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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엿보다 : 정재곤의 정신분석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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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정재곤
  • 출판사 : 궁리출판사
  • 발행 : 2020년 03월 17일
  • 쪽수 : 29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8206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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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얼마 전 카페에서 엿듣게 된 한 젊은 여성의 말이다. 그녀는 또래의 다른 젊은 여성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돈 때문에 그 남자와 결혼한다고? 천만에, 그 남자가 얼마나 진국인데……” 아마도 문제의 여성은 결혼하기로 작정한 남성을 돈 때문이 아니라 그 남성의 뛰어난 품성이나 인품 때문에 선택했음을 말하고 싶어 한 듯하다. 하지만 단련된 귀를 가진 필자에게는 그녀가 돈 때문에 그 남성을 선택했다는 말로 들린다. 그녀가 자아의 방어기제 중 하나로 꼽히는 ‘부인(否認, negation)’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는 돈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의식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도저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에(“천만에”) 이와 같은 절충의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즉 이 여성은 이 말을 하는 순간 ‘자아’가 둘로 쪼개져 서로 갈등을 벌이는 중이다. 속된 표현으로 “내 마음, 나도 몰라”의 상황인 것이다.
    사르트르라면 ‘자기기만’이라 불렀을 이 같은 상황은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기만으로 포장되기에 앞서 뿌리 깊은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정신세계가 빙산이라면 의식은 그저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 숨은 무의식이야말로 빙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의 진정한 ‘자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아의 방어기제가 어디 부인뿐일까? 억압과 억제, 검열, 자기 합리화, 동일화, 투사, 승화, 전위……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차고 넘치지 않은가?
    ( '본문' 중에서)

    문학박사, 사회심리학자 정재곤의 첫 산문집!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새롭고 흥미롭게 풀어낸
    나와 너, 우리, 사회와 문화 이야기

    "참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찾기 위한 여행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문학과 정신분석, 심리치료 전문가로 활동해온 정재곤의 첫 책 [나를 엿보다]가 출간됐다. 책은 지난 20여 년간 저자가 일상과 사회, 문화와 문화 차이, 가족과 자녀 교육, 나와 타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사유해온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이제까지 겪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새롭고 흥미롭게 풀어내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심리치료의 다양한 국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길 원한다. 하지만 행복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나는 짧은 순간이나마 매일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주변을 살필 때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보다 잘 살필 수 있게 해주는 돋보기가 필요하고 졸보기도 필요하다. 바로 심리학이 유행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에 나의 작지만 큰 소망을 펼쳐놓고자 한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하고 생각했던 개인과 타자, 사회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독자들의 가슴속 연못에 조그만 조약돌을 던져본다.”
    ( '저자의 말' 중에서)

    나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해, 우리 사회를 바로 보기 위해,
    짧은 순간이나마 매일 한 차례라도,
    타자의 눈, 바깥의 시선으로, 나를 엿볼 수 있기를!

    저자 정재곤은 서울대학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에 대한 정신분석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만큼이나 정신분석학에 깊이 빠져들었던 그는 2010년 53세의 나이에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좀 더 깊이 공부하고자 재차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로렌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정부 공인 심리전문가 자격증(다문화심리학)을 획득했다.

    “나를 엿보다”란 책의 제목에 대해 저자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주제야 어떻든 간에 본질적으로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으며, 내 주변의 여러 사례들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실은 나 자신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셈”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나’와 ‘너’의 경계가 흔히 생각하는 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점 또한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커다란 교훈 중 하나”라고 말한다. “굳이 전문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나’와 ‘너’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전이(transfert)’ 현상이야말로 ‘공감’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인 셈이다.” 이에 이 책에 수록된 40여 편의 산문들이 저자 자신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글들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스며들고 반향을 일으키며, 무엇보다 독자 자신의 이야기들로 읽히길 희망하고 있다.

