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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세계 일주 : 대한제국의 운명을 건 민영환의 비밀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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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영수
  • 출판사 : EBS BOOKS
  • 발행 : 2020년 12월 18일
  • 쪽수 : 38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756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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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국운을 걸고 떠난 7개월간의 세계 여행
1896년 모스크바대관식에서 벌어진
숨 막히는 비밀외교!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1896년 3월, 조선 정부는 러시아로부터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 공식 초청장을 접수하고 민영환, 김득련, 윤치호를 중심으로 한 특별 사절단을 구성하여 러시아에 파견한다. 1896년 4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일본, 중국, 캐나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을 거쳐 러시아에 도착했다가 광활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10월 20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8개국, 6만 8,365리에 이르는 7개월간의 대장정이었다. 여기에 조선사절단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파리로 유학을 떠난 뒤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 지부티, 스리랑카,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를 거쳐 귀국한 윤치호의 남방 노선을 더하면 조선사절단의 여정은 가히 세계 일주라 부를 만하다. 저자는 조선사절단원들이 남긴『해천추범』『환구음초』『윤치호 일기』 등의 기록물을 탐독하여 그들의 이동 경로와 견문을 한데 모았다. 특히 그들이 거친 세계 도시의 개황과 당시의 사회·문화적 분위기, 머물렀던 숙소, 이용했던 교통수단, 만났던 인물 등을 면밀히 조사하여 100년 전 세계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100년 전, 조선인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

조선사절단의 일원인 김득련은 사절단 임무를 마치고 잠시 파리로 어학을 공부하러 떠나는 윤치호에게 나중에 서울에서 다시 만나면 자신의 북방 기록과 윤치호의 남방 기록을 모두 합하여 한 편의 기행문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김득련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 책은 사절단의 북방 노선과 윤치호의 남방 노선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00년이 지난 뒤에 김득련이 꿈이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실현된 셈이다. 이 책에는 남방과 북방, 현대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던 19세기 말 세계의 모습, 낯선 이국의 자연과 도시 풍경, 유적지·박물관·미술관·전람회를 관람한 소감, 시베리아 개척 과정, 당대 세계인들의 모습과 조선 이주민들의 삶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100년 전 조선인 최초의 근대 문물에 대한 충격과 경이가 해외 체험이 일상화된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바이칼호, 지중해 등 지금도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을 이미 한 세기 전에 다녀간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흥분시킨다. 한편 저자는 레삔, 세로프,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체홉, 톨스토이, 글린카 등 역사적 사건·장소와 관계있는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호출하여 사절단의 세계 일주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독자들에게 폭넓은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민영환의 외교 활동과 대한제국의 운명

역사학자인 저자의 관심은 단연 사절단이 모스크바에서 펼친 외교 활동에 집중된다. 특히 민영환의 행적에 주목하는데, 고종으로부터 특명전권공사라는 직책을 받고 러시아를 방문한 민영환은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이 2세 및 로바노프, 비테 등의 러시아 관료들을 만나 비밀협정을 전개한다. 저자는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각국 특사들이 집결한 모스크바를 당시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의 국제 질서가 재편되던 매우 중요한 현장이었으며, 민영환의 활동을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의 군사적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었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10년 뒤 민영환은 을사늑약이라는 대한제국 최대의 치욕 앞에서 2천만 동포에게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다. 저자가 말하듯 민영환의 자결은 바로 대한제국의 소멸을 의미했다. 러시아와의 비밀협정을 무사히 체결하고 돌아온 민영환은 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국운을 걸고 떠난 조선사절단의 세계 체험과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할 민영환의 비밀외교 현장 그리고 그의 죽음까지, 저자와 함께 100년 전 세계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민영환의 유서 | 제국의 치욕, 을사늑약의 현장 | 한 통의 전화와 역적 박제순의 서명 | 조병세, 최익현 그리고 민영환의 항거

1장. 민영환의 특명전권공사 임명과 모스크바 도착 과정
비밀 사절단 구성과 민영환의 고뇌 | 출항의 닻을 올리고 | 아시아를 거쳐 태평양을 건너 | 북미 도시의 화려함과 대서양 항해 | 광활한 유럽, 섬에서 대륙으로 | 모스크바 하늘에 올린 조선의 국기

