었다. (/ p.65)

오징어를 말릴 때에는 포구에 있는 덕장에서 바람과 햇볕으로 건조시키지만, 날씨가 좋지 않을 때에는 공장에서 ‘불 건조’를 하기도 한다. ‘불 건조’는 인위적으로 더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공장이 없었던 시절에는 비가 올 경우 덕장에 널어 놓은 오징어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비가 오면 ‘이깟대’가 상할까 봐 오징어를 바다에 버렸다. 오징어는 어차피 쓸모없어지기 때문에 ‘이깟대’라도 건지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공장에서 ‘불 건조’ 할 수 있어서 ‘이깟대’를 버리지 않는다. (/ p.67)

특기할 만한 바위 이름으로는 ‘보찰바위’가 있다. ‘보찰’은 거북손이라는 표준어의 전라도 지역 방언인데, 경상북도에 속해 있는 독도의 지명에 전라도 방언이 사용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울릉도민들도 ‘거북손’보다 ‘보찰’이라는 말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개척령 이전부터 전라도와의 왕래가 많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나선羅船’이라는 전라도 출신의 배가 천부를 중심으로 많이 오고 갔다. 이들은 배 한 척에 타고 건너와 여름 동안 배를 건조하고 미역을 따고 고기를 잡아서, 각자가 울릉도에서 건조한 배 한 척씩을 몰고 돌아갔다. 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이규원李奎遠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이었다고 보고했는데, 이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다. (/ p.77)

그 결과 토속지명의 범주에 속하는 울릉도의 지명들 중 상당수가 전라남도 흥양 지방(여수, 고흥반도 인근, 거문도를 비롯한 도서 지역) 방언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울릉도의 토속지명이 흥양 방언과 일치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체계적인 말꾸러미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것이 울릉도 토속지명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82)

칙령에서 명시한 석도가 지금의 독도獨島임을 증명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전라도 방언을 연구해야 한다. 울릉도를 내왕했던 전라도 흥양의 어부들이 불렀던 ‘독섬’(돌섬의 전라도 방언)을 대한제국의 공문은 한자로 ‘석도’(돌 ‘석’+섬 ‘도’)라고 적었고, 이를 승계하지 않은 명칭이 지금의 ‘독도’이다. 대한제국 정부가 공문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울릉도 주민의 방언을 존중하였다는 얘기다. ‘독도’는 발음을 중심으로 지은 이름이고, ‘석도’는 의미 중심으로 지은 이름이다. 전라도 흥양 어부들의 일상이 잊히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오키노시마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죽도’가 생생히 살아 있다는 사실과 대조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흥양 어부들의 기억은 소상하게 복원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인류학자들이 해야 할 작업이다. (/ pp.91~93)

울릉도의 토속지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내륙 지명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해안 지명들이다. 후자는 거문도를 포함하는 흥양, 즉 전라남도 해안 지방의 지명 또는 용어가 바탕이 된 토속지명들이다. 예를 들면, 여러 곳의 해안가에서 보이는 –‘ 구미’(항구로 이용할 수 있는 좁고 깊숙하게 들어간 만), –‘ 작지’(자갈돌들이 널려 있는 해변), ‘가제’ 또는 가지(바다사자), ‘보찰’(거북손), ‘와달’(작은 돌들이 널려 있는 긴 해안), ‘걸’(물고기나 수초가 모여 있는 넓적한 바닷속 바위), ‘독섬’ 등이다. 이 일곱 가지는 모두 고유어로, 한자의 영향을 받은 한글과는 무관한 점이 특징이다. (/ p.209)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 잡히는 오징어를 다 수입해 가던 시절도 있었다. 독도 근해의 오징어가 가장 좋은 오징어다. 일본인들은 명태는 알만 빼서 가져갔고, 나머지는 조선인들에게 팔기 위해서 제수용 북어를 만들기도 했다. 오징어의 종류는 갑오징어, 한치, 먹통(먹물 많이 쏘는 종류. 통통한 모양새로 몸 가운데 뼈가 들어 있음), 낙지(엄청나게 큰 오징어다. 보통 낙지라고 하는 것은 문어류임) 등이다. 쭈꾸미는 문어과의 일종으로 오징어가 아니라고 했다. (/ pp.252~254)

우데기는 바람과 눈을 막기 위해 집의 투방벽에서 130~150센티미터의 공간을 두고 바깥쪽에 둘러치는 일종의 외벽이다. 벽체 바깥쪽에 기둥을 세운 후 억새나 옥수수대를 엮어 둘러치며 말아 올릴 수 있는 문을 달아 집 안의 온도를 조절하며, 방풍효과를 더한다. 눈이 많이 쌓였을 때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우데기 내부에는 부엌과 장독 등이 있다. 벽체와 우데기 사이의 공간을 축담이라고 하는데 눈이 많이 쌓인 겨울에도 축담을 통해 우데기 안에 있는 부엌과 장독으로 이동할 수 있다. 축담 내부 공간에 있는,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봉당은 남부 지방 가옥의 툇마루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울릉도에서 봉당은 신발을 신지 않고 집 안에서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이자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며 더위를 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 pp.308~310)

