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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성희롱 : 선을 모르는 남자 더는 참지 않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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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모르는’ 남자들의 행동을 집요하리만치 상세히 파헤쳐 직장 내 성희롱의 원인과 실태, 해결 방법까지 정리한 책.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 미투 운동의 확산과 인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직장내 성폭력, 성희롱은 판에 박힌 듯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발생한다. 저자는 이를 근절하려면 사회 전체의 상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뿌리 깊은 남성 우위 문화와 성차별 의식을 없앨 수 있도록, 그리고 문제 제기를 단념하거나 참을 수밖에 없는 여성이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실제 성희롱 사례를 들어 문제의 근원을 기초부터 하나씩 풀어나간다.

이 책은 성희롱의 원인이 착각 혹은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 멸시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성희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거나 근본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고 성희롱을 저지른 채 도리어 분노하는 남성, 그리고 언제, 어디서부터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성희롱을 당하고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해 쓰였다. 실제 벌어진 다양한 사례와 구체적인 대응방법을 통해 성희롱의 ‘상식’에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말, 행동은 성희롱이다’라고 명확히 알려주는 책.

출판사 서평

왜 남성의 농담이 여성에겐 성희롱이 될까?
왜 남성에게는 연애였던 시간이 여성에게는 성폭력의 시간이 될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의 거의 모든 것


직장이나 학교, 직위에 따른 위계가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의 패턴은 놀랍도록 닮았다. 가해 행위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해자는 주로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싫어하는 줄 몰랐다”, “사실은 사귀었다”, “합의하에 관계했다”라고 말하며, 가해자를 감싸는 주변 사람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예뻐서 그랬겠지”,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꽃뱀에게 당했다”고 평가한다. 세간에서의 평가, 언론은 물론 사법부를 향해서도 피해자는 왜 확실하게 거부하지 않았는지, 왜 즉시 문제 삼지 않았는지, 왜 계속 그 직장에서 일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전세계를 휩쓴 미투운동과 성차별적 인식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비슷한 패턴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남성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여성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무 고려도 하지 않고 그저 “예쁜 얼굴로 화내지 마”라고 ‘칭찬’하고, 사적인 메시지를 전송하거나, 격려한답시고 어깨를 주무른다. 최근의 ‘직장 내 성평등 인식 조사’(한겨레 7월 27일 자)에 따르면 “외모에 대한 칭찬도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질문에 20대 여성 37.1%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으나 50대 남성은 3.2%에 그쳤다. “업무 외 사적인 메시지 전송은 성적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항목에서도 20대 여성 38.7%가 ‘매우 그렇다’고 했지만, 50대 남성은 14.5%에 그쳤다. 남성은 자신의 ‘사심 없는’ 말과 행동이 여성에게 성적 괴롭힘이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다. 몰라도 됐기 때문이다.

저자 무타 가즈에 교수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진 계기가 된 ‘후쿠오카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했으며 이후 수많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접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여러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서 대다수의 남성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보고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진짜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절망적인 현실에서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떤 말과 행동이 성희롱인지, 왜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 전체 사회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과 남성의 사고방식 차이를 분석하고 지금까지의 성희롱에 대한 고정관념, 상식을 변화하려는 목적에서 대단히 구체적으로 쓰였다.

“우리 사귀는 거 아니었어?” “예쁘다는 말이 왜 나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모르는’ 성희롱의 메커니즘과
당장 업데이트가 필요한 사고방식들


