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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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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신동진
  • 출판사 : 문학의문학
  • 발행 : 2020년 02월 05일
  • 쪽수 : 26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743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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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그토록 오래고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저자의 첫에세이집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4남매를 키우신, 오직 헌신과 희생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당신과 공유했던 그 모든 시간들과 감정들을 하나하나 핍진하게 떠올린다. 유년 시절, 중고등 시절, 대입과 군대 시절, 그리고 아나운서 입사 후의 삶들을 따라가다 보면, 손석희 씨의 표현대로, 씩씩함과 다정다감이 함께하는 그의 품성도 바로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박한 필체에 진정성이 담긴 글 속에는 삶과 사회에 대한 저자의 유연하고 성숙한 시선이 내재해 있다. 아나운서라는 이름 뒤에서 어려움과 고난이 적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저자는 좌절과 원망보다는 극복과 희망을 보며 동료와 이웃을 끝까지 믿는 따뜻한 시선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수식과 조미료가 없는 글이지만, 그래서 순정하고 여운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의 어머니를 계속 떠올리게 된다. 그야말로 ’그토록 오래고 아름다운 이름‘을.

    [저자의 말]

    2015년 1월 21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자식은 외롭고 어머니를 잃은 자식은 슬프다고 했던가요.
    너무도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고 황망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고 저 자신도 치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목록들을 정리했지만 5년이 지난 이제서야 마무리를 짓게 됐습니다.
    그동안 작업실이 되었던 커피전문점, 병원 로비, 차 안 등에서 지난 기억을 소환하는 동안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써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보시고 부모님이 옆에 계실 때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봅니다.
    아울러 부모님을 잃고 상처를 안고 사시는 분들께는 슬픔을 공감하는 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추천사

    그의 씩씩함과 다정다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그는 씩씩하면서도 다정다감하다. 그 두 가지가 함께하기란 쉽지 않은 것인데 그는 그렇다. 선배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공히 그렇다.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품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보니 답이 나와 있다. 그는 어머니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들로서 쓸 수 있는 당연한 사모곡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시간여행 기록이자 어머니를 통한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 손석희 / 언론인

    나의 아이들이 동진 선배가 어머니를 추억하는 만큼만 나를 기억해 준다면!
    동진 선배의 가지런한 눈썹 같은 반듯함, 셔츠를 끝까지 채운 듯한 단정한 마음, 탄탄하게 어깨를 받치고 있는 자존감 같은 것들. 어머니의 유산임을 느낀다.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아보니, 이 세상에 내던져진 생명체를 건사해 온전한 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그 무게감에 새삼 마음이 짓눌릴 때가 있다. 내가 나의 아이들을 동진 선배만큼의 동그랗고 단단한 사람으로 키워낼 수 있다면 나도 마지막 순간 만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겠지. 나의 아이들이 동진 선배가 어머니를 추억하는 만큼의 미소로 나를 기억해 준다면 내 생의 의미를 다 했노라 말하며 눈 감을 수 있겠지.
    - 최현정 / 전 MBC 아나운서

    목차

    저자의 말 · 4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머니 휴대전화를 해지하며 · 14
    어머니 돌아가시던 날 · 16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18
    그 말을 꺼내기가 그렇게 힘드셨나요 · 20
    너를 내가 낳았다는 게 믿기지 않아 · 22
    당신 없는 당산동 성당의 미사 · 24
    나, 이런 사람이야 · 26
    58년도의 결혼사진 한 번 보세요 · 28
    그때 우리는 모두가 함께였습니다 · 30

    지금도 들리는 어머니 숨소리 · 유아 시절

    내가 고양이라뇨? · 34
    백일 되던 날 내 모습 · 36
    돌 때 기억이 안 나신다고요? · 38
    그때 다섯 살 된 저를 업고 누구와 무슨 얘기 나누셨나요 · 40
    어머니, 기분 좋으세요? · 42
    지금도 들리는 어머니 숨소리 · 44

