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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튼(PATTON) : 전차전의 전설, 전장의 사자 패튼의 리더십

원제 : Pa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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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뼛속까지 최고의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남자,
욕설과 공격적인 행동, 종교적 영성과 피에 굶주린 불경스러움이 공존했던 군인,
병사와 군에 승리를 향한 최고의 동기부여 연설로 대담함과 투지를 끌어낸 전투지휘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맹위만큼이나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전사,
《패튼PATTON》
“우리는 명령이 내려진 곳에서 싸우고, 싸우는 곳에서 승리한다!”

이 책 《패튼PATTON》은 전장을 떠난 삶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움과 맞서 싸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사 패튼의 일대기다.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 난폭한 행동과 욕설이 섞인 연설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병사들에게는 “패튼의 부하(Patton's men)”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으며, 독일군이 가장 두려워한 기동전으로 현대전의 아버지라 할 만큼 탁월한 전술교리로도 여전히 주목받는 전사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그에게 덧씌워진 많은 논란은 두 세계대전에 참전한 다른 장군들처럼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며 자신을 옹호하거나 선전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패튼이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군인”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 군대 예절과 규율을 지키며 지휘관으로서 모범, 병사와 군대를 사랑하고 아낀 방식, 패튼이기에 가능했던 기회 포착과 직관적 결정, 대담한 속도전 등 전사로서의 패튼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또한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는 좌우명을 심어준 아버지 윌리엄 패튼, 부인 베아트리체와의 러브스토리, 주변인들과의 사적 교류 속에 숨겨진 패튼 개인의 모습까지 자기 삶의 리더이자 군대와 군인의 리더로서 오늘날 군인들에게 표본이 되는 리더십과 그가 남긴 전사사의 유산들을 되짚어본다.

출판사 서평

모든 도전에 빠르게 적응하고 전문적으로 익히는 데 전념한 프로 전사
패튼은 미국의 3대째 군인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영웅담과 전쟁사, 군대, 군인의 이야기는 일상이었으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패튼은 자연스럽게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훗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차전의 달인, 현대전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대규모 기동전을 지휘하며 맹위를 떨치지만, 그에게 최고의 군인이 되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패튼은 용맹해지기 위해 실탄사격 때 과녁 앞 사격장 참호 위로 머리를 들기도 했을 정도로 자신이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노력할 만큼 자신의 두려움과 평생 싸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지 않은 군인이었다.
패튼의 최종 목적은 군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영예를 얻는 것이었다. 따라서 패튼은 군의 기술 변화에도 유연하게 적응했다. 기병들에게 사브르 검술과 이론을 가르칠 정도로 검술에 능해 “검의 달인”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새로운 사브르를 디자인할 만큼 검술에 정통했지만, 패튼은 그런 자신의 특기를 과감히 버리고 현대전에서는 전차가 가장 막강한 전력을 발휘할 거라 믿고 전차를 선택한다. 대규모 기동전을 펼치기 위해, 전장에서 영광스런 승리를 위해 그는 이전까지의 무기를 버리고 기계화 전투를 개척해간다. 틀에 박힌 탁상공론과 전통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융통성 없는 계획을 거부하고, 변화와 도전에 빠르게 적응한 패튼의 전술은 “의심스러우면 공격하라”는 그의 구호와 함께 병사들을 전장 더 깊숙이 더 빨리 더 대담하게 이끌어 승리를 쟁취해냈다.

