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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중국 : 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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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문영 외
  • 출판사 : 책과함께
  • 발행 : 2020년 12월 30일
  • 쪽수 : 36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899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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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늘날 중국의 민(民)을 마주하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국가가 ‘하나의 중국인’ 만들기와 계획경제를 강력하게 추진해온 과정에서 평범한 중국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들에게 국가란 어떤 의미이고, 제 삶에서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이 책은 인류학, 사회학, 중국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13인이 지난 20여 년간 현지조사와 장기 교류를 통해 만나온 다양한 개인, 가족, 지역 주민의 이야기다. ‘중화인민공화국 공민(公民)’이라는 분명한 국민 정체성 대신 ‘민(民)’이라는 모호한 수사로 등장인물들을 에두른 것은, 이들의 삶에서 ‘국가’가 현현하는 양태나 이들이 ‘국가’와 마주하는 방식의 차이 혹은 ‘접면’이 현대 중국의 역동과 곤경을 들여다보는 데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와 미-중 무역 갈등, 코로나19 사태 등 각종 뉴스를 통해 중국을 접하고 분노하면서도 정작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감정, 행동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진짜 중국인’의 면면을 보여주고 의미 있는 질문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출판사 서평

개혁개방 이후, 중국 ‘국가’가 강력하게 추진한
‘하나의 중국인’ 만들기 프로젝트


대한민국의 96배에 달하는 면적에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인구는 14억이 넘고, 공식적으로 56개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다. 한족을 제외한 55개 민족이 1억 명을 훨씬 넘는데도 ‘소수민족’이라 불리고, 이들 소수민족의 자치가 시행되는 지역이 나라 면적의 64퍼센트가 넘는다. 광활한 영토의 생태 환경도 고르지 않은 데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국가가 글로벌 자본과 시장경제 시스템을 특정 공간에 선별적으로 배치하다 보니 도시와 농촌 간, 지역 간 불평등도 극심해졌다. 더 나은 기회를 찾기 위한 이주가 농촌과 도시, 소도시와 대도시, 중국 영토 안팎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쑨거가 황허의 진흙탕에 빗댄, “뒤틀리면서 움직이는 역사”가 매 순간 새롭게 쓰여왔다. 수많은 민족 집단이 분산된 채 존재하다 접촉, 혼합, 연결, 융합의 과정과 분열과 소멸의 과정을 동시에 거치면서 ‘중화민족’이 ‘실체’로 등장하기까지, 중국 국가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교육, 미디어, 산업, 군사 등 제 방면에서 강력한 헤게모니와 물리적 폭력을 동시에 행사했다.

중국의 민(民)은 제 삶에서 국가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토지에서 개인의 몸에 이르기까지, ‘영토’에 대한 통치 역시 국가 주도형 사회 계획의 중요한 일부였다. 농촌을 원시적 축적에 따른 비용을 감내할 “저렴한 자연”으로 만들고, 도농 이원구조를 제도화해서 도시와 농촌 주민 간 호적의 차이를 사회 신분의 차이로 만든 장본인이 중국 국가다. 이 농민의 ‘탈빈곤’을 목표로 민간 기업의 참여를 부추기면서 대대적인 빈곤 퇴치 사업을 벌이는 데 앞장선 장본인 역시 중국 국가다. 신중국 성립 초기에 토지개혁과 혼인법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미혼녀, 이혼녀, 과부에게 토지를 소유할 권리를 부여한 주체도, 197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계획생육(計劃生育) 정책을 시행하여 여성의 몸에 대해 집요한 지배력을 행사한 주체도 중국 국가다. 민생과 민본을 강조하며 인민으로부터의 인정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지만, 동시에 누가 ‘인민’의 자격을 갖는가를 가름하는 심판자도 중국 국가다.
당과 정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국가를 상위의 실체로 가정하면서 구심적 힘의 행사를 정당화하는 태도가 평범한 중국인들의 삶에서 관행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민(民)이 제 삶에서 어떤 ‘국가’를 만나는가, 어떻게 만나는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국가는 인생을 뒤흔들 강력한 정책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길가 담벼락의 희미한 선전 구호나 공문의 의례적 문구처럼 “공유된 무관심”으로 남을 때도 많다. 국가 지도자가 마을 사당의 위패나 가정집의 부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이권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심해지면서 지방 관리가 폭력배처럼 출현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국가 대 사회’라는 구도를 가정하면서 그 대립을 논하는 서구의 시각도, 이를 비판하면서 민과 관의 조화를 강조하는 중국 주류 학계의 시각도 대립과 합일 너머의 세세한 주름을 살피기엔 너무나 매끄럽다. “패러다임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혜안을 떠올려봄직하다.

