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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 이야기 : 우리 문화와 역사가 깃든 산사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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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최종걸
  • 출판사 : 다우출판
  • 발행 : 2020년 05월 30일
  • 쪽수 : 43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88964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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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사찰 창건 설화 속에는 한국인의 오랜 발원이 들어 있다.
    구수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 속 한국 문화의 속살을 만난다.


    “얕은 개울물은 큰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최초의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말이다. 긴 세월 소리 없이 한자리를 지켜 온 천년 고찰이 우리 삶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언론사에 오랜 시간 몸담았던 저자는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의 권유로 수행 삼아 천년 고찰 순례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 그리고 여전히 수행가풍을 간직한 청정도량을 중심으로 전국을 순례했다. 그 과정에서 각 사찰 창건에 얽힌 일화와 설화들은 물론 다양한 유형의 이적과 영험담 그리고 우리 문화와 역사가 깃든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한국인의 오랜 발원을 만나는 일이었으며, 고승대덕들의 깨달음의 발자취를 쫓는 일이자 스스로 떠나는 치유의 여행이었다. 이를 정리해 글을 쓰고 불교 전문지인 <판각>과 몸담은 신문사에 연재를 하면서 5년 만의 긴 순례를 마쳤다. 이 책[천년 고찰 이야기]는 저자가 그 순례 길에서 만난 명산대찰에 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전역에 분포된 약 천여 개의 사찰 가운데 5대 적멸보궁, 3대 해수관음 성지, 삼보사찰, 미륵 신앙 성지, 지장 신앙 성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등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고찰들을 가려 담았다.
    기존 답사기와 기행 책과는 다르게 기이한 일화와 옛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록하다 보니 한 권의 옛이야기 책처럼 구수하고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기이한 영험담과 설화 속에는 우리민족의 오랜 발원과 고승들의 깨달음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륵 신앙의 성지’ 금산사를 중건한 진표 율사는 출가하기 전 늘 활을 들고 산과 들을 누비며 사냥을 다녔다. 어느 봄날, 사냥을 나갔던 진표 율사는 개구리들을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놓고는 까맣게 잊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다음 해 전처럼 사냥을 나가던 진표 율사의 귀에 지난해 잡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개구리들이 여전히 버들가지에 꿰인 채 구슬피 울고 있었다. “내가 어찌 해를 넘길 정도로 개구리를 고통받게 했단 말인가?” 탄식하던 진표 율사는 이 일로 깨달음을 얻고 금산사로 출가했다. 이후 17년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회의 고행 끝에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법을 직접 받기에 이르렀고 다시 돌아와 금산사의 중창 불사를 발원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음 성지인 수덕사는 근래 들어 스러져 가던 근현대 한국 불교의 간화선풍을 다시 잇고 추상같은 정풍으로 불도를 바로 세운 곳이기도 하다. 이 절에 주석했던 경허 선사는 연암산 천장암으로 출가하여 1년 반 동안의 치열한 참선 끝에 확철대오했으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로 시작하는 오도송으로도 유명하다. 경허 스님은 1886년에 6년 동안의 보임을 마치고 옷과 탈바가지, 주장자 등을 모두 불태운 뒤 무애행에 나섰고 이후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란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함경도 갑산 웅이방 도하동에서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였다.

