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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해법 : 블랙홀 서울, 땅과 건축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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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성홍
  • 출판사 : 현암사
  • 발행 : 2020년 11월 15일
  • 쪽수 : 36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3232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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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대한민국의 블랙홀 서울,
‘옳은 도시’ ‘좋은 건축’을 위한 실제적 대안을 말하다

세계 도시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도시화와 압축 성장에 따른 성장통을 앓고 있는 서울,
서울의 ‘땅과 건축’ 문제를 역사적, 현재적 시각으로 치밀하게 되짚고
재프로그래밍의 방향을 제시한다!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 [길모퉁이 건축]에 이은 ‘도시건축 3부작’의 완결판!


지금부터 30년 뒤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국내총생산량(GDP), 인구, 국방비, 기술력을 종합한 물리력에서 2030년 한국이 세계 9위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에는 세계 2위 고소득 국가가 될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분단 한반도의 향방이다. 2030년 한국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더불어 인구의 ‘중위 연령’이 45세를 넘는 ‘후기 고령화’ 사회군에 진입하고, 도시민 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도시형 국가가 될 것이다. 소득 양극화로 도시 안에서 불평등, 불균형, 갈등, 반목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서울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도시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고, 새로운 힘들이 개입한다. 코로나19처럼 예기치 못한 사태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매일매일 감지하지 못하는 작은 변화가 쌓여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정확히 읽는 일이다.
재래식 무기가 밀집된 비무장지대에서 반경 100킬로미터 수도권에 남한 국민 절반이 살고 있고, 그 절반이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의 재정 자립도는 대한민국 평균을 압도한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를 넘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108년 전이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는 1912년 근대적 의미의 토지 소유권을 법제화했다.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도시계획의 사전 준비였다. 그 이전에는 모든 땅이 공식적으로 국가 소유였다. 도로, 공원, 공공시설로 바뀌어야 할 왕실과 지배층의 땅이 일제강점기에 친일파와 새로운 권력층으로 넘어갔다. 일본이 패망하자 미군정은 적산(敵産)을 민간에게 불하했고, 정부 수립 후에도 도시계획시설을 체계적으로 지정하기 이전에 많은 땅이 민간 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후로 땅은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를 뒤에서 움직이는 힘이었고, 서울이 안고 있는 경제,사회,문화,교육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서울 재프로그래밍을 위한 실제적 대안의 깊이 있는 탐구
수도로 정해진 지 거의 630년이 되어가는 서울은 지난 60년 동안 녹지를 제외한 시가화 면적의 70퍼센트를 갈아엎었다. 그 결과, 여러 겹의 천 조각을 기운 누더기 같은 조직(組織)이 되었다. 굵고 거친 천, 가늘고 부드러운 천, 색상과 무늬가 다른 천 조각을 이리저리 덧대고 붙여 만든 헌 옷 같은 새 옷인 셈이다. 이 땅 위에 빠른 속도로 건축물이 지어졌다. 세계 도시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도시화와 압축 성장을 겪으면서 필연적으로 성장통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 성장통을 앓고 있는 오늘의 서울, 땅과 건축에 얽힌 심층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군사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개발 이후 현재까지 도시계획과 건축 유형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건축을 만드는 외적 조건인 땅과 법, 용적률, 시간과 비용 등을 분석했다. 또한 지금까지 건축 유형이나 규모, 장소와 관계없이 서울 건축에 내재해온 관성이 무엇인지, 그 관성을 창의적으로 반전시킬 실마리는 무엇인지를 다룬다. 서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도시의 외적 힘’과 ‘건축의 내적 원리’ 간의 충돌, 갈등, 타협, 전복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외적 힘은 땅, 밀도, 법과 제도, 비용 등 ‘밖에서 안으로’ 가해지는 건축의 조건이고, 내적 원리는 공간, 형태, 구조를 통합하는 ‘안에서 밖으로’의 건축 생성 원리다. 전자의 힘과 후자의 원리는 상호 모순되는 대립 항으로 전략적 협상과 절충을 요구한다. 이 책은 그 과정 속에서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서울의 땅과 건축 문제를 실현 가능한 정책적 비전과 지속 가능한 도시 만들기라는 관점으로 예리하고 심도 깊게 짚어낸다.

서울 재프로그래밍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주거비와 사교육비다. 적정가격 주택을 도시 안에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서울 안에 가용한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고 마냥 개발 밀도를 올릴 수도 없다. 좋은 밀도와 나쁜 밀도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밀도의 질’ 문제다.
근린생활시설(근생)과 상업 공간의 과잉 공급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새로운 근생의 과잉 공급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고 작은 경제를 무력화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상업 활동의 무게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가면서 과잉 공급된 근생을 재구조화하는 일이 도시계획의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주택처럼 공실률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대처해야 한다.
그 밖에 강남,비강남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주거와 상업 공간을 재구조화할 최적지는 어디 인지, 또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건축적 수단은 무엇인지를 밝히고, 아울러 합리적인 공간 재구조화를 위한 선택지와 방안은 무엇인지를 자세하고 심도 있게 분석해 제시한다.