미국의 제1세대 사막 전사들을 키워 강력한 전차부대를 만든 지휘관
리더는 길러지는가 아니면 태어나는가? 패튼은 둘 다에 해당한다. 패튼은 아이젠하워나 브래들리, 퍼싱과는 다른 면모가 있었다. 전장에 함께 참전했던 병사와 지휘관들은 그가 주어진 상황에서 군대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중요하다고 해도 무엇을 이룰 수 없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군인으로 기억한다. 전장에서 뛰어난 직관과 탁월한 전략을 보여준 패튼은 혹독한 자기 단련과 훈련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열혈 리더로 만들어갔다. 그가 보여준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직업윤리는 많은 장교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두려움을 딛고 사기 충만한 팀을 만든 패튼을 존경하고 닮고자 하는 미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들은 지금도 도서관 앞에 세워진 패튼의 동상을 매일 지나가며 그를 기억한다. 그가 남긴 전술교리와 기동전의 위엄을 증명하듯 제2차 세계대전 후 미 육군은 ‘M46 패튼, M47 패튼, M48 패튼, M60 패튼’처럼 주력 전차 이름에 패튼을 붙였다. 또한 많은 육군 기지에는 패튼 홀이나 패튼 막사, 패튼 박물관이 있으며, 2020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동부 및 중부 유럽의 4개국 순회 중 체코의 필젠을 방문해 그곳에 세워진 패튼 동상을 찾아 경례하기도 했다. 패튼의 이름은 전차에, 그의 군인 정신과 전술교리는 현대전에서 기록되고 활용되고 있다.
패튼은 강력한 부대를 만들기 위해 전력증강자로서, 동기부여자로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훈련을 강행하며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연합군이 프랑스를 침공하기 전인 1944년 패튼 장군 이 미국 제3군에 대한 연설은 유명하다. 패튼 특유의 욕설과 강력함의 메시지는 병사들에게 개인적인 두려움과 관계없이 의무를 다할 것과 공격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역사가들은 그의 연설을 역대 최고의 동기 부여 연설 중 하나로 칭송했다.
또한 나약함과 게으름을 보이는 병사들에게는 난폭한 지휘관으로 악명을 떨치지만, 그는 병사 앞에서 한 말과 행동이 실수라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사과할 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했다. 하지만 병사의 따귀를 때린 사건을 다룬 언론은, 그가 부하에게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이자 동시에 부하들의 높은 성과를 축하하고, 부하들을 바로잡기 위해 구체적인 비판과 실질적인 조언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병사가 곧 군대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 것처럼 패튼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병사와 군대를 아낀 지휘관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생 미엘 돌출부로 향한 미 육군 최초의 전차부대를 지휘하게 된 패튼이 작전이 시작되기 전날인 9월 11일 부대원들과 나눈 “적에게 항복하거나 버려지는 전차는 없다. 만약 적의 한가운데 홀로 남겨지면 사격을 계속하라. 만약 너희 포가 고장이 나면 너희 총을 사용하고, 너희 무한궤도로 적을 짓눌러라. 빠른 방향 전환으로 전차의 꼬리를 잡히지 마라. 만약 엔진이 멈추고 포가 고장이 난다면…, 기다려라. 구조하러 올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평가는 그가 사망한 이후에야 그의 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강렬한 승전의 명성만큼이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전사
패튼은 독일 장군들이 두려워한 몇 안 되는 연합군 장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야전에서 완벽한 기량을 가졌을 뿐 아니라 프로 전사라는 것을 전장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된 전사 패튼에게 참전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스스로 기회 만들었다. 멕시코의 판초 비야를 토벌하는 원정대의 퍼싱에게 직접 연락하여 자신이 원정대에 참가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자원한다. 패튼은 퍼싱 장군에게 그랬듯이 아주 중요한 사람에게 확실하고 깊은 인상을 주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토벌에 성공해 군인으로서, 지휘관으로서 한동안 국가의 영웅이 된다. 그에게 1918년 또다시 기회가 왔다. 생 미엘 돌출부에 미군이 전차를 내세운 대규모 공세를 계획하고 패튼을 부른 것이다. 패튼은 이 전투에서 전차의 효과와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모두 보여주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서 군대는 축소되고 패튼은 전장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서 패튼은 미국-영국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인 횃불 작전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패배를 승전으로 뒤바꿔놓으며 영웅이 되기에 이른다.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베를린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점령하게 될 거라는 아이젠하워의 전달에 크게 실망하기도 했는데, 이유는 독일보다 소련이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에 훨씬 더 큰 위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패튼이 가진 정치적 군사적 관점은 이후 논란거리가 된다. 패튼이 점령한 지역인 바이에른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탈나치화가 훨씬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 이유는 “최상급 SS대원 중에는 범죄자로 취급될 만한 사람도 있겠지만, 징집되어 그 제복을 입게 된 사람들까지 따로 처리할 이유는 없습니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과 함께 결국 패튼은 그의 일생에 마지막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문젯거리가 되는 발언을 한다. “지금, 독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나치인 상황에서 만약 우리가 모든 나치 당원을 공직에서 제외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라는 발언은 당시 아이젠하워와 정치인들이 원하던 말이 아니었다. 패튼의 말은 기사화되었고,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대인 학살의 홀로코스트와 죽음의 수용소를 보고 나치의 비인간성에 구역질할 만큼 치를 떨었던 그였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아이젠하워가 제안한 기자 회견 자리에 나와서도 나치를 행정직에 유지하려는 자신의 이유를 되풀이 말했을 뿐이다. 그의 발언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전장의 영웅은 이제 언론과 정치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패튼의 의중을 알 길이 없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패튼은 그의 일기와 그가 가족들이나 주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전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참전했던 전쟁 영웅들이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며 언론과 대중 앞에 자신들의 업적을 소개하고 선전했지만, 패튼은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못했다. 두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만하임 남부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언론과 대중은 그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영웅으로도 혹은 난폭하고 잔인한 지휘관으로도 만들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에야 그는 미 군인의 모범적 리더십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이름을 딴 전차와 그의 동상은 그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보여준 기동전과 현대전에서 그의 전술교리와 전략이 크고 작은 전쟁에 활용하고 있다. 냉전 시대 이후에도 벌어진 여러 전쟁에서 그의 유산을 찾을 수 있다. 패튼이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탈나치를 거부한 그의 정치적 이유와 그의 죽음,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채 룩셈부르크 함의 미군 묘지에 남아 있는 그의 시신은 그에 대한 미군의 평가와 묘하게 괴리가 있다. 그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전투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최고의 군인”이 되고자 하는 많은 미군 사관생도와 군인에게 리더십의 표본으로 존경받고 있다.