    역사 속 고승 선사들의 깨달음의 이야기

    해수관음 신앙을 대표하는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기도처 보리암’에는 두 가지 창건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하나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황비인 허황옥 공주의 삼촌 장유 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의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다. 서기 683년(신라 신문왕 3)에 원효 대사가 풀집을 짓고 수도하던 중, 희뿌연 광채를 뿜으며 나타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감동으로 보리암을 창건했으며, [화엄경]에서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인 보광궁에 착안하여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으로 짓고 관세음의 별칭인 보문普門에서 보普를 따와 절 이름을 보광사라고 하였다.
    화엄 사상의 발원지인 영주시 부석사에는 의상 대사를 호위한 선묘 보살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신라 문무왕 때 당나라에서 유학 중이던 의상 대사를 연모한 선묘 낭자는 떠나는 의상 대사를 그리워하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후 ‘이 몸이 용이 되어 의상 대사가 무사히 귀국하도록 돕겠다.’는 원을 세우고 용으로 환생해 의상 대사의 멀고 험한 귀국길을 호위했다. 돌아온 의상 대사가 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에 절을 지으려고 하는데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적 떼가 문제였다. 의상 대사가 수차례 양보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도적들은 막무가내로 버티며 오히려 스님을 겁박했다. 이에 용으로 환생해 스님을 외호하고 있던 선묘 낭자가 커다란 바위로 변신하여 도적 떼를 위협했고, 결국 도적들은 봉황산에서 쫓겨나 선묘 낭자는 소원대로 의상 대사의 불사를 도울 수 있었다. 그 바위가 바로 부석사 무량수전 뒤편에 있는 부석浮石이다.
    우리에게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명장으로 기억되는 서산 대사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서산 대사는 입적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해남 두륜산 대둔사에 자신의 의발을 전하라고 한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이 왜 그런 외진 곳을 선택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에서 가사와 발우를 보관하도록 전한다는 것은 본인의 법을 전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서산 대사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는데 그 말에 의하면 두륜산 대둔사는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종통宗通이 돌아갈 곳’이었다. 스승의 명을 받든 제자들은 묘향산 보현사와 안심사 등에 부도를 세워 서산 대사의 사리를 봉안하고, 영골靈骨은 금강산 유점사 북쪽 바위에 봉안한다. 금란가사와 발우를 대둔사에 모신 후로 두륜산 대둔사는 지금의 대흥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서산 대사의 법맥은 4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대흥사는 큰 깨달음을 얻은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大講師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불교 이야기 속 당대 역사, 문화, 정치, 사회 모습을 한눈에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시기인 삼국 시대에는 호국 불교의 성격이 강했다. 개인적인 치병이나 구복의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왕권 강화 목적이 더 컸으며 이를 위해 토속적 무속신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던 지배층을 불교로 교화하려 하였다. 고구려의 아도 화상이 신라에 세운 ‘신라 불교 첫 도래지 도리사’나 자장 율사가 세운 ‘불지종가 통도사’의 창건 설화에 토속신앙의 대상이었던 용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다. 태조 왕건은 불교를 적극 지원했고 불교 행사인 연등회나 팔관회를 중시했으며, 광종 때부터는 승과를 실시해 나라의 스승인 국사나 왕의 스승인 왕사를 뽑아 왕실의 고문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정혜결사 시작점이었던 ‘국사 도량 송광사’에서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고자 했던 지눌 스님이 정혜결사 장소를 찾던 중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앉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는 지배 세력의 종교였던 불교가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게 된 시기였다. 고려 말, 안으로는 부패한 지배세력으로 인해 피지배층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고, 밖으로는 이민족의 침략이 잦아 백성들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때 무장 이성계가 신흥사대부 세력과 힘을 합해 조선 왕조를 세우면서 귀족 종교였던 불교를 배척했고 신흥사대부가 수용한 성리학을 사회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억불숭유 정책으로 탄압받던 사찰은 이를 계기로 민초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타행 화엄 도량’인 부산의 범어사에 당시 절에 과도하게 부과된 부역 등을 타파하기 위해 아낌없이 보시하고 스스로 호랑이의 밥이 된 낙안 스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장 한국적인 문화원형으로서의 가치 재발견 ‘사찰 창건 설화’

    예로부터 가족 공동체의식이 강했던 우리 민족에게 ‘조상 숭배’는 가장 오래된 민간신앙 중 하나이다. 시체의 훼손을 방지하고 순장을 하거나 시체의 주거지인 명당에 대한 관념이 생긴 것은 유교나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조상 숭배’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원형이며 한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다. 사찰 창건 설화에는 특히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는 이야기가 유독 자주 등장한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이차돈이 순교한 이듬해인 528년(신라 법흥왕 15)에 법흥왕의 두 어머니, 영제 부인과 기윤 부인이 불국사를 창건하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574년(진흥왕 35)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을 중창하고 비구니가 된 뒤 불국사에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불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한 것으로 나오는데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우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혜능 대사의 법맥을 이어받은 쌍계사’를 세운 진감 선사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서 생선 장수를 하며 가족을 봉양하는 데 힘쓰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길러 주신 은혜를 오로지 힘으로써 보답하였으니, 이제 도의 뜻을 어찌 마음으로 구하지 않으랴.” 하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비명횡사한 아버지 사도세자가 늘 가슴에 맺혀 있었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장흥 보림사의 보경 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구천을 떠돌 아버지의 넋이라도 위로하고자 수원 화산華山에 천하의 길지가 있다는 말에 그곳에 절을 세우기로 하고 경기 양주에 있는 아버지의 묘를 옮겼다. 그렇게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지금의 융릉)이 조성되었고, 부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효행 근본 도량’ 용주사가 세워졌다.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친근한 ‘사찰 문화유산’ 해설서