울릉도와 오키노시마의 사진들에는 공히 영토주권에 관한 주장이 담겨 있다. 주권을 둘러싼 충돌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인데, 현수막이나 간판으로는 이 목소리들이 일상과 어떻게 접합되어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일상의 문화주권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영토주권을 천명해야 하는 국가권력이 직접 충돌하지 않는 가운데 대리인들의 언설이 충돌하고 있는 현장이다. 호적(또는 본적지)으로만 본다면 독도에서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 1,919명이 등재되어 있고(2006년 기준), 일본인 69명이 등재되어 있다(2005년 기준). 사람이 거주하는 지구상의 어느 곳에도 이런 해괴한 일은 없다. 이러한 언설들이 양 지역의 문화주권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려면 다른 방향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 pp.367~368)

반면 오키노시마의 어부들은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어장으로 독도 해역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근대국가의 국경이 명확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제국주의적 야욕과 결부되는 사례를 독도에서 볼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준동하던 시점에, 오키노시마의 어민이 이른바 어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의 독도 영유를 부추기는 과정이 드러난다. 국가 권력과 일상의 생계 활동이 야합하여 약소국의 영토를 탈취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에 기여하는 사람은 ‘어업권’이라는 이권을 손에 넣는다. (/ p.374)

일본 제국주의는 오랫동안 독도 해역의 어로를 기반으로 살아왔던 여러 지방의 문화주권을 유린하였다. 또 1904년 2월 23일 공포된 한일의정서 제4조에 근거하여 1904년 7월 21일 독도에 전쟁용 망루를 설치하기도 했다. 1903년 8월부터 러시아의 차르 정부와 협상에 들어간 일본은 1904년 2월 4일부로 협상 중지를 선언했다. 사실은 그해 2월초에 마산포와 원산 등에 일본군을 상륙시키는 등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 모든 작업이 러일전쟁(1904년 2월 8일~1905년 9월 5일)이 벌어지던 때 진행되었음을 생각하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국제정치적 배경에 전쟁 수행의 목적이 있었음을 지적해야 한다. (/ p.377)

독도에는 약간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대나무는 찾아볼 수가 없다. 대나무의 일종인 시누대가 울릉도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키노시마 어민들의 머릿속에 리앙쿠르암이라고 각인되었던 섬의 이름이 ‘죽도’로 변경된 시점은 러일전쟁이 종결된 이후이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문서에 드러난 명칭인 ‘죽도竹島’는 울릉도를 가리키고 독도에는 ‘송도松島’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죽도’가 독도를 가리키게 된 것은 그 후의 정책에 의한 결과이다. (/ pp.397~398)

울릉도의 삶은 피곤하다.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식민지 침탈에 의해서 기반이 무너진 채 표류하고 있다. 어업에서 농업으로, 다시 관광업으로 휘둘리고 있는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정착 기반을 상실한 듯하다. 땅과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살림살이가 식민 착취로부터 시작된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면서 허덕이는 모습이다. 주민들 스스로의 삶의 방식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 외부의 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어온 것이다. (/ p.411)

독도에서 자취를 감춘 가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과제를 남기고 있다. 독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가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순차적으로 두 무리의 손님들이 등장하여, 주인인 가지를 다 죽이고 잡아간 뒤, 서로 자신들이 독도의 주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각한 적반하장에 더불어서 이만저만한 언어도단이 아니다. 국가와 민족을 절대적 가치를 앞세우면, 결국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참으로 몰염치한 인간들이다. 염치는 사람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나무, 사람과 흙, 사람과 물고기 사이에서도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주인이 사라진 자리에서 서로 자기가 주인이라고 말싸움을 하면서 으르렁거리는 자들이 있다. 몰염치가 지나치면 범죄가 될 수 있다.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할 손님들은 사라진 주인이 다시 등장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반성할 차례이다. 그러지 않으면 마땅한 대가를 치를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독도의 진정한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가지와 보찰이며, 그들의 이웃인 물고기와 해조류, 그리고 새들일 것이다. (/ pp.417~418)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9~
출생지 -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368권

인류학자. 1949년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2년에 미네소타대학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2014년에 은퇴하여 현재 동 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문화재위원,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제주학회 회장, 진도학회 회장, 유구·층승학회 회장, 근대서지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규슈대학, 야마구치대학, 가고시마대학, 도쿄대학, 국립민족학박물관, 오키나와국제대학, 가나가와대학(이상 일본), 윈난대학, 구이저우대학(중국), 예일대학(미국)에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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