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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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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대부적(士大夫的) 정치문화’ 확산의 관점으로 메이지유신의 새로운 면모와 흥미롭게 대면한다.

지금까지 메이지유신 정치사 연구에서는 ‘서구의 충격(Western Impact)’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근대주의적’ 설명 방법이 주로 채용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전반~중반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사료를 통해 관찰해 볼 때 두드러진 것은 어떤 종류의 ‘근대성’의 출현이 아니라, 이들이 ‘사대부’와 같은 정치행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료상에 나타난 19세기 일본은 유교(유학), 그중에서도 특히 ‘주자학의 전성시대’였다. 즉 본래 유교에 적합하지 않은 병영국가적 성격을 갖고 있던 도쿠가와 체제는 ‘서구의 충격’ 이전에 이미 ‘유교적 영향(Confucian Influence)’으로 인해 특히 정치 분야에서 동요, 변질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그 과정을 ‘사대부적(士大夫的) 정치문화’의 확산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서론 ‘이쿠사(戰)’가 아니라 정치

제1장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보는 관점과 ‘사대부적(士大夫的) 정치문화’
제1절 본서의 문제의식
제2절 ‘근세’ 동아시아 정치사 이해를 위한 개념: ‘사대부적 정치문화’
제3절 중국·조선에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행방
제4절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의외의 출현, 막말일본(幕末日本)

보론 1 막말유신기 유교의 위치에 대한 기존의 시각과 그 비판

제2장 ‘연속하면서 혁신’: 막말 정치사와 메이지유신 연구사
제1절 막말유신사 연구의 현황: ‘개별 실증’ 연구의 심화, 그리고 매몰
제2절 전후역사학(戰後歷史學)과 막말유신사(幕末維新史) 연구: 이데올로기 과잉
제3절 ‘연속하면서 혁신’: 메이지유신 연구의 현재적 의미

제1부 ‘학적(學的) 네트워크’와 ‘학당(學黨)’

제1장 미토번(水戶藩)의 번교와 ‘학적 네트워크’
제1절 번교 홍도관(弘道館)과 신분제
제2절 홍도관과 ‘학적 네트워크’
소 결

제2장 구마모토번(熊本藩)의 ‘학적 네트워크’와 ‘학당’의 형성
제1절 번교 시습관에서의 ‘학적 네트워크’ 형성: 『히고 나카무라 죠사이일록(肥後中村恕齋日錄)』을 중심으로
제2절 ‘학당’의 형성: 나가오카 겐모쓰·요코이 쇼난의 사숙·학습회를 중심으로
제3절 ‘학당’과 학정일치·붕당
소 결

제3장 사쓰마번(薩摩藩)의 ‘학당’, ‘근사록당(近思錄黨)’
제1절 사숙·학습회와 ‘근사록당’
제2절 ‘근사록당’을 통해 본 ‘학당’의 특징
소 결

제2부 공론정치: 상서와 정치공간

제1장 19세기 일본에서 공론정치의 형성 과정과 그 의의
제1절 도쿠가와 일본의 담합정치와 공론관습의 취약성
제2절 19세기 전반 일본에서 정치정보의 유통
제3절 19세기 전반 ‘토의정치’의 활성화와 공론정치의 형성
소 결

제2장 막말기 미토번에서 봉서(封書)의 정치적 등장과 그 역할: ‘토의정치’의 형성
제1절 미토 번정(藩政)의 특징과 번정 기구
제2절 도쿠가와 나리아키 이전 미토번정의 추이와 상서 장려
제3절 봉서의 정치적 등장과 ‘토의정치’의 형성
소 결

제3장 막말기 미토번의 남상(南上) 운동과 공론정치
제1절 미토번 남상운동의 전개 과정
제2절 미토번 남상운동과 정치공간
소 결

제3부 군주친정(君主親政)과 정치변혁

제1장 ‘명군’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민정 활동과 그 의의: 지방 역인 접촉과 순행
제1절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친정
제2절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지방 역인 접촉
제3절 다이묘의 순행: 나리아키의 영민 접촉
제4절 ‘명군’ 나리아키 친정의 역사적 의미
소 결