    2018년 대한민국의 7개 사찰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한국 불교의 개방성을 대표하면서 승가공동체의 신앙·수행·일상생활의 중심지이자 승원으로서 기능을 유지해 온 점을 높이 산 결과라고 한다. 한국의 산지형 불교 사찰 유형을 대표하는 사찰들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며 불자는 물론 일반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산대찰이다.
    그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미술관을 관람하는 데 어려움이 없듯 우리나라의 산사는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지역 명소이자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휴식 공간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절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잠시나마 지친 마음을 내려놓기에 손색이 없다. 전국 명산대찰을 방문하는 순례객을 위한 ‘사찰 문화유산’ 해설서가 있다면 이 책 [천년 고찰 이야기]가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사찰 안의 전각, 탑 등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부터 절 이름에 담긴 창건 의의와 발원의 내용까지 읽다 보면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재미난 옛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정혜결사 발원 도량’ 거조암 영산전의 오백 나한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거조암에서 수행 중이던 도인 스님이 어느 날 가난한 농부의 밭을 지나가다 실수로 조 이삭 3개를 꺾었다. 한 해 동안 피땀 흘린 다른 사람의 노고와 소중한 생명을 망친 것에 대한 미안함에 소로 변한 스님은 그 집으로 들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 소를 보고 자신이 키우다 잃어버린 소라며 우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소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3년이 되던 어느 날 소가 주인을 향해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품삯 삼아 떠나기 전에 잔치나 한번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농부는 흔쾌히 잔치를 열고 사람들을 불렀는데, 어느 틈에 소에서 변신한 스님이 소 주인이라며 이 집에 찾아온 이들을 호령했다. 곧 인근의 도적 떼가 앞으로 나왔고, 스님의 추상같은 꾸짖음에 도적들 모두 스님을 따르기로 하고 거조암으로 갔다. 이후 거조암에서 불도를 닦은 도적 떼 모두 성불하여 오백 나한이 되었다고 한다.
    나당전쟁 중에 낙산 동쪽 바닷가에서 관음보살 진신을 친견한 의상 대사가 세운 낙산사에는 정취보살상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정취보살은 ‘한눈팔지 않고 꿋꿋이 용맹 정진하는 보살’로 [화엄경] 입법 계품에서 선재동자가 구법 행각을 할 때 29번째로 찾아간 보살이다. 가지산문을 개창한 범일 국사는 중국에서 한쪽 귀가 없는 신라 출신의 어린 스님을 만나 후일을 기약했으나 귀국 후에 까맣게 잊고 지내다 이후 꿈속에 어린 스님이 나타나 항의하자 허겁지겁 찾아 나섰다. 이때 우연히 만난 동네아이에게 인근 다리 밑 물속에 돌로 만든 보살상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범일 국사가 그곳에 찾아가 보살상을 꺼내 보았더니 왼쪽 귀가 떨어져 있는 것이 영락없는 그 어린 스님이었다. 스님이 바로 정취보살이었음을 깨달은 범일 스님은 불전 3칸을 짓고 보살상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05년 낙산사 화재 때 의상 스님의 관음보살상과 범일 스님의 정취보살상은 화마도 비껴갔다고 한다.