2장. 모스크바대관식과 뻬쩨르부르크 답사
조선사절단과 황제의 첫 만남 | 청국 외교관 이홍장의 실언 | 모스크바대관식 그리고 민영환 -윤치호의 갈등 | 끄레믈린의 화려한 야경 | 볼쇼이 극장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 | 귀족원 무도회와 러시아군 관병식 | 유럽의 창문, 뻬쩨르부르크 | 여름 궁전 예까떼리나 | 뻬쩨르부르크 일상 체험 | 다시 만난 황제 | 마침내 체결한 비밀협정 | 김도일의 일탈과 윤치호의 파리행

3장. 명례궁 약정과 한러비밀협정
조선의 5개 조항 제안서 | 러시아의 5개 조항 답변서 | 조선과 러시아의 명례궁 약정 | 재무대신 비테·외무대신 로바노프와의 비밀협상 | 주한 일본공사 가토 마쓰오의 한러비밀협정 파악 | 니꼴라이 2세의 공식 회답과 한러비밀협정의 대가

4장. 민영환의 시베리아 노선
험난한 시베리아 노선 | 귀향의 시작과 이별의 아쉬움 | 니쥐니노브고로트 박람회와 볼가강 |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마라, 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끄라스노야르스크 |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마차 여행 | 시베리아와 제까브리스트 | 화륜선과 마차: 바이칼호, 치타, 네르친스크 | 화륜선 베스닉: 쉴까, 흑룡강, 블라고베쉔스크 | 이역에서 만난 조선 이주민들 | 화륜선 바론 꼬르프: 탐험가의 도시 하바롭스크 | 기차: 달리녜례쳰스크, 블라디보스톡 | 군함 그레먀쉬: 블라디보스톡에서 인천으로 | 서울 입성과 고종 알현

5장. 윤치호의 파리 유학과 남방 노선
파리, 프랑스어 수업, 자유와 고독 사이 | 토마스 쿡 여행단과 파리 풍경들 |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 대령 우리우, 외교관 쁠란손, 니꼴라이 2세 | 윤치호의 정신적 방황과 오페라 <파우스트> | 파리에서의 마지막 생활과 마르세유행 | 지중해, 포트사이드, 지부티, 콜롬보 | 싱가포르, 사이공, 홍콩 | 상하이, 동화양행 그리고 김옥균 | 부인과의 재회, 쓸쓸한 귀국 | 제물포 도착, 고종 알현, 혼돈의 서울

에필로그
민영환의 자결 | 하야시가 바라본 민영환의 자결 원인 | 민영환의 장례식

후기
조선사절단에 관한 연구 동향 및 자료 해제

주석

찾아보기

이미지 출처

본문중에서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민영환은 정부 대신 중 아무도 망국의 현장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자 아직 죽지 못한 신하 최익현이 상소한 다음 날 11월 30일 제일 먼저 전동(典洞)에서 자신의 목을 스스로 찔렀다.
위협과 공포로 뒤섞인 을사늑약의 현장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그 갈림길 중 죽음을 선택한 민영환은 불과 10년 전 모스크바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세계 일주에 도전할 정도로 왕성한 삶의 의욕을 갖고 있었다. 아관파천 시기 그는 고종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조선과 러시아의 비밀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 러시아 특명전권공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모스크바로 떠났는데 그에겐 대한제국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 p.27)

1896년 3월 31일(러시아력 3.19.), 베베르는 러시아 정부와 그레먀쉬(Гремящий)호의 함장에게 전문(電文)을 발송했다.“내일 특명전권공사(Черезычайный Посланник и Полномочный Министр) 민영환, 고문(Советник Посольства) 윤치호, 서기, 통역관, 하인 등으로 구성된 조선의 사절단이 서울을 출발할 것입니다. 이들 외에도 사절단을 러시아까지 안내하기 위해서 주한 러시아 외교관 쉬떼인이 파견될 것입니다. 사절단이 그레먀쉬호를 타고 상하이까지 갈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베베르는 4월 1일(러시아력 3.20.) 조선의 사절단이 특명전권공사 민영환, 고문 윤치호, 서기와 통역관으로 구성되었다고 본국 정부에 재차 보고하며, 사절단이 미국을 거쳐 5월 8일에 모스크바에 도착할 예정이니 국경에서의 협력 및 모스크바에 숙소를 준비해줄 것을 요청했다.
4월 1일 오전 8시,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은 수원 윤치호, 참서관 김득련과 김도일, 수종(隨從) 손희영과 함께 고종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민영환은 친서(親書), 국서(國書), 위임장(委任狀), 훈유(訓諭) 각 1통을 받았다. 민영환을 포함한 조선사절단이 돈의문을 나서니 법부대신 이범진이 갈림길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악수하고 헤어졌다. 마포에 이르니 외부와 탁지부에서 전송의 자리를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조선 양반들이 헤어질 때 부르는 이별 노래 <양관곡(陽關曲)〉을 다 함께 불렀다.