제2장 막말기 미토번 당쟁에서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역할
제1절 미토번의 당쟁과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등장
제2절 실각 이전 나리아키와 후지타 도코
제3절 실각 이후 나리아키와 후지타 도코
소 결

제3장 에치젠번(越前藩) 마쓰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와 군주권력
제1절 1863년 ‘거번상락’ 추진 배경과 과정
제2절 ‘거번상락’의 좌절과 요시나가의 역할
소 결

보론 2 막말유신기 정치변혁과 봉건·군현론

제1절 도쿠가와 시대의 봉건·군현론
제2절 왕정복고는 군현제?: 막부의 봉건에서 천황의 봉건으로
제3절 판적봉환: 봉건과 군현 사이의 줄타기
제4절 폐번치현과 군현제의 설득: “서양 각국은 모두 군현”
소 결

결론

<각 장의 초출일람(初出一覽)>
<日文要約>
<本書の目次>
<各章の初出一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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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본문중에서

현재의 개념과 가치를 잣대로 과거를 설명하려는 접근 태도, 즉 회고적 사고는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다. 적어도 ‘서양의 충격’에 직면하기까지 일본인 혹은 동아시아인이 지향한 것이 ‘근대화’였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것은 근대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회고적 사고 습관에서 발생한 오류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이 시기 일반 사무라이들을 정치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자신들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투쟁에 뛰어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유학 학습과 그에 따른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급격한 확산이라고 본다. 이런 과정에서 사무라이는 더 이상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학문을 배우고 정치에 뛰어들어 천하대사를 담당하려는 ‘사(士)’로 변화해 갔다[사무라이의 ‘사화(士化)’].
(/ pp.4~5)

전후역사학은 대담한 가설을 허용했지만 그것은 어떤 정치적 편향의 범위 내에서였다. 즉 전전(戰前) 강좌파가 제시해 놓은 메이지유신 이해의 큰 틀을 넘어서는 것은 음으로 양으로 제한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이었다.
(/ p.65)

장기간에 걸친 태평 시대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는 사무라이들에게 학교라는 것이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번교 설치라는 거대한 ‘사회개혁정책’에 사무라이들은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않았다. 만약에 조선의 양반이나 청의 신사(紳士)들을 강제로 무도장(武道場)에 다니게 했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번교에서 배우는 학문, 특히 유학은 무술․불교․신도․난학 그 어느 것보다 사무라이들에게 정치적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었다. 번교를 만든 번 당국의 거듭된 금지령에도 번교는 당국의 예상을 넘어 사무라이가 정치화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18세기 후반부터 전국적으로 번교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의 정치적 의미에 한층 더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pp.84~85)

구마모토번은 도쿠가와 시대 번 중에서도 미토번과 더불어 일찍부터 유학이 발달한 곳 중 하나였다. ‘명군’으로 유명한 호소카와 시게카타(細川重賢)가 번교 시습관(時習館)을 설립한 것이 1755년(寶曆5)으로, 유력한 번 중에서는 이른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설립 당초 시습관에서는 소라이학(徂徠學)이 우세했으나 점차 주자학이 대세를 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학문 방법은 송유(宋儒)의 주석에 대한 훈고학적인 탐색과 사장적(詞章的)인 취미를 주로 하는 것이었고, 학문을 정치 혹은 시사 문제에 연결시켜 접근하는 경향은 매우 약했다.
(/ pp.111~112)

‘근사록당’은 ‘근사록사태(近思錄崩れ)’라는 권력투쟁 가운데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냈다. 이것은 『근사록』 등 주자학의 주요 텍스트를 읽는 학습회에서 출발한 ‘근사록당’이 1804년 번정을 장악했다가 반격을 당하여 사쓰마번 정치투쟁사상 최대의 처벌자를 낳은 정변을 말한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정변의 이름과 그 주도자들에게 『근사록』이라는 주자학 텍스트의 이름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정치세력의 명칭에 특정 서적의 이름이 붙는 경우가 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선, 중국도 아닌 사무라이 사회 일본에서 이런 명칭이 생겨난 것에 필자는 주목하고 싶다.
(/ pp.161~162)