    목차

    서문 발원 길에서 만난 절 이야기

    1장_ 불두를 바다에 던져 불법이 시작되니
    불지종가 통도사
    백제 불교 첫 도래지 불갑사
    신라 불교 첫 도래지 도리사

    2장_ 절은 사람의 마음으로 짓는다
    항일 정신과 민족종교를 품은 조계사
    효행 근본 도량 용주사
    치열한 수행담이 이어져 오는 곳 신흥사
    부처님 법이 머물고 있는 법주사
    계룡산이 품은 사찰 갑사, 동학사, 마곡사, 신원사
    한국 불교의 선지종찰 수덕사
    마음이 곧 부처 직지사
    수천 년에 걸쳐 영험한 기도발이 이어지고 있는 사찰 동화사, 선본사
    인종의 태실 수호 사찰 은해사
    신라인의 불국을 염원한 불국사
    참된 모습이 물속에 비치는 경지 해인사
    혜능 대사의 법맥을 이어받은 쌍계사
    이타행 화엄 도량 범어사
    염라대왕도 인정한 참회의 성지 고운사
    미륵 신앙의 성지 금산사
    하얀 양의 깨달음이 서린 백양사
    조선 영조 대왕의 탄생 설화가 깃든 화엄사
    통일과 전쟁 종식을 바라며 세워진 조계산 선암사
    나라의 스승을 배출한 국사 도량 송광사
    다선일미 본향 대흥사
    묵은 영가 천도와 비결 도량 선운사 도솔암
    세조의 극락왕생을 발원한 봉선사

    3장_ 옛 절에는 용도 살고 돌 거북과 귀 없는 부처님도 살고
    정혜결사 발원 도량 거조암
    어둠을 밝히는 촛불 미륵 논산 관촉사
    대한불교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
    응무소주 이생기심 길상사
    화마도 범접하지 못한 낙산사 홍련암
    깨달음에는 차별이 없고, 승과 속이 따로 없다 내소사
    선량한 기운과 비밀이 숨어 있는 내장산 내장사
    기자에서 불자로 부처를 알리다 능인선원
    비보풍수 사찰 대견사
    태아령 기도 영험 도량 보성 대원사
    국사와 왕사를 배출한 월출산 도갑사
    큰 산, 큰스님 도봉산 망월사
    문수 신앙의 성지 문수사
    달마 대사가 왔다는 달마산 미황사
    민초와 함께한 결사 도량 강진 백련사
    무지갯빛이 서리는 적멸보궁 법흥사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기도처 보리암
    구산선문 중 첫 선문을 열다 가지산 보림사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 대한불교보문종 보문사
    관세음보살 영험담이 이어지는 석모도 보문사
    진묵 대사의 신화가 서린 봉서사
    결사로 선불교를 바로 세운 봉암사
    조선 불교의 맥을 되살린 강남 봉은사
    봉황이 머물고 왕이 찾아온 봉정사
    봉황이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 봉정암
    의상 대사를 호위한 선묘 보살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부석사
    조선 왕실 호위 사찰 불암사, 진관사, 삼막사, 승가사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지은 불회사
    원효·의상·도선·진각 스님이 수행한 사성암

    4장_ 마음을 쉬고 또 쉬면, 철로 된 나무에서도 꽃이 핀다
    삼국 통일 후 화합·통합·소통을 염원한 삼화사
    문수보살 영험 도량 상원사, 월정사
    고려와 조선 개국을 알린 상이암
    천년을 기다리며 향을 묻는 마음이 있는 수효사
    승가 대사를 기리는 승가사
    범종으로 일본의 기운을 꺾은 실상사
    땅속에 묻혀 있던 불상이 짓게 한 사찰 심복사, 용화사, 도피안사
    명당이라는 이유로 폐사된 비운의 사찰 고창 연기사
    백척간두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연주암, 연주대
    마애불이 중매쟁이가 된 홍은동 옥천암
    땀 흘려 중생의 아픔을 위로한 완주 송광사
    나반존자가 짐꾼으로 현신한 운문사 사리암
    와불이 서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 운주사
    사리 묘용이 숨겨져 있는 서울 종로 원각사
    생지장보살이 상주하는 사찰 연천 원심원사, 철원 심원사
    ‘패밀리 도통’의 산실 월명암
    병자들을 치유하는 약사 도량 장곡사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성 안의 절 전등사
    지팡이로 도를 증명한 사찰 정암사 외
    결초보은과 국혼 천도 도량 서울 진관사
    명필의 필체가 수호하고 있는 천은사
    7명의 왕자가 깨달음을 얻어 지은 칠불사
    관음 기도 발원에 답하는 해동용궁사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지는 향일암
    3대 화상을 배출한 국찰 회암사
    고구려 고승이 종교적 망명을 해서 세운 김제 흥복사
    조선 왕실 첫 원찰이자 한글 창제 씨앗 인연이 된 서울 흥천사

