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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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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고아」 윤보인 두 번째 장편소설!

  • 저 : 윤보인
  • 출판사 : 나무옆의자
  • 발행 : 2020년 04월 27일
  • 쪽수 : 24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157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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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 강렬한 소설은 우리를 환희로 끓어오르게 함과 동시에
    절벽 끝에 서 있게 한다. 따뜻한 파동이 몸을 극진하게 데워준다.”
    - 이병률 / 시인

    [밤의 고아] 윤보인 두 번째 장편소설!

    출판사 서평

    명리. 사람의 운명이지.
    그 인연, 참 짧다. 그치?

    기억할까. 내가 그를 찾아 헤매던 그 순간을.

    서울에서 뉴욕으로, 재령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쌍둥이 오빠의 죽음에서 비롯된 어떤 운명을 추적하는 이야기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소설집 [뱀](2011)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2014)를 펴낸 윤보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재령]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욕망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처연하게 그려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보다 전통적인 문법으로 사람의 운명이라는 헤아리기 어려운 주제를 탐사하는데, 그 바탕에는 사주 명리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인연의 부딪힘과 헤어짐,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며 예측할 수 없음이 곧 삶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화자는 “이 글은 서울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재령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사주팔자, 그 어떤 운명에 대해 추적하는 글이 될 것이다.”고 밝힌다. 화자가 처음으로 운명에 관심을 갖는 계기는 쌍둥이 오빠의 죽음이다. 같은 날, 단지 7분 차이로 태어났을 뿐인데 한 사람은 십대 후반에 사고로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남아서 죽은 자를 끝없이 추억해야 하는 삶의 비의에 눈뜨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 연락이 끊어진 상태여서 ‘나’는 오빠의 죽음을 뉴욕에 있는 큰아버지에게 알리는데, 그는 조카의 장례를 치른 후 나에게 뉴욕으로 올 것을 권한다. 의지할 곳 없는 나는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하고 뉴욕 큰아버지 집에서 살게 된다. 그로부터 큰아버지는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품 있고 그릇이 큰 어른이었다. 고향인 황해도 재령을 그리워하고 <황성옛터>를 즐겨 듣는 그는 유명한 역술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명리학을 공부했지만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 섣불리 말하는 법이 없었다.

    큰아버지의 품성. 내가 그의 집에 얹혀 있어도 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무례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에겐 어떤 통찰, 사람을 헤아리는 면이 있었고 너그러움과 꼿꼿함, 자존심 같은 게 배어 있었다. (중략) 나는 그에게서 인생을 배웠고 삶의 깊이를 배운 셈이었다.
    (/ p.204)

    큰아버지는 재령으로 가려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나에게 훗날 “이쪽 공부”를 하면 삶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게 될 것이라 예감하지 못했지만 결국 사랑하게 된 운명

    큰아버지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청년 박재령 또한 나의 삶을 뒤흔든 한 사람이다.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푸드 코트에서 일하며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그는 큰아버지에게 역학을 배웠고 재령이라는 이름도 큰아버지가 새로 지어준 것이었다. 처음 만난 날 나에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물어보고는 “그대여 간난사를 말하지 마오. 눈 속의 봄은 멀지 않았으니.”라는 시를 적어준 사람. 뉴욕에 와서 고독하고 쓸쓸하던 나는 박재령과 짧은 대화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면서 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고 있음을 느낀다.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고요한 호수 같은 그에게 나는 조금씩 다가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의 옆에 명진애가 있기 때문이다. 명진애는 박재령에게 적극적이다 못해 집착적인 애정을 표현하는데 그 방식이 자못 위협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런 명진애를 박재령은 늘 아무 반응 없이 피하기만 하는데, 상대가 자기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명진애는 박재령에게 횡포를 부리고 떠나버린다.
    명진애가 사라진 후 박재령이 대학에 합격해 보스턴으로 가자 나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박재령에 대한 사랑이 소리 없이 깊어질 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가 명진애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어떤 연유로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차라리 박재령이 명진애를 사랑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얼마 후 그들이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명진애는 큰아버지 집을 찾아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니, 돌연 쌍둥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가버린다.
    나는 위암 선고를 받은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리고 돌아가신 후 장례식을 치르면서 박재령과 다시 만난다. 무언가 체념한 듯한 그는 “나는 그 애를 사랑하지 않아.”라며 엉켜버린 자신의 삶에 대해 토로하고는 이렇게 당부한다. “너는 자유롭게 살아.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아. 삶을 살아. 죽음 속으로 걸어가지 마.”
    그 후 나는 박재령을 만나기 위해 보스턴으로 간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멀리서 그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싶어서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 같은 것은 언급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를 대한다. 그것이 최선이고 그에 대한 예의이기에. 타인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 것, 어느 순간 작별한다 할지라도 그를 부서지게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을 행하고 싶었기에.
    사랑하게 될 것이라 예감하지 못했지만 결국 사랑하게 된 사람. 누군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추위에 떠는 사람. 나는 박재령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운명이라 생각한다.