남성이 성희롱, 성폭력을 저지르는 첫 번째 이유는 무지와 착각이다. 나이 들수록 보통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생기는 남성의 주위에는 자신에게 알아서 맞춰 주는 사람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인기(?)가 지위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진심으로 존경받는다거나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상대도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에 넌지시 손을 잡았는데 피하지 않았으니, 역시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수순이다. 당하는 여성 입장에서 손을 뿌리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색해서 분위기를 깨거나 예민한 여자라고 공격당하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피해 여성의 대부분은 지위가 낮거나 가해자에 의해 막대한 불이익을 얻을 수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업무나 학업 지도를 빌미로, 시키는 대로 하면 보상을 주고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관계는 위계 혹은 위력이라는 일종의 권력관계다. 즉, 업무상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에 해당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계약직 사원 T씨는 출장길에 동행한 정규직 간부와 동침하게 된다. “집에 안 가도 돼지?”, “너도 내 마음 알지?”라는 상사의 말에 호텔 방문을 연 것이 주변 사람들에겐 ‘사귀게 된 사연’쯤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계약직 사원인 T씨에게 상사의 “너도 내 마음 알지?”는 ‘너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라는 사랑 고백이 아니라 “거절했다간 여기서 일 계속 못해”라는 위협의 말로 들린다. 저자는 “나랑 자지 않으면 해고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가해자는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몰려 받아들인 경우인 ‘부득이한 동의’도 명백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이유는 무의식에 깔려 있는 여성에 대한 멸시, 남성 우위의 인식 때문이다. “예쁘다”는 말이 왜 나쁜지 대다수 남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돌아보면 쉽다. “00씨가 있어서 사무실이 화사하네”, “얼굴도 예쁜 사람이 왜 그래”라는 등의 말은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을 얕잡아보는 인식이 드러난 것이다. ‘미인’이나 ‘예쁘다’는 말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단어지만, 맥락을 생각해 보면 ‘능력과 상관없이 예쁘게 앉아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다’, ‘여자에게 제일 중요한 능력은 외모다’, ‘여직원이 하는 말은 들어봤자다’라는 뉘앙스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작용하는 압도적인 젠더 불평등도 포함되어 있다. 일하는 곳인 직장에서 굳이 ‘미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은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일하는 사람, 여기에 필요한 사회인,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여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뜻이다.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 수록
낡은 차별적 관념을 버리고 함께 변화하기 위해


여러 장에 걸쳐 성희롱 사례와 문제점을 설명한 후에는 직장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관해 상세히 소개한다. 성희롱으로 고소당했을 때 인정해야 할 일인지 인정해선 안 될 일인지 갈등하더라도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체의 행위를 잡아떼는 태도는 상대 여성을 더욱 자극하고 이 문제로 인해 일이나 학업을 예전처럼 계속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피해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성희롱을 지적받았을 때 과잉반응부터 보이는 남성이 많은 현실에 대해 저자는 “적반하장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냉정하고 성실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에서는 성희롱 문제가 발생하면 제삼자나 전문가를 통해 객관적으로 조사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가해자의 반성과 사죄를 끌어내는 동시에 절대 보복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피해를 본 사람의 노동 환경을 지킬 수 있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조언이다.

이 책에도 일본 고위 정치인의 성희롱 사례가 자주 언급되지만,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고위 인사들이 여성을 상대로 권력을 남용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도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여전히 가해자 중심, 남성 중심의 편견 때문에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들어 문제 제기가 시작된 것이 고작 30년 전이라며 사회의 성희롱 상식이 지금껏 변화해 왔듯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최근 긍정적인 판결을 이끌어낸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2020년 2월, 한국에서도 피해자가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동의했다는 단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제자를 강제추행한 무용가에게 징역을 선고한 판결이 있었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강압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위계에 의해서도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지금, 이 책의 의도처럼 차별적 고정관념을 버리고 성 인지 감수성을 점검해 보는 일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1장 성희롱의 구렁텅이
1. 만지지도 않았는데 왜 성희롱이래?
2. 매력이 있으니까 당하는 거지
3. ‘부득이한 동의’는 곧 강요
4. 여성의 ‘NO’는 무슨 뜻일까
5. 침묵을 ‘밀당’으로 착각하기
6. 여자를 위한 명령어는 없다
7. ‘예쁘네’라는 말이 왜 나빠?
8. 얘가 어딜 봐서 여자야
9. 성적인 의도는 없었다
10. 날씨 얘기밖에 못 하는 거잖아!
11. 내 호의를 거절하다니
12. 좋은 뜻으로 그런 건데

2장 쥬라기 공원의 주민들
1. 고위직의 상식은 세상의 비상식
2. 우물 안 개구리
3. 나는 결백하다
4. 그럴 사람이 아니야
5. 엄마 아니면 접대부
6. 순진한 걸까 의도적으로 무지한 걸까
7. ‘아재’와 어울리면 ‘아재’가 된다?