중국 민(民)의 조각을 덧대 두텁게 읽다

‘시장경제의 저류(低流)’와 ‘전통 농민’ 사이, 중국의 ‘민(民)’은 어디에 있을까? 전자를 강조하면, 민은 국가와 시장 지배의 피해자, 피억압자로 등장한다. 삶의 존엄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잠재적 투사로 낭만화되곤 한다. 후자에 주목하면, 민은 중국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범속한 군상이다. 사회 정의에 무관심하고, 제 일가를 챙기는 데 급급한 인간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하지만 대다수 중국인의 삶은 전자도 후자도 아닌 그 접면(接面)에 놓여 있다. 인류학자 안나 칭이 “마찰(friction)”이라 부른, “거북하기도 위계적이기도 한, 불안정하기도 창의적이기도 한” 마주침이 개인, 가족, 지역의 주름진 삶 ‘접면’에서 매일매일 펼쳐진다.
이 책 《민간중국》은 이 ‘접면’에 대한 탐색이다. 현대 중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대국으로의 성장, 계획경제 시기에 구축된 각종 질서의 와해와 재편, 초국적 이동의 확산과 불평등의 심화가 맞물리면서 유례없는 변동을 겪어왔다. 변동은 가족, 민족, 계층, 젠더, 세대, 지역, 국경 등 다양한 층위를 가로지르면서 중층적인 위계와 갈등, 새로운 기회와 열망을 만들어냈다. 정치경제 시스템과 국제 정세의 변화가 짧은 시기에 휘몰아치는 동안 ‘국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화두를 일상에서 대면하는 순간들이 녹록했을 리 없다. 시위와 파업, 소요와 폭동 같은 날것의 저항도 많았지만, 급류를 타거나 피하면서 생존과 안전, 부를 도모하는 기술들이 얼기설기 엮이며 삶의 우발성과 탄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난장(亂場)의 삶들을 이해하기 위해 위인의 서사를 동원하거나 지식인의 다림질에 기대는 대신, 현대 중국을 살고 버티고 만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본질적인 불완전함을 감수하고라도 두텁게 읽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다. 규모의 방대함과 인구의 다양성을 고려했을 때, ‘민간중국’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조각보를 깁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책의 구성과 내용 : 공민(公民)이 아닌 민(民)을 만나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뉜다. 1부에 소수민족에 관한 글을 먼저 배치했다. ‘소수’라는 명명의 주변성을 성찰하는 의도가 담겼다. 2부는 개혁개방 이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만들어온 변화를 톺아본다. 거대 전환에 대한 국가 서사와 때로 엇갈리고, 때로 합류하는 시선과 대응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3부는 개혁개방 과정에서 가장 현란한 변화를 보여준 남방 도시 선전(深圳)을 중심으로 민간의 역동과 곤경을 들여다본다. 마지막 4부는 중국과 대만, 중국과 한국을 가로지르면서 경계에서 민간을 읽는 글을 담았다.
이 책에는 지난 20년 사이 저자들이 중국에서 현지조사 하거나 장기 교류를 하며 만나온 다양한 개인, 가족, 지역 주민이 등장한다. 중국에서 작품을 팔 수 없는 회족 예술가, ‘주먹’ 출신의 성공한 조선족 기업인, 관광지 개발에 따른 마을 이전에 반대하는 다이족 노인, 국영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도시 노동자 가족, 도시에서 품팔이하는 농촌 출신 노동자, 한국 유학을 다녀온 중산층 연구원, 농촌 소도시의 여성 사업가, 대안학교 학부모와 NGO 종사자, 성중촌(城中村)의 외지인 세입자, 선전과 홍콩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회를 도모하는 촌민, 김치 공장을 운영하는 조선족 사업가, 대만에 거주하는 상하이 출신 대륙배우자를 ‘민간(民間)’이란 우산 아래 집결시켰다. 나이, 성별, 계층도, 출신지와 거주지도 천차만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공민(公民)’이라는 분명한 국민 정체성 대신 ‘민’이라는 모호한 수사로 등장인물을 에두른 것은, 이들의 삶에서 ‘국가’가 현현하는 양태나, 이들이 ‘국가’와 마주하는 방식의 차이 혹은 ‘접면’이 현대 중국의 역동과 곤경을 들여다보는 데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각 글에서 ‘국가’는 고르게 등장하지 않는다. 제도적 지원이 도시에 비해 약했던 농촌(5장)이나 국외 이주가 활발한 소수민족 지역(2장)의 경우, 국가의 위상은 개인이 술회하는 인생 서사에서 도드라지지 않는다. 반면 개발에 따른 집단 이주(1장)나 철거(10장), 단위제 해체(4장)처럼 통치술의 변화가 지역의 사회문화적 연결망에 끼친 영향이 큰 사례에서는 국가와의 마찰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를 용인할 때(8장), 감시와 통제가 예술가의 존엄을 뭉갤 때(3장), 이 마찰은 고통스러운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각자의 현장에서 국가에 대응하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안정된 지위와 부를 획득한 사람들은 공산당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는데(7, 9장), 이들의 지지는 집요한 정치 선전의 결과라기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사회주의 국가의 성취에 대한 집단적인 합의에 가깝다(6장). 반면 국가권력의 지배를 제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우 다양한 생존전략이 등장한다. 국경지대 소수민족 마을의 노인들은 취약하긴 하나 여전히 작동 중인 민간의 권위를 활용하여 ‘민족’과 ‘국가’의 가치를 연결해내려 한다(1장). 사회주의 ‘인민’의 대표 계급으로 호명되었다가 시장경제 재편 과정에서 버림받은 도시 노동자는 가족 안에서 자원을 품앗이하며 살길을 도모한다(4장). 도시에서 불안정한 세입자로 살아가는 외지인들은 철거를 둘러싼 소문을 퍼나르면서 분노와 절박함을 공유하고 새로운 연결을 찾아낸다(10장). 삶을 도모하는 기술이 국경을 가로지를 때, ‘양안 관계’, ‘사드 사태’ 같은 국제정치의 어휘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착지해 관계와 정동의 다발을 만들어낸다(11, 12장). 국가에 대한 ‘민’의 대응은 한 개인의 삶 내부에서 모순적인 지점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하게 변주되기도 한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연결하는 단초를 제공하다