    손끝에 인연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바라보는 눈 속에 인연이 있는가. 당신을 부르는 나의 음성에 인연이 있는가. 후려치듯 불어오는 바람에, 그 속에 인연이 있는가. 아마도 당신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눈물 속에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인연이 깊어지면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 속에 비밀이 있는 것 같다.
    (/ p.224)

    사주 명리, 겸허하게 삶과 인간을 이해하는 원리
    사무치게 다가온 인연들과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비의에 대하여


    나는 열아홉 어린 나이에 바다를 건너 뉴욕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인생의 여러 일들을 겪으며 운명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어머니는 어찌하여 그토록 모진 고생을 감내하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을까. 아버지는 어찌하여 자수성가한 형들과 달리 그토록 정처 없이 가난하게 떠돌아야 했을까. 어떤 경우 한평생 부를 취하며 어떤 경우에 가난을 면치 못하는가. 만약 처음부터 그런 게 정해져 있는 거라면, 좀 잔인한 일이 아닌가. 나의 오빠는 어찌하여 다른 젊은이들처럼 이 도시를 멋지게 걸어 다니지 못하는가.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모든 것이 운명이고 팔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명진애는 어찌하여 박재령을 그토록 원했을까. 박재령은 왜 그토록 악연을 피하려 했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했을까. 사촌 언니는 왜 한눈에도 인연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여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더니 몇 달 만에 이혼하는가. 나는 어찌하여 박재령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큰아버지가 당부한 것처럼 나는 명리를 공부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의문에 답할 수는 없다. 소설에는 주요 인물들의 사주 명식과 그 풀이가 나오는데 그것으로 한 사람의 성향과 인생 궤적을 조금 읽을 수 있을 뿐 운명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의 무수한 언덕과 골짜기를 통과하며 삶과 죽음의 엇갈림, 상실과 아픔을 경험하다 보면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으며, 그런 순간들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과 의지가 삶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동기임을 깨닫게 된다.

    명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학문이 아니며 많은 인내와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인생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그것을 안쓰럽게 여기는 넓은 마음가짐과 냉정한 자기 판단, 통찰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운명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산과 펼쳐진 길과 흙과 물과 빛과 어둠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p.107)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그 순환 속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그 속에 비의가 있고 눈물이 있고 운명이 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 p.235)

    작가는 명리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 및 측은지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한 인식이 부재할 때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겸허한 원리는 자칫 혹세무민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소설 곳곳에 박힌 아름다운 문장들은 가슴이 아릴 정도로 생의 비밀과 본질을 꿰뚫어본다. 사무치게 다가온 인연들을 더듬는 작가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시선은 조금 쓸쓸하면서도 퍽 따뜻하다.

    추천사

    누가 옆에 있는가. 누가 옆을 채우는가. 누가 스치는가, 누가 겹치는가.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을 믿지만 또 운명이라는 말을 미워해왔다. 당신이 운명의 지도를 따르면서 사는 사람인지 지도를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사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을 때 이 소설은 머리를 친다. 당신이 살아야 할, 살아내야 할 지도는 어디에 있는가. 이 강렬한 소설 『재령』은 우리를 환희로 끓어오르게 함과 동시에 절벽 끝에 서 있게 한다. 따뜻한 파동이 몸을 극진하게 데워준다. 이 소설처럼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생의 인기척들을 한 겹 한 겹 벗겨낼 수 있다면, 그것도 마치 유적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이 생에 남기고 간다 할지라도 그 비밀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구원이며, 아모르 파티(운명애/amor fati)겠다.
    - 이병률 / 시인

    목차

    소한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입춘 눈 속의 봄은 멀지 않았으니
    망종 사랑을 갈구하며 찾아다니는
    처서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
    우수 밤에 태어난 사람, 그 인연
    소설 쓸쓸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대한 굳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 없기를
    백로 오랜 시간을 뉴욕에서 살다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재령. 그리움과 애틋함을 환기시키는 이름이라는 것. 향수와 고독과 안쓰러움과 연민을 떠올리는 이름이라는 것. 불현듯 박재령을 큰아버지 가족들로부터 밀어내고 싶었으나 내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멀리 한국에서 자신의 조카가 왔을 때는 호들갑스럽게 맞아주거나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지은 적이 없으면서 별 볼일 없는 청년에게 왜 이리 따뜻한가. 그렇다고 큰아버지가 나에게 냉정하거나 무심했던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나를 볼 때마다 한국 어딘가에 숨어 있을, 몹시 찌그러진 상태로 살고 있을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자 문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p.37)