아침에 위성(渭城)에 내리는 비가 황진을 축축이 적시네.
지금 송별연을 베푸는 여사(旅舍)의 버들색은 한층 더 푸르네.
이제 멀리 서안(安西)으로 떠나는 그대여, 잔을 한 잔 더 들게.
여기서 서쪽 양관(陽關)을 나서면 잔을 주고받을 친구도 없을 테니.
(/ p.36~37)

김득련은 상하이의 저녁 풍경을 이채롭게 보았다. 전등과 가스등이 각 상점을 비추어 밤 시장이 분주해 보였다. 등과 초가 빛나고 황홀해서 대낮과 같았다. 곳곳에 있는 마루 위에는 화장한 여인들이 늘어서고 관과 현의 음악을 계속 연주하자 오가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다투어 놀았다. 달빛에 비친 연기가 자욱했는데 관악기와 노랫소리도 흥겨웠다.
4월 11일, 조선사절단은 오전 7시에 마차로 부두에 도착하여 작은 화륜선을 타고 우편함 ‘차이나 엠프레스(RMS The Empress of China)’호에 올랐다. 차이나 엠프레스호는 오전 11시에 나가사키로 출발하여 다음 날 오후 6시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윤치호는 차이나 엠프레스호가 대단히 화려한 배이며, 1등 선실의 시설이 휘황찬란하다고 기록
했다. 하지만 자신이 거처하는 2등칸의 선실은 고약한 냄새가 나고 어둡다고 기억했다.
(/ p.42~43)

5월 6일, 사절단은 오후 9시 뉴욕에 도착하여 월도프 호텔(Waldorf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이 호텔은 백만장자 애스터(William Waldorf Astor)가 1893년 5백만 달러를 들여서 건설했으며 1929년까지 운영되었다. 10층 건물인 호텔의 높이는 69미터였고 객실이 450개였다.
김득련은 “눈이 황홀하여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으니, 참으로 지구 위에서 이름난 곳”이라는 말로 이 호텔을 예찬했다. 또한 윤치호는 “월도프 호텔은 뉴욕에서 가장 최근에 건축된 가장 멋진 호텔이라고 한다. 이 호텔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다. 돈만 있다면 누구나 그 안에서 모든 안락과 사치를 누릴 수 있다.”라고 기록했다. 윤치호는 자신이 이 놀라운 도시를 방문한 일이 꿈만 같았다. 그는 “브로드웨이, 현수교, 거대한 상점들, 훌륭한 철도, 호화로운 호텔, 아름다운 카페, 널리 알려진 센트럴 파크와 리버사이드 그리고 송판 오두막집, 월드빌딩, 시끄럽고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의 거리, 상점과 거리와 역 그리고 서점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의 물결,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주 놀라운 꿈과 같았다. 이 짧은 3일 동안 이 도시를 얼마나 보았고, 얼마나 들었고, 얼마나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 p.46~48)

1896년 5월 16일 오전 6시, 조선사절단은 평온한 바다를 건너 9일 만에 리버풀(Liverpool) 항구에 도착했다. 리버풀 항구는 세계에서 첫 번째로 큰 항구였다. 오전 8시에 배에서 내려 기차를 탔고, 오후 2시에 영국 수도 런던에 도착했다. 오후 10시에 퀸즈보로(Queensborough)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다시 떠났다.
김득련은 리버풀 항구까지 오는 동안 대서양의 잔잔함에 기뻐했다. 바다는 내내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는 파도가 충신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임금이 뱃길을 지켜주었다며 고요한 파도 덕분에 임금에 대한 충성심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
윤치호는 리버풀을 오랫동안 구경할 시간 여유가 없었지만 “상륙 지점과 역은 대영제국의 주요 항구 같은 그런 장소에서나 기대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사람들이 붐볐다. 그러나 역의 대합실은 빈약했다.”라고 기록했다.
윤치호는 이미 미국과 영국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런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관찰자의 시선에서 영국의 풍경을 만끽했다. 윤치호는 런던으로 가는 도중 영국 시골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했다. 벽돌이나 목조로 지은 오두막집은 정원과 들판이 산뜻하여 마치 깔개 속에 들어앉아 있는 벌레처럼 편안해 보였다. 마을의 샛길과 깨끗한 도로 그리고 푸른 초원은 더 바랄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살찐 암소들은 풍요한 초원에서 풍부한 목초를 뜯어 먹었다. 윤치호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영국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 p.51~52)

