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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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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망명과 자긍심]은 1999년 초판이 발간된 이후 2009년과 2015년에 두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읽혀온 책이다. 영미권에서는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장애학, 퀴어학, 여성학, 젠더학 수업의 필독서로 쓰이고 있다. 또 「옮긴이 후기」에서는 ‘크립’, ‘프릭’, ‘트랜스’, ‘젠더퀴어’ 등 책에 등장하는 소수자 관련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다양한 운동 들 간 연대의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특히 이 책의 강점은 저자 일라이 클레어의 독특한 위치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노동계급 마을 출신의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 친족 성폭력 생존자,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젠더퀴어 정체성을 지닌 소수자로서 살아왔다. 저자는 수많은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자신의 몸에 대해 성찰한다. 이러한 다층성은 자연스레 단일 쟁점에 매몰되지 않는 시각을 열어주며, 연대를 통한 다중 쟁점 정치, 교차성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출판사 서평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
퀴어, 장애, 페미니즘, 환경, 계급을 넘나드는 교차성 정치의 교과서
장애인 퀴어 페미니스트가 써내려간 치열한 저항의 사유


소수자를 둘러싼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한편에서는 소수자 의제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으로 치부된다. 주류의 시선에서 다양한 소수자를 둘러싼 문제는 언제나 골칫거리 혹은 ‘나중’으로 미뤄져도 되는 것처럼 취급되거나 아예 비가시화되곤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소수자 운동의 이름으로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배척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최근 한 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논쟁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단일한 쟁점에 갇혀 소수자 억압을 하나의 기제로만 파악하려 하며 연대를 거부하기도 한다.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은 이러한 상황을 넘어서, 젠더, 계급, 인종, 장애 여부가 교차하는 지점을 복합적으로 파악하고 각기 다른 주제로 투쟁하는 운동 사이의 연대에 기초한 ‘교차성 정치’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연대와 제휴가 어떻게 가능하고 왜 반드시 필요한지를 다각도로 설득하며, 이 세상의 모든 복잡다단함을 반영하는 정치를 구축하는 것이 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인지를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의 강점은 저자 일라이 클레어의 독특한 위치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노동계급 마을 출신의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 친족 성폭력 생존자,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젠더퀴어 정체성을 지닌 소수자로서 살아왔다. 저자는 수많은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자신의 몸에 대해 성찰한다. 이러한 다층성은 자연스레 단일 쟁점에 매몰되지 않는 시각을 열어주며, 연대를 통한 다중 쟁점 정치, 교차성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망명과 자긍심]은 1999년 초판이 발간된 이후 2009년과 2015년에 두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읽혀온 책이다. 영미권에서는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장애학, 퀴어학, 여성학, 젠더학 수업의 필독서로 쓰이고 있다. 또 「옮긴이 후기」에서는 ‘크립’, ‘프릭’, ‘트랜스’, ‘젠더퀴어’ 등 책에 등장하는 소수자 관련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다양한 운동 들 간 연대의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운동은 어떻게 서로 적대하게 되는가?
세상의 모든 복잡다단함을 반영하기 위하여


하나의 쟁점에만 몰두하는 정치는 때로 편협한 시각과 운동들 사이의 적대를 낳는다. 일라이 클레어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비장애 중심주의, 인종주의, 제국주의가 서로 협력하고 있는데, 이를 보지 않고 한 가지 억압에만 몰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길을 열지 못하고 심지어 다른 억압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특정 쟁점에만 몰두하는 운동이 어떻게 적개심을 부추기고 다른 차별과 착취를 무시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탐욕적인 목재 회사에 의한 산림 파괴에 저항하는 환경운동가들은 때때로 벌목 노동자들을 “멍청한 짐승” 혹은 산림을 파괴하는 “목재 산업을 방조하는 충성스러운 짐승”(116쪽)처럼 묘사한다. 이러한 관점은 벌목 노동자들 역시 자본주의적 착취의 대상이자, 산림 파괴에 의해 줄어든 일자리로 생계의 위협을 받는 희생자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또 이는 무차별적인 자원 개발의 혜택을 누린 우리 모두가 공모자였다는 점을 지워버리고, 마치 벌목 노동자들에게 우리보다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양 떠넘기게 만들며, 벌목업 경영자들이 그러한 혐오 뒤에 숨게 돕는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화보에 등장한 하반신마비 장애인 엘런 스톨을 둘러싼 논쟁은 페미니즘과 장애 문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장애인을 무성적인 존재로 대하는 시각 사이의 간극들을 드러낸다. 저자는 엘런과 그를 지지하는 장애 활동가들을 비판했던 비장애인 페미니스트들에게 되묻는다. 장애인들이 “젠더도 없고 무성적인, 욕망할 만하지 않은 존재”(231쪽)로 취급받는 인식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있는지, 그들이 상정하고 있는 여성이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여성’을 의미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계급, 인종, 성적 지향, 젠더, 장애가 엮인 그물망”을 보지 못하고, “트랜스섹슈얼리티와 트랜스젠더 경험을 무시하고 트랜스 여성을 비난하는”(232쪽) 시각을 드러내는 게 아닌지 묻는 것이다.