    어머니의 힐링법 ·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입학식 손수건 · 48
    초등 1학년 때 새 구두를 잃어버렸지만 · 50
    이제 혼자 학교 가렴 · 52
    어머니, 저 좀 봐주세요 · 54
    초3때 산수 시험지 보여주고 따귀 맞다 · 56
    어릴 적 하숙생 10명 그리고 식당 운영 · 58
    보온병 깨뜨리고 혼날까 봐 · 61
    자식들이 다쳤을 때 · 63
    시험 때 산수를 가르쳐주시던 · 65
    10살 때 3월의 석양 · 66
    네가 설거지를 왜 해 · 68
    일수 돈 받으러 세탁소로 가다 · 70
    ‘성실상’이라는 이름의 상장 · 74
    어머니의 힐링법 · 76
    내가 썼던 시들 그리고 냉면 선생님 · 78
    때론 매우 강하셨던 분 · 80

    병원엔 왜 오니 · 중·고등학교 시절

    흰머리카락 뽑아달라시던 · 84
    선생님, 제게 보내주신 편지 기억하세요 · 86
    귀했던 오렌지 주스를 내오시던 친구 어머니 · 88
    제가 우산이 되어드릴게요 · 89
    집 사고 2년 만에 화병으로 쓰러지신 어머니 · 92
    병원엔 왜 오니 · 94
    어머니의 트라우마 · 96
    흰크림 샌드위치 · 98
    힘들수록 도리를 다하신 어머니 · 100

    너는 양복 입을 때가 제일 멋있어 · 대입 그리고 군대 시절

    우리 애가 육사애 합격했어요 · 104
    육사 합격했지만 포기하고 독서실에 자리 잡다 · 105
    대입 시험장 앞에서 늘 기다리시던 어머니 · 108
    스무 살 때 우리집 풍경 · 110
    새까맣게 탄 훈련병을 보고 우신 어머니 · 112
    깜짝 서프라이즈 · 114
    너는 양복 입을 때가 제일 멋있어 · 115
    위문편지는 여자가 써야 제격인데 · 116
    수학 공식과 영어 숙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때 · 118

    넌 아나운서가 천직이야 · 부모님 기억

    절실했고, 또 절실하게 기도하셨던 어머니 · 122
    머리카락으로 보청기를 가리시던 · 124
    아들의 학위복을 입으신 모습이 영정사진이 되다니요 · 128
    부모님 묘 · 130
    넌 아나운서가 천직이야 · 134

    미사 이야기

    여기 모자가 손을 잡고 앉아 있습니다 · 138
    가족이 종교이자 마리아 님이었던 어머니 · 140
    견진 교육을 마치고 · 143
    견진식, 명동성당 · 144
    같이 있던 그 순간에도 그리웠습니다 · 145

    다시 그리운 어머니

    시절 인연 · 148
    2014년 박사 학위 졸업식 · 149
    2015년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보며 · 152
    수녀님이 되고 싶으셨다던 어머니 · 154
    2017년, 20일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홍대에서 · 155
    조카 결혼식장에서 사촌누나가 한 말 · 157
    마지막 야유회 나들이 · 158

    나의 MBC

    2018년 5월 22일. 나의 MBC 시절을 뒤돌아보며 · 162
    얘, 저 아나운서 집에 한 번 데리고 오렴 · 165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침밥 차리고 깨우시던 어머니 · 168
    천만 원짜리 적금 · 170
    회사 연수 중 편지를 보내다 · 172
    네가 기둥이다, 기둥 · 176
    지친 일상 속 한 잔의 커피로 · 178
    2012년 170일 파업, 어머니 성당 미사 당분간 쉬기로 해요 · 179
    커피숍과 책과 나만의 시간들 · 181
    빽도 없는 나를 뽑아준 MBC · 183
    어머니와의 추억, 책으로 엮고 싶어 · 186
    지나가시던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 188
    고3때 같은 반 친구, 평생의 친구가 되다 · 189
    김천에는 효자가 많을 것 같습니다 · 190
    어머니도 자기 편이 필요하신 겁니다 · 192

    아나운서 이야기

    29살에 아나운서가 되었잖아요 · 196
    아나운서는 방송의 꽃인가 · 198
    어디까지가 아나운서를 말하는가 · 208
    면접시험에서 손석희 선배가 했던 질문과 나의 대답 · 210