문화에 접근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저자의 관점이나 이론에 따라 편차를 보이지만, 확실히 특정 국가의 문화에서 ‘국민성’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심해질 때 돌출하는 것 같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전 세계적 우려가 심화하는 지금, ‘국민성’ 프로젝트가 부활하는 조짐이 보인다. 정치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중국’과 ‘중국인’을 간명하게 규정하고픈 욕구에 부응해 자극적인 제목의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욕구에는 온전히 화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홍콩 시위와 미·중 무역 갈등, 코로나19 사태 등 각종 뉴스를 통해 ‘중국’을 접하고 분노하면서도 정작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감정, 행동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사회란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통일된 유기체가 아니라 복수의 세계들을 새롭게 연결해내는 움직임 그 자체다. 그런 면에서 사회를 궁극적으로 국가와 동일시하는 관점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우리의 상상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민’의 삶의 주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시선을 따라 혹은 그 시선을 거슬러 인물들의 정동과 실천을 읽다 보면 중국인 ‘타자’로부터 어느덧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지도 모르겠다. 근대성의 폭력이 누적된 시공간에서 버티는 사이 ‘좋은 삶’의 기준을 부와 권력으로 축소해온, 전염병에서 기후 변화까지 모두를 사라지게 할 재난이 엄습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배타적인 국민·민족 정체성을 고집하는 모습 말이다. 혹은 여러 형태의 지배로부터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면서 가족이든 단체든 초국적 네트워크든 제 둥지를 만들어내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예기치 않은 접점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공생을 위한 새로운 상상으로, 또 다른 사회를 향한 연결로 이어지길 바란다.