5월 20일, 사절단은 오후 3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궁내부는 성 안 뜨베르스코이 불리바르(Тверской бульвар), 뽀바르스까야(Поварская улица) 42호에 공관을 미리 정해놓았다. 궁 안의 심부름꾼 4명을 보냈다. 또 사환 21명과 쌍두마차 3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윤치호는 그 공관에서 19일 동안 편안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아 호사를 누렸는데, 잘 갖춰진 가구, 훌륭한 식사, 깨끗한 침대, 시원한 음료, 깔끔한 서비스, 훌륭한 마차 등 육체적인 안락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가져서 행복하게 지냈다고 기록했다.
조선사절단은 21일 아침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조선 국기를 옥상에 게양했다. 모스크바 체류 기간 동안 비용은 러시아 측이 부담했다. 러시아는 특별열차와 체재 비용 등을 제공하며 사절단을 최대한 환대했다. 윤치호는 모스크바에 도착한 소감을 ‘웅장한 역사와 마차의 물결’이라고 표현했다.
(/ p.57~58)

1896년 5월 26일(러시아력 5.14.)은 날씨가 화창했다. 사절단은 오전 5시에 일어나 6시에 대례복을 입었다. 7시 15분 빠쉬꼬프, 쁠란손과 같이 터키 공관으로 가서 각국 공사와 함께 오전 8시쯤 끄레믈린궁으로 들어갔다. 대관식이 진행된 성당은 황궁의 일부로서 두툼한 카펫이 깔린 높은 연단과 연결되었다.
러시아는 관모를 벗지 않으면 예배당(우스ㅤㅃㅔㄴ스끼 사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조선, 청국, 터키, 페르시아의 사신들은 모두 관을 벗는 것을 꺼려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성당 밖의 누각(연단) 위에서 대관식을 구경했다.
김득련은 대관식 현장의 화려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옥계(玉階)에 금장(金裝)으로 휘감은 여러 관원이 늘어선 예배당 안에서 황제는 왕관을 쓰는 순간 주교의 축하를 받았다. 구슬 궁전 높은 곳에 비단 장막이 펼쳐져 휘황찬란한 폐백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김득련은 옥 같은 술과 안주에 맘껏 취해서 자신이 봉래산(蓬萊山)에 왔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윤치호는 날씨가 완벽한 화려한 대관식을 매혹적으로 느꼈다. 태양은 농민이든 황제든 똑같이 차별 없이 빛을 뿌려주고 있었다. 독수리 문양이 장식된 경비병들의 투구, 궁중의 여성과 신사의 황금, 레이스, 보석, 벨벳, 리본 등이 햇빛에 거울처럼 반사되어 두 눈을 어지럽혔다. 길게 늘어진 황금 천의 옷을 입은 성직자들이 있었고, 눈처럼 새하얀 날개 달린 천사처럼 하얀 옷을 입은 요정과 같은 러시아 소녀들이 있었다. 성당 주변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품위 있게 행동하는 수많은 러시아 농민과 시민이 지켜보고 있었다.
(/ p.70~71)

1896년 5월 29일 오후 7시, 궁내부의 연극 청첩이 있었다. 오후 7시 30분 윤치호와 김득련만 소례복을 입고 볼쇼이 극장으로 갔다. 민영환은 명성황후의 장례 기간 중이라 공연을 볼 수 없다며 연극 구경을 거절했는데, 명성황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윤치호와 김득련은 오후 8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볼쇼이 극장에 들어간 최초의 한국인이었던 셈이다.
(/ p.80)