강북과 강남
강남, 서초, 송파, ‘강남 3구’는 도시 안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촉발하는 진앙이다. 논밭이었던 강남이 불과 50년 만에 어떻게 대한민국 특구가 되었을까?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는 도시 인프라의 격차에서 기인한다. 강남은 대표적인 근대 도시계획인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격자형 가로와 블록, 반듯한 필지가 조성되었다. 1983년 서울의 동서남북을 환상(環狀)으로 잇는 지하철 2호선이 완공되었다. 여기에 5개 노선 지하철과 도로망이 강남 중심부를 촘촘히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 조직 위에 다양한 주택 유형과 함께 신산업, 상업, 문화, 학교, 학원, 의료 등 다양한 시설이 집중되었다. 반면 오랜 시간에 걸쳐 도려내고 덧대어진 비강남은 불규칙하고 불균질하다. 정비사업을 하더라도 도로망과 도시 조직을 크게 바꿀 수 없다. 단기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열악한 도시 인프라에 과부하가 걸리는 건축물이 지어진다. 반면 강남은 정비사업을 하면 할수록 좋은 인프라를 더 좋게 만들고 경제적 가치를 덩달아 상승시킨다. 사업을 벌일수록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집단주의와 이기주의
도시와 건축에서 오염된 단어 중의 하나가 ‘커뮤니티’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공동체’로, 소속감, 공유, 친밀감을 느끼는 사회적 단위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커뮤니티는 동질성으로 묶인 집단으로 오용된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커뮤니티가 아파트 단지다.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물리적,심리적 경계를 만드는 설계안에 커뮤니티라는 말이 붙는다.
왜곡된 공동체와 집단주의는 공공주택을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로 위력을 발휘한다. 2015년 「공공주택특별법」이 제정되어 저소득층을 위한 중장기 임대주택 건설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개발과 정비사업이 시작되면 비강남에서는 원주민 절반 이상이 동네를 떠나기 때문에 공공주택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할 결속력이 느슨해진다. 그 결과, 구릉지 저층 주거지가 공공주택을 포함한 고층,고밀 아파트로 바뀐다. 반면 강남에서는 토지 소유자 대부분이 사업 후에도 주민으로 남기 때문에 집단주의 힘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배척하고 양질의 도시 인프라 위에 고급 아파트 단지 건설을 밀어붙인다. 거대한 게이트를 세우고 조경과 나무로 시각적 심리적 차폐 장치를 만든다. 입주한 후 단지 공동체의 집단적 이기주의는 한층 공고해진다.
강남과 비강남 간에 벌어지는 토지 가격 격차는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공공이 주도한 양질의 도시 인프라 위에 개인이 과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 강남에서 발생한 비대칭적 개발 이익은 비강남의 도시 인프라 개선에 쓸 수 있도록 재분배해야 한다.

옳은 도시, 좋은 건축
‘좋은 건축’은 기본에 충실한 건축이다. 시간이 지나도 품격과 품질을 잃지 않는 지속 가능한 건축이다. 태어날 때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실제로 삶을 담는 시점부터 품질과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축물이 있다. 통념을 흔들었던 ‘문제의 건축’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좋은 건축’은 아니다. 이런 건축에는 ‘시간’의 개념이 빠져 있다. ‘문제의 건축’이 5~10년 후에도 품질을 유지하면 ‘명품 건축’이 된다. 하지만 1퍼센트 명품 건축과 99퍼센트 나쁜 건축으로 이루어진 도시보다, 10퍼센트 좋은 건축이 바탕을 이루는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다. 10퍼센트 좋은 건축에서 1퍼센트 명품 건축이 나올 확률도 높다. 이런 도시가 ‘옳은 도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록 국가대표를 집단 양성하는 선수촌보다 보통 시민이 운동할 수 있는 생활체육 공간이 골고루 있는 도시가 옳은 도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평가받는 건축가는 소수를 위한 명품 건축보다 대중에게 좋은 건축을 남긴 사람들이다. 좋은 건축이 한 곳에 쏠리지 않고 도시 전역에 골고루 분산되어야 한다. 크고 값비싼 하나보다 그것을 열 개로 나누어 분산하는 것이 더 좋다.