    정재곤의 [나를 엿보다]는 총 44편의 정신분석학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의 이름으로〉, 〈삶의 현장〉, 〈다문화심리학〉, 〈이론과 실제〉, 〈세상의 변경에서 나를 마주치다〉의 다섯 가지 큰 부로 나뉜 본문은 진중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저자 특유의 블랙유머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개인과 사회의 정신 문제에 대해 멋들어진 결론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또 다른 사색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까닭이다. 저자가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와 이 시대의 젊은 부모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의 변방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겪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 사회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고통뿐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다양한 심리검사의 장단점 등등, 본문에는 우리 각자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단초를 제공하는 글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농담이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심지어 진실까지도.”
    - 지그문트 프로이트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가족의 이름으로

    - 엄마 배 속
    - 집안의 내력
    - 나도 아이를 낳고 싶다
    - 사춘기
    - 아이의 도벽
    - 팥쥐엄마
    - 기러기아빠
    -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 대물림
    - 불편한 진실

    2부. 삶의 현장

    - 전조
    - 내 머리는 셌는가?
    - 욕
    - 직업병
    - 인간의 이중성
    - 정신적 교류
    - 모순어법
    - 가짜웃음
    - 번아웃
    - 연속극 보는 남자

    3부. 다문화심리학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차이 1
    - 차이 2
    - 문화적 차이
    - 다문화 경영
    - 처녀 시절 장례식
    - 외국어 유감
    - 레의 복합도형

    4부. 이론과 실제

    - 은유
    - 매슬로의 피라미드
    - 경고문
    - 페티시즘
    - 연상의 여인
    - 바바리맨
    - 자기애적 성격장애
    - 경로의존
    - 가족 소설

    5부. 세상의 변경에서 나를 마주치다

    - 더블 바인드
    - 단추 검사
    - 구강기
    - 항문기적 성격
    - 동성애
    - 꿈 이야기
    - 이름을 찾아서

    본문중에서

    어른이 되어 오지(奧地) 여행을 즐기는 것 ‘모태회귀본능’
    풍진세상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의 정신세계가 발동하는 방식 중에 ‘모태회귀본능’이 있다. 사실상 본능이라기보다 무의식적 판타지(Phantasie/fantasy, 무의식적 욕망이 만들어내는 상상의 시나리오)라고 해야 옳다. 어쨌든 이 말은 세상살이가 힘겨울 때마다 우리 모두가 태아 시절 열 달 동안 체류했던 엄마 배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무의식적 희구를 뜻한다. 그 시절, 우리는 몸과 마음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채, 딱 알맞은 온도에, 엄마로부터 제공되는 영양분을 섭취하며, 찰랑이는 물속에 잠겨 무릉도원을 경험한다. 그 후 우리가 엄마의 공간으로부터 쫓겨난 이후에도,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에 맛봤던 낙원으로 되돌아가길 꿈꾸는 것이다…….
    매일 밤 빠져드는 잠이야말로 모태회귀본능이 일상적으로 발현되는 가장 대표적 공간이다. 어린아이들이 종이박스에 들어앉아 환하게 웃음 짓는 광경은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박스뿐 아니라 움푹하게 들어간 형태를 가졌다면 그 무엇이든 들어앉길 좋아한다. 바로 엄마 배 속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는 어두컴컴한 골방에 틀어박혀 나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 오지(奧地) 여행을 즐기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때 묻지 않고, 세상에서 비켜선 오지야말로 우리가 몸과 마음을 숨기고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기대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의 특징적 현상 ‘작은 차이에의 숭배’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있다. 바로 정신분석학에서 ‘작은 차이에의 숭배’란 개념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는 곧 자신의 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남녀로서의 성징에 불안감을 품고 있는 청소년 남녀가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사회통념적인 표식을 과장되게 나타내려는 경향을 일컫는다. 예컨대 사춘기의 여자아이라면 자기 치수보다 큰 가슴가리개를 한다거나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발라봄으로써 불안한 자신의 여성성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남자아이의 경우라면 일부러 거친 태도를 보인다거나 신체 단련에 과도하게 몰두하기도 한다. 남성성, 여성성을 자기 몸에서 발견하기 시작한 예비어른들이 거치게 마련인 자연스러운 시행착오인 셈이다. 이렇듯 사춘기에 접어들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모두 인생의 ‘봄’을 맞이하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변화하는 몸에 비해 마음이나 정신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가인 프랑수아즈 돌토의 비유에 따르면,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이른바 바닷가재 콤플렉스를 앓는 셈이다. 마치 바닷가재가 성장을 위해 이제까지 어린 몸을 감싸고 있던 작은 허물을 벗어던지고 더 커다란 보호막을 구축하기 전까지는 바깥의 자극과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듯이, 청소년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빗대기 위한 비유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본 ‘애정결핍’과 ‘애정과잉’
    과연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사랑만이 최선일까? 사실상 아이에게 부모의 애정만큼 중요한 자양분은 이 세상에 달리 없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비뚤어진 아이로 자라나는 경우들을 심심찮게 접하고는 한다. 부모의 애정결핍이나 무관심은 아이의 자아 형성에 결함을 초래하고 때론 대단히 심각한 문제아, 나아가 문제 성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예컨대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청소년이나, 여러 형태의 중독 현상 이면에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부모의 애정결핍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엄마들, 특히 젊은 엄마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은 애정이 너무 적은 애정만큼이나 아이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하철에서 악을 쓰고 식당에서 자기 집 마당인 양 마구 뛰노는 ‘기고만장’한 아이들은 사실상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기고만장한들 그 기는 엄마에게나 통하는 어리광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치마폭을 넘어서면 금세 수그러들 테니 말이다. 조그만 선택에도 안절부절못하고 어른의 눈치를 살피며,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보살핌이나 지원 없이는 홀로 서지 못하는 애어른으로 자녀를 키웠다면, 안된 얘기지만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버릇없고 이기적인 아이들을 양산하는 것은 부모의 애정결핍이 아니라, 바로 맹목적 애정과잉이 빗어낸 비극이다.