목차

들어가며 (조문영)

1부 찬란한 소수
1장 우리 민족의 땅을 떠날 수 없다 : 국경 지역 다이족 노인들의 목소리 (장정아, 왕위에핑)
2장 용정, 도쿄, 상하이, 그리고 서울 : 김형의 여정으로 돌아본 격변기 중국 사회 (박우)
3장 나는 작품으로 반항한다 : 어느 회족 예술가의 초상 (공원국)

2부 개혁개방의 만화경
4장 단위에서 가족으로 : 동북 노동자 집안의 베이징 입성기 (조문영)
5장 마을 중심이 번화한 시내가 될 때까지 : 허베이성 농촌 여성 사업가의 궤적 (이현정)
6장 산시성의 한 연구원이 바라본 시진핑의 개혁과 중국 사회 (김기호)
7장 가족과 국가 사이의 ‘너른 틈새’를 찾다 : 광저우의 중산층 대안 커뮤니티 (김유익)

3부 선전(深), 도시에서 민간 읽기
8장 ‘자기혁신’하는 도시의 명암 (김미란)
9장 뤄팡촌, 개혁개방 1번지 선전과 자본주의 홍콩 사이에서 (윤종석)
10장 성중촌의 소문 : 재개발 현장의 폭력과 돌봄 (김도담)

4부 일상에서 만난 국경
11장 ‘상하이 자매들’ : 결혼이주자들이 쓰는 양안兩岸의 역사 (문경연)
12장 ‘한국 장사’와 ‘한족 장사’ 사이 : 사드 사태가 보여준 중국 안의 ‘한국’들 (박형진)

본문중에서

2장 용정, 도쿄, 상하이, 그리고 서울 : 김형의 여정으로 돌아본 격변기 중국 사회
연변 풍경 중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자영업자의 출현일 것이다. 이들을 개체호라고 부르기도 했다. 초기 자영업자는 사경제 부문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멸시의 대상이었다. 사회에 깊숙이 남아 있는 마오주의적 계급이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영업자는 계급입장(다른 말로 계급 정체성)이 변덕스러운 소자산계급이기에 이해관계에 따라 부르주아지의 편에 설 수도 있다는 마오의 말을 되새기곤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사경제 부문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었기에 연변에는 개인식당, 개인병원, 개인상점 등이 신속하게 출현했다.
문혁의 동란 못지않게 사경제의 확장 역시 과도기적 사회 변동이었다. 전자가 무산주먹의 성장에 구조적 틈새를 만들었다면, 후자는 이 주먹들에게 막연하지만 생존의 길을 터주지 않았을까? 무산자라고 해서 주먹을 마구 휘둘러도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니 문혁의 잔재들은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2장 용정, 도쿄, 상하이, 그리고 서울 : 김형의 여정으로 돌아본 격변기 중국 사회
김형은 1978년생이다. 개혁개방의 원년에 길림성 용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지극히 평범한 도시 노동자였고, 가정형편은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 고향에 있을 때는 밑바닥에서 살았고 바다 건너 도쿄에서는 학부를 다녔고 상하이에서는 젊은 중산층으로 살고 있다. 소싯적 그가 존경했던 사람은 주먹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현재 그는 자신이 이루어낸 것을 혹시 모를 또 다른 ‘주먹’들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렇다. 김형에게 있어 가까운 그때는 틀리고 미래를 향한 지금은 맞다.

4장 단위에서 가족으로 : 동북 노동자 집안의 베이징 입성기
오랫동안 단위와 맺어온 제도적·인격적 관계가 결딴난 뒤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관공서와 공장, 거리에서 노동자들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같이 국가가 한때 이들을 호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언어, 그리고 이 언어에 깃든 정동을 불러냄으로써 보호와 인정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강력한 국가주의와 호흡하며 살아온, 시장경제 아래에서 누군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에 위축된 사람들이 정치 시위나 사회 조직 참여를 현실적 대안으로 삼긴 어려웠다. 이들의 생존전략은 다시 가족을 중심으로 구체화되었다. 리핑 집안의 경우 모계 중심의 방책이 두드러졌다. 단위에서 중요한 지위를 누려본 경험이 더 많았던 남자들이 술상 앞에 앉아 당과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동안, 리핑의 어머니와 그 자매들은 자원을 아끼고 공유하고 늘리는 온갖 자잘한 방법을 궁리했다.