책의 구성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 ‘어떤 도시계획이 어떤 건축 유형을 만들어냈는지’를 다룬다. 서울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네 가지 도시 조직을 해부했다. 옛 한양의 골격이 남아 있는 역사 도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한 격자형 조직,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한 신시가지,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덧댄 조직, 이 네 가지다. 2부에서는 ‘서울의 건축을 만드는 외적 조건은 무엇인가’를 다루었다. 땅과 법, 용적률, 시간과 비용, 건축 방언과 버내큘러(vernacular, 평범한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지역 양식), 네 가지 조건이 어떻게 건축의 동력, 압력, 제한으로 작용하는지 분석했다. 3부에서는 ‘건축의 유형, 규모, 장소와 관계없이 내재하는 관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방의 구조, 근린생활시설, 주차장, 세 가지를 꼽았다. 4부에서는 지속 가능한 바람직한 도시, 서울을 위한 세 가지 명제를, 그리고 에필로그 ‘서울 재프로그래밍’에서는 서울이 당면한 과제와 건축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목차

여는 글

프롤로그 - 역사 도시와 건축의 충돌
‘현대’ 사옥과 ‘공간’ 사옥 / 높이 제한 / 단층 도시의 수직 확장 / 건축의 수평 확장 / 전통 건축과 근대 도시의 충돌

1부 - 땅
1. 역사 도심의 오늘
산과 옛 서울 / 역전된 공간 위계 / 밀도의 괴리 / 유연한 역사 해석이 필요하다
2. 서울 그리드 탄생
최초의 근대 도시계획 / 강남의 탄생 / 양파 구조 / 강남 어버니즘 / 중간건축 실험장 / 저성장 시대 재생
3. 서울 안의 신도시
속도전과 대량전 / 위성도시 / 목동의 실험 / 아보카도 구조 / 그리드의 실종
4. 도려내기와 덧대기
주택 재개발 / 주택 재건축 / 제3의 도시 조직 / 빗장 도시 / 조각보 / 언저리 건축

2부 - 제약
1. 땅과 법
스카이라인과 법 / 건축설계와 건축법 / 지구단위계획 / 개발과 정비사업
2. 용적률
용적률 게임 / 세계 도시의 용적률 경쟁 / 서울시 용적률 체계 / 세 가지 건축 유형
3. 시간과 비용
실험적 건축이 혁신인가 / 건설 현장과 지역성 / 건물 수명과 유지 관리 / 공기와 비용 / 건축물 가치와 서비스 대가
4. 건축 방언과 버내큘러
버내큘러 / 모더니즘 / 건축 방언 / 식민 / 현재성

3부 - 관성
1. 방의 구조
얕은 평면 vs 깊은 평면 / 가는 평면 vs 두꺼운 평면
1-1. 횡장형 평면
아파트 / 단독주택 / 다가구・다세대 주택 / 원룸 / 남향 횡장형 평면
2. 유비쿼터스 근생
고전건축 3부 구성 / 근생 / 상가주택 / 주택가 침투 / 복합 신화 / 야누스 오피스텔
3. 주차장
필로티 주차장 / 건축 단면 / 도시형 생활주택과 2030 청년주택 / 경사지 주차장 / 도시 재생과 자동차

4부 - 명제
1. 아름다운 것에는 규칙이 있다
반복과 패턴 / 통합 / 기하 /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
2. 건축과 도시는 불연속이다
귀납 vs 연역 / 양 vs 질 / 면 vs 점 / 유토피아는 환상이다 / 서울은 이질적이다
3. 전통의 원형은 없다
건축의 문법과 이식 / 세계화와 현재성 / 땅, 법, 비용

에필로그 - 서울 재프로그래밍
강남 vs 강북 / 집단주의 / 지역 이기주의 / 서울 재프로그래밍 / 옳은 도시, 좋은 건축

주 / 그림 출처 / 참고 문헌 /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지난 수십 년간 역사 도심에서 소필지별 건축 행위와 공공이 주도하는 대규모 정비사업 사이의 중규모 재생이 어렵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완벽히 보존・복원하고,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곳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 반면 더는 내버려 둘 수 없는 곳들은 공공 주도하에 과감히 정비사업을 해나가야 한다. 그 목표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 되어야 한다. 서울의 역사 도심은 살고 일하고 소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살아야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고 활력이 살아난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 p.52)

사업이 시작되자 부동산에 일찍 눈을 뜬 ‘복부인’들은 한강 건너 땅 투기에 뛰어들었다. 1970년대 초 부동산 브로커와 복부인들의 거점은 용산 시외버스 정류장, 시청 앞 북창동, 뚝섬 일대의 다방이었다. 이곳에는 지적도를 펴놓고 호객하는 브로커와 복부인들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대 성시를 이루었다고 신문은 전한다. “강남 부동산 투기의 응결점”이라고 불리었던 말죽거리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하루에 여섯 번 전매되기도 했다. “주인도 모르는 땅을 사는 사람, 또 주인도 모르는 땅을 팔아주는 복덕방이 판치는 강남땅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주인 없는 땅”이었다. 초기의 강남은 폭력이 난무하는 고등학교와 중산층의 욕망을 중첩했던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의 배경이 되었다.
(/ p.56)