    생각 한 줌

    좋은 스피치란 · 214
    누구나 행복할 의무가 있다 · 215
    모나코 국왕의 집 구입 · 216
    집 나간 고양이 8년 만에 귀환해 · 217
    그냥 안아만 줘요 · 218
    우린 어떤 인연이었나 · 220
    당산동 성당을 다시 찾아가 · 222
    가을에 다시 읽는 글 · 223
    왜 당신은 돌아가셨나요 · 224
    유리창엔 비 · 228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 230

    TV토론 이야기

    스피치와 트라우마 · 234
    구로디지털단지에 오징어잡이 배가 떴다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 238
    대통령의 언어 · 241
    왜 토론하는가 · 244

    칼럼

    상인지어(傷人之語)-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들 속에서 · 250
    고신얼자(孤臣孽子)-어려움 속에도 긍정의 힘을 믿으며 · 253
    아나운서 유감(有感) · 256
    연저지인(吮疽之仁)- 동료들의 동고동락 · 259

    본문중에서

    이 전화기를 사드린 후 10년 동안 어머니와 매일 통화를 했습니다. 평일엔 퇴근하며 전화를 했고 주말엔 6시 30분까지 전화를 안 드리면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걸 힘들어하셔서 출장도 말없이 다녀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해외 출장 가서도 한국 시간으로 저녁 6시에 맞춰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마치 한국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머니와의 소통 창구였던 이 전화기를 이제 해지하려 합니다.
    ( '어머니 휴대전화를 해지하며' 중에서)

    아버지는 꽤나 멋쟁이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만 봐도 요즘 젊
    은이들 못지않았습니다. 받은 대학 등록금으로 어머니 옷을 사주시거나 데이트 자금
    으로 다 써서 집에서 혼나시기도 했다네요.
    한 번은 같이 극장에 갔는데 매표원에게 지갑 안을 슬쩍 보여주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셨답니다.
    어머니는 영문을 몰라 보여준 게 뭐였냐고 물으니 “주민등록증.” 하셨답니다.
    시골 처녀와 서울 대학생의 만남.
    운명인지 우연인지 모를 두 분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후 네 남매를 낳으셨으며 50년 가까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란히 누워서 여전히 함께하고 계십니다.
    ( '나, 이런 사람이야' 중에서)

    저학년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이니까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답답했습니다.
    어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학교에 들어서니 입학생들로 운동장이 꽉 차 있었습니다. 입학생들은 가슴에 손수건을 하나씩 달고 있었는데 그때는 왜 다들 그랬을까요.
    아이들이 코를 잘 흘리고 다녀서 닦으라고 그랬다는데 그래서 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난 코도 안 흘리는데 나도 이걸 달아야 돼?”
    어린 마음에도 이건 아니지 했던 거 같습니다.
    입학식 날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가 눈을 꼭 감고 있으라며 로션을 얼굴에 꼼꼼히 발라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유난히 크고 도톰했던 어머니 손길이 때론 아프게도 느껴졌지만 이젠 마냥 그리웁기만 합니다.
    ( '초등학교 입학식 손수건' 중에서)

    부모님은 제가 5학년 때에 집 근처에 작은 식당을 차리셨습니다. 하숙은 하숙대로 식당은 식당대로 어머니의 고달픈 생활에 삶의 무게가 더해진 겁니다. 한창 동네가 개발되던 때라 공사장도 많았고 그 인부들이 우리 식당으로 한 달 치 식대를 내고 단체로 몰려와 식사하던 풍경도 생각납니다.
    학기 초 집에 가방을 두고 식당에 가보니 같은 반 여학생들이 식당에서 부모님과 사이좋게 당면 사리를 펴고 있는 겁니다. 깜짝 놀라 뒷문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아버지가 “저런 미련 곰탱이 같은 놈.” 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새벽부터 하숙생 식사 준비로 시작해서 밤늦게 가게 문을 닫은 후에도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하숙생이 집에 와선 속이 쓰리다며 밥이 먹고 싶다 했습니다. 어머니, 그때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 와중에도 친척들은 수시로 우리 집을 찾고 몇 달씩 기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경외감이 듭니다. 그런데도 그때 멋쟁이 하숙생 형들 덕분에 턴테이블로 엘비스 프레슬리 음악도 듣고 일요일에는 아침 먹고 다 같이 조기 축구도 했습니다.
    ( '어릴 적 하숙생 10명 그리고 식당 운영' 중에서)