3장 성희롱에서 살아남기
1. 소리 없는 사투
2. 서글픈 서바이벌
3. 최초의 성희롱 재판 - 후쿠오카 사건
4. 모난 여자가 정 맞는다
5. 못생긴 주제에
6. 별일 아니야 나도 참았어
7. ‘술 따르기’의 내면화

4장 연애와 불륜과 성희롱
1. 우리 사귀는 거 아니었어?
2. 아저씨의 망상과 폭주
3. 진심으로 사랑하니까 절대 성희롱이 아니다?
4. ‘즐거움’과 ‘불안’ - 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
5. 당신은 하면 안 되는 일
6. 연애와 성희롱 사이
7. 끝이 안 좋으면 성희롱이 된다
8. 사내 연애는 금지인가
9. ‘불륜’이라는 어둠

5장 성희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1.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
2. 재무성 대응의 문제점
3. 이렇게 사과하라
4.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조사 방법
5. 직원이 거래처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우
6. 일하는 사람을 지킨다
7.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6장 직장 밖 성희롱
1. 가족과 친척의 괴롭힘
2. 돌봄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7장 성희롱의 새로운 상식
1. 편리하지만 위험한 SNS
2. 메신저에도 TPO를
3. 끝까지 침묵할 생각은 없다
4.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나가며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그러던 중 2018년 4월에 당시 재무성 사무차관이었던 후쿠다 준이치가 여성 기자에게 믿기 어려운 성희롱 발언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개된 녹음 파일에 담긴 후쿠다의 발언은 아연실색할 내용이었다. “오늘, 오늘 말야… 안아도 될까?” “손 묶어도 돼?” “가슴 만져도 돼?” 사람마다 사태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해도 많은 사람이 충분히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다. “나랑 바람피우자”, “섹스하자”, “더 야한 옷 좀 입어봐”, “섹스는 얼마나 하고 있어?”, “넌 갖고 놀다 버려질 거야”, “네가 직접 만든 음식이 먹고 싶어”, “호텔 가자” 등 후쿠다 전 차관에게 역겨운 말을 듣고 있었다는 증언이 다른 여성 기자로부터도 연이어 등장했다. 사건 후 기자회견에서 후쿠다는 “술집 여성과 주고받던 말장난을 했던 적은 있다”, “맥락 전체를 보면 성희롱은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했고, 결국 사임했지만 ‘성희롱’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성희롱 발언은 후쿠다 전 차관에서 그치지 않았다.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성 장관이 “꽃뱀에게 걸린 거죠, 어떻게 보면 그거야말로 범죄라고 생각해요”라며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는 몰상식한 발언을 한 것은 물론,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성 장관은 “만진 것도 아니잖아”, “꽃뱀한테 걸려서 고소당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얼마든지 있다고”, “후쿠다의 인권은 없는 거야?”라며 시종일관 부하를 철저히 옹호했다. 그 후에 진정할 틈도 없이 “차관 담당을 전부 남자로 바꾸면 해결될 일” 등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성희롱 발언이 쏟아져 지켜보는 사람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 pp.15~16)

“이것도 성희롱이고 저것도 성희롱이면 고작 날씨 얘기밖에 못 하는 거잖아! 직장에서 인간적인 소통은 아예 하지도 말란 말이야?” 이것도 남성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쏟아놓는 단골 질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번지수가 틀린 분노의 전형적 예다. 일단, 성희롱이 아닌 화제는 얼마든지 있다. ‘성희롱이 될 위험’이 없는 말을 고르고 골라 결국 날씨 이야기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것은 빈약한 의사소통 능력의 문제다. 사람들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그렇게 부족해서 어쩌겠는가. 억지로 화제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보자. 상사로서, 직장 동료로서, 부하직원의 이야기를 흥미와 경의를 품고 들으면 된다. 부하들이 따르는 상사, 유능한 상사, 인망이 두터운 상사, 남녀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존경받는 상사는 한결같이 ‘경청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pp.55~57)