●●● 패튼을 향한 찬사

★“패튼, 당신이 최고였다!” _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Gerd von Rundstedt)
★“붉은 군대는 프랑스 전역에서 패튼의 제3군이 실행한 진격을 상상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었다.”_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
★“패튼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군인이다.”_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그는 승자였고, 모든 도전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숙달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사기가 충만한 팀을 만든 사람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_ 웨슬리 K. 클라크(Wesley K. Clark) 장군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지휘관이자 가장 파란만장한 인물일 것이다.”_ 루시안 트루스콧(Lucian Truscott)
★“그와 함께라면 지옥에 갔다 와도 괜찮을 보스다.”_ 패튼의 연설을 들은 어느 병사

목차

서문
들어가며 _ 지휘와 논란
Chapter 1 타고난 군인
Chapter 2 생도, 군인, 육상선수, 검객
Chapter 3 판초 비야 추격
Chapter 4 제1차 세계대전과 신무기
Chapter 5 평화와의 전쟁
Chapter 6 부단히 활동하는 멘토
Chapter 7 아프리카 패배를 아프리카 승리로
Chapter 8 시칠리아 정복
Chapter 9 전 세계를 경악시킨 패튼의 폭력
Chapter 10 영국에서
Chapter 11 전사
Chapter 12 90도 북쪽으로
Chapter 13 최후의 진격
Chapter 14 패튼의 문제와 패튼의 유산

본문중에서

미 육군사관학교와 그 이후 나의 멘토들 중 상당수는 전투에서 에너지가 넘칠 뿐 아니라 군사 전략과 국가 운영의 복잡함을 다룰 수 있는 “패튼 플러스(Patton-plus)” 정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오늘날의 평화유지 활동에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비추어볼 때 “패튼 플러스” 사고방식이 이렇게 절실하던 적은 없었다.
…(중략)…
액슬로드가 쓴 글에는 패튼이 전후 독일에서 겪은 어려움, 즉 현재 평화유지 임무에 반영된 어려움이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패튼은 각 임무를 완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 학생이었다. 패튼이 오늘날 지도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다. 그는 승자였고, 모든 도전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숙달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사기가 충만한 팀을 만든 사람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_ 〈서문〉(웨슬리 K. 클라크) 중에서

큰 소리로 읽거나 칠판에 글을 쓸 때마다 또는 더듬을 때마다 급우들은 그를 비웃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절대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패배했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은 스코틀랜드와 남부연합 조상들의 모험담 속에서 자랐고, 패배를 다음 차례의 승리나 맨 나중의 큰 성공을 위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훗날 원숙한 지휘관이 된 그는 야전에서 사용한 노트에 대문자로 이렇게 적었다. “YOU ARE NOT BEATEN UNTIL YOU ADMIT IT, HENCE DON’T.”(네가 인정하기 전까지는 진 것이 절대 아니다.)
_본문 30쪽