500만 호 건설은 군사 훈련을 방불케 했다. 공기를 줄이려고 밤낮없이 일하는 ‘돌관작업’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 구호를 떠올리게 했다. 1980년대 한국의 건설 현장은 군사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었음을 베이비붐 세대들은 기억하고 있다. 건설산업이 한국 경제의 주요한 추동력이었고 군사정권 아래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속도를 내는 것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었다. 사업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적 수단이 필요했다. 「택지개발촉진법」이 태동한 배경이다.
(/ p.78)

‘주택’을 짓기 위해 ‘대지’를 ‘개발’한다는 점에서 택지개발사업과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두 사업은 전혀 다른 도시 조직과 건축 유형을 만들어냈다. 택지개발사업으로 만든 강남구의 개포・대치동, 양천구 목동, 노원구의 상계・중계동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중심지다. 세 곳 모두 넓은 상업가로를 따라 학원가가 형성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넓은 도로가 있다고 모두 사교육 중심지가 되지는 않는다. 학원으로 임대할 수 있는 충분한 상업 공간이 밀집되어 있으면서도, 비슷한 소득 계층이 사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배후에 끼고 있다. 사는 곳과 소비하는 곳을 분리하되 가까이 두는 것이 택지개발사업의 전략이다.
(/ p.84)

주택 단지는 도로로 에워싸인 한 덩어리 토지를 말한다. 법에서는 이를 ‘일단(一團)의 토지’라는 표현을 쓴다. 일제강점기부터 사용해왔던 말이다. 「주택법」에서는 일정 폭 이상의 도로가 단지를 관통하면 법적으로 하나의 단지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지가 나누어지면 각종 법 규정을 받아 층수와 용적률이 대폭 줄어든다. 사업자의 관점에서 도로는 피하고 싶은 존재다. 그래서 개발자는 공도(公道)인 도시계획도로를 최대한 단지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대신 사도(私道)인 ‘단지 내 도로’를 만들어 단지의 규모를 키운다. 단지를 크게, 배타적으로 만드는 반도시적 독소 조항이 「주택법」에 있다.
(/ p.91)

새로운 아파트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 것은 건축가가 생각과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중정형, 탑상형, 판상형 등 굳어진 유형, 직각 배치 구간, 단위 세대 조합 호수, 단위평면 베이(bay) 개수, 지정된 층고 등 천편일률적 설계 지침을 따르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암초는 설계 능력이 아니라 법률, 시행령, 규정, 규칙, 가이드라인, 설계 지침 안에 도사리고 있다. 혁신의 뇌관은 총론보다 각론에 숨어 있다.
(/ p.127)

사람들이 오랜 시간 머무르면서 사용하는 지하 시설은 용적률에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자연 환기가 안 되는 체력단련시설, 주민 공동시설, 피시방, 음식점, 주점 등 근생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개발자는 굳이 지상층보다 건설비가 많이 들어가는 지하층을 파서 지상층보다 임대료가 낮은 시설을 배치할 이유가 없어진다. 코로나19 사태는 밀폐된 공간이 전염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환기해주었다. 기계식 환기에 의존하는 실내 공간은 대기 오염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장기적 관리가 어렵고 오히려 공기 질을 나쁘게 한다. 첨단 공조 설비 기술은 상위 1퍼센트의 고급 건축물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나머지 건물은 전기 에너지와 기계설비에 의존하지 않고 창문을 열고 환기할 수 있도록 건설해야 한다.
(/ p.246)

도시의 실체는 건축가의 손에서 최종적으로 구체화된다. 도시계획가나 부동산 정책 전문가와 달리 건축가는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한다. 건축가들이 도시 재구조화를 주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은 점들을 하나하나씩 변화시킴으로써 도시에 파장을 주는 일을 할 수는 있다. 이런 점들을 넓히는 일에 건축가들이 뛰어들어야 한다.
(/ p.313)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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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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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주요 저서로 『Megacity Network』(2007),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2009), 『On Asian Streets and Public Space』(2010, 공저), 『길모퉁이 건축』(2011), 『Future Asian Space』(2012, 공저), 『The FAR Game』(2016, 공저) 등이 있다. 2007~2010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탈린, 바르셀로나, 서울에서 열린 〈한국현대건축전〉을 기획했고,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용적률 게임〉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2012년 이후 싱가포르, 애틀랜타, 도쿄, 샤먼, 예카테린부르크, 수라바야, 베이징, 취리히, 리히텐슈타인, 파나마시티, 자카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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