    집에 어머니가 안 계시면 허전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계실 때와 안 계실 때의 집안 분위기가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존재만으로도 집안의 기둥이었고
    든든했습니다. 주일 미사 후 들어오시며 활기찬 목소리로 하던 말씀이 아직도 들리는 거 같습니다.
    “아유 우리 집 식구들은 전부 소대상 *사람이 게으르게 누워있는 모습이
    소의 얼굴 같음을 빗댄 말 들이야. 바깥에는 해가 중천이야. 다들 얼마나 열심히 사는 줄 아니? 얘, 구들장 그만 업어주고 밥 먹어. 밥 먹고 또 자.”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어머니가 성당이나 모임에서 지방을 가실 때 밤늦게까지 걱정도 되면서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밖에서 기운을 받는 체질이셨습니다. 사람들을 좋아하셨고 만남에서 힐링을 하셨습니다. 집에 계시면 아프시다가도 지리산을 당일치기로 다녀오셔선 저녁을 바로 차리는 초인의 모습도 자주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시며 헛기침을 자주 하셨습니다. 문 열고 들어오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면 속으론 좋으면서도 겉으론 무표정하게 TV를
    쳐다보기도 했었죠.
    ( '어머니의 힐링법' 중에서)

    글짓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해갔습니다.
    특히 5학년 때에는 시와 산문 습작을 열심히 했는데 훗날 어른이 되고 나서 당시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진이 너는 그때 또래들이 안 쓰던 말을 글에 썼었어. 예를 들면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같은 표현을 썼던 게 기억이 나.”
    아마 막내로 자랐고 위에 누나 둘과 형이 있어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순정만화가 그랬고 로마의 휴일이 그랬으며 엘비스 프레슬리를 일찍 알게 된 것도 그랬습니다. 그때 제가 썼던 시에는 가을, 낙엽, 추억, 이별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5학년 때 담임 문정숙 선생님은 그런 저를 귀여워해 주셨는데 어느 날 부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저녁에 너희 어머니가 하시는 식당에 가서 냉면 먹고 왔는데 어머니가 참 고우시더라.”
    “네? 어제 우리 식당에 가셨다구요?”
    “응, 조용히 음식만 먹고 왔어.”
    헉. 그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어느 젊고 예쁜 아가씨가 혼자 와서 조용히 냉면만 먹고 갔더라는 겁니다. 그날 선생님은 어떻게 우리 식당을 알고 오셨을까. 그리고 왜 오셨을까.
    ( '내가 썼던 시들 그리고 냉면 선생님' 중에서)

    집에서는 일반대학보다는 육사 가는 걸 더 바랐습니다. 육사는 학비 면제에다 생활비까지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나니 오기가 발동해 삼수를 결심하게 되었고 육사를 포기했습니다. 집에다가는 차마 포기 결심을 말하지 못하고 1년 동안 집을 나가서 삼수하고 합격한 후에 돌아갈 생각을 굳혔습니다.
    육사 입교 하루 전, 눈보라가 휘날리던 1월 말이었습니다. 가방 네 개에 공부하던 책과 노트를 전부 넣어 집을 나갔습니다. 어머니에게는 헌책방에 팔러 간다고만 했고, 나가는 길에 화장실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는 문까지 닫고 나갔습니다. 훗날 어머니는 ‘집 나가는 애가 어떻게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나갈 수 있었냐.’며 야단을 치셨었습니다.
    ( '육사 합격했지만 포기하고 독서실에 자리 잡다' 중에서)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인근 한강 둔치에 바람 쐬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당산 철교 아래에서 전철이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늦여름 강바람을 맞고 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너도 군대까지 제대한 어른이니 너 앞가림은 스스로 했으면 좋겠다고 나보고 얘기하라는구나.”
    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한동안 우리는 별 대화 없이 강 건너를 바라보며 앉아있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레코드 가게에 들러 스콜피온스의 ‘Wind of change’ 카세트 테이프를 오천 원 주고 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어머니가 사주신 거였죠.
    어머니는 동네 약국과 가게의 주인분들과 늘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과외 가르칩니다’라는 문구를 주인 양해를 구하고 약국과 가게 곳곳에 붙이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과외 아르바이트는 대학 4년간 끊임없이 계속됐습니다. 삼수를 한 덕에 입학과 동시에 군대를 갔고, 25살에 1학년 1학기로 복학을 했는데 4년간 했던 과외 덕분에 사회생활을 꽤 했을 때도 수학 공식과 영어 숙어가 머리에서 맴돌곤 했었습니다.
    ( '수학 공식과 영어 숙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때' 중에서)