4장 단위에서 가족으로 : 동북 노동자 집안의 베이징 입성기
상실과 배신의 서사에 균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개혁개방 이후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일부 엘리트 집단은 단위체제에 대한 ‘의존성’과 변화를 거부하는 ‘폐쇄성’을 ‘동북인’의 문제로 질타했다. “동북 사람은 큰 것만 벌려 하고, 작은 건 취급도 안 해. 여기서 신발 수선하는 사람, 두부 만드는 사람은 다 남방에서 왔어.” “동북은 중앙의 보호를 받는 대형 국영기업이 많았지. 평생 공장에서 시키는 일만 했으니 다들 임금 받는 데만 익숙한 거야. 밖에 나가 채소를 파는 건 그야말로 체면 구기는 일이지.” 동북의 비옥한 토양을 언급하며 “환경이 윤택하면 사람은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시장경제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동북인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노동계급을 겨냥하고 있다.

5장 마을 중심이 번화한 시내가 될 때까지 : 허베이성 농촌 여성 사업가의 궤적
시장개혁은 주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지역의 확대된 시장과 주변의 광산업은 외부인들을 불러들여 엄청난 현금 유입의 길을 터주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역할과 직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분주하게 일했고, 그들이 축적한 부는 현성을 변화시켰다. 물질적인 삶의 변화는 가족관계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신부대는 해마다 상승했고, 농촌의 여성들은 이제 허름한 단층집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편과 시부모에게 복종해야 하는 전통적인 윤리도 변했고, 혼인한 여성은 아들을 낳는 것보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 집안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자식이 성공할 수 있도록 대도시에 있는 학교에 보낸다든지 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상했다.

6장 산시성의 한 연구원이 바라본 시진핑의 개혁과 중국 사회
진펑 가족의 시각에서 보자면 중국 현대사에서 중국 공산당의 집권과 신중국 수립이 갖는 중요성은 막대하다. 노동자와 농민을 열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했고, 이들이 전통적인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회 변혁의 주역임을 자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과거에는 불가능했을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고,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점진적으로나마 해결해주었다는 점에서 여러 세대를 거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간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에 더해 개혁개방 이후 물질적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되면서 ‘소강(小康) 사회’를 만들었으니 중국 내부에서 바라보는 공산당의 정치적 정당성은 더욱 공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진펑 자신도 농촌에서 태어나 공장 노동자 출신의 부모를 두었음에도 대학에 진학했 고, 연구원에서 전문 인력으로 일하면서 한국 유학까지 왔다는 점에서, 개인의 발자취를 신중국 수립 이후 세대를 거쳐 이루어진 큰 성취로 여기고 있었다. 진펑의 집안에서 대학에 진학해 외국 유학까지 한 사람은 진펑과 미국 유학을 다녀온 육촌 누나를 포함해 2명뿐이라고 한다.

8장 ‘자기혁신’하는 도시의 명암
선전특구는 천안문 사태로 민심을 잃은 공산당이 개혁정책의 운명을 걸고 무제한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완성한 상하이의 푸둥특구와 구별된다.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 경제의 심장부인 상하이와 달리, 선전은 남쪽 변경에 있는 인구 3만 명의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설사 시장주의 개혁이 실패하더라도 사회적 파장이 거의 없는 외진 ‘실험장’이었다. 때문에 1980년 중앙정부는 별다른 경제적 지원 없이 선전에 ‘자율권’만 주었고, 선전시는 ‘중국 최초의 특구’라는 지위에서 파격적으로 ‘홍콩식 자본주의’를 배워가며 1979년부터 2017년까지 40년 사이에 GDP가 만 배 증가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상주인구 천만 명의 대도시가 된 선전은 1인당 GDP가 중국 전체 도시인의 평균 수입의 세 배이고, 이미 2017년에 한국의 1인당 GDP를 추월했다. 이처럼 ‘파격’을 통해 자력으로 초고속 성장을 이룬 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델’이었으며, ‘가장 성공한 특구’라 할 만했다.
그러나 선전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폭스콘 노동자의 ‘잇단 투신자살’ 사건이다. 전 세계 애플 스마트폰의 90퍼센트를 생산하는 선전의 외국 기업인 폭스콘은 2010년에 미국의 《포춘》이 선정 한 세계 500대 기업 중 11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바로 그해에 폭스콘 공장의 노동자 18명이 연달아 투신자살을 했고, 2016년까지 총 30명이 투신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본토에서 이들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는 없었으며 오히려 폭스콘은 중국의 20개 도시에 100만 명의 노동자를 거느린 ‘제국’으로 성장했다.