착취와 억압의 역사적 계보 그리기
‘프릭 쇼’에서 ‘의료화’로의 이행은 과연 진보인가?


일라이 클레어는 착취와 억압의 더 깊은 근원을 찾기 위해 역사적 탐구로 나아간다. 예컨대 자본주의적 환경 파괴의 근원을 들여다보기 위해 미국 개척사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읽어내고, 오늘날 장애를 보는 편견의 시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프릭 쇼’와 ‘의료화’의 과정을 따라간다.

미국 자본주의가 드러내는 탐욕의 기원은 서부 정복 과정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유럽계 백인 미국인은 자원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차 미국 북서부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이윤을 쫓아 모피, 농경지, 황금, 목재를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을 학살하고 마을을 세웠다. 이러한 과정을 가능하게 한 이면에는 특정한 세계관, 즉 자원이 무한하다는 생각, 특정한 탐욕을 당연시하는 시각, 인종차별주의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일라이 클레어는 이런 세계관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이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닌 자본주의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세계관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임시 처방이 아니라,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신념, 정책, 관행을 바꿔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때문에 삶의 기반이 흔들린 마을과 사람들에 대한 책임까지도 고려해야만 한다.

‘프릭 쇼’와 ‘의료화’의 역사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맹목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어온 과정을 보여주며, 오늘날 장애인을 보는 시선이 과거에 비해 정말 ‘진보’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프릭 쇼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 즉 장애인, 유색인, 혹은 외적으로 특이한 사람들을 돈을 받고 전시했던 것을 가리킨다. 일라이 클레어는 프릭 쇼가 비장애 중심주의와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주의에 기반한 끔찍한 착취였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후에 이뤄진 것처럼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는 식의 ‘의료화’가 진보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흥행사와 프릭은 ‘시골뜨기’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공모하기도 했으며, 당시 장애인에게 프릭 쇼는 ‘유일한’ 일자리이기도 했다. 반면 오늘날 장애를 분석하는 지배적인 모델인 의료적 모델은 장애를 병리적인 것으로 만들고, 동정과 비극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장애인을 자립이 불가능한 무능한 존재로 여겨, 그저 시설에 모아놓고 ‘보호’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프릭 쇼’의 대안은 ‘의료화’가 될 수 없다. 일상적 억압을 끝장내기 위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되는 것이다.

교차하는 정체성 위의 사유
자본주의적 억압에 둔감한 퀴어 운동을 비판하다


일라이 클레어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나, 시골의 벌목 노동자 마을에서 자라났다. 어릴 적 아버지와 그 주변인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성폭력 생존자이며,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젠더퀴어로서 살아왔다. 저자는 이처럼 수많은 소수성이 교차하는 독특한 위치의 당사자로서, 흔히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간과되곤 하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경계를 교차하고 넘어서는 사유를 펼쳐낸다.

그는 퀴어 운동이 지나치게 도시적인 정체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시골에서 자신을 숨기고 살던 퀴어가 도시로 나와 커밍아웃하고 햇살 아래 살아간다’는 전형적인 퀴어 해방 서사는 퀴어 인프라가 도시에 집중되는 것을 허용하게 만들고, 시골은 퀴어 혐오의 공간으로 낙인찍어버린다. 이는 시골 노동계급의 가난한 퀴어들이 고립되게 만들고, 좀 더 넓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퀴어 운동이 자본주의적 억압에 대해 둔감하지 않은지, 심지어 그것에 동조하고 편입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는 건 아닌지도 묻는다. 일라이 클레어는 1969년 뉴욕 맨해튼에서 벌어진 기념비적인 성소수자 투쟁인 ‘스톤월 항쟁’ 25주년 행사가 원래의 저항성을 잃은 자본주의적 “호화 쇼”(104쪽)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특정한 퀴어 운동이 중산층과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왜 그런 햇사에서 창출되는 돈이 가난한 노동계급 퀴어에게는 돌아가지 않는지를 묻는다.