    ‘나르시시즘’을 채워주는 텔레비전 연속극
    텔레비전 드라마마다 재벌집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의사, 검사, 변호사 등 사(士) 자로 끝나는 ‘평균 이상’의 사회 엘리트층이 등장인물의 주를 이룬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일반대중의 열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바로 ‘신분 상승 욕구’이다. 실제 현실에서라면 우리가 재벌 2세를 친구나 연인으로 둘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또 집안 식구 중에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오히려 예외적이라 할지라도, 텔레비전 연속극에 사회적으로 평균 이상으로 잘난 인물들이 넘쳐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꿈’, 우리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정신의학에서 바라볼 때는 맥락이 사뭇 다르다. 나르시시즘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또 발전해나가는 핵심이자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에서는 나르시시즘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일차적 나르시시즘’이라 부르는 원시적 형태의 나르시시즘으로, 우리의 자아가 탄생하는 ‘신화적’ 차원의 형태이다. 두 번째는 ‘이차적 나르시시즘’이라 불리는 것으로, 통상적 의미의 나르시시즘은 바로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미 만들어진 ‘나’란 바탕 위에 끊임없이 외부요인들이 추가됨으로써 점점 더 발전된 형태의 ‘나’, 혹은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연속극은 시청자의 채워지지 못한 ‘나르시시즘’을 어루만지고 얼러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경고문의 성공 여부는 ‘인지(認知) 부조화’를 운용하는 방식에 달렸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경고문의 성공 여부는 ‘인지(認知) 부조화’를 운용하는 방식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인지 부조화란 어느 한 사람의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 예를 들면 내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태도), 실제로는 왼쪽으로 가고 있는(행동) 경우이다. 또는 자주 언급되는 이솝의 유명한 우화 ‘신포도’를 보자. 누군가가 나무에 달린 포도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데, 실제로 따서 먹으려니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서 결국 포기하고 만다는 우화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이 우화의 백미는 포도를 따지 못한 사람이 그 포도가 높이 매달려 있어서 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포도가 ‘신포도’이기 때문에 따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데 있다. 포도를 따먹고는 싶지만(태도), 포도 따기를 포기함(행동)으로써 ‘인지 부조화’가 발생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인물이 그 포도가 높이 매달려 있어서 못 따는 것이 아니라 ‘신포도’라서 따지 않는 것이라고 둘러대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인지 부조화에 직면할 때마다 심리적 불편감을 느끼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경향을 가졌다. 바로 ‘자기 합리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지점이다. 우리 인간은 태도에 행동을 맞추려 하지 않고, 행동에 태도를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우화 안에 참여 심리학의 포부가 온전히 담겨 있는 셈이다. 효과적인 경고문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이 인지 부조화를 고의적으로 유도하고 또 인간이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바바리맨’이 벌이는 깜짝쇼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노출증은 이른바 ‘바바리맨’으로 대변되는, 남성 전유의 변태적 병리현상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성 노출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다만 상대적으로 훨씬 적을 따름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바리맨이란 남성이 바바리코트로 알몸을 가리고 있다가 특정의 관객들(주로 여성들) 앞에서 가렸던 알몸, 특히 성기를 노출하는 남성을 지칭한다. 