    본문중에서

    수많은 전란과 예기치 못한 화재로 소실될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우고 복원하는 그 발원들이 절박하고 간절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발원들로 세워진 절들을 마주 하고 있으니 실존하는 선지식들에 대한 또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불경에서 가르치는 마음의 또 다른 형상이 바로 우리 주변의 절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그 산과 절 이름을 새긴 편액에 먼저 시선이 간다. 처음에는 그냥 보이는 대로 보기만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절의 유구한 사연을 듣고 자료를 찾아본 다음부터는 절 이름에 담긴 간절한 발원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마치 우리 이름에 출생의 비밀과 삶의 바람이 담긴 것처럼.
    ( '발원 길에 만난 절 이야기' 중에서)

    마라난타 스님이 출발하기에 앞서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자 스승은 불두佛頭(부처님 머리상)를 건네면서 혹시 항해 중 풍랑을 만나면 이 불두를 바다에 던지라고 했다. 과연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가 되었지만, 스승의 당부대로 불두를 바다에 던지자 이내 바다가 잠잠해졌다. 이후 순탄한 항해 끝에 배가 닿은 곳이 지금의 굴비 산지로 유명한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 포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며칠 전 바다에 던진 불두가 먼저 포구에 도착해 있었다. 마치 불두가 배의 기착지를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한 것처럼.
    ( '백제 불교 첫 도래지 불갑사佛甲寺' 중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된 중국 명나라의 이여송 장군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조선국 속리산에 가면 거북 바위라는 돌이 있다. 그 거북 머리가 중국을 향하고 있어 중국의 재물이 조선으로 들어간다. 그곳을 찾아가서 짚신이 놓여 있지 않으면 곧 그 목을 쳐라.”
    같은 날 법주사의 스님들도 이상한 꿈을 꾸었다. 스님들 꿈에 거북이가 나타나서 자기 머리맡에 짚신을 놓아 달라고 했다. 스님들은 영문도 모른 채 며칠씩 바위 앞에 짚신을 가져다 놓았다. 한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쓸데없는 일인 듯싶어 짚신을 치워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여송 장군이 추래암 마애불 옆 거북 바위를 지나다가 꿈속 노인의 말대로 짚신이 보이지 않자 곧 목을 쳐버렸다고 한다.
    ( '부처님 법이 머물고 있는 법주사法住寺' 중에서)

    선종의 2대조 혜가慧可 스님이 달마 대사에게 물었다.
    “불도를 얻는 법이 무엇입니까?”
    달마 대사가 한마디로 대답했다.
    “마음을 보라.”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나고,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 행을 모두 갖추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 '마음이 곧 부처 직지사直指寺'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무덤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지공 화상이 나와 법을 말씀하고 의발과 신발을 전해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 나라 우두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너희들은 돌아가 별비보別裨補 대가람 해인사를 세우라.” 하고는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신라로 돌아온 두 스님은 우두산 동북쪽으로 고개를 넘고 다시 서쪽으로 내려가다가 사냥꾼들이 알려준 물 고인 데(지금의 대적광전 자리) 가서 풀을 깔고 앉아 선정에 들었는데, 이마에서 광명이 나와 붉은 기운이 하늘까지 뻗쳤다고 한다.
    ( '참된 모습이 물속에 비치는 경지 해인사海印寺' 중에서)