혐오와 동정을 넘어
‘집으로서의 몸’을 되찾기 위하여


퀴어 정체성과 페미니즘, 계급과 환경을 오가는 일라이 클레어의 급진적 사유가 시작되는 곳은 다름 아닌 ‘몸’이다. 일라이 클레어는 차별과 억압 속에서 “집으로서의 몸”(57~61쪽)을 박탈당하고 도둑맞았다는 “망명”의 감각으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정체성에 대한 오랜 탐구 끝에 자신이 자리 잡은 퀴어 공동체 역시 오롯이 ‘집’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며, 심지어 성적 학대의 공간이자 퀴어에 대한 억압의 공간인 시골 역시 “집으로서의 몸”의 일부라고 고백한다.

수많은 소수성이 교차하는 몸에 대한 사유는, 결코 하나의 소수성의 해방만으로는 집과 우리 몸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젠더는 장애에 다다른다. 장애는 계급을 둘러싼다. 계급은 학대에 맞서려 안간힘을 쓴다. 학대는 섹슈얼리티를 향해 으르렁댄다. 섹슈얼리티는 인종 위에 포개진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한 사람의 몸 안에 쌓인다. 정체성의 그 어떤 측면에 대해서든, 몸의 그 어떤 측면에 대해서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미로 전체에 대해 쓴다는 뜻이다.”(248쪽)

해방이란 곧 특정한 억압이 아닌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일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 없이 동성결혼을 통해 주류에 편입되는 것을 퀴어 해방이라고 할 수 없다.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 없는 환경운동은 “치명적인 상처에 반창고만 붙여놓는”(139쪽) 임시 처방이 돼버린다. 장애인을 무성화하고 아이 취급하는 시선에 대한 성찰 없이는 여성 대상화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은 반쪽짜리일 뿐이다.

따라서 결국 우리의 몸을 되찾는 일, 내면화된 억압에 맞서 “자기혐오를 자긍심으로 바꾸는”(196쪽) 근본적인 저항은 다양한 운동 간의 연대에 기반한 교차성 정치를 통해서 가능하다. [망명과 자긍심]은 우리에게 그 해방의 시작을 위한 “무모하고 대담한 이야기”(279쪽)를 우리에게 건넨다.

추천사

“근본적인 세계의 언어로, 인간의 복잡한 교차성을 기술하고, 잔혹함을 그 반대의 것으로―생명을 살리는 강력한 치료제로 변형시킨다.”
- 앨리슨 벡델 / [펀 홈: 가족 희비극] 저자

“일라이의 글은 당신의 내부에서, 당신이 균형을 잡고 있는 곳 바로 옆에서 폭발한다.”
- 앰버 L. 홀리보(Amber L. Hollibaugh) / [내 위험한 욕망: 퀴어 소녀는 집으로 가는 길을 꿈꾼다(My Dangerous Desires: A Queer Girl Dreaming Her Way Home)] 저자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은 (…) 우리에게 정체성 정치를 넘어 사유해보라는 난제를 던진다. 이 아홉 편의 서로 연결된 에세이들은 퀴어와 장애만이 아니라 계급, 인종, 도시와 지방의 구분, 젠더 정체성, 성적 학대, 환경 파괴, 그리고 집의 의미까지 탐구함으로써 범주화에 저항한다. (…) 클레어는 단일 쟁점만 다루는 운동으로 서로 분열된 현재의 정치 상황 너머로 우리를 데려갈 광범위한 교차성 정치의 비전을 제공한다.”
- 레이철 로젠블룸(Rachel Rosenbloom) / "여성들의 북 리뷰(The Women’s Review of Books)"

“우리를 가장 감동시키는 책은 우리가 겪은 일을 이해하게끔 도와주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로운 통찰, 새로운 분석으로 조합하여 우리 자신과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다. 나에게는 오드르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에이드리엔 리치의 [거짓말과 비밀과 침묵에 대하여]가 그런 책이었고, 다른 중요한 책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이 있다.”
- 수잰 파(Suzanne Pharr) / [호모포비아: 성차별주의의 무기(Homophobia: A Weapon of Sexism)] 저자

목차

3판 추천의 글 _아우로라 레빈스 모랄레스
[2판 서문] 단일 쟁점 정치에 도전하다: 10년 뒤의 회고
젠더에 대한 소고, 혹은 왜 이 백인 사내가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에 관해 썼는가?