    1994년 크리스마스 자정미사에 늦게 도착했을 때, 먼저 와 계신 어머니가 미사 시작 전 북적이던 분위기 속에서 혼자 두 손 꽉 잡고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거의 울 듯한 어머니의 기도 표정은 모든 버거움과 절박함을 말하고 있었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전 그때 쌀을 꾸어올 정도로 우리 집이 힘들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절실한 가족 부양 덕분에 우리 가족이 여태 이렇게 지내 올 수 있었구나 싶어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 '절실했고, 또 절실하게 기도하셨던 어머니' 중에서)

    2006년 가을,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하기 어려워져 갔습니다. 박사 과정 초기에 학교에서 공부하다 늦은 밤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언어마비가 와서 말씀을 못하시는 상태에서 침대에서 힘들게 일어나셨습니다. 아버지를 꼭 안았습니다. 아마 처음으로 따뜻하게 온몸으로 안아드렸던 거 같습니다. 여러 회한이 들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났습니다.

    남편을 요양원에 두고서도 어머니는 흔들리지 않으셨는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위기 때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거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한 번은 요양원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다가 문득 “넌 아나운서가 천직이야 천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양원 인근에 있던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주변을 같이 거닐고 산등성이를 둘러볼 때 너무나도 어머니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그 무거운 짐을 모두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 '넌 아나운서가 천직이야' 중에서)

    막내가 2012년 파업 이후 타 부서를 전전하며 5년간 방송하지 못했던 걸 그저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 당신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힘겨움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너희 회사 사장도 너 박사 학위 받은 거 아니?” 하며 처음으로 그 심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학위도 받았으니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해서 예전처럼 방송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셨던 겁니다.
    “네, 아마 아시지 않을까요?” 그저 웃으며 대답해드렸습니다.
    2006년, 공부하는 내용들과 과정들이 방송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으로 시작한 정치학 공부는 오롯이 방송에 필요한 균형감각과 통찰력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끝난 2014년 저의 상황은 애초에 제가 그리던
    그림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타 부서에서 동료들이 하는 방송을 지켜보며 방송 송출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 뜻하지 않게 어머니 영정사진이 되어버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힘겨웠던 과정이 끝나니 상처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날 저녁, 직면해 있는 모든 상황이 싫었습니다.
    ( '2014년 박사 학위 졸업식' 중에서)

    나의 MBC는 훌륭했습니다.
    빽도 없고 평범한 29살 늙은 총각을, 오직 한 명 뽑을 때 받아준 회사. 그건 가히 기적처럼 여겨졌습니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회사.
    그때라고 왜 청탁이 없었을까요.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런 부탁이 들어오면 그 사람은 바로 아웃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 있게 자랑스레 말했습니다.
    “나같이 아무 빽도 없는 사람을 가능성만 보고 뽑아준 MBC 같은 회사가 또 있을까.”
    어떤 외압도 통하지 않는 청정지역, 적어도 나에게 MBC는 그런 회사였습니다. 입사 후 회사 안에는 내가 보고 따라가야 할 게 천지였습니다. 방송노하우부터 사고방식, 생활습관, 철학까지 천 명이 넘는 선배가 모두 인생 스승이었습니다.
    ‘이런 회사를 다닌다는 거 자체가 내겐 큰 영광이다.’
    정말 그땐 그랬었습니다. 5년 차쯤 됐을 때 유시민 씨에 이어 손석희 선배가 ‘백분토론’을 맡았습니다. 그때 매주 목요일이면 ‘아 오늘은 백토 하는 날’ 하며 집에서 시그널 음악 듣고 설레며 시청하다 잠들곤 했습니다. 아침엔 ‘시선집중’, 밤엔 ‘백토’를 시청하며 ‘언젠가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 '빽도 없는 나를 뽑아준 MBC' 중에서)