1896년 2월 아관파천 이후 일본과 러시아는 조선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적으로 긴박하게 움직였다. 러시아와 일본은 1896년 5월 14일 서울에서 상호 협상에 따라 ‘서울 의정서(고무라-베베르 각서)’를
체결했다. 이때 일본은 군대 주둔에 관해 자국에 불리한 내용에 합의했다.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 군대의 전체 인원을 제한한 점, 조선에서 일본 군대의 인원만큼 러시아 군대도 동일하게 주둔하게 한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러시아와 새로운 협정을 추진하여 1896년 6월 9일 조선 문제에 관한 새로운 협정인 ‘모스크바 의정서(야마가타-로바노프 의정서)’를 체결했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에서 일본 군대의 제한을 변화시켰고 조선에서 상호 군사 활동의 영역을 구분했다.
그렇다면 민영환은 모스크바대관식에서 러시아와 어떤 협상을 전개했을까? 민영환은 1896년 6월 5일(러시아력 5.24.) 조선 정부의 5개 조항 제안서를 서면으로 외무대신 로바노프에게 전달했다.
“첫째, 조선 군대가 신뢰할 만한 병력으로 훈련될 때까지 국왕의 보호를 위한 경비병을 제공한다. 둘째, (러시아) 군사교관을 제공한다.셋째, (러시아) 고문관을 제공한다. 국왕 측근에서 궁내부를 위한 고문 1명, 내각 고문 1명, 광산과 철도 고문 1명 등이다. 넷째, 조선과 러시아 두 나라에 이익이 되는 전신선의 연결, 즉 전신 문제 전문가 1명을 제공한다. 다섯째, 일본 빚을 청산하기 위한 300만 엔의 차관을 제공한다.”
(/ p.139)

8월 23일, 민영환과 김득련은 박람회에서 열기구에 직접 탑승했다. 김득련에 따르면 열기구는 대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가히 네 사람이 앉을 수 있었다. 위에 바람을 넣은 가볍고 둥근 물체가 끈으로 묶여 있었다. 행사 관계자가 그들에게 권유해서 열기구에 올랐는데, 막상 기구가 떠올라 하늘 사이를 배회하니 마치 날개를 단 신선과 같았다. 사절단은 오후 6시에 숙소로 돌아왔다. 김득련은 열기구에 탑승한 느낌을 생생하게 한시로 남겼다.

가벼운 기구 안에 앉아
하늘에 올라 차츰 나아가니,
바람 타고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전기를 저장해 종횡으로 움직이네.
삼천계(三千界)를 유희하면서
구만정(九萬程)을 쉽게 오가니,
신선이 만나기로 약속한 적 있어
나를 맞이해 봉래산(蓬萊山)과 영주산(瀛洲山)에 이르게 하네.
(/ p.167~168)

10월 12일, 민영환은 블라디보스톡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숙소에서 만났다. 그중 김경찬(金景贊)은 영변 사람으로 1876년에 들어와 일찍이 도헌(都軒)을 지내기도 했는데 그의 경험은 쓸 만한 것이 많았다. 김경찬에 따르면 처음 왔을 때 이곳은 도시 개발 초창기로 사람이 드물었는데, 당시엔 많은 가옥이 서로 붙어 있었고 항구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었다.
10월 13일, 민영환은 인천항에서 탔던 러시아 군함 그레먀쉬호가 마침 항구에 정박해 있어 함장(А.А. Мельницкий)를 만났다. 이날 오후 7시에 쉬떼인과 뿌짜따가 기차 편으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10월 14일 오후 1시, 민영환은 안세정 등의 초대를 받고 도소에 다녀왔다. 그들은 도소에 점심을 차려놓고 수레와 말을 준비했다. 민영환은 한국 방식으로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을 배불리 먹고 돌아왔다. 민영환과 김득련은 조선 이주민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탐관오리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는 조선인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김득련과 민영환은 조선 유민들을 위한 한시를 남겼다.

슬프다, 수만 명의 조선 유민들
날마다 품을 팔면서도 편안히 여기네.
탐관오리의 가혹한 정사야 피한다 해도
이국 땅 거친 벌판에서 차마 어찌 살려나.
고향 그리워 망건[巾]과 상투를 그대로 한 채
성명을 연달아 써서 새 문서에 올리네.
응당 쇄환(刷還)하라는 조정(朝廷)의 명령[命]이 있을 것이니
조국[國] 향한 진실한 마음 변치 않기를. (김득련)

유민은 흔히 흉년을 당하는데,
농부와 품팔이꾼 및 상인과 공장이가 만과 천을 헤아리네.
모양이 모두 파리하니 비녀와 상투만 남았고,
굶주리고 배부름에 수고로움을 잊으니 모두 칡과 솜일세.
한 번 즐기고 한 번 우는 은근한 뜻은 모두가
어진 하늘이 옛 허물 용서하기만 하네.(민영환)
(/ p.216~217)

