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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행방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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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우리 모두가 기억하게 될, 슬픔에 대한 묵직한 기록

    죽음을 볼 수 있는 안테나이자 안내자인
    신비한 나뭇가지 ‘반’이 마주친 무수한 손들

    출판사 서평

    문학동네작가상 및 자음과모음문학상 수상 작가
    안보윤 신작 장편소설

    우리 모두가 기억하게 될, 슬픔에 대한 묵직한 기록


    문학동네작가상과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하며 현대인의 불온한 삶과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예민하고 단단한 시선으로 남다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안보윤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은 자음과모음 ‘새소설’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인재(人災)라는 이름하에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묵직하게 담아낸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며 벌어지는 갖가지 가해와 피해, 부조리와 불합리, 불안과 슬픔, 탐욕과 이기심에 대해 작가는 특유의 감응력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다시금 독자한테 질문케 한다.

    — 인간이란 건 복잡하네요.
    구부러진 나뭇가지가 짐짓 진중한 어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주혁이 한낮부터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 게 어제 복채를 떼먹고 도망친 남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 인간만큼 단순한 게 어디 있다고.
    — 단순하다고요? 어디가요?
    — 별거 없어. 태어나고 자라고 죽고. 그게 다야.
    — 그 과정이 별거잖아요.
    — 그게 별건가.
    (……)
    — 그런데, 어떤 인간은, 도형을 망가뜨리고 말아. 터지고 납작해진 것을 움켜쥐고 죽을 때까지 살기도 해. 자신의 도형뿐 아니라 타인의 도형까지 짓밟고 망가뜨리면서 죽지도 않고 뻔뻔하게, 살아. (108~112쪽)

    소설은 주인공 주혁의 시선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누나 집에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분명 누나를 기도터에 데려다주러 떠난 게 그 전날의 일이었다. 점을 봐주는 초보 ‘선녀’인 주혁의 누나는 용한 점쟁이가 되기 위해 ‘귀신을 붙’이려는 목적으로 산속에 들어갔고, 주혁은 그 누나를 배웅했었다. 그리고 주혁은 지금 혼자 덩그러니 누나 집에 돌아와 누워 있는 것이다. 이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지만 말이다. “저기요, 아저씨. 저 좀 보실래요?” “마누카 꿀을 반 스푼 타주시면 피로가 좀 풀릴 것 같네요.” 기묘하게 구부러진 나뭇가지. 그렇게 주혁은 종알종알 이것저것 물어보고 요구하는 깜찍하고 맹랑한 나뭇가지 ‘반’과 함께 동거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기이하고 신비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음을 볼 수 있는 안테나이자 안내자인
    신비한 나뭇가지 ‘반’이 마주친 무수한 손들

    인간이 만들어낸 죽음들에 대한 단단한 응시


    — 네가 볼 수 있는 건 죽음뿐이야? 왜?
    — 사신이니까요.
    — 수호신이라더니?
    — 투잡인가 봐요. 수호신 겸 사신.
    — 그러니까 죽음만 볼 수 있다?
    — 잘 모르겠어요. 일단 나를 만진 사람과 관련된 죽음 정도는 보이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게 될 죽음, 그것과 관련된 장면 정도가요. (103쪽)

    귀엽고 잔망스러운 나뭇가지, ‘반’. ‘반’은 죽음을 볼 수 있는, 죽음의 안테나이며 안내자이다. 사람과 닿는 즉시 그 사람과 관련된 죽음을 투시할 수 있다. ‘반’과 주혁이 ‘천지선녀’ 집에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정이 들어가는 와중에, 우연찮게도 사람들은 그 집으로 찾아들기 시작한다. 물론 점을 보기 위해서인데, 나뭇가지 ‘반’의 신통방통한 능력으로 주혁은 졸지에 ‘선녀님’이 되어 사람들의 인생을 훤히 꿰뚫으며 ‘말씀’을 전해준다. 입소문이 나자 점점 더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와 저마다 품은 사연을 ‘천지선녀’라는 공간에서 풀어놓기 시작한다.
    『밤의 행방』은 이렇듯 점집에 찾아든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맞물리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방문객들과 관련된 죽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파헤쳐지며, 그들 각각의 시선을 통해 사연들은 겹겹이 층을 이루고 쌓아가며 사회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 면면들은 가출, 직장 내 성희롱, 아동 학대, 사내 비리, 대형 참사 등 사회 구석구석 만연해 서슬 퍼렇게 작용하고 있는 현실의 사건들인데, 소설에서 작가는 그 사건을 둘러싸고 단순히 옳다 그르다로 단번에 재단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윤리와 정의에 대해 깊은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 생생한 목소리들을 소설에 기록해내며, 우리 모두가 영영 기억해야 할,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엮어냈다.