    한참 전에 여자 아나운서 선배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누군가를 안 좋게 얘기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그냥 듣고만 있는데요.”
    “같이 욕해 드리세요. 저희 어머니도 누구 욕할 때 제가 같이 욕하면 금세 아이처럼 풀리세요.”
    그 뒤 어느 날 어머니가 통화 중에 누군가를 원망하셨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살겠다.”
    “그래요? 누가 우리 어머니를 못살게 했어요? 이런 벼락 맞을 놈이 있어? 천사 같은 우리 어머니한테.”
    “…고맙다. 이해해줘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내 편이 필요하셨던 겁니다.
    ( '어머니도 자기 편이 필요하신 겁니다' 중에서)

    영화배우 기네스 팰트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누구나 그렇듯 그녀 역시 깊은 슬픔과 충격에 잠겼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크리스 마틴은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었다. 이에 대한 그녀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Just hold me, you are the only one who can fix me.”
    (그냥 안아만 줘요. 당신만이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남편인 마틴은 그녀를 위해 곧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곡이 바로 아래에 있는 곡이다. 사람에 치이고 사람 때문에 힘들어해도 결국 치유해 줄 수 있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생과 사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을 절감하는 요즘, 그래도 사람에 희망을 걸어본다.
    ( '그냥 안아만 줘요' 중에서)

    어머니, 그때를 기억하세요?
    1996년 10월. 아침에 자는데 저를 깨우셨잖아요. MBC 인사부에서 전화 왔다고.
    전날 저는 최종 면접을 봤었고 다음날 아침에 합격전화를 받은 거예요.
    “신동진 씨, 내가 왜 전화했을 거 같아요?”
    그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어요.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죠. 아 이런 순간이 내게도 오는구나.
    그거 아세요? 제가 아나운서가 되어 가장 기뻤던 건 그 지난한 과정을 옆에서 묵묵히 참고 지켜봐 준 어머니가 저보다 더 기뻐하셨기 때문이었어요. 대학을 세 번 떨어지고 입학과 동시에 30개월 군대 가서 25살에 1학년으로 복학했던 거 기억하시죠. 취업도 재수해서 29살에 아나운서가 되었잖아요.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저에게 어떤 길을 가라고 부모로서 권리를 행사하신 적이 없었지요. 늘 안타까워하며 기도로 저를 응원하셨죠.
    1994년 크리스마스 자정미사 때 어머니의 그 절실했던 기도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느덧 20년이 흘렀네요.
    ( '29살에 아나운서가 되었잖아요' 중에서)

    저는 운이 좋게도 뉴스, 시사 교양, 예능, 라디오 등 다양한 장르의 방송을 접할 수 있었어요. 입사 3개월 만에 아침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고정코너를 맡아 방송을 시작한 거죠. 제 아나운서 생활 동안 어머니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침 밥상을 차리시고 저를 깨우셨죠. 전 밥을 먹으며 잠을 깼구요.
    이제야 감사드려요. 좀 더 일찍 자서 아침에 더 잘 일어나는 건데…. 아 드디어 첫 방송 하러 새벽에 집을 나설 때 어머니도 얼마나 설레며 기대하셨을까요

    어머니, 사람들은 가끔 저한테 연예인이라고 하대요.
    그리고 어떤 PD는 모든 출연자를 통틀어 ‘연기자’라 부르기도 해요. 하지만 저희 아나운서들은 ‘촬영’보단 ‘녹화’라는 말을 써요.
    어감의 차이 때문일 텐데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방송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결국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라는 고유의 이름으로 불리는 걸 가장 좋아해요. 그런데 어느 한 아나운서가 연예인의 이미지가 강하고 본인도 그런 길을 지향하고 인정도 받는다면 연예인이라고 생각해도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어떤 아나운서가 언론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 오랜 세월 그런 길을 걸어왔으며 시청자가 그런 그를 지지한다면 저널리스트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그들도 직업인으로서 아나운서로 소속되어 있다면 그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건 ‘아나운서’예요. 바로 이 말이 아나운서가 연예인인지 언론인인지에 대한 외부의 엇갈린 평가에 대해 막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랍니다. 물론 아나운서는 월급쟁이라 연예인처럼 호사를 부릴 수도 없고, 김영란법으로 방송사 모든 직종이 언론인이 되었지만 그건 별개의 이야기구요.
    ( '아나운서는 방송의 꽃인가' 중에서)