공론정치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각 정책 결정의 장에서 토론과 논변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관습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를 ‘토의정치’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것은 여전히 구래의 정치관습[관례]이나 정치 시스템은 존재하고 있으나, 정치를 움직이는 새로운 요소로서 ‘토의’가 등장하고, 번주든 번 정부의 실권자든 정책의 결정이나 정치행위에서 과거에는 중요한 행위자가 아니었던 성원을 포함한 사람들과의 토의를 당연시하고, 그 과정을 무시하고는 어떠한 정책의 결정이나 정치의 행위도 무리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정치상황을 지칭한다.
(/ p.188)

통사는 번주의 측근이면서도 고쇼(小姓)를 지휘하는 고쇼가시라(小姓頭)의 휘하에 있지는 않았다. 번주 직할의 역직이었으며, 따라서 정부에 속하지 않았다. 즉 통사는 번 기구상에서 집정 등이 통제할 수 없는 번주 직할의 기구였던 것이다. 후술하는 것처럼, 이러한 통사가 봉서상정(封書上呈)의 루트가 되었던 사실은 봉서자와 번주의 직접적인 연결을 의미했다.
(/ p.228)

한편 사숙의 인적 네트워크는 미토번 내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각 번으로부터 하라 이치노신(原市之進)의 청아숙(靑莪塾)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대빈록(待賓錄)』을 보면, 1851년(嘉永4)에서 1857년(安政4) 사이에 청아숙이 전국적 교류의 장이 되어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아이자와 야스시의 남가숙(南街塾)도 전국 각지에서 유학생이 모여들었던 숙이었다. 이런 전국적인 인적 네트워크는 정치활동에서도 유용했다.
(/ p.284)

도쿠가와 후기 유학이 확산되면서 군주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중하급 무사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해지자 군주친정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화되었다. 가로합의체제하에서는 번 내 몇 개의 최고 가문들이 번정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 가신이 이에 끼어들 여지는 적었다. 그러나 이들이 일단 정치에 뛰어들게 되자 가로합의체제는 큰 벽이 되었다. 이 벽을 허물 유일한 방법은 군주의 정치적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군주의 정치적 활성화, 군주친정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군주친정의 요구는 정치적 야망에 불타는 중하급 무사들의 현실적 필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었다.
(/ p.305)

이렇게 본다면 미토번 분열과 내란에서 나리아키의 책임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검토해 봄으로써 번주친정이 권력투쟁 혹은 당쟁에 얽히게 될 때 어떤 양상이 벌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다음 장에서 살펴볼 에치젠번의 마쓰다이라 요시나가가 번 내 권력투쟁에서 보여 주는 입장과 함께 고찰해 본다면, 군주권력과 당쟁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p.372~373)

필자는 거번상락 추진 과정에서 에치젠번의 내부 상황에 주목하고 특히 요시나가와 거번상락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거번상락 계획의 진행 과정과 그 좌절 원인을 새롭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 같은 작업은 유지다이묘 요시나가의 ‘(전)군주친정’이 가신 그룹과 격하게 충돌한 한 예를 보여 주면서, 친정에 나선 (전)군주의 정치적 파워가 권력 향배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울러 상기시켜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p.380~381)

이처럼 도쿠가와 시기의 봉건․군현론은 표면적으로는 봉건제의 일본 사회를 찬미하면서도 실상은 봉건과 군현제를 상당 부분 절충시킨 것이었으며, 봉건과 군현이 대립물로 인식된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뒤에서 살피겠지만 막말유신기의 군현제 실시론이 결국 봉건제에 군현지의(郡縣之意)를 깃들게 하는 것(寓郡縣之意於封建之中)으로부터 군현제에 봉건지의(封建之意)를 깃들게 하는 것(寓封建之意於郡縣之中)으로의 전환이었다면, 도쿠가와 시기의 봉건․군현론은 이것과 근본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p.429)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6종
판매수 1,242권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메이지 유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 일본학과에 이어 현재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양사학회와 일본사학회 총무이사를 거쳐, 현재는 일본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역서로는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또한 한중일 3국 역사학자의 글을 모은 『響き合う東アジア史』를 공동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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