패튼은 자신이 작은 사건을 작은 신화로 바꾸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부대가 훈련하고 있던 어느 날, 패튼이 갑자기 말에서 떨어졌다. 곧바로 다시 말에 올라탔지만, 말은 계속 몸부림쳤다. 그 바람에 이번에는 패튼이 말에 탄 채 말과 함께 쓰러졌다. 패튼은 말에 깔린 다리를 빼내 벌떡 일어났고, 말 역시 일어섰다. 패튼은 모자를 벗어 눈썹 바로 위에 난 깊고 흉한 상처를 확인하였다. 그러고는 20분 동안 얼굴과 소매에 피를 흘리며 훈련을 마쳤다. 그는 얼굴을 닦기 위해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일정대로 부하들을 해산시키고 돌아온 뒤에야 몸을 씻었고, 일정에 따라 부사관들을 가르치고, 일정에 따라 초급장교 교육에 참가했다. 이런 임무들을 마친 후에야 외과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이 젊은이에 대해 크게 감탄하며 상처를 꿰매었다.
_본문 51쪽

패튼은 자신의 임무를 두 가지로 보았다. 그는 부하들을 훈련시키고 단련시켜야 했다. 4월에 시작하여 보직이 끝나는 1942년 7월까지 약 6만 명이 인디오를 거쳐 갔다. 또한 사막전 전차교리도 만들어내야 했다. 전차 대형으로 광범위한 테스트를 했고, 야전에서 사격으로 손상되거나 파괴된 전차를 복구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신형 차량인 구난전차를 개발했다. 또한 경비행기를 단순히 정찰에만 활용하지 않고, 지휘관이 음성 무전으로 실시간 이동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휘 플랫폼으로 혁신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것을 토론에 쏟아부었다. 한 번 명령을 내리면 패튼은 완벽한 규율을 따르는 복종을 기대했다. 그러나 명령의 순간까지 각각의 주요 사안에 대해 모든 측면을 듣고 싶어 했다. 사막훈련센터는 패튼이 듣고, 주장하고, 질문하는 활발한 논의와 토론의 중심지가 되었다. 토론을 통해 패튼은 가장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는 무엇이든 추리고, 그것을 더 많은 논평을 위해 상급 지휘부에 보내 회람해달라고 요청하였다.
_본문 131쪽

그는 자신의 부대에 있는 모든 무기를 세밀하게 점검하도록 했다. 그는 경미한 위반일지라도 벌금을 엄격하게 부과하게 했다. 부하들은 투덜거렸지만 곧 자신을 군인, 즉 패튼의 부하(Patton's men)로 보기 시작했다. 그는 세부적인 부대 규율을 확인하면서도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치열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그들이 조국을 위해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조국을 위해 죽이길 원한다고 말했다.
_본문 158쪽

항상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갈망했던 패튼은 일기장에, 이제 그가 이 필요를 넘어섰음을 암시하는 글을 썼다. “경험을 쌓으면서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놀라울 정도로 약하고 소심하다. 그들은 너무나 예의 바르다. 전쟁은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그리고 무자비하다. 전쟁에는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무자비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패튼은 방금 쓴 그 글을 보며 다시 글을 남겼다. “때로는 위와 같은 글을 쓴 것에 대해 나 자신을 비웃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분명 종이에서 펜을 떼었다가 다시 덧붙여 썼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_본문 162쪽

참모장교들에게 “매일 전선을 방문하라”고 했다. 전선에서는 병사들에게 “간섭하지 말고 관찰하라”고 했다. 지휘자의 “기본 임무는… 너의 눈으로 직접 보고 개인적인 정찰을 수행하는 동안에 부대원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전선에서는 “질책보다는 칭찬이 더 가치 있다”며 좋은 장교는 구체적인 성과를 위해 긍정적인 강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전선에서 직접적인 참여는 명령의 효과적인 실행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패튼은 썼다. 명령을 내리는 것은 지휘관의 업무 중 10%이다. “나머지 90%는… 적절하고 활발한 수행을 보장하는 데 써야 한다.”
_본문 199쪽

“용기! 두려움에 떨지 마라.”
_본문 201쪽

여러분 모두가 죽는 것은 아니다.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 중 2%만이 이 큰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죽음은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남자는 자신의 첫 번째 작전을 무서워한다. 만약 그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빌어먹을 거짓말쟁이다. … 진정한 영웅은 무서워도 싸우는 남자이다.
_본문 207쪽