    또 진표 율사가 절터에 있던 커다란 연못을 메우고 미륵보살을 조성하려고 하자 이상하게도 흙으로 메운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연못이 파헤쳐지곤 했다. 연못에 사는 용이 방해한 것이었다. 이때 지장보살이 현신하여 진표 율사에게 방책을 알려주는데, 숯으로 연못을 메우면 용이 떠난다는 것이었다. 연못을 메우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숯이 필요했는데 마침 온 마을에 눈병이 돌았다. 진표 율사는 누구든지 연못에 숯을 한 짐 던져 놓고 그 물로 눈을 닦으며 눈병이 낫는다고 소문을 냈다. 신기하게도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연못 물을 적시면 눈병뿐이 아니라 온갖 병이 다 나았다.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순식간에 연못이 숯으로 메워졌다. 실제로 지난 1985년 미륵전 보수 공사를 위해 굴착기로 땅을 파는 과정에서 검은 숯이 나왔다고 한다.
    ( '미륵 신앙의 성지 금산사金山寺' 중에서)

    백양사의 사적기와 소요逍遙 대사의 비명碑銘에 따르면, 조선 선조 때 환양 선사가 백양사 경내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했다. 법회 3일째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산을 내려온 흰 양 한 마리가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그 흰 양이 나타났다.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을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해 가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양이 스님을 향해 절을 하였는데 이튿날 아침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고, 그 이후로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 '하얀 양의 깨달음이 서린 백양사白羊寺' 중에서)

    대호 선사는 3년 동안 나무를 목침만한 크기로 토막 내어 다듬기만 했다. 목수가 대들보와 서까래를 깎기는커녕 백날 나무토막만 깎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긴 사미승은 장난기가 발동해 그중 1개를 감추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대호 선사가 나무 깎기를 마치고 토막 개수를 세던 중 하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실력이 법당을 짓기에 부족하다며 아예 포기하려 하자 그 말에 놀란 사미승이 감춰 놓았던 나무토막을 얼른 내놓았다. 그러나 대호 선사는 부정 탄 재목을 쓸 수 없다며 끝내 토막 하나를 빼놓고 법당을 완성했다고 한다. 실제로 도 대웅보전 오른쪽 앞 천장의 나무토막 개수가 왼쪽과 비교해 1개 부족하다.
    ( '깨달음에는 차별이 없고 승과 속이 따로 없다 내소사來蘇寺' 중에서)

    1264년(고려 원종 5) 겨울이었다. 중국 남송에서 출발한 배 한 척이 달마산 동쪽 바다에 도착했다. 배에 탄 중국 고관이 이렇게 물었다.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고 하던데 이 산이 그 산인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자, 그는 달마산을 향해 예를 표하며 말했다.
    “우리 중국인들은 그 명성만 듣고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리 와서 실제로 보니 여기서 나고 자란 그대들이 부럽고 부럽도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 대사가 항상 머무를 만하구려.”
    고관은 달마산에 참배를 하고 전경을 화폭에 담아 갔다고 한다. 불교 학자들은 이 일화를 통해 고려 후기 미황사가 있던 달마산이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달마 대사가 왔다는 달마산 미황사美黃寺' 중에서)

    원효 대사가 수도를 마치고 이곳 향일암을 떠날 때, 불경이 너무 많아 바랑에 담을 수 없자 바다에 던졌는데, 경전들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바위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이 바위는 한 사람이 밀거나 열 사람이 밀어도 움직임은 똑같다고 한다. 바위를 한 번 흔들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거나 사경하는 것과 똑같이 공덕을 쌓는 것이란 전설이 있다. 근래에는 30년 넘게 영구암에서 시무하던 한 보살이 꼼짝도 못 하는 불치병에 걸렸으나 3일간 지성으로 관음 기도를 올리자 병이 크게 호전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지는 향일암向日庵' 중에서)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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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춘산春山
    대학 졸업 후 연합뉴스에 입사했다. 금융과 증권 등 주로 경제 기사를 쓰며 기자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러다가 하 수상한 시절, 뜻하지 않게 자회사 연합인포맥스 증권부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입었고 어둠 속 첩첩산중을 걷는 것 같았다. 이후 중견 그룹의 임원으로 재직하기도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기자였다. 다른 일에도 성과와 보람이 있었으나 어쩐지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글이 쓰고 싶었다.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람을 만나는 지면이 그리웠다. 그 무렵 가피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봉은사 월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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