이들의 변태적 ‘깜짝쇼’가 본인 스스로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채 충동적으로 행해지는 까닭은, 이들이 통제 불능의 무의식적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 핵심은 바로 ‘거세 콤플렉스’에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거세’란 생물학적 관점을 넘어 정신적, 상징적 가치를 지니는 개념이다. ‘거세’는 생물학적 여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정신세계 전반에 걸쳐 작용하는 판타지이다.
    남성 노출증의 대단원은 행위자가 이 같은 반사회적 해프닝의 결과로 법의 제재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바바리맨의 거세가 아직 제대로(정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만큼, 행위자의 무의식이 거세를 대행해줄 바깥의 권위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남성 노출증에 대해 가해지는 법적 제재(‘경찰에 잡혀가다’)는 행위자에게는 징벌이자 또한 거세를 갈구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실현되는 계기인 셈이다. 결국, 바바리맨은 경찰에 붙잡혀가기 위해 홀딱 쇼를 벌이는 셈이다! 무시무시한 무의식의 논리이다. 일찍이 프로이트가 말하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정신의 편향성
    꽤 오래전에 유행했던 난센스 퀴즈이다. 어떤 사람이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에 탄 사람을 세어보니 모두 11명이었다. 12명이 타고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걸까? 정답은, 세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은 세지 않은 것이다! 하긴, 알고 보면 함정이 금세 보이는 퀴즈이다. 의당 사전에 세는 사람이 자기 머리도 세야 하는지 물었어야 했지만, 사실상 우리가 세상사를 대할 때 대개는 자기 자신은 예외로 치는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을 겨냥한 퀴즈이다. 철 지난 난센스 퀴즈인 만큼 진부하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교훈은 결코 만만치 않다. 바로 오늘날의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덕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목은 법 앞에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똑같다는 평등사상이 될 수도 있고, 관찰자가 결코 관찰대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과학적 언술이 될 수도 있다. 비근한 예를 들면 ‘된장녀’, ‘김치녀’를 외치며 젊은 여성의 허영심을 비난하는 젊은 남성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 또한 고추장남, 깍두기남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만 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럽지만 여성이기를 포기했다느니 유통기한이 끝났다느니 하며 ‘아줌씨’를 폄하하는 중년 남성들이 스스로 능력도 없고 매력도 꽝인, 이미 용도폐기 되었어야 할 배불뚝이 ‘꼰대 아자씨’는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토록 간단해 보이는 덕목을 쉽게 망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정신의 편향성 때문이다. 바로 우리 안에 뿌리 깊이 박힌 자기중심적 관점이 문제다. 팔이 안으로 굽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을 부르짖게 만드는 바로 그 일방통행식 관점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에 대한 정신분석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강단에서 프랑스문학과 프랑스어를 강의했고, 출판과 번역에 몰두하여 몇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정신과의사의 콩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화본, 전6권) 등 30여 권의 역서를 펴냈다. 오랫동안 신비로 남아 있던 프루스트 소설의 수사학적 면모를 파헤치는 논문인 「프루스트에게 서의 알려지지 않은 문채(文彩)」를 프랑스 유수의 문학 전문지 《문학(Litterature)》에 게재했다. 그 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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