    [작가의 말]

    소설을 처음 구상할 때 나는 만들어진 죽음에 대해 쓰고자 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죽음이 범람하는 바람에 길을 헤매는 사신(死神)과 그를 안내해주기 위해 탄생한 반. 반은 죽음의 장소로 사신을 불러들이는 안테나이자 안내자 역할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자꾸 망설였다. 반의 미숙함과 상관없이 그가 마주하는 밤의 실체가 더없이 뚜렷하고 잔혹한 탓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밤이 탄생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거리에 밤의 씨앗을 흘리고, 누군가는 그림자처럼 발끝에 매달린 밤을 지르밟으며 걷고, 누군가는 폐로 스며든 밤의 기척에 뒤척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렵다. 그리고, 슬프다.

    목차

    밤의 행방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저기요, 아저씨. 저 좀 보실래요?
    주혁이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에서 앳된 목소리 하나가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방 싱크대 위, 물이 반쯤 채워진 목이 긴 화병에서였다.
    (/ p.9)

    조금 전의 행동이 괴롭힘인지 장난인지 실수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걔는 뭐랬는데? 어처구니없어진 우철이 묻자 아이는 웃었어, 라고 말했다.
    — 날 보고 웃었어.
    — 그래서?
    — 그래서, 괜찮은 건가 했어. 웃는 걸 보니 괜찮은 건가보다 싶어서, 그냥 나도 웃었어.
    (/ p.55)

    우철은 앞에 선 남자와 노란 치마저고리를 번갈아 보았다. 선녀라는 이름을 꼭 여자만 쓰라는 법은 없지만 이건 너무. 우철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장면에 진저리를 쳤다. 장군이든 선녀든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우철은 남자가 혹시 선녀 목소리 비슷한 것을 낼까 봐 경계했다.
    (/ p.60)

    ……혼란스러웠습니다. 갑자기 모든 게 다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팀장이 진짜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저를 추행한 건지, 주연 누나가 저를 끌어안고 달래듯 친근하게 대한 건지, 주연 누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들었다는 그 순간들이 진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모종의 이유로 왜곡하고 부풀려놓은 가상만 존재하는 건지.
    (/ p.88)

    — 근데 수호신이랑 사신은 투잡으로 좀 이상하지 않아요? 바이러스랑 백신 같은 느낌이잖아요.
    — 너, 사신은 아니야.
    — 내가 아저씨 수호신이라는 건 인정하는 거네요?
    — 수호신은 개뿔.
    (/ p.104)

    가로등 꼭대기에 올라 알전구를 갈아 끼우는 남자가 되고 싶던 날이 있었다. 연애 시절 영주의 방을 올려다볼 때마다 주혁은 가로등에 매달린 자신의 뒷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영주의 자취방은 그들이 다니던 대학 뒤 복잡한 골목 안에 있었다. 천장이 낮고 방범창이 두꺼운 빌라들. 모퉁이마다 박아놓은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노랗게, 고깔 모양으로 번지는 곳이었다. 가로등은 영주의 방과 정확히 같은 높이였고, 영주는 방에 들어가선 불을 켤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 그래서 잠을 못 자, 너무 밝아서
    (/ p.105)

    — 도형. 삼십대엔 입체도형을 하나 갖게 돼. 근데 그게 참 보잘것없거든. 가까스로 세워놔도 쉽게 찌부러지는 애물단지지. 그래도 노력해온 게 있으니 다들 그걸 지키고 싶어 해. 인간으로서의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봐야지. 지킬 게 생기면 인간은 끈질겨지거든.
    — 그때까진 인간이 아닌 건가요?
    — 뭐, 기대하진 말아야지.
    — 단순하다더니 엄청 복잡하네요.
    — 점 선 면 도형. 딱 기본이잖아.
    (/ p.111)

    — 그 선생님 어떻게 지낼까요?
    — ……잘 지내겠지.
    — 그치만 아기가 죽었잖아요.
    — 고작 점 하나일 뿐이야.
    주혁이 말했다.
    — 내가 전에도 말했지, 어린애는 쓸모없는, 아주 사소한 점 같은 거라고.
    — 작고 귀중하다고도 말했죠.
    —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점이야.
    — 선도 면도 도형도 될 수 있는 그 점 말이죠.
    (/ p.193)

    — 오자? 틀린 글자?
    — 네.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하실래요?
    — 뭘 어떻게 해?
    — 아저씨가 사라져야만, 완벽하게 지워져야만 책이 완벽해진다면.
    — 그럼 지워져야지.
    — …….
    — 그런데 완벽한 책이란 게 그렇게 허술해도 되는 거야? 오자 하나 찍혔다고 망가진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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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1~
    출생지 인천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5,019권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장편소설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알마의 숲』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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