    사주는 완성된 학문이 아니며 그 운명의 궤적을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우리가 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그릇이 어떤지 깨닫고 나아갈 지침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나아가는 지점과 물러서는 지점을 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이다.
    (/ p.50)

    나는 박재령과 명진애를 보면서 그들의 관계가 참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박재령은 조용한 호수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사람이었고 명진애는 다가와서 그 호수에 유리 조각을 던지고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꼬챙이로 찔러보고 달아난다는 느낌. 그녀는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는지 언제나 확인하려고 했고, 혹시 그가 조금이라도 무너졌는지 살피려고 했다. 사랑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한다면, 상대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것 아닌가. 명진애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 p.116)

    사랑이었을까.
    그가 뉴욕을 떠나기 전날, 나는 무작정 그의 집 앞으로 찾아갔다.
    그가 사는 아파트 방 불은 꺼져 있었다. 어디 간 걸까. 미리 연락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나에게도 책임은 있었다. 그냥 돌아간다 해도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한두 시간 밖에서 서성거리다 결국 상심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현관 앞에 박재령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거실에 들어섰을 때, 박재령은 큰아버지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에 있었구나. 갑자기 어떤 울음이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것 같아 나는 그들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이층으로 올라가서 몸을 숨겼다.
    (/ p.126~127)

    세상에 인연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박재령과 나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가 떠난 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언제부터 그가 내 곁에 있었다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머물러 있던 자리에 다른 직원이 들어왔고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박재령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떠난 사람은 새로운 장소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봄이 찾아오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질 때쯤 나는 거리를 걸으며 한 남자를 찾으려 했다.
    누군가를 그토록 그리워하고 오래 생각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 p.132)

    그가 나에게 적어주었던 시 구절. 그러나 가난하고 아픈 기억을 그가 더 얹어준 셈이었다. 어떤 회한속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어떤 언덕과 언덕의 안개, 안개 속의 풍경, 풍경 속의 철창, 철창 속의 또 다른 감옥, 감옥 속의 구름, 구름 속의 뼈, 뼈 속의 피였다. 나는 어떤 신음을, 마음의 조급함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혼자 감당해내려고 했다. 단지 누군가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 대상이 박재령이었을 뿐인데, 느닷없는 괴로움을 느끼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의 달콤함 속에 수치가 있었고 수치 속에 괴로움이 있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형벌인가. 죄인가.
    (/ p.169)

    운명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인간에 대한 통찰과 신뢰, 삶을 대하는 겸허한 자세가 겸비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혹세무민으로 취급당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혹세무민이고 무엇이 혹세무민이 아닌가. 무엇이 길한 것이고 무엇이 흉한 것인가. 무엇이 넘치는 것이고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그 유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건 인생의 이치를 다 깨우쳤다는 뜻인가. 사주 명리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저 완성되어가는 하나의 과정 속에 있는 것뿐이다.
    (/ p.178)

    그의 말대로 외국으로 와서 무엇을 얻었나. 무엇을 잃었나. 아니 이것은 나의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는 것. 누구의 조언이 아니라 누구의 부탁이 아니라 내 의지대로 살아왔다는 생각, 결국 내가 선택한 삶이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고 몇 번의 슬픔과 몇 번의 기쁨과 몇 번의 빛이 오갔던 것뿐이었다. 삶은 계속되고 시간은 흐른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p.234)

    그곳에는 어떤 나무와 꽃이 피는가, 재령. 풀이 돋아나고 무덤이 있는가. 어떤 노을과 바람이 기다리나. 어떤 눈송이와 어떤 봄비가 사람을 적시나. 어떤 철새들이 날아다니나. 지난한 시절을 지나 멀리 이곳으로, 우수와 경칩을 지나, 소서와 대서를 지나, 한로로, 소설로, 너무 아픈 소설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독한 추위가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한번은, 부디 죽음 속에서 삶을 기억하듯이, 새들이 혹한의 계절을 피해 다시 날아오르듯이, 도저한 인생의 한복판으로,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그 속에 삶과 죽음이 있듯이, 가난과 추억과 상실과 베이는 아픔이 있듯이, 다시 한번 그곳으로,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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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9~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4종
    판매수 165권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뱀]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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