“차관 담당 기자를 전부 남자로 바꾸면 되잖아”, “애초에 여자하고는 회식하면 안 돼”라던 아소 다로 재무장관의 발언도 둔감한 권력자가 할 법한 말이다. 얼핏 이것이 여성을 성희롱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대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발언은 ‘남자는 누구나 성희롱을 할 가능성이 있다, 남녀가 단둘이 있다 보면 성희롱이 일어나게 마련이다’라며 성희롱을 긍정하거나 용인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는 절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남성 관료나 정치가에게는 남성 기자만 배정하고 이성과의 회식을 금지해버리면 여성 기자들은 동등한 업무를 할 수 없다. 활동 영역이 한정되어, 쌓아 올릴 수 있는 경력이나 장래의 가능성을 잃을 수도 있다. 여성을 배제하는 조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면 여성들이 일할 곳을 빼앗기게 된다는 부작용은 고려하지도 않은 부적절한 대책이다. 성희롱을 당하기 싫으면 남자랑 같이 일해야 하는 직장에서 나가면 되지 않나, 라는 의도도 느껴지는데 이것도 그저 어리숙함 혹은 무지일까?
(/ p.90)

함께 일하던 동기 중 B씨라는 영업직 여성이 가장 먼저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상무가 예뻐하잖아. 둘이 벌써 잤다는 소문도 들었는걸.” “전무 쪽에 엄청 끼를 부리고 다녔더니 끼워준 거래.” “역시 잠자리 영업부 부장이구나. 미인은 출세도 쉽다니까.” 출세한 여성에게 던져지는 말에는 어쩐지 성적 모함이 담긴 신랄한 비난이 많다. ‘여자니까’, ‘여자 주제에’라고 업신여기는 만큼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며 기분을 추스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성희롱 발언을 이어간다. “일은 잘하는지 몰라도 여자로서의 인생은 비참해.” “일은 잘하는지 몰라도 저러면 시집 못 가지.” 일하는 비혼 여성들이 예외 없이 당하는 전형적 성희롱이다(기혼 여성의 경우엔 “저렇게 일만 하니 애들이 불쌍하다”, “남편이 설 자리가 없다” 등으로 바뀐다). 여성이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도 ‘여성으로서의 인생은 실패다, 불행할 것이다’라고 믿기로 하면서 쓰린 속을 달래는 것, 이것이야말로 패자의 정신승리 아니겠는가.
(/ pp.114~115)

여성이 최대한 실례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정중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도 남성들은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자기 좋을 대로 ‘나를 존경한다고 했잖아’, ‘독신이면 사귀고 싶다는 뜻인가?’라고 생각하며 “나는 진심이야”, “진심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반복한다. 잠자리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너를 가볍게 대할 생각은 없다며 자신의 진심을 강조하지만, 그런 남성과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이 고맙고 자시고 할 리가 없다. 여성에게도 상대를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착각은 성희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상대 여성이 심각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나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며 여성에게 가혹한 폭력을 휘두르고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가정폭력 가해자 남성의 사고방식과도 상통한다.
(/ p.139)

만일 연애로 시작한 관계라 해도 결과적으로 일을 계속할 수 없는 등의 상황이 초래된다면 그것은 ‘성희롱’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해 ‘끝이 나쁘면 성희롱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변하거나 교제가 끝나는 일은 불륜이든 평범한 연애든 어떤 관계에서든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부하직원이거나 관리 대상, 지도 학생인 경우라면 성실함과 배려를 보통 이상으로 발휘해야 한다. 자신과의 교제 때문에 상대 여성의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없는지 여성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런 뒤 그 여성의 인생이 그 이후로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
(/ pp.152~154)

저자소개

무타 가즈에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56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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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후쿠오카 출생. 오사카대학교대학원 인간과학연구과 교수. 역사사회학과 젠더론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1989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성희롱(セクハラ)’이란 말이 널리 퍼진 계기가 된 후쿠오카 성희롱 재판에 참여했다. 일본 ‘우먼스 액션 네트워크(WAN)’의 주요 구성원으로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는 『젠더 가족을 넘어: 근현대 생/성의 정치와 페미니즘』,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 편서로는 『다리를 놓는 페미니즘: 역사, 성, 폭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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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영어와 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페미니즘 이론학교 기획단, 인권교육센터 <들>에서도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긍정의 훈육』, 『강렬한 장면을 만드는 스토리 기법』, 『21일 만에 시나리오 쓰기』, 『이야기의 해부』, 『어느 싱글과 시니어의 크루즈 여행기』, 『써니 사이드 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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