1부 장소
개벌: 거리를 설명하기
집을 잃는다는 것
개벌: 짐승과 범퍼 스티커
개벌: 막다른 길
카지노: 에필로그

2부 몸
프릭과 퀴어
결을 가로질러 읽기
주머니 속의 돌, 심장 속의 돌

감사의 말
2판 후기 _딘 스페이드
옮긴이 후기
미주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불행히도 장애 또는 비장애 진보 운동 단체 중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를 포괄하는 의제에 장애 정치를 깊숙이 새겨 넣는 다중 쟁점적 사유와 조직화에 참여하는 단체는 많지 않다. 최근 ADAPT 집회에서 나는 “교도소가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살아봐라”라고 적힌 전단지를 보았다. 이 하나의 단순한 슬로건에서 장애 활동가들은 어떤 시설과 억압이 더 심각한지 줄 세우는 위계를 만들었고, 단 하나의 초점으로만 장애를 정의했으며, 교도소 투옥 방식이 특히 유색인 공동체에게 뼛속 깊이 상해를 입히는 방식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는 걸 드러냈다. 이 슬로건과 그 배후의 장애 정치는 교도소와 장애인 수용 시설의 비통함과 잔혹함을 양쪽 다 아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적인 복잡함을 연결하고 고민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 '[2판 서문] 단일 쟁점 정치에 도전하다: 10년 뒤의 회고' 중에서/ p.30)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몸들이 도둑맞고, 거짓과 독을 주입받고, 우리로부터 억지로 떼어내질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몸들은 내 주변에서 봉기한다―굶주림, 전쟁, 유방암, 에이즈, 강간에 도둑맞은 몸들이, 공장, 열악한 작업장, 통조림 공장, 제재소의 고된 일과에 도둑맞은 몸들이, 집단 폭행을 할 때 묶는 밧줄, 꽁꽁 얼어붙은 거리, 시설과 교도소에 도둑맞은 몸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드랙 행위예술가 레너드/린 바인스는 볼티모어 인근을 걷다가 “드랙퀸 호모 썅년”이라는 말을 듣고 여섯 방의 총을 맞았다. 젊은 백인 게이 매트 셰퍼드는 와이오밍주의 울타리 기둥에 묶인 채 맞아죽었다. 어떤 몸은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 외에 다른 몸은 망연자실하여, 버려진 채로, 자기혐오로 가득 차 살아간다. 양쪽 다 도둑맞은 것이다. 장애인에게는 슈퍼장애인 아니면 비극의 역할만 주어진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랜스는 뒤틀렸고 부자연스럽다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이 자기 책임이라는 말을 신물나게 듣는다. 고정관념과 거짓말은 총알처럼 확실하게 우리 몸에 박힌다. 그러고는 우리 몸 안에 남아서 곪아간다. 그렇게 우리 몸을 도둑질한다.
( '산' 중에서/ p.60)

어째서 ‘스톤월 25’와 그와 비슷한 행사에서 창출되는 돈은 노동계급의 가난한 퀴어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는가? 어째서 돈은 도시에 머무르는가?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 LGBT 청소년 서비스, 혐오범죄 감시 프로그램, 퀴어 극장을 오리건 시골의 산속, 네브래스카 시골의 옥수수 밭, 사우스캐롤라이나 시골의 저지대에 두면 어떠한가? 차례로 반反동성애 지역 조례들이 통과되는 오리건의 작은 마을들로부터 우리는 집단적으로 등을 돌려온 건 아닌가?
( '집을 잃는다는 것' 중에서/ p.104)