조선 정부는 사절단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심지어 주한 러시아공사 베베르는 10월 20일 민영환을 인천까지 마중 나왔고, 21일 육로로 함께 서울로 출발했다.
주한 일본공사관은 사절단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분주했는데 민영환과 함께 러시아 군사교관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주한 일본대리공사 가토은 10월 21일 오후 4시 45분 러시아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의 귀환을 오쿠마(大) 외무대신에게 신속히 타전했다.
“민영환 일행은 10월 20일 러시아 군함 그레먀쉬로 인천에 도착, 오늘 서울에 도착합니다. 이 군함은 러시아 사관이 7~8명 타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 날 가토는 뿌짜따와 민영환의 귀환을 상세히 일본 외무부에 보고했다.
“민영환은 블라디보스톡에서 러시아 군함 그레먀쉬호에 탑승하여 10월 20일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주한 러시아공사관 소속 스뜨렐리비쯔끼(И.И. Стрельбицкий) 대령, 김홍륙 비서원승(秘書院丞), 한성 판윤 등이 인천으로 마중 나갔습니다. 그는 10월 21일 육로로 서울에 도착했는데 조정 각 대신과 협판 등은 왕명에 따라 마포까지 마중 나갔습니다.”
민영환 일행은 출발할 때보다 귀국할 때 더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그건 민영환 일행의 외교적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한러비밀협정’ 그것은 양국 외교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 p.222~223)

윤치호는 1896년 8월 21일 오전 8시 반 파리 북역(La Gare du Nord)에 도착했다. 윤치호는 북역에서 가까운 라파예프 거리 86번지에 있는 센트럴 호텔(Central Hotel)로 갔는데 그 설렘을 기록했다.
“드디어 파리다! 아름다운 도시, 거리, 가로수 길, 상점, 건물 들이 참으로 웅장하다. 거리들은 문자 그대로 사람들로 활기가 차 있다.”
윤치호에 따르면 주요 가로수 길을 따라서 양쪽에 넓고 깨끗한 길 따라 식당들이 있었다. 작은 테이블 주위에 두세 개씩 배치되어 있는 수많은 가벼운 의자들이 살롱 출입구 밖에 놓여 있었다.
윤치호는 8월 23일 개선문 건너편에 있는 뤼 쁘아종(Rue Poisson) 펜션으로 옮겼다. 8월 24일 9시 파리 주재 러시아공사관을 방문하면서 파리의 거리에 감탄했다.
“파리에 와보니 파리가 세계 도시의 여왕으로 그렇게 유명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다. 파리에서는 거의 모든 대로, 가로수 길, 그리고 일반 도로는 청결하고 포장이 잘되어 있고 폭이 매우 넓다.”
윤치호는 파리에서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향수병에 사로잡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파리에서 주로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틈틈이 답사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숙소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파리의 밤거리와 파티를 즐겼다.
(/ p.236)

서울, 요코하마, 밴쿠버, 뉴욕, 런던, 바르샤바, 모스크바, 뻬쩨르부르크, 파리, 마르세유, 콜롬보, 사이공, 상하이를 두 눈 속에 담은 윤치호의 원점은 다시 서울이었다. 윤치호는 조선의 정치 상황에 연루되기 싫어했지만 또다시 서울에서 사람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었다. 그 삶 속에서 윤치호는 향후 독립협회 회장과 만민공동회, 부인 마애방의 죽음과 세 번째 결혼, 신민회의 105인 사건과 투옥 생활, 이토 지코라는 이름으로의 창씨개명 등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과거는 부질없고 미래는 알 수 없어라.
(/ p.283)

인간은 누구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시점에서 실행된 인간의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며, 그것은 역사의 소유물이 된다. 이 모든 것은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진 유기적인 결과이다. 민영환의 자결, 그것은 바로 대한제국의 소멸을 의미했다.
(/ p.299)>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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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 및 사학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역사학부에서 역사학박사를 받았다. 석사논문을 [아관파천기 정치세력 연구](2000), 박사논문을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의 극동정책에서 조선문제](2006)라는 주제로 썼다.
대표저서로는[미쩰의 시기 :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경인문화사, 2012 등이 있다. 이 책은 2013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고, 2013년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상을 받았다. 2013년[문학의 오늘]잡지에 [안톤 체홉의 현장보고서 사할린섬] [프로젝트 문학을 개척한 러시아 현대작가 아쿠닌] 등의 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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