8장 ‘자기혁신’하는 도시의 명암
2019년 한 해에 선전으로 유입된 대졸 인력은 23만 명이었는데 이들의 평균 연령은 27세였다. 선전에서는 40세가 넘으면 ‘자연도태’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다.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선전으로 몰려들면서 홍콩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0년대 중반까지 ‘한 자녀 정책’을 피해 ‘초과’ 출산을 하러 홍콩으로 향했던 임산부들의 긴 행렬도 2015년 정책 변화 이후에 사라졌다. 청년들은 ‘비록 홍콩만큼 월급이 많지는 않지만,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삶의 속도가 홍콩보다 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 기회가 많아서’ 선전에서 살고 싶어 한다.

8장 ‘자기혁신’하는 도시의 명암
‘모래알 같은 노동자들 간의 관계’는 직원을 ‘나사못’과 같이 배치했다가 고갈되면 ‘버리는’ 폭스콘의 직원 사용 매뉴얼의 요체다. 폭스콘은 동일사업장 단위로 숙소를 배정하거나 입사 기수에 따라 방을 배정하지 않고 기숙사 자리가 비면 신입으로 채운다. 이렇게 배치된 신입은 고립감을 느끼지만 연차와 업무가 달라 대화가 어렵고 피로한 탓에 대화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퇴근 후 기숙사에 오면 모두가 자고 있어서 괜히 욕먹지 않으려면 조심스럽게 잠자리에 들고 혼자 고충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노동자들은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기도 하고 티엔위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회사는 ‘퇴직 사이클’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서 한 달에 2~3회 상시 채용을 하며, 신입은 결원이 생기는 즉시 작업대에 배치된다.

12장 ‘한국 장사’와 ‘한족 장사’ 사이 : 사드 사태가 보여준 중국 안의 ‘한국’들
박 사장과 장 사장의 사례는 조선족 사업가가 한국과 중국 양국의 사정과 언어에 모두 능통한 점을 십분 활용해 ‘한국’ 상품을 ‘한족’ 시장에 판매하려는 시도였다. 이들 조선족 사업가들은 부모가 축적한 자본을 이용하거나 노동집약적 해외수출 사업에 종사하며 모은 자산을 활용해 잠재성이 큰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꿈꾼다. 이들은 한계가 뚜렷한 한국 인 혹은 조선족을 상대로 하는 장사보다는 규모도 크고 구매력이 높은 한족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한편, 한국인 혹은 조선족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른 중국 기업이나 사업가들이 쉽게 취급하지 못하는 ‘한국’ 상품을 판매한다. 이러한 전략은 박 사장이나 장 사장 같은 조선족 사업가가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두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사드 사태가 닥쳤을 때 가장 빨리,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도 이들의 ‘한족 장사’였다.

12장 ‘한국 장사’와 ‘한족 장사’ 사이 : 사드 사태가 보여준 중국 안의 ‘한국’들
칭다오 소재 김치 제조업체 천천식품의 사무실 한켠에 앉은 나는 많은 사람들의 ‘사드 경험담’을 접했다. 사무실에 앉아 천천식품 사장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상황을 공유하는 사업가들, 전화로 하소연을 하는 중국 각지의 조선족 김치 대리상들, 칭다오 맥주에 코다리찜을 앞에 두고 자기 경험을 털어놓는 한국인 사장님들, 그리고 사드 사태가 자기 직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는 천천식품의 직원들. 그들은 자신이 듣고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사드 사태’의 영향과 파장을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 다. 그들에게 사드 사태는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사드 배치에 불만을 가진 중국인들의 반한감정과 불매운동”으로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각자의 생활환경에 따라, 취급하는 제품의 유통 경로와 시장 환경에 따라, 그들이 체감하는 ‘사드 사태’의 여파와 영향은 각기 달랐다.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빈곤의 지형을 탐색하고 복수의 세계들을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The Specter of “The People”: Urban Poverty in Northeast China》, 편서로 《헬조선 인 앤 아웃》,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역서로 《분배정치의 시대》가 있다.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국가와 국경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중국 본토와 홍콩을 오가며 연구하고 있다. 공저서로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Contemporary China》, 《여성연구자, 선을 넘다》, 《경독(耕讀): 중국 촌락의 쇠퇴와 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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