비난은 훨씬 쉽다. 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 환경운동가들이 점박이올빼미와 환경 파괴에 대해 논할 때, 벌목 노동자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석유 굴착이든 석탄 채굴이든 벌목이든 간에 궂은일을 하는 대부분의 노동계급 사람들처럼, 벌목 노동자는 쉽게 갖다 쓸 수 있는 상징이다. 반면에 일반적인 미국 기업이 그렇듯, 벌목 회사 중역들은 교묘하게 외부의 관심과 접근을 피하는 데 상당한 시간, 에너지, 돈을 쓴다. 백인 중산층 활동가들은 작업용 장화에 플란넬 셔츠를 입고 전기톱을 다루는 노동계급 남성 노동자들을 마주할 때, 정장을 입고 세계를 조종하는 부유한 백인 남성 사업가에 대해선 너무 쉽게 잊는다.
( '개벌: 막다른 길' 중에서/ pp.131~132)

프릭은 프릭 쇼에서의 착취와 전복이 복잡하게 엉킨 집단적 역사로 내게 그늘을 드리운다. 나는 빤히 쳐다보고 싶어 하는 백인과 비장애인들로부터 이득을 취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즐겁다. 나는 한때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자랑스레 과시하고 공연하고 과장하고서 돈을 받았다는 점을 사랑한다. 동시에 나는 프릭 쇼가 장애인과 유색인 비장애인에 관한 해로운 거짓말을 강화했던 방식을 증오한다. 나는 흥행사들이 사람들을 사고 납치해서 프릭 쇼로 끌고 오게 한 인종차별주의, 비장애 중심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를 경멸한다. 나는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적은 기회만이 주어졌는가에 분노한다.
( '프릭과 퀴어' 중에서/ p.200)

그러나 아직 장애인들은 그 세상에서 우리 섹슈얼리티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젠더도 없고 무성적인, 욕망할 만하지 않은 존재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먼저 젠더에 대해, 그리고 젠더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 여성(female)이면서 장애인이면, 그다지 여자(woman)로 보이지 않는다. 남성(male)이면서 장애인이면, 그다지 남자(man)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엉덩이를 흔들고 손짓을 하고 말하면서 입과 눈을 움직이고 몸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들은 모두 젠더를 정의하는 데 일조하는 무의식적인 버릇이고, 이것들 모두 비장애인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탕으로 한다. 목발로 걷는 여성은 ‘여자’처럼 걷지 않는다. 휠체어를 타고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는 남성은 ‘남자’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젠더의 구성은 남성과 여성의 몸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의 몸에도 의존한다.
( '결을 가로질러 읽기' 중에서/ p.229)

부치 여성과, 펨 다이크와, 여성스러운 남성과, 근육질 호모와, 급진적 요정들과, 드랙퀸이나 드랙킹과, 여자나 남자가 되는 것 이상은 원하지 않는 트랜스섹슈얼과, 인터섹스와, 트랜스젠더와, 팬젠더와, 바이젠더와, 폴리젠더와, 젠더가 없는 사람들과, 안드로진과,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자. 웃고 울고 이야기하자. 도둑맞은 몸과 더 이상은 여기 없는 몸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나누자. 잘못된 이미지와 우리를 고갈시키는 거짓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에 관한 분노케 하는 이야기를 나누자. 우리 몸을 되찾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한 무모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나누자.
( '주머니 속의 돌, 심장 속의 돌' 중에서/ pp.278~279)

저자소개

일라이 클레어(Eli Clar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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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뇌병변 장애인, 젠더퀴어, 페미니스트,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서 살면서, 장애·환경·퀴어·노동운동가이자 시인,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당사자로서 사려 깊은 시선과 분석가로서 냉철한 비판을 오가는 글을 통해, 퀴어, 장애, 환경, 페미니즘, 계급, 인종 문제의 복잡한 얽힘을 성찰한다. 또한 단일 쟁점에 매몰되는 정치가 아닌 광범위한 교차성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연대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한다. 이 책 『망명과 자긍심』(1990)은 일라이 클레어의 대표작으로, 출간 이후 지금까지 장애학, 퀴어학, 여성학 분야에서 주요 저서이자 교재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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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자. 『섹스화된 몸: 엘리자베스 그로츠와 주디스 버틀러의 육체적 페미니즘』(2010),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2018, 공저)를 썼고, 아픈 사람, 퀴어, 장애, 행위성,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번역하고 강의한다. 감사하게도 삶에 행복을 끝없이 공급해주는 개 왓슨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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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몸을 평가하거나 분류하는 획일적 기준을 문제시하고 흐트러뜨리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함께 움직인다. 경계, 비정상, 몸이 주된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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