패튼은 종종 충동적으로 행동한다고 비난을 받았다. 감정적인 그의 기질로 볼 때 비난은 정당했지만, 패튼은 자신의 직업에 관해서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신중한 기획자였다. 일단 작전이 진행되면 패튼은 전형적으로 진격과 공격이 조합된 끊임없는 작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서두르는 것과 빠른 속도를 구별하기 위해 늘 신경을 썼다. 그에게 있어 서두른다는 것은 즉흥적이거나 최소한 적절하지 않게 계획된 작전이었다. 반면 철저하게 준비하면 서두를 필요 없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작전 또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빠르게 작전을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준비였다. 패튼은 사후 대응보다는 사전 대책을 마련했고, 가능하면 전투의 시간과 장소 같은 조건들이 적에 의해 좌우되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하기를 원했다.
_본문 232쪽

바스토뉴 구출은 “조지 패튼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가 하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저는 위대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실제로는 젊은 장교와 병사들이 한 것입니다. 추위 속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길을, 아무도 길을 잃지 않고, 밤새 행군하는 저들을 보면, 그리고 모든 이들이 제때 그 장소에 도착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매우 놀라운 업적입니다. 저는 군 역사에서 그 작전과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저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우리 병사들이 해낸 일은 한없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_본문 244쪽

아이젠하워는 독일 수도 베를린은 미군도 영국군도 아닌 붉은 군대가 점령할 것이라고 패튼에게 알렸다. 패튼은 그 소식에 충격을 받았고, 혐오했으며 낙담했다. 그는 독일보다 소련이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에 훨씬 더 큰 위협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큰 상을 주면서까지 군사적 승리를 위해 정치적으로 패배하는 것은 패튼이 보기에는 굉장한 비극이었다.

_본문 253쪽

여느 때처럼 공개적인 연설에서 패튼은 승리의 공을 병사들에게 돌렸다. 그는 앞쪽 특별 예약석에 앉아 있던 다친 제3군 참전용사 400명을 보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여러분의 피와 유대감으로 우리는 독일군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격파했습니다. 이 박수는 나, 조지 S. 패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조지 S. 패튼은 그저 제3군 대표로 활동했을 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부상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말했다. 패튼은 대부분의 사람이 전투에서 죽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하지만 사실 전투에서 죽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다. 그는 부상자 참전용사들을 가리켰다. “이 사람들이 영웅입니다.”
_본문 256쪽

패튼은 독일군이 폴란드, 프랑스, 소련을 상대로 그토록 파괴적으로 사용했던 전격적 전술에서 특별히 융통성 있는 버전을 완벽한 상태로 가져왔다. 그의 이상은 속도와 파괴력을 결합한 전투를 만들어 최소한의 병력 및 장비 손실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패튼은 재래식 전쟁의 전투는 안전에 대한 환상을 주었지만, 결국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고 설파했다. 승리를 달성하고 동시에 사상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격으로부터 자신의 병력을 가능한 한 짧게 노출하고, 최대한 빠르게 적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제1차 걸프전에는 패튼의 이런 원칙이 인상 깊게 적용되었다. 대규모 합동군이 증강된 다음, 패튼의 원칙은 신속하고 가차 없이 고도로 협조된 방식으로 사용되어, 적의 사격을 받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그 결과 합동군 사상자가 극히 적은 상황에서 이라크군을 크게 이겼다.
_본문 277쪽

패튼은 다른 모든 지휘관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리더십의 표본이었다. 그는 동기부여의 달인이었고, 자신이 지휘하는 부하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수준을 뛰어넘어 수행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는 승리의 이미

저자소개

앨런 액슬로드 [저]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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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컨설턴트이자 전기작가다. 특히 그는 역사적 인물에게서 경영 및 자기계발의 지혜를 도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1979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레이크 포레스트 대학과 퍼먼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지멘스, 고이주에타 비즈니스 스쿨, 에모리 대학교, 성 조지프 병원 및 헨리 포드 박물관 등의 컨설턴트로 종사했고, TV 다큐멘터리 시리즈인〈와일드 웨스트〉 〈디스커버리 채널〉 등의 매체에 크레에이티브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주요 저서로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 《두려움은 없다》 《CEO의 성공법칙》 《Patton on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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