    어머니, 이제 제 이야기를 마칠 때가 되었어요.
    아주 오래전 면접시험에서 손석희 선배님이 저에게 했던 질문과 제 대답을 들어주실래요.
    “신동진 씨는 전경제대를 했는데 시위현장에서 대학생과 싸울 때 기분이 어땠어요?”
    “사람들은 전경과 대학생이 시위현장에서 싸우면 이 나라의 불행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어제 내무반 제 옆자리에서 잠을 잤던 동료가 화염병에 맞아 온몸에 불이 붙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지면서 진솔하게 대답을 했고 저는 지금도 이 대답으로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아나운서 저널, 2013. 7.).
    ( '면접시험에서 손석희 선배가 했던 질문과 나의 대답' 중에서)

    우리 삶을 충전시키고 프레임에 담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다운 순간은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 거 같습니다. 바로 사람의 말 한마디가 그렇지 않을까요.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는 사람의 가슴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가장 아프게 하는 것도 한마디의 말(言)이라 했습니다.

    利人之言 煖如綿絮
    상대방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말 한마디는
    따뜻하기가 솜과 같고
    傷人之語 利語荊棘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 한마디는
    날카롭기가 가시와 같다

    우리나라와 같이 구성원들 간에 근무시간이 길고 관계지향적인 문화가 강한 환경에선 상대방의 감정에 더 많이 노출되고 쉽게 전염될 수 있는 구조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방전되기 쉬운 추운 겨울에 손난로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 충전되고 싶은 시절입니다.
    ( '상인지어(傷人之語)-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들 속에서' 중에서)

    작년 1월에 파업이 시작된 이후 15개월 만에 아나운서국에 복귀했습니다. 물수건으로 깨끗이 자리를 닦아놓았다는 후배, 다시는 가지 말라며 벨트를 선물하는 선배, 사직서를 제출한 한 후배는 꽃다발을 안기며 맞아주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집 나갔다 돌아온 사람마냥 아직도 좀 어리둥절하지만 이런 동료들이
    있어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마저 느낀다면 지나친 감상일까요.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면 차 안의 음악도 꾹꾹 누르고 세상이 던지는 메시지에도 귀를 닫고 살았는데 올봄에 피어난 벚꽃에도 동하는 걸 보면 마음의 빗장도 조금씩 풀리고 있나 봅니다.

    아나운서 사회에도 앞으로 큰 어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고는 하지만 아나운서들에게도 오기(吳起) 장군과 재키 로빈슨 같은 훌륭한 선배가 필요하고 후배들은 그런 선배가 입었던 정장과 타이를 하고 마이크 앞에 나설 것입니다.
    ‘무력은 모든 것을 정복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 링컨의 말이 새삼 경종을 울리는 건, 가지려 하기보단 내려놓을 때 아나운서들이 우리 사회에 ‘따뜻한 리더’가 되는 첫걸음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 '연저지인(吮疽之仁)- 동료들의 동고동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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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종
    판매수 6권

    ㆍ96년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입사
    ㆍ경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2014년)
    ㆍ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 역임
    ㆍ한국외대 경희사이버대 한세대에서 겸임교수 역임
    ㆍ국어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8 2014 2018년 문체부장관상 수상
    ㆍ2018년 대한민국 아나운서대상 장기범상 수상
    좋아하는 말은 균형감각, 통찰력, 그리고 어머니 입니다.

    이 책과 내용이 비슷한 책 ? 내용 유사도란? 이 도서가 가진 내용을 분석하여 기준 도서와 얼마